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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y/19(화) :
05:00에 기상. 길거리 공중전화 Box인 Pay phone box에서 집에 전화하다. 참 편리하고 합리적으로 만든 나라다. 그러면서도 철저하게 수익자 부담제도이다. 밝은 아내의 목소리가 우선 시원스럽고 위안이다. 차마 Mideast 얘기는 꺼내지 못했다. 그럴 수는 없다. 설사 일이 벌어져 내가 다시 돌아갈 수 없는 ‘不歸의 客’이 된다 해도 지금은 -. 오히려 마음이 무겁다. 배를 좀 더 깊이 앎에 따라 항시 한치 철판 밑이 깊은 수중임이 더욱 뚜렷하게 인식되어 오지만 Wife의 입장에선 그걸 알고 있을런지는 모르겠다. 그래서 그만한 각오는 충분히 갖고 있어야 하는데.
이번 중동행도 같은 류의 것이다. Hint는 줄 것이나 불안을 미리부터 줄 필요는 없다. 東日와 NYK의 Telex 받다. 그러나 대아는 없다. 오후에 직접 전화하여 옥 이사와 통화했다. 예상했던데로다. Owner로서 Manning회사로서 거절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님은 분명히 한다.
대신 동경 56도10분E를 통과하는 시점으로 해서 기본급 100%의 전쟁수당을 지급한다고-. 내일쯤 Telex 오는 데로 전원을 집합. 모든 상황을 알리고 각자의 의향에 맡기자. 남들이 다 가는데 우리라고 못 갈리는 없다. 시팔 것! 한판 붙는 기분으로 가보는 거다. 그 놈의 문자, ‘貧者小人’ 그리고 국력이 약하고 못사는 나라에 태어난 것을 다시 한번 원망한다. 허나 마음을 굳히자, 내가 스스로 택한 길이 아닌가. 그리고는 최선을 다하고 그밖엔 하늘에 맡기자. 남은 45일은 정성껏 감사하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일하며 마음부터 닦자.
May/20(수) :
이곳 신문에 Frigate함 피격에 모두 37명의 목숨을 잃었다고 보도됐다. 오후1시반 출항 직전 대아로부터 Telex 받다. 새로운 것은 없다만 유일한 Order이고 증빙서류인 셈이다. 화창한 날씨 속에 13시 40분 출항했다. 올 때 고생한 Gyro는 Maker측의 수리를 받았다. 역시 轉輪球의 교체작업이 있었다. 먼 산의 흰눈과 그 아래로 끝없이 펼쳐진 짙은 침엽수 삼림. 깊고 굴곡 심한 Puget Sound. C/E 말처럼 ‘잘 먹고 잘 살아라’는 소리는 부러움이 차다 못해 원망으로 터져 나온 소리다. 물론 자연이 가져다 준 환경의 영향도 있지만 그보다도 인위적인 가꿈의 노력도 그에 못지않게 많았으리라. 계속되는 데모와 政爭으로 시끄러움만이 유일한 조국의 News로서 이곳 TV에 비쳐지는 현실에 비하면 너무도 격차가 심하다. 일요일날 가 본 Washington 대학 캠퍼스에 과연 내 아이들 중 어느 녀석이 와서 공불 할 수 있을까? 한 주일 역시 마음 푸근히 보냈다. 다음 항차에 대한 일만 아니었더라면 더 좋은 휴식기간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많이도 걸었고 영어에 대한 친밀감도 가졌었다만 대신 용돈도 그만큼 작살이 났다. 이 달의 가불의 몽땅 달아나고 만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그만한 가치를 반대급부로 얻었다고 보면 된다. 편지도 띄웠다. 약 14일간의 긴 항정이 시작된다. 대아의 Fax를 일단 게시하고 내일쯤 전체적인 의견을 묻기로 하자.
