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장
서른 개의 바퀴살은 하나의 바퀴통에 꽂히는데, 그 (바퀴통은 서른 개의 바퀴살이 꽂히는 가운데와 하나의 바퀴축이 꽂히는 가운데가) 텅 빔으로써, (서른 개의 바퀴살과 하나의 수레축을 받아들이게 되고, 따라서) 수레(바퀴)로서의 쓰임새를 가지는 바가 있게 된다.
三十輻, 共一轂, 當其無, 有車之用.
주자朱子는 (『주자어류朱子語類』 권125 「노자서老子書」에서) 일컬었다. “무無, 이것은 바퀴통 가운데의 (서른 개의 바퀴살이 꽂히는) 텅 빈 바와 (하나의 바퀴축이 꽂히는) 텅 빈 바를 뜻한다. (바퀴통) 그것은 가운데가 (두 부분으로) 텅 비어 있는데, 따라서 (서른 개의 바퀴살과 하나의) 바퀴축을 받아들이기를 잘하게 되고, 따라서 (하나의 바퀴축이) 돌아가고, (서른 개의 바퀴살이) 굴러가게 되며, (따라서 수레바퀴로서의 쓰임새를) 다하지 않게 된다.” (중국 송宋나라 때) 동사정董思靖은 (『도덕진경집해道德眞經集解』 제11장 주註에서) 일컬었다. “(서른 개의) 바퀴살과 (하나의) 바퀴통은 (하나의 바퀴통에 꽂히거나 하나의 바퀴축이) 꽂히는 바를 더불어 함으로써, (하나의) 수레(바퀴로서의 쓰임새)를 일삼게 된다. (하나의 바퀴통) 그것의 가운데는 (서른 개의 바퀴살이 꽂히는 부분과 하나의 바퀴축이 꽂히는 두 부분으로 나뉘어) 텅 비어 있고, (따라서 서른 개의 바퀴살과 하나의 바퀴축을 받아들이게 되며, 따라서 하나의) 수레(바퀴)로서의 쓰임새를 가지는 바가 있게 된다.”
朱子曰, 無, 是, 轂中空虛. 惟其, 空中, 故能受軸, 而運轉, 不窮. 董氏曰, 謂輻轂, 相湊以爲車. 卽其中之虛, 有車之用.
흙을 이기고 치대서 그릇을 만드는데, 그 (가운데가 가득 찬 바를 가지는 바가) 없게 한 다음에야, 그릇으로서의 쓰임새를 가지는 바가 있게 된다.
埏埴以爲器, 當其無, 有器之用.
동사정董思靖은 (『도덕진경집해道德眞經集解』 제11장 주註에서) 일컬었다. “연(埏; 이긴다)은 흙을 어우러지게 하는 일이고, 식(埴; 치댄다)은 흙을 끈기 있게 하는 일로서, 모두 질그릇을 만들 때 하는 일이다. 이 문장은 또한 ‘그릇은 가운데가 텅 빈 채 (가득 찬 바를 가지는 바가) 없게 한 다음에야, 물건을 담을 수 있고, (따라서) 그릇으로서의 쓰임새를 가지는 바가 있는 바를 일삼게 된다’는 뜻이다. 다음 문장의 뜻도 (이와) 같다.”
董氏曰, 埏, 和土也. 埴, 粘土也. 皆陶者之事. 此, 亦器中空無然後, 可以容物, 爲有用之器. 下意, 同.
문과 창을 뚫어서 방을 만드는데, 그 (문과 창의 가운데가 가득 찬 바를 가지는 바가) 없게 한 다음에야, 방으로서의 쓰임새를 가지는 바가 있게 된다.
鑿戶牖以爲室, 當其無, 有室之用.
착鑿은 뚫는다는 말이다.
鑿, 穿也.
따라서 (가득 찬 바를 가지는 바가) 있는 바는 이로움을 일삼고, (가득 찬 바를 가지는 바가) 없는 바는 쓰임새를 일삼는다.
