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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 16.(금)
지난밤에 1타수(Head/Quartermaster)와 Capt.간에 언쟁이 있었단다. 근래 선원 전체의 분위기가 이상하게 술렁하고 불평들이 많다. 그 목표가 대강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하기야 출국 당시 2개월에 한번 씩 부산에 입항할 수 있다는 조건하에 나왔었는데 2개월은커녕 1년에 한번도 들어갈 기미를 보이지 않는데다 인도네시아에서 잦은 개인들의 도난사고, 용돈이 잘 생기지 않는 것 등등의 일이 생기니 자연 신경들이 곤두서질 수밖에 없다. 4개월 가까이 됐다. 이맘때쯤이 가장 선원들 전체 통솔에 신경을 쓰고 주의해야 할 것 같다. 이런데 선장의 규율문제, 청소문제, 현문 당직문제, 소지품 조사 등이 결국 선원들의 심한 반발을 쌌다고 봐 진다.
선장이나 선원들 양쪽 모두 일리가 있는 소리고 타당성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서로가 그 겨냥점이나 포인터가 어딘가 헛점을 노리고 있는 듯 하다. 그 근원적인 것을 보면 결코 중요하게 커다란 것도 아닌데 -. 좀 더 사람들이 넓은 아량이 부족한 것 같다. 인간관계에 있어서 그 계층은 언제 어디서나 부정되어 오지만 실제의 사회에서는 존재해야만 하는데 부조리가 있는지 모르겠다. 그들 사이가 어떠한 관계가 있던 상호간의 원만한 인격형석과 신뢰와 존경이 따르지 못하면 집단을 너무 의식적으로 느끼고 대하게 된다고 본다. 개개인의 현재까지의 환경과 성격, 그리고 학력 등이 제멋대로 구성된 체 좁은 선내에서 일체의 사회와 격리된 특별한 조건하에서 그러한 원만한 분위기와 여건을 만들기가 쉬운 일이 아니다.그러나 규제가 많고 제약이 심할수록 반작용이 강해지는 것이 인간의 심리현상이다. 상호간의 보다 폭 넓은 이해와 신뢰가 무엇보다 아쉽다. 선내규율은 반드시 있어야 하고 지켜져야 한다. 그러나 그것이 처음부터 습관이 되지는 못하드라도 형성은 되어 있어야했다. 여기에서 C/O와 CAPT의 완전히 상반된 의견차이가 있다. 연구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무엇보다 지도자 혹은 상급직위의 사람일수록 행동과 언어에 많은 제약이 따른다는 것을 스스로 인식해야 한다. 그 직위가 다소나마 공적인 입장을 떠나서 과시하는 현상이 보일 때 그 권위는 빛을 잃는다. Capt.가 가끔 나를 찾는다. 그리고 함께 대화를 나누기를 원한다. 내가 좋아서도 아니고 잘해서도 아니다. 역시 자기 자신을 위해서다. 그 이유를 나는 짐작한다. 그의 얘기를 들어 주기만 하기 때문이다. 그를 이해해주기 때문이다. 또 하나, 내가 어선에서 선장을 했었고, 지금까지의 능력을 직접 제 눈으로 보아왔기 때문이다. 결코 내 자신을 무시하지는 못하기 때문인 것이다.
H/Q와 CAPT의 지난밤의 일은 그 원인이야 어떻던 CAPT.로서는 하나의 오점이라고 볼 수 있다. 두 번째 실수다. H/Q의 얘기 중 갑판장과 NO.1의 태도가 또 재미있다. 가장 불평과 불만이 많은 두 사람이 선장 앞에서는 고양이 앞의 쥐라는 거다. 하기야 그렇지 H/Q가 지금 끝 가장 과묵하고 성실했다고 모두 인정해 왔었지. 그기에 문제의 핵심이 있다. 그것을 CAPT.가 인지했느냐가 문제이다. 또 H/Q가 술을 빙자했다는 자신도 하나의 참고로 해야 할 필요가 있다. 성급하게 한꺼번에 많은 일을 연속적으로 시킨다는 것은 어디서나 무리이다. 시간적 여유와 하급자의 실수나 고의적 잘못이라도 한번쯤 웃어 넘길 수 있는 큰 배포도 가져야 하는 것이 지도자의 일이다. 인간도 완전할 수는 없지 않는가! 지나치게 철저하거나 빈틈이 없는 것도 일종의 비정상일 수도 있지 않는가! 일본가서 어떠한 결말이 날 것인지는 두고 볼 일이다. 4개월 만에 선원의 거의 반이 교체된다는 것은 그 선원들 자체만을 탓하기는 다소 문제가 있다고 회사에서도 볼 것이다. 그 원인을 규명하려 들겠지. 어선이나 상선이나 처음 구성된 그대로 계약기간을 완전히 마친다는 것은 극히 어렵다. 얼마만큼 변동이 적었느냐가 문제다. 또 변동이 적은 배일수록 성과가 적은 배가 없으며, 교대자가 많은 선박일수록 엉망이였음을 지금 끝 사실로서 증명됐다고 본다. 그래서들 그런지 차츰 지루한 감도 없지않다. 6개월을 넘기면 비교적 쉬이 갈 것 같은데. 다음 항차가 고비일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내 짧은 교직생활이 이 세계에서도 많은 참고가 되고 있음을 절실히 느낀다. 특히 심리학, 인간관계는 어디를 가나 사람이 사는 곳은 같다는 생각이다.
