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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알프스(Japan Alps) 동계등반 보고서 : 전남대학교 산악회
인 사 말
전남대학교 산악회가 창립된 지 33주년을 맞이하여 그동안 축적되어온 기술과 하얀산을 향하던 회원들의 열정을 손때
묻은 우리 재학생들의 배낭에 담아 9년 전 하계 북알프스 원정에 이어 ‘91 동계 북알프스 원정등반을 성공리에 마쳤습니다.
동계 북알프스의 주봉 종주 정보가 담긴 보고서의 부족과 현지 사정에 부합되는 최신 정보의 부족으로 등반 도중 많은
어려움이 뒤따랐으나 대원들의 성공을 향한 열의와 현지에서 도움을 주신 조규상 선배님의 많은 조언으로 사고없이 원정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저희들이 등반한 서수고악 능선은 현지 산악인들도 동계 때는 주저하는 난코스였으며 확실한 탈출로
가 전무한 험로였습니다.
이 코스는 현지 산악인의 말처럼 ‘히말라야로의 관문’ 으로 불리기에 충분하였다고 나름대로 생각합니다. 더욱 중요한 점은
이번 등반을 통해 지금까지 막연한 개념으로 이어져 왔던 재학생만의 히말라야, 알프스의 원정이 어느 정도 현실성있게 우
리들 앞에 다가왔다는 것입니다. 가까운 시일 나에 우리들의 또 다른 하얀산을 찾아 배낭을 꾸리게 될 것임을 확신합니다.
끝으로 지금까지 아낌없는 도움을 주신 모든 OB선배님들과 악우들에게 다시 한 번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1991. 3. 원정대장 최행준
원 정 개 요
1. 대명칭: ‘91 전남대학교 산악회 일본 북알프스 동계 원정등반대
2. 대상지: 일본 북알프스 奧穗高岳 및 일원
3. 기간: 1991.1.30. ~ 2.11 (12박 13일)
4. 대원: 최행준 외 8명(OB 조규상 현지합류)
5. 등반방식: 알파인 스타일
6. 총경비: 4,000,000원
7. 대원명단
직책 성명 학과 주소 연락처 혈액형
대장 최행준 공화 85 장성군 장성읍 충무1동 938-8 (0685) 393-2376 O
운행 백두인 조경 85 광주시 북구 용봉동 국민주택 25동 104호 56-6884 AB
장비 박헌주 무역 86 광주직할시 북구 신안동 212-30 524-7560 B
회계 조양택 수의 86 광주직할시 북구 두암동 동영맨션 201 O
식량 유명희 지리 89 광주직할시 북구 용봉동 609-2 525-7924 A
식량보 김지형 축산 90 광주직할시 동구 산수2동 540-39 54-9541 O
의료 이현 수의 90 광주직할시 서구 농성1동 622-5 363-5290 AB
행정 최지환 기설 90 전남 영암군 군서면 도갑리 72-0070 B
고문 조규상 국문 80 日本國 靜岡縣 三鳥市 日本
8. 준비일정
- 1990년 여름: 동계 북알프스 등반 거론, 분담금은 400,000원 선으로 결정 12월 초: 대원 아르바이트 시작
- 1991.1.3.: 등반희망자 8명 회관집합, 소양교육 완료
1.4: 여권 신정
1.7: 훈련시작 6:50 종합운동장 집합
1.10: 회비 400,000원 납부, 항공권 예약
1.12: 추가회비 100,000원 납부
1.14: 군필자 여권발급 완료(대원 1명 제외)
1.15: 장비구입
1.18: 자체 설악산 동계출발, 군미필자 여권발급 완료(김지형, 이현, 최지환)
1.20: 1차 종합회의
1.21: 계획서 인쇄의뢰, 비자신청, Y.H 회원증 발급
1.22: 식량포장
1.23: 장비 포장, 계획서 인쇄완료, 종합훈련
1.24: 기차표 구입, 항공료 지불, 계획서 발송, 비자발급
1.25: 2차 종합회의, 분야별 최종 점검 16시: 교내에서 막영훈련
1.26 ~ 27: 대원 휴가
1.28: 최종점검, 발대식 준비
1.29: 발대식, 서울로 이동, 전대원 비자완료
1.30: 출국
등 반 보 고
1. 등반일정
1.29 광주 -> 서울
1.30 김포 -> 나리따(OB 조규상 선배님과 조우) -> 마쓰모토(松本)
1.31 송본(장비구입) -> 가미고지(上高地) 택시
2.1 상고지 -> 中尾根의 水 지난 평지
2.2 西穗山莊
2.3 西穗山莊 -> 獨標 前의 피라미드봉 안부
2.4 악천후로 예비일
2.5 심한 눈보라로 텐트 1동 매몰, 공격조 결정
2.6 A조: C4 -> 天狗の B조: C4 -> 西穗山莊
2.7 A조: 天狗の -> 穗高岳山莊 B조: 西穗山莊 -> 穗高山莊
2.8 A조: 穗高岳山莊 -> 穗高平小屋 B조: 穗高山莊 -> 穗高平小屋
2.9 穗高平小屋 -> 高山 -> 민오오다 -> 東京
2.10 東京
2.11 東京 -> 나리따 -> 김포
2.12 서울 -> 광주 2.
등반기록
1월 29일 19:00 발대식, 23:12 송정리역(광주) 출발. 애초에 계획했던 북알프스로 소리없는 증발(?)이 무산됐다. 그래도 OB선 배들에게 연락은 해야 한다는 대원들의 여론이 높아 부족한 회비에서 얼마간을 발대식에 투자하기로 했다. 원래 우리의
계획은 아무런 지원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부족한 재학생들의 힘으로만 원정을 시도하려 했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이 그렇게까지 나쁜 것은 아니었고 반대로 좋기만 한 것도 아니었다.
큰 기대는 없었지만 동아리 발대식 장소에 OB회장님까지 어려운 걸음을 해주셨다. 찾아주신 선배님들과 도와주신 모든
이에게 다시 한 번 감사드린다.
OB에서 총 700,000원을 지원 받았다. 총무의 입이 점점 커짐을 느꼈다. 시내버스로 송정리역으로 이동, 23:12분 통일호
열차로 서울로 출발했다.
가족, 친지는 유명희 대원의 어머님 한 분 뿐이었다. 나머지는 모두 다 버림받은(?) 인생들이었을까?
1월 30일 04:20 서울역 도착, 10:30 공항 도착, 17:30 이륙, 00:05 송본행 출발 아침에 너무 일찍 서울에 도착한 것이 후회스럽
기까지 하다. 대원들 기분 문제도 있고 체력문제 또한 무시못하기 때문이다. 백두인 대원의 비자가 아직 안나왔기 때문에 최대한 일찍 서울에 도착할 수밖에 없었지만. 최영수(23기) 형이 서울역에 마중 나오셨다.
대충 아침을 먹고 공항으로 향한다. 8명의 큰 배낭을 보고 공항버스 두 대가 냅다 도망간다. 겨우 버스를 타고 10:30에
공항에 도착했다. 여행사에 연락해 보니 백두인 대원의 여권이 나왔는데 아침 일찍 광주로 보냈다는 어이없는 대답을 들
었다. 다시 광주로 전화해서 버스 편으로 서울로 보내주도록 광주항공 제갈호일 선배에게 부탁했고 두 시간 뒤 백두인
대원은 광주고록 터미널로 출발했다.
