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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ct. 14(일) :
흰 머리카락이 부쩍 늘었다. 작년 봄 Africa의 Lagos의 재판이다. 그래도 그땐 지금보다 활동할 수 있는 여건이 되어 있었다. 하루가 이렇게 지루할 수가 없다. 몹시 걱정들을 하고 있을 것이다. 두어달 간 연락이 없었으니-.
Oct. 15(월) :
역시 공친 하루. 오후에 작열하는 태양아래 두어 시간을 거닐다가 결국은 갈 곳을 찾지 못하고 강변 양대추 나무그늘아래서 또 두어 시간을 보냈다. 물 한 모금을 얻어 마시기가 어렵다. 4시. Mr. 한을 만나고 같이 Zubeil까지 가서 겨우 맥주 5Box 그리고 쌀과 몇 가지를 구하여 밤 늦게 귀선. 도중에 Texi 운전수와 짜증섞인 싱강이는 영영 잊을 수 없을 만큼의 분노와 굴욕을 느끼게 했다. 빌어묵을 놈 가다가 콱 쳐박아 버려라. 중동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노고와 실정에 깊은 공감을 가진다.
Oct. 16(수) :
Mr. 한에게 부탁한 소고기 때문에 다시 나가다. 아무런 연락이 없는 데는 어께와 발길이 무겁다. 청수. 선용금 청구하다. C/E 영감 뵙기가 미안하다. 현대 켐프에도 가보다. 사두었던 쇠고기 50Kg! 질의 양부는 고사하고 우선 확보하고 봐야 할 일. 죽어나는 것은 돈뿐이다. 불평들이 많은 모양이지만 역시 먹고 할 일 없는 작자들이 지꺼림이고 -. 언젠가 표면화 되면 한 번 일침을 놓고 호통을 칠 필요가 있다. 찬물만 먹은 하루다. 콧등이 익어 부릅텄다. 흉터는 생기지 않아야 할텐데-. JRC에 Cash Advance $2,000하고 Damaged Limb는 더 이상 보관치 못한다고 Telex하다.
1979 Oct. 17(수) :
공동 News에서 어제 부산지방의 데모소식을 읽다. 마음이 더욱 어지러워진다. 종일 설사와 복통으로 뒤척이기만 했다. 배에다 수건을 대고 있었다.
Oct. 18(목) :
부산 전역에 비상계엄이 선포되었다고 한다. 무슨 변고나 없는지? 소식을 전하지 못한지 3개월이 되어간다. 시간이 지루하면서도 무섭게 지나간다. 얼굴이 콧등부터 벗겨지기 시작한다. 아무래도 이놈의 물길을 그만둬야 한다는 생각이 가시질 않는다. 어서 여기부터 벗어나는 길이 정작 올려나? 억류! 가진자들의 이해 관계로 선량한 선원들이 死藏되고 있다. 이 젊은 힘들, 그리고 마음들을 이토록 썩혀야 하다니 -.
Oct. 19(금) :
날씨가 설렁해진다. 귀뚜라미 소리가 갑판 위에도 요란하다. 가을이 깊어가는데-. 역시 무소식. 오가는 배들도 거의 없다. 마치 지구의 모든 것이 정지한 느낌이다. 날로 먹는 것도 험해져 간다. 막연! 이런 것을 두고 막연하다고 하는 모양이다. 마산에서 소란이 있었다는 공동뉴스 듣다. 그리고 이곳 TV에 조차 방영이 된다. 태풍 20호가 일본 전역을 쓴 모양. 여기 막혀 있으니 이 심한 태풍의 계절에도 거의 잊고 있었다. 출렁이는 바다. 사람들이 사는 사회. 마음끝 활보할 수 있는 곳이 그립다. 생동하는 그 무엇이 그립고 필요한 지금이다.
Oct. 20(토) :
10시 대리점에 가다 4일만이다. 갈까 말까 망설이기도 했다. 16-19일 사이의 Telex찾다. Iraq Receiver는 수락한다는데 Basrh 수의사(Doctor)들이 반대한단다. 어쨌던 내주 초엔 결말이 날거라고-. 그러나 P & I에서는 다시 Barain에서 Expert를 초청하여 Survey할 모양이다. 빨라도 다음주일 한 주일은 잡아야겠군. 송금했다는데 아직 도착하지 않았단다. 대아에 안부 전하는 Telex보내다.
Oct. 21(일) :
저녁 무렵 Mr. Humam오다. 내일 오전 9시 Agent로 나오란다. Mr. Sadiq이 올지도 모른다고-. Damaged Cargo 처리 문제 때문이랬다. 막상 치우려 해도, 그냥 둘려도 문제는 많다. 이왕 사고는 났으니 빨리 치워야 한다. 책임소재는 나중에 따지자. 아무턴 이번 항차에 가장 큰 실책이었던 것이 끝까지 골치를 썩힌다.
Oct. 22(월) :
10시 변호사 Sadiq 만나다. Damaged Cargo 처리 의뢰하고 수배했다. 내일 올거란다. 이미 수배가 끝난 모양이다. 아마 내주 중엔 결말이 난다고 했다. 그리고 2-3일 Basrh에 머물면서 바레인에서 오는 Surveyor도 만난다고. 여기서 양하할 가능성은? 역시 “May be'다. 무엇인가 내일, 앞날에 대한 기대가 없이 산다는 것은 정말 지루하다. 내일, 내주 ... 하던 것이 벌써 10월을 며칠 남기지 않았다.
