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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th. Aug. Sun
오늘이 12일인데 어제밤 Data Line을 넘었기 때문에 다시 11일로 하루 더 사용한다. 아울러 Equator(적도)도 넘었다. 이제는 N(북위)에서 S(남위)로, 그리고 E(동경)에서 W(서경)으로 변한 것이다. 21시부터 적도제를 지냈다. 안전한 항해와 풍어를, 보이지 않는 해신(海神)에게 빌기 위해서 남십자성(南十字星)을 보며 차례로 절을 하고 술을 따른다. 모두 경건한 마음으로-. 적도제를 마친 후 전 선원이 Deck에 모여 한잔 나누며 오락회를 가졌다. 통닭도 4인에게 한 마리씩 지급됐다. 모처럼 흐뭇하고 흥겨운 밤이었다. 적도 무풍지대이긴 하지만 저기압 관계상 파도가 계속된다. 두둥실 달이 올랐다. 상하가 없고 귀천이 없이 기분을 푸는 것이다. 그저께부터 Hook(낚시)매기 작업이 시작되다. 1차 배당된 것이 일인당 900~800개. 별반 어렵고 힘든 것은 아니다. 그러나 상당히 정밀을 요한다. 낚시바늘 끝이 너무 날카로워 자칫 잘못하면 살이 찟기고 만다. 어떤 사람은 손가락이 다시 부릅트는 모양이다. 개별적으로 책임제를 극히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 보나 안보나 뻔한 노릇이다. 여기에서 개인의 성실도와 기술을 Test 당하게 된다.
Mr. 유원규가 옆에서 과거 얘기를 해온다. 그는 저 밑바닥부터 살아온 충청도 사람이다. 고생이란 걸 겪어 본 것이다. 문학도 했단다. 한데 어딘가 좀 모자라는 느낌이 든다. 남이야 뭐하든 자기의 할 일을 피하거나 두려워 않는다는 것은 좋다. 그런데 그것이 행동으로 나타나고 있으면서도 타인에게 긍정을 받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IQ? 그거 일거야. 그런대로 그의 힘과 정신을 이용할 수 있는 사람에게는 충분히 쓰일 수 있는 형이다. 2/O도 한잔 된 모양. 그의 과거도 재미있는 곳이 있다. 하지만 야무진 그의 성격과 체력이 반드시 이루고야 말 사람이다. 꽤 접근이 돼간다. 어떤 의미에서든지 간에-.
12th. Aug. Mon
아침부터 계속 Hook(낚시) 작업이다. 110개. 일찍 끝내고 반납하다. 등급은 2등. 남 먼저 끝내고 남을 도와주는 일. 나는 그런대로 보람을 느낀다. 확실히 요령과 연구가 결과를 맺어주는 것이다. 어제 오전에는 왜 그렇게도 능률이 오르지 않았는지 모른다. 그런데 오늘은 예상외로 많이 했다. 어느 정도 자신이 붙는다. 좀 더 배 생활에 대한 규모가 넓어지면 그기에 맞는 몇 가지의 신념을 갖자. 아직은 일러다. 어디서나 내 자신을 위하고 생활의 장을 위하고, 나아가 그 밑의 Crew(선원)들을 위할 수 있는 분명한 신념이 필요한 것이다.
Equator(적도)를 지난 지 2일. 내일은 영아와 집에 전보라도 쳐야겠다. 영안 무척 기다릴꺼야. 지난 밤에는 꿈에도 보였다. 혹시 무슨 일이라도 있었을까? 그의 가장 친했던 故 손인현씨와 함께 왔다 갔었다. 오늘이 12일 아니 13일이지. 방학도 반을 넘었군. 그사이 어떻게 보냈을까? 바다가 넓다지만 이같이 넓은 줄은 생각 못했다. 꼭 15일만에 겨우 50톤급의 Chines Ship(대만 국적선) 한 척을 보았다. Equator부근에서 참치잡이(Tuna Long Line)를 하는 목조선이다. 모두가 반가워했다. 국적은 논할 필요가 없다. 그저 인간이 그립고 땅이 그립고 바다와 구름, 하늘 이외의 것이면 무엇이거나 반가워지는 것이다. 갈매기도 많아져 간다. 그것마져 신기하게 뵌다. 아직 3일 남았다. 겨우 18일인데- . 이렇게 지루할 수가 있나? 조업이 시작되면 1-2개월 계속 떠있는 부평초가 되어야하는데- . 하기야 그냥 항해만 계속하니까 그럴테지.