3시 30분 배낭을 모두 위탁화물로 부쳤다. 총 200kg의 over charge가 나왔지만 무사히 통과했다. 보딩패스를 받고 출국
신고소에 들러 출국확인 도장을 여권에 받고 있는데 백두인 대원이 여권을 들고 공항에 도착했다. 전송나온 서울지부 선
배님이 한 분도 없음을 섭섭하게 생각하며 오후 5시 30분 U.A 편으로 김포를 출발했다. 대원들의 표정이 약간씩
상기된다.
충북출신의 산악인 송열현 씨도 함께 탑승했다. 일본에 계신 조규상(24기) 선배의 하숙집 주소를 8명 모두 적었는데 입국
심사시 무사통과다. 그렇게까지 현지 거주지 문제에 대해서는 심한 제재가 없는 것 같다. 엉성한 영어로 세관을 통과하고
나리따 공항을 막 빠져나가려 하는데 후배 하나가 괴성을 지른다. 뒤돌아 보니 규상이 형이다. 졸업하시고 5년 만인가?
전철 안에서 이야기하기로 하고 일단 공항버스에 몸을 실었다.
공항에서 신주꾸까지의 이동사항과 교통비는 덕성여대 보고서와 동일했다. 걸프전쟁으로 물가가 조금씩 올랐거니 했지
만 기름 값은 도리어 내렸다는 이야기. 전철을 우에노에서 갈아타고 신주꾸에 11시 30분에 도착했다.
작년 학산 동계 에베레스트 원정대장이셨던 김하경 선배께 전화로 인사드리고 0시 5분 송본행 완행열차에 올라탔다.
1월 31일 맑음, 오전 –5도, 오후 –7도 졸음이 쏟아지는 눈을 부비며 5시 45분 가미스와 역에서 내렸다. 약 15분 후에 송본행
기차에 다시 올라탔다. 6시 35분 송본(松本)역에 도착했다. 역내에서 우동으로 아침을 때우고 3명은 장비점에 들러 콜맨
버너와 눈삽을 구입했다. 다시 주유소에 들러 휘발유 14리터를 구입하고, 버스역에 들러 버스편을 알아봤다.
기차편이 싸다는 결론이 내리자 다시 역으로 향했다.
11시 35분 신시마시마행 전철을 탔다. 차창 밖으로 북알프스의 전경이 보인다. 30분 뒤 기차의 종점인 신시마시마에 내려
서 5인승과 6인승 택시를 타고 상고지로 향했다.
7000엔 씩이었는데 미터기로 끊기로 해서 대당 190엔씩 절약했다.
눈이 많이 내려 2/3 지점인 판권온천에서 하차, 간단히 라면으로 중식하고 제설작업 중인 도로를 걷기 시작했다. 동계 때는
입산을 통제한다고 들었는데 입산신고는 그저 관리소 앞의 조그만 상자에 계획서 한 부를 넣는 것으로 끝냈다. 관리인은
보이지 않는다.
네 개의 터널을 지나자 계곡이 넓어졌다. 세 명의 스키를 타고 내려오는 일본인이 보인다.
18:00 제국호텔 뒤에서 막영.
2월 1일 맑음 오전 –7도, 오후 –12도 4:00 기상, 15:00 막영 제국호텔 앞마당에서의 막영은 천국이었다. 평평한 널빤지를 텐트
마다 3개씩 눈위에 깔고 잤었으니 딱딱한 침대에서 잔 기분이랄까? 아침 일찍 일어나 조식을 해결한 후 두인이 형과 헌주
형이 먼저 출발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 나머지 대원들이 짐을 모두 꾸렸을 즈음에 무전기가 고장난 걸까? 에코소리는 가물거리며 들리는
데 무전기에서는 지글거리는 잡음만 들린다. 흡사 배고픈 뱀이 내는 소리처럼 소름끼치는 소리와 같았다. 건전지를 갈아
끼워도 마찬가지다.
행준이 형은 귀찮은 듯이 배낭헤드에 그대로 쑤셔박아 넣어버렸다. 허벅지까지 빠지는 숲길을 빠져나오니 몇 개의 스키
자국이 나오고 그런대로 크러스트가 잘 된 도로가 나왔다.
다리(穗高橋)를 하나 건너니 庄吉小室이 보였다. 그 옆에는 아마 온천인 듯 싶었다. 20분 쯤 걸으니 길 옆에 반쯤 묻힌
등반 신고함이 보인다. 마찬가지로 계획서 한 부만 달랑 던져 넣고 출발했다. 방위각 300도 방향에 있는 1955m 짜리
中尾根의 말단 봉우리를 우측을 끼고 올라갔다. 길의 경사가 점점 심해 갈수록 러셀하기가 힘들었다. 양택형과 두인형이
앞에서 계속 러셀을 해나갔고 나머지 대원은 나무가 없는 경사지에서 활락정지 훈련을 했다.
12시에 간단히 중식을 해결하고 전진했다. 일본팀들은 대부분 점심을 생략한다고 하는데 나는 도저히 이해가 안갔다.
나는 먹어도 배가 고픈데 말씀이다. 아마 그 사람들도 저녁에는 두 끼를 해치우지 않았을까 싶다. 지루한 러셀을 계속해
나갔다.
등반 첫째 날이라 그런지 배낭 따로 몸 따로다. 눈 위를 헤엄치다시피 헤쳐나가다 보니 넓다른 평지가 나왔다. 그제서야
“막영준비”라는 소리가 들렸다. 위기일발 퍼지기 일보직전이었는데. 커다란 고사목 위에 사람 상체만한 눈덩이가 서너
개씩 매달려 있다. 몇 개는 나무를 흔들어서 떨어뜨렸는데 텐트 바로 위에 유독 하나만 악착같이 안떨어 진다. 텐트 세
동을 설치하고 취침. 내일 쯤이면 서수산장을 통과할 수 있겠지 ?
2월 2일 흐림 오전 영하 10도, 오후 영하 13도 04:00 기상, 18:00 막영 아침에는 날씨가 좋았다. 하지만 오늘도 지루한 러셀은
계속되었고 바로 앞에 한 팀이라도 지나갔더라면 하는 착각 속에 계속 나아갔다. 이 넓다란 산에 우리뿐인가 싶었다. 뒤
로는 상고지의 梓川이 뿌옇게 보였다. 정말 많이도 올라왔다.
중식 후부터 완경사가 계속됐다. 20m는 족히 넘을 나무들 사이로 길이 지그재그로 나 있었다. 군데군데 보이는 표식기를
따라 올라가니 경사는 완만하지만 설악산 죽음의 계곡처럼 생긴 막다른 계곡이 나왔다. 행준형이 헤엄치듯 러셀을 해놓
은 후 5명의 대원이 빈 몸으로 더 멀리 러셀을 하러 올라갔다. 무전기 교신이 닫지 않는 곳까지 진출한 후 다시 돌아와 계
곡 아래에서 합류했다.
얼마 못미쳐 서수산장이 있다고 했다. 오후 3시, 좀 늦은 시간이지만 산장까지 진출하기로 하고 간식을 먹은 후 출발했다. 몇 개의 가파튼 턱을 넘어서니 주능선 위에 올라섰음이 살을 찢는 듯한 바람을 통해 느껴졌다. 러셀을 해놓은 길이지만 배
낭을 메고 걸으니 별 볼일 없었다. 배낭무게 때문에 러셀자국은 쉽게 무너져 내렸고 크러스트된 능선 길 역시 걷기가 수월
하지만은 않았다. 멀리 서수산장이 보인다.
