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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v. 3(토) :
남미 Peru의 관문인 Callao 입항. 5일 출항 예정이다. Peru의 수도인 Lima 그리고 역사적인 잉카문명의 관광지까지 가보고 싶었지만 Loading을 위해 다음 기회를 보기로 하다. 생각보다 역시 부두 질서가 잡혀있어 다행이다. 그러나 자동소총을 든 군인들이 지켜야하는 실정이라면 시사하는 바도 많다. 정문 앞에 숱한 Bar에서 울려 퍼지는 한국판 노래들은 곧 제2의 부산항을 연상케한다. 숱한 불행의 씨앗들이 뿌려져 있음도 틀림없으리라. 집적대는 Senorita들을 거들떠 보기 싫은 것도 나이가 들었다는 것만이 이유가 아니다. V,D에 대한 공포증 그리고 Wife에 대한 의리 같은 것이 자신을 허락하지 않는다. 구아야킬에서 산, 짚 같은 배추 김치가 며칠간 고퉁스러웠는데 통배추를 살 수 있어 한결 구미를 돋군다.
Nov. 7(수) :
Chile의 맨 북단 항구 Arica에 입항. 조용한 포구이다. 남미 대륙의 중간에 바다가 없는 Volivia로 가는 대부분의 Cargo가 여기서 양하된다. 여기서 험한 안데스 산맥을 넘어 육로로 간단다. Chile 자체 보다도 볼리비아를 위한 항구라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비가 오지 않은 모양으로 산이 그냥 모래덩어리다. 삭막한 느낌이다. 거리에는 가난의 빛이 역역해 보인다. 현대자동차에서 초기에 만든 ‘Pony’차가 많이 보이는 것이 인상적이다. 남미중에서는 그래도 비교적 안정된 곳이 이 Chile라고 했다. 아직도 3군데를 더 들러야 양하가 끝난다. 매일의 생활이 고르지 못하다. 잦은 출입항 때문이다. 그런대로 정신만은 잃지 않고 있다. 만사가 뜻 같지 못함이 곧 뜻이 약해서만은 아니다. 일본이 잡지 ‘文藝春秋’ 10월호에 실린 度部 昇一(토베) 교수의 ‘角榮(다나카 가꾸에이 전 수상)재판에 이상있다’는 제목의 글이 재미있다. 영문학자이면서도 최고법관, 일류 신문사를 상대로 명쾌한 논리를 전개하면서 통쾌하게 반박하는 그 과정과 그렇게 할 수 있는 사회적 여건이 부러울 만큼 좋아 보인다. ‘재판이란 피고측이 말하는 것을 Check 하는 것이 아니고 검찰측의 얘기를 Check하는 것이다’
Nov. 9 :
Chile의 Arica항에서 남으로 약 130여마일 떨어진 Iquque항을 06:00 출항. 꼬박 밤을 센 것이다. 낮에 1시간 저녁에 1시간을 걸었다. 흙을 밟으며 걷는 것이 좋다. 조그만 시가지, 비가 없어 왼통 모래산뿐이라 먼지투성이다. 아담하게 정리된 시가지이긴 하지만 역시 넉넉하지 못하다. 그러나 학생들, 특히 여학생들의 예쁘고 밝은 웃음이 섞인 표정들이 무척이나 미래지향적으로 느껴진다.
종일 잠으로 떼웠다. 왜 그리 피곤한지 모르겠다. 몸 보담 정신적인 피로인지도 모르겠다. 입항 중엔 잠시도 마음을 놓을 수 없는 Tight한 생활이 아마도 Callao에서 끝나고 출항할 때까지 계속되리라 여겨진다. 좋은 날씨인데도 먼 남극쪽에서 밀려오는 Swell이 심심찮다.
