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고 : 황보림(皇甫琳)이 차원부(車原頫)의 사위가 될 수 없는 명백한 근거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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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안차씨(延安車氏) 문헌에서 언제부터 황보림(皇甫琳, 1333~1394)과 황보인(皇甫仁, ? ~ 1453) 부자를 차원부(車原頫, 1320 ∼ 1398)의 사위와 외손으로 기록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연안차씨 최초 족보인 무자보(1708년)나 기축보(1769년)는 구해보기 어려워 내용확인을 할 수 없다.
쉽게 열람할 수 있는 자료 중에 1791년 간행된 차원부 관련 기록들을 수집하여 편찬한 차문절공유사(車文節公遺事)에 1785년(숭정후3을사) 병조참의 신상권(申尙權, 1725~1791)이 지은 차원부 행장(行狀)이 있고, 여기에 사위로 황보림(皇甫琳, 1333~1394), 외손으로 황보인(皇甫仁, ? ~ 1453)이 나온다.
차문절공유사車文節公遺事 河緯地...[等撰] [刊寫者未詳] 正祖15(1791)
p. 1 차원부설원기(車原頫雪寃記) : 세조의 명으로 1456년에 박팽년(朴彭年)등이 지었다고 하나, 1580년경의 위작(僞作)으로 지목됨. 설원기 본문에는 황보인(皇甫仁)이 세종에게 차원부의 억울함을 풀어달라는 건의를 하는 등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나오지만 그가 차원부의 외손이라는 말은 나오지 않는다. 차원부의 사위로는 유인후(兪仁厚)만 나온다.
p.134 차원부 행장 : 1785년 신상권 찬
p.136 모친 능성구씨 副使 구의(具禕)의 딸.
p.142 평산신씨 代言 申君平의 딸과 결혼. 1남 5녀를 둠.
사위 유인후, 전삼달, 황보림, 사위 윤희제(尹希齊)는 성만 있고 이름은 모른다함; 사위 윤태산.
p.143 皇甫 子曰 仁 文領議政(문과 급제, 영의정)
p.151 : 숭정후3을사(1785) 병조참의 申尙權 근장
신상권의 차원부 행장에 나오는 차원부의 사위
사위 유인후(兪仁厚) 인동인(仁同人), 子 유흥준(兪興俊) 전리사(典理事)
사위 전삼달(全三達) 가각고승(架閣庫丞) 나주인(羅州人), 女 김맹권(金孟權) 진사(進士) 광산인(光山人)
사위 황보림(皇甫琳) 순문사(巡問使) 영천인(永川人), 子 황보인(皇甫仁) 文領議政
사위 윤(尹) 파평인(坡平人) : 명자실전(名字失傳)
사위 윤태산(尹太山) 생원(生員) 파평인(坡平人), 子 윤암(尹巖) 파평군(坡平君)
1824년 간행된 연안차씨세보의 차원부 사위 기록도 유사하나 사위의 자손이 좀더 자세하다.
연안차씨세보 v1[延安車氏世譜 v1] 차헌기등편 純祖24(1824)
사위 유인후(兪仁厚) 인동인(仁同人) - 子 유흥준(兪興俊) 전서(典書) - 子 유진(兪鎭) 부제학(副提學)
사위 전삼달(全三達) 나주인(羅州人) - 女 김맹권(金孟權) 진사(進士) - 子 김극성(金克成) 우상(右相)
사위 황보림(皇甫琳) 영천인(永川人) - 子 황보인(皇甫仁) 영의정(領議政)
사위 윤희제(尹希齊) 파평인(坡平人) - 子 윤경(尹埛), 윤은(尹垠), 윤증(尹增)
사위 윤태산(尹太山) 파평인(坡平人) - 子 윤잠(尹岑), 윤암(尹嵓)
그러나 위에 나오는 연안차씨 문헌의 차원부 사위 기록들은 심각한 문제점들을 안고 있다.
사위라는 전삼달(全三達)은 외손 김극성 (金克成, 1474~1540)의 생몰년을 보아 1400년 이후 출생했을 것이다. 차원부(車原頫, 1320 ∼ 1398)의 사위가 되기는 불가능하다.
사위라는 윤희제(尹希齊)의 장인은 문화류씨가정보, 안동권씨성화보, 씨족원류 등에 모두 홍잠(洪潛)으로 나오며, 홍잠이 윤은(尹垠), 윤경(尹坰)의 외조부이다.