18.(일) Mar. 73
아침 10시 반경 TELOK항를 출항하다. 비교적 많은 양을 짧은 시간에 마쳤다. 다소 Over Load(과적)한 느낌이 있다. 어젯밤 그리고 오늘밤 두 차례 연속 집안 꿈을 꾸었다. 아내의 꿈이다. 어제는 아내가 농촌에서 부지런히 일하면서 집을 짓는 것이고, 오늘은 시장에서 장사를 하는 꿈이다. 다소 불안한 생각이 든다. 좀처럼 이렇게 연속해서 꿈에 뵈는 일이 없는데 -. 무슨 일이라도 일어난 것은 아닐까? 과로가 겹쳐 몸져누웠지는 않는지? 앞으로 10여일 더 있어야 소식을 들을 수 있는데 -. 어서 갔으면! 어쩌면 집을 결정하고 쌌는지도 모른다. 왠지 요즘 부쩍 사진을 자주 보는 편이다. 힘끗 안아보고 싶은 충동과 지난날 그와의 밤들이 무척 강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정말 아무 일 없어야 할텐데 -.
정주가 제법 컸겠다. 일주일 후면 100일이 되겠군. 이번 가면 백일사진을 볼 수 있을지 모른다. 넓적한 게 머슴애 같이 생겼뎄지. 성질도 투박하고 순할 거다. 정화가 무척 귀여워 해주는지 모르겠군. 고 깔끔한 게 질투는 않을는지. 학교가 가까이 됐으면 엄마 따라 다닐지도 모르지. 내년쯤 유치원에 보낼 수 있을 텐데. 아무래도 애들 때문에라도 엄마가 집에 있어야겠다.
Mar. 21일(수).
며칠간 계속 강한 남동풍이 분다. Monsoon(계절풍)인가 보다. 많은 짐을 실어서 크게 동요하지는 않으나 배의 움직임이 무겁다. 날씨나 좀 좋았으면 좋겠다. 2-3일 잠을 잘 이루지 못한다. 또 공연한 잡념이 생긴다. 연이은 꿈에 몹시 불안을 느꼈는지도 모른다. 지난밤은 거의 2시간도 못 잤다. 머리가 아프고 어지럽다. 몇 시간이라도 모든 걸 잊은 체 깊은 잠 속에 빠져버렸으면 -. 사람은 일일 평균 8시간의 숙면이 필요하다는데 - . 잘 수 있는 시간이 부족한 것이 아니다. 비몽사몽간이다. 잠이 안 온다. 일본 귀항까지 제출해야할 서류도 많이 밀렸다. 강한 바람의 영향으로 하루쯤 늦어질 것 같기도 하다. 방콕이나 쟈칼타에서 보낸 편지들이 제대로 갔으면 이번 교대자 편에 녹음테잎, 정주 사진, 반바지 등이 도착할게다.
근간 숙면이외는 건강에 큰 지장은 없는 듯하다. 다만 대변이 일정치 않다. 식욕은 변함이 없는데-. 잘 먹고 잘 배설하면 그것이 가장 정상적이라는 증거가 된다고 보는데-. 헌데 전부터 이상한 현상이 있다. 대변초기에 농(膿)같은게 섞여 나온다. 가끔 혈변의 흔적도 있고-. 어떤 때는 뒤가 무겁고 해서 화장실에 가면 변은 없고 농(膿) 같은 것만 닦인다. 그렇다고 몸에 큰 지장이나 불편을 느끼지는 않는데 -. 항문(肛門)부근인가 아니면 대장(大腸)에 염증이라도 생겼단 말인가 -.