산장 주위에는 캠프장인지 나무가 거의 없었다. 중심을 잡기 힘들 정도의 눈보라를 맞으며 겨우겨우 산장에 17:00에 도착
했으나 산장 안에 있던 이토오라는 일본인의 한글로 된 안내서까지 보여주는 친절(?)로 우리는 산장 바로 옆에 텐트를 칠 수 밖에 없었고, 산장 바로 옆의 눈더미를 한 시간 가까이 까낸 후 겨우 텐트 3동을 쳤더. 그 와중에 쫄따구 현이가 오른쪽
귓바퀴에 물집이 생기는 동상에 걸려버렸고 선배들은 한결같이 “에라 띨빡!”이라는 소리만 했다. 그날 밤은 울화가 치밀어 밤잠을 설쳤다.
발전기까지 돌리며 문화생활을 하는 산장 바로 옆에, 추위에 떨며 잠을 청하는 내 모습이 생각할수록 너무나 대조적이었
으므로.
2월 3일 맑음 오전 영하 10도, 오후 영하 6도, 저녁 영하 20도 어제 산행으로 지친 대원들의 행동은 더디기만 했다. 벌써부터 백색크림(?)에 염증을 느끼고 있었지만 이제 능선길을 걷는다는 러셀공포에 대한 해방감에 부풀어 힘차게 한발한발 내
딛었다. 얼마 후 능선에 붙었을 때 대원하나가 퍼져서 배낭무게를 조절하는 동안 살갗을 찢는 듯한 추위가 엄습했다.
비교적 적설량은 적었으나 바위에 얼어붙은 눈이 우리의 행보를 저해하는 요소로 등장했다. 맑은 날씨 덕분에 주위배경
을 중심으로 사진촬영을 갖는 여유를 맛본다. 탁트인 전망은 산행의 즐거움과 의욕을 고취하는데 충분했으리라. 저학년
들은 아이젠 착용이 미숙한지라 바지가 아이젠에 자꾸 찢기움을 당하는 설움을 맛보고 있었다.
서수독표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능선모양은 왼쪽으로는 급경사였고 오른쪽은 커니스 형성이 되어 있었다. 눈처마는 족히
4~5m는 넘을 듯 싶었다. 실수하면 두 번 다시 비행기를 못탈 것 같은 생각이 들 때쯤 어느덧 등줄기엔 땀이 흐르고 있음
을 느꼈다. 아이젠이 스패츠를 스치며 지나가는 마찰음을 들을 때마다 신경이 곤두섰다. 서수독표의 피라미드피크에 도
착했을 때 백두인과 박헌주 대원이 정찰을 나갔고 남은 대원들은 자기 허벅지처럼 딱딱하게 굳은 중식용 빵을 잘근잘근
씹고 있었다.
독표정상은 긴 장대가 꽂혀있음이 정찰 후 돌아온 대원들에 의해 확인됐다. 이제부터 계속되는 릿지를 넘기에는 시간이
필요하고 막영장소를 고려해야 할 것이라는 내용에 상황이 불리함을 느꼈다.행준형의 산행종료 지시에 비좁은 설사면에
방풍벽을 쌓아 겨우 2동의 텐트와 절벽 측을 이용해 설동을 구축하니 벌써 해가 기울고 있었다. 석식완료 후 무전연락으
로 내일 일정을 논의한 결과 전수고악까지 전진키 위해 일찍 출발하기로 했다. 이현 대원의 귓불동상의 치료결과가 좋아
지고 있음을 확인하고 비로소 안심할 수 있었다.
내일부터는 더욱더 스릴넘치는 멋진 파노라마를 기대하며 잠을 청했다.
2월 4일 흐림. 오전 영하 13도, 오후 영하 10도, 저녁 영하 23도 일찍 기상하여 설동을 나와보니 한 치 앞을 분간할 수 없을 듯
한 강한 눈보라가 능글맞게 아침인사를 하고 있었다. 밤새 강타한 눈보라는 텐트 1동을 삼켜버렸다. 방풍벽을 쌓았지만 효과를 얻지 못했다. 기상악화로 임시예비일을 잡고 무너진 텐트를 복구했고 비좁은 설동을 더 깊게 파고들었다. 날씨가
당장 갠다면 한발이라도 전진하려 했는데 전혀 좋아질 기미가 없었다. 설동과 능선 너머의 텐트와는 육성으로는 이야기
가 불가능했다.
교신거리 50m짜리의 성능좋은(?) 두 개 채널의 무전기가 그 잘난 성능을 발휘해 내일 등반일정을 서로 교환해주
고 있었고
쫄따구들은 모처럼의 자유시간을 낮잠으로 보내고 있었다.
텐트 한 동만으로 설사면에 비스듬히 자리 해서 오늘 밤은 버티기가 무리일 듯 싶어 유 명희, 이현 대원을 설동으로 내
려 보내고 조양 택과 박헌주 대원이 무너진 텐트를 복구하고 텐트사수에 나섰다. 윙윙거리는 바람소리에 잠이 오질 않
는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30분 간격으로 무전교 신을 했다. 몇 번의 제설작업에도 불구하고 빌어먹을 눈보라는 텐트의 양
옆을 바싹 조이 며 눈덩이를 몰아왔다. 3회에 걸쳐 제설작업 을 더했는데 손발이 꽁꽁 얼어버렸다. 종일 긴장하고 정말 피곤한 날이었다.
2월 5일 흐림. 오전 영하 10도, 오후 영하 15도 눈이 밤새 쌓였다. 다행히도 텐트에는 큰 피해가 없었다. 암벽구를 재정리한 후 바람만 잦아들면 정찰조를 출발시키려 했는데 쉬운 일이 아니었다. 텐트 밖을 나선다는 게 여간 고역이 아니었다.
12시 쯤에 밖에서 말소리가 들려 나가보니 낯선 세 사람이 가벼운 차림으로 다가왔다. 제주도 설암산악회 회원들이라
소개했다. 하루 차이로 줄곧 우리의 막영지를 뒤따라왔고 서수산장의 이토오씨의 배려로 고생을 덜했다고 들었을 때
우리들에게 푸대접한 그가 전형적인 일본인이라 단정해 버린 짧은 생각도 잠시였다.
이국 땅에서 고국산악인을 접하니 즐겁기만 했다. 그들은 모두 공교롭게도 양띠였고 도합 6명의 양띠가 북알프스의 능선
위의 설동안에서 모였다. 15시에 그들은 출발했고 17시 30분에는 고학년 회의가 진행되었다. 여러 의견이 나왔지만 최종
3명의 대원을 선발해서 공격조로 전진하고 다른 대원들은 서수산장에서 갈라지는 西穗高口로 하산결정을 내렸다.
매서운 눈보라보다도 3명의 1학년을 포함한 적지 않은 인원이 부족한 장비로 바위릿지를 전진한다는 것이 결정에 주요
인이 되었다. 훈련기간도 채 한 달을 넘지 못했으니 행준형의 머릿속을 짐작할 만 했다. 늦은 시간 몇 개의 별빛이 눈보라 속에서 악착같이 반짝거린다. 저 멀리 松本의 야경이 희미하게 능선 뒤로 비쳐오자 힘이 솟는 것 같다.
