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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2.07.
2021년 저녁인가 아침인가
시편 30:1-12
I. 극점사회(초양극화)
2020년 작년 한해 언론에 가장 많이 노출된 단어가 무엇일까?
빅데이터 조사에 의하면 마스크라는 단어였다고 합니다.
발 빠르게 마스크라는 노래가 나왔는데 사랑하는 연인을 마스크에 빗대어서 지은 노래입니다.
♪마스크가 되어주세요 내가 아픈 날에도 슬픈 날에도 지켜 주세요.
너 없이는 아무데도 못가 너 없이는 아무것도 못해 너 없이는 살 수가 없어~
하는 노래입니다.
2021년 한 해 동안 우리 입에서 가장 많이 되뇌어지는 단어가 어떤 단어일까?
역시 코로나19 팬데믹과 관련된 단어이겠지요?
비대면, 온라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코로나가 오늘 끝나고 바로 대면사회로 가지는 못 할 것입니다.
조심스런 대면, 양질화된 비 대면이 공존하는 사회로 나가게 될 것입니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한반도에 상륙한지 꼭 1년이 되었습니다.
앞으로 1년은 더 지나야 한반도에서 아니 세계에서 코로나가 종식될 것이라고 합니다. 종식 후에도 1-2년에 한 번씩은 독감처럼 백신을 맞으며 사는 with Corona 코로나와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살이를 하게 될 것입니다.
종말론적으로 우리의 믿음을 잘 지키지 않으면 우리 주님께서 말씀하셨듯이 “마지막 때에 믿는 자를 보겠느냐”
그 대상이 우리자신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고 경성해야 합니다.
지난 1년 비대면 사회는 모든 면에서 갈림길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을 포함하여 일반국민들의 62% 정도 지금 우울증을 느낀다고 대답을 했습니다. 주부들, 자영업자들 가운데 그 퍼센티지(%)는 훨씬 더 높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경제적인 면에서도 갈라지고 있습니다.
미국 바이든 정부는 대대적인 경기부양책을 쓰는 큰 정부가 되겠지요.
우리나라도 커진 예산이 전반기에 주로 집행되어져서 경제를 회복하고 일자리를 창출하려고 시도할 것입니다. 경제지표는 분명 좋아졌는데 우리국민의 86%는 불평등만 심화되어졌다고 느낍니다. 저소득층 시민들은 양극화 경제적 갈라짐의 시대를 뼈가 아프게 느끼고 있습니다.
세계는 지금 모든 면에서 양극화 사회를 지나서 초양극화 사회학적인 전문적인 용어로 극점사회로 진입하고 있습니다.
꼭대기 상위그룹과 바닥 하위그룹으로 나뉘어 지고 있습니다.
상위20%와하위 20%의 경제적인 소득격차는 170배에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유독 우리나라만 그런 것이 아니고 미국은 더 심해요.
전 세계에 동일한 지금 갈라지는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세계도처에서 벼락부자들도 생기고 벼락 빈곤층도 생겨납니다.
큰 것과 작은 것들이 갈라지고 있습니다.
나라도 큰 나라 중심으로 운영되어집니다.
앞으로 우리나라에서도 큰 도시만 살아남을 겁니다.
작은 도시는 아마 소멸될 것입니다. 기업도 마찬가지지요.
심지어는 교회도 큰 교회들이 복음선교의 중심에 서면서 극점사회를 어떻게 치유 할 것인가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도전합니다. 2021년 우리들의 자리는 어디입니까?
여러분의 영적인 현주소는 어디입니까? 정신적인 건강상태는 어디입니까?
건강은 잘 지키고 계십니까?
아니면 게으름과 나태에 빠져서 하루하루 건강을 잃어버리고 있습니까?
사회생활 경제생활은 갈 길을 찾았습니까? 활력을 되찾으셨냐고요.
여러분의 신앙생활, 교회생활, 섬김생활 믿음을 잘 지키고 계십니까?
이 시간에는 2021년 시리즈로 설교를 하는데 세 번째 시간입니다.
2021년 정탐하라 정복하라. 두 번째 시간에는 2021년 사막인가 낙원인가.
오늘 세 번째 시간 “2021년 저녁입니까 아니면 아침입니까”
여러분들이 인생의 한밤중, 어두운 세상을 헤매면서 한 해를 사시겠습니까?
