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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시대를 여는 하나님의 신비
왕하 7:1~2, 8~9(6:23~7:20)
I. 성경 한절 사이에!
지난 5월22일 한미수호조약이 있었는지 꼭 140년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새문안교회 에서 이를 기념하는 예배가 있었는데 저는 그날 설교하면서 이 일은 국가 간의 장사나 해보자. 정치적인 역량이나 끼쳐보자 하는 조약(한미수호조약)에 불과했지만 하나 님께서는 국가 간의 이기심을 뛰어넘어서 복음을 전하는 신묘막측한 일을 행하셨다. 그렇게 제가 선언을 했습니다.
역시 지나온 세월 을 뒤돌아보면 약하디 약한 이 교회를 통하여 하나님이 크고 놀라운 일들을 행하셨습 니다. 인간의 약점을 뛰어넘는 신묘막측한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였음을 고백할 수밖에 없습니다. 옛날 우리 선배 목사님들은 교회를 개척할 때에 빈 들판에 돗자리 깔고 비닐치고 교 회를 개척했지요. 그러나 최근 가진 것도 없이, 예배드릴 공간도 없이, 개척멤버 한 명 없이 맨손 맨몸 맨땅에 교회를 개척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3M으로 교회 를 개척해서 짤막한 시간 내에 대형교회가 된 것도 우리 교회가 마지막 교회가 된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더구나 개척 30년 만에 아직 어린 교회가 총회, 그리고 한국교회 중심에 서게 된 것 은 분명 기적의 역사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있을 수가 없는 일이지요.
그래서 한편 두려워요. 물론 감사하지요. 우리 교회가 어떻게 이 세상을 섬기느냐.
부족한 제가 세상을 다니면서 어떤 말을 하고 어떤 결단을 하고 어떤 행동을 하느냐 여 하에 따라서 한국교회의 갈 길이 결정되어 진다고 생각하니까 한없이 두려움과 경외 감을 가지게 됩니다. 무엇이 이런 기적을 만들었을까?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살펴보면 이것 또한 무조건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목사인 저 자신을 뜯어보고, 우리 교우 한 분 한 분 을 살펴보고, 우리가 살아왔던 지난 30년 목회환경을 아무리 분석해 보아도 이건 불 가능한 일입니다. 인간적인 조건으로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라고 하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이요, 하나님의 은혜요, 하나님의 손에서 이루어진 기적의 역사라고 우 리는 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이 역사적인 순간에 열왕기하 7장의 말씀을 통해서 “복음 시대를 여는 하나님의 신비” 라는 제목으로 말씀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그동안 “엘리야, 엘리사 새롭게 보기” 라는 주제로 하나님의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오늘 그 마지막 시간이기도 합니다. 앞에 서 말씀드린 대로 설명하면 “신묘막측하신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지난 주일 우리는 “물에 빠진 쇠도끼”사건과 함께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의 통찰로 아람 군대의 공격을 막아낸 사건을 다루었습니다. 지난 주일 마지막 본문 열왕기하 6:23은 엘리사의 통찰로 아람 군대가 눈이 멀어서 끌려옵니다. 그리고 포로가 되어버려요. 이 포로병들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후한 대접을 해서 돌려보냈더니 다시는 아람 이 이스라엘을 공격하지 않았다는 말씀으로 막을 내렸습니다. 다시는 전쟁이, 위기가 없을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의 본문이 되는 첫 절이 열왕기하 6:24 지난 주일 마지막절 다음절 입니다. 