모든 것이 걱정 투성이다. 부산 소식을 선원들에게 알리지 않고 있다. 야채시장에서 야채구입하다. 작년 Lome에서 밭체로 사던 생각이 난다. 그러나 그보다 훨씬 못한 곳이다. Shipchandler 놈들의 횡포가 너무 심하다. 모두가 개새끼들이다.
Oct. 23(화) :
간밤의 꿈이 신기했다. 아내가 내 어려운 처지를 열심히 도와주려고 발벗고 나섰다. 오후 예기치 않던 변호사 Sadiq과 Mr. Bishop 그리고 2-3일 후에 온다던 Doglas A. Powell 이란 검사관이 왔다. 역시 꿈이 개꿈이 아니었나 보다. 아내의 염려가 깊은 모양. 내일 4명의 Consigner측 Veterinarian(수의사)이 온다나. 그래서 합의되면 토요일쯤 접안하여 양하시작할 것이란다. 아마도 형식상 취하는 검사인 것도 같다만-. 가장 반가운 소식이다. Saloon Class에게 최후의 노력과 협조를 다짐받다.
Oct. 24(수) :
오전에 대강 Mr. Powell과 각 Hold를 점검해 보다. 예상대로 상태는 양호다. 오후 5시까지가 왜 그렇게 지루했었는지? 그러나 기어이 그놈들이 오지 않았다. 전 선원들이 강변뚝만 바라보며 목을 빼고 기다리는 진풍경하며 표정들이 쉬이 잊어지지 않는다. 모든 것이 떨어지고 없는 처지에 두 Australian을 접대하고 먹이기도 여간 고역이 아니다. 쉬이 마음이 가라앉질 않고 잠도 오지 않는다. 내일! 그저 행운을 빌어보자. 그리고 최선을 다하는 것. 이것이 마지막 기회일런지도 모른다.
Oct. 25(목) :
08:40 4명의 수화주측 수의사가 오다. 온도 기록표와 그 동안 Report 한 것들을 검토. 곧 E/Room의 온도점검, 각 Hold의 Cargo들을 검사했다. 심지어 고기를 포떠서 뜨거운 물에 녹여 냄새까지 맡아본다. 이곳 Surveyor로서는 비교적 세심한 Checking을 한다. 결과는 직접 얘기를 피한다. Report로 해야 한다고-. Mr.John의 얘기로는 잘 될 거라고만 한다. 27일경 Berthing하겠다던 계획이 빗나가긴 했지만 아무턴 그들의 기대데로 진행되기만을 바랄뿐이다. 다시 한 번 Shipper측의 역량을 믿어보자. 잘 된다면 늦어도 내주내로는 양하를 마치고 출항이 가능하다는 결론을 점쳐보기도 한다. 결과는 27일 Consignee측과 타합한 뒤 나온다고 했다. 과연 여기서 승리를 거둘 것인가? 아니면 -. 어느 때보다 마음이 어수선하다. 손상된 화물처리는 Mr. John에게 Order, Sadiq과 협의하게 했다.
Oct. 26(금) :
오후 3시경 현대 자재담당 총무 한상규씨가 래선. 놀다 7시경 갔다. 염치없지만 한 번 더 구할 수 있을 만한 부식을 부탁했다. 내일쯤은 무슨 good news라도 있으려나? 한창 좋은 계절임을 방송에서 새삼 느끼게 한다. 김장철도 가까워 올텐데-. 얼큰한 된장찌게, 알싸한 김치! 콩나물 등등, 그런 모든 맛이 너무도 그립다.
Oct. 27(토) :
다시 Agent. 여전히 분명한 대답은 없다. JRL로부터 Telex 3통. 그러나 신통찮은 것들 뿐. Cash $2,000을 모두 Diner로 찾다. Mr. 한에게서 부식사다. 운반비와 시간이 너무 길었지만 부득이 한 일. Boat를 기다리는 1시간 반 동안은 그저 서글퍼기만 했다. 박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듣다. 너무나 의외의 뉴스고 충격이다. 공동 News와 단파방송으로 확인하다. 가난을 기어코 이기려는 그 신념은 많은 공감과 존경을 모았었는데-. 불운의 연속이다. 설레는 마음을 금할 수 없다. 번영된 조국은 우리들 Seamen에게는 무엇보다 중요한 마음의 터전이다. 더 이상 혼란이 없어야 할텐데-. 억류된 상태라 더욱 산란하다. 지도자! 한 사람의 위치는 그가 훌륭하고 위대할수록 깊고 큰 영향을 미친다.
내일 그리고 모래까지가 중요하다. 무슨 소식이 있어야 할텐데. Mr. Sadiq이 Agent에 직접 손상화물 처리를 의뢰했단다. 불길한 예감이 스친다. 희망적이면 그냥 두기로 자기와 나만의 약속이 있었는데-. 다시 담배와 야채 등을 사다.
