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찾은 인생의 전환점
화가 박해룡 여주미술관 관장
글 : 이문자(전시가이드 편집장)
인생에서 가장 기쁘고 보람된 것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할 때가 아닌가 한다. 중학교 시절부터 박해룡 관장의 그림 실력을 알아봐 준 교사의 미술대학 권유에도 불구하고 미술하는 사람들은 환쟁이라고 하며 먹고살기 힘든 직업이라고 생각했으며 그 당시 유명한 화가인데도 간판을 그리면서 먹고 사는 열악한 생활을 보며 박해룡 관장은 화가가 꿈이었던 것을 접고 약대를 진학해 직장생활을 하였고, 고려제약까지 설립하여 사업에도 성공의 신화를 이루었지만 그림에 대한 애정은 늘 그의 가슴속에 남아 있었다. 제약회사에 들어가서도 미술에 대한 꿈을 버리지 못하고 많은 전시장을 찾아다니며 전시를 관람하고, 박봉에도 불구하고 돈만 생기면 그림을 사들였다. 특히 가난한 젊은 작가들의 그림을 사줌으로써 용기를 북돋아 주었고, 맘에 드는 그림이 있으면 돈을 아끼지 않고 사 모은 것만 해도 350여 점으로 그것이 박해룡 관장의 취미요 낙이었던 것이다. 화가가 꿈이었던 그가 그림을 그리는 대신 그림을 사모으는 것으로 대신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사람들을 접하다 보면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장도, 권력도, 부도 버리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아 진로를 바꾸는 경우를 보게 된다. 나이 70이 되면서 경영에서 손을 떼고 결국 붓을 잡게 된 것이다. 뭐든지 하면 열정을 가지고 한다는 박해룡 관장은 팔순을 넘긴 나이이지만 그림을 그릴 땐 최선을 다해 그린다. 새벽 4시면 일어나 붓을 들고 3시간씩 작업을 하고 주말에는 10시간씩 작업에 임했다. 그렇게 그림을 시작하면서 스스로 기법을 터득하며 색채, 물감, 기교 등을 알아갔다. 그가 그림을 시작하면서 지도교사를 두지 않았던 것도, 비록 오랜 걸릴지라도 자신만의 독특한 기법으로 그림을 터득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재능은 타고 나는 것인가? 그렇게 열정으로 그린 그림이 350여 점이 되었다. 총 700여 점의 그림들을 회사 창고에 보관해 놓았고 서로 그림이 뒤섞여 좋은 그림이 어디에 놓여있는지도 모르고 지내다 보니 맘이 불편하고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 정리를 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여주에 있는 땅에 미술관을 건립해서, 이렇게 좋은 그림들을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실행에 옮기게 되었고 사비를 들여 만든 오늘의 여주미술관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여주 부영아파트쪽에서 여주미술관을 표시하는 깃발을 따라 올가가다 보면 정겨운 풍경의 여주미술관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다. 미술관을 들어서는 입구부터 푸른 잔디와 함께 잘 가꿔진 조경들 사이로 조각들이 보이고 100년된 백송과, 1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탱자나무, 라일락 등 조경과 조각 작품들만 봐도 어마어마한 비용을 연상케한다. 미술관이 완성되기까지 예상외의 금액이 추가로 지출되기도 하였지만, 조경부분에 있어서는 직접관리 감독을 하면서 아름다운 정원으로 꾸며놓은 것이다.
지친 마음을 쉴 수 있는 미술관, 정원이 있는 미술관, 진정한 문화가 있는 미술관을 만들고 싶다는 박해룡 관장은 아직까지 우리나라의 미술(문화)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에 대해 안타깝다고 하였다. 블란서의 경우 미술관을 짓는다고 하면 동네에서 잔치를 벌이고 서로가 나서서 무료로 봉사해 주는 데 반해 우리나라는 미술관에 대한 정부의 협조가 미진하다 보니 화가들의 열악한 환경은 개선되지 않고 있는 실정으로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고, 후대가 열정을 가지고 운영할 수 있는 정책적인 관심을 가져 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나타내었다.
전시장은 3개의 전시실로 나뉘어져 작품이 전시되고 있으며, 미술관 일부에 박해룡 작가의 ‘말’ 작품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인간 역사에서 빠지지 않는 것이 전쟁인데 그 전쟁에서 수많은 말들이 이유없이 희생당하는 것에 대한 연민이 컸다”는 작가는 자신에게 가장 아름다운 동물은 ‘말’이라고 했다. 그는 “말의 눈이 아름답고, 탱크같은 몸을 지탱하는 다리가 아름답고, 목의 곡선미가 아름다우며 힘차게 뛰는 속도감이 아름답다”고 하였다. 그런 말을 그리기 위해 제주도를 자주 찾고 있으며 자신이 좋아하는 ‘말’이 작품의 주제가 된 것이라 했다.
또한 박해룡 관장은 2013년 인사아트센터에서 열린 첫 개인전 이래로 자신의 작업을 “삶에 물들이기”라고 정의하고, “삶에 물들이기”라는 이름으로 전시를 개최하고 책을 출판하기도 하였다. “삶에 물들이기”는 그림 그리는 행위를 삶에 물들인다(color)는 문자 그대로의 의미도 있지만 중의적으로 시대적, 경제적 어려움으로 꿈을 접어야 했던 자신이 은퇴 뒤 비로소 염원했던 꿈을 이루게 되면서 “마른 가슴에 물이 들기 시작했다”라는 뜻이 담겨있다.
박해룡 관장이 화가가 되기까지, 또한 미술관을 건립하기까지 만만치 않은 미술관 건립자금 때문에 고심도 많이 했지만 아내의 적극적인 협조와 지원이 있었으며, 곁에서 묵묵히 지켜봐 준 아내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5월 개관과 함께 진행한 특별전 “프랑스 현대 예술가들의 표현의 환희”, 그리고 “삶에 물들이기 전”이 9월 29일까지 진행된다. 가족과, 연인과, 친구와 함께 정원이 있는 여주미술관을 찾아 힐링을 해보는 것은 어떨지...
(T.031-884-88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