내일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강행군을 해야 한다는 부담을 안고 눈을 붙인다.
2월 6일 흐림. 오전 영하 12도, 오후 영하 10도, 저녁 영하 15도 [A조] 6시에 정상을 향해 출발하기로 했으나 1시간 늦은
7시에 동료들의 조심하라는 당부와 함께 1박 2일 예정으로 간단한 식량, 비상식, 장비 등을 챙기고 텐트없이 설동을
구축할 예정으로 출발했다.
긴장과 함께 몸이 풀리지 않아서인지 출발 얼마되지 않아 익숙지 못한 아이젠이 스패츠에 걸리면서 스텝이 엉켜 커니스
를 밟고 눈 속에 머리를 처박으니 숨이 막혀 죽는 줄만 알았다. 배낭에 눌려서 혼자서는 일어설 수 없어 몸부림치다가 정
신이 몽롱해질 때쯤 저 뒤에서 따라오던 행준형이 도착해서 배낭째 들어올리면서 뭐라고 욕지꺼리를 하는데 귀에 들어
오지도 않는다.
행준형은 안경에 묻은 눈을 닦아내기 위해 오른쪽 오버미튼을 벗었다가 강풍에 능선너머로 날려버렸다. 형에게는 불행
한 일이 지만 서로 한 가지씩 실수를 나눠가진 것 같아 액땜을 한 것 같은 묘한 안도감 (?)이 든다. 간밤에 별이 보여 맑
을 거라는 기대와 달리 강한 바람과 눈보라가 진행을 방해 한다. 도중에 하루 먼저 출발한 제주에서 온 설암산악회팀 3명
을 만나 짐을 정리 중이라 먼저 출발하기로 하고 계속 나아 갔다. 헌주형, 나(최지환), 행준형 순으로 아 직은 안자일렌을
하지 않고 크러스트된 급경사의 너덜지대를 아이젠과 피켈을 이용해 올라간다. 군데군데 살짝 튀어나온 바위가 있어 서
가끔 잡고 올라가기를 반복하다가 헌 주 형이 뒤를 돌아보더니 바로 뒤의 나 를 보고 씩 웃는다.
기분이 암울한 나는 웃음이 나오지 않아 무표정하게 그냥 쳐다만 보는데, 헌주형이 튀어나온 바위를 잡아채는 순간 바위
가 뽑히면서 내 옆을 지나 제동할 틈도 없이 떼굴떼굴 구르면서 중간에 튀어나온 바위들과 부딪히면 몸이 튀어오르기를
반복하면서 아래 골짜기 쪽으로 사라져 버렸다.
손을 쓸 수 없어 굴러가는 것을 쳐다만 보다가 당황해서 행준형을 쳐다보니 형은 침착하게 내 피켈을 박아 형 배낭을 고
정시키고 헌주형을 찾아 150m 가량을 내려가더니 이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혼자서 꼼짝도 못하고 피켈과 배낭을 붙잡
고 아이젠 앞발톱으로만 매달려 있자니 점점 다리에 힘이 빠져 무릎까지 대가며 버티는데 눈보라 때문에 고정된 자세로
는 너무 추워서 옆으로 조금만 이동하면 그래도 조금은 안전한데 지금 매달린 곳이 경사가 심해 피켈을 빼면 균형을 잡
을 수 없어 배낭과 함께 나도 굴러떨어지기 때문에 움직일 용기가 나지 않는다.
눈보라 속에서 최악의 경우는 세 명이 모두 만나지 못할 수도 있다는 불안한 상상에 그냥 눈물만 나왔다. 고독하게 30여
분간을 꼼짝도 못하고 있으려니 저 아래에서 희미하게 행준형이 눈보라 속에서 비틀대면서 올라오는 것이 보였지만 아
무리 지켜봐도 헌주형은 보이지 않는다. 걱정과 절망감 속에 계속 지켜보니 행준형 20m 쯤 뒤에 헌주형이 올라오는 것
이 보여 비로소 안심이 됐다. 헌주 형은 올라오는 게 더 힘든지 올라오다 그대로 서서 쉬기를 반복하면서 어렵게 도착했
다. 임사체험을 하면서 사지에서 기적처럼 살아 돌아온 헌주형은 별 일 아니라는 듯이 미소를 짓지만 표정이 밝지가 않
다.
배낭도, 오버자켓과 트라우저도 바위에 부딪히면서 군데군데 구멍이 나거나 찢어져 있다. 아무래도 이대로 진행하기
에는 불안해서 헌주형이 먼저 올라가 자일을 설치하고 쥬마링을 해서 올라가려 하는데 이번에는 눈두께가 얇아 바로 위
에 있던 행준형이 아이젠이 걸리지 않아 비명과 미끄러져 내려오더니 내 무릎을 밟고 멈춰섰다. 결국 내 트라우저도 아
이젠에 찢기고... 꼭대기에 올라가니 제주도 팀이 기다리고 있어서 6명이 함께 등반을 하게 되어서 안자일렌으로 나아갔
다.
칼날 같은 능선에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바람이 불어대니 능선 왼쪽은 크러스트된 눈으로 한 번 미끄러지면 헌주형이 보
여줬듯이 수백미터를 굴러 나가 떨어져야 되고 오른쪽은 커니스가 발달해서 떨어지면 눈 속에 파묻혀 봄에나 발견될 것
같다. 6명이라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1번 하강한 것 빼고는 웬만한 하강코스는 위험하지만 아이젠과 피켈을 믿고 왼쪽
으로 약간 돌거나 그대로 클라이밍 다운으로 내려갈 수 밖에 없었다. 도중에 몇 번 위험한 고비가 있었지만 운이 좋아서
인지 사고는 생기지 않고 BC에서 정상까지의 2/3쯤 되는 지점에 눈바닥이 포도주를 뿌린 듯이 빨갛고 설벽을 구축해놓
은 흔적이 있어서 오후 3시가 조금 지나 그곳에 설벽을 더 쌓고 제주도팀 텐트를 치고 6명이 정상공격 하루 째의 밤을 보내게 되었다.
산행 도중 곳곳에 쇠사슬이 연결되 있어서 어느 정도 이용을 할 수 있었지만 위험한 코스가 많았고, 막영지 구축 후에도
강풍때문에 텐트가 심하게 흔들려 정신을 차릴 수 없고 3인용 텐트에 6명이 들어간지라 좁기도 했기 때문에 텐트 안에
서 교대로 앉아서 불침번을 서가며 텐트폴대를 잡고 버텨야 했다. 발 뒷꿈치가 까져서 양말을 벗으니 양말에 피가 번져
있었다.
출국하기 전에 가죽비브람에 기름칠을 반복해서 했건만 이미 며칠 간의 산행으로 방수능력을 상실해서 얼어붙은 신발
을 신고 벗을 때마다 오랜 시간을 낑낑대야 해서 고통스럽다. 지금쯤 서수산장에 있을 B조가 부럽다. 나중에 들은 바로
는 우리가 있는 이 막영지는 몇 주전 일본 등반팀 3명이 낙석으로 사망했던 곳이었다.