Nov. 11(일) 1984 :
17:20시 San Antonio 외항에 닻을 내렸다. 강한 남풍으로 당분간 출입항이 폐쇄중이란다. 결국 한 밤중에 접안. 내일 오후에 다시 뜨기로 하다. 3-4년 전 이곳에 들렸을 때 Joky Bar의 추억이 있다. 퉁퉁한 주부인 듯한 중년부인의 솜씨 있는 Piano연주가 무척이나 인상적이기도 했었다. 그리고 그 작달막하고 통통한 Senorita의 기억도-. 6일부터 Chile 전역에 비상계엄령이 선포. 통행금지가 자정부터 05:00시까지 실시 중이랬다. 이게 무슨 날 벼락이람. 군사 쿠테타가 심한 남미라고 했다만 실제로 당해 보기는 처음이다. 경쾌한 Flamingo 박자에 맞추어 발을 구르며 Wine 한 잔을 할 수 있는 곳인데-. 노변과 산야에 흩어져 있는 진한 색의 빨강, 노랑색의 꽃을 공들여 캐다 옮겨 나무로 만든 분에 심었다. 잘 살려야 할 텐데.
Nov. 13 :
어제 저녁 때 Valpariso 외항에 도착. 오늘 아침 일찍 접안했다. 작년 4월의 기억이 새롭다. 그때 만났고 벤즈 차로 시내관광은 물론 공관에서 넉넉한 점심 대접까지 받은 Anglo 서 사장님의 제매가 된다던 Chile 주재 조 대사도 며칠 후면 본부근무 발령으로 가게 됐다고 Oriental농장의 주인인 玄씨가 얘기한다. 결국 비상계엄, 그리고 Mr. Sakio, Detani의 방선 때문에 울적하던 기분을 풀어보려던 의도마져 이루지 못한다. 재수없는 며칠간이다. Agent의 Mr. R. Delavac이 좋은 포도주 몇 병을 보내준다. 좋은 Wine을 소개해 달랬는데 그걸 생각한 모양이다. 사려 했었는데 다행이다. 그리고 고맙다. Mr. Detani가 승선하여 약15일간 머물 예정이랬다.
Nov. 14(수) :
07:00시 출항하여 외항에 닻을 내렸다 16:00시에 출항하다. Peru의 남쪽에 있는 Ilo, Matarani, Callao항의 순이다. 주로 안데스 산맥에서 나는 銅제품들이다. Cargo Booking이 유동적이란다. 그러나 Mr. Detani가 승선 중이니 알아서 할 것이다.
왠지 의욕이 없어지는 것 같기도 하다. 무엇인가 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 별일도 없는데 계속 몸이 마르는 느낌도 있다. 몇번인가 되풀이 하는 ‘心機一轉’을 다시 한 번 시도해 보자. 며칠간 FM Radio를 타고 흐르는 감미로운 음악이 있어 좋았다. 평소 음악을 멀리한 탓도 있어 그런지 조용히 흐르는 잔잔한 Melody가 많은 위안을 준다. 역시 낙천적인 Latin 사람들의 생활이 엿보이는 듯도 하다. 일본에 가면 Stereo도 하나 사자. 그리고 틈틈이 좋은 음악을 주위에 두고 마음을 달래기도 해보자.
千字文 다섯 번째를 마친다. 한 번씩 차례를 바꿀 때마다 다소간의 진척이 있는 듯 한데서 용기를 얻는다. 그런데 그놈의 영어는 통 진척이 없다. 그래서 더욱 하기 싫은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전연 놓아 버릴 수도 없다. 내 밥줄의 동맥이다. 하는 데까지는 해보자. 집념을 가지고.
Nov. 18(일) :
ILO항. 그냥 걸판지게 열린 남태평양을 향해 짤막한 부두 한 개를 만들었을 뿐이다. 접안 중에도 심한 Rolling이 있다. 오래 있을 곳은 아니다. 불안하다. 황량한 사막과 모래, 바위산. 그리고 더덕더덕 붙은, 그러나 지붕이 거의 없다 싶이한 집들. 그래도 Copper(銅)과 같은 풍부한 지하자원 덕분에 마을이 생겼을 것이다. No.4 Hold의 일부 Cargo가 Damage 났었고 P&I Survey가 Hatch Cover water leakage 때문에 다녀갔다. 지루하다 어서 마치고 되돌아 가야 하는 시간이 기다려진다. 그 시간이 곧 살아 움직이는 시간이 될성도 싶다. 어쩌면 wife가 일본에 올 수도 있다는 기대감이 한결 부푼다. Matarani항의 화물 관계로 외항에서 4시간을 기다리다 출항하다.
Nov. 19 :
Matarani항. 그저 바위틈에 생긴 항구다. 그야말로 손바닥만하다. 깊은 수심, 항구의 바로 입구에 선 무시무시한 암벽과 그기에 부딛치는 허연 포말이 무섭다. 시원찮은 통신 System이 불편하지만 그런대로 육상과 연락이 닿는다. 내일 아침에 접안 예정이랬다.
