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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명[tri-vidya(산스크리트어), ti-vijjā(팔리어)]은 붓다나 아라한이 가지는 숙명지명(宿命智明)·천안지명(天眼智明)·누진지명(漏盡智明)을 말한다. 지명(智明)이란 vindati(√vij, to know)에서 파생된 명사로 ‘꿰뚫어 앎’이라는 의미다. 각각 전생을 보고, 내생을 보고, 현생에서 번뇌를 모두 끊을 수 있는 지혜이다. 삼명은 천안지·숙명지·누진지라고 부르며, 숙명통(宿命通)·천안통(天眼通)·누진통(漏盡通)이라고도 한다. ① 천안지명: 자기나 다른 사람의 미래 세상에 대한 일을 분명하게 아는 지혜를 말한다. 중생들이 죽고 태어나고, 천박하고 고상하고, 잘생기고 못생기고, 좋은 곳에 가고 나쁜 곳에 가는 것을 본다. ② 숙명지명: 자기나 다른 사람의 지난 생의 일생이 어떠한 것인가를 모두 다 아는 지혜를 말한다. 한 생, 두 생, … 이처럼 한량없는 전생의 갖가지 모습들을 그 특색과 더불어 상세하게 기억할 수 있다. ③ 누진지명: 번뇌를 끊고 생사의 속박을 벗어나 열반의 이치를 깨달아 얻는[證得] 지혜를 말한다. 번뇌가 멸진하여 번뇌가 없는 심해탈(心解脫)과 혜해탈(慧解脫)을 지금 여기에서 지혜로 실현하고 구족하여 머문다. 불교에서는 세 번째 누진지가 가장 중요시 된다. 불교는 괴로움의 소멸을 목표로 삼고 있기 때문에 최고의 신통은 괴로움을 소멸시키는 능력으로 괴로움에서 벗어난 상태에 이르게 하는 누진지이다. 초기 불교 경전에 의하면 삼명(三明)으로 붓다는 정각을 성취하였다. 순차적으로 세 가지 지명을 증득하고 정각을 이루는데, 초야에 자신의 전생을 기억하는 지혜인 숙명지를, 중야에 중생의 생사를 볼 수 있는 천안지를, 후야에 번뇌의 소멸을 이룰 수 있는 누진지를 성취하여 성불하였다. 삼명은 사선(四禪)에 의하여 발생한다. 사선을 순차적으로 증득한 뒤, 마지막 제4선에서 삼명을 성취하게 된다. 사선은 선정(禪定)·삼매(三昧)를 의미하는 것으로 사선에 의해 맑아진 마음 상태에서 세 가지 지혜를 얻고 성불하게 되는 것이다. / 한국민족문화대박과사전 에서 |
사람들의 시선을 잡으려면 새로운 맛이 있어야만 하지요.
세계인의 시선을 사로잡을 수 있는 드라마 요소로 자리 잡은 것 가운데 시간의 벽을 깬 것이 있습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시간은 한 방향으로만 흐르는 거역할 수 없는 흐름으로 순리라 합니다.
그런 것을 역으로 흐를 뿐 아니라 순과 역을 섞어서 혼란하게 만들 만큼 작가들의 상상력은 끝 모를 기찻길을 달리듯..
현실과 과거와 미래를 오가도록 시간을 휘저어놓고 그 안에 기존의 드라마 묘미를 맛있게 담아 상에 올리고 있다는 겁니다.
이게 현실에서 가능하냐구요?.
불가능하다면 작가들은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겠습니까?.
물론 우리 마음인 생각 속에서.. 작가들 상상 속에서 가능한 일이지만..^^
불교에서 말하는 삼명통을 아시나요?.
숙명통, 천안통, 누진통 말입니다.
명상과 6년 고행을 한 석가족 수행자 고타마는 그것으로 지금 여기서 고를 멸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자..
고행림을 벗어나 보리수 아래에서 '새로운 눈[법안]'으로 수행을 하게 됩니다.
즉 지금까지는 내가 일체 괴로움을 벗어나려고.. 내가 열반에 이르려 6년 고행까지 마다하지 않고 수행을 했는데..