몸은 이제 완전히 정상으로 됐다. 아무렇지도 않다. 10여일 전 50여 시간 동안에 빠졌던 얼굴이 제대로 다시 원상태로 재구성이 되어가는군. 내일은 다시 면도도 해야겠다. 헌데 코가 말썽인 것 같다. 축농증의 심해지는 것일까? 아직 그러한 증세는 나타나지 않으나 코를 자꾸 풀어야 한다. 한 동안 중지했던 Vitamin과 에비오제를 다시 복용 시작했다. 귀국할 땐 좀 더 건강하고 여물어져야지.
13th. Aug. (화)
광활한 대양에서 또 하루가 저문다. 연일 물과 하늘과 구름만 보면서 왔고 또 가고 있다. 내일 모래 아침엔 Pago Pago에 입항예정이다. 며칠 전부터 작업이 시작되니 별로 지루한 줄을 모르겠다. 보승(갑판장) 영감님 왈. ‘대서양을 왕래하는 일반 작업선에서는 지루하니까 쓰다 남은 장갑을 풀어 세타나 내의를 뜨개질해 입는다.’고 한다. 못 뜨는 사람은 담배를 줘가며 배운단다. 무엇이거나 몸을 움직여 일에 정신을 쏟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그 지루함을 이기지 못한다고 한다. Tuna Long Line(참치잡이선) 작업선을 타고 일하는 사람들! 그들은 Capt.로부터 말단까지 보통사람이 아니라고 단정한다. 그 인내력과 노력과 피맺힌 땀방울이 그렇게 만드는 것이다.
Hook작업 끝에 말썽이 일다. Mr. 오. 그는 왜 같은 과(科)에서도 같은 조(組)에서도 왜 돌리기만 하고, 협조도 받지 못하는 것일까? 얌체 덩어리다. 역시 자신의 일은 자신이 해결 할 수 있어야 하는데 -. 좀 더 자중이 필요한 놈이다. 바로 자신의 앞날을 위해서 -.
부산의 형님과 영아에게 보낼 전보문이 Capt. 결제에서 Cut 당한 모양. 모래 Samoa에 입항하면 편지로 하자.
오늘부터 Scraping*과 Chipping*이 시작되다. Painting도 아울러 시작하다. 남십자성인 Rigel Kent의 Altitude(위도)가 점점 높아진다. 파도도 바람도 없다. 길다란 Swell(너울)이 배를 기우뚱거리게 한다. 태양이 북쪽으로 기울고 뜨겁다. Deck에서 발이 뜨거워 맨발은 안 되겠다.
* Scraping: 선체의 녹쓴 부분을 긁어 내는 일
* Chipping : 녹이 두껍게 쓴 부분을 망치로 때려 털어내는 일
14th. Aug.(수)
All trainers employed in chipping and scraping rust part of main deck, all day. and painted with red lead and washed all part of ship.
(종일 전 훈련생들이 갑판상의 녹을 제거하고 방청제와 페인터 작업에 종사하고, 선박 전체를 씻었다.) 하루의 일을 항해일지 양식으로 적어본 것이다.
15th. Aug(목)
02:50 당국에서 입항허가를 받지 못해 외항에서 표류했다. 그런 것도 있군. 바다는 너무 조용하다. 바람도 없다. 위쪽이 없는 반월이 떠간다. S14도 부근. 열대지방이라고는 하지만 이곳은 요즘이 겨울철이다. 밤이면 서늘한 감도 있으나 낮이면 역시 뜨겁다. 아침 8시 먼 빛으로 절벽에 부딪쳐 허옇게 부서지는 파도와 늘어진 Coconut Palm(야자수)을 보니 이국에 온 느낌이다.
8시반에야 완전 입항. Starkist* can공장 앞에 Alongside(접안)하다. Samoa! 생각했던 것보다 산이 높고 가파른데 놀랐다. 사진에서 많이 보아온 형태의 가옥들이 있고 작업중의 원주민들이 특이한 옷을 입고 있다. 한국, 중국, 일본의 참치잡이 선박들이 많다. 왜 그럴까? 역시 동양은 못사는 나라들일까? 아직 Samoa의 전체를 모른다. 서쪽편은 아담하고 깨끗하며 역시 살고 싶은 곳이나 동쪽은 어선이 많아 약간 추접다. 높은산 중턱까지 Coconut Palm이 우거졌고 굉장히 높고 긴 Cable-car가 아슬아슬하게 달려 건너가고 있다.