한절 사이에 대단히 당황스러운 말씀이 나옵니다. “이 후에 아람 왕 벤하닷이 그의 온 군대를 모아 올라와서 사마리아를 에워싸니” 일단 23절과 24절 한절 사이에 꽤나 긴 시간이 흐른 것 같습니다. 그 안에 많은 사건들이 지나갔습니다. 그리고는 벤하닷이 다시 사마리아 북이스라엘을 공격했다는 이야기입니 다. 그러면서 우리 머릿속에 지나가는 생각은 아람 왕이란 사람이 야비하고 참 못됐다 는 생각을 가지게 됩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아람의 군대 장관 나아만이 나병에 걸렸을 때에 친서를 써서 이 스라엘로 보냅니다. 그 나라에 듣자 하니 엘리사라는 사람이 있다는데 그분을 통해서 이 병을 고쳐달라. 한참 요란한 소리가 들리다가 엘리사를 통해서 나아만이 고침을 받 아요. 그러고도 번번이 아람 특공대를 매복시켜서 이스라엘 왕을 헤치는 전략을 세웁 니다. 그런데 엘리사는 왕궁에서 일어나는 모든 걸 보고 있습니다. 듣고 있습니다. 그 래서 나라를 보호합니다. 포로병으로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 속에서 후한 대접을 받고 돌아갑니다. 그래서 23절 말씀처럼 다시는 공격하지 않았다. 그리고 24절 아람 왕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짓밟아버립 니다. 지금까지는 국지전을 펼치다가 “온 군대”전면전으로 사마리아를 완전 포위합니 다. 이스라엘 왕이 입장에서 보면 잘 대접해서 보낸게 화근이 되었습니다. 국가 간에 는 이상적인 낭만주의로 국가의 안보를 책임질 수는 없는 것입니다. 오늘도 적국과의 관계는 이런 일들이 종종 있습니다. 뒤통수 맞는 일들 말입니다. 로마 군대가 이스라엘을 포위하고 성안의 모든 양식이 씨가 마를 때까지 기다리던 마 사다 성의 최후가 있었습니다. 아람 왕은 사마리아 성을 포위하고 성 안에 양식이 떨 어져 항복하고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 전략은 유효했던 것 같습니다. 마침 내 사마리아 성내 모든 양식이 떨어지고 율법에 부정한 동물로 금지된 나귀 머리가 고가에 팔리고 있었습니다. 더러운 비둘기 똥이 비싼 가격에 거래되는 판이었습니다. 입에 담기도 민망한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오늘은 내 자식을, 내일은 네 자식을 잡아 먹는 인육을 먹는 진풍경까지 성내에서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왕은 백성들의 원성소리를 듣습니다. 베옷을 입은 채 엘리사가 아람 군대를 돌려보낸게 화근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31절 “왕이 이르되 사밧의 아들 엘리사의 머 리가 오늘 그 몸에 붙어 있으면 하나님이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리실지로다” 아람 왕이나 이스라엘 왕이나 그놈이 그놈인 세상입니다. II. 복음을 믿지 않으면 이러한 6장 말씀의 배경을 등에 업고 드디어 7장의 문이 열려집니다. 7:1 엘리사가 임금과 장관들과 군사들과 백성들을 위로합니다. 내일 이맘때에 태산같이 양식이 쌓여 있을 것이다. 아주 싼 값에 양식을 구할 수 있으니까 하나님께로 돌아가자고 합니다. 엘리사의 이러한 예언적 축복이 위정자들에게는 터무니없는 속임수처럼 들린 모양입 니다. 나라의 재정형편을 가장 잘 알고 있던 장관 한 사람이 하나님께서 하늘에 창을 내신들 어찌 그런 일이 가능하겠느냐? 하늘에서 만나나 내리면 모르겠거니와 비아냥 거립니다. 언제나 그렇습니다. 현실적 위기 상황을 곧잘 분석하면서도 믿음이 없는 사람들, 하나 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하나님의 사랑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비웃습니다. 신령한 세계가 그들 눈에는 안 보이기 때문입니다. 복음 을 부끄럽게 여깁니다. 십자가를 부끄럽게 여깁니다. 하나님이 하신다는 이 말을 부끄 럽게 여깁니다. 기억하세요. 