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동초 농촌유학 가족과의 만남영월 농촌유학 ②
서울 사는 학부모들이 아이 손을 잡고 영월에 왔다. 농촌유학생 모집공고를 본 뒤 한 달 만에 짐을 꾸려 영월로 온 학부모들은 “아이들 얼굴에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며 유학생활에 만족감을 표했다. 영월군 김삿갓면 옥동초교에 유학 온 이들 중 다섯 가족을 만나봤다.
영월의 자연에서 뛰어노는 아이들
수업 마친 아이들이 가방을 메고 운동장으로 달려 나왔다. 평소에는 스쿨버스를 타고 집에 가지만 인터뷰를 위해 학교에 온 부모들을 발견하고는 너나 할 것 없이 달려와 안기기 바빴다. 부모들과 잠깐의 인사를 나눈 아이들은 축구공을 가져와 한바탕 축구를 하더니, 이내 술래잡기로 종목을 바꿨다. 한참을 뛰어다녀서인지 아이들의 볼이 금세 빨개졌다.
운동장 위로 아이들 웃음소리와 친구 부르는 소리, 힘차게 뛰어다니는 발소리, 사탕 잃어 버렸다며 우는 아이 목소리가 겹쳤다. 부모들은 이런 아이들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봤다. 불과 3개월 전만 해도 서울에 살았던 젊은 부모들은 2023년 2학기에 ‘가족체류형’으로 농촌유학을 왔다. 아이들과 부모 중 1명이 같이 머물며 농촌유학을 하는 형태다. 대부분 엄마들이 동행했는데 유일하게 부부가 함께 온 가족이 바로 2학년 시온이네다. 나승권(36), 최지혜(40)씨 부부는 옥동초 농촌유학 가구 중 일곱 가구가 머무는 예밀포도마을에 살고 있다.
“시온이가 더 어렸을 때 함께 하는 시간을 늘리고 싶었는데 마땅한 기회가 없었어요. 다행히 회사에서 육아휴직이 가능하다는 답이 와서 아빠인 저도 따라왔습니다.”
나씨 부부는 아토피성 피부염으로 힘들어하는 시온이를 위해 농촌유학을 결정했다. 그간 해볼 수 있는 건 다 해봤다는 부부는 신기하게도 영월에 온 후 아이 상태가 완화되었다고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시온이가 아토피로 아파할 때마다 저희 마음도 편치 않았죠. 대신 아플 수 있다면 그렇게 하고 싶었어요. 영월에 와서 3주쯤 지났을까, 조금씩 차도가 보이더라고요. 몸을 긁는 횟수가 드라마틱하게 줄어들었어요. 영월의 깨끗한 공기와 자연이 치료약이었던 것 같아요.”
무엇보다 친구들과 뛰어놀며 건강해진 시온이를 보면서 부부는 영월에 더 머물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졌다.
발 딛는 모든 곳이 자연학습의 장
대치동 엄마였던 유상아(37)씨는 5학년 주희와 2학년 소희가 원해서 영월행을 택했다. 주희가 학교에서 농촌유학 신청서를 들고 온 것이 계기였다. 아이들 생각에 동의한 엄마 유씨는 학교를 결정하기 전 직접 아이들과 강원도 투어를 하며 여러 학교를 둘러봤다.
“아이들이 곤충 채집이나 숲 체험, 별 보러 가는 걸 워낙 좋아했어요. 서울에서는 따로 천문대를 가거나 숲체험을 하러 갔는데 영월에 오니 문밖을 나서면 별이 있고, 매일 곤충 채
집할 수 있고, 가는 곳마다 숲체험인 거예요. 아이들이 그게 정말 좋대요.”
농촌유학을 결정하고 주변에 알렸을 때, 유씨는 5학년 아이를 시골학교로 보내는 것에 대한 걱정과 염려 섞인 말을 많이 들었다. 유씨는 그럼에도 흔들리지 않았다. 이는 농촌유학 온 다른 부모들 생각과도 결을 같이 했다.
“아이가 몸과 마음이 건강하면 언제든 학습은 할 수 있다라는 생각이 있었어요. 주희랑 소희가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힘을 키워서 성장하길 바라는 마음이 가장 컸거든요. 학습적인 면에서도 다채로운 수업을 집중해 들을 수 있어 아이들의 유학생활 만족도가 정말 높아요.”
워킹맘인 한보경(36)씨는 1학년 수아, 유치원생 아인(6)이와 재이(5), 이렇게 삼남매를 데리고 왔다. 스마트가정통신문 ‘e-알리미’에서 읽지 않은 내용들을 지워나가던 중 마침 서울시교육청에서 발송한 농촌유학 안내가 떴다. 기막힌 타이밍이었다. 세 아이를 홀로 돌봐야 한다는 부담도 있었지만 아이들을 자연의 품 안에서 키울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오히려 서울에 혼자 두고 와야 하는 남편 걱정이 앞섰다.
“학교랑 숙소 탐방할 때 남편이 동행했어요. 그전까지는 잠깐이기는 하지만 가족이 떨어져 살아야 한다는 것과 아이들이 낯선 환경에 잘 적응할 수 있을지에 대한 막연한 걱정 같은 게 있었는데 탐방 후에는 남편도 아이들이 이런 환경에서 공부하고 뛰어놀면 정말 좋겠다며 걱정을 내려놓았어요.”
아이들은 생각보다 적응을 빨리했다. 마치 영월에서 오래 산 아이들처럼 학교생활에도 금방 적응했고, 친구들과도 빨리 친해졌다. 틈날 때마다 운동장에서 뛰어노는 게 일이었고, 숙소에 와서도 친구들과 더 놀고 싶어서 해야 할 숙제와 공부를 스스로 빨리 마치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졌다고 부모들이 입을 모았다.