Oct. 28(일) :
계속 마음이 뒤숭숭하다. 우선 가족들이, 가정이 걱정이다. 무순 변이야 있을까마는-. 가장이 없는 집안, 아녀자 혼자서 지켜야만 하는 가정의 그 적막함과 불안함 등이 가득할 것이다. 더욱이 사회가 불안한 가운데-. 갈 수 만 있다면 가고 싶다. 그와 함께 살아온 모습들이 너무나 생생하게 그려진다. 평범한 가정, 가장 그리고 주부의 원위치를 어서 갖고 싶다. 땅을 딛고 사는 그 당위성을 찾는 것은 아무래도 자신의 마음가짐에서 나온다고 믿는다. “Contentment is better than rich (足함을 아는 것은 富보다 낫다)”는 말의 의미를 깊이 새겨 볼만하지 않은가? 은영이를 낳고 난 후의 예상외로 큰 충격과 실망에 대하여 아직 아무런 위로의 말조차 보내지 못하고 있다. 심정이야 알고 또 나도 마찬가지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인걸.
더 이상 그를 떠나있다는 그 자체가 내가 지나친 것이다. 어떤 일을 해도 함께 그리고 더불어 살고 싶은 뿐인 지금이다. 내일은 또 ? 먹고 싶은 것, 보고 싶은 것 그리고 하고 싶은 것들이 너무나 많이도 쌓여지고 굳어져 간다. 두 번째로 받은 공동통신은 더욱 뒤숭숭하게 한다. 과연 그것이 사실들이라면 그걸로서 그치고 어서 빨리 안정을 되찾아야 한다.
Oct. 29(월) :
Damaged Cargo 처리를 위한 담당자를 기다렸으나 소식이 없다. Mr. 한이 방선. 그저께 부탁한 맥주는 구입이 어렵단다. Film 3통을 주다. 9월말경의 신문을 가져왔다. 그것도 News다. 여전히 마음이 차분하질 못하다. 오늘까진 어쨌든 결말이 나야하고 또 나게 되어 있는데-. 이제는 지칠만큼 지쳤다. 당장 내가 해야 할 일도 그렇고 가족들도 그렇다. 문경탄광의 최대 사고 소식도 들었다. 왜 이렇게도 어지러운가? Kwiat T.V에서 본 박 대통령의 빈소가 뜨끈한 침을 넘기게 하고 콧등을 시큰하게 한다. 죽으면 저렇듯 허무해지고 마는 것을-. 살아 있을 동안의 생활 그 자체가 더없이 중요하다는 것을 한층 절실하게 느낀다. 인간의 삶이란 것. 그 의의를 다시금 생각하자. 지금 여기서 이렇게 보내는 이 시간의 의미는 과연 어디 있을까? 내가 받는 급료가 그만한 가치를 갖는다고는 할 수 없을 만큼 작다. 어서 가고 싶다
Oct. 30(화) :
기대에 부풀었던 Agent. 그러나 역시 행운은 나를 버린다. 아무런 Telex도 없는 걸 보면 시원스런 결론이 안 나는 모양. P&I에서 온 것을 봐서 거의 어떤 결론에 도달한 것 같다고 Abud Alri 영감이 추정만 하다. 하기야 제놈이 속속들이 알 수는 없는 것이다. 그 때문에 또 한사람이 London에서 온다나 -. 빌어먹을 백날 사람이 와봐야 늘 그렇고 그랬었는데 무슨 놈의 통뼈가진 놈인가? 짜증과 허탈 그리고 울분뿐이다. 내일부터 4일간은 이곳의 공휴일이란다. 갈수록 태산이라더니- Shipper Mr. Jhon이 갈 때만 해도 지금쯤은 접안을 해서 양하중일 거라고 기대에 부풀었었는데-. 아예 체념해 버리는 것이 오히려 속이 편할라나. 개같은 이라크놈의 새끼들! 모두가 그저 그렇다. 선원들도 지쳐간다.
Oct. 31(수) :
계속 바람이 분다. 써늘해져 가는 날씨. 다시 반월을 본다. 세월이 그야말로 덧없이 흐른다. 강물처럼. 체념해버리기에는 너무나 안타까움이 남는다. 아직 3개월이 남았다지만 그보다 더 먼 곳에 있는 내 가족과 내 가정이 있질 않은가?
10월도 마지막 보낸다. 이 강에 닻을 내린지도 36일째다. 분명히 계절도 바뀌었음을 알린다. 혹시나 어떤 결말을-. 하는 한가닥 바램에 하루를 걸기엔 너무 지루하다. 이래선 안 된다고 스스로 다짐을 하고 추스리려해도 마음이 가라앉질 않는다.
몸도 마음도 쇠약해져 가나보다. 아무리 생각해도 고의성이 있는 것만 같다. 송화주 측의 입장도 속시원이 들어봤으면 싶다. 가진 자들의 횡포에 약한 선원들의 희생만 너무 크지 않는가? 우리들도 네놈들과 꼭 같은 인간인 것을!
1979. Nov. 1(목) :
11월이다. 저녁으로 제법 한기마져 느끼게 한다. 이곳은 X-mas기간이다. 강변에서 가끔 놀이하는 모습도 본다. 비록 기약 없는 막연한 바램이지만 그래도 한가닥 희망을 갖는 것이 오히려 조급함과 초조함을 더해 주고 있다. 마지못해 하루를 맞고 보내고 있을 따름이다.
Nov. 2(토) :
말없이 흐르는 이 강물처럼 그래도 시간은 흐른다. 마음도 머리 속에도 그냥 텅텅비어 있는 상태이다. 변화 없는 이 생활이 더 더욱 사람을 낙후시킨다. 인간이 그냥 먹는 것만으로 살 수 없는 것이 여실히 느낄 정도면 극한 상황까지 왔단 소리 아닌가?
