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주사>
오래 전부터 여러 차례 가 본 사찰인데, 이번에 들르니 괄목상대해야 할 변화가 하나 있었다. 오래 다녀가지 않은 사이 어느새 대형 미륵불상이 금동으로 옷을 갈아 입은 것이었다. 기억은 무채색에 사각모인데 광배까지 선명하고 밝은 금색으로 화려하게 새로 바뀐 모습은 자꾸 기억을 검토하게 만들었다.
금동불상에서부터 유일 목조탑 국보 팔상전으로 옮겨가면 눈은 더 어지럽다. 태고의 숨결이 머문 목조탑은 역사의 무게로 힘겹다. 우선 숨을 고르기 위해 멀리 속리산부터 바라본다.
속리산 법주사. 속리산의 옛이름은 아홉개의 높은 봉우리 산이어서 구봉산이었다가 신라 때부터 속리산으로 바뀌었다. 세조가 올라 시를 읊었다는 문장대는 3천명이 앉을 만한 바위가 있고, 가마솥만한 구덩이가 있어 그 속에서 물이 흘러나와 세 줄기로 흘러 나리는데 동쪽으로 낙동강, 남쪽으로 금강, 서쪽으로 달천으로 흐른다. 속리산의 최고봉 천황봉(1,058m)에서 관음봉으로 연결되는 능선에 법주사가 있다.
속리산은 봄에는 야생화, 가을에는 단풍이 여느 산처럼 아름다운 데다 노거수로 형성된 소나무 군락이 푸르러서 한국 팔경, 제2의 금강이라고도 한다. 이세보의 시조에서도 일찌감치 장송의 아름다움을 노래했다.
속리산 무한경을 곡곡 봉봉 찾아보니
장송은 낙락 기암이요 간수는 잔잔 두견이라
아마도 호중명산은 예뿐인가 하노라.
속리산이 여러 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지고 장송이 대단한 호서 명산이라 했다. 속리산은 長松 명산이고 보은은 소나무의 고장이다. 최치원은 산은 세속을 떠나지 않는데, 세속이 산을 떠난다고 노래했다. 세속이 떠나온 산이 俗離山이다.
속리산 자락의 법주사는 의외로 평지에 있다. 하늘 닿을 듯한 금동미륵대불과 팔상전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뒤쪽으로 대웅보전에는 비로자나불을 주존으로 석가여래와 노사나불이 협시하고 있다. 대웅보전과 삼존대불은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대웅보전 앞의 원통보전은 보물로 안에는 목조관음보살좌상이 있다. 국보가 하도 많아 보물은 소홀하게 보는 오만한 마음이 생겨날까봐 염려될 정도다.
이외 국보로 64호 석연지, 5호 쌍사자석등이 있다. 55호 팔상전과 함께 3개의 국보가 있다.
보물은 915호 대웅보전, 1360호 삼존대불, 848호 신법천문도병풍, 916호 원통보전, 1361호 목조관음보살좌상, 1413호 철확, 1259호 괘불탱화, 1858호 보은 법주사동종, 1417호 희견보살상, 15호 사천왕석등 외 1360호 소조삼불좌상, 1418호 복천암 수암화상탑, 1418호 복천암조등곡화상탑 등 13개의 보물이 있다.이외 많은 유형문화재가 있으며 팔상전 탑돌이가 무형문화재 103호로 지정되어 있다.
법주사는 2018년 유네스코에 등재된 7개 사찰 중 하나이다. 다른 6곳은 통도사, 부석사, 봉정사, 마곡사, 선암사, 대흥사이다. 법주사는 조계종 제5교구 본사이다.
553년 의신 스님에 의해 창건, 776년 진표 스님 대의 중창을 거쳐 여러 차례 중수를 거듭했다. 조선조 중기에는 60여동의 건물과 70여개의 암자를 거느린 대사찰이었으나 임진왜란으로 불타 1624년에 중창하고, 이후 보수를 거듭하였다.
법주사는 미륵신앙과 관련이 깊다. 진표율사가 금산사에 이어 법주사를 제2도량으로 창건하였기 때문이다. 팔상전과 대웅보전은 마치 금산사 대웅전과 같은 느낌이 나는 것이 미륵신앙과 관련된 공통점에서 유래한 듯하다. 동일한 이름의 사찰이 경북 군위에도 있다.
法住寺는 법이 머무는 절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방문일 : 2020.1.15.
*팔상전. 우리나라 유일한 5층 목조탑으로 720년에 만든 것이 임진왜란 이후 소실되어 사명대가가 주관하여 1624년 복원된 것이다. 벽면에 부처의 일상을 그린 팔상도가 있어 팔상전이다.