故有之, 以爲利, 無之, 以爲用.
(이른바, 바퀴통, 그릇, 방은 그) 바깥이 (가득 찬 바를 가지는 바가) 있음으로써, (바퀴통, 그릇, 방의) 모양새를 이루게 된다. (바퀴통, 그릇, 방은 그) 가운데가 (가득 찬 바를 가지는 바가) 없음으로써, (바퀴살이나 바퀴축, 밥이나 반찬, 사람이나 짐과 같은) 물건을 받아들이(는 쓰임새를 가지는 바가 있)게 된다. (그) 바깥이 (가득 찬 바를 가지는 바가) 있는 바는 비유컨대 몸이다. (그) 가운데가 (가득 찬 바를 가지는 바가) 없는 바는 비유컨대 마음이다. (이른바) “이로움”은 (그 바깥이나 가운데의 모양새가) 따라가 이르는 바(順適; 쓰임새)를 뜻한다. (따라서 예를 들어 그릇의) “이로움”은 그릇의 (바깥이나 가운데의) 모양새가 일삼는 “쓰임새”이다. (그릇의) “쓰임새”는 (그릇의 바깥이나 가운데의) 모양새(機; 形)가 일삼는 “이로움”이다. (따라서 비유컨대 그) 몸이 (무위無爲가 가득 찬 바를 가지는 바가 있는 바가) 아니게 되면, (그) 마음이 머무는 바를 가지는 바가 없게 되고, (그) 마음이 (유위有爲가 가득 찬 바를 가지는 바가 없는) 텅 빈 바가 아니게 되면, (그) 이치(理; 道·德·性·命)가 담겨지는 바를 가지는 바가 없게 된다. (따라서) 군자는 그 마음이 반드시 (유위有爲가) 텅 비게 하고, (무위無爲가) 밝아지게 하는데, 따라서 이어서 (그 몸이) 세상 사람들과 (더불어) 어우러지게 된다. 이른바, (비유컨대) 바퀴통의 가운데가 텅 비지 않게 되면, (바퀴축과 맞물려) 돌아가지 않는 수레(바퀴)가 일삼아지게 되고, 그릇의 가운데가 텅 비지 않게 되면, (물건을 담는) 쓰임새를 가지는 바가 없는 그릇이 일삼아지게 되며, 방의 가운데가 텅 비지 않게 되면, (사람이) 머물지 못하는 방이 일삼아지게 된다.
外有, 而成形. 中無, 而受物. 外有, 譬則身也. 中無, 譬則心也. 利者, 順適之意. 利, 爲用之器. 用, 爲利之機也. 非身, 則心, 無所寓, 而心, 不虛, 則理, 無所容. 君子, 之心, 必虛明無物, 然後可以應物. 如轂中不虛, 則爲不運之車, 器中不虛, 則爲無用之器, 室中不虛, 則爲不居之室矣.
여기까지가 제4장이다. (제1장에서) 제3장까지는 도道의 본질(인 태극太極, 자연自然, 성性, 덕스러움德, 무위無爲, 명命)에 대해 일컬었다. 이 장 이후는 도道를 일삼는 바의 공능(功能·功; 모양새, 쓰임새, 이로움)에 대한 일컬음이 비롯된다. 이른바, (이 장 이후가 일컫는 바는) “(반드시 유위有爲한) 마음을 텅 비우는 바를 앞서 힘쓰는 바로 삼아야 하는데, 반드시 (유위有爲한) 마음을 텅 비운 다음에야, 일부러 일삼아 자기 마음대로 하는 바(己之私; 有爲)를 가히 내버리게 되고, (따라서) 다른 사람이 (무위無爲를 일삼기를) 잘하는 바를 받아들이게 되며, 따라서 배움이 나아가게 되고 일삼아지게 되며 이루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右第四章. 三章以上, 言道體. 此章以後, 始言行道之功. 而以虛心爲先務, 蓋必虛心, 然後可以捨己之私, 受人之善, 而學, 進行成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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