같이 매어둔 한국의 남해호들! 중국배들! 모두 국적은 다르나 하는 일은 같다. 옳게 보이는 인간이 하나 없다. 모두 미친형태다. 옷, 머리, 몸뚱이, 손발, 아찔한 생각이 든다. 배의 Out side(외판)도 엉망이다. 녹슬고 녹물로 더럽다. 그러나 잠자는 실내만은 더없이 말끔하고 깨끗하다. 아침 8.15 광복절이다. 고국에서는 어제일테지만... . 한국선박 모두 International signal flag(국제신호기류)을 한 줄로 달아 이날을 경축했다.
Agent 및 출입국 사무 그리고 fumigation(검역)이 끝나지 않아 오전은 계속 놀기만 했다.
영아로부터 편지가 왔다. 3통이나 된다. 얼마나 반가운가! 자랑스럽기도 했다. 영아 정말 고맙군. 한 장 한 장 읽을 때 콧등이 씨큰해 온다. 내가 지금 끗 남의 편지를 받고 눈시울이 뜨거워지기는 이번이 두 번째다. 8년 전 군에 입대한 후 논산훈련소 있을 때 누나가 보내준 첫 편지와 오늘 영아의 편지다. 힘이 난다. 기운이 난다. 지루하지가 않다.
영아야! 역시 당신이 생각한 그대로 하나하나 진행이 돼간다. 고생도 했다. 몸부림치도록 지루하기도 했다. 18일간 영영 육지를 잊어버리는 착각이 들기도 했다. 파도에 울렁일 때 당신을 생각했고 잠들기 전에는 꼭 당신을 보지 않고는 잠들지 않았다. 오늘이 8. 15. 벌써 방학도 반이 넘었었군. 오히려 나보다 네가 더 고생이 많겠다. 남의 행복을 부러워하지만 마라. 내가 책임을 지마. 우리들의 보다 안락하고 행복된 내일을 말이다. 이대로, 이보다 더한 고생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우리들의 내일을 위한 초석이 되고 거름이 된다면, 오라! 산 같은 파도도 쉬이 이겨내마. 거대한 바닷 속에서 활개치는 Albacore, Yellowfin, Bigeye...(모두 참치 어족의 이름) 등, 80, 90kg짜리의 거대한 놈들도 거뜬히 들어 올릴 수 있을 것이다. 많이만 물려라. 남태평양만이 아니다. Atlantic(대서양), Indian Ocean(인도양) 모두가 내 품에 들어와야 한다. 아니 넣어야 한다. 너의 정성으로 빚어진 포도주, 마시고 실큰 취하고 싶다. 네 손끝으로 엮어진 포근한 내의 속에서 내 몸이 쌓이고 싶다. 이제 한 달이 갔다. 앞으로 4개월! 조업이 시작되면 결코 지루하지 않을 것이다. 영아! 고맙다. 부디 몸조심해라. 그리고 너 말 같이 착실하게 너와 내가 우리의 운명을 개척하고 닦아나가자.
* Starkist : 세계적인 미국의 참치 통조림 제조회사
16th. Aug. Fri
아침 6시 총원이 기상하다. 높은 산 중허리에 부연 안개가 감겼다. 오전부터 Main Line(主線) 및 Branch Line(支線)의 Coal Talling*을 시작하다. 생각보다 쉬이 할 수 있었다. 오후 5시에 완전히 끝나다. 이제 갑판상의 작업은 거의 끝났다. 어장에 가면서 Basket*조립만 한다면 된다. 내일부터는 상륙이 될 것 같다. 하루의 일을 끝내고 Fresh Water(청수)에 목욕을 하다. 꼭 20일 만에 청수에 한 거다. 미국의 참치가공회사인 Starkist에서 각 선박의 선원들을 위해 노천 샤워장을 2개 설치했다. 역시 부국다운 곳이다. 기분이 상쾌하다. 세탁도 했다. 내의도 완전히 갈아입고 보니 한결 거뜬하다. 이럴 때 그이라도 옆에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모처럼 생각이 난다. 저녁에는 이곳에 와있는 선배들이 Beer Party를 시켜 준단다. 또 인사말을 주고받아야 겠군.