22.(목) Mar. 1973
오늘 새벽은 기어이 수면제를 2알 먹었다. 덕분에 6시간정도 세상모르고 잠에 떨어질 수 있었다. 일어나니 역시 몸이 다소 개운한 느낌이 든다. 늘 이랬으면 얼마나 좋을까! 며칠간 미뤄왔던 제반 일들을 한꺼번에 해치웠다. 내일쯤 Typing만 하면 된다. 저녁에 다시 Capt. Room에 갔다. 근래 술렁했던 선내문제에 대한 참고 되는 이야길 많이 들었다. 그로서도 역시 마땅한 얘기이고 사실이다. 무엇보다 이해가 중요하다는 것을 시인한다. 선주대리로서 임무를 수행하면서도 선원들의 전체를 대표해야 하고, 선원을 지휘, 감독 내지 그들의 복지마져 고려해줘야 하는 이율배반적인 위치에서 그 애로점, 특히 선주가 외국인인 일본임이므로 해서 가져오는 어려움이 많다. 원칙적인 사람이라고 할까. 내게는 비교적 호감이 가는 성격이라고 볼 수 있다. 당초 계약을 맺었으면 그 계약의 범위 안에서 일하자는 것은 내 주장과 같다. 계약이 자신의 의사와 합치하지 못할 땐 스스로 거절하면 된다. 일단 승인했으면 그 계약은 충실히 지켜져야 한다. 개인이나 직책을 가진 사람이 자기의 권리 범위 내에서 일하는데 타인이 그것을 강요할 수는 없다. 선박의 모든 운행 및 작업은 선장이 하는 것은 아니다. 최종적인 결정권은 있으나 그 과정이 있어서는 개개인의 책임하에 맡겨진 것이다. 좀 더 상호간에 입장과 임무의 한계 그리고 책임질 수 있는 스스로의 행동 등에 대한 폭넓은 이해가 있었으면 싶다.
25일(일) Mar.
낮 12시부터 Gale(광풍)이 일기 시작한다. 북태평양에 발달중인 986mb와 전선(前線)이 연결되어 있어 그것이 통과중인 것 같다. 쉬이 끝날 것 같지가 않다. 작년 북양에서 겪은 후는 처음 당하는 큰바람이다. 다행이 풍향과 파향(波向)이 일정했다. 무거운 선체가 떴다 가라앉을 때는 다소 불안한 생각을 갖는다. Overload(과적)의 느낌이 있기 때문이다. 전원이 활기가 없다. 배의 동요에 시달리는 것이 무척 쉬이 피로해진다. 바다의 포효다. 쌓이고 누적됐던 불만을 한꺼번에 털어내듯 때리고 부딪는다. 바람이 배를 울린다. 얇은 곳의 철판이 웅웅하는 소리를 낸다. 속력이 절반으로 떨어진다. 입항시간에 차이가 있겠다. 선박의 선장이고 항해사이며 기관사라는 사관의 능력은 이런 때 필요하다. 이런 극한적인 상황 속에서 사고는 한 순간이다. 자연과 인간의 대결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 자연은 언제나 변화무쌍하고 그 폭도 넓지만 엄연한 원칙과 거짓 없는 사실의 범위내에서 움직인다.
인간의 간사한 마음처럼 얄팍하게 변덕스럽지는 않다. 오늘이 두 번째 딸 정주의 생일이다. 오늘을 위해 준비했던 한 병의 술도 빌어먹을 바람 때문에 그냥 지나쳐 보내야겠다. 당신이 무척 서운하면서도 무척 바쁘게 보내고 있을 거다. 입항지가 구주의 三池(미이께)와 細島(호소시마)란다. 宮古島(미야코지마)에서 冲繩(오키나와)의 뒤를 빠져 바로 직항하는 코스를 잡다.
