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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虞書(우서) 1-1. 堯典(요전) 1-1-1.
p.9~13 書傳大全 目錄: 卷首 (引用先儒姓氏 書傳圖 書集傳序) | |||
一 卷 | 1. 虞書 | 1-1. 堯典요전(1-1-1 ~ 1-1-12)* | 1-2. 舜典순전(1-2-1 ~ 1-2-28) |
二 卷 | 1-3. 大禹謨대우모(1-3-1 ~ 1-3-21) | 1-4. 皐陶謨고요모(1-4-1 ~ 1-4-8) | |
1-5. 益稷익직(1-5-1 ~ 1-5-11) | |||
三 卷 | 2. 夏書 | 2-1. 禹貢 우공(2-1-1 ~ 2-1-106) | 2-2. 甘誓감서(2-2-1 ~ 2-2-5) |
2-3. 五子之歌 오자지가(2-3-1 ~ 2-2-9) | 2-4. 胤征윤정(2-4-1 ~ 2-4-7) | ||
四 卷 | 3. 商書 | 3-1. 湯誓 탕서(3-1-1 ~ 3-1-4) | 3-2. 仲虺之誥중훼지고(3-2-1 ~ 3-2-9) |
3-3. 湯誥 탕고(3-3-1 ~ 3-3-9) | 3-4. 伊訓이훈(3-4-1 ~ 3-4-8) | ||
3-5. 太甲上태갑상(3-5-1 ~ 3-5-10) | 3-6. 太甲中태갑중(3-6-1 ~ 3-6-7) | ||
3-7. 太甲下태갑하(3-7-1 ~ 3-7-9) | 3-8. 咸有一德함유일德(덕)(3-8-1 ~ 3-8-11) | ||
五 卷 | 3-9. 盤庚上반경상(3-9-1 ~ 3-9-17) | 3-10. 盤庚中반경중(3-10-1 ~ 3-10-17) | |
3-11. 盤庚下반경하(3-11-1 ~ 3-11-13) | 3-12. 說命上열명상(3-12-1 ~ 3-12-11) | ||
3-13. 說命中열명중(3-13-1 ~ 3-13-13) | 3-14. 說命下열명하(3-14-1 ~ 3-14-11) | ||
3-15. 高宗彤日고종동일(3-15-1 ~ 3-15-5) | 3-16. 西伯戡黎서백감려 (3-16-1 ~ 3-16-7) | ||
3-17. 微子미자(3-17-1 ~ 3-17-9) | |||
六 卷 | 4. 周書 | 4-1. 太誓上태서상(4-1-1 ~ 4-1-11) | 4-2. 太誓中태서중(4-2-1 ~ 4-2-9) |
4-3. 太誓下태서하(4-3-1 ~ 4-3-6) | 4-4. 牧誓목서(4-4-1 ~ 4-4-10) | ||
4-5. 武成무성(4-5-1 ~ 4-5-9)今考定武成 | 4-6. 洪範홍범(4-6-1 ~ 4-6-40) | ||
4-7. 旅獒여오(4-7-1 ~ 4-7-10) | 4-8. 金縢금등(4-8-1 ~ 4-8-19) | ||
七 卷 | 4-9. 大誥대고(4-9-1 ~ 4-9-15) | 4-10. 微子之命미자지명(4-10-1~4-10-5) | |
4-11. 康誥강고(4-11-1 ~ 4-11-24) | 4-12. 酒誥주고(4-12-1 ~ 4-12-17) | ||
4-13. 梓材재재(4-13-1 ~ 4-13-8) | 4-14. 召誥소고(4-14-1 ~ 4-14-24) | ||
4-15. 洛誥낙고(4-15-1 ~ 4-15-31) | 4-16. 多士다사(4-16-1 ~ 4-16-26) | ||
八 卷 | 4-17. 無逸무일(4-17-1 ~ 4-17-19) | 4-18. 君奭군석(4-18-1 ~ 4-18-23) | |
4-19. 蔡仲之命채중지명(4-19-1 ~ 4-19-8) | 4-20. 多方다방(4-20-1 ~ 4-20-31) | ||
4-21. 立政입정(4-21-1 ~ 4-21-24) | 4-22. 周官주관(4-22-1 ~ 4-22-21) | ||