[B조] 그토록 갈망했던 맑은 날씨는 고사하고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매서운 눈보라가 강타하기 시작한다. 07:00에
A조 세 명을 출발시킨 후 남은 대원들은 철수준비를 완료하자마자
12:00경 아쉬움을 남긴 채 막영지를 떠나고 있었다. 그 어느 때보다도 발걸음이 무거웠고 언제 다시 보게 될지 모를 간
간히 눈보라 사이로 드러나는 북알프스의 고봉에 시선을 자주 빼앗기곤 했다. 선두에 나서서 길을 찾는 규상형이 무척
애를 쓰고 계신다. 강풍에 몸을 지탱하지 못하고 자주 넘어지면서 산장이 나타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대부분의
대원들은 방향감각을 상실한 채 규상형의 발자국만을 부지런히 좇고 있었다.
역시 산행 경력을 속일 수 없음을 느낀다. 지금쯤 눈보라 속에서 고투하는 A조가 걱정된다.
15:00에 서수산장에 도착하여 관리인 에게 하산루트에 대해 알아보니 케이블카가 운행하는 곳까지 2시간이면 충분하
다고 한다. 우리에게는 A조와 만나기까지 시간적 여유가 있었기에 궂이 무리할 필요는 없었다. 관리인에게 양해를 구한
후 곧바로 배낭을 정리하고 석식준비를 했고 무엇보다도 바람을 피할 수 있었기에 무척 아늑함을 느꼈다.
석식 후 모처럼 술자리를 마련하여 이토오와 함께 했는데 그도 이젠 다정하게 다가오고 있었다. 그가 촬영해 둔 북알프
스 전경을 시청했는데 정말 멋진 장면들이 많았다. 물질문명의 발달이 깊은 산속까지 전파된 일본의 현실에 부러움이
밀려온다. 그에게 많은 이야기를 들은 우리는 코를 골기 시작했다.
2월 7일 맑은 후 흐림(바람) [A조] 아침에 일어나니 바람은 여전히 심하지만 눈은 멎어 능선왼쪽은 파란 하늘이 보이는데
오른쪽은 뿌연 눈보라로 대조적이었다. 아침에 확인하니 아이젠의 나사가 풀려 사라져 버려서 밴드를 고정할 수 없어 착
용이 불가능해졌으나 행준형이 임시방편으로 밴드고리를 아이젠 발톱에 거는 재치로 좀 불편하지만 착용은 가능하게
되었다. 여전히 안자일렌으로 6명이 계속 전진한다. 올라갈수록 바람 때문에 쌓인 눈이 적어지고 돌출된 바위조각 투성
이라 진행하기가 불편하다. 바위에 박은 동판도 보였다. 정상이 보일만한데 여전히 정상은 보이지 않는다. 어느 정도 익
숙해져 있어서 별 탈없이 나아가다 어느 순간 한 봉우리를 올라서니 저 멀리 정상이 보인다.
대머리처럼 생긴 봉우리는 꼭대기까지 올라가지 않고 옆으로 트래버스를 했다. 몇 시간 이내에 정상에 올라설 수 있을
것처럼 보였지만 3163m シヤンダル에서 하강하느라 시간이 많이 걸렸다. 80m 자일이면 한 번에 충분히 하강할 수 있을
것 같다. 내 벨트는 구형이라 사타구니 압박이 심해 하강 도중 하체가 마비될 정도로 아파서 차라리 자일을 놓고 떨어지
고 싶을 정도였으나 몸을 비틀어 가며 겨우 하강을 끝내니 나도 모르게 아픔의 눈물이 나있다.
행준형도 날아가 버린 오버미튼 때문에 내피만 착용한 오른손이 긴 하강길이 때문에 얼어붙다시피 해서 하강을 끝내고
너무 추워서 손가락이 아프다며 신음소리와 함께 손을 겨드랑이에 끼우고 눈물을 쏟는다. 일단 하강을 끝내니 또 다시
몇 개의 봉우리들을 올라채야 할 것 같았으나 하나를 올라채니 독립된 봉우리처럼 보였던 몇 개의 봉우리들이 표고차가
없는 능선으로 연결되어 있어서 나머지 코스는 생각보다 쉽게 통과해 2시 50분 드디어 정상에 올라섰다.
잠깐 맑았던 날씨가 갑자기 구름이 끼며 흐려져서 주위 경관을 찍지 못한 채 정상사진만 찍고 또다시 눈보라 속에서 예
정된 탈출로를 찾아 하산하기 시작했다. 산행이 모두 끝난 느낌이 들어 기분이 좋아졌다. 4시에 穗高岳山莊에 도착하여
정상공격 이틀 째 밤을 보냈다. 양말에 찢긴 뒷꿈치 살조각이 묻어나온다.
[B조] 8시에 기상했다. 조식을 끝낸 후 배낭을 꾸리기 시작했다. 바람없고 따뜻한 산장 안에서의 출발준비는 정말 할만
했다. 어제 아침 막영지에서의 철수준비는 정말 지옥이었다면 여기는 천국일 것이다. 이토오씨에게 千石尾根을 따라
내려가면 케이블카를 탈 수 있다는 것과 1시간 쯤 걸린다는 이야기를 듣고 10시에 산장을 나섰다. 기념촬영을 끝낸 이
토오씨의 배웅을 받으며 앞을 보기 힘든 눈보라 속에서 서쪽으로 방향을 잡아 내려가기 시작했다. 올라가기나 내려가기
나 마찬가지였다. 글리세이딩할 만한 경사지도 없고 크러스트된 지역도 보기 힘들었다. 능선을 오르면서 수없이 반복했
던 러셀을 다시 복습해야만 했다. 시간이 걸린다는 케이블카가 보이지 않는다. 규상형이 선두에 계시니 길을 잃었을리
는 없고, 이토오란 사람은 겨울에는 산장 안에서만 사나 보다. 아니면 겨울등반을 아예 안하는 사람이던가. 오후 4시에
케이블카를 탈 수 있었다. 1단계와 2단계의 라인이 있었다.
케이블카를 한 번 갈아탄 후 우리는 아스팔트를 밟을 수 있었다.
곧바로 남녀혼탕에 들어가 뜨거운 물에 몸을 적실 수 있었다.
오후 6시 A조와 만나기로 한 白出小屋을 향해 출발했다. 길은 길인데 눈이 허리까지 빠졌다. 지겨운 러셀이 계속 이어 졌다.
새벽 두 시에 운행을 중지하고 막영에 들어갔다. 오늘이 A조와 白出小屋에서 만나기로 한 날인데 허리까지 빠지는 눈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여기서 눌러앉을 수 밖에 없었다. 석식을 끝내고 새벽 4시에 취침했다. 2월 8일 흐림, 바람. [A조]
새벽에 기상해서 홀가분한 마음으로 짐을 꾸려 穗高岳山莊 왼쪽 골짜기로 들어서니 태어나서 맞아본 적이 없는 강한
눈보라에 눈을 뜨기는 커녕 정신조차 차릴 수 없다.
엄청난바람에 얼음이 다된 눈조각들이 계속 얼굴을 후려친다. 오버자켓 모자가 벗겨지니 이미 얼어붙은 목출모는 무용
지물이 되고 말았다. 바람이 너무 심해 자켓의 모자를 다시 쓸 수도 없고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다. 새벽이라 보이는 것
도 없기 때문에 눈을 감다시피 한 채로 몇 백 미터를 내려가니 바람은 조금 약해지고 눈 속에 발이 빠지기 시작한다.