May/21(목) :
12:30 전원 집합. 다음 항차 중동에 대한 설명과 협조를 구했지만 내가 생각해도 두서도 조리도 서지 않은, 이것도 저것도 아닌 어정쩡한 것이 되고 말았다. 정말 얘기하기가 어려운 것이기도 하다. 그냥 얘기하고 자신들의 판단에 맡기기로 한다지만 뭘로 판단한단 말인가? 얼마만큼 호응을 하고 또 누가 Reject 할 것인가는 며칠 시간적 여유를 준 다음 다시 파악하기로 했지만 모두가 벌레 씹는 얼굴이다. 더구나 이런 걸 교묘하게 이용해서 자신의 체면 아니면 평소 사소한 불평을 합리화시켜거나 요구하려는 얄팍한 심리를 가진 자들도 있음은 내가 미리 아는 바이니 별로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정작 명확한 결론을 스스로가 내리지 못하는 것은 먼저 내 자신부터가 어딘가 확고한 신념을 갖지 못한 것은 틀림없다. 바로 그것이다. 이미 현실적으로는 정해져 있고 따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결론을 얻고 있으면서도 마음의 작정을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 주일간의 Seattle 생활이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전부가 마음이 같은 모양이다. 그럴 수밖에 없질 않은가? 전쟁터로 간다는데-.
May/24(일) :
모처럼 푸근한 잠을 잤다. 계속 무리하게 걸은 것이 피로를 가져온 것도 같다. 고른 해상에 마음을 놓은 탓도 있고-. 별다른 이상을 느끼지 않는다. 체중의 변화는 어떤지 오랫동안 Check 해보진 못했다만 크게 변화는 없을 것 같다. 며칠전까지 있었던 약간의 소화불량 증세와 대변이 고르지 못했던 일. 그리고 오래간만에 다시 온 그 놈의 아랫배가 살살 아프던 것도 잠시로 끝났다. 현재 상태를 계속 유지하도록 하자. 다소 방황하는 순간들이 있다만 열심히 생각하고 읽고 외우고 걷고 먹고 마시며 보내자. 항시 내일은 있는 법이다.
May/25(월) :
이번 항차 Persian Gulf에 대한 의견을 모아보다. 의외로 3/O와 Abb-1이 안 가겠단다. 2/O는 역시 그냥 넘어가지는 않는다. 건강을 핑계 삼는다. “네가 알아서 해라”. 그로서는 그게 가장 큰 고민거리임은 분명하다. 얼굴에 병색이 완연해 진 것도 같다. 생각보담 전체적으로 많이 응해준 데 우선은 안심이다만 기어이 1-2명의 탈락자를 낼 것도 같다. Tonich로부터 ‘All Accept’ 여부를 Cable로 물어왔다. Abb-1은 자기 말대로 비록 배우지는 못했지만 자기 나름대로의 어떤 믿음과 생각을 갖고 있다. P.G(페르시안 걸프)는 처음이라며 설명을 하고 일단은 가보는 쪽으로 생각을 정리 중이라고 했다. 3/O는 무조건 “Never”이다. 정승도 제 싫으면 그만인데 도리가 없지 않은가? 비록 미혼이긴 해도 나이가 그만하면 스스로의 앞길은 자신이 결정할 수 있을 것이다.
May/26(화) :
내 자신부터 각오를 굳힌다. 부딛쳐 보자. 직접 총을 들고 전쟁터에 가는 것도 아니고 기껏해야 流彈 아니면 임자없이 떠돌아 다니던 해상용 어뢰에 받치는 일뿐이 아니겠나. 거기 아니라도 얼마든지 내 목숨은 하늘이 보관하고 관리할 것 아닌가. 人命은 在天이라 했다. 설사 사고를 당한다고 해도 그것은 내 運命이라 여기자. Abb-1도 생각을 바꿨다고 했다. 그저 최선을 다해 보는 것이다. 협조해준 모든 선원들에게 감사하며 길어야 1주일, 4-5일이면 된다. 3/O는 기어이 탈락시키기로 한다. 대아에 Cable하고 보낸 후 결원으로 하겠으니 가급적 빨리 후임자를 보내라고 했다. 이미 갈 사람은 일찍 보내야 남은 사람에게 영향을 덜 미친다. 이상하게도 사람의 思考란 한번 외곬으로 흐르면 흐를수록 깊어져 간다는 것이다. 평범하게 생각하자. 우리만 가는 것도 아니잖은가. 결국 한 사람의 이탈자가 생겼다는 그 사실에 대하여 내 자신의 반성도 해본다. 과연 내 방법이 옳았고 ‘Best Doing’을 했던가. 더 좋은 방법은 없었던 것인가. 단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강요할 수 없는 어떤 한계가 근본적인 문제였고 바로 그것 때문에 막힌 것이다.