4-23. 君陳군진(4-23-1 ~ 4-23-14) | 4-24. 顧命고명(4-24-1 ~ 4-24-29) | ||
九 卷 | 4-25. 康王之誥강왕지고(4-25-1 ~ 4-25-7) | 4-26. 畢命필명(4-26-1 ~ 4-26-15) | |
4-27. 君牙군아(4-27-1 ~ 4-27-7) | 4-28. 冏命경명(4-28-1 ~ 4-28-9) | ||
4-29. 呂刑여형(4-29-1 ~ 4-29-22) | 4-30. 文侯之命문후지명 (4-30-1 ~ 4-30-4) | ||
4-31. 費誓비서(4-31-1 ~ 4-31-5) | 4-32. 秦誓진서(4-32-1 ~ 4-32-8) | ||
十 卷 |
* 滿招損謙受益(만초손겸수익): 自滿하는 者는 損害를 부르게 되고 謙遜한 者가 利益을 받음은 바로 하늘의 道입니다. -書經虞書句- |
1. 虞書(虞나라의 책)
p.59
虞舜氏 因以爲有天下之號也 書凡五篇 堯典雖紀唐堯之事 然本虞史所作 故曰虞書 其舜典以下 夏史所作 當曰夏書 春秋傳 亦多引爲夏書 此云虞書 或以爲孔子所定也
↳虞는 舜氏이니 因以爲有天下之號也니 書凡五篇이라 堯典은 雖紀唐堯之事나 然本虞史所作이라 故曰虞書요 其舜典以下는 夏史所作이니 當曰夏書라 春秋傳에도 亦多引爲夏書나 此云虞書는 或以爲孔子所定也라
-虞는 舜임금의 氏이니 그로 因해서 그것을 가지고 天下를 所有한 稱號로 삼았으니, 虞書는 모두 5篇이다.
堯典은 비록 唐나라 堯의 일을 記錄한 것이나, 그러나 本來는 虞(舜임금)의 史官이 지은 것이라. 그러므로 虞書라 하고 그 舜典 以下는 夏나라 史官이 지은 것이니 當然히 夏書라고 함이다. 『春秋傳』에도 또한 많이 引用한 것이 夏書가 되니, 여기에서 虞書라고 이른 것은 或者가 말하기를 孔子가 定한 것이기 때문이다.
* 堯典은 비록 唐堯의 일을 記錄하였으나 本來 虞나라 史官이 지은 것이니 마땅히 夏書라 하여야 할 것이다. 春秋傳에도 夏書라고 引用한 境遇가 많으니, 여기에서 夏書라 한 것은 或者는 말하기를 孔子께서 定한 것이라 한다. * 堯典도 虞의 舜임금때 만들었기 때문에 虞書안에 있다는 뜻. |
[參照] 姓과 氏: 姓氏는 오늘날 血族關係를 나타내기 위해 이름 앞에 붙이는 標識(표지)로, 姓은 血族(혈족)을 나타내며, 氏는 그 姓의 系統을 表示하는 말이다. 오늘날에는 姓과 姓의 區分이 없어져 姓氏가 姓을 높여서 나타내는 말로 쓰인다. 하지만 初期 發生 段階에서 姓과 氏는 嚴格히 區分된 槪念이었다. |
姓은 ‘여자[女]가 낳은[生] 子女들’이라는 글자의 意味처럼 모계 氏族社會에서 同一한 母系血族을 區分하기 위해 나타났다. 때문에 周나라 文王의 姓인 ‘姬(희)’나 文王婦人의 姓인 ‘姒(사)’, 文王의 祖上인 后稷(후직)의 어머니 姓인 ‘姜(강)’ 等에서 볼 수 있듯이 이러한 姓은 父系社會로 바뀌면서 父系血統을 나타내는 것으로 쓰이게 되었다. 宗族(종족)에 따라 自身들의 居住地나 崇拜物 等을 姓으로 삼기도 하였다. 事會가 發達하면서 宗族의 人口가 늘고 居住地域이 擴散되자, 하나의 姓에서 갈라진 支派(지파)는 새로운 居住地나 祖上의 이름 等을 따서 自身들을 區別할 새로운 稱號를 使用하기 始作했다. 이처럼 하나의 姓에서 갈라진 系統의 區別을 나타내는 稱號를 氏라고 한다. 이러한 姓과 氏의 區別은 夏(하), 商(상), 周(주) 三代와 春秋戰國時代(BC 770~ 221)에 이르기까지 뚜렷하게 나타났는데, 當時 貴族들은 分封받은 國邑(국읍)의 地名이나 官職(관직), 祖上의 字나 諡號(시호), 爵位(작위), 居處(거처) 等을 氏로 하는 경우가 많았다. 齊나라의 始祖인 姜太公(강태공)의 境遇를 보면 本名은 姜尙(강상)이며, 그의 先祖가 呂(여)나라에 封해졌으므로 姜呂尙이라고 부르는 境遇가 代表的이다. 