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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우역사문화공원에서 만나는 중랑망우공간은 방문자센터로 기획전시실과 카페, 전망대 등을 갖추고 있다. 망우산 자락이 내려다보이는 언덕배기의 경사면을 이용해 낮고 길게 뻗어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2층은 120m 길이의 긴 테라스가 전망대 역할을 하고 있다. 가까이는 망우산 자락 묘지들과 능선을 보고, 멀리는 남산부터 불암산까지 바라볼 수 있다.
망우리 이야기가 있는 망우리공원 인물학길 ‘사잇길‘ 그리고 사색의 길의 시작점이다. 유명과 무명을 달리했던 사람들이 어깨를 나란히 하며 잠들어 있는 망우묘지공원. 고즈넉한 길을 걸으며 이들의 묘소를 둘러보는 것도 ‘망우산 사색의 길’만의 특별함 일 것이다.
이 길은 망우리공원의 자연 조망 그리고 묘지 속의 사색과, 그 어느 때 보다도 격동적인 근현대사를 살다간 유명인사 50여명과 서민의 이야기를 비명을 통해 체험할 수 있는 코스로 조성되었다.
이처럼 복합적인 인문학 공간은 세계 어느 곳에서도 찾기 어렵다. “이곳은 선진 대한민국의 뿌리를 내리고 꽃씨를 뿌리신 근현대 각 분야의 선구자와 서민이 한데 모여 계신 성지이다. 경건한 마음으로 어제와 오늘의 사이 삶과 죽음의 사이를 걸어가며 깨달음을 얻어 즐거이 ’망우‘ 하시 바랍니다” 라는 안내문과 함께 애국지사 유관순, 심학병, 김봉성 등, 문화예술인 강소천, 길말봉, 권진규, 김상용, 사회인사 김호직, 지석영, 오긍선 등의 묘지를 만날 수 있다.
우측 길로 서울둘레길을 따라 걷는다. 터널 숲길을 따라 수락산과 불암산 코스와는 달리 여유로운 발걸음이 된다. 예전보다 휴식공간이 많이 보인다.
박인환 선생의 시비다. 박인환 시인은 강원 인제 출생. 1946년 시 '거리'를 국제신보에 발표하며 창작 활동을 시작했다. 남풍, 지하실 등을 발표하는 한편 아메리카 영화시론을 비롯한 많은 영화평을 썼다. 1949년에 김경린·김수영 등과 함께 합동시집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을 간행하면서 모더니즘의 대열에 동참하였다. 주요 작품으로는 세월이 가면, 목마와 숙녀 등이 있다.
이어 독립운동가 서동일 선생은 남형우 배천택 등과 북경성 마사묘에서 무언실행을 행동지침으로 일제 앞잡이를 처단하는 다물단을 조직하고 독립운동자금을 모집하였다. 1923년 귀국 경북일대에서 군자금을 모집하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독립운동가인 오재영 선생의 연보비다. '강도 일본의 통치를 타도하고 우리생활에 불합리한 일제 제도를 개조하여 인류로써 인류를 압박치 못하며 사회로써 사회를 박살치 못하는 이상적 조선을 건설할 지니라' '의열단 선언' 중에서
작가 최학송 문학비다. 함북 성진 태생인 서해는 일제하 만주와 한반도르 전전하며 곤궁하게 살다 서울서 숨을 거두었다고 한다. 그는 하층민의 현실적인 삶을 반영학 소설 ‘고국’, ‘탈출기’, ‘해돋이’, ‘홍염’, 등의 문제작을 남겼다고 한다.
중랑 전망대다. 휘둘러보는 조망이 뛰어난 곳이다. 시계방향으로 서울둘레길 8코스가 지나는 북한산과 도봉산, 그리고 1코스가 지나는 수락산과 불암산이 파노라마를 연출하고 있다.
예전과 달리 화장실도 새롭게 들어서 있다. 사색의 길 삼거리다. 그리고 망우(산) 삼거리 북카페 쉼터다. 잠시 쉬면서 힐링할 수 있는 장소다. 특히 북카페 쉼터 아래에 자리하고 있는 치유의 숲은 내려다보기만 해도 힐링이 된다.
이제 깔딱고개 쉼터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산신제단이다. 면목동 남촌마을(응달말)의 산신제를 지내는 곳이라고 한다. 독립운동가 서광조 선생 묘비도 보인다.
용마산구간으로 접어든다. 용마산(348m)은 옛날 산 아래 어떤 집에 장사의 기상을 지닌 아이가 태어나자 역적으로 몰릴 것을 걱정한 부모가 아이를 죽여 묻었다. 그러자 용마봉에서 용마가 나와 다른 곳으로 가 버렸다. 그 후로 이 산을 용마산이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전설이 전해 오는 산이다.
4코스 종점인 스탬프 거치대가 있는 깔딱고개 쉼터에 도착한다. 이제 결정만 남아있다. 여기서 끝을 낸다면 하산길이 25분 정도 다음에 5코스를 시작하려면 30 ~ 40분이 걸리는 시간이 조금은 아깝다.
만장일치로 갈딱고개 570계단을 오르기로 했다. 만장일치라고 해야 두 명뿐이지만, 깔딱고개 570계단이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