우리가 하나님의 역사, 구원의 역사를 부끄러워하면 하나님의 심판대 앞 에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끄럽게 여길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역사, 예 언의 말씀을 비웃는 장관에게 엘리사는 선포합니다. “네가 네 눈으로 보리라 그러나 그 것을 먹지는 못하리라”(7:2) 위기시대라고 모든 사람들이 말을 합니다. 큰일 났다고 모두 걱정 근심을 합니다. 현 실의 문제상황을 나열하고 분석하기도 곧잘 합니다. 그러나 길을 만드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내가 대안이 되겠다고, 나 혼자라도 굳건히 일어서 있을 것이라고, 나라도 신앙을 지키겠다고, 말씀대로 살아보겠다고 일어서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여러분 기억하십시다. 하나님은 위기보다 크신 분이십니다. 막다른 곳에서도 길을 내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부인하고 예언의 말씀을 비웃던 장관, 이에 대한 엘리사의 예언이 어 떻게 이루어졌습니까? 16절 엘리사의 예언대로 온성에 양식은 태산처럼 쌓여져 있었 습니다. 17절 그 양식을 관리하고 예언의 말씀을 비웃던 이 장관은 “백성이 성문에서 그를 밟으매 하나님의 사람의 말대로 죽었더라”여기서 끝나는게 아닙니다. 19절 20절을 또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하늘에 창을 내신들 어찌 이 일이 있으랴” 출애굽 상황에서 있 었던 만나의 기적 사건까지 조롱합니다. “백성이 성문에서 그를 밟으매 죽었더라” 한 나라의 장관이 백성들의 발에 밟혀 죽는게 뭐가 그리 자랑스러운 일이라고 성경은 짤막한 성경 안에서 두 번씩이나 반복적으로 기록하고 있을까요? 후대 독자들에게 하 나님의 역사를 부인하는 사람, 하나님의 말씀을 비웃는 사람, 복음을 부끄러워하는 사 람을 하나님이 어떻게 다루는지 똑똑히 보라는 것입니다. 강조하고 또 강조하기 위해 서 이 부끄러운 말씀을 반복적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불가능해 보이는 이 상황 속에서 하나님은 어떻게 기가막힌 역사를 행하시 는지 보십시오. 해질 무렵에 성밖에서 숨어살던 나환자들이 구걸할 수도 없고 풀을 뜯 을 것도 없고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마찬가지다. 아람 군대에게 가서 구걸하고 죽 자! 밥이라도 한톨 먹고 죽자! 요즘 우리말로 말하면 먹고 죽은 귀신이 때깔도 좋다 더라. 가 보자. 그런데 가서 봤더니 아람 군대가 한 명도 없는 겁니다. 양식이 태산처럼 쌓여 있는 겁니다. 은금보화 의복들이 즐비하게 널려져 있는 겁니다. 먹고 마시고 감추고 숨기고 난리법석이 난 겁니다. 이때 성경은 참 재미있는 기록을 남깁니다. 나병 환자들이 죽 으면 죽으리라! 아람 군대를 향하여 첫 발을 내디디던 때가 해질 무렵, 아람 군대가 어디서 말발굽 소리가 요란하게 들립니다. 철병거 소리로 지축이 흔들거립니다. 자기 들 나름대로 해석합니다. 이스라엘이 주변 강대국들과 교섭해서 어마어마한 군대가 달 려오는구나. 죽기 전에 도망가자. 모든 양식과 군량미를 쌓아놓고 도망가는 겁니다. 이때가 언제냐 해질 무렵. 나병 환자들이 첫 발을 내디디고 나서던 그때와 아람 군대가 도망가기 시작한 그때가 똑같은 시간입니다. 하나님이 양쪽에서 역사를 하는 겁니다. 만약에 나병 환자들이 한 시간만 먼저 우리 양식 먹고 죽자! 그리고 나섰더라면 목이 달아났어요. 죽었어요. 그 리고 아람 군대가 한 시간만 기다리다가 도망갔으면 죽었어요. 그런데 기가 막히게 똑 같은 시간에, 나병 환자들에게 역사하신 하나님이 아람 군대의 귓전에 요란한 군사들 이 몰려는 소리를 듣게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가장 적절한 때에, 가장 놀라운 사랑을 안고 여러분에게 찾아오십니 다. 믿으시길 바랍니다. 손이 짧아 여러분을 구원하지 못하시는 분이 아니라는 것입니 다. 하나님의 걸음이 느려서 여러분을 보호할 수 없는 분도 아니시라는 것입니다. 할 렐루야! 6장에 어떤 일이 있었습니까? 아람 군대가 이스라엘을 포위하고 있습니다. 다른 모든 사람들은 그 군대만 봅니다. 그런데 엘리사는 하늘의 천군천사를 보는 거예요. 우리를 지키는 하늘의 군대가 저들보다 많다. 어디요? 하나님 이 사환의 눈을 열어 주세요. 그랬더니 보여요. 눈을 열어 주시는 것이지요. 그뿐이 아닙니다. 하나님 저 아람 군대 눈을 멀게 해주세요. 