그러다보니 父子사이에도 姓은 같지만 氏가 다른 境遇가 생겼고, 姓이 다른데도 氏는 같은 境遇도 나타났다. 예컨대 ‘離騷(이소)’라는 作品으로 널리 알려진, 戰國時代 末期 楚(초)의 文人 屈原(굴원)은 楚 武王 熊通(웅통)의 아들 屈瑕(굴하, ? ~ BC 699)의 後孫으로 屈은 氏이고, 姓은 羋(羊울 미)이다. 楚의 王들은 武王처럼 代代로 熊氏(웅씨)가 繼承했지만, 姓은 마찬가지로 羋(미)였다. 때문에 秦(진, BC 221∼ 207) 末期에 項羽(항우)가 西楚을 세우면서 擁立(옹립)한 義帝(의제, BC ?~ 206)의 이름이 記錄에 따라 羋心이나 熊心으로 달리 表記되기도 한다. |
p.59
1-1. 堯典
堯唐帝名 說文曰 典從冊在丌上 尊閣之也 此篇以簡冊 載堯之事 故名曰堯典 後世以其所載之事 可爲常法 故又訓爲常也 今文古文皆有
↳堯는 唐帝名이라 設文曰 典은 從冊在丌上하니 尊閣之也라하니라 此篇은 以簡冊載堯之事라 故로 名曰堯典이요 後世에 以其所載之事로 可爲常法 故로 又訓爲常也라 今文古文皆有하니라
-堯는 唐나라 皇帝의 名稱이다. 『設文』冊에 이르기를 “典은 冊이 丌=冊床=臺 위에 있음을 따랐으니, 版閣=板閣을 높이는 것이다.”라 하였다. 이 篇은 簡冊=簡策에 堯의 일을 記載하였기 때문에 堯典이라 이름 하였고, 後世에 여기에 記載된 바의 일을 가지고 떳떳한 法이 될 수 있었기 때문에 또 常法이라고 訓(풀이)하였다. 今文(今文尙書=伏勝尙書)과 古文(古文尙書=孔壁尙書=孔傳尙書)에 모두 있다.
[解說] 朱子는 죽은 뒤의 諡號는 周나라 때부터 始作한 禮法이기 때문에 그 以前에는 諡號가 없고, 呼稱을 그대로 諡號처럼 쓰고 있는데 堯舜禹도 그러한 種類라고 하였다. 堯가 흙이 우뚝한 模樣을 나타내는 글자로 높다는 뜻이고, 舜은 無窮花를 나타내는 꽃이름으로 舜의 얼굴이 無窮花같다는 데서 붙여진 이름이고, 禹는 짐승발굽을 뜻하는 글자이지만 세 聖人이 임금된 것과 捐館 지어서는 아무 意味도 없는 呼稱일 뿐이다. 하물며 舜임금의 境遇는 임금이 되기 前에 매우 어려운 속에서 살았을 때부터 부른 이름이 舜일 뿐으로 죽어서도 舜으로 부르는 것이다. 宋나라 學者인 呂大臨(여대림)은 堯典과 舜典인 二典에 대하여 다른 글과는 같지 않고 『周易』의 乾坤卦에 該當한다고 할 만큼, 二典이 『書經』의 根幹이 됨을 밝혔다. 堯임금은 姓이 伊嗜(이기)이고 五帝의 하나인 帝嚳(제곡)의 아들로 BC 2,357 ~ 2,258年까지 百年동안 在位한 임금으로 알려져 있다. |
* ‘第一章: 曰若稽古帝堯한대~~’ 는 古文(古文尙書)에만 있다. * 板閣판각: 經版을 쌓아 두는 殿閣. * 簡策간책: ①옛날에 종이 代身 글씨를 쓰던 대쪽 ②書冊. * 今文(今文尙書=伏勝尙書): 복승(伏勝)이 暗誦하고 있던 尙書 29篇을 當時 通用되던 글자인 隸書(예서)로 記述하여 復舊하였다. * 古文尙書=孔壁尙書=孔傳尙書: 漢武帝때, 博士 孔安國(공안국, 孔子의 12世孫)이 이 中 29篇을 當時 文章으로 飜譯하였으므로, 이를 孔傳尙書(공전상서)라고도 한다. |
p.61
1-1-1. 曰若稽古帝堯曰放勳欽明文思安安允恭克讓光被四表格于上下
↳曰若稽古帝堯한대 曰 放勳이시니 欽明文思安安하시며 允恭克讓하사 光被四表하시며 格于上下하시니라
-曰若=粤(월)=越 아! 옛날 堯임금을 稽=詳考=考察해 보건대 (帝堯의 德인) 功=勳이 天下四方에까지 이른다[放=至]라고 말할 것이니, 欽=恭敬하시고 환히 다 알아서[通明하시고] 文章이 빛나고 意思=思慮[생각함이]가 깊은 것이 便安하고 便安하시며[安安=自然的이시며] 允=信=眞實=誠實로 恭遜하시고 克=能히 謙讓=辭讓하셔서 빛남이 天下四方 밖에까지 입히시며 上下[하늘과 땅]에 이르셨다.