일반적으로 한국은 석탑, 일본은 목탑, 중국은 전탑 양식으로 건립된다. 석탑이 대웅전 앞 좌우에 각각 1기씩 배치되나 여기서는 목탑으로 천왕전 바로 앞에 조성되어 대웅전 앞에는 탑이 따로 없다.
*팔상전 내부 모습
* 776년 신라 혜공왕 때 금동미륵대불을 조성하여으나 대원군이 1872년 당백전 화폐주조를 위해 불상을 몰수해 간 것을 여러 차례 중건 끝에 시멘트 불상에서 청동미륵불로, 다시 금동미륵불로 복원하였다. 시멘트 불상은 붕괴 직전이어서 청동불로 복원하였다가 원래 제모습을 찾자는 논의가 일어 다시 금불상으로 복원한 것이다.
2002년 최종 복원 때 황금 30Kg을 불자 3만여명의 시주로 충당하여 조성하여 황금불상이 되었다.
처음 들어서서 화려한 불상이 낯설었던 것이 이전 시멘트나 청동불상을 기억하고 있어서였던 거 같다. 한국의 역사만큼이나 파란만장한 과정을 거쳐 여기까지 온 불상이다. 미륵부처님 덕분에 대한민국의 장래가 더 밝아질 거 같은 기분이다.
대형 불상아래는 불자들의 개인적 염원이 담긴 불상들이 안치되어 있다. 이곳에서 참배할 수 있다.
석조희견보살상. 보물 1417호로 지정되었다. 법화경을 공양하기 위해 몸을 불태워 소신공양을 올렸다는 보살이다. 얼굴 부분 마멸이 심하다. 720년 전후 작품으로 추정된다.
대웅보전. 보물 915호. 무량사 극락전, 화엄사 각황전과 함께 3대 불전이다. 미륵불을 모시는 금산사의 미륵전 양식과 유사하다.
신라 553년 의신조사 처음 건립하였으나 임란 시 소실되어 1624년 벽암대사가 다시 지은 것이다.
대웅전 안의 삼존대불, 보룸 1360호. 비로자나불이 주존, 석가여래와 노사나불이 협시한 삼신불이다. 1624년 조성한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나라 소조 불상 중 가장 큰 규모다.
*사천왕석등. 보물 15호. 사천왕이 새겨져 있다. 팔각 석등의 대표적 양식. 사천왕상은 수미산을 중심으로 사방을 지키는 수호신 동 지국천왕, 서 광목천왕, 남 증장천왕, 북 다문천왕 등이다.
*석연지 국보 제 64호. 연꽃 모양이어서 석연지라 한다.
*철확, 보물 제1413호. 쇠로만든 솥으로 3천명분의 장국을 끓였다고 한다.
*마애여해의좌상. 보물 216호. 고려 초기의 대표적 마애불. 법주사의 성격을 알려주는 미륵불상. 능인전 옆 추래암 암벽에 새져져 있다.
*보은 법주사 석조. 충북 유형문화재 70호.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석조로 쌀 80가마 부피. 물을 담아주는 수조로 추정, 통일신라시대 작품이다.
*범종. 보물 1858호. 1636년 조성된 전형적인 한국 전통양식의 범종.
범종각 앞과 뒤.
*사천왕문. 국내에서 규모가 가장 크다.
*당간지주. 고려 1006년 건립. 조선 고종 1866년에 대원군이 사찰의 금속물을 수거할 때 파괴되었다가 순종 때 복구되었다.
당간은 찰, 찰주 등으로 불리고 사찰이라 함은 찰이 세워져 있기 때문이라 한다. 이전에는 종파를 표시하기 위해 당간 위에 특정 색깔 깃발을 걸기도 하였다. 당간은 솟대처럼 신성구역 표시의 기능을 하기도 한다.
*원통보전. 보물 916호. 정사각형 1층 건물. 지붕은 중앙에서 4면으로 똑같이 경사진 삿모지붕. 건축사 연구의 중요자료이다. 안에는 보물 1361호 목조관음보살좌상이 있다.
쌍자석등 국보 5호, 팔각석등에 두 마리의 사자가 앞발을 높이 치켜들고 있다.
입구 일주문. 보통 일주문에는 'OO산 OO사'라는 현판이 걸린 절이 많은데, 이곳은 '호서제일가람'이라고 되어 있다. 호서 지방 제일의 사찰이라는 뜻이다. 명실상부하다고 할 수 있다. 호서는 충북 제천 의림지의 서쪽으로 충청남북도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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