28.(수) Mar. 73
10시경 어려운 접안을 마치다. 갑문식 Dock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편지가 없다. 지난 1월에 쓴 것 이외는-. 아마 산신운유(三信運輸)로 했나보다. 앞으로는 메이코(明光海運)로 해야겠다. 차라리 1월 23일에 쓴 편지도 전번에 찾지 못한 것이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모르겠다. 이미 지난 일이지만 불쾌가 극에 달한다. 내가 미친 지랄한다고 나왔나? 아내에게까지 그런 수모을 받게 하다니. 그런 점으로 볼 때 역시 당신이 현명하다. 얼마나 기분이 상했을까. 잊어버리고 싶은데 자꾸 떠오른다. 나고야(名古屋)가야 옳은 편지 받겠다. 발전기 때문에 여기서 1주일을 머문단다. 재수 없다. 옴 올랐다. 저녁에 하도 마음이 설렁해서 시내 나갔다. 서글퍼기만 하다. 곧장 가고 싶은 생각뿐이다. 울적한 기분을 낮에 왔던 아가씨집에 가서 몽탕 마셔버릴까도 생각했다. 역시 술은 입에 대지 않았던 게 다행이다. 녹음기 살려고 $80을 가불했다. 당신이 놀랄 것이다. 그림책과 정원, 꽃가꾸기 책을 사다. 여기서 돌아가려고 해도 사실은 내가 너무 약해진다. 내가 완전한 참패를 당한다. 버티어 봐야 얻어지는 것은 크게 없지만 1년을 견디지 못하고 도중하차한다는 것은 앞으로 내 장래를 위해서 하나의 오점을 남길런지도 모른다. 이렇게 사람이 추잡고 시시한 줄 몰랐던 것이 내 실책이다. 내 고생을 내 잘못의 인과응보라 할 수도 있지만 곁들여 아내가 너무 타격을 입는다. 이중적인 대가다. 비참하기까지 한다. 소극적이고 과단성이 없는 내 성격의 소치라고 돌리기에는 너무나 양심이 비웃는 것 같기도 하다. 자학! 스스로를 미워하고 싶다. 한잔 한 뒤 당신 곁에서 실컨 울어버리고 싶다.
어떤 일이 있어도 그 책임의 일부는 내게 있다는 그 말이 왜 그리도 쇼크가 큰지 모르겠다. 정말 아무 일 없는 것인가? 그대로 잊어버릴 수는 없을까? 차라리 모든 것을! 세관의 심한 조사가 있었다. 우리 배는 아무것도 없었으나 원인은 마약 때문이란다.
29일(목) Mar. 73
밤에 또 선내에서 소란이 있었다. 하선자 몇몇이 술 먹고 다툰 것이다. 한마디로 개판이다. 아무 것도 없다. 혼자뿐인 것이다. 한심하다. 아무리 티끌 같은 애국심이 없다 손치드래도 자정 가까이 아무도 보는 일본인이 없어서 다행이지, 낯이 뜨거운 일이다. 배웠고 안 배웠다는 것이 여실히 들어난다. 대가리가 터지고 눈덩이가 붓고, 그래서 내일 귀국했으면 꼴들 좋겠다. 간섭하거나 말리거나 할 한 푼어치의 가치도 없다. 왠지 쉬이 잠이 오지 않는다. 내 생활주변이 너무 삭막한 것 같기도 하다. 짙은 개인주의에다 인정이라고는 쥐뿔도 찾을 수 없는 메마른 사회인 것이다. 스스로의 낙을 창조하고 느끼고 끌려 갈 수 있도록 해야 할 것 같다.
30일(금) Mar 73
아침부터 비가 온다. 봄의 성숙을 재촉한다. 버들나무의 파란 싹과 개나리 그리고 활짝 핀 벚꽃이 한결 포근함을 느끼게 한다. 빗속에서 오전 11시경 하선자 4명이 귀국했다. 대가리에 반창고 붙이고 가는 李, 눈이 퍼래 달걀을 굴리며 가는 柳, 목에 붕대를 감고 간 Eng. Boy, 모두 웃음이 난다. 인편에 편지나 잘 갈는지? 오후 4시30분 Miike 출항, Saike로 향하다. 거기서 목재 검역을 마치고 다시 Hososhima(細島)에서 하역을 완료할 예정이란다. 계속 빗방울이 떨어지는 가운데 때 아닌 짙은 안개 속을 벗어난다. 밤중에 바다의 야광충 때문에 항해에 지장이 많다. 이 지방이 유독 심하다. 아마도 바다의 오염 때문은 아닌지? 밝은 기분을 가지지 못하겠다. 집 소식을 접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교대자가 언제 오려나? 그 편에 보냈겠지. 神林(가미바야시) 선식집 주인 내외분이 퍽 인상적이다. 거의 90도 인사법에는 느끼는 게 많다.