p.62
曰粤越通 古文作粤 曰若者 發語辭 周書越若來三月亦此例也 稽 考也 史臣將?堯事 故先言考古之帝堯者 其德如下文所云也 曰者 猶言其說如此也 放 至也 猶孟子言放乎四海是也 勳 功也 言堯之功大而無所不至也 欽 恭敬也 明 通明也 敬 體而明用也 文 文章也 思 意思也 文著見而思深遠也
↳曰은 粤(월), 越通이라 古文作하니 曰若者는 發語辭니 周書越若來三月이 亦此例也라 稽는 考也라 史臣이 將敍堯事 故로 先言考古之帝堯者컨대 其德이 如下文所云也라 曰者는 猶言其說如此也라 放은 至也니 猶孟子言放乎四海是也라 勳은 功也니 言堯之功이 大而無所不至也라 欽은 恭敬也요 明은 通明也니 敬體而明用也라 文은 文章也요 思는 意思也니 文著見(현)而思深遠也라
曰은 월(粤), 월(越)과 通한다. 古文에는 월(粤)로 되어 있는바, 曰若은 발어사이니, 『周書』(第14篇 召誥)의 ‘越若來三月’도 이러한 例이다. 계(稽)는 詳考함이다. 史臣이 將次 堯임금의 일을 敍述하려 했기 때문에 먼저 말하기를 “옛 帝堯를 詳考=考察하건대 그 德이 아래 글에서 말한 바와 같다.”고 한 것이다. 曰이라는 것은 그 說明이 이와 같음을 말한 것과 같다. 放은 이를 至字이니, 『孟子』「離婁下」篇 第18章에 “四海에 이른다.”고 말씀한 것이 이것이다. 勳은 功이니, 帝堯의 功이 偉大해서 이르지 않은 바가 없음을 말한 것이다. 欽은 恭敬함이요 明은 通明함이니, 敬이 本體이고 明이 應用이다. 文은 文章이요 思는 思慮이니, 文章이 드러나고 생각이 深遠한 것이다.