May/28(목) :
늦잠! 승선 중에 늦잠을 잔다는 것은 기억에 없을 만큼 아득히 먼 일이다. 그런데 오늘 늦잠을 잤다. 어제 오후 7시간에 걸친 소설 ‘宮本武藏(미야모도무사시)’를 읽으면서 자신을 깜빡 잊었다는 사실에 크다란 의미가 있다. 그 동안 눈에 보이지 않았던 P.G(페르시안 걸프)에 대한 신경전이 해결되었다는 안도감과 더불어 잠시나마 긴장을 풀어버린 것이리라. 승선을 업으로 한 이후 배에서 한시라도 내 의식이 결부 돼지 않은 순간이 없었다는, 마치 내 자신의 혈맥이 통해져 있다는 생생한 긴박감이 거의 의식화되어 굳었다. 비록 한 시간 반 가량의 늦잠이었지만 그 시간 동안은 방심을 뜻한다. 과거에 거의 없던 일이다. 즉 내 자신의 ‘현재’를 완전히 잊었다는 의미다. 하기야 그럴 수만 있다면 좀 더 두둑하니 볼에 살이 붙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럴 수도, 그래서도 안 되는 지금이다. 보다 둔하고 무딘 감각, 감정을 가질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막상 그래서는 내 자신은 물론 나를 쳐다보는 모든 선원과 그 가족들의 생명을 보장 할 수 없다는 절박한 느낌은 언제나 코앞에 닥쳐와 있다는 환상 같은 것이 있다.
생활의 무거운 멍에를 짊어지다 보면 이상보다 현실이, 꿈보다는 생활 그 자체가 절실하기 마련이다. 그저께부터 다시 시금털털한 책들을 마구잡이로 읽는다. 눈, 특히 오른쪽 눈의 피로가 심하다만 허전함을 메우기 위한 몸부림의 하나일 것이다.
May/31(일) 1987 :
계절의 여왕이란 5월의 마지막날이자 일요일이다. 계속 안항임이 무엇보다 큰 선물이다. 그제 어제 이틀간은 어째 몸이 찜찜한 가운데 보냈다. 몸살 같지도 않고 꼭 무슨 병세가 있는 것도 아니면서 전신이 나른하고 늘어지기만 했었다. 뜨끈한 물에 몸을 푹 담그고 땀을 빼도 마찬가지. 오늘부터 다소 풀리기는 한다. 무엇보다 고르지 못한 잠이 원인인 듯 싶다. 하기야 잠시라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선박에서 움직이지 않은 땅 위와 마찬가지로 퍼질고 잠을 고르게 잔다는 것도 이상한 일이기는 하다.
대아로부터 ‘交代不可’라는 Cable. 3/O와의 오랜 시간의 얘기 끝에 억지 번복. 여전히 앙금은 남는다. 보다 더 회사의 장기적, 계획적 안목에서 깊은 배려가 있었으면 싶다. 그러나 역시 젊다는 것은 부러운 것이다. 이제 남은 것은 가급적 최근의 Data를 많이 모아 그것을 바탕으로 세심한 계획을 세우고 실천하는 것이다. 매일 1만보에서 1천 걸음을 더 올린지 3-4일이 된다. 쉬운 것 같으면서도 결코 그렇지 않음은 느낀다. 내 체력의 정도를 제데로 파악하지 못한 탓도 있다만 이 정도로서 무리라면 안 된다. 좀 더 단련이 필요하다.
Jun/03(수) :
07:00 닻을 내린다. 2년만에 다시 찾은 Chile다. 15:10 접안. 올 때마다 사람들의 몰골이 점점 더 찌들어 보인다. 역시 군부의 독재정치로 유명해진 나라, 정치발전 없이는 民草들의 생활이 밝게 펴질 수 없는 모양이다. 모처럼 술 한 잔을 거나하도록 했다. 며칠간 뒤척이며 괴롭히던 그 잠을 도로 찾아오기 위함이다. “Seaman's Club”의 Captain Bar의 주인이 한국인이랬다. 아직 젊은 해기사 출신이라나. 그의 말처럼 단조롭고 삶에 대한 회의가 잦다는 것에 이해가 간다만 할려면 한국 땅에서 시작할 일이지-.
