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상 텃밭
아침에 기상하면 제일 먼저 하는 일과가 옥상에 오르는 일이다. 옥상에는 내가 키우는 많은 식물 식구들이 목마르게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지나온 시절 화초는 아파트 베란다에서 키워보았지만 내가 키운 싱싱한 채소를 식탁에 올리는 것은 로망이었다. 그래서 옥상이 있는 작은 건물에서의 첫사업이 옥상 텃밭이었다. 몇년의 경력이 쌓이다보니 우리 집 옥상은 이제 참으로 풍성하다. 처음에는 몇개의 작은 화분과 스티로폼 박스에 흙을 담아 상추 묘목만 사다가 심었었다. 그러나 지금은 각종 상추는 물론 대형 고무다라 화분에 고추,가지,토마토,들깨에 대추나무와 뽕나무까지 심었다. 그리고 8월달에는 가지와 토마토 줄기를 걷어내고 그곳에 배추와 무도 심는다.
볕이 긴 봄여름 날에는 상추나 들깻잎 고추,가지등은 두 식구가 먹고도 남아 이웃에게 나눌 수 있는 기쁨도 있다. 그래서 소쿠리만 들고 옥상에 올라 가면 각종 상추는 물론 부추,깻잎,대파,호박,고추,가지,토마토등을 필요한 만큼 얻을 수 있어 손길이 마냥 뿌듯하다. 3년전부터는 세그루의 뽕나무를 심었더니 얼마나 잘 자라는지 봄에는 아침마다 오디를 따 먹는 재미가 참으로 쏠쏠하고 여름에는 당뇨,혈압과 뼈에 좋다는 뽕잎 새순 쌈으로 몸도 건강해지는 느낌이다. 그러나 식물을 키우는 것은 수확의 기쁨도 있지만 정성들여 가꾸는 대로 무럭무럭 자라는 생명을 바라 보는 그 보람이 더 큰 것 같다.
식물은 몸 전체를 이동할 수 없는 상태에서 스스로 양분을 만들어 생육하고 성장하는 생물이다. 그래서 식물은 씨앗을 심거나 묘목을 심어주면 운명처럼 그 자리에서 일생을 살아야 한다. 자갈밭에 뿌려진 씨앗은 잘 자라지 못해 열매를 맺을 수 없지만 옥토에 뿌려진 씨앗은 30배 100배의 결실을 얻는다 하지 않는가? 모든 식물은 하늘의 햇빛과 공기 그리고 땅속의 물과 무기질을 흡수하여 광합성작용을 하여야 유기양분과 에너지를 만들면서 생육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건물의 옥상 텃밭은 거대한 씨멘트 구조물로 강한 햇볕에 노출되었으니 적절한 물과 부족한 무기질 영양분을 성장 시기에 알맞게 공급하는 등 그 주인이 전적으로 생명의 조건을 맞추어 주어야 하는 것이다.
식물은 참으로 정직한 것 같다. 그래서 처음에는 의욕만 앞서 무기질 비료를 욕심내 주고 싱싱하게 성장하길 기대했었는데 다음 날 아침에 타죽어 있는 모습을 보면서 내 미련함에 얼마나 심한 실망감을 느꼈던가? 그 작물의 생태를 모르고 정성만 들여서 되는 일이 아닌 것이다. 그 비결인 깻묵 거름을 만들기 위해 오래 발효시켜 만든 퇴비를 토양에 잘 섞어 흙을 비옥하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흙을 햇볕에 잘 말려 해충을 구제해야 한다. 또 뙤약볕에서 잘 살 수 있도록 아침마다 물을 주어야 한다. 한 번은 몸의 상태가 안좋아 게으름을 피우다 물주는 작업을 하루 건너 뛴 적이 있었다. 다음 날 아침에 보니 사막의 패잔병처럼 모든 작물이 시들어 축 늘어져 있는 처참한 모습에 망연자실한 적도 있었다. 물을 주어 간신히 소생은 했지만 그 아픔은 생명을 다 할 때까지 마디마디 나이테처럼 그대로 남아 있어 내 기억속에서 지워지지 않는 인생의 아픈 큰 교훈이 되었다. 그리고 물이 너무 많아도 탈이다. 일주일 열흘 가는 장마중 침수된 채 잠겨있다 보니 채소의 이파리가 물에 녹지않고 살아나려는 생명력이 발동하여 욱 자란 연약한 줄기가 건들건들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얼마나 마음이 시리고 아팠었던가?