어느 새 눈은 내려갈수록 무릎에서 허벅지까지, 심한 곳은 허리까지 차올랐다. 내려갈수록 점점 깊어지는데 경사가 심
한 골짜기 곳곳에서 눈사태가 일어났다. 맨 뒤에 있던 행준 형이 바로 뒤에 있어 알고 보니 눈사태가 뒤에서 덮쳐 휩쓸려
내려온 것이다. 눈구덩이에 헌주 형이 빠져 눈 속에 파묻힐 뻔한 위험한 상황이 생기기도 했으나 다행히 모두 안자일렌
을 하고 있어서 힘겹게 다시 끄집어 낼 수 있었다. 결국 도저히 위험한 계곡을 계속 내려갈 수 없을 것 같아 산허리 쪽으
로 간신히 올라채서 이동했다.
몇 시간을 내려가니 바람은 점점 줄어들고 경사가 어느 정도 완만해져 눈은 내리지만 눈사태 위험은 줄어들어 다시 계
곡 쪽으로 내려와 러셀을 해가며 나아갔다. 도중에 높이가 수십 미터가 되는 빙폭이 나와 그대로 내려갈 수가 없어 오른
쪽으로 돌아서 내려갔지만 위험하기는 마찬가지다. 조금 내려가니 경사도 덜 심한 작은 빙폭이 나와 그대로 빙폭 바로
옆으로 아이젠을 찍으며 내려가는데 세 명째부터는 이마저도 무너지기 시작해서 어쩔 수 없이 빙폭을 타고 내려가다가
그대로 눈 속으로 뛰어내릴 수밖에 없었다. 이제 경사가 완만해진 대신 눈은 허리까지 차올라 약속장소인 白出小屋까지
교대로 힘들고 지루한 러셀을 해가며 내려간다.
몇 시간 후 콘크리트 둑이 나타나 왼쪽으로 올라가니 조그마한 산장이 나오는데 기대했던 동료들이 보이지 않아 조금
더 내려가다가 막영을 할 계획으로 러셀을 계속해 나가는데 100m쯤 가다보니 앞에서 에코 소리가 들린다. 반가움에 한
참을 내려가니 규상형, 두인형, 명희누나가 러셀을 하면서 올라오고 있었다. 동기들은 보이지 않았지만 그 반가움이란.
새벽에 산행시작 후로는 아무것도 먹지 못해 간단히 휴식한 후, 러셀자국을 따라 穗盲산장으로 내려가는데 안심이 돼서
인지 피곤이 몰려오고 배낭이 더욱 무거워진 느낌이다.
기진맥진한 채로 1시간 쯤 야간산행을 하며 내려가자 3일간 못봤던 동료들을 모두 만날 수 있었다. 간단히 보고 후 배낭
을 푸는데 피곤해서인지 선배가 따라주는 위스키 한 잔에 정신을 못차리고 꾸벅꾸벅... 꾸중을 들었지만 도저히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한 밤중이 되어서야 간신히 정신을 차렸다. 몰랐는데 3일간의 산행으로 눈보라 때문에 왼쪽 볼에 동
상이 걸려 빨갛게 변해 있었다. 그래도 좋았다. 그 무섭고 힘들었던 산행이 모두 끝나서. 이젠 열차타는 일만 남았으니 까.
[B조] 8시에 기상했다. 조식을 마친 후 텐트를 철거하지 않은 상태에서 白出小屋을 향해 러셀을 시작했다. 하계같으면 휘파람 불면서 한 두시간이면 도착할 거리를 헤엄을 치듯이 걸어가는 우리가 한심하기까지 하다. 4시에 穗高山莊에 도 착했다. 배낭을 산장에 벗어두고 간단한 간식만 챙긴 후 규상형, 두인형, 명희누나가 A조를 찾아 마중나갔다. 벌써 계 곡이 어두워지기 시작한다. 에코를 해봐도 대답이 없다.
물론 러셀자국도 찾아볼 수 없었고 하다못해 토끼발자국 조차 허리까지 빠지는 설원 위에서 찾을 수 없었다. 오후 6시
길 저쪽에서 희미하게 에코소리가 들린다. A조였다. 무사히 A조 형들과 동기를 볼 수 있어서 기뻤다. 잠시 후 A조와 제
주도 설암산악회 3명을 만날 수 있었다. 준비해간 간식과 스프, 술을 한 모금씩 6명에게 나눠주고 3 일간의 이야기를 간
단하게 나눴다. 지환이의 볼이 새까맸다. 그 부분만 동상에 걸린 듯 싶었다. 오후 9시 穗盲산장에서 9명이 모두 만났다.
오랜만에 후끈거리는 산장 안에서 젖은 장비를 말리며 대원 전원이 모여 그간에 있었던 일들을 서로 이야기했다. 2월 9
일 산장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어제 올라왔던 길을 하산하기 시작했다. 그제 저녁 막영했 던 막영지를 지날 때는 섭섭
한 기분이 들기도 했었다. 그제 보았던 주차장에 도착했다. 자동차 백미러에 얼굴을 비춰보며 머리도 빗고 옷도 간단하
게 바꿔 입었다. 설암팀은 西穗山莊으로 케이블카를 이용해 올라간다고 한다. 얼마간의 식량과 여권 등이 산장에 있기
때문이었다.
스키장 대합실에서 다까야마(高山)행 버스티켓을 끊고 휴식을 취했다. 원래 하산코스는 상고지에서 온 순서의 역순으
로 동경까지 가는 것이었지만 능선 건너편으로 하산을 했기 때문에 동경까지의 길이 두 배로 멀어졌다. 高山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일본에 와서 처음으로 타보는 버스였다. 다까야마역 앞에서 내리니 6시가 넘었다. 다시 기차를 타고 북부
본선에서 중앙본선 노선으로 옮겨갔다.
8시에 민오오다에 도착했다. 기차시각이 맞지 않아 두 시간 가까이 대합실에서 기다리다 송본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송본역에 도착하니 밤 0시가 다 되었다. 역매표소 앞에 있는 기차시각표를 보니 長野에서 동경까지 급행이 있음을 알
곧바로 동경행 기차에 올랐다. 기차 안에서 배낭맨 일행은 우리 말고 찾아보기 힘들었다. 모두가 스키복 차림과 간단
한 여행복 차림이었고 선반에는 스키가 얹혀 있었다.
3. 세부평가
(1) 등반구 - 피켈의 부족으로 스키스톡을 준비했으나 스키스톡은 평지, 러셀할시나 필요할 뿐 능선상에서는 절대적으로
피켈이 필요하다. 크러스트된 눈을 블록작업하여 설벽구축시나 막영지를 고를 때 절대적으로 필요 - 능선상에서 플라
스틱 이중화와 원터치 아이젠이 상당히 편리했다.
가죽비브람은 관리를 잘 해야 하는 불편이 있었고 이중화는 땀이 많이 차서 냄새가 지독했다.
- 고글은 모두 날씨가 맑은 날 설맹방지용으로 사용되었고 눈보라가 치고 한치 앞이 보이지 않는 능선상에서는 습기가
차고 얼어붙어 사용치 못했다. 피로 방지용으로 꼭 필요하다 하겠다.
- 카라비너는 링비너 1개만 안자일렌시 사용하고 사용치 않았다.
- 하켄은 암벽하켄, 빙벽하켄 모두 사용하지 않았다. 하강을 2번했는데 모두 기존의 시설물 이용, 암벽 하켄을 나이프 3,
앵글 3개 정도 준비하는 것이 여유가 있겠다.
- 아이스바일은 필요가 없었다.