Jun/04(목) :
종일 꼼짝을 못했다. 잠이야 푹 잔셈이지만 골치가 너무 아프다. 간밤의 술이 질 나쁜 것이였나 보다. 빌어먹을 새끼! 또 바가지를 씌운 모양이다. 그 술집 앞날이 뻔하다. 그기다 cholera 예방주사까지 맞은 데다 눈에 다래끼까지 돋는다. 사람 미치고 환장한다. 벌써 본선 승선 후 두 번째 다래끼다. 그것도 꼭 입항 중에 나서 사람 모양 같잖게 체면을 사그리 구길게 무람. 짜증스럽다. 집에 전화하다. 짧은 대화였지만 역시 그 목소리는 내 것이고 위안과 용기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것임을 확인한다. 그래 참아야지. 나를 쳐다보고 기다리는 사람들이 몇인데 -.
Jun/05(토) :
예정보다 늦어 13:30시 출항. Magellan Straight를 위한 Pilot 두 명도 동승시켰다. 모처럼 오전 중에 이발을 했다. 개운하다. 기분전환도 된다. 그러나 출항시키고 난 뒤부터 앓기 시작해 밤새 앓았다. 그 놈의 코레라 예방주사 때문이다. 寒氣와 땀 거기다 불면까지 겹친 지겹고도 긴 밤이였다. 이렇게 된통 앓기는 근래 없던 일이다. 앓는 소리가 잇발사이에서 저절로 비집고 나오기도 했다. 배가 심하게 흔들리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은 이루어 진다. 앞으로 며칠간의 격한 해상은 또 각오를 해야 한다. 밤새 Wife 목소리만 쟁쟁했다. 아이구 이 놈의 짓.
Jun/06(일) :
계속 앓다. 바로 열병이다. 꼭 코레라가 걸린 것만 같은 착각에 빠진다. 오후부터 맥이 빠지고 식욕도 고스란히 없어진다. 기진맥진이다. 정신이 아물아물 거린다. 다행이 남쪽으로 갈수록 해상이 생각 외로 고르다. 이게 사람 살린다. C/E. BSN. OS-1도 같은 증세로 진통을 겪는다. 갑판장이 더 심한 모양이다. 아는 병이니 어쩔 수는 없다만-. 주사를 놔 주던 키가 짝달막한 할마씨가 떠오른다. 밉다. 처음 맞는 것도 아니라 ‘Uno Boco’(조끔만)라고 했는데도 1cc씩이나 놓은 것이다. 이래선 안 된다. 정신을 차려야 한다. 머리와 가슴속이 텅 비어버린 듯 허허하다. 십리나 들어간 눈알이 자꾸 눈꺼풀을 겹치게 한다. 억지로라도 먹는다. 열 탓인가 왼쪽에 다시 중이염이 생긴다. 崔禎鎬씨의 칼럼집 ‘아버지 독재자’를 두 번 읽었다. 풍부한 경험과 재치, 폭넓은 학식 등이 감탄스럽다. 사람들이 예술을, 특히 음악과 미술을 이해하고 즐긴다는 것이 얼마나 깊은 인간성을 길러 주는 것인지 짐작이 간다. 사람은 우선 깊이 배워야 제 기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다. 인간이 가진 전 능력의 50%만 쓸 수 있어도 초능력자가 될 수 있다는 어느 학자의 말이 사실일 것도 같다.
Jun/09(화) :
종일 쉬다. 주사로 인한 몸살이 풀리기도 전에 Magellan 해협을 통과. England Channel의 야간항해 때문에 남위 50도까지 내려와 Bahia Trinadad에서 진입 시작. 오늘 새벽 3시경에 두 Pilot를 하선시켰다. 이틀 밤을 하얗게 새운 것이다. 예상외로 좋은 날씨다. 그저 하늘에 감사한 마음 보낸다. 해협을 끼고 양편에 늘어선 높은 바위산과 그 속에서 떨어지는 외가닥 긴 물줄기의 폭포, 또 산정상에 하얗게 쌓인 만년설의 설경들이 한동안의 피로를 잊게 해주기도 했다. Baia Posesion의 전에는 보지 못했던 거대한 유전 굴착선들의 모습은 새롭고 부럽다. 이런 지구 끝에서도 석유가 나다니-. 하기야 그 많은 바위 속에는 아직도 무엇이 잠들고 있고 숨어 있는지.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신비스런 것들이 베일을 쓴 체 숨어있을 것이다. 참으로 길고도 좁은 나라 칠레다. 태평양의 한쪽 구석에서 대서양의 한쪽 끝으로 빠져 나온 셈이다. 그러나 Brazil의 Santos Agent에서 온 긴 Telex는 또 무슨 시원찮은 예감을 안겨준다. 후진국에서 항시 보는 그놈의 Customs의 문제다. 최선을 다하고 나머지는 운명이 맡기자.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재수 없는 날을 설명할 것인가.