하나도 안 보이는 가봐요. 엘리사가 군대를 이끌어 사마리아성 군인들이 포위하고 있는 곳에 가운데 갖다 넣어 버립니다. 포로병이 돼버린 것입니다. 6장에서 눈을 열고 닫으신 하나님께서 7장에서는 아람군대의 귀를 열어 역사를 행하 십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정확한 시간에 양쪽에서 역사하여 당신의 백성을 보호 하는 기적을 베풀어 주십니다. III. 가장 작은 자들을 통해 실컷 먹고 감추다가 우리가 이럴 게 아니다 이 아름다운 소식을 굶어 죽어가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 왕에게도 전해야 되지 않겠느냐? “오늘은 아름다운 소식이 있는 날이 거늘”(왕하7:9) 여기 아름다운 소식은 곧 기쁜소식 - 복음입니다. 복음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풍성한 하나님 나라의 선물입니다. 이 선물 은 돈 주고 사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오늘 나환자들은 모든 백 성이 죽어가는 기아선상에서 넘치는 양식을 발견합니다. 그냥 쌓여있는 양식과 은금보 화를 마음껏 누립니다. 아차! 이 기쁜 소식을 우리만 누리고 있을 것이 아니라 기쁜 소식을 나누자! 망해가던 그때에 이스라엘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고 온 백성을 살리는 이토록 엄 청난 역사를 하나님은 누구에게 맡깁니까? 그 당시 가장 연약한 사회적인 약자, 나병 환자들에게 맡겼습니다. 성경에 많은 인물들이 등장합니다. 왕과 신하들, 엘리사와 장 관, 그들은 엘리사의 말씀을 듣고 오히려 갈등만 일으키고 불신만 조장합니다. 그러나 나환자 이들은 자신의 불치병을 전염시키지 않기 위해서 사람들을 만나면 나 는 나병환자라고 소리를 질러야 합니다. 안 그러면 돌을 맞아 죽습니다. 부정하다 부 정하다 나는 부정하다. 멸시천대 꾸러기들이었습니다. 가족으로부터도 버림받은 사람 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하나님께서 위기시대 역사에, 가장 어려운 처지에 있는 나병환자들을 국가를 재건하는 일등공신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온 백성에게 구원의 소 식을 전하는 하나님 나라 사신이 되게 합니다. 이 얼마나 신묘막측한 하나님의 섭리입 니까? 하나님의 역사는 이런 것입니다. 이 엄청난 역사의 주인공들 그들의 이름이라도 기록되었으면 좋으련만 성경 저자는 그들의 이름을 우리에게 가르쳐주지 않습니다. 아니 이름조차 잃어버리고 살던 사람들 이었습니다. 그들은 이름이 없어도, 이름이 알려지지 않아도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 의 손바닥에 자기 이름이 있으면, 하늘 생명책에 그 이름이 있으면 그걸로 됐다. 그것 은 만사오케이.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 이름과 사역을 기억해주지 않아도 하나님이 기억해주시면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 사역이요 교회의 사역이요 복음의 역사입니다. 한소망교회 지난 30년 역사 속에서 교회 역사서에 한줄 이름이 없어도 하나님만 기억 하시는 이름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31주년을 맞이하면서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주마등처럼 지나갑니다. 교회가 어려울 때에 무거운 봉헌으로 헌신한 사람들 제가 그 들의 이름을 부르며 간증을 하더라도 몇 시간을 할 수가 있습니다. 평생 누구 하나 알아주지 않는데 숨은 곳에서 어려운 곳에서 봉사의 자리를 지킨 사람들, 골방 기도실 에서 눈물로 기대했던 사람들, 대단한 일 하지 않았지만 나는 예배를 무너뜨리지 않는 다. 먼 길 마다하지 아니하고 아픈 몸 아랑곳하지 아니하고 예배의 자리를 지킨 사람 들 그들이 한소망교회 역사를 만든 사람들입니다. 기적을 만든 사람들입니다. 하나님 나라 손바닥에 그 이름들이 있을 것입니다. 주께서 갚아주시기를 빕니다. 성경은 언제나 이런 약자들을 통하여 가장 귀한 일들을 감당케 하십니다. 지난 이천 년 역사 가운데 가장 귀한 일이 뭘까요? 