시원스럽게 소식이나 전하고 받을 수 있었으면 또 좀 나을 터인데-. 단 1주일이면 끝날 수 있다는 그 내일 내일하는 바램이 벌써 달을 바꾸었다. 이 시간들은 정말 아깝고 억울한 것이다. 땅을 뜨지 말자. 그것뿐이다. 포근하고 보드라운 아내의 살내음이 너무 너무 그립다. 섞여 한데 어울려 녹아버려도 좋을 것을-. 책상머리에 꽂힌 세 얘들의 사진이 부끄럽다. 무사들 한지? 이 꼬락서니를 알면 얼마나 실망들이 클 것인가 말이다.
Nov. 3(토) :
Kwait TV에서 박 대통령의 영결식 광경을, 그리고 단파 방송으로 녹음중계를 듣다. 정영 영원히 가신 것이다. 조기를 게양하게 했으나 아무래도 울적한 기분이다. 지금의 이 처량한 신세가 더욱 그렇게 만든다. 적막강산이라더니 -.내일쯤은 무슨 기별이 있을라나. 오늘은 일본에서 또 휴일이다. 그저 지쳐간다. 둥그런 보름달이 너무도 크게 가까이서 뜬다. 하루의 삶이 그리고 인생이 이렇듯 값없이 느껴져 본 적은 없지 않는가?
Nov. 4(일) :
Mr. 한상규씨 다녀가다. 궂은 날씨가 더욱 스산하다.
Nov. 5(월) :
Agent 다시 갔으나 역시 감감. 2-3일 후 Mr. Sadiq이 온다고 했다. P & I Manager Mr. Dawood에게 술 한 병을 줬더니, 손대기 조차 않는다. 독실한 신자라고-. 어딘가 사람이 성실하고 달라 뵈더니 역시 그랬었군. 시장에서 다시 부식과 쌀 등을 약간 사다. 43일 만에 Provision Store에 넣어 두었던 상한 양고기를 처리하다. 예상보다 상태가 좋아 쉬이 처리할 수 있었다. Mr. Hasim의 엉큼한 속셈은 역시 이곳놈들의 전형적인 것이다. C/E가 손목을 다쳤다. 공연히 거든다고 손을 데드니-. 편지 보내란 Telex를 Ocean Carriers에 하다. 네 아이들이 무척 보고 싶다. 아직 인사조차 못한 넷째가 더욱 보고 싶다. 엄마와 세 언니들한테 미움을 받지나 않는지? 태어난 너희들에게 무슨 잘못이 있는가? 이 세상에 태어난 것만으로도 축복을 받아야 하고 떳떳이 살아가야지. 내가 할 수 있는데 까진 다 해주마. 탈없이 잘 자라기만 해다오.
Nov. 6(수) :
한결 마음이 가벼워진 듯하다. 어제 처리한 상한 Lamb와 며칠간 부식을 구입한 것이 바로 그것이다. 저녁때 다시 Mr. 한이 몇 가지 어려운 부식을 일부러 싣고 왔다. 그 성의가 정말 고맙다. 그러나 마음 한 구석에 뭉처져 부풀기만하는 그 무엇이 계속된 근심의 씨앗이다. 쉬이 잠들지 않는 밤이 괴롭다. 가끔 꿈에서 뵈는 아내의 모습이 고맙기도 하지만 걱정은 더욱 쌓여간다. 근100여일간 땅을 딛지 못한 선원들의 고충도 사실은 문제다. 흙! 그것은 영원한 인간 삶의 터전이 아닌가? 그저께 온 Mr. Hasim의 얘기로는 10여일 내로 결말이 날거라고 했지만 그 녀석의 말은 믿을 수도 믿지 않을 수도 없다. 종일 ‘黑岩 重吾’의 ‘폐허의 ○’을 읽다.
Nov. 7(수) :
날씨가 꽤 추워졌단다. 내일이 입동이라고-. 연탄이랑 김장이랑 어떻게 쉬이 장만했는지? 집이 낡아 더욱 염려스럽다. 편지들을 붙이자는 의견이 있는 모양이다. 일본 Owner를 경유하는 방법으로 해서라도 -. 다 같은 심정이지만 그러나 안전을 위해서 참는 것이 낫지 않을까도 싶다. 내일쯤 Mr. Sadiq이라도 만날 수 있으면 좋으련만-. 이제는 나가기도 지쳤고 아무런 소식이 없을 때 가져지는 실망이 두렵기도 하다. 며칠간의 불면에 눈이 따갑다. 3개월 이상 부질없는 시간이 더 한층 내 자신을 낙후시킨다. 시간, 그것은 자기 자신이 만족하게 쓰는 것이 가장 유용한 것이다. 이 아까운 시간을 이렇게 흘러 보내는 것도, 그렇다고 마음 편히 쓸 수 있는 정신적 자세를 갖지 못하는 무척이나 불행한 일임에 틀림없다. 자신이 아직도 자신을 이지기 못하고 있다는 증거는 아닌지?