Nov. 20 :
간밤 아니면 새벽에 도둑이 들었다. 닻을 내리고 있어도 10여도씩 Rolling를 하는 Swell을 타고 넘어 기어 오른 모양이다. 그저 어안이 벙벙하다. 설마가 사람을 죽인다더니 -. 공구 몇 가지가 없어진 것을 천만다행으로 여긴다. 당직자들도 정신이 나갔나 보다. 보이는 놈들 모두가 도둑놈 같다. 합판에 미친 사람들이다. Coast Gaurd도 한 통속이다. 합판이 그렇게 귀한 것임을 뒤에 안 일이지만 미치게 되어 있다. Super Cargo라고 온 녀석은 영어가 캄캄이다. 여기 이틀은 20일간의 항해와 맞먹을 만큼 신경이 쓰인다.
다시 약을 달인다. 그저 탈 없고 살 좀 쪄보자는 일념을 지닌 체. C/E가 집에 전화 한 모양. 그러나 FORTUNA에서는 여전히 무소식이랜다. 너무 기댈 한 탓인가 더욱 맥이 빠진다. 하기야 생각해보면 그 말만 믿고 설친 내가 바보스럽게도 느껴진다. 부산행 Cargo가 취소됐다는 것과 더불어 계속 Bad News만 들어온다. 남은 Callao에서 출항할 때까지의 10일일이 아득하기만 하다.
Nov. 24 –29 :
Callao에 입항 중은 Matarani나 ILO 보담은 안심할 수 있었고 아침마다 1시간씩 조깅을 할 수 있어 좋았다. Mr. Detani 덕분에 Cargo에 대한 염려도 놓았다. 그러나 Cargo Booking의 변화가 심하고 일에 진척이 없다. Mr. Sakio 덕분에 Ore De Musem과 구 Lima시가지를 관광한 것은 큰 수확이었다. 29일 새벽 1시20분 출항했으나 지루한 입항기간이기도 했다. Destination이 결국 미정인체로 일단 Honolulu쪽으로 Course를 잡는다. MO Line에서도 어쩐지 갈팡질팡하는 느낌이 있다. 그럴 정도의 System이 아닐 것인데. First Disport.(첫양하지)로 역시 Yokohama 인지, Hachinohe인지도 미정이다. 분명한 목적, 예정이 없이 항해를 한다는 것은 분명히 불안과 의혹을 안겨준다. 자신을 이기지 못하면서도 남을 이긴다는 것은 어리석은 짓일런지도 모르겠다.
Guayaquil부터 꼭 27일 만에 다시 시작하는 장기항해다. 그간 제대로 내 시간을 갖지 못했다. 하루하루를 좀 더 강하고 의식적으로, 의지에 반하는 행동을 않도록 주의를 하자. 땅을 곁에 두고 보낸 시간이 이렇게 피곤을 가져다 준데서야 어떻게 흙을 밟고 살 수 있을 것인가. 깊이 생각해 볼 일이다.
Dec. 5(수) 1984 :
Destination(목적항)이 Honolulu로 Fix된다. Bunkering 때문이다. 다행이다. 이 계절에 North Pacific Ocean을 거슬러 올라간다는 것이 무척이나 염려스럽고 어려운 항해다. 더구나 본선은 현재 Bottom heavy 상태다. 13일 호노루루. 그리고 23일경 요코하마 입항예정일이 되겠다. 합판을 잘라 화분을 만들고 페인트를 칠해 두었던 것에 오늘 몇 가지를 옮겨 심었다. Kobe에서 꺾은 유도화도 연하고 부드러운 잎 3개를 내밀어 결국 살렸고, 한 달 전 Callao에서 꺾어다 심은 제랴늄도 뿌리를 내렸다. 끈질긴 식물들의 삶이 경이롭다. 가끔은 하루 종일 땀을 흘리며 일을 한다는 것이 Stress를 없애는 정신적 건강에도 좋다. 꿈에 경산, 대구 두 영감님이 뵌다. 좀처럼 없던 일인데 - 무슨 변고는 없는지?