Jun/11(목) :
8일만에 다시 Jogging과 글씨를 재개한다. 입출항, 몸살, 날씨 등등의 이유로 중단됐었다. Santos의 도둑들 얘기가 염려스럽다. 아침에 접안 오후에 출항이 되었으면 싶다만. ETD가 16일이라니 외항에 Waiting이라도 시켜려는가?
「가기 전에 몇 마디 훈계를 하마. 단단히 명심해서 실행해야 하느니라. 마음속에 있는 말을 하부로 발설치 말 것이며 설익은 아이디어를 곧장 실행에 옮겨서는 안 된다. 친구를 사귀되 잡놈을 가려야 하며, 일단 쓸만한 녀석이면 단단히 잡아둬라, 단 별 볼일 없는 놈들과는 악수도 삼가 할 일. 공연히 손바닥 가죽만 두꺼워 지느리라. 그리고 무엇보다 싸움박질은 하지마라. 불가피해서 싸우는 경우라면 아주 철저히 이겨 다음엔 절대로 기어오르지 못하게 하라. 누구의 말에나 귀를 귀울이되 네 의견을 까놓지 마라. 즉 남의 의견을 들어주되 시비판단은 삼가란 말이다. 의복 사는 데는 지갑이 허락하는 데까지 돈을 써도 좋지만 괴상하게 치장해서는 못쓴다. 그리고 돈은 빌리지도 말고 빌려주지도 말아라. 빌려주면 돈과 사람 둘 다 잃고 빚을 지면 절약하는 마음이 무디어지느니라. 이상이다. 가거라”」 -폴로니어스- 아들에게 주는 말이다.
Jun/12(금) ;
2/O와 2/Q가 말썽이다. 꼭 어린애 장난 같은 일이다. 역시 2/O에게 문제가 있다. 그의 인간성 이전에 정신분석을 해 볼 필요가 있다.
“어떤 사람이 현인인가? 모든 것에서 무엇을 배우는 사람이다. 어떤 사람이 강한 사람인가? 자기 자신을 억제하는 사람이다. 어떤 사람을 부자라고 하는가? 자기 몫에 만족하는 사람이다.‘ - 탈무드 - 과연 그가 남은 8개월을 무사히 넘길 수 있을 것인지 의문이다.
Jun/13(토) :
Santos. 18:20 도착. 바로 No.13에 접안했다. 긴장이 된다. 대아의 황선일 선장이 여기서 거금을 털린 곳이고, Capt. 박도 선장실을 말끔히 소제 당한 곳이다. 무엇보다 권총 가진 강도들이 설친다니. 당직의 철저를 명하지만 열 놈이 마음먹은 한 놈을 당할 것인가? Walk Talki(무전전화기)를 머리맡에 두고 자기로 한다. 여기도 만만찮은 Whisky가 나갔다. 수준을 짐작한다. 아예 선용금 신고란에는 거의 없다고 했다. 분명 이런 곳이면 세관과 盜선생(?)들이 짜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선장실에 돈이 있다는 사실은 세관 이외는 알지 못하는데도 용케 털러 온다는 것이 바로 증명하는 것이다.
Chart와 Spare Part는 찾았으나 편지는 16일이나 돼야겠다나. 벌써 도착했고 Telex까지 넣어 미리 수배를 했었는데도 그렇다. 화폐가 1000분의 1로 줄여 개혁을 했단다. 접안 후 시작된 폭우는 처음 온 사람 겁주려는 듯. 결국 오늘밤을 공치게 했다. 오직하나 경쾌하고 부드러운 FM Radio의 음악이 밤낮없이 흐르는 것이 마음의 안정을 주고 있다.
