<화척>(문이당/전 5권)은 <객주>의 김주영 작가가 1995년 내놓은 또 하나의 대하소설이다. 신문에 연재 중이던 1991년 작가의 이른바 '절필 선언'* 소동을 빚기도 했던 이 작품은 고려 의종과 명종 연간의 무신정권 시기를 배경으로 삼아 신분의 질곡에서 벗어나려 몸부림치는 천민들의 삶을 그리고 있다. 제목으로 쓰인 '화척禾尺'이란 버들고리를 만들거나 사냥 따위로 연명했던 떠돌이 천민 집단 무자리들을 일컫는다.
고질화해가는 신분제 질서 속에서 짐승처럼 살다가 스러지는 하층민들의 원한에 찬 삶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서설'에 이어 소설은 고려 의종 24년(서기 1169년) 8월 정중부와 이의방 등에 의한 무신의 난으로 곧바로 나아간다. 나라의 경영을 허투루 한 채 황음무도에만 빠져 있는 국왕과 그의 지척에 포진하고서 왕의 허물을 간하기는커녕 그에 편승해 나라를 더욱 망치려 드는 썩어빠진 문신과 환관들, 그리고 그들의 사나운 등쌀에 치여 제 몫을 찾아 먹지 못하고 불만을 키워 가는 무신들의 대치 구도가 임박한 위기의 징조를 강하게 내비친다.
"업신여김이 이토록 야멸차다니"라는 무신들의 울분과 분노에서 비롯된 쿠데타 장면은 박진감 넘치고 통쾌하기까지 하지만, 일단 반란이 성공한 뒤에 전개되는 사태는 반드시 명분과 정의에 충실하지만은 않은 것으로 나타난다.
쿠데타라는 것이 힘으로써 기존의 질서를 뒤엎는 사단인 바에야 그 휘두르는 칼과 창이 언제나 마땅한 목숨만을 찾아가는 것은 아닌 것이다. 오해와 무절제에서 비롯된 불필요한 살육이 줄을 잇고 복수는 또 다른 복수의 씨앗을 뿌린다. 또한 반란의 선두에 섰던 무신들끼리 그 성과물을 놓고 벌이는 먹이다툼 역시 치열하다.
이 과정에서 작가는 쿠데타의 명분을 제공한 국왕과 문신·환관들의 잘못은 잘못대로 지적하면서도 무신들의 무분별한 살육과 권력 다툼은 또 그것대로 경계하는 등 객관적인 거리를 잃지 않는다. "동반(문관)의 사람들은 칼이 아니더라도 법통을 순조롭게 이어가는 것인데, 우린 어찌 그것이 되지 않는가?"라는, 쿠데타 주모자 정중부의 탄식은 명분을 지니고 출범했던 거사가 퇴색하고 타락해가는 과정을 적시하고 있는 셈이다.
정중부, 이의방, 경대승, 이의민, 최충헌으로 이어지는 무신 정권의 흐름이 <화척>의 공식사·정치사를 이룬다면, 이의방의 노비가 되어 방랑의 길을 모색하는 거칠과 그의 조카로 최충헌의 수노가 되어 천민 해방을 위한 난을 주모하는 만적의 이야기는 개인사에 압축된 계급사의 전형을 보여준다.
여기에다가 늙은 주인에게 성적으로 농락당하는 어린 계집종, 내시가 되어 자신과 식구들의 주린 배를 달래고자 거세를 자청하는 소년들, 이마에 찍힌 죄의 징표로 인해 짐승만도 못한 대접을 받으며 이웃 금나라로 놉을 팔러 가는 사내 등의 삽화가 보태져 죽기 전에는 끊어 없앨 수 없는 신분제 질서의 잔혹한 사슬을 증거한다.
잃어버린 순우리말과 옛말의 복원에 재능과 노력을 아울러 보인 바 있는 작가는 <화척> 각 권 말미에도 본문에 나오는 어려운 낱말의 풀이를 곁들이고 있다. 독자들에게 현란한 말의 세례를 안겨주는 작가 특유의 문장 한 대목을 읽어 보자.
"황령皇齡을 누리자면 아직도 앞날이 아득한 마흔셋의 보령寶齡이었다. 그러나 연음燕飮과 헌수獻酬로 지새운 낮과 밤의 앙금들이 어느덧 왕의 얼굴에서 천위天威를 앗아가고 말았다."
*김주영 작가는 소설 <화척>을 집필하면서 방북 취재를 위해 북한 측과 접촉을 시도했다가 여러 차례 약속을 어긴 북한 당국자의 태도에 화가 나서 절필을 선언했다. 사람에 대한 배신감으로 글을 쓸 수 없었다고 한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고려 시대의 무신의 난을 주제로 한 소설이었는데, 그게 개성에서 일어난 일이잖아요. 그런데 개성 한번 다녀오지 않고 그런 긴 소설을 쓴다는 게 왠지 철면피 같이 생각됐어요. 그래서 당시 무역 관련 일을 하던 중국 기관의 상무원 쪽에 알아보니 마침 조선족 한 분이 있더라고요. 그분께 제 사정을 말하고 개성에 다녀올 수 있도록 주선해 달라고 했어요. 그 시절에 북한과 접촉을 하려면 안기부에 신고해야 해서 안기부의 허가를 받은 다음 출판사 사장과 함께 북경에 갔지요. 그리고 식당에서 북한 대사관에 근무하는 사람들을 만나기로 했는데 약속 시간이 한참 지나도 안 오더라고요. 그쪽에서 그렇게 두 번이나 약속을 어겼습니다. 그래서 못 만나고 그냥 돌아왔죠. 그 일로 인해 잠시 의욕을 잃어버렸어요."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회의와 좌절감이 밀려왔던 것으로 보인다. 이 사건은 당시 신문에 대서특필되기도 했다. 그런데 막상 절필하고 보니까 글 쓰는 일이 아니면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고 한다. 결국 그는 그것을 운명으로 받아들였다. <화척>은 '절필' 선언 5년 만에 소설 후반부 두 권 분량을 전작으로 집필을 마친 곡절의 결과물이다. "나중에 통일이 되면 개성의 지리적인 여건 같은 것은 고쳐 써야 할지도 모르겠다"는 작가의 말에는 진한 안타까움이 배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