이곳 Starkist회사에 여종업원들이 대개 원주민들이다. 역시 책이나 사진에서 보던 것과 같다. 특징이 몸피가 엄청 굵다. 그래도 얼굴은 잘생겼다. 오히려 American이나 European보다 잘 생겼다고 하겠다. 우스운 것은 아주 몸이 굵고 큰 여인은 Mrs.이고 가늘고 약한 여인은 Miss들이란다. 그 가느다란 Miss가 결혼만 한다면 그렇게 굵고 커진단다. 희한한 일이다. 좁고 길죽한 카누를 타고 과일과 고기를 바꾸러 다니는 남자들도 있다. 카누가 보기에 아주 좁다. 가라앉지 않을까 조바심이 난다. 그래도 유유히 마음대로 노 하나로 운전해 나간다. 신현우 형님으로부터 항공엽서 2장을 얻었다. 영아에게와 형님께 먼저 편지를 써야겠다. 박창근 군이 있었다면 좀 신세를 질려 했는데 조업나갔다는군. Money가 필요한데-. 없으면 할 수 없지만 있었으면 좋겠다.
* Coal Talling : 낚시줄의 풀어짐을 방지하기 위해 끓는 콜탈에 담궈 코팅하는 일.
* Basket : 주낙에 가지줄, 부표줄, 낚시 등을 달아 투승상태로 준비된 것을 뭉쳐 셋트로 한것.
17th. Aug(토)
어제저녁 Reception Party!(환영파티)*, 어처구니없이 사회자의 역할을 맡았다. 1 box에 3 달러짜리 일산 Sapporo 맥주로서 맘끗 즐겼다. 그런대로 재미있게, 선배들의 호의에 감사를 드린다. 헌데 너무 Pride가 센 높은 놈들 때문에 의도대로 진행하기가 힘들었다. 어디까지나 내 입장은 하나의 Trainer였으니까 -.
남해 210호 C/O 안병태씨가 무척 반겨 주고 호의를 베푼다. 담배도 준다. 그 의도는 무엇을 목적으로 하고 있는가 어렵풋이 짐작은 간다. 그럴수록 앞으로 바다를 상대로 한 내 생활이 계속되는 한 내 행동에, 언어에 조심을 하고 형님과의 미묘한 상관관계를 이끌어 나가야 한다.
결국 그 날도 술이 말썽을 부렸다. 이운용 군. 그는 자신을 위해 생활방식을 고치지 않으면 그의 앞날은 뻔하다. 그 외에도 여러 사람 모두가 이성을 부르짖어면서도 이성을 잃은 미치광이들이다. 한심한 풍경이다. 그 가운데서 갈팡질팡해야하는 내 자신이 너무 어리석고 슬퍼지기만 한 것 같다. 내가 왜 나서야 하는가? 그게 타당성을 띈 것인가? 나서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기름을 부어 더 잘 타게 해버리면? 역시 여기는 고국이 너무 먼 Samoa의 하늘 밑이다. 2/O 김. 그의 처지와 입장에 진심으로 동정과 아울러 존경이 간다.
* 환영파티 : 이미 취업하여 이곳에 진출한 FAO(훈련소) 출신 사관들이 훈련생들을 위한 파티
아침부터 5달러를 받고 상육을 하다. Cocoa와 Coffee를 사다. Samoa의 중심가인 Pago Pago, 거기는 ‘갓쓰고 맨발’인 격이다. 나태, 권태로움이 꽉 차있으면서도 무엇인가 쉬지 않고 돌아간다. 극에서 극까지 분명해 뵌다. Samoa International Hotel. 여기는 과연 좋다. Honey Moon Car를 몰고 오고 싶은 곳이다. 원주민의 야만성과 원시성에 미국적 고도의 물질문명을 갖다 부어놓았다. 무엇이거나 ‘Give me'하는 그들의 습성에는 질색이다. 엄청나게 굵은 여자! 손톱이 칼같이 긴 머슴애, 알알이 모은 조개껍질을 알뜰히 꿰매는 늙은 할머니들! 물건을 팔면서도 Radio의 Rhythm에 어께와 엉덩이를 연신 실렁데는 아가씨들! 마침 토요일이라 오전만 개점한다. 시간관념은 철저하군. 하나부터 열까지 인공적인 가공에다 보다 잘 살기 위한 안간힘이 어디서나 나타나 있는 일본과는 너무 대조적이다. 의식주가 걱정이 없다. 땀 흘려 일할 필요가 없다. 그저 오늘 지금만 즐겁게, 곱게, 아름답게 소유해보자는 것이다. 학교에도 갔으나 내부는 방과 후라 볼 수가 없단다. 무엇보다 원주민들의 야성적이면서도 어딘가 순박하고 고유한 그들 특성이 약은 고도의 문명에 의하여 약해지고 자연성에서 탈피해 가고 있는 것이 오히려 부조리한 현상을 나타내고 있다. 어쨌든 Samoa 여기는 정이 들거나 살아보고 싶은 곳은 아니다. 영아와 형님에게 편지를 쓰다.