Nov. 8(목) :
Agent로 향하는 발길이 무겁다. 별반 기대도 없지만 아무런 소식이 없음이 더욱 실망스럽다. 야채시장도 이제 낯이 익어간다. 감자 양파 사과 등이 있을 때는 엄청 싸고 없을 때는 부르는 게 값이라 항상 불안하다. 시장 경제원리가 바로 이런 것이리라. 토요일 Mr. Sadiq이 Basrah에 오면 방선토록 요청. Telex 및 P & I의 Dawood에게 부탁해두다. Mr. 한이 다시 다녀가다. 그의 성의에 충분히 보답해주지 못해 송구스럽다. 편지가 몹시 신경을 건드린다. 맘끝 보내고 받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으랴만 -. 좀 더 두고 보자. 아직은 여건이 허락질 않으나 누가 뭐래도 내 자신의 안전보다도 전체 선원 혹은 개인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 단순히 전한다는 것만이 목적이라면 문제가 다르겠지만.
Nov. 9(토) :
Provision Store가 아직도 완전히 탈취가 안 된다. 어서 정상이 되고 뭣인가 좀 채워 넣어야 하는데 -. Mr. 한과 성이 방선, 양고기로 대접하다. 거듭 그의 협조와 이해를 사례하고 부탁했다. 그 빚은 부산에서 갚는다고 하더래도-. 오늘이 여기선 일요일. 아무런 존재가치도 찾을 수 없는 듯한 정적이 감돈다. 우리 자신이 세상의 모든 것으로부터 소외되어 버린 체 몸부림치고 있는 지금이다. 전에 없던 빈혈증세가 가끔 온다. 심경과민 탓인가? 아니면 무엇이 모자라서 그런가?
Nov. 10(토) :
아무런 의미가 없으나 또 한 주일을 닫는다. 11월도 중순으로 접어든다. 시원하고 입안이 화끈한 김치가 너무 먹고 싶다. 그것은 내 고향의 맛이고 본연의 맛이며, 아내의 그리고 가정의 맛이기도 하다. Mr. Sadiq을 종일 기다려도 헛사. 사랑하는 사람을 이처럼 기다리기라도 했으면 -. 개새끼들! 세상의 어느 놈도 믿을 수가 없다.
Nov. 11(일) :
역시 Mr. Sadiq에게서는 무소식.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인가? 가능하다면 직접 Baghdad까지 가보았으면 싶다. 아무런 기약이 없음이 더욱 불안스럽게 한다. 선원들 사이에도 역역히 불안함이 들어 난다. 당연한 일이다. 최규하 권한대행의 특별담화를 듣다. 안정! 그것은 모든 것의 기본 바탕이 된다. Mr. 한이 마른명태, 깡통두부, 당면을 보냈다. 하늘이 도운다고 할까. 비록 내용이 별로 좋지는 않지만 지금 우리에겐 그 질을 논하고 따질 처지가 아니다.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Bonus를 현지에서 받고 싶다는 의견들을 모아 C/O가 보고한다. 별라별 생각이 드는 가보다.
Nov. 12(월):
갑자기 일어서면 앗질하게 핑 도는 정도가 꽤나 심하다. 왜 그럴까? 허탈상태! 바로 그것이다. 모든 것이 귀찮아지고 있다. 의지가 감정을 이기지 못하는 것도 수양부족의 탓일 것인가? 모든 상념과 행동 그 자체들이 오직 한 개로 뭉쳐져 돌멩이처럼 굳어져 간다. 아무 쓸모없이 영영 굳어져 버릴 것만도 같다. Mr. 한이 쌀을 두 포대 전해준다. 무엇을 바라고 또 어떤 사람인지는 확실히 모르지만 그 성의만은 정말 고마울 따름이다. 내일은 야채라도 좀 사야겠다. 아마도 편지가 와 있을지도 모른다. Ocean에서 즉시 띄웠다면. 연일 계속되는 불면에 뒤숭숭한 잠결이다. 그저 모든 것이 그립고 보고 싶고 먹고 싶고 하고 싶을 뿐이다.
Nov. 13(화):
Agent. JRC로부터 송 ‧ 수화주사이에 협상이 결렬, 다른 항에서 양하하거나 아니면 NZ로 회송할 예정이라는 것과 아직도 협상중이란 서로 다른 내용의 두 가지 Telex를 받다. Mr. Sadiq 만났고 오후 4시 Re-Survey하러 온다고 했다. 무슨 놈의 검사를 또 하는가? 아무래도 Receiver측의 고의성이 있어 보인다. 아무튼 언제 출항을 하라 해도 할 수 있는 준비는 갖추어 두자.
일부 부식은 구입, 일부는 선식에 의뢰하다. 악질적인 택시 운전수에게 맥주 1박스 사는데 사기를 당했다. 결국 그 한 놈 때문에 전 Iraqi가 욕을 먹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답답해서 사야할 형편이었기에 울며 겨자 먹는 식이지만 아무래도 그 상투적일 것만 같은 수법이 얄밉다.
No,1 Hold에 R-22 Gas 누설이 있었다. 서울이 영하9도랬다. 벌써 그렇다면 어쩌나? 결국 검사차 온다던 Mr. Sadiq 일행이 오지 않았다. 역시 믿을 수 없는가?
Nov. 14(수) :
저녁때 9월25일 날 왔던 그 판사 인솔하에 3명의 수의사와 변호사 등의 승선하여 재조사를 벌린다. 같은 일을 가지고 같은 판사가 翻意 시킬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Mr. Sadiq의 얘기로서는 낙관적이다. Automatic Record를 기어이 요구한다. 결국 Veterinary들의 농간임이 들어 난다. 다시 한 번 더 기대를 걸어 보자. 18일 일요일에 다시 Mr. Sadiq 일행이 온다고 했다. 부식 일부 가져오다.