(2) 등반의류
- 방풍복은 고어텍스와 하이포라를 같이 사용했는데 금방 말라 취침시 상쾌했으나 천과 나일론의 이중으로 된 오버트라
우저는 운행 중에 흐른 땀이 옷감 사이에서 얼어붙어 텐트 안에서 한참을 녹여야 했고
파일이나 스웨터는 빨리 말라서 사용이 편리했다.
- 모장갑, 모양말은 가격의 구애를 받지 않더라도 충분했고, 내복은 보온 메리를 입었는데 취침시나 운행시 산뜻하고 따뜻
했다.
- 스톰은 취침시에만 필요했는데 굳이 오리털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보온효과를 낼 수 있었고 바지는 모바지만으로도 충분
했다.
(3) 막영구
- 3,000원짜리 롤매트로 습기가 올라오고 물기가 제대로 마르지 않아 불편했으나 Ridge Rest는 아주 편리하게 사용했다.
- 침낭은 모두 오리털이었으며 침낭 커버는 한 번 사용하고 계속 쓰지 않았다.
아침에 일어나면 침낭에 서리가 하얗게 얼어 있어도 별로 추위에 대한 괴로움없이 일단 침낭 속에 들어가면 코를 골았다.
- 이중화로 텐트 슈즈를 대용하였고, 가죽비브람은 텐트슈즈를 필수로 준비해야 한다.
그리고 능선상에서 텐트슈즈를 신고 밖에 나갈 때는 미끄러우므로 세심한 주의를 요한다.
- 텐트는 돔형 에코로바 3동을 사용하였는데
하계용 1동은 능선상에서 치질 않고 설동에서 생활,
내피가 없는 동계용 1동은 능선상에서 눈에 무너져 내림.
막영시 (바람 불어오는 곳에 설벽을 확실히 쌓고) 가능한 바람의 반대방향쪽에 설동을 파서 장비를 넣고 강설 상태를 확인
하며 취침하면 좋겠다.
- 텐트시트는 비닐을 텐트규격에 맞게 제작함. 능선상에서는 사용않음
- 팩은 스키스톡과 피켈로 대용하고 한 번도 사용않음
- 눈삽은 국내에서 사정으로 인해 구입하지 못하고 현지 구입. 설벽구축시 유용하게 사용.
(4) 운행구
- 수통은 안의 물이 얼어붙어 굳이 필요가 없었고 "빅토리녹스 아미나이프"는 다방면으로 유용하게 사용되었다.
- 지도는 1/25,000을 현지에서 구입하였는데 거의 사용하지 않았고,
규상이 형이 따로 준비한 관광용 1/40,000 지도가 유용했다.
- 트랜시버는 오래된 것이어서 상태가 별로 좋지 않아 등반 중에는 사용을 하지 못했고 막영시 텐트 사이의 교신용으로
사용했다.
- 온도계는 L형 개인휴대용을 가져갔는데 각자 온도가 틀리고 부정확했다.
( 5) 취사구
- 버너: 가솔린 4동을 유용하게 사용,
가스버너는 별로 사용치 않고 등반 중 음료를 끓이는 데만 사용했다.
휘발유 주입시 텐트 밖에서 해야 하는 주의를 요한다.
- 바람막이는 필요가 없었으며 버너 받침으로 사용했다.
(6) 기록구 - 코니카 수동은 전혀 작동불능이었고 선배님으로부터 기증받은 필름이 20통이나 되는 이유도 있겠으나 너무
많아서 필요없는 돈이 들어갔다.
슬라이드 필림은 현상하는데 비용이 많이 들고 네거티브 슬라이드로 교체할 수 있으므로 필요가 없겠다.
(7) 수선구 빅토리녹스로 거의 대용할 수 있었으며 준비한 수선구로 충분했다.
(8) 연료 가솔린 12ℓ와 Gas 큰 것 4개로 충분했다. 막영시의 추위 정도는 충분히 참을 수 있다. 건전지는 알카라인을 개인당
6조 즉 12개씩 배분했는데 충분했다.
(9) 기타
- 화장지는 개인당 휴대용 3개와 텐트당 두루마리 2개씩 지급했으며 부족하지는 않았다.
- 세면도구는 등반 후 대합실에서만 사용했고 고무장갑, 수세미는 사용하지 않았다.
- 썬크림, 바세린로션, 립크린은 가지고 있으면 피부 보호용도로 잘 사용할 수 있다.
※ 북알프스는 추위가 등반의 큰 장애요소는 아니므로 눈보라가 치더라도 운행을 해서 단기간에 등반을 마무리하는 방법을
좋을 것 같다.
의류도 최소화시키고
등반장비도 무게를 최소로 줄여서 능선상에서는 예비일없이 조금이라도 나아가는 방법이 나을 것 같다.
능선상에서 눈보라를 맞으며 텐트안에서 보내는 시간이 체력을 상당히 소모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일단 능선 릿지에 도달하며 알파인 스타일로 최소경량화된 장비로 필요하다면 설동 비박을 생각하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방법이 정공법이라 생각한다.
- 장비상의 어려움이 준비하는 과정에서 절대 다수의 수량부족으로 상당한 애를 먹었다.
기꺼이 장비를 빌려주신 박명선, 오성개 선배님, 김경선 형수님, 이연근 선배님, 임우근 선배님, 한민수 선배님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린다.
특히 성개형의 파손된 장비에는 죄송한 마음 그지없다.
식 량 보 고 유명희
처음으로 원정이라는 것을 떠나게 되었다. 거기서 식량담당이라는 막중한 책임을 맡고 시장조사에서부터 원정이 끝나는
날까지 신중을 기한다고 노력했는데 많은 부족한 점이 발견된 것같아 반성하고 다음부터는 좀더 알찬 식량을 구할 수 있
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이번 식량에서 가장 중점을 두었던 것은 최소의 부피, 최소의 중량이었다.
1. 식단계획 (1) 식단표 일수 날짜 조식 중식 석식 간식 비고
1 . 2월 1일 기내식 매식 2
2월 2일 R-5 L-2 N R-3 L-2 G-2 3
2월 3일 R-2 L-1 N R-1 L-4 G-2 4
2월 4일 R-5 L-3 B-1 R-4 L-1 G-1 5
2월 5일 C B-2 C G-1 6
2월 6일 R-4 L-1 N R-3 L-4 7
2월 7일 α-1 L-3 B-2 C G-2 8
2월 8일 α-2 L-4 B-1 C G-1 9
2월 9일 R-1 L-4 N R-2 L-3 10
2월 10일 α-2 L-2 N C G-1 11
2월 11일 C B-1 C G-2 12
2월 12일 R-5 L-1 N 매식 13
2월 13일 기내식 (2) 식단내역 ⓵ 미식 ⓶ 중식 ⓷ 간식 ⓸ 부식 ⓹ 비상식: 비스킷, 음료수, 땅콩, 건포도, 사탕, 초코파이,
쥐치포, 사탕, 소금, 성냥, 양초분류기호 식단명 재료
R-1 육개장 쌀, 쇠고기캔, 건조갯살, 건고사리
R-2 곰탕국 쌀, 곰탕다시다, 당면, 건도라지, 건호박, 건고사리
R-3 참치찌게 쌀, 참치캔, 당면, 건가지, 마늘, 무우말랭이
R-4 미역국 떡, 쇠고기, 말린파, 멸치, 튀김두부
R-5 떡국 쌀, 미역다시다, 건조미역, 건조갯살
α-1 육개장 알파미, 곰탕다시다, 당면, 건도라지, 건호박
α-2 곰탕국 알파미, 쇠고기캔, 건조갯살, 건가지, 건고사리
C 비빔밥 건조동결, 비빔밥 분류기호 식단명 재료
N 떡라면 라면, 말린파, 떡
B-1 빵식 맘모스 빵, 잼, 치즈, 햄, 분말우유
B-2 빵식 옥수수빵, 잼, 치즈, 햄, 과일캔 분류기호 재료
G-1 초코파이, 초콜렛, 건포도, 사탕, 귤, 햄, 어포
G-2 영양갱, 초콜렛, 건포도, 사탕, 귤, 햄, 땅콩 분류기호 재료
L-1 김치, 오징어젓, 콩볶음
L-2 김치, 창란젓, 무 말랭이
L-3 김치, 명란젓, 마늘 장아찌
L-4 김치, 고추조림, 돼지고기 장조림
2. 식량평가
등산식량이란 간편하고 영양가 좋은 것이 가장 바람직하고 먹기 좋은 것,
\ 즉 식욕이 당기는 것이 바람직스러운 것이다. 그러면 조목조목 반성해 보기로 하겠다.