3월 31일(토) :
벌써 4월이다. 그런대로 시간은 어김없이 변화의 연속을 반복한다. 하나의 뚜렷한 자취도 남기지 못한 체 5개월이 다 됐나 보다. 1년간 이렇게 보내다간 과연 무엇이 남을까? 어제 밤 9시경 Saike 검역지에 정박했다. 내일 교대자 3명이 온단다. 무슨 사연이 닿겠지.
1st. Apr. 1973 (일)
아침에 안개 속에서 날이 밝는다. 안개가 걷히자 뵈는 풍경은 퍽이나 조용해 뵌다. 바로 바닷가에 조그만 국민학교 하나가 보인다. 운동장과 마을에는 벚꽃이 만개한 듯 하다. 내일 아침 08시부터 목재검역을 한단다. 보안담당자 5명을 제외한 모든 선원이 상륙, 육상에서 30시간가량 보낸단다. 3항사를 남기자고 했으나 체면상 내가 남기로 하다. 아직도 그를 맡기기엔 너무나 불안하고 극히 위험한 작업인 동시에 보안이 어디까지나 목적이 아닌가. 내일 남을 사람들만 오늘 낮에 일찍 상륙하기로 하다. 인구 5만 가량의 조그만 도시. 일요일이라 거리가 한산하다. 평화스런 마을 같다. 운동장에는 주말을 즐기는 운동가족들이 뵈고, 야구를 즐기는 젊은이, 혹은 나이든 사람들도 보인다. 상점도 철시한 데가 많다. 전신전화국에 인근에 있어 집에 전화를 했다. 일요일이라 쉽게 연결이 된다. 당신은 없고 정화의 목소리와 경희와 얘기를 나누었다. 집 보러 갔단다. 정화의 똑똑해진 목소리가 오래토록 귀와 가슴에 남는다. 모처럼 일요일인데 쉬면서 얘들하고 좀 놀아주던지 하지 않고 -. 하기야 시간이 일요일 아니면 허락하질 못하겠지. 이번에 책과 옷 그리고 편지를 보내지 못했단다. 힘이 쭉 빠진다.
그렇게 일요일이면 집에 있고 싶어 하던 당신이-. 집에 왼 것을 빼앗기는가, 나한테 신경을 써 주는 것보다 더 바쁜 일이 있는가. 공연한 잡념이 생긴다. 아직도 결정치 못하고 보러만 다니는가 보다. 왠통 소문만 내는 구나. 얼마 되지도 않는 돈을 가지고-. 범일동 관계는 해결됐을까? 그거나 속히 받았으면-. 원망이 앞서고 실망도 커진다. 그만큼 기다림이 컸었으니까. 다음 또 편이 있을테니 그때 보내라고는 했지만 믿을 수가 없군. 앞으로 두 달을 어떻게 보낸다? 막연하기만 하다. 6시간가량을 걷다. 다리가 아프고 알통이 선다. 저녁에 갑판장과 넷이서 한잔 하다. ‘うま(우마)’라는 조그만 술집! 방과 홀을 합해야 1평이 될까? 서른이 된 젊은 과부가 주인이란다. 모두들 주머니가 비어 맥주병 수를 세어가며 혀로 홡듯 아껴 마셨다. 남편과 사별, 얘가 없는 게 죽고 보니 다행이란다. 낮엔 직장에 나가고 오후 5시부터 12시까지 술을 판단다. 측은한 생각이 들었지만 차츰 얘기를 해보니 오히려 고귀한 인격 같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외국인이라 그런지는 몰라도 솔직하게 이야기를 한다. ‘청춘이 아깝지 않느냐?’고 물었다. 아깝다고 생각하면 무척 아깝지만 그렇게 만은 생각지 않는단다. 지금의 생활에 만족을 느끼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노력하는 데는 오히려 젊을 때가 낫지 않느냐고 했다. 오랜 시간 앉아서 홡으며 마셔도 즐거이 웃으며 응대를 해준다. 11시가 넘어 귀선하다. 교대자 3명이 왔단다. 찾아보지도, 물어보지도 않았다.