그러나 봄이 되어 찔레,블루벨리,꽃복숭아등의 여러 꽃이 피기 시작하면 몇 마리의 벌,나비들이 날아와 이꽃저꽃 노닐며 날개짓하는 하는 모습이 그렇게 신기하고 예쁘게 느껴져서 혼잣얘기를 한다. "그래 아직은 차가운 날씨인데도 우리 옥상 텃밭을 찾아와 줘서 너무나 고맙다. 이제 조금 더 따뜻해지면 꽃도 풍성하고 꿀도 많아 질테니 너희 친구들도 모두 데리고 오렴. 언제 와도 대환영이란다!" 농촌에서도 농약 살포 영향으로 과수농원에서는 일일히 인공수정을 한다는데 벌 나비가 도심 주택인 우리 옥상 텃밭까지 꽃 향기를 찾아 와 주니 너무나 반갑고 고마운 일이다. 여름에는 잠자리,여치,방아깨비,매미 심지어는 사마귀도 손님이라서 반갑다. 그리고 열매가 익을 무렵이면 아침 손님인 이름 모른 예쁜 텃새들까지 날아와 지저귀다가 열매 한알 따 먹고 날아간다. 아침에 울면 반가운 손님이 온다는 길조인 귀한 까치도 밝은 아침 기운을 북돋아 준다. 며칠 전 백로날 아침에는 벼논을 지나면서도 만나지 못한 벼메뚜기가 우리 옥상 화분 배춧잎 위에 살포시 내려 앉아 있어 너무도 반가웠지만 어릴 때 추억을 떠 올리니 미안한 마음이 들어 살짝 잘 보호 해 주고 싶었다.
예전에는 식물의 씨앗은 아무 때나 심어도 발아하는 줄 알았다. 그러나 온도와 습도가 맞아야 하기에 직파하려면 계절을 잘 맞추어야 한다. 때를 놓지면 1년을 더 기다려야 하는 경우도 있다. 봄에 씨를 뿌리고 여름에 성장하고 가을에 열매를 걷우는 것이 식물의 일반적인 한 시절이다. 그 과정중 어느 하나가 불실하면 반드시 어느 한 부분 결손으로 결과가 나타남도 배웠다. 그리고 작물마다 좋아하는 거름이 다르다. 그래서 연작을 하면 그 작물이 잘 자라질 못해 해걸이를 하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우리 마을에는 해마다 나뭇가지 가득 빽빽하게 열리는 대추나무가 있어 오갈 때마다 세계 제일인 기네스 북에 올려야 할 대추나무라고 생각하며 너무도 신기하여 수년간 유심히 관찰하였다. 그 비결은 간단하였다. 1층 순대국밥 식당 주인이 순대 삶은 물을 식혀서 매일 그 나무에 꾸준히 주었다고 한다. 그리고 나도 애완견 배설물을 넝쿨장미 주변에 정성들여 묻어 주었더니 지렁이가 사는 거름진 흙이 되었다. 그리고 그 해부터 주먹만한 장미꽃이 만발하여 보는 이마다 탄성을 지른 경험이 있어 지금도 개똥을 헤피 버리지 않는다. 그러나 사람들은 장미꽃이 왜 그렇게 아름다웠었는지 그 비밀은 아무도 모르리라. 농작물은 농부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자란다는 말처럼 끊임없는 돌봄으로 잡초는 뽑아주고 벌레는 잡아주고 흙도 돋우어주고 흙이 마르지 않게 물을 공급해 주어야 한다. 세상만사 참으로 원인없는 결과는 없는 것이 자연의 이치이기도 하다. 그리고 잘 자라주면 칭찬하고 주인이 기뻐하면 더 잘 자라는 것 같다.
아침 기상후 제일 먼저 오르는 옥상은 이제 나를 필요로 하는 많은 식구들과 만나는 첫 기쁨의 공간이다. 또한 대전의 동쪽 계족산에서 떠오르는 일출의 신선한 기운을 받으며 하늘을 바라보는 하루중 유일한 시간이다. 물론 식물을 돌보려 이리저리 움직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하루를 상쾌하게 시작할 수 있도록 몸을 풀어 주는 워밍업을 하는 곳이기도 하다. 나만 목마르게 바라보는 식물들이 먼거리 여행이나 외박을 할 수 없도록 나를 구속하지만 나는 내가 키우는 식물을 사랑한다. 올해는 뉴튼이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바라보며 만유인력을 발견한 만큼 나도 위대한 발견을 하였다. 나무의 모든 꽃은 새순에서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다는 사실이다. 나무는 밑동이 있어 줄기를 뻗고 가지를 치고 봄이면 새순이 난다. 지난 해 돋은 새가지에서도 올해 결코 꽃은 피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생각해 본다. 나무의 밑동은 조상, 줄기는 부모님, 가지는 나인데 새순은 나의 자녀들이다. 그래서 자녀들이 꽃을 잘 피우고 열매를 잘 맺을 수 있도록 돕는 것까지가 내게 주어진 중요한 임무인 셈이다. 모든 식물의 바탕은 자연으로 그 살아가는 생명의 이치를 깨달으면서 내 삶의 이치도 함께 깨우친다. 동물은 꾸준히 움직이고 노력하여야 영양을 얻어 성장하고 번식할 수 있다. 그러나 사람은 지혜로운 생각으로 그 몸을 움직여 꾸준히 노력하여 일함은 물론 사람들과 서로 돕고 사랑하며 아름다운 꿈을 키워 갈때 그 삶의 가치가 더욱 높아지는 것이라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