예수님이 땅에 태어난 일 아니겠습니까? 하 나님의 아들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태어나는 그 일, 누가 이 세상에 전했습니 까? 대제사장이 아니었습니다. 예언자들이 아니었습니다. 왕이 아니었습니다. 빈 들판 에서 추위에 떨며 양을 지키는 목자들이 예수님 오시는 걸 보았습니다. 새벽을 지키던 그 사람들이 주님 탄생을 알리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 부활하셨을 때에 무덤이 비었 어요. 우리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어요. 예수 다시 사셨어요. 온 땅에 부활의 소식 을 전하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성경에 나오는 연약한 여인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최 초의 성찬예식을 행하던 그 자리, 포도주와 떡을 준비한 사람이 누굽니까? 성 안에 있는 이름 없는 아무개 성경이 소개하는 이름없는 아무개, 거시기였습니다. 이들이 주 님의 성찬예식을 준비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가난한 자를 들어서 크게 쓰시므로 부한 자들을 부끄럽게 하셨습니다. 연약 한 자를 들어서 강한 자를 부끄럽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이름 없는 가진 것 없는 잘 난 것 없는 한소망교회를 통하여 지난 30년 하나님이 보호하시고 오늘의 역사를 행하 고 계십니다. 할렐루야! IV. 하나님은 가장 큰 위기시대 가장 큰 은혜를! “나병환자들이 그 친구에게 서로 말하되 우리가 이렇게 해서는 아니되겠도다 오늘은 아름 다운 소식이 있는 날이거늘 우리가 침묵하고 있도다 만일 밝은 아침까지 기다리면 벌이 우리에게 미칠지니...”(왕하7:9) 이 말씀은 우리가 복음을 전하지 않아서 악인이 멸망하면 “그의 피 값을 네 손에서 찾 을 것”(겔3:18) 이라는 말씀을 기억나게 합니다. 나환자들이 전한 소식으로 사마리아 성의 모든 백성들은 싼 값에 배불리 먹고 헐벗은 자가 없었습니다. 우리는 헐값이 아니라 공짜로 값없이 생명을 얻었습니다. 구원을 얻 었습니다. 천국을 얻었습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이 시대를 섬기는 은혜의 정상에서 신앙생활하는 복을 누리게 된 것입니다. 한번도 세상을 섬기라는 꿈을 꾸지 못했던 나 병환자들이 하나님 손에 붙들릴 때 이 멋진 사역을 감당했습니다. 하나님은 못나도 쓰 시고 가난해도 쓰시고 병들어도 쓰시고 연약해도 쓰시는 분이십니다. 이중섭의 그림 중에 “은지화”라는게 있습니다. 당시 예술인들은 모두가 가난했습 니다. 구상 시인은 돈이 좀 있었던가 봐요. 구상 선생이 나타나면 예술인들이 술 을 얻어먹습니다. 밥을 얻어먹습니다. 이중섭도 구상 선생에게 밥과 술을 얻어먹 었습니다. 구상 선생이 밥값 내야지. 술값 내야지. 그랬더니 주머니를 뒤적여 담 배 한개 들어있는 담뱃갑을 꺼냅니다. 담배 한개 입에 물고 속에 있는 은지화를 끄집어내어 그림을 그립니다. 그 유명한 이중섭의 “은지화”라는 작품입니다. 손바 닥만한 그림입니다. 명작 중에 명작으로 꼽힙니다. 화가는 은지화에도 구겨진 종이에도 명작을 남기는 것입니다. 시인은 몽당연필을 손에 들고도 아름다운 시를 남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손에 붙들리면 명작으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면 우리의 손 안에서 기적이 일어나게 되는 것 입니다. 은혜의 역사가 만들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지난 31년 한소망교회 역사는 이 런 역사라고 해석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내일도 하나님이 하실 것입 니다. 포위된 사마리아 성처럼 강단 위에서 번영신학, 성공신학이 난무하던 우리 근간 신학 아닙니까? 나귀 대가리가 밥상에 오르듯이 선포되지 말아야 될 말씀들이 이 강단에서 난무하고 있었습니다. 결국은 신뢰는 땅에 떨어지고 한국교회는 무당 푸닥거리가 되어 져 가고 있고 세상에 극단적인 진영논리가 교회 안에서 난무하고 있었습니다. 