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의글쓰기54 ㅡ
오후6시 (에드워드 호퍼와 데이비드 호크니)(사소)
깁스를 하고 여름 한 달을 지낸 이후, 한 두 해가 지날수록 어깨는 점차 액세서리가 돼가고 있었다. 어찌 알게 된 서초구에 있는 외과와 한방 협진병원에서는 초음파로 들여다보더니 뜻밖의 결과를 알려줬다. 한쪽 어깨 근육의 두께가 다른 쪽의 절반 밖에 안된다면서 다친 것과는 상관없는 유전적인 원인일 것이라는 것이었다. 일주일에 한 번, DNA 주사와 약침, 충격파 치료를 받으러 서울로 운전하는 동안, 먼 시야를 바라보며 사색의 시간이 찾아왔다. 전국에서 몰려든 일명 어깨 병원에 그나마 한산한 시간은 문 닫기 한 시간 전, 오후 6시였다.
간호사나 의사선생님들은 친절하고 세심했지만 주사나 침을 맞을 땐 어금니를 꽉 깨물어야 했다. 그런데 어느 날, 옆에 앉은 왜소해 뵈는 70대의 어르신은 그녀를 미소 짓게 했다. 침이 꽂히면, 누군가 들으라는듯 거침없고 우렁찬 외마디 비명으로 도시의 오후에 생기를 불어넣고 있었으니 말이다. 이유는 빼꼼히 치료실에 고개를 내미시는 풍채 좋으신 할머니에게 있어보였다. 할머니는 의사샘에게 할아버지가 아프다고 해도 봐주지 말고, 큼지막한 침으로 발에도 놔주고 무릎에도 여기저기 좀 많이 놔 달라고, 꼭 큰 침이어야 한다고 몇 번이고 주문을 외시며 출입구에 딱 버티고 서있었다. 의사선생님 보다 더 권능 있어보이시는 할머니, 그럴수록 할아버지의 고함에 가까운 비명은 높아져갔다. 사태를 파악한 간호사가 "보호자님!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 하며 할머니를 대기실로 연행해 가는 것으로 정리가 됐다. 그 후 자랑스럽던 할아버지의 신음 소리는 잦아들며 찡그리는 무성 영화로 대체됐다. 간극의 차를 목격한 그녀는 할아버지의 어리광이 귀엽게만 보였다.
치료를 다 끝내고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가던 그녀는 엘베에서 다시 노부부를 마주쳤다.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팔을 넣게 한쪽 카디건을 잡아주고 계셨는데 오누이처럼 다정해 보였다. 그녀가 웃으며, " 할아버지! 할머니가 챙겨주셔서 참 좋으시겠어요" 하자 할아버지는 입이 벙그러지시면서 " 그러엄!. " 하시며 부끄러우신듯 한 손으로 머리카락을 넘기셨고, 할머니는 핑~그르 피어났다. 그녀는 " 그러니까 할머니를 많이 사랑해 주셔야겠어요" 하자 할머니는 반색을 하셨다. 1층에서 내리시면서 " 많이 사랑해주라 잖아요. 호호 호호" 할머니의 애교 섞인 웃음소리가 엘베 문이 열렸다 닫히면서 점점 멀어져 갔다.
밖으로 차를 몰고 나가자 도시는 어두워지고 있었다. 문득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이 떠올랐다. 호퍼는 그림에서 인물의 눈동자를 그리지 않는다. 그리고 결코 서로를 바라보지 않고 외면하게한다. 초점을 감춘 먹먹함으로 다른 곳을 향하는 적막의 시간. 밤의 불빛이나 아침이나, 한낮 그리고 오후의 그림자와 공기감은 담담하고 고독하게 느껴진다.
[Cape Cod Evening]는 사람이 살 것 같지 않은 집 입구에, 부인은 팔짱을 끼고 서 있다. 그 옆에 남자는 90도 각도로 계단에 걸터 앉아 있는데, 시선의 지점이 전혀 다르다. 남자의 어깨와 반팔 메리 야쓰는 구겨져있다. 가을 마당은 무성하고 마른 잡초들만 넘친다. 그 사이에 또다는 곳을 바라보고 서 있는 개 한마리. 그들의 서로 소외된 채 황량한 저녁을 맞고 있는 모습. 어깨 병원에서 할아버지 부부를 만나고 나오면서 다시 그녀는 호퍼의 그림 때문이란 생각이 문득 들었다.
호퍼의 그림은 채도와 명도가 낮은 옛날 필름사진같다. 복고풍 색채감이 온도와 습기를 안고있는데, 정지된 사진처럼 연출된 공효진의 SSG '쓱' 광고 등 패러디로 국내서도 대중화되기도 했다. 평생 호퍼를 응원하고 함께했던 그의 아내는 호퍼가 세상을 떠나자 뉴욕에 있는 휘트니 미술관에 전부 기증함으로써 호퍼의 그림을 지켰고 이듬해 남편을 따라 세상을 떠났다. 그런 호퍼의 그림 366점 중 150점이 오는 4월에 한국에 온다. 그리고 호퍼와는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는 생존작가, 수영장 그림으로 유명한 데이비드 호크니 그림도 3월 말에 DDP로 온다. 호크니의 그림은 고독과 소외를 습도를 날려버린 쨍하고 쌩한 색감으로 표현하고 있다. 빛과 적막, 공기감을 호퍼와 사뭇 다른 느낌으로 경험할 수 있는데 미국 휘트니 미술관의 에드워드 호퍼와, 영국 테이트 미술관의 데이비드 호크니 두 화가의 그림을 비교하며 감상하기에 좋은 기회다.
둘 다 4개월 가량 전시가 지속된다.
드디어 코로나가 끝나가고 있다.
첫댓글 악, 가야 함? 호퍼와 호크니를 직접 볼 수 있다니! 간 김에 연극도 보고 사소님도 만나고? 좋구나, 좋아^^
ㅎ 일정을 잡아보셔요.^^♡
그즈음 서울에 갈 일이 생기면 들러보고 싶네요. ^^
그라시아님! 그때 일행이 없으시다면 저를 콜해주세요. ㅎ 버선발로 뛰어갈게요.
할머니, 할아버지 챙기시느라고 많이 힘드시겠어요. 라고 물었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럼 너무 분란을 조장하는건가? ㅎㅎ
할머니 눈빛은요. '그건 나의 기쁨이다' 였는 걸요.ㅎ
지금은 어깨가 편해지셨을까요..완쾌가 되셨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