아니면 아침의 노래, 희망의 노래, 여러분들이 밝은 대낮처럼 이 세상을 헤치며 살아가시 겠습니까? 하는 도전입니다.
II. 고난의 때 영적실력을 보이라
오늘 본문 시편 30편은 “다윗의 시”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경에 수많은 인물들이 나옵니다.
그 인물들을 대할 때에 요셉이나 사무엘은 흠과 티가 없어서 본받기가 힘든 인물입니다.
아브라함이나 모세 그리고 엘리야 같은 인물은 스케일이 너무 커서 가까이 갈 수가 없습니다. 의외로 성경의 인물들 가운데는 인간 냄새가 나는 분들이 있어요.
인간적인 체취가 있어서 저들도 우리와 꼭 같은 인간이였구나. 기뻐할 때도 있고 아파할 때도 있고 넘어질 때도 있고 실수할 수도 있고 그래서 인간처럼 하나님 앞에 울기도 하고 매달리기도 하고 회복을 경험하여 다시 인생의 걸음을 내딛는 인물들이 있습니다.
야곱이나 오늘 본문의 주인공 다윗같은 분이 아닌가 싶습니다.
다윗은 우리가 너무나도 잘 아는 인물이지요.
소년의 몸으로 당시 최대의 적 블레셋의 골리앗을 물맷돌 하나로 쓰러뜨립니다.
온 국민의 칭송받아 마땅한 이 때에 사울 임금의 시기를 사서 도망자 신세가 됩니다. 가만히 서 있어도 머리가 벗겨질 것 같은 사막에 홀로 숨어서 삽니다.
한밤중이 되면 한기가 드는 동굴 속에 숨어 사는가 하면, 원수의 나라로 도망쳐서 침을 질질흘리며 미친척하여 목숨을 부지합니다. 아들 압살롬의 반란으로 궁궐에서 도망 나와 조롱거리가 됩니다. 이런 모든 상황을 오늘 본문에서 한마디로 요약하고 있습니다.
내 영혼이 지옥 밑바닥 스올에 떨어졌다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다른 시편에서는 기가 막힐 웅덩이에 빠졌다고 표현합니다.
그런데 1절 2절에 보면 하나님께 바로 그 스올 밑바닥 지옥 밑바닥에 굴러 떨어진 나를 하나님이 끌어내셨다는 것입니다. 산산히 부서진 내 삶을 난도질당한 내 인생을 하나님께서는 2절에서 고치셨다 라고 표현합니다. 여러분 이게 인생입니다.
여러분들도 인생의 밑바닥에 굴러 떨어져서 ‘아 이게 내 인생의 끝이구나’하는 느낌을 가져본 적이 없으십니까? 건강을 잃어버리고 ‘내 인생 끝나는구나’그래서 하나님 앞에 울며 매달려 본 경험은 없으십니까? 아니면 사랑하는 내 자식이 학교에 잘 다니더니 학교에서 사고가 나서 학교에서 쫓겨나고 짤리고 심장이 쿵! 하고 땅바닥에 떨어지는 충격을 받아 보신 적은 없습니까?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아니면 재판정에 끌려 나가 피가 거꾸로 용솟음치는 분노를 느껴 보신 적은 없으십니까? 원수가 이기고 내가 잘못한 것 없는데 기도하는 내가, 하나님을 믿는 내가, 왜 이 꼴을 당해야 되느냐? 하나님 앞에 목 놓아 울어보신 적은 없으십니까? 다른 사람들의 부러움을 사던 사업이 막혀서 가진 재산 다 잃어버리고, 자라나는 자식들 굶겨야 하는 아비의 고통을, 어미의 고통을 느껴 보신 적은 없으십니까? 누구보다도 명랑했던 난데 산후우울증, 갱년기, 우울증, 그 못된 우울증에 시달리며 초라한 내 모습에 인생 끝내자! 충동을 느껴보신 적은 없으십니까? 아니면 영적인 시험에 빠져서 그 나락에 떨어져서 하나님 앞에서 이웃들에게 고개를 들 수 없었던 경험은 없습니까? 바로 이것이 다윗이었다는 것입니다.
인생은 고해, 쓰디쓴 바다라 했던가요.
