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시 토종음식의 명가가 된 대○칼국수
이학주
“우리 아저씨하고 신혼여행을 왔다가 좋아서 눌러 앉았는데, 벌써 50년이네요.”
박○숙(여, 72) 씨는 묵호가 제2의 고향이다. 서울에서 태어나 대전으로 시집을 갔는데, 1970년 동해로 신혼여행을 왔다가 그냥 눌러 살게 되었다. 그래서 아이들은 모두 묵호가 고향이다.
처음 묵호에서는 제일모직 대리점을 했다. 원래 칼국수집은 할머니가 했는데, 2000년도에 우연히 맡게 되었다. 어느 날 저녁이었다. 부인사 스님이 와서 칼국수집을 맡으면 어떻겠냐고 했다. 그래서 박○숙 씨는 음식을 할 줄 모른다고 했다. 그랬더니 스님은 그랬다.
“배워서 하면 되지. 그게 덕 닦는 거예요.”
그 후 박○숙 씨는 할머니에게 칼국수 만드는 법을 가르쳐 달라고 했다. 할머니는 어느 날 박○숙 씨에게 말했다.
“내가 이제 먼 길 가야하니, 이걸 배워. 며느리도 딸에게도 안 가르쳐 줄게.”
그렇게 말하고는 할머니가 수업료 1천만 원을 요구했다. 그때는 천만 원이 박○숙 씨에게 큰돈이었다. 배우겠다고 했으니 안 한다는 말도 할 수 없었다. 정신 바싹 차리고 배웠다. 그렇게 배우고 나서 몇 년 있다가 할머니는 돌아가셨다. 그래서 할머니 덕분에 지금 이 칼국수 집을 하고 있다. 아마도 할머니가 독하게 배우라고 수업료를 요구했을 게다.
원래 할머니는 여기서 39년 동안 장사를 했다. 등대칼국수라 이름 했는데 어느 날 신부님이 와서 등대는 너무 외로우니 대우로 이름을 바꾸라 했다. 대우는 ‘손님 대접한다는 뜻’이라 했다. 그래 대우칼국수라는 이름이 만들어졌다.
박○숙 씨는 할머니에게서 칼국수 만드는 방법을 배운 후 일부러 공부해서 음식 자격증을 땄다. 그리고 할머니는 하얀색 칼국수를 했는데, 지금처럼 박○숙 씨가 장칼국수로 바꾸었다. 고추장 하나만 더 보탰다. 칼국수 국물 맛이 어죽 맛 비슷하면서 맵다. 다만 고추장을 구입해서 일 년 이상 숙성을 시켜서 맛을 더 낸다.
“비법이라면, 내 부모와 내 자식이 먹는 음식을 만든다는 생각으로 만드는 게 그게 비법이지요.”
아주 소박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와서 뭐 넣었냐고 하면 다 알려준다.
“할머니가 저한테 알려주시면서, 꼭 돈 벌려고 하지 말고 그저 열심히 해서 내 식구가 내 자식이 먹는다고 하다보면 손님은 어느 때나 온다고 하시더니, 저도 모르게 어느 새 맛집이 됐더라고요.”
외국에 갔던 손님들도 한국에 들어오면 들린다. 2018평창동계올림픽할 때 만경봉호가 여기 왔는데, 외국 기자들 80명이 왔었다. 먹고 가면서 진짜 맛있다고 한국에 오면 또 오겠다고 했다. 일본에서 온 분이 한국에 가면 꼭 먹어보라고 해서 왔다면서 일본 와서 장사하면 안 되겠냐고 한 적도 있단다. 우리나라 사람 뿐 아니라 외국인들의 입맛까지 사로잡았다.
이제 박○숙 씨의 딸이 사위와 같이 어머니한테서 칼국수 일을 배우고 있다. 박○숙 씨는 나이가 들어 힘들다면서, 좋은 음식 맛을 남 주기 아까워서 외국 가서 사는 딸을 오라고 했단다. 그러니 대물림이 되는 셈이다. 박○숙 씨와 대화를 나누는 사이에도 손님들은 끊임없이 밀려들어 왔다. 커다란 칼국수를 남녀 모두 싹 비우고 나갔다. 우리 옆에 있던 신혼부부인 듯한 어떤 남녀가 그랬다.
“여기 맛집인가 봐. 정말 맛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