지금부터는 괴로움을 벗어나려는 '나'가 있는가? 하는 수행을 하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하여 나는 어디서 시작되었는지.. 보려 자신의 과거를 낱낱이 보기 시작합니다. 방법은?.
인과법에서 현재의 자신 모습을 과로 보며, 현재 과가 생기는 원인인 과거의 행을 바라보는 것이죠.
그렇게 전, 전, 전,.. 전생을 돌아가 보아도 끝없는 전생이 있을 뿐.. 처음 시작이 보이지 않습니다.
이렇게 전생을 보는 인과법으로 전생을 보는 능력을 숙명통이라 하는겁니다.
마찬가지로 이제는 현재 행을 보면서 그 결과인 미래 모습을 보는 신통력을 일으켜 보니.. 미래의 나는 세세생생 이어지고 있을 뿐 그 또한 끝을 볼 수 없음을 알게 되지요. 이렇듯 인과법으로 미래 모습을 보는 능력을 천안통이라 하죠.
불교에서 말하는 과거를 보는 신통력인 숙명통이나 미래를 보는 천안통은 어느 날 별안간 생기는 슈퍼 파워가 아니라..
수행력의 결과로.. 원인과 그 결과라는 인과법을 세밀히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의 연장으로 과거와 미래를 보는 파워입니다.
<인과경>에는 '과거를 알고 싶으면 현재 모습을 보고, 미래를 알고 싶으면 현재 행을 보아라' 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과거의 행이 현재 모습을 낳고, 지금 행이 미래 모습을 결정한다는 겁니다.
나의 미래는 물론 국가 미래 역시 숙명이나 우연이 아니라는 겁니다.
삼세양중인과설[삼세설]이란 12연기법을 과거, 현재, 미래 3세 모습과 행으로 설명하는 것이죠.
석가세존 역시 12연기법을 삼세설로 설하셨구요.
해서 12연기법을 삼세양중인과설이라고 하는 것처럼 삼세설은 12연기법처럼 이해되고 있지요.
<심경>을 보면 무무명 무무명진 내지 무노사 무노사진이라 했습니다. 그 뜻은
무명이 없고, 무명이 다함도 없으며, 노사가 없고 노사가 다함도 없다 하는 겁니다.
12연기법에서 무명과 노사가 다하면 부처를 이룬다고 주장했는데..
공에서 보면 그런 일은 일어날 수 없다는 거지요.
달리말해 자아가 있는 한 과거와 미래는 끝이 없다는 것입니다.
삼명통의 누진통은 바로 자아가 없어야만 일체 괴로움이 없어질 수 있음을 보아.. 자아를 멸한 상태입니다.
과연! 자아를 멸하니 일체 괴로움을 벗어난 누진통을 얻게 된 것입니다.
삼명통이라 하나..
숙명통과 천안통은 나에게 생긴 신통력이요,
누진통은 나를 멸하니 나에게 있던 일체 괴로움을 멸하는 신통력이라는 지점입니다.
이제 보아시나요..
숙명통과 천안통은 나에게 생긴 슈퍼 파워요,
누진통은 무아에서 생긴 결과로, 무아를 깨친 슈퍼 파워라는 게..
해서 더 이상 위가 없는 숙명통과 천안통이 열려도 결코 일체 괴로움을 벗어날 수 없는데..
<심경>이 나올 당시 상좌부는 일체 법은 존재한다는 주장을 하며 무아를 강조하는데..
일체를 존재로 알면서 존재를 바탕으로 생기는 나는 없다는 것은 거의 모순입니다.
무명을 다 없앤다거나 노사를 다 없앤다.. 무무명진 무노사진.. 는 것은 말일뿐 현실에서는 임파시블이라 하는 것이죠.
하여 반야부는 관세음보살[관자재보살]은 연꽃처럼 진흙탕물 속에 자라지만 진흙탕물에 물들지 않듯이..
생멸이 아닌 공에 머물며 행한다고 하게 됩니다.
그런데 근본불교인 석가세존께서 가르친 12연기법은 유전문과 환멸문인데..
삼세양중인과설에는 환멸문은 퇴화된 몸의 맹장 정도 취급받고 있지요. 잘 다루지 않아요.
