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하는 마음♡
성경: 마태복음 18장 35절
찬송: 393, 408, 331, 309
설교: 이 경준 목사님
너희가 각각 마음으로부터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나의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마태복음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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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을 사회적인 동물이라고 하는 이유는 공동체 생활을 해나가기 때문입니다. 여러 부류의 사람들이 모여서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 인간사회입니다. 태어나서는 부모와 형제자매로 이루어진 가정 공동체에서 혈연관계로 살아가게 되고, 성장하게 되면서 좀 더 넓은 사회에서 스승과 제자, 그리고 학우로 인간관계를 맺게 됩니다. 성장한 후로는 사회라는 큰 공동체 안에서 스스로 구성원이 되어 상사와 동료와 이웃으로 살게 됩니다.
사회 공동체 생활의 특이점이라 한다면 서로 다른 성향의 사람들이 혼재하여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개중에는 좋은 사람들이 이웃이 되어 함께 하지만, 더러는 악한 성향의 사람도 있습니다. 그래서 살아간다는 자체가 우리에게는 매우 어려운 과제가 되고 말았습니다. 믿고 살 수 있는 공동체가 꿈이지만 우리가 사는 공동체에서는 불가능한 것으로 치부되어 있습니다. 오죽했으면 그런 세상을 만든다는 것은 대머리에 머리핀 꼽는 것보다 힘든 일이라고 했을까요?
그러다 보니 우리에게는 살아가는 것을 노심초사해야 하는 투쟁이 되고 말았습니다. 삶에서 오는 여러 문제가 우리를 다툼 속으로 몰아넣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다툼들은 항상 잘잘못을 따지게 하고, 결국엔 용서를 빌거나 아니면 용서를 해야 할 상황으로 발전합니다. 하루 중에도 우리 주변에는 이런 일들이 허다하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 어느 날 상대의 잘못으로 물질이나 인적인 손해를 많이 보게 되는 일이 발생하게 되었는데 그가 찾아와서 용서를 구한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오늘 본문은 그 일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기독교인들은 용서라는 말을 아주 쉽게 입에 올립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천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용서입니다. 오히려 용서를 비는 사람을 용서하기보다는 당한 것보다 더 큰 고통을 돌려주고 싶어 하는 보복의 심리가 우리 가운데 있기도 합니다.
마태복음 5장 38∼44절을 보면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대며 또 너를 고발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 리를 동행하고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라고 예수님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잘못을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용서하는 마음은 우리 삶 속에서 꼭 필요한 마음입니다. 그런데 요즈음 우리 사회에서는 용서의 미덕을 찾아보기가 힘들어졌습니다. 오히려 상대의 잘못을 들추어내어 망신을 주거나 보복합니다. 그것도 철저하게 말입니다. 선거철인 요즈음 더욱 그런 모습을 자주 봅니다.
용서란 포용하고 이해하는 마음입니다. 곧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십자가의 사랑과 같은 마음입니다. 그러나 보복이란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앙갚음하는 행위입니다. 그 보복으로 어느 정도 마음에 보상받은 듯한 느낌이 들것 같지만, 오히려 마음 깊은 곳에서는 오래오래 상처로 남아 우리를 괴롭힐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양심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용서하신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원수를 용서하고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용서하는 마음도 그렇게 쉬운 일만은 아닙니다. 자신이 입게 된 아픈 상처의 고통을 스스로 추스르며 안타까움을 견뎌내야 하는 인내가 필요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그 용서를 우리가 해내야 합니다. 십자가의 사랑을 베풀기 위해서 그리스도가 걸어가신 그 길을 따르기로 작정한 우리라면 내가 속해 있는 공동체와 나 자신을 위해서도 우리는 그렇게 감내해야 합니다. 마음으로는 감당하기가 어려울 것 같이 느껴지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능히 감당할 수 있는힘을 주실 것입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善者吾善之 不善者吾亦善之 得善”(선자오선지 불선자오역선지 득선)이라는 말입니다. 풀어서 말하면, 선한 자에게 선으로 대하고, “선하지 않은 자에게도 선으로 대(對)하였더니 선이 이루어지더라.”라는 말입니다.