사위라는 윤태산(尹太山)의 장인은 안동권씨성화보(安東權氏成化譜), 문화류씨가정보(文化柳氏嘉靖譜)에 권숙(權肅)으로 나오며, 권숙이 윤암(尹巖)의 외조부이다.
참고 : 윤희제(尹希齊), 윤태산(尹太山)은 차원부(車原頫)의 사위인가?
사위 유인후(兪仁厚) : 인동유씨족보(仁同兪氏族譜, 1921)에 유흥준(兪興俊)의 부친이자 유진(兪鎭)의 조부는 유인수(兪仁守)로 나오므로, 유인후(兪仁厚)는 오기로 보인다. 유인수의 손자 유진(兪鎭)이 1462년에 문과에 급제했으므로 연대상 조부 유인수는 차원부의 사위가 되기는 불가능해 보인다. 인동유씨 족보에 유인수(兪仁守 )의 부인은 나와 있지 않으므로 그가 차원부의 사위라는 것은 인동유씨 문중에서는 모르는 일이다. 인동유씨족보(仁同兪氏族譜, 1970)에도 대동소이하다.
이처럼 연안차씨 문헌에 차원부(車原頫, 1320 ∼ 1398)의 사위로 나오는 5인중 전삼달(全三達), 윤희제(尹希齊), 윤태산(尹太山)은 명백히 그의 사위가 아니고, 유인후(兪仁厚)도 그의 사위로 보기에는 상당한 무리가 있다. 남은 한 사람 황보림(皇甫琳, 1333 ~ 1394)이 그의 사위라는 말은 믿을 수 있겠는가?
차원부설원기(車原頫雪寃記) 본문에는 황보인(皇甫仁)이 세종에게 차원부의 억울함을 풀어달라는 건의를 하는 등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나오지만 그가 차원부의 외손이라는 말은 나오지 않는다. 황보인은 영의정으로 있을 때인 계유정난(1453) 때 수양대군(세조)이 죽인 사람인데, 세조의 명으로 차원부의 억울함을 풀어주기 위해 1456년에 지었다는 설원기에 황보인이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나오는 것도 말이 되지 않는다. 설원기의 실제 필자가 황보인을 수양대군이 죽였다는 사실을 몰랐기 때문에 이런 일이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하물며 황보인이 차원부의 외손자라면 세조가 황보인의 외조부인 차원부의 억울함을 풀어주는 글을 지어라는 명을 내릴리가 있겠는가? 차원부 설원기에 황보인이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나오는 것 자체가 위서라는 증거가 될 수 있고, 연안차씨들 주장대로 황보인이 차원부의 외손자라면 더더욱 이런 일은 있을 수 없다.
이뿐만 아니라 연안차씨 족보에 나오는 고려시대 ~ 조선초 인물들 혼인 기록에는 심각한 문제점들이 많이 보여 일일이 열거하기도 어렵다.
추가로 연안차씨 족보에 나오는 차원부(車原頫, 1320 ∼ 1398)의 모친 사례를 보자. 모친은 부친 차종로(車宗老)의 세번째 부인으로 능성구씨(綾城具氏)이다.
차종로(車宗老)의 3배(三配) 능성구씨(綾城具氏) : 父 구의(具禕), 祖父 구영검(具榮儉), 曾祖 구예(具藝)
그런데 능성구씨세보(綾城具氏世譜, 1716)에 구의(具禕)의 사위는 이무(李茂) 등 여러명이 있으나 차종로(車宗老)는 없다. 뿐만 아니라 처조부로 나오는 구영검(具榮儉, ? ~ 1356)의 졸년으로 보아 차원부(車原頫, 1320 ∼ 1398)의 부친이 그의 손자사위가 되기는 불가능하다. 구의(具禕)의 사위 이무(李茂, 1355~1409)의 생졸년으로 보아 차원부의 부친이 그의 동서가 되는 것도 불가능하다. [능성구씨 족보에 이무(李茂)의 본관이 청주, 부친이 이거경(李居敬), 아들이 이공유(李公柔)로 되어 있으나, 단양(丹陽)이씨 족보에 이거경(李居敬) - 이무(李茂) - 이공유(李公柔) 3대가 나오며, 이무의 두번째 부인이 구의의 딸이다.]