Nov. 15(목) :
오후 늦게 어제의 수의사 2명이 다시 오다. 근 3시간에 걸쳐 각 Hold의 양고기 Sample를 채취해 간다. 결국 Veterinary 놈들의 고의적인 행위였음이 더욱 분명히 들어 나고 있다. Bacteria와 Fungus(곰팡이)를 배양 검출한다는 소리다. 어처구니가 없다. 마음대로 하고 될대로 되라지-. 결국은 네놈들이 잘못이 들어나고 말테니까-. 아마도 배양검사 결과 ‘Fit for human consumption’이 되면 법원의 판사에 의해 다시 판결이 번복될 모양이다. 그러면 결국 이 달도 여기서 채워야 한다는 소리다. Mr. 한과 성이 도라지를 보내주다. 저녁에 온다고 했으나 오지 안았다. MDO 110톤 받다. 별반 기대하는 바도 없다. 이제 또 무슨 이유를 달고 나오려는지?
Nov. 16(금) :
어제밤 1시 20분경 Mr. 한이 오다. 술을 3병이나 사들고-. 두어시간 기다리다가 안 돼 바스라까지 가서 보트로 왔단다. 새벽 3시까지 마셨다. 그의 성의는 아무래도 고맙다. 종일 하품만 했다. 확실히 술이 약해진 탓인가. 몸이 약해진 탓인가, 그도 아니면 의지가 약해진 것일까, 조금만 마셔도 이겨내질 못한다. 이래서야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오후에 다시 한 병을 더 비우고 8시경에 하선했다. 일부 선원들의 불만이 있다는데 화를 냈다. C/E의 건의, 그리고 C/O. Bsn의 얘기들이 상당한 차이가 있다. 사람들의 본심을 보는 듯도 하다. 인덕이 없다고 하던 얘기가 생각난다. 전체 선원들의 질은 내 자신도 인정한다. 또한 3-4개월 갇혀있는 실정까지도-. 그러나 책임을 가진 사람들의 이중적인 발언들을 그 사람의 인격을 증명하는 것이다. 내일은 다시 모아서 얘길 해야겠다.
Nov. 17(토) :
결국 한가지로 귀착이 된다. 부식문제 -. 그 ‘입’이 오나가나 문제다. 먹는 것도 중요하지만 입으로 시부리는 것도 문제다. C/K 황이 누구보다도 성실하고 근면하다. 그런데도 욕을 먹어야 하는 것은 곧 그의 직책 때문이다. ‘이해’. 그것이 어느 때보다 절실히 필요한 지금이고 자중이 요구되는 때임을 새삼 경고를 했다.
‘うまい語が あり’ 읽다. 역시 귀국일이 가까워 짐에 따라 떠오르는 ‘다음’ 그것이 문제가 되어 온다.
Nov. 18(일) :
상육. 편지 찾다. 그러나 Agent 담당인 Mr. Abudali와 P & I의 Dawood는 Baghdad 출장 중이랬다. Mr. Sadiq에게도 연락이 없다. 본선 때문일까? 편지만 가지고 바로 귀선하다. 정화, 영길이 것 모두 7통이나 된다. 무엇인가 후련함이 스친다. 모두들 만족스런 표정이다만 편지가 없는 4명의 이유는 뭘까?
모처럼 받은 아내의 그리고 귀여운 내 딸 정화의 편지가 그리 반가울 수가 없다. 근 4개월 동안 소식전하지 못해 몹시도 궁금해 할텐데-. 어서 가고 싶다. 이제 겨우 3개월을 남겨두고 있지만 지금 머무는 이 상태가 곧 시간을 잡아두고 있는 느낌이다. 새삼 내일이 염려스럽기도 하다. 기어이 5남매를 키워내야 할 것만 같다. 뭣이 그리도 큰 영향과 타격을 주는 것일까? 아내의 지나친 마음씀이 몹시 염려를 낳는다. 그렇게 중요한 문제가 아닌 것인데. 첫아기를 낳을 때처럼 생각하면 되지 않을까. 그처럼 생각해주는 것은 정말 고맙고 미안스럽다. 정영 내 불찰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좀 더 냉정을 찾고 내 심정을 이해해 준다면 그토록 큰 마음의 병을 얻진 않을 것이다. 그만두고 가야 할 만큼 심각성을 갖지 못한 내 자신의 생각이 여기서 두드러진 차이를 보인다. 삶이 무엇인가? 하나를 더 갖고 안 갖고는 요즘 같은 세상에 그와 나의 뜻에 따른 것이 아닌가. 우리들이 마음만 먹으면 못할 것도 없고 하나 아니라 몇도 더 가질 수 있다. 문제는 그 자체가 아니다. 은영이가 넷째 딸로 태어남으로 해서 가져온 아내의 타격과 마음의 흔들림 바로 문제는 그것이다. 사람이 자신이 뜻 같이 되지 못하는 일을 가지고 그처럼 실망을 가진다면 해결방법이 없다. 불가항력의 일을 해명하기 위한 수단이 곧 운이니 복이니 팔자니 하는 것이다. 하나를 더 낳는 것 그 자체보다 그 결과로 아내가 입어야 할 영향이 몇 십배 두렵고 걱정스럽다. 그것을 충분히 납득하지 않는 한 허락할 수가 없다. 결국 함께 하지 못하므로 대화의 단절이 가져오는 결과이기는 하지만 너무나 기대 밖의 일들에까지 지나친 신경을 쓰고 그로 인해 자신을 학대하는 데는 지금까지 보지 못한 아내의 새로운 면을 보는 듯도 하다.