심지어는 주님의 피묻은 교회에 세워진 교회를 비판하는 일로 강단 설교를 대신하는 일들이 그동안 있었습니다. 이것이 나귀 대가리입니다. 이제 온 세상이 들고 일어나서 교회를 물고 뜯어도 우리는 믿어야 됩니다. 이 교회를 지켜야 됩니다. 이 교회는 주님 의 피 위에 세워진 교회입니다. 내가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 우리라. 말씀을 지켜야 됩니다. 예배를 지켜야 됩니다. 생명력있는 예배를 드려야 됩 니다. 타협하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해야 됩니다. 입으로 말할 때만 하고 행동 해야 될 때 행동함으로 말미암아 오늘 교회가 무엇인지를 세상에 보여주어야 할 때입 니다. 코로나19 이후 우리 사회, 한국교회가 이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그토록 평범했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많은 사람들이 걱정을 합니다. 가르쳐 드릴까요. 못 돌아 갑니다. 그곳으로 돌아가서도 안 됩니다. 코로나19 2년이상 보내면서 우리는 알았습 니다. 한국교회가 돌아가야 할 곳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십자가의 자리입니다. 초대 교회의 자리입니다. 성령이 계시는 곳입니다. 주님의 심장 속에는 바로 그 교회입니 다. 이제는 자식들 출세시키겠다고 자식의 영혼 잡아먹는 오늘은 내 아들, 내일은 네 아들 잡아먹는 인육을 먹는, 오늘 본문의 사건으로 돌아가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코로나 19 이후에 가장 큰 과제가 있다고 한다면 한국교회가 다음 세대를 세울 수 있을 것인 가? 우리나라가 저출생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인가? 이 문제 해결하지 않으면 지구촌에서 가장 먼저 이 나라는 소멸되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가 다음 세대를 세우기 위하여 목숨을 걸어야 합니다. 지난 30년이 한소망교회를 은혜의 정상에 세우는 일이었다고 한다면 앞으로 30년은 적어도 다음세대를 새롭게 세워서 저들을 통하여 한국교회를 세우는 일입니다. 우리 사회를 세우는 일입니다. 국제사회 속에서 이리뛰고 저리뛰는 우리의 자녀들을 보는 것입니다. 이 일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우리교회를 이곳까지 인도하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약속하는 바가 한 가지 있습니다. 나는 내가 택한 백성을 내가 지킨다. 나는 내 백성을 버리지 않는다. 아람 군대가 온 나라의 양식을 싸 짊어지고 와서 손도 못 대고 군량미를 태산처럼 쌓아놓고 도망가는 것처럼, 적군의 손에 있는 양식을 빼앗아서라도 나는 내 백성을 지킨다. 기드온의 삼백용사에게는 칼이 없었지만 여호와의 칼이여 기드온의 칼이여! 나팔 하나 불었더니 자기들끼리 자중지란이 일어 납니다. 우리 손에 칼이 없는데 자기들 손에 있는 칼로 자기 아군을 죽이도록 만드는 분이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이런 분이십니다. 할렐루야! 여러분 현실로 보면 위기상황 맞습니다. 이런 위기 없었습니다. 내생애 처음 보는 위 기입니다. 무엇보다도 영적인 위기, 교회의 위기 맞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습니다. 지난 30년동안 발 디딜곳 하나 없이 터전이 없는 바로 거기에 한 소망교회가 서서 오늘의 역사를 이루었습니다. 지금도 새롭게 세우려고 하니까 영적인 터진이 무너졌습니다. 신뢰가 무너졌습니다. 갈 길이 안 보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믿 습니다. 지난 30년 은혜의 정상까지 인도하신 하나님께서 이 교회를 더 높은 곳으로 인도하여 주실 줄로 믿습니다. 우리를 통하여 이 역사를 행하신 하나님께서, 다음세대 를 통하여 더 놀라운 정상으로 인도하여 주실 것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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