인생이 대단해 보이지만 콧구멍을 막아놓으면 5분이 지나지 않아서 죽는게 인생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내 인생이 어디엔가 불시착을 했는데 백마 탄 왕자가 나타나더니 나를 품에 안고 가자 낙원으로...이런 것 드라마에나 있지 우리 인생사에는 없습니다.
경비행기 타고 날아올랐는데 고장이 나서 떨어졌습니다.
떨어지고 나니 북한 땅입니다.
인생 끝이다 싶었는데 현빈이가 쨘 나타납니다.
그리고는 드라마 찍는 내내 돈 벌었겠지요.
드라마 찍다가 사랑이 싹터서 손예진이 하고 현빈이하고 결혼한대요.
우리에게는 없는 이야기입니다.
연속극 드라마에나 나오는 얘기고 그들의 이야기죠.
다윗을 연구원 학자들은 다윗의 생애를 살펴보고 한 마디로 요약합니다.
“다윗 인생엔 기적이 없었다.”
기적이 있었다면 어떤 위기에 빠져도 뜨겁게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요. 뜨겁게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살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잃어버리지 않은 기적이 있었다는 것이에요.
위기 때마다 무릎 꿇고 기도하여 그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내는 기적이 있었다는 것이지요.
고난과 시련을 통해 영적인 실력을 쌓았습니다.
쌓여진 영적인 내공으로 위기를 언제나 승리로 만들어냈던 기적의 인물이 다윗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위기라고 말하는 재난의 때는 나의 영적인 실력을 보여 줘야 할 때입니다.
나를 믿는 내게 기대를 가지고 계시는 살아계신 하나님 앞에 인정받고 믿음의 그릇이 커지고 은혜의 그릇이 커지고 영향력이 커지는 기회로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세계적인 부호 록펠러에게 위기의 순간이 있었습니다.
친구들의 권유로 광산업을 시작했습니다. 사기를 당해서 폭망했지요.
빚 독촉에 시달리는가 하면 광부들은 폭도로 변했습니다.
쫓기는 신세가 되어서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하다가 두 가지를 결단합니다.
내 인생에 어떤 위기가 와도 하나님 사랑하는 내 믿음, 하나님께 나아가 예배하는 그 예배시간, 위기가 크면 클수록 더 많이 기도하는 기도의 순간을 잃어버리지 않겠다.
내가 아무리 가난하게 살아도 하나님을 섬기는 하나님께 봉헌하고 누구보다도 앞장서 섬기는 헌신을 잃어버리지 않겠다.
그리고 예배하고 기도하는데 가슴 깊은 곳에서 조용한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아들아, 때가 되면 거둘 것이다. 네가 나를 믿는다면 포기하지 말고 계속 파라.’폭망한 광산을 파라는 하나님의 음성으로 듣고 친구 몇 명과 함께 광산을 더 깊이 파기 시작합니다.
누런 금덩어리가 나올 줄 알았는데 시커먼 흙탕물이 쏟아집니다.
풀썩 주저앉아 절망하고 있는데 시커먼 먹물 냄새가 이상해요.
석유가 쏟아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당대 최고의 유전이 그 자리에서 발견되어진 것입니다.
그는 자서전에서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인생의 위기가 클수록 크신 하나님께 크게 기도하라. 하나님 앞에 크게 쓰임 받을 것이다.” 할렐루야!
III. 성전 낙성가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지요. 밤이 있으면 낮이 있는 게 인생이지요.
오늘 본문 인생을 노래한 시편 30편은 대조어가 참 많이 나옵니다.
5절과 11절은 대조어가 가득차 있습니다.
노염은 잠깐이요 은총은 평생이로다.
노여움과 은총이 잠깐과 평생이 대조어이지요.
저녁에는 울음이 깃들일지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로다.
저녁과 아침이 울음과 기쁨이 대조되고 있습니다.
슬픔이 변하여 춤이 된다. 베옷을 벗기고 기쁨으로 띠 띠우신다.
모든 단어가 대조어로 되어 있습니다.
오늘 설교 제목도 5절의 대조어 가운데 저녁과 아침을 붙들어서 새해를 살아갈 때에
여러분의 인생은 저녁이 될까요 아니면 아침이 될까요.
절망으로 빠져들까요 아니면 희망의 아침을 맞이할까요.
낙심을 노래하며 살까요 아니면 희망을 노래하며 살까요.