18th. Aug Sun.
종일 별 일 없이 잠만 잤다. 일요일이면 이곳은 모두가 쉰다. 형님께 쓰던 편지를 마져쓰다. Training Ship(훈련선)으로서의 기본적 자세가 잡혀 있지 않음을 얘기하고 그 일부의 책임을 형에게 묻고 싶다고 했다. 계속 Trainer Centre에 계실는지 궁금하군.
요즘은 모두가 사람 같다. 매일 목욕하고 세탁도 재대로 해 입는다. 이발도 한다. 잘하고 못하고가 문제가 아니다. 불필요하게 길게 자란 부분만 Cut하면 되니까. 내가 너를 깎아주고, 네가 나를 깎아주기다. 재수 없이 솜씨 없는 놈과 붙으면 절단난다. 소가 뜯어먹고 간 자리가 되니까.
옆에 접안해둔 각 회사 및 일본, 중국 배들 모두 고국이 그리운가 보다. 전축을 내놓고 선율에서 고국의 내음을 맡는다. 낡은 Record도 흥이 난다. 머리맡에 틀어두고 누워서 명상에 잠긴다. 그들의 꿈은 아마도 수만리 고향으로 달려가 있을 것이다. 일본 애들은 일본노래, 중국 애들은 중국노래다. 그 외는 거의 같다. 먹는 것, 입는 것 그것은 빤쯔와 샤스 하나면 충분하니까 목욕탕에 가도 모두 같다. 꼭 같이 구성(?)되어 있으니까. 내일은 Fuel Oil(연료유)을 받고 21일쯤 출항이란다. 상륙비를 아끼지 않아 엽서를 사지 못했군. 편지는 여나무장 쓰야하는데-. 우체국에 갔으나 품절이 될게 뭐람. 산호초를 사고 싶은데-. 금지됐단다. 미 통감부에서는 수출을 목표로 하고 있으나 원주민은 자기네의 영토를 잘라 간다는 의미에서 필사적인 저항을 하는 모양이다. 그나마 남용했기에 상당히 먼 곳이 아니면 깊이 들어가야 있다는군. 섭섭한데..-
옆에 있는 배의 선원(Crew)들의 생활을 살펴본다. 얘기도 해본다. 그들의 지난날 육상에서의 과거는 알 수 없으나 천차만별이다. 학벌도 많은 차이가 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확실히 무엇인가 매력 있겠금 뱃 생활이 되어있다. 시골에서 죽자고 농사짓느니 보다, 아니면 도회지에서 바득바득 애쓰는 것보다 편하다. 마시면 맥주고 좋은 양담배 피우지, 잘 먹지 거기다 dollar 만지니까 전축, 라디오, 녹음기들은 그 첫 자도 모르는 사람들이 손쉽게 싸서 가지니까. 또 욕심이 생기면 흑인이건 뭐건 돈으로 쉬이 해결할 수 있으니까. 하여간 자기 일신은 편하다. 그래서 일반 하급 Sailor들은 오래 계속해서 타는가 보다. 좀 더 정신이 바로 뚫리고 가정과 인생의 참 행복을 안다면 그렇게 할 수는 없을 텐데. 물론 그 만큼 일이 고된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도 3-4개월에 1개월은 편안히 쉴 수 있으니까. 동화6호 선원들이 모여 앉아 장갑을 풀어 세타를 뜨고 있다. 먼저 뜨 입은 사람의 것을 보니 아주 멋있다. 어디가나 근면하고 아끼는 사람이 이런 데서도 좀 더 풍요하게 자기의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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