그런데 12연기법에서 우리 삶은 유전문이 틀림없지만,
생사를 멸하고 열반에 이르려면 환멸문을 통해서입니다.
삼세양중인과설만 알아서는 어림도 없다는 거지요.
그런데 <심경>은 상좌부의 3세양중인과설인 12연기법을 부정하고 있을 뿐..
왜 삼세설이 부족한지 설명이 없지요.().
<잡. 287. 성읍경>을 보면..
287. 성읍경(城邑經)
1. 그 때 세존께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전생에 아직 정각을 이루지 못하였을 때를 기억하고 있다. 그 때 나는 혼자서 어느 고요한 곳에서 골똘히 정밀하게 선정(禪定, 4선정 사마타)에 들어 사유(思惟, 위빠사나)하다가 이렇게 생각하였다."
2. '어떤 법이 있기 때문에 늙음과 죽음이 있으며, 어떤 법을 인연하기 때문에 늙음과 죽음이 있는 것일까?'
곧 바르게 사유하여 '태어남이 있기 때문에 늙음과 죽음이 있고, 태어남을 인연하기 때문에 늙음과 죽음이 있다.
이와 같이 존재(有) · 취함(取) · 애욕(愛) · 느낌(受) · 접촉(觸) · 6입처(六入處)도 그와 같으며,
명색에 대해서도 어떤 법이 있기 때문에 명색이 있으며, 어떤 법을 인연하기 때문에 명색이 있는 것일까?' 하고 사실 그대로의 빈틈없고 한결같음을 일으켰다. 곧 바르게 사유하자 '식이 있기 때문에 명색이 있으며, 식을 인연하기 때문에 명색이 있다'는 사실 그대로의 빈틈없고 한결같음이 생겼다.
3. 내가 이렇게 사유했을 때, 식을 한계로 돌아오게 되고 그것을 넘어설 수가 없었으니, 이른바
식을 인연하여 명색이 있고, 명색을 인연하여 6입처가 있으며, 6입처를 인연하여 접촉이 있고, 접촉을 인연하여 느낌이 있으며, 느낌을 인연하여 애욕이 있고, 애욕을 인연하여 취함이 있으며, 취함을 인연하여 존재가 있고, 존재를 인연하여 태어남이 있으며, 태어남을 인연하여 늙음·병듦·죽음과 근심·슬픔·번민·괴로움이 있다. 이와 같이 이렇게 하여 순전한 괴로움뿐인 큰 무더기가 모였다. (純大苦聚集)
4. 이 때 나는 이렇게 생각하였다.
'어떤 법이 없기 때문에 늙음과 죽음이 없으며, 어떤 법이 소멸하기 때문에 늙음과 죽음이 소멸하는 것일까?'
곧 바르게 사유하여 '태어남이 없기 때문에 늙음과 죽음이 없고, 태어남이 소멸하기 때문에 늙음과 죽음이 소멸한다'고 사실 그대로의 빈틈없고 한결같음을 일으켰다."
이와 같이 태어남·존재·취함·애욕·느낌·접촉·6입처·명색·식·행에 대해서도 자세히 말씀하셨다.
5. "나는 다시 이와 같이 생각하였다.
'어떤 법이 없기 때문에 행이 없으며, 어떤 법이 소멸하기 때문에 행이 소멸하는 것일까?'
곧 바르게 사유하여
'무명이 없기 때문에 행이 없고, 무명이 소멸하기 때문에 행이 소멸하며,
행이 소멸하기 때문에 식이 소멸하고, 식이 소멸하기 때문에 명색이 소멸하며,
명색이 소멸하기 때문에 6입처가 소멸하고, 6입처가 소멸하기 때문에 감촉이 소멸하며,
감촉이 소멸하기 때문에 느낌이 소멸하고, 느낌이 소멸하기 때문에 애욕이 소멸하며,
애욕이 소멸하기 때문에 취함이 소멸하고, 취함이 소멸하기 때문에 존재가 소멸하며,
존재가 소멸하기 때문에 태어남이 소멸하고, 태어남이 소멸하기 때문에 늙음·병듦·죽음과 근심·슬픔·번민·괴로움이 소멸한다.