도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기상청에서 새벽, 아침, 낮, 저녁, 밤이란 단어를 씁니다.
그 시간의 구획을 아십니까?
새벽은 해뜨기 2시간 전부터 해가 뜨는 시간까지 말합니다.
아침은 해가 뜨고 나서 2시간까지를 아침이라 말합니다.
그 다음부터 낮입니다. 저녁은 해가 지고 그 2시간까지 그 기간을 저녁이라고 합니다. 그 다음부터 밤이 되는 것이죠.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는 영적인 저녁, 영적인 밤은 고난의 순간을 말합니다.
고통과 아픔, 괴로움의 순간을 말하는 것이지요.
다윗은 시편에서 인생의 저녁, 인생의 밤이란 단어를 쓸 때 신학적인 한 전제가 있어요. 시간은 흘러간다. 밤은 지나간다.
고통은 반드시 끝나는 시간이 있다.
위기는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반드시 새로운 희망으로 바뀌는 순간이 있다.
저녁에 되고 아침이 되니. 이 믿음이 다윗의 시에 가득 차 있는 것입니다.
인생이라면 누구나 밤을 보내게 되어 있습니다.
밤은 지나갑니다.
시간은 멈춰져 있는 시간은 없습니다.
♪고장난 벽시계가 인생이 아닙니다.
♪이 또한 지나 가는 게 인생살이더라. 그런 얘기지요.
여러분 인생 지나가지 않는 게 뭐가 있었습니까?
인생이 많이 지나오지 않았습니까?
저도 20대 중반쯤 되면서부터 어디에 가든지 간에 선배 목사님들이 “한국교회 뜨는 별 왔네”그랬어요. 어디 가나 뜨는 별, 뜨는 별 그랬어요.
그런데 지금 누가 나를 보고 뜨는 별이라고 하는 사람이 누가 있겠어요.
아무 말도 안 하지요. 그러나 속으로 그렇게 생각할 거예요.
‘지는 별 왔네’ 지는 별, 지는 별 그럴 거예요. 제가 30대 초반의 담임목회를 시작했는데 우리 장로님들이 기도 시간마다 쓰는 용어가 있어요.
“하나님 어린 종, 어린 종” 그래요. 그 때는 그 소리가 얼마나 듣기 싫은지. 어린 종 어린 종. 지금은 그 어린 종소리가 그리워집니다.
지금은 누가 날 보고 어린 종이라고 부르지 않죠. 아무 말도 안 하죠.
그런데 속으로는 늙은 종, 늙은 종 그럴 것 아닙니까. 그게 인생살이에요.
오래전 설교한 임 목사님이 남편이야기를 하면서 과자 먹은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제가 그 간증을 들으면서 참 좋을 때다. 그렇게 생각했어요.
왜? 과자 먹고 살 때가 좋을 때예요.
제 나이가 되고 나면 과자 못 먹잖아요.
제가 과자 먹어 본 지가 10년도 더 된 거 같아요. 과자 얘기를 하길래 그래 나도 과자 먹을 때가 있었지 참 좋을 때다. 인생이 그렇게 지나갔어요.
고난의 시간도 마찬가지입니다.
고통의 시간도 마찬가지입니다.
반드시 은혜의 시간, 승리의 시간, 새아침의 시간으로 다가오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 잃지 않으면,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면, 고통의 순간마다 부르짖어 기도하면 반드시 어둠은 지나가고 아침은 밝아오게끔 되어 있습니다.
시편 30편 표제가 참 재미있습니다.
다윗의 시 곧 성전 낙성가라고 되어 있습니다.
성전 낙성가라는 이 말에 대단히 신학적인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신앙적인 깊은 해석이 필요한 단어입니다.
성전 낙성가. 성전을 짓고 낙성가를 불렀다는 것 아닙니까.
다윗은 성전을 지을 열망이 있었지만 성전을 지은 적이 없어요.
그런데 무슨 낙성가입니까?
전염병이 끝나고 난 다음에 타작마당을 성전 터로 장만합니다.
그 자리에 이미 성전이 완공된 것처럼 성전을 지어 하나님께 바치는 노래를 부르는 겁니다.
건축자재를 다 준비하고 아들에게 그 자재를 넘기고 성전 건축할 사명을 넘겨주면서 이미 성전이 완공된 것처럼 성전건축 완공가를 부르는 거예요.
