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카페의 모든 게시물은 복사ㆍ절취(캡쳐 포함)ㆍ이동이 엄격히 금지되어 있습니다. 아울러 게시물의 내용은 필자의 판단에 따라 언제라도 수정ㆍ보완ㆍ변경ㆍ삭제될 수 있음을 알려 드립니다.>
일러두기: 이 시리즈는 반남박씨 족보(세보)와 씨족사(氏族史)에 대해 알고 싶어하는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한 것입니다. 글의 내용과 관련하여 의문이 있으면 언제라도 아래 댓글을 이용하시기 바라며,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성심을 다해 답변할 것을 약속합니다.
반남박씨 씨족 이야기 1 부록:
반남박씨의 '시조(始祖)'?
우리는 앞서 <반남박씨의 기원>에서 현전(現傳)하는 반남박씨 최고(最古)의 문헌 자료는 밀직공 박수(朴秀: 1296~ ?)의 계축호구(癸丑戶口)(고려 공민왕 22년, 서기 1373년)라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그 호구에 호주 박수의 본관(관적ㆍ관향)이 반남(潘南)이고, 그의 증조가 호장(戶長)을 지낸 박응주(朴應珠)로 기록되어 있으니 이 땅에서 반남박씨로 보이는 최초(또는 최상위)의 인물은 호장공 박응주가 된다. 그렇다면, 호장공이 반남박씨의 '시조(始祖)'가 되는가?
시조란 무슨 의미인가?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에는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한 겨레나 가계의 맨 처음이 되는 조상. ≒비조." [비조=鼻祖].
그러면서 다음과 같은 예문을 제시한다.
"고구려의 시조 동명 성왕.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 단군은 우리 민족의 시조로 알려져 있다."
알쏭달쏭하다. 호장공이 반남박씨의 '시조'가 되는 것 같기도 하고 안 되는 것 같기도 하다. 현재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반남박씨 문헌(계축호구)에 보이는 최상위의 인물은 호장공이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호장공이 이 땅에서 '반남'이라는 본관을 사용한 최초('맨 처음')의 박씨 인물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호장공에게도 아버지, 할아버지가 계셨을 텐대 그 분들은 본관이 반남이 아니었을까?
1642년(인조 20) 경상도 영천(榮川: 오늘날의 경북 영주시)에서 간행한 반남[나주]박씨 최초의 족보(세보)인 임오보에서는 호장공을 '시조(始祖)'로 표기하였다. 그러나 그 다음의 계해보(1683년: 숙종 9)에서 시조는 "신령(神靈)의 감응(感應)으로 태어나거나, 타국(他國)에서 사판(仕版)에 올라 사대부(士大夫)가 된 사람"을 이르는 말인데 호장공은 여기에 해당하지 않으므로 '선조(先祖)'로 바꾸어 표기하였으며, 그 이후 경신보(1980년)까지 선조로 표기하다가 임진보(2012년)에 이르러 논란 끝에 다시 임오보의 '시조'로 돌아가게 되었다.
호장공은 박혁거세 같은 신화(神話)의 인물도 아니고, 다른 나라에서 들어와 새로운 가계를 연 분도 아니고, 권행(權幸: 안동권씨)처럼 공을 세워 임금(고려 태조)으로부터 성관(姓貫)을 내려 받은 경우[사성 賜姓]도 아니다. 그러므로 반남박씨 시조(始祖)라고 부르기에는 100% 확신이 서지 않는다. 그렇다면 호장공을 '선조(先祖)'로 지칭하는 것은 적절한가? 일반적으로 '선조'는 '먼 윗대의 조상'이란 뜻으로 쓰이는 말이지, '최초의 조상'이라는 뜻으로 쓰이지는 않는다. 다시 말해서, 시조(始祖)는 유일무이(唯一無二)한 존재이지만, 선조(先祖)는 복수(複數) 존재이다. 따라서 호장공을 '선조'로 부르는 것 역시 적확(的確)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사실, 우리나라 대부분의 성씨들이 시조라고 내세우는 인물들이 글자 그대로의 실제 시조인 경우는 매우 드물다. 대부분, 조상 세계(世系)를 더듬어 올라가다가 더 이상 올라갈 수 없는 최상위 인물을 시조라 부르고 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흔히 말하는 OOO씨 시조는 실제로 그 성관을 사용한 최초의 인물이 아니다. 반남박씨의 경우, 증빙할 수 있는 문헌상으로만 판단한다면 실제로 본관이 '반남'으로 확인되는 최초의 인물은 밀직공 박수(朴秀)이다(계축호구 기록). 그러므로 어느 의미에서는 박수(朴秀)가 반남박씨의 시조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계축호구에 등장하는 박수의 아버지, 할아버지, 그리고 증조할아버지가 모두 실제로 본관이 반남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박수의 본관이 반남인 것으로 미루어 짐작컨대 호구에 기록된 선계(先系) 세 분도 반남을 본관으로 했을 개연성이 매우 높다. 물론 호장공은 반남이 본관인 실제 시조가 아닐 수도 있지만, 문헌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가장 오래된 반남박씨 가계(家系)의 최상위 인물임에는 틀림없다. 따라서 우리가 호장공을 '반남박씨 시조'로 보아도 크게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실제로, 1924년에 발간된 『전고대방(典故大方)』 만성시조편(萬姓始祖編)에 "반남박씨시조응주호장(潘南朴氏始祖應珠戶長)"으로 나온다. 물론, 앞으로 호장공의 선계를 확인할 수 있는 역사적 증거 자료가 발견된다면 반남박씨 시조는 바뀔 수도 있다).