다소 마음이 돌려지고 새로운 각오를 서서히 굳혀가는 듯도 해서 한결 마음이 놓이기는 한다만 어서 그 본래의 자신을 찾아주었으면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너무도 일방적이고 나를 무시한 처사인 듯도 해서 마음이 착찹하지만 원래가 부부가 있고서 자식이 생겨나는 법이다. 자식은 본능적이고 부부는 이성적이고 애정적인 것이다. 지금의 심정으로서는 단산하고 싶다. 욕심이 없어서가 아니라 갖고 싶은 그 바램보다도 지금보다 더 큰 실망을 사전에 막음으로서 내가 택했고 끝까지 동반해야 할 사랑하는 아내를 지켜야 하기 때문이다. 아들보다 내겐 그가 더 소중하다는 사실은 누가 뭐래도 나만의 것이다.
Nov. 19(월) :
Mr. Sadiq과 Mr.M.GAlloway가 다녀가다. 수일내로 결말이 날거라는 같은 소리만 하고 갔다. 밤 10시 넘어 Mr. 한 그리고 김재천씨가 방선하다. 한 번씩 Survey나 Lawyer가 다녀가면 2-3일씩은 새로운 조급증에 사로잡힌다. 믿고 믿어온 것이 결국 2개월을 맞는다. 8월 14일 외항 도착, 9월 16일 접안 그리고 벌써 11월 19일이다. 또 며칠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 신경이 더욱 쓰이는 아내의 엽서, 아들에 대한 그의 집념이 너무 강한데 새삼 놀란다. 더 낳아 보는 것은 문제가 아니지만 역시 결과에 대해서는 신중을 기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제는 더 승선치 않는 다고 한다면 과연 내년부터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부풀데로 부푼 욕망과 눈과 사고방식들을 제자리로 되돌리는 것도 문제가 되지만 나태하고 안일, 그리고 뒤떨어진 현대 감각을 바로잡는 것도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다시 Salary man을 하는 것도, 그렇다고 막상 백지상태에서 Venture Business를 시도하는 것은 더욱 모험이 될 뿐이다.
Nov. 20(화) :
船主의 꿈. 그리고 냉동고의 꿈은 아득하기도 하지만 역시 뭘 해도 귀하고 숱한 경륜을 필요로 하고 있지 않은가? ‘Nothing Venture, Nothing Have'라고 했지만 아무래도 모험을 감행하긴 늦은 것 같다. 서울 형님이 더욱 곤난해 진다니 참고할 일이다. 지금까지 쌓아 올린 탑을 위한 그간의 희생과 노력도 중요하지만 앞으로 더욱더 견고하게 지키고 쌓아올려야 하는 것도 어렵다. 지난 3년간. 그냥 헛탕만치고만 시간들이 너무 후회스럽다. 뭣인가 한 가지를 위해 전공을 가졌으면 좋았을 것을-. 아내가 그리고 귀여운 딸들이 보고 싶다. 미치도록-.
Nov. 21(수) :
느닷없이 Mr. Humum과 Doctor 4명이 왔다. 또다시 Sample을 채취한다고 한다. 처음엔 손도 못 대게 하더니 결국은 밖에 꺼집어 내서 하자더니 본선에서 해달라기까지 한다. 역시 형식적임을 암시한다. 오늘쯤 어떤 결말을 기대하고 나갈까도 생각했었는데 -. 이 달을 또 보내야 하는 것일까? 절망. 과연 그럴까? 왜 이리도 일이 꼬이고 설키기만 하는가? Auto Record를 그들도 원한다. 너무도 엉터리를 지껄이는 통에 미친다. 밤하늘의 오리온좌의 3별이 더욱 멀어져 보이고, 귀국길이 그리고 날짜가 아득하기만 하다. 언제쯤 이 지옥을 벗어날 수가 있을 것인가?
Nov. 22(목):
Agent 나가다. 역시 아무런 소식이 없다. 그러나 아무래도 JRC에 Telex로 Re-Survey사실을 알려야겠고, 먹고 살기 위해선 Cash Advance라도 더 해야겠다. JRC. 대아, OCEANCA 그리고 Mr. Sadiq에게 각각 Telex만 하고 귀선.
OLB-2 김종을군의 Pay를 동결하도록 하다. 한가정의 불화는 어줍잖게 이루어지는 수가 있다. 그의 막내동생 짓이란다. 또한 그렇게 허술하게 자기의 급료를 관리하고 취급하는 것도 문제다. 밤11시경 Mr. 한이 다시 방선. Jin 한 병과 안주까지 가져왔다. 내일이 휴일이라고 했다. 김O천씨와 결별했다는 얘기가 자꾸만 마음에 걸린다. 가급적이면 어려워도 더 이상 신세를 지지 말아야 하는데-.
Nov. 23(금) :
Mr. 한이 다시 나가서 술을 사 가지고 이양상씨와 함께 왔다. 모처럼 또 한잔 했다. 알고 보니 Mr. 한도 인연인 것 같다. 서울의 영호가 살아있었으면 더욱 좋은 화제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김치열장관이 처고모부가 된다고 했다. 역시 영호를 알고 있다. 다소 그의 말이 과장되기는 해도 무역에 관한 경륜은 있는 모양이다. 가져온 11월3일자 신문에서 박대통령의 피살경위를 자세히 읽었다. 어처구니 없는 일이다. 세상은 넓고도 좁은 것을 새삼 느낀다. N.Z나 Aus.에서 전복을 먹지 않는단 얘기는 처음 듣는 일이다. 그게 사실이라면 김진영형과 한 번 연락을 가져 볼만도 하다.