아들에게 쫓겨나서 따뜻한 아랫목에 그리워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집에 엎드려 예배함을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시편 84편입니다.
그리고 돌아와서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고 내가 드리는 이 예배가 하나님의 집을 완성하고 짓는 성전건축 완성가로 노래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소수의 사람들이 여기에 와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예배를 드리면서 찬송 한 곡을 불러도 예배당이 미어 터질만큼 우리 성도님들 한 분도 빠짐없이 구름떼처럼 몰려와서 이 예배당이 날아갈 것처럼 하나님께 예배하는 그 날을 그리워하며 이 전에 성도님들이 가득 차 있는 것처럼 우리가 찬송 부르는 게 성전 낙성가가 되는 것입니다.
아직도 코로나는 끝나지 않고 재난의 한복판을 살아가지만 언젠가는 끝난다.
새로운 세계를 주신다. 하나님이 주시는 뉴노멀은 희망의 그 날이 될 것이다.
재난의 한복판을 살아가면서 모든 것이 회복된 것처럼 이미 승리한 사람처럼 희망의 노래를 부르는 게 성전 낙성가입니다.
병실 침대에 누워서 의사는 고개를 흔들지만 난치병은 있지만 불치병은 없다.
우리 하나님 안에서. 주 안에서 이미 고침 받은 것처럼 주께서 채찍에 맞음으로 나는 나음을 얻었다.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나는 이미 건강해졌다. 믿음을 가지고 건강의 노래를 부르는 게 성전 건축가, 성전 낙성가가 되는 거예요.
사업이 다 무너졌습니다. 갈 길이 없습니다.
그러나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한 길을 만들어 내시고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한 아이디가 번쩍번쩍 떠 오르고 꿈도 꾸지 못했던 길이 열려지는 그 길을 믿음을 가지고 바라보며 성전 낙성가를 부르는 거예요.
다윗의 시 곧 성전낙성가 바로 그 얘기 아닙니까?
IV. 밤중에 부르는 희망의 노래
성전 낙성가는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부를 수 있는 노래가 아니에요.
걸핏하면 하나님 살아계시니 죽었느니 교회를 떠나고 예배를 잃어버리고 살아가는 불신앙의 사람들이 부를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이미 회개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눈꼽만한 고난이 오면 하나님의 저주인양 율법의 늪에 빠져서 허우적거리는 사람이 부를 수 있는 노래가 아니에요.
하나님의 사람들, 복음의 사람들, 믿음의 사람들, 은혜를 아는 사람들,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아는 사람들, 용서의 하나님을 아는 사람들, 나를 사랑하는 하나님이 변함이 없음을 믿는 믿음의 사람들이 부를 수 있는 노래입니다.
「영혼을 위한 닭고기 수프」 「마음을 열어주는 101가지 이야기」 등등 많은 베스트셀러를 남긴 잭 캔필드란 사람이 쓴 책 가운데 「가장 절망적일 때 가장 큰 희망이 온다」라는 책이 있어요.
책 제목이 참 재미있지요.
「가장 절망적일 때 가장 큰 희망이 온다」라는 책에 보면 전이성 암 환자를 치료하는 의사들의 얘기가 나옵니다.
전이성 암 환자들에게 조제해 주는 약 4가지가 있대요.
그 이니셜을 따면 E.P.O.H(에포)입니다.
전이성 암 환자들이 이 약을 먹고 나면 22% 정도의 효과를 보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유독 똑같은 약을 조제하고 처방하는데 무려 77% 이상 효력을 내는 동료의사가 있는 거예요. 친구들이 묻지요.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냐고? 약이 4가지니까 이니셜을 어디에 붙여도 4가지죠.
노란약 흰약 빨간약 이 순서를 바꾼다고 무슨 문제가 있겠어요.
에포라고 부르는 약 이름을 이 의사는 hope라고 부르는 거예요.
희망의 약이라고 부르는 겁니다. 환우들이 그렇게 얘기해요.
이 약은 H라는 약이에요. 그 약은 O란 약입니다.
이 빨간약은 P라는 약이고, 이 노란 약은 E라는 약입니다.
hope 희망이란 약입니다. 당신이 회복될 희망의 약입니다.
당신의 병을 고치는 희망의 약입니다.