p.62
安安 無所勉强也 言其德性之美 皆出於自然 而非勉强 所謂性之者也 允 信 克 能也 常人德非性有 物欲害之 故有强爲恭而不實 欲爲讓而不能者 惟堯性之 是以信恭而能讓也 光 顯 被 及 表 外 格 至 上 天 下 地也 言其德之盛如此 故其所及之遠如此也 蓋放勳者 總言堯之德業也
↳安安은 無所勉强也니 言其德性之美 皆出於自然이요 而非勉强이니 所謂性之者也라 允은 信이요 克은 能也라 常人은 德非性有라 物欲害之 故로 有强爲恭而不實하여 欲爲讓而不能者로되 惟堯性之라 是以로 信恭而能讓也라 光은 顯이요 被는 及이요 表는 外라 格은 至요 上은 天이요 下는 地也라 言其德之盛이 如此 故로 其所及之遠이 如此也라 蓋放勳者는 總言堯之德業也요
-安安은 힘써서 억지로 하는 바가 없는 것[自然的]이니, 德性의 아름다움이 모두 自然에서 나오고 힘써서 抑止로 함이 아님을 말한 것이니, 이른바 ‘性品대로 한 者’라는 것이다. 允은 信=眞實로요, 克은 能함이다. 常人=普通人은 그 德이 (하늘로부터 賦與받은) 性品 그대로 所有한 것이 아니라서 物慾이 本性을 害치므로 억지로 恭遜해서 眞實=誠實하지 못함이 있어서 謙讓하고자 하여도 能하지 못한 者가 있다. 오직 帝堯만은 性대로 하였다. 이 때문에 眞實로 恭遜하고 能히 謙讓한 것이다. 光은 드러남이요, 被는 미치는 것이요, 表는 밖이요, 格은 이름이요, 上은 하늘이요, 下는 땅이니, 그 德의 盛大함이 이와 같기 때문에 그 波及되는 바의 먼 것이 이와 같음을 말한 것이다. 放勳이라는 것은 帝堯의 德을 總合해서 말한 것이요,
p.63
欽明文思安安 本其德性而言也 允恭克讓 以其行實而言也 至於被四表格上下 則放勳之所極也 孔子曰 惟天爲大 惟堯則之 故書敍帝王之德 莫盛於堯 而其贊堯之德 莫備於此 且又首以欽之一字爲言 此書中開卷第一義也 讀者深味而有得焉 則一經之全體 不外是矣 其可忽哉
↳欽明文思安安은 本其德性而言也요 允恭克讓은 以其行實而言也요 至於被四表, 格上下 則放勳之所極也라 孔子曰 惟天爲大 惟堯則(칙)之라하시니 故로 書敍帝王之德이 莫盛於堯요 而其贊堯之德이 莫備於此며 且又首以欽之一字로 爲言이 此書中開卷第一義也니 讀者深味而有得焉이면 則一經之全體 不外是矣리니 其可忽哉아
-欽明文思安安은 그 德性에 根本해서 말한 것이고, 允恭克讓은 그 行實을 가지고 말한 것이고, 四表에 입혀지고 上下에 이름에 이르러서는 放勳의 至極함이다. 孔子가 말씀(『論語』「泰伯篇」第19章)하기를 “하늘이 偉大하신대 堯가 이를 본받았다.” 하였으니, 그러므로 『書經』에서 帝王의 德을 敍述한 것이 堯보다 더 盛大한 것이 없고 堯의 德을 讚美한 것이 이 篇보다 더 具備된 것이 없다. 또 欽字 한 글자를 말씀하였으니, 이는 書傳 冊 가운데에 冊을 始作하는 첫 머리 뜻이다. 읽는 者가 깊이 맛보면서(吟味) 깨달음[攄得함]이 있으면 『書經』 全體가 여기[欽=恭敬]에서 벗어나지 않을 것이니, 어찌 疏忽히 할 수 있겠는가.
[解說] 大同事會를 이룬 堯임금의 德을 말하고 있다. 大同은 『周易』「火天大有」卦에서 ‘大’와 「天火同人」卦에서 ‘同’을 取하여 이뤄진 말로 孔子가 『書經』「洪範篇」과 『禮記』「禮運篇」에서 쓴 말이다.
「火天大有」卦 彖傳에서 孔子는 “同人은 柔 得位하며 得中而應乎乾할새 曰同人이라 同人于野亨利涉大川은 乾行也오 文明以健하고 中正而應이 君子正也니 唯君子아 爲能通天下之志하나니라” (同人은 부드러움 位를 얻으며 中을 얻어서 하늘에 應하기 때문에 同人이라 하니라. 사람을 같이하는 것을 들에서 하면 亨通하고 큰 내를 건넘이 이롭다는 것은 乾의 行함이고, 文明하여 굳세고 中正하게 應함이 君子의 바름이니 오직 君子라야 能히 天下의 뜻을 通하게 되니라)라 하였고,
「火天大有」卦 彖傳에서는 “大有는 柔 得尊位하고 大中而上下 應之할새 曰大有니 其德이 剛健而文明하고 應乎天而時行이라 是以元亨하니라” (大有는 부드러움이 尊貴한 자리를 얻고, 크게 가운데 하며 上下가 應하기 때문에 大有라 이르니 그 德이 剛健하여 文明하고, 하늘에 應하여 때로 應함이라. 이로써 크게 亨通하니라)라고 하였다. 곧 孔子는 大有卦와 同人卦의 象에서 뜻을 取해 文明한 德을 이루고 四方을 두루 비춘(重火離卦 大象傳의 ‘照于四方’) 堯임금의 德을 말하면서 그것이 곧 하늘의 道와 땅의 法을 이었음을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