반남박씨 시조 논의와 관련하여 두 가지 첨언할 것이 있다. 하나는, 정인지(鄭麟趾: 1396~1478), 김종서(金宗瑞: 1383~1453) 등이 편찬한 『고려사(高麗史)』와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에 등장하는 박상충(朴尙衷: 1332~1375)과 관련된 것이고, 다른 하나는, 박상충의 외아들 박은(朴訔: 1370~1422)과 관련된 것이다.
먼저, 박상충은 계축호구의 호주 박수(朴秀)의 장남으로 고려 공민왕 2년(1353) 과거에 급제하여 봉순대부(奉順大夫) 판전교시사(判典校寺事) 우문관(右文館) 직제학(直提學)을 지냈으며 정사(正史)(『고려사』 열전(列傳)ㆍ 『고려사절요』)에 기록된 반남박씨 최초의 인물이다. 『고려사』 열전(列傳) 박상충(朴尙衷) 기사 첫머리에 "朴尙衷字誠夫羅州潘南縣人"(박상충은 자가 성부이며 나주 반남현 사람이다)로 그의 관적(본관)을 명시하고 있다. 이 영향 때문인지 권문해(權文海: 1534~1591)는 『대동운부군옥(大東韻府群玉)』에서 나주박씨(羅州朴氏)에 대해 "其先潘南縣人右文館直提學朴尙衷之後"(그 선계는 반남현 사람으로 우문관 직제학을 지낸 박상충의 후예이다)로 소개하고 있다.
다음으로, 우리는 앞 글에서 조선 태종 12년(1412년) 12월 13일 실록 기사에, 당시 임금이었던 태종(太宗: 재위 1401~1418)이 박은(朴訔)의 청을 따라 그에게 '나주(羅州)'라는 새로운 관향(貫鄕)을 내려준[사관賜貫] 사실을 확인한 바 있다. 따라서 어느 의미에서는 박은을 '나주박씨(羅州朴氏)의 시조'라고 보아도 큰 잘못은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실제로 1615년(광해 7년) 2월 13일(음) 경상도 안동부(安東府) 관아에서 있었던 나주박씨족회(羅州朴氏族會)에 참석했던 외예(外裔: 외손) 김중청(金中淸: 1566~1629)이 지은 <나주박씨족회서(序)>에 "噫彼此內外雲仍雖千百其形實我平度公一人之分也"(아, 우리 내외 후손들이 비록 그 모습은 각기 달라도 실은 우리 평도공(박은) 한 분의 분신들이다)라 하여 나주박씨 내외 후손들은 평도공 박은을 시점(始點)으로 보았다.
지금까지 시조(始祖)의 의미와 관련하여 논의한 내용을 간략히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세보 1세 호장공 박응주(朴應珠): 현전(現傳)하는 최고(最古) 문헌인 계축호구에 기록된 최상위 인물. 우리가 일반적으로 '반남박씨 시조'라고 말할 때 '시조'는 호장공을 일컫는 말이다.
2. 세보 4세 밀직공 박수(朴秀: 1296~ ?): 계축호구의 호주(戶主)로 본관이 반남(潘南)으로 기록된 최초의 인물.
3. 세보 5세 문정공 박상충(朴尙衷: 1332~1375): 박수의 장남으로 정사(『고려사』 등)에 오른 최초의 반남박씨 인물. 일각에서는 반남[나주]박씨를 박상충의 후예로 인식함. (참고: 박상충은 조선 숙종 때 '문정(文正)'이라는 시호(諡號)를 받아 '문정공(文正公)'으로 불림)
4. 세보 6세 평도공 박은(朴訔: 1370~1422): 임금(태종)으로부터 '나주(羅州)'라는 새로운 관향(貫鄕)을 내려 받은 최초의 나주박씨(=반남박씨) 인물. 나주[반남]박씨 사람들은 스스로 박은의 후손으로 인식함. (참고: 앞 글에서 지적했듯이, '羅州'라는 본관명은 1683년 계해년 반남박씨세보(통칭 계해보)에 이르러 '潘南'으로 환원하기로 결정하였다. 그러나 그 이후에도 '羅州'라는 본관을 그대로 쓴 예가 많다.)
따라서 1세 호장공(박응주), 4세 밀직공(박수), 5세 문정공(박상충), 그리고 6세 평도공(박은) 네 분은 반남[나주]박씨 족사(族史)에서 후손들이 반드시 기억해야 할 인물들이다. 호장공과 밀직공에 대한 정보는 계축호구의 기록 외에는 없으나, 문정공과 평도공은 우리나라의 정통 사서(史書)에 올라 있는 역사적 인물들이다. 이 두 분에 대해서는 뒤에서 다시 논의하기로 한다.
謹記
<이 카페의 모든 게시물은 복사ㆍ절취(캡쳐 포함)ㆍ이동이 엄격히 금지되어 있습니다. 아울러 게시물의 내용은 필자의 판단에 따라 언제라도 수정ㆍ보완ㆍ변경ㆍ삭제될 수 있음을 알려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