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씨이야기 /코르셋
멀리서 두명의 여인을 주시하는 남자.
예리한 칼이 그녀의 복부를 스쳤다.
고통를 느끼지 못하고 한참을 걸어가던 그녀가 푹 쓰러졌다.
허리를 꽉 조인 코르셋을 풀자 심한 출혈이 시작되었다.
곁에 있던 여시종은 얼굴이 파래지고 승선하던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무슨일이야"
외마디 비명을 지르고 그녀는 눈을 감았다.
유럽 여왕중 최고의 미모로 불리우던
합스부르크 왕가의 여왕
오스트리아 제국 황후 엘리자베(1837~1898)애칭 "씨씨(Sisi)로 불린다.
오스트리아에 씨씨 박물관이 있고
그녀의 삶을 소재로 영화 뮤지컬들이 세계곳곳 제작되고 있을정도로
세계인의 사랑을 받고있다.
작년 칸영화제 독립부문 <코르사주>가 진출했고
우리나라도 뮤지컬 엘리자베트가 요모조모 화제였다.
<너 행복한 오스트리아여, 결혼하라>
Tu felix Austria nube.
근친 결혼으로 권력을 유지하며
중세 근대를 거쳐 해가 지지않는 나라로
600년 유럽을 지배하던 합스부르크 가문
17살였던 남편 프란츠 요제프 1세 국왕은 황후
엘리자베트를 사랑했지만
어머니 조피대공에게 가스라이팅 된 마마보이... 그리고 지독한 워커홀릭.
자유롭게 커 온 16세 시골소녀....씨씨에게
시어머니 조피대공의 간섭과 엄격한 궁중 예법은 적응하기 힘들었다.
그리고 남편의 무관심
그녀는 밖으로 맴돌고
자식양육마저 소홀히 한다.
(총 네자녀..큰딸 여행중 사망.
외아들 레돌프ㅡ30세때 권총 사망
막내딸만 편애한다
대개 해외여행을 자주 다녀
오랫동안 외국에 머물렀는데
이렇게 가정을 놔두고 돌아다니는 도피성 여행을
유럽에서는 <<씨씨 신드롬>>이라고 한다.
우울증이 심했고 외모에 집착이 심했다.
신장 173에 몸무게 46~49
허리19.5를 유지하기 위해
식단조절을 심하게 하여 거식증 증세에 시달렸다.
긴머리를 손질하기 위해
하루 세시간이 소요되었는데,
머리 손질동안
교육 철학 역사 문학을 과외 받았다고한다.
궁전 곳곳에 운동기구를 설치할 만큼
운동중독이었으며
실제 승마는 수준급였다.
자유분방한 성격에 흡연을
즐겼고 심지어 팔에 돛대 문신을 새기기도했는데
남편과의 불화 원인이 된다.
이후 프란츠 요제프 1세는
자신의 맘을 이해해주던 미모의 여배우 카타리나 슈라트와 바람을 피운다.
그 둘의 관계를 씨씨는 전혀 상관하지 않았다.
말년은 시종도 단 한명 동행
이름도 가명으로 자유롭게 유럽곳곳을 돌아다닌다.
치안상의 위험 노출은 예고된 것
1898년 스위스 제네바행 배에 승선하던중
이탈리아인 무정부주의자의 칼을 맞고 죽는다.
코르셋 때문에 칼을 맞고도
100미터를 걸어가다니....
조여라~~최대한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땡기는 흑인하녀와
고통스런 표정의 비비안 리.
근친혼으로 요절한 합스부르크 비운의 왕비
마르게리타 테레사. ~~~~~
나이에 관계없이
코르셋과
한껏 부풀린 엠파이어 스커트는
아름다운 여성의 상징였다.
서구 유럽의 코르셋 역사는
기원전 3000년전 미노스문명에
여인들이 붕대를 둘둘 감는 것에서 시작하여,
19세기 이런 모습의 속옷에
코르셋이란 명칭이 붙는다.
모래시계 모양의 몸매.
가는 허리를 만들기 위해
어릴적부터 허리를 조여
심한경우 장기가 위나 아래로 쏠려 단명하기도 했다.
(10살미만의 여아에게 양허리에 고래뼈를 묶어
갈비뼈가 자라지 못하게 하고 잠잘때는 루프를 함)
예뻐보이기 위해
중세때는 헤어라인의 머리카락을 집게로 다 뽑았고
밀랍으로 동그랗게 만들어
이마에 붙였다고 한다.
르네상스 때는 속눈썹을 다 뽑았다고도 한다.
문화의 상대성이라고 하지만
미의 역사는 잔혹해 보인다.
코르셋
마흔살이 넘어가면서 초상화도 못그리게 한 황후 씨씨.
그녀는 자신을 옥죄이는 구시대의 관습에서 자유로워지기 위해
자신의 몸을 조여갔다.
지금은 탈브라 탈코르셋으로
여자의 몸이 많이 자유로워졌지만 외모 지상주의는 여전하다.
19인치 가는 허리와 다이어트에 집착하는 경우도
우리시대의 슬픈 코르셋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