이와 같이 이렇게 하여 순전한 괴로움뿐인 큰 무더기가 소멸한다'고
사실 그대로 빈틈없고 한결같이 하였다.
6. 나는 그 때 이렇게 생각하였다.
'나는 옛 선인(仙人)의 길과 옛 선인의 지름길과 옛 선인의 길의 자취를 얻었다. 옛 선인은 이 자취를 좇아갔으니 나도 이제 따라가자.'
... ( 중 략)...
8. 이제 나도 그와 같이 옛 선인의 길, 옛 선인의 지름길, 옛 선인의 자취, 옛 선인이 갔던 곳을 얻었고, 나도 그 길을 따라가게 되었다. 그것은 8성도(聖道)를 일컫는 말이니,
즉 정견·정사유·정어·정업·정명·정정진·정념·정정이 그것이니라.
9. 나는 그 길을 따라 늙음·병듦·죽음[老病死]과 늙음·병듦·죽음의 발생[老病死集]과·늙음·병듦·죽음의 소멸[老病死滅]과 늙음·병듦·죽음의 소멸에 이르는 길[老病死滅道跡]을 보았다.
또 태어남·존재·취함·애욕·접촉·6입처·명색·식도 마찬가지며,
행과 행의 발생, 행의 소멸, 행의 소멸에 이르는 길까지도 다 보았다.
10. 나는 이 법을 스스로 알고 스스로 깨달아 등정각(等正覺)을 이루었고,
비구·비구니·우바새·우바이 및 다른 외도의 사문 바라문과 재가 출가자들을 위해 설법하였으며,
그 여러 사부대중(四部大衆)들은 법을 듣고는 바로 따르고 믿고 즐거워하면서 법의 훌륭함을 알았다.
그래서 범행(梵行)이 더하고 넓어져 많은 유익함을 주기 위해 열어 보이고 나타내 드날렸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여러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287경>은 12연기법의 유전문과 환멸문, 8정도 그리고 4성제가 어떻게 하모니를 이루며 하나인 듯 다른 것으로 관찰되는 지를 보여주니..
12연기법의 환멸문인 4성제의 고멸과 고멸도를
8정도를 통해 성취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잡.287경>은 12연기법을 어떻게 발견하는지.. 잘 보여주는 소중한 경입니다.().
"환멸문"..
유전문과 환멸문의 차이를 새롭게 말하면..
유전문은 존재 세계요, 환멸문은 마음 세계인 법 세계입니다.().
유전문에서 최고 깨침은 자아를 통한 숙명통과 천안통이요, 환멸문은 자아를 멸한 누진통입니다.
마음 세계인 법 세계나 누진통 세계는 우리 손이 닿지 않는 높은 가지 위에 열린 잘 익은 감일 수 있으니..
냉정히 말하면.. 지금 여기서는 별 소용없는 세계처럼 여길 수 있어요.
그렇기는 하지만 그런 세계가 있음을 알고 언젠가 거기에 이를 것임을 잊지 않는 게 불자의 길 아닌가요.
아니.. 성불하세요()^^. 하는 말을 잊지 않고 있다면.. 당연한 게지요.
누군가 묻습니다, 당신은 왜 지금 여기서 보살행을 하고 계십니까?.
하고 물으면 무엇이라고 답하실 겁니까..
사홍서원에 나오듯 보살행을 실천하는 이유는 불도를 다 이루려는 것[성불]이죠.
성불하면 무엇이 좋은데요? 하고 또 물으면?.
모든 괴로움을 여의고 자유와 평화와 평안에 머물게 됩니다. 하고 답하실 것 같은데..
그것이 바로 누진통 세계요, 여기서 보살행을 실천하는 이유요 목적으로
대승불교의 세계가 됩니다.().
화엄 세계..
법화 세계..
대승불교에서 바라보는 미래 세계입니다.
대승불교는 지금 여기라는 존재 세계와 마음이라는 법 세계 모두를 말하듯..
화엄과 법화 세계는 존재 세계와 법 세계 모두에 펼쳐지는 세계가 아닐지요..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지 궁금하지만..
화염 세계가 법 세계임을 알려면 무아를 깊이 이해해야만 할 것인데..
무아와 비아의 차이를 아시는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