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천년의 역사를 유물로 확인할 수 있는 신라역사관
빗살무늬토기 (신석기시대)
빗으로 누르거나 그은것 같은 무늬를 갖고 있으며, 일반적으로 바닥이 뾰족한 모양 이다
토기는 인간이 불과 흙을 이용해서 만든 최초의 발명품으로
토기를 사용하면서 음식물의 가공법이 발달하고 음식물의 종류도 많아졌다
토우장식 항아리 (국보195호/ 신라 5세기/ 높이 34Cm)
신라금을 연주하는 임신한 여인, 개구리 뒷다리를 물고 있는 뱀, 거북이,오리 등을 장식했다.
다산(多産)과 풍요(豊饒)를 기원하는 조형물로 신라인의 생활과 정신세계를 엿볼 수 있다
토우의 특징은 불필요한 부분은 과감히 생략하고, 나타내고자 하는 부위는 강조해서 표현한다
여자상은 남자상보다 크게 표현하여 다산과 풍요를 상징하는 여성의 능력을 나타냈다.
짚신모양 토기 (5세기, 높이 14Cm)
굽다리 위에 짚신을 얹고 짚신 속에 다시 입이 큰 잔을 올려놓은 모습이다. 이 짚신을 통해서
신라인들이 신었던 짚신 모양이 근래까지 사용된 짚신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다
토우(土偶)는 사람, 동물, 일상 생활에서 볼 수 있는 물건을 본떠 만든 작은 흙인형이다
주로 굽다리 접시의 뚜껑이나, 목항아리의 목 부분에 붙어 있는 것으로 대략 5Cm 정도의 크기로
천오백년 전 풍요와 다산을 기원하는 신라인들의 정신세계를 표현해주고 있다
토우는 사람, 동물, 생활용구 등을 흙으로 빚어 형상화한 것으로 토기에 장식되며,
토용은 주로 무덤의 껴묻거리용으로 만들어졌는데
신라인의 정신세계와 생활상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경주 황성동 돌방무덤에서 발굴된 신라 여인상 (통일신라 7세기/ 높이 16.5Cm)
초생달 같은 가는 눈과 오뚝 솟은 코가 인상적이며, 오른손은 아래로 내린채 병을 들고 있고
왼손은 소맷자락에 가린채 웃음을 머금은 입을 살짝 가리고 있다
신라 여인의 옷자락과 수줍은 미소가 천년을 넘어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다
남자상 (경주 황성동 / 7세기) 토용
무언가를 꿰뚫어보는 듯한 가는 눈매, 옆으로 뻗친 수염이 다소 이국적인 느낌을 준다
현악기를 타는 사람과 합창단 (경주지역/ 5~6세기) 토용들
천마총 금관 (국보 제188호/ 신라 6세기/ 높이 32.5Cm/ 무게 1262.6g)
앞면에 출자모양의 맞가지 세움장식 3줄이 있고, 뒤에는 사슴뿔모양의 엊가지 세움장식 2줄이 있다
천마총 금허리띠 (신라 6세기/ 길이 125Cm/ 무게 1382.3g)
고대사회에서 허리띠의 모양과 재질은 그 사람의 지위나 신분을 나타내는 중요한 척도의 하나였다
허리띠에는 약통, 물고기, 숫돌, 족집게 등 일상생활에 필요한 여러가지 드리개들이 달려 있다
신라의 귀걸이는 중심고리의 굵기에 따라 굵은 고리와 가는 고리로 구분된다
한 쌍임에도 불구하고 제작기법이나 금속의 성분(금+은)에 차이를 보이는 경우가 있다
금굽다리접시
얼굴무늬 수막새
신라사찰 영묘사터에서 출토 되었으며 일본인이 보관해 오다가 1972년 기증했다
해맑은 미소를 머금고 있으며 신라인의 미소 라 부르기도 한다
이차돈 순교비 (통일신라/ 높이 106Cm/ 백률사)
신라에 불교를 공인하기 위해 순교한 이차돈을 기념하기 위하여 세운 비로
6각 기둥인데 한면에는 이차돈의 목을 자르니 흰 피가 솟아 오르고, 하늘에서는
꽃비가 내리며 땅이 진동하는 순교장면이 돋을 새김으로 표현되어 있다.
5면에는 글자가 새겨져 있으나 마멸이 심하여 읽기 어렵다.
임신서기석 (보물 제1411호/ 높이 32Cm/ 1934년 경주 석장동에서 발견)
임신년에 화랑으로 보이는 청년 두 사람이 공부와 인격도야를 해서 나라가 어려울때 충성할것을
맹세하고, 서약한다는 내용이 있어 임신서기석(壬申誓記石) 이라 이름 붙여졌다
☞ 임신년은 진흥왕 13년(552) 이나 진평왕 34년(612) 으로 추정하고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