당신이 건강해서 가족의 품으로 사회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는 희망의 약입니다. 그러고 이 약을 주는 거예요.
이 소리를 듣고 약을 먹은 사람은 그냥 약을 먹은 사람보다도 3배 4배 효험이 있더라는 겁니다. 희망은 생명입니다. 희망은 치료의 능력입니다. 아무리 깊은 밤이라도 희망을 잃지 않은 사람들은 아침을 노래할 수가 있는 겁니다.
여러분 2021년 문을 열고 하루하루 걸어 갈 때에 내 인생에서 하나님 제외하고 하나님 빼놓고 새해를 보려고 하지 마세요.
여러분 가슴에 두 주먹 꽉 쥐고 하나님이 나를 기뻐하시면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면 역사의 주인이 우리 아버지이신대, 어두운 밤은 반드시 지나간다.
내 인생에 밑바닥은 정상에 올라간다.
반드시 아침은 온다. 희망의 대낮이 밝아온다.
믿음을 가지고 걸어가는 겁니다.
때로는 여러분이 죽음의 바닥에 떨어질 때가 있지요.
다윗의 고백을 빌리면 기가 막힌 웅덩이 빠져서 허우적거릴 때가 있지요.
스올의 밑바닥에서 허우적거릴 때가 있지요.
그러나 하나님은 나를 반드시 끌어내신다고 하나님 앞에 부르짖어 기도하는 것입니다. 내 인생이 아무리 절정에 올라있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얼굴을 돌려버리면 그날로 내 인생 끝나는 거예요.
그게 7절 말씀이에요.
그러나 내 인생이 아무리 바닥을 기어 다닌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나를 한 번만 바라보시면 세상 모든 힘있는 사람들, 세상 모든 걸 가진 사람들이 다 도와주려고 해도 안 되는 것, 하나님이 한 번만 얼굴을 돌리시면 이 시간에 회복되어집니다. 이 시간에 치료되어집니다.
새 길을 열려집니다.
희망의 아침이 밝아 오게 되는 것입니다.
태양이 한 걸음만 멀어지면 겨울이 오는 거예요.
태양이 한 걸음만 가까워지면 봄이 오고 여름이 오는 게 사계절 아닙니까?
하나님이 내 인생에서 한 걸음만 멀어지면 내가 하나님의 품에서 한 걸음만 떠나면 내 인생에 겨울이 오는 거예요.
그러나 하나님 앞에 한걸음 달려 나가면 어떤 위기 속에도 하나님 앞에 울며 매달리면 하나님의 얼굴이 한 번만 나를 바라보시면 하나님이 한 걸음만 다가오시면 내 인생에 봄은 찾아온다.
어떤 위기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절망하지 않고 낙심하지 않고 부르짖었다.
그게 믿음이에요. 그게 겸손이에요.
그게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11절은 슬픔 대신 춤추게 하겠다.
회복의 절정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반전시킨 역사에 대한 감동을 말하는 것입니다.
베옷의 통곡 대신 기쁨의 노래를 부르겠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끝나서 죽어 버렸을 때 베옷을 입는 거지요.
베옷을 벗기고 기쁨의 노래를 부르게 될 것이다.
시편 30편을 잘 연구해 보면 시편 30편 1절이 주를 높인다.라는 단어로 시작되어집니다.
마지막 12절에 주를 찬송한다. 영원히 주님께 감사한다는 말로 맺혀집니다.
높인다. 찬송한다. 감사한다는 말은 시편에서 예배를 상징하는 노래들입니다.
무슨 얘기입니까? 인생의 밤중에도 우리는 예배로 새 문을 여는 것입니다.
어떤 승리가 내게 찾아온다 할지라도 예배로 매듭을 짓는게 인생입니다.
성공했는데 나았는데 새 길이 열렸는데 내가 잘나서 그런 줄 알고 예배 잃어버리면 매듭이 풀어지는게 인생입니다.
모든 것이 끝장난 내 인생의 바닥에서도 예배를 잃어버리지 않고 기도를 잃어버리지 않으면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면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게 되면 반드시 어두운 밤은 새 아침을 맞이하게 되는 것입니다.
2021년 여러분은 저녁으로 접어드는, 절망으로 접어드는 한 해가 될까요?
아니면 아침을 맞이하는 희망의 밝은 대낮을 걸어가는 한 해가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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