차종로(車宗老)의 둘째 부인은 안동김씨(安東金氏)로 부친이 김제안(金齊顔, ?-1368)이라 나오는데, 김제안은 초명이 김제민(金齊閔)인 척약재(惕若齋) 김구용 (金九容, 1338~1384)의 동생이다. 그가 어떻게 차원부(車原頫, 1320 ∼ 1398)의 부친 차종로(車宗老)의 장인이 될 수 있겠는가?
이런 사례들에서 본대로 연안차씨 문헌의 고려말 조선초 인물들 관계는 다른 기록들을 통해 충분히 검증하지 않고 다른 성씨들이 그대로 받아쓰는 것은 상당히 위험해 보인다.
영천황보씨들이 연안차씨 문중 문헌을 보고 검증없이 황보림(皇甫琳, 1333~1394)을 차원부(車原頫, 1320 ∼ 1398)의 사위로 기록하는 바람에 나중에 태조실록에 안우(安祐) 장군이 황보림(皇甫琳)의 "舅"라고 한 기록을 발견하고는 장인 아닌 외숙으로 해석하게 된 것이다. 연안차씨 문중 기록에 많은 문제점들이 확인되므로 실록의 기록은 안우(安祐) 장군이 황보림(皇甫琳)의 장인으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한 것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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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자료
* 능성구씨(綾城具氏) 수보(修譜) 역사
* 능성구씨세보 v1[綾城具氏世譜 v1] - 병신보(1716) : 구인기(조선)등편
* 능성구씨세보 v1[綾城具氏世譜 v1] - 을사보(1905) : 구준희(조선)등편
* 차원부 설원기와 구봉령(1526-1586)의 백담집에 있는 구예(具藝)에 대한 고찰 : 문화류씨 카페
* 차원부(車原頫)의 고조부 차송우(車松祐)가 구예(具藝)의 사위라는 연안차씨 족보(1824)의 기록
차송우(車松祐)는 고려사에 나오는 인물로 1268년 김준 (金俊, ~1268)이 제거될 때 같이 죽었으므로, 구예의 아들 구영검(具榮儉, ? ~ 1356)과 처남매부간이 될 수 없다.
* 구영검(具榮儉, ? ~ 1356)의 첫부인은 죽산안씨 정당문학 안규(安珪)의 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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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 본대로 연안차씨 족보에 나오는 능성구씨와의 혼인 기록은 연대가 맞지 않아 모두 사실이 될 수 없다.
그러나 1905년 간행된 능성구씨 족보(을사보) 에는 이전 족보에는 없던 연안차씨 족보에 나오는 능성구씨와의 혼인기록을 모두 추가하였다. 그러나 이런 혼인기록들은 연대상의 불일치로 역사적 사실이 될 수 없다.
능성구씨 을사보(1905)의 내용
* 구의(具禕)의 사위 차종로(車宗老) : 차원부의 부친
* 구예(具藝)의 사위 차송우(車松祐) : 차원부의 고조부
첫댓글 좋은정보 감사합니다. 연안차씨 족보가 매우상세하게 묘사되어 있어서 안지가 안우-안정-안지로 내려갈수도 있다고 믿을 뻔 했네요. 황보림이 여기에 나오다니 어이가 없습니다. 고려사에 안우의 사위라고 나오는데. 연안차씨 족보는 꽤 엉터리이군요.
연안차씨들 족보의 기록은 믿기 힘든 내용이 많으므로
다른 문헌을 통해 검증이 되지 않으면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문화류씨와 연안차씨 간에 오랫동안 논란이 되어왔던 류-차 동원이라는 근거문헌 "차원부설원기"는 16세기 말의 위작으로 확실히 밝혀졌습니다.
차원부설원기는 세조의 명으로 1456년 박팽년등이 지었다고 하는데, 여기에 세조가 1453년에 죽인 황보인이 차원부의 억울함을 신원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나옵니다. 세조에 올리는 글에 황보인은 금칙어이니 이런 일이 실제로 있었기는 불가능하죠. 더구나 연안차씨들이 황보인이 차원부의 외손이라고 주장하는데, 세조가 1453년에 황보인을 죽여놓고 1456년에 황보인의 외조부 차원부의 억울함을 풀어주는 글을 지어라고 명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죠.
족사연구에 연안차씨 문헌은 참고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