선한 사람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선을 행하려는 그 첫걸음이 선한 사람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본문 말씀처럼 우리에게 용서를 베풀며 살 것을 권면합니다.
마태복음 18장 21절에 베드로가 예수님께 여쭈어봅니다. “베드로가 나아와 이르되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라고 묻습니다. 당시에 랍비들은 3번까지는 용서하라고 가르쳤습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예수님께 7번까지 용서하면 되겠습니까? 라고 물었습니다. 일곱 번까지 용서한다는 것도 대단한 관용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칭찬하실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일곱 번에 일흔 번까지라도 용서하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뿐만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할지니라.” 이 말씀은 용서란 몇 번이라는 숫자를 정해 놓고 하는 것이 아니라 잘못을 깨닫고 용서를 구하는 사람에게는 언제든지 용서하라는 말씀입니다.
용서는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주신 가장 아름다운 마음입니다. 만약 우리 인간에게 하나님께서 용서할 수 있는 마음을 주시지 않았더라면, 이 땅에 살아남아 있을 사람은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알게 모르게 하나님과 이웃에 많은 죄를 짓습니다. 평생에 죄를 일곱 번만 지을 자신이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만약 베드로의 말대로 하나님께서도 일곱 번만 우리의 죄를 용서하신다면 이 세상이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겠습니까? 결코 그렇지 못할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죄를 무한히 용서해 주시는 것과 같이 우리도 그리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며 하신 말씀이 “아버지여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게 한 그들을 용서하셨습니다. 그들이 누구였습니까? 그분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게 한 그 무리가 우리라는 생각은 해보지 않으셨습니까?
우리가 지은 죄의 값은 평생을 통하여 갚아보려고 노력해 보아도 갚을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런 우리의 죄의 값을 대신 치르시려고 십자가에서 돌아가셨던 것입니다. 우리는 그의 공로로 용서를 받은 것입니다. 그 십자가의 보혈로 말입니다. 그래서 기독교의 십자가는 용서의 상징이 된 것입니다.
바울은 십자가의 용서를 깨닫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디모데전서 1장 15절에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라고 하였던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은혜로 새 삶을 얻게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들의 죄를 대신 지고 죽음으로 우리는 영원한 형벌을 면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놀라운 은혜를 값없이 받은 우리가 다른 형제들의 잘못을 용서하지 못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만약, 용서하지 못하는 삶을 고집한다면 불행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사도바울은 서로 물고 물리면 피차 망하게 된다고 했습니다. 바울은 우리에게 이렇게 권면합니다.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놓으리라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라고 로마서 12장 19~21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원수를 갚는 최대의 무기는 복수가 아니라 용서와 사랑입니다. 우리가 원수를 용서하고 사랑할 때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총을 베푸십니다. 이를 가리켜 ‘보상적 은총’이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오직 우리에게 사랑하라, 감사하라, 기도하라, 기뻐하라, 칭찬하라. 라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스스로 복수하라고는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그와 같이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바울은 골로새서 3장 13절에 이렇게 권면합니다.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과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해하고, 포용하고, 용서하는 성도의 모습으로 변화된 우리가 다 될 수 있게 되기를 주 예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랑과 은혜가 많으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 본문 말씀에서는
“너희가 각각 마음으로부터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나의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마태복음18:35)고 하십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여러 가지 이해관계에 얽혀 마음으로 원수를 맺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원수를 갚는 최대의 무기는 복수가 아니라 용서와 사랑이라고 말씀하시며 우리가 용서하지 아니하면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리라 하십니다.
비록 용서하는 것이 힘들고 고통스럽게 느껴질지라도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요 예수님께서 죄없이 우리 죄를 대신 하여 십자가를 지시고 우리 죄를 감당하셨듯이 우리도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용서하므로 우리가 지은 죄를 또한 사함 받는 은총을 덧입게 하소서!
그리하여 하나님 주신 참 평강과 기쁨으로 범사에 감사로 하나님을 찬양하며 날마다 하나님과 동행하므로 이 땅에서 천국의 삶을 살아가다 때가 이르러 영원한 천국으로 옮겨가는 우리 모두가 다 되게 하소서!
감사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 올렸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