(아침) 아침에 시간을 줄여야 한다는 생각에 떡국으로 정했다. 인원당 300g을 준비해서 방앗간에서 떡대로 만들었다.
이것을 전 대원의 한 끼 식량으로 개별포장했었다. 날씨가 좋아서 같이 식사를 할 때는 몰랐었는데...
날씨가 안좋아 텐트별로 식사할 때는 불편함이 있었다.
다음부터는 조별포장을 했으면 하는 생각이다. 일본에 계신 규상이 형이 주신 콩나물과 우동을 넣어 먹으니 그것 또한
별미였다.
(점심) 행동식으로 빵을 제과점에서 준비했었다. 산에서 조리해야 한다는 불편함은 없었지만 중량이 제일 많이 나갔다.
9인분의 한끼 중량이 4.5kg이었다. 빵만을 먹을 수 없을 것 같아 건양밀과 상화과 상화밀을 1리터들이 보온병 두개를
준비했었는데 전대원이 먹기에는 부족했었다.
하지만 조금 덜먹고 무게를 조금이라도 줄이고 싶은 생각 뿐이었다. 딱딱한 빵을 먹는 다는 것은 상당한 곤욕이었는데
좀 더 좋은 식량을 찾지 못했다.
(저녁) 아침은 떡국, 점심은 빵을 먹었으니 저녁만이라도 쌀밥을 먹어야 했다.
어쩌면 우리 한국인은 끈적끈적한 쌀밥을 먹고 포만감에 젖어 그 끈기와 오기로 기어오르는지도 모르겠다.시간을
줄이기 위해 모든 국거리를 다시마류로 준비했다.
무게도, 부피도 안성마춤이었다. 밑반찬이 부족해서 식량담당자로서 많이 미안했었는데 어떻게 산에서 그것도 이국 땅에
서 먹고 싶은 만큼 먹을 수 있겠는가 생각해 본다.
다음에 더 간편하고 더욱 우리의 식욕이 당기는 것이 나왔으면 좋겠다.
(밑반찬) 이번 식량에서 조금 부족했었다. 대원들의 불평도 많았고 김치, 깻잎, 젓갈, 쇠고기 부침 등이 인기가 많았다.
(비상식) 산행 중에 먹지 않았고 일본 시내에서 먹었다. (간식) 건빵을 두 사람당 한 봉지씩 준비해서 건빵이 조금씩 남았고
나머지는 풍족하게 먹었다.
특히 영양갱은 간식으로 안성마춤인 것 같다. 스물 네봉지를 준비했었는데 남은 것은 일본 시내에서 좋은 식량이었다.
(기호식) 식후에는 커피와 인삼차 등을 마셔서 좋았고, 행동식으로 마셨던 건양밀과 상화밀도 맛있었는데 막내대원이 타
팀에게서 얻어 마신 꿀맛은 더욱더 좋았다고 한다.
(맺음말) 무사히 산행은 끝났다. 기아상태에서 허덕임없이 경험부족으로 걱정도 했었는데 많이 부족하거나 남거나 상해서
못먹었거나 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가져간 것은 모두다 먹었다.
일본 장비점에 들러보니 알파미와 비상식 등 다른 식량이 많이 판매되고 있었는데 제주도에서 온 팀은 그것을 이용했
다고 한다.
헌데 한국에서 가지고 갈 수 있는 것은 모두 가져가서 먹을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어차피 고생을 각오하고 가는 산행,
거기서 판매되고 있는 것과 우리가 가져간 것이 얼마나 차이가 있겠는가. 여기서 좀더 신중을 기하면 되지 않을까 생각
한다.
의 료 보 고 이현
아마도 모든 등반보고서에서 가장 짧고 간단한 부분이 의료부분인 듯 싶다.
필요한 약품목을 짜좋고 보니 만만치 않았다.
모두 구입하기도 그렇고 모두 얻어내기도 쉽지 않았다.
본교 후문에 계시는 전대의대 OB선배님이신 조석필 선배님께 많은 도움을 받았다. 실제 가지고 나간 것은 품목별로 몇
알씩만 가져갔고 그 적은 양의 의약품 역시 불행히(?)도 거구분 품목 수량 용도 비고 내 복 약 품 아스피린 콘택 600 펜잘
로페린 앰실린 임시론 판크레온 F 부스코판 설파민 2 2 2 2 2 2 1 2 2 해열, 진통제 복합감기약 진통제 지사제 항생제 지혈제
속쓰림, 소화제 복통약 지혈제 외 상 약 품 동상연고 후시딘 연고 테라마이신 연고 안티푸라민 안약 립스틱 파스 3 1 1 3 2 2
다수 동상예방 외상(항생연고) 외상, 찰과상, 습진 소화진통 안질환 치료 입술보호 근육진통 과산화수소 와셀린 거즈 베타딘
반창고 면붕대 1회용 반창고 탈지면 거즈 1 20 1 2 4 4 2 20 상처소독 〃 〃 상처 dirdding 〃 〃 〃 〃 기 타 핀셋 가위 의외용
칼 고무줄 압박붕대 삼각끈 부목 체온계 2 2 1 2 4 3 4 1 소독약재를 바를 때, 소수술시 사용 소수술시 거즈절단, 반창고 절달 소수술용 정맥주사시 골절 다용도 골절시 고정 및 수송 체온측정 6inch, 4inch 의 고스란히 되가져왔다.
의료담당이 동상에 걸려 동상연고 하나를 소비한 것과 몇 알의 지사제, 소화제를 빼면 별로 쓴 약이 없을 정도로 건강한
등반을 했었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얼굴피부를 보호할 만한 크림종류가 준비되지 못해 몇 대원의 볼에 가벼운 동상이 있었지만 귀국 후
자연치유됐다. 3000m 전후에서도 고소증세라고 할 만한 증상은 한번도 나타나지 않았었다. 고소증세 치료제 대용으로 다량
준비해간 진통제를 쓸 기회가 없었음을 대원 모두에게 감사한다. 끝으로 많은 종류의 의약품을 지원해 주신 조석필 선배님과
전대병원에 재직 중이신 선배님들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회 계 보 고 조양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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