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부터 아버지는 매주 토요일 오후가 되면 두 형제를 목욕탕에 데리고 가셨다.
광주 남구 월산동에 있는 남강장이다.
30년이 지난 지금도 광주에 가면 남강장은 그대로 있다.
어른이 돼서는 안에 들어가 보지는 않았지만, 외관을 보니 어릴 적의 따뜻한 목욕탕의 기운이 느껴졌다.
목욕탕에 가면 좋았다.
따뜻한 물에 처음 발을 담글 때의 그 기분을 아는가?
목욕탕에 관한 책 ‘아무튼 목욕탕’에는 이런 글귀가 나오는 데 공감 100배이다.
탕에 들어가기 직전의 상황을 아주 잘 묘사했다.
“탕에 들어가기 직전, 기대감은 최고조에 달한다.
야심한 밤, 꼬들꼬들한 라면을 젓가락으로 막 집어 들 때와 견줄 만한 순간.
발가락이 물에 닿으며 짜르르한 기분을 느끼는 건 겨우 1초다.
행복은 그렇게 왔다가 순식간에 사라진다.”
꼬들꼬들한 라면 첫 한 젓가락이 최고로 맛있듯, 뜨거운 탕에 발가락부터 들어가는 그 순간의 찰나의 시간은 라면의 첫 한 젓가락과 같다.
그 기쁨과 환희를 아버지는 어릴 적 우리 두 형제에게 이미 경험시켜 주신 것이다.
내가 아버지를 가장 높이 사는 점이다.
매주 주말 오후에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주었다는 것.
게다가 그곳이 목욕탕이었고.
목욕탕 안에서는 두 형제는 언제나 수영을 했다.
그래서 지금도 두 형제는 물을 무서워하지 않고 수영을 제법 잘한다.
아버지는 두 아들을 한 명씩 불러 이야기를 나누며 때를 밀어주셨다.
우리에게 아버지는 그런 존재이다.
언제나 내 등을 밀어줄 수 있는, 묵묵히 등을 밀어주는 남자.
이 시간에는 학교생활, 친구 관계, 진로 문제, 공부 문제 등 여러 가지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나누게 된다.
아버지가 물어보지 않아도 우리가 아버지에게 재잘재잘 수다를 떨게 된다.
무슨 이야기가 그리도 하고 싶었을까?
그 수다를 통해 두 아들이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를 아버지는 아셨겠지.
목욕탕 덕분에 두 아들은 몸도 마음도 깨끗하고 건강하게 잘 자랐는지도 모르겠다.
나도 내 동생도 상당히 바르게 잘(?) 자랐다.
교사인 지금의 내가 생각하면 아버지가 굉장히 현명하셨다고 판단 된다.
그렇게 1시간이 넘는 목욕탕에서의 신나는 물놀이가 끝나서 문을 열고 밖에 나오면 그 기분은 또 말할 수 없이 개운하고 좋았다.
시원한 기운이 내 온몸과 얼굴을 스치는 그 찰나의 시간.
목욕탕에서는 두 번의 찰나의 행복한 시간이 있는데 그 첫째는 탕에 처음 들어갈 때고 두 번째가 바로 지금이다.
목욕탕에 한번 갈 때마다 아주 잠깐만 느낄 수 있는 최고 행복의 순간이다.
더 즐기려 해도 그 찰나는 이미 날아가고 없다.
옷을 입으며 아버지는 언제나 음료수를 한 병씩 사주셨다.
그 음료수를 마시기 위해서라도 두 형제는 더 목욕탕을 따라다녔는지도 모르겠다.
이상하게 목욕하고 나와서 먹는 포카리스웨트는 정말 맛있다.
평소에는 별로 먹지도 않는 건데 말이다.
목욕탕을 갈 때마다 아버지가 생각난다.
아버지는 여전히 건강하시고 목욕탕을 좋아하신다.
그래서 지금은 삼대가 목욕탕을 간다.
이제는 아들을 데리고 아버지를 모시고 삼대가 손을 잡고 목욕탕을 간다.
일부러라도 아버지를 모시고.
나는 이 목욕탕을 아들에게 물려주고 싶다.
이 문화를.
오늘은 금요일이다.
지인들 몇 분과 저녁 식사를 하기로 했는데 난 거기에 안 간다.
우리 가족이 목욕탕을 가는 날이기 때문이다.
내 선택이 맞겠지?
난 맞다고 생각한다.
오늘 금요일 저녁, 세 여자와 두 남자는 목욕 바구니를 들고 뚤레뚤레 목욕탕을 향한다.
매주 토요일 아버지와 두 형제가 그랬던 것처럼...
#목욕탕, #그냥에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