Nov. 24(토) ;
내 39번째의 생일이다. 그러나 아무한테도 얘기할 수도 없다. 나나 아내 혼자서 만은 알고 핕밥이라도 지었을 것이다. 뒷덜미가 뻐근하고 눈이 침침하다 종일을 빈둥빈둥하는 것도 죽을 맛이다. 모든 것이 썩고 녹쓸고 문드러져 간다. 아내를 향한 편지가 이어져 나가질 않는다. 마음이 더욱 앞선 탓인지? 굳어버린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Nov. 25(일) :
느닷없이 그제의 Doctor 한 녀석이 방선. 양고기 3마리를 가져가겠단다. 거절하다. 이유가 분명하지 않다. Mr. Humum이라도 동반하라고 했다.
Mr. 한이 성냥을 갖고 와서 점심을 먹고 가다. 아무래도 일일 어려워 질 것만 같은 예감이다. JRC에 전화라도 하자. 11월도 마지막 주일이다. 도데체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가 없다. 그놈의 얘기로는 아직 Report가 덜 됐다나? 그걸 어떻게 믿어? 무슨 놈의 끙끙이 속인지 도데체가 캄캄하다.
Nov. 26(월) :
어제 그 놈의 Doctor가 다시 오려나 기다렸으나 헛사. Report 작성하다. 아무래도 수화주측의 고의성이 엿보임을 강조해야겠다. 내일쯤 다시 주부식을 구입해야 할텐데-. Cash가 와 있으려나? 이 강 속에 갇히고 억류된지 60일째다.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는다. 사람이 산다는 것이 얼마나 복잡 미묘한 것인가? 이 좋은 시간들인데-. 과연 방법이 없는 것일까? Shipper측은 뭘, 어떻게 하고 있는 것인가? JRC로부터 Telex를 받지 못한지도 꽤나 오래됐다. 일간 대아에도 전화를 해보는 것이 좋겠다. 내일모래면 12월이다. 삼국지를 다시 한 번 읽어볼거나.
Nov. 27(화) :
Agent 또 나가다. 아무대서도 연락이 없다. Owner로부터 송금에 관한 답신도 없다. 빌어먹을 -. 대아에도 분명히 Telex가 들어갔을 터인데 왜들 연락이 없는가? Mr. Sadiq에게 전화했으나 역시 부재. P & I 담당의 Mr.Dawood의 친절이 고맙다. Sadiq의 Boss인 Mr. Kusay가 Basrah에서 역시 절충중이라고 알려준다.
과연 어느 놈이 진짜고 무얼 어떻게 하고 있는 것인가? 재수없이 Ship chandler도 없다. Mr. Abudali에게 약간의 달러를 교환. 야채 조금 사들고 귀선하다.
Nov. 28(수) :
갈수록 태산이다. 오늘 약간의 바람이 있더니 기어이 2번이나 Eng.을 사용했다. JRC 및 Owner에게 보낼 Report를 만들었다 지금까지 Survey한 것을 차근차근히 적어놓고 봐도 분명히 석연찮은 점을 찾을 수 있다. 분명한 고의성이 있다. 수취하려면 지금까지 버틸 아무런 이유가 없지 않은가? 머리가 무겁고 잠이 부족하면서도 숙면을 못한다. 아무런 힘든 일도 없는데 입술이 갈라지고 피가 난다.
Nov. 29(목) :
다시 Agent에 가야 하는데 아침부터 비가 찔끔거린다. 며칠 더 기다려야 한다. 늪 같은 뻘길이 다시 굳어야 걸음이라도 제대로 걸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려나 먹어야 할 식량은 확보해야 한다. ‘有備無患’이다. 시원한 김치맛을 잊은지 한참 오래되었다. 지금이 한창 제철인 것을 -. 그래도 그 동안 아무탈들 없이 잘 지내주는 것이 천만다행이다. 매일 먹고 노는 일이 오히려 고될 뿐인 지금인데-. 무엇인가 해야 한다는 생각이 가득하면서도 쉽게 손에 잡히지 않음은 나 혼자만이 아닌 듯 하다. 그저 시간을 잊을 수 있는 그 무엇이 있어야 하는데-.
Nov. 30(금) :
11월도 마지막이다. 이러다간 금년을 이렇게 보내 버릴런지도 모른다. 바람이 심하다. 그것도 꼭 낮 동안만 그렇다. 하루 한 두 척씩 출입항하는 배들의 그 ‘움직임’이 한없이 부럽다. 무릇 살아있는 것은 쉬지 않고 움직여야한다. Surveyor들 중 누가 의뢰했던 검사를 했으면 반드시 그 결과에 대한 보고서가 있어야 할 것이 아닌가. 계속 몸도 마음도 무겁다. 바깥 기운이 차츰 내려간다. 그 더운 여름철이 어느새 이처럼 변해버렸다. 겨우 왕복 250m되는 배를 두 바퀴 달리는데 숨이 찬다. GW 최군의 말처럼 뼈가 굳어가는 지도 모를 일이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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