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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 기지개를 켜다
배종화 수필가
현대인은 대체로 일과 삶의 균형을 중요시한다. 이에 맞춤한 문화생활 공간들이 만들어져 침체 된 마산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최신 명소로 사랑받는 ‘3·15해양누리공원’이 그중 하나다.
공원이 사랑받는 이유는, 푸르고 잔잔한 바다가 한눈에 들어오고 짭조름한 갯내음이 마음을 정화한다. 전국 최초라는 8자 형 보도교는 자태만으로도 긍지를 가질 만하다. 넓은 잔디밭과 큼직한 천막 무대는 가족 소풍과 문화축제의 장이 되기에 충분하다. 공원에 어둠이 내리면 여기저기 버스킹이 펼쳐지고, 마실 나온 사람들로 밤공기가 후끈해진다.
최근 공원 개방과 맞물려 매우 의미 있는 언론 보도가 있었다. 산업통상자원부에서 ‘마산해양신도시’ 일부분을 ‘디지털 자유무역지역’으로 지정·고시한다는 소식이었다. 해양신도시는 3·15해양누리공원과는 지척이다. 구 마산항을 가포로 이전하고 그 자리를 대신 메운 인공섬인데, 현재 마무리 단계다. 보도를 간추리면 디지털 자유무역지역은 지식기반·정보통신기업을 중심으로,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는 데이터, 네트워크, AI 기업이 집적된 지능형 기계·제조 특구가 될 것이라고 한다. 전통제조업 위주의 기존 자유무역지역과는 차별화되는 친환경 특구가 들어서는 것이다.
오래전 마산은 바다 자원이 풍부하고 활기 넘치는 도시였다. 날마다 만선의 통통배가 이른 새벽을 깨우고, 어시장은 활어가 넘쳐났다. 산업화시대로 접어들면서 ‘한일합섬’과‘자유무역수출지역’에 젊은 인력들이 유입되면서 활력은 배가되었다. 출퇴근 시간이면 거리는 인파로 발 디딜 틈이 없었고, 마산의 중심지인 오동동과 창동에는 주점과 각종 생활용품점이 성업을 이루었다. 당시 새로 생긴 부림시장의 ‘먹자골목’과 어시장의 ‘홍콩빠’는 찾아오는 손님들로 문전성시였다.
그 영광(?)은 IMF 외환 위기에 발목을 잡혔다. 기업들이 불황의 늪에 빠지자 상가도 빈 점포가 늘어났다. 산업화에 노출되었던 바다는 되돌릴 수 없었고 그 많던 어류의 양은 턱없이 줄어들었다. 따라서 어부들도 일손을 놓고 활어로 넘쳐났던 어시장도 불경기를 면하지 못했다. 그즈음 젊은 인력은 정든 일터를 떠나고 마산은 서서히 쇠락의 길을 걸었다.
2010년, 마침내 창원을 중심으로 마·창·진 세 도시가 통합을 선언했다. 대다수 마산시민은 ‘마산’이라는 지명이 영원히 사라질까 걱정했지만 오로지 잘살아보자는 재도약에 희망을 걸고 모든 걸 감내했다. 하지만 쉽사리 이렇다 할 통합의 결실은 손에 잡히지 않았다.
마산의 변천사를 들여다보면, 마산은 활력 넘치는 젊은 도시는 물론, 걸출한 문화예술인을 배출하고 예술을 향유한 도시이기도 했다. 지금도 역량 있는 분들이 활동 중이지만, 노산 이은상 선생을 비롯한 이일래, 이원수, 천상병 조각가 문신 선생 등, 많은 예인이 이 고장 출신이거나 이곳에서 작품활동을 하였다. 천혜의 자연환경과 문화예술이 공존한 평화롭고 아름다운 도시였던 셈이다. 가곡 ‘가고파’의 노랫말에는 그 정서(情緖)가 오롯이 묻어난다. 가만히 노래를 흥얼거리면 눈앞에 푸른 물결이 일렁이고 그 위로 하얀 물새가 난다. ‘내 고향 남쪽 바다 그 파란 물 눈에 보이네/ 꿈엔들 잊으리오 그 잔잔한 고향 바다…….’
요즘 3·15해양누리공원을 거닐어 보면 생동감 넘치는 에너지를 느낄 수 있다. 바다에는 아직 덜자란 숭어 때가 모여들어 은빛 장관을 이루고, 도톰하게 살이 오른 도다리는 납작 엎드려 이쪽저쪽 바쁘게 눈을 굴린다. 아마도 짝을 찾는 품새다. 물가에는 청둥오리가 먹이 사냥에 한창이고, 유유히 나는 갈매기는 지난날 가고파의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건너편으로는 사계절 풍경을 달리하는 돝섬이 손에 잡힐 듯 가깝고, 마창대교는 양팔 벌려 마·창·진 세 도시를 아우른다.
드디어 침체 되었던 마산이 기지개를 켜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