아이·부모 모두 행복한 농촌유학
‘건강한 사람과 좋은 이웃이 되는 것’이 육아 가치관이었다는 주혜선(36)씨는 1학년 해솔이와 일곱 살 해준이 형제를 데리고 유학길에 올랐다. 아이들에게 다양한 체험과 경험의 기회를 만들어주고 싶었던 주씨는 일찌감치 시골 학교에 관심을 두었다. 해솔이를 위해 영월에 있는 초등학교 입학을 알아보는 사이 시간이 훌쩍 지나버렸고, 그렇게 해솔이는 서울 학교에 입학했다. 1학년 1학기 영어, 축구, 미술 학원을 다니며 다람쥐 쳇바퀴 도는 일상을 살아가던 어느 날, 주씨는 농촌유학 모집 안내를 보고 ‘이거다’ 싶었다.
“아이에게 계속 이런 삶의 굴레를 만들어주고 싶지 않다는 갈망이 있었어요. 저도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에서만 살아서인지 내가 사는 곳이 전부이고, 내가 아는 세상이 전부인 것처럼 살았기 때문에 아이에게는 더 넓은 세상과 다양한 삶의 모습들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부모들은 농촌유학을 ‘기회’로 여겼다. 아이들이 다양한 사람들과 소통하는 삶 속에서 넘어지고, 부딪치며 스스로 배우고 느끼는 과정 가운데 단단해지리라 믿었다. 6개월의 농촌유학생활 중 3개월이 지난 지금, 열심히 뛰어놀아서인지 뒤돌아서면 배고프다고 밥 달라 아우성이라는 아이들은 그만큼 잠도 잘 자서 키가 더 컸다. 태블릿과 휴대폰, 게임기에 의존했던 시간들을 친구들과 노는 것으로 채웠다.
영월의 자연을 정말 좋아해 해마다 영월로 여행을 왔다는 박은희(47)씨는 옥동초 주변을 휘감아 도는 옥동천에 일찌감치 반했다. 옥동천에서 1학년 아들 민재와 다슬기를 잡을 때까지만 해도 영월로 유학 올 줄은 생각지 못했다.
“남편을 먼저 올려보내고 펜션에 머물 날을 연장할 정도로 영월에 머무는 나날, 모두가 좋았어요. 어느 날 지인을 만나 민재를 조용한 시골 학교에 보내고 싶다고 했더니 농촌유학 프로그램을 알려주더라고요. 그래서 미리 준비를 하고 있다가 지원을 했죠. 옥동초에 꼭 오고 싶어서 정말 열심히 준비했어요.”
한바탕 축구를 하고 땀 흘리며 뛰어온 민재에게 영월로 유학 와서 좋으냐고 물었다. 민재의 답은 “좋으면서 힘들어요”였다. 힘들다는 것이 무슨 뜻일까? 이어진 민재의 답을 듣고 웃음이 절로 났다. “다 좋아요. 다 좋은데 학교가 너무 넓어서 힘들어요.(웃음) 운동장에서 뛰어 놀아야죠. 학교 식당에 가서 밥 먹어야죠. 여기저기 돌아다닐 곳이 많아서 좋으면서 힘들어요.”
민재가 다시 아이들 무리로 돌아간 뒤 박씨가 넌지시 휴대폰 속 사진 한 장을 보여주었다. 그 속에는 민재가 ‘영월’로 지은 2행시가 담겨 있었다.
“영 : 영월은 청춘이네, 월: 월래 영월은 좋아!”
엄마가 아이에게 불어온 기분 좋은 변화를 느끼듯, 아이도 엄마가 영월에 와서 여유를 찾고, 행복해 하는 것을 느낀 모양이다. 민재의 2행시에는 농촌유학의 행복감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농촌유학 부모들은 영월에 와서 아이들도 행복하지만 자신들이 더 행복하다고 했다. 사람 사는 맛이 있고, 정이 느껴진다는 것이다. 식자재마트나 시장을 따로 가지 않아도 마을사람들이 가져다주는 고추며, 배추며, 열무 같은 농산물에 풍성한 한 끼 식사가 차려진다.
오가는 길, 마을 사람들과 인사하는 것이 일상의 작은 기쁨이 됐다. 아이들을 학교 보내고 난 뒤에 더 바쁘다는 부모들은 원예, 도자기, 꽃차, 필라테스 등 군에서 지원하는 다양한 문화활동을 즐기며 영월에서의 삶을 만끽하고 있다.
박은희씨와 유상아씨는 일손이 모자란 예밀포도마을의 포도 수확 철에 농촌일손돕기 아르바이트를 하며 마을 주민들과도 소통했다. 주민들이 딴 포도를 포장해 택배상자에 넣는 일을 하며 “어디서 왔냐” “영월에 뭐 하러 왔냐”와 같은 소소한 이야기들을 주고받았다. 두 사람에게 포도농장에서의 아르바이트 경험은 평생 잊지 못할 달콤한 추억이 됐다.
농촌유학생 부모들은 전적으로 아이를 위해 농촌유학을 오는 것도 좋지만, 아이들 등교 후 여가를 어떻게 보낼 것인가 계획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당부했다. 그래야 아이도, 부모도 행복한 유학생활이 가능하다는 소중한 팁을 전하며 아이들 무리 속으로 부모들이 뛰어 들어갔다. 영월의 작은 학교가 내어준 큰 운동장 안에서 부모들도 아이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