4월 2일(월);
오전 8시 보안요원 5명을 제외하고 전원이 상륙했다. 목재검역반은 9시경 승선 9시반에 투약을 실시하다. CH3BR(메칠 푸로마이드) 극(劇)가스란다. 투약 후 계속 누수개소를 찾는다. 좁은 배인데 그나마 제한 구역을 정하고 보니 더욱 무료하다. 쌀롱룸에서 TV를 보다가 화투를 치기도 했다. 목재 검역의 목적은 육상의 산림을 보호하기 위해서 외국 해충의 전염을 막기 위한 것이란다. 즉 나무의 전염병 예방조치인 것이다. 목재소독 한 번에 비용이 7-80만엥, 정박일수의 비용까지 합하면 100여만엥이 넘는다. 그러나 그 비용을 누가 부담하던 그만큼 산림을 보호하기 위한 적극적인 수단에는 놀란다.
농림성의 허가를 받은 민간 청부업자가 행하는데 선원의 상륙비 일인일당 6,000엥도 부담한단다. 계속 육상에서 날라다 주는 도시락으로 끼니를 떼운다. 별로 움직이지도 않고 먹기만 해서 속이 편하질 않다. 무료한 하루지만 결코 나간 것 보다 차라리 낫다. 상륙했다면 술도 마셔야 하고 또 전화하느라 밤새 마음 편치 못했으리라.
3RD. APR. 1973 화요일
13시 완전히 소독을 마친다. Safty Inspection(안전검사)까지 끝냈다. 14시경 총원 귀선하다. 예상했던 대로 눈이 벌겋게 충혈된 놈, 한잔 거득해 고래 고래 고함치는 놈도 있다. 곧 출항하다. 어제 당직자 5명에겐 현금 6000엔이 배당되었다. 푸근한 날씨, 봄비가 오는 가운데 19;30시 細島(Hososhima)에 닻을 내렸다. 현재 내가 어디쯤 존재하고 있는가를 선뜻 알지 못한다. 한참 생각하고 해도(海圖)를 머리 속에 그려보면 일본 구주의 한쪽 가에 있음을 안다. 부산과의 거리, 내 가정과 가족이 있는 그곳과의 거리가 그리 먼 곳도 아니다. 느린 배로 가도 하루면 닿고도 남는다. 그런데도 가슴 깊숙이 안타까움만 쌓은 체 존재의 위치마저 잊고 있으니 도대체가 어떻게 된 것인가?
더운물에 오래토록 몸을 담근다. 수면제를 두 알 먹었는데 쉬이 잠들지 못했다. 이곳도 전신전화국에 있겠지? 있으면 다시 한 번 해봐야겠다. 아무래도 마음이 가라앉질 않는다. 설사 무슨 일이 있다고 가정하더래도 꼭 아내의 목소리를 들어야만 속이 시원할 것만 같다. 자랑스러운 듯한 Capt.의 월간중앙 4월호! 오히려 마음만 어설렁하게 한다. 내일 여기서 Cook(조리사)과 Radido Operator(통신사)가 온단다. 다시 기대를 키운다.
Apr. 6(금) 1973
오후5시. Hososhima을 떠나 名古屋(Nagoya)로 향했다. 6항차를 완전히 마치고 일곱 번째의 항차의 시작이다. 이번 항차는 한국의 어느 곳에 갈 예정이란다. 개새끼들! 얄팍한 족속들이다. 2-3일 동안 무척 인상에 남는 일들이 많았다. 무엇보다 아내의 목소리를 직접 들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4월 4일 오전에 오랜만에 이발다운 이발도 했다. 마침 부두가 곧 길과 연결된 바로 마을이어 좋았다. 오후에 나가지 않고는 베길 수 없었다. 낮에 우체부한테 물었더니 전신전화국이 있으며 24시간 근무한댔다. 10시 넘어 했더니 역시 쉬이 나온다. “아빠 접니다” 하는 소리를 듣는 순간 얼른 말이 잘 나오질 않았다. 아무 일 없단다. 며칠간이나마 원망을 했고 의심했던 것이 죄스럽다. 인편에 보냈단다. 그러면 그렇지. 귀선하는 데로 Cook(조리사)의 방에 갔더니 고단한지 잔다. 내 봇다리가 있다. 살며시 들고 나오는데 눈을 뜬다. 급해서 그랬다고 양해를 구했다. 책, 반바지 둘, 약, 두툼한 편지 뭉치-. 피로도 잊는다. 역시 생각한 데로 ‘My Home Sick'에 걸렸다. 다음 한국 간다니 모든 것 보류하라고 했다. 내일부턴 다시 생활에 활기를 찾을 수 있겠다. Tape가 없어 섭섭타.