V.D 같은 증세가 있다. 그럴 일이 없었는데-. 어딘가 몸의 저항력이 약해 제기능을 못하고 있지는 않는지? 한약 5첩을 남기고 있다. 금년도 25일을 남겨 두고 있다. 아무튼 시간은 빨리 흘러라. 어차피 가야할 시간이 아닌가!
Dec. 15(토) :
Honolulu 출항 이후 계속 흔들린다. 머리골이 어지럽기까지 하고 삭신이 노곤하다. 역시 흔들림은 싫다. Hawaii는 잠시나마 밟아보고 싶은 곳이였다. 왕성한 계절 감각과 비록 모든 것이 상품화되어 있는 듯 했지만 멋과 낭만의 자취도 곳곳에 묻어 있었다. 천연의 요새처럼 생긴 Pear Habour(진주만). 그래도 그것을 사그리 뭉개버렸던 쪽바리놈들의 대담성도 기똥찬 일이다. 엽서를 두통이나 받았다. 무엇보다 대화의 부족이 아쉽다.
하루 종일 주억거려 보고 싶다. 그와 둘이서-. 함께 있을 때 좀 더 재미없는 말이나마 많이 나눌 걸 그랬다. 이제부터는 의식적으로라도 그렇게 해야겠다. 호탕한 웃음을 잊어 본지도 오래다. 내가 과연 누구며 어디로 무엇을 위해 가고 있는지도 모르는 요즈음이다. 역시 건강을 염려해 주는 것 만큼 지켜가지 못하고 있어 더없이 미안하다. 다시 시작된 중이염 증세! 어쩐 일인지 붉은 피빛마져 찍혀 나온다. 좀 더 자신을 이기고 정신적인 위로와 뚜렷한 의식을 갖도록 해야 한다. 단순히 흔들림 때문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불합리함이 많다. 좌우로 20여도 합계 40도씩의 범위를 가지고 흔들어 대는 것이 애들 장남감 즐기듯한 기분일 수 없다. 산더미 같이 갑판 위에 실린 컨테이너가 금방이라도 줄이 끊어지고 우르르 쏟아져 바다속으로 빨려 들어갈 것만 같은 착각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무언가 근본적으로 내 가슴속이, 머리 속이 너무 매마르고 텅 비어있다는 생각이다. 차라리 몽땅 잊어버리고 그저 흔들리면 흔들리는 데로 떠밀면 떠밀리는 데로 두고 볼까보다. 사실은 그것이 더 어려울 것이다. 사람이 살아 있다는 것이 곧 그것이 아닌가. 역시 생활의 Rhythm을 잃은지 얼마나 됐는지 기억조차 없다. 계속 흔들리거나 말거나 길거나 짧거나 시간과 배는 한 곳으로 달리고 있는데도 말이다.
“떨어져 있음의 경험이 불안을 만든다. 그 경험이야말로 모든 불안의 근원이다. 떨어져 있다는 것은 인간이 그 능력을 사용할 수 있는 아무런 힘도 없이 잘려 나왔다는 것이다. 떨어져 있음은 인간을 무기력하게 만들고 이 세상의 모든 사물과 인간을 능동적으로 파악하지 못하게 만든다. 이 세상의 침범에 대해서 아무런 대책도 세우지 못하게 한다. 그러므로 떨어져 있음은 지독한 불안의 근원이다. 그리고 그것을 인간에게 수치심과 죄책감을 불러일으킨다” 미국의 심리학자 Erich P. Fromm의 말이다.
내게는 집념이나 傲氣 같은 것 혹은 악착 같은 것 그런 것이 없다. 그냥 뜨물처럼 흐리멍텅할 뿐이다. 인생 자체를 줄곧 그런 식으로 살아온 것이 아닌가. 뭣하나 제대로 똑바로 할 줄 아는 것, 할 수 있는 것이 있는가? 그냥 시간에, 일에, 환경에 밀려서, 끌려서 오는 도중에 맨손바닥에 굳은 살 박히듯이 해오고 있는 게 고작이다. 그것이 결국은 어정쩡한 상태에서 오동나무에 걸린 鳶처럼 지금이다. 자신의 고독을 채우기 위해서 피나는 노력이 뒤따른 사람들이 결국은 성공이랄 수 있는(적어도 제3자가 보았을 때) 것을 얻었다.