Jun/14(일) :
종일 비. 그것도 폭우다. 짖굿다. 17일 오후 출항예정이 차질을 빗는다. 내일은 이곳의 법정휴일이랬다. Agent는 코끝도 안 보인다. 겉보기엔 태평성대처럼 보인다만 속은 썩을 만큼은 썩어 문들어 졌을 거다. ‘Love Story’와 ‘My Love’란 Bar에 둘러 보다. 눈이 번쩍 뜨인다. 바로 ‘美女天國’ 이다. 과연 넓은 국토. 많은 인종의 사람들임을 짐작케 한다. ‘Carina’란 금발의 아가씨. 인물이나 연령으로 봐서 이런 곳에 나올 것 같지 않다만 혹시 덧난 계집아이는 아닌지. 흔들어 대는 Disco만이 전부인양 해댄다. 모든 선원들이 Santos 하면 안절부절 못하던 것을 이제야 이해하겠다. 어떤 Capt.들이 몽탕 털렸단 소리는 이런데서 털렸단 말이렸다. 모두가 ’洋版‘(?)이다. 그것도 아삼삼한 것들뿐인-. 공자님도 여기 데려다 놓으면 빙긋이 웃을 것이 틀림없는 곳이다. 그러나 아직은 선뜻 판단을 못한다. 순간적으로 동물적인 욕망이라도 일어났으면 좋으련만. 마치 여우에게 홀린 듯 멍청한 체 침만 흘리다 귀선. World War Ⅱ의 기록인 ‘세계의 창’ 영국의 Churchill 수상편을 읽다.
Jun/15(월) :
이곳의 국경일. 휴무다. 모처럼의 기회인데 종일 퍼붓는 비 때문에 생으로 망쳤다.
Jun/16 :
13:00 선내 위원회 소집. 무엇보다 Santos 정박 중 자세들이 엉망이다. 특히 2/O의 당직중 음주 취침. 3/O의 未歸. R/O의 태만 등이다. 모두가 美人天國에 정신이 홀렸다. 손에 집히는 데로 갔다 팔아치우는 모양이다. 전원 상륙금지조치를 명하려니 제발 그것만은 피해 달란다. 절대 절명인양 하다. 모두가 이구동성이다.
C/E와 선식 황 씨댁 방문했고, 황 씨의 부질없는 회고담은 곧 지금의 심정을 잘 반영하는 듯도 했다. 영화 구경하고, ‘Pink Panti’에 들렸다. 여자 파는 방법도 가지가지다. 미끈한 애들의 각선미와 윤기있게 팽팽한 살결들이 탐스럽다만 참는다. 돈이 바닥났다. 선용금이 없는 게 오히려 다행이다. 있다면 이 판에 빌려주지 않고는 못 베길 처지가 아닌가. Capt,들의 얘기들이 백번 이해된다. 이러니 배에 도둑이 들어 죄다 훑어가도 알 수가 없는 것도 당연한 일. 정신적으로 피로하다. 어서 떴으면 싶다.
Jun/17(수) :
엽서 받다. 5월 12일자다. 고모와 정모의 건은 속을 뒤집는다. 우선은 Wife 보기 민망스럽기 그지 없다만 그걸 진작 얘기해주지 않은 아내도 원망스럽다. 제기랄이다. 제 속으로 난 자식이 있었더라면 차마 그러진 못했을 것이다. 미친 것. 피를 나눈 남매간이지만 정말 밉다. 즉시 전화했다만 계속 마음이 무겁다. 계속된 부족한 잠 때문에 눈도 따갑다. C/O의 집안사정도 안스럽다. 그의 wife가 암으로 투병중인 것이다.
거기 비하면 나는 얼마나 행운아에 속하는가? 우선은 부부 쌍방이 건강해야 한다. 그것은 가장 기본적인 토양이다. Wife를 믿고 맡긴 이상 용기와 격려를 줘야 한다. 그런데도 마음과는 전연 다른 답신을 써 보내고 만다. 병이다. 그리고 속되고 속된 속물이다. 내일 오후 출항이 아무래도 무리일 것 같다. 빌어먹을!
Jun/19(금) :
17:20 출항하다. 속이 후련하다. 모두가 얼굴들이 말이 아니다. 술에, 여자에 푹 절어든 탓이다. 각 방에 있던 Audio다 Camera다 뭐나 돈 될만한 것은 죄다 들고 나갔다. 다시 빈털털이가 된 것이다. 17, 18일 양일은 잘 잤다. 한결 피로가 풀렸다. 약 한 주일간의 정박에 두 번 상륙한 셈이다. 잘 참았지만 덕분에 아무런 도난이나 사고 없이 넘겼다.
2/O와 2/Q 가 또 말썽이다. 아무래도 한 명쯤은 희생이 있어야 정신을 차릴 모양이다. 첫 기항지인 Dubai까진 8,200마일. 약 20일간의 항정이다. 좋은 해상이길 기원한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