새로온 주자 김용웅씨가 함께 日向(휴우가)선식집에 가다. 일본 어디서나 볼 수 있듯이 왼 가족이 모두 노는 사람이 없이 일하는 가정이다. 노부모 내외, 주인내외, 그리고 동생들까지 하나의 일을 위해 충실한 사무원 같이 일한다. 주인 남자에 비해 안주인의 곱상한 인상이 좋고 코끝에 단풍이 든 영감님보다 퍽이나 인자스럽고 덕이 있어 보여 정겹다. 남자보다 여자들이 몇 배 나은 집안인 듯 싶다.
구입에 있어서 전 조리사보다 훨씬 계획적이고 전문 지식도 있다. 한결 안심이 된다. 사람도 깨끗하다. 또 무엇보다 교양이 있어 보인다. 잘 먹는다는 것보다 깨끗하게 정성스럽게 만든 음식이 가장 맛이 있을 것이다. 음식의 맛은 곧 정성이요 사랑의 맛이라 하지 않는가
부두가 다소 넓은 광장을 끼고 있어 오후면 국민학교 학생들이 많이 논다. 3학년 여학생 둘이서 하는 배구에 3항사와 함께 끼었다. 오랜만에 땀 흘리며 운동을 했다. 헌데 2-3학년 짜리 얘들이 팔이 부어 벌겋게 부었으면서도 끝까지 남아서 함께 한다. 외국인인데도 조금도 부끄러워하거나 못해도 포기하지 않는다. 하도 대견해서 물어보니 3학년이란다. 특히 호소시마(細島)소학교 6년생들이라는 黑木(구로키)군, 뚱보 6년생인데 65kg의 체중을 가진 銀一(겡이치)군, 마치 전날 중앙학교 시절의 정원배 군을 생각나게 한다. 2일간 친해졌다. 동전도 바꾸고 내 방에 놀러오기도 했다. 내가 전직 교사였다는데 신기해한다. 모두들 깨끗한 자전거 한 대씩을 타고 다닌다. 특히 여학생들의 옷차림과 자전거 타는 모습은 정말 탐스럽다. 자꾸만 얘들과 얘기하고 싶어지는 충동을 느낀다. 우리 정화, 정주를 요렇게 귀엽게 키워주고 마음 끝 놀 수 있도록 해주고 싶은 강열한 충동과 함께 -. 숙제도 별로 없단다. 점심을 학교에서 전원 급식한단다. 일 1,000엥 정도의 급식비로 -. 입시의 걱정도 아무 것도 없다. 그저 좋아하는 놀이에만 열중하면 되는가 보다. 호소시마! 내가 본 일본 중 가장 아담한 시골이고 정이 느껴지는 곳이다. 자전거로 다니는 가정주부들의 모습도 더없이 성실하고 건전해 보이며, 마음의 여유가 풍부해 보인다. 산중허리에는 아름다운 색깔로 변하기 시작한 무성한 숲 속에 무덤들이 있고 그 곁엔 절이 있어 벚꽃이 만개하고 있다. 무엇보다 도회지의 치열한 경쟁의식 같은 것, 매사에 느리면 살 수 없는 듯한 인상을 주는 쫒김 같은 것을 찾을 수 없다는데 호감이 간다. 유모차에 태워 나온 돌 지난 애를 안고 뽀뽀를 했더니 엄마인 듯한 아줌마가 웃는다. 내게도 요런 딸이 있다고 했더니 보고 싶겠다고 한다. 아무렴 보고 싶고 말고, 심정을 알아주는 모양이다.
전임 이 통신국장의 귀국 편에 편지와 화장품 3개 보냈다. 너무나 시간이 급했다. 2시간만 여유가 있어도 日向시내에 가서 약이라도 사 보낼 수 있었는데-. 마침 화장품점이 하나 부근에 있어 그나마 살 수 있어 다행이었다. 잘 전해져야 할텐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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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해바라기 처럼 늘 당신을 따라 다녔오.
몸도 마음도 아이들도 그리고 하늘에, 바람에, 빗소리에, 기상예보에..
그외는 관심없었오 .그리고 안녕을, 무사무탈하고 안전한 귀국을 빌었오 그래야 안아보지,
아이들도 애비얼굴이라도 봐야 할 것 아니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