“과학자의 고독은 인류를 풍요롭게 하고, 음악가들의 고독은 영혼을 안락하게 한다. 정치가의 고독은 백성을 따습게 하고, 여행가의 고독은 자신을 견문을 넓히게 하며 蕩兒의 고독은 가정을 자식의 행복을 생각하게 하며 新婦의 고독은 남편의 행복을 생각하게 만든다.”
결국 고독이 새로운 세계의 새로운 사물에 대하여, 새로운 마음에 대하여 눈을 뜨게 한다는 데 나의 것은 무엇인가? 이 공허한 머리통과 가슴속을 메우는 것을 속히 찾지 않으면 머지않아 시들어 말라 비뜰어 지고 말 것이다.
Dec. 25(화) :
눈이 빙빙돈다. 하루 이틀이 아니다. 계속 흔들렸으니까. 꼭 다 왔다 싶으면 한번씩 요동을 친다. 밤늦게 요코하마 외항에 닻을 내렸다. 우선 춥다. 마음부터가 -. 따뜻하고 아늑한 자리가 너무 그립고 아쉽다.
Dec. 26 :
Berthing(접안). 그리고 Shifting. Extra Working Fee 때문에 다시 한 번 신경질을 나게 한다. 그래 그럼 이제부턴 너희들(선원) 편이 아닌 순전한 Owner측 입장에서 할 테니 두고 봐라. 누가 답답한가. 찔끔했을 것이다. 휘황찬란한 일본의 歲暮거리. 그저 속이 부글거리다가 답답해진다.
Dec. 28 :
Urin Examination을 의뢰해 보다. 혹시나 하는 깨름직함을 벗어나기 위함이다.
전화하다. 목소리가 그처럼 반가울 수가 없다. 바다 위에서 시달린 피로가 말끔히 씻어진다. 역시 당신이 내게는 내 모든 것임을 확인한다.
Dec. 29 :
짬을 만들어 동경의 秋葉原(아키하바라)를 구경하다. 오히려 안 보는 게 속이 편할 정도다. 한마디로 ‘거창하다’고 밖에 표현할 수 없다. Audio system 하나를 살까 하던 생각을 바꾸다. 수동적으로 듣는 것보다 능동적으로 내 손으로 음악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전자 Organ이나 Video 혹은 Computer 쪽으로 알아보자. 좀 더 내일을 내다보는 의미에서도 좋을 것 같다. 내복을 안 입다가 입어서 그런지 다리가 가려워 미치겠다.
Dec. 30(일) :
Kawasaki(川崎) 출항. 박기원씨의 ‘하늘이 우리를 갈라 놓을지라도’를 읽다. 그의 남편 이진섭씨에 대한 얘기와 사랑에 대한 것이다. 부부란 어떤 것인가를 좀 더 깊이 있게 인식하는 데 도움이 된다. 정말 내가 이럴 때가 아니잖은가. 아내를 위해서도 무엇인가를 해야 할 때다. 속죄의 의미에서도-. 그와 애들에 대한 내 애정이 너무도 모자랐고 허술했고, 그래서 그런지 모르나 식어버렸다. 이제부터라도 좀 더 덥히고 뜨겁게 해야 한다. 잊지 말자.
Dec. 31 :
八戶(하치노헤) 도착. 두 번째다. 매년 맞는 세모. 그리고 오늘인데 갈수록 연민과 아쉬움이 더해 감은 무엇 때문일까? 그저 세월이 그냥 헛되이 지나가 버리고 마는 것 같은, 무의미 뿐인것도 같다. 인간의 삶 가운데 오직 한 가지, 생활의 수단인 돈을 번다는 것 이외는 아무런 역할을 못하고 있지 않은가? 남자로서 家長으로서 남편으로서 애비로서의 역할이 없다면 뭐가 남을까? 선장으로서 역할은 내가 해야만 할 당연직 의무가 아니고 임의적인 일일 뿐인데도 말이다. 어쨌든 이제부터라도 좀 더 지금까지 못한 내 본래의 역할을 위해서 다시 한 번 분발하는 새해를 맞도록 해보자. NHK의 유명한 프로그램인 ‘紅白歌謠合戰’의 화려함과 都はるみ(미야코하루미)씨의 감동적인 은퇴공연에 자정을 넘기며 보았다. Wife를 향해 건배를 속삭이며 wine 한 잔을 기울이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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