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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종중에서 소종중(=계파) 등록을 받으면서 소종중 결성(=분파) 조건과 명칭에 대해 이런저런 논란이 있는 듯합니다. 관련 분야에 대한 전문적 지식은 없으나 혹시 참고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몇 마디 올리오니 넓은 아량으로 보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1. 분파(分派): 소종중(계파) 결성
우선, 종중(문중)의 분파(分派)는 종법(宗法)을 참고로 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조선시대 가족제도의 근간을 이루었던 종법(宗法)은 중국 주(周)나라 초기에 이미 형성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장자(長子: 맏아들)를 중심으로 가계를 계승하고 제사를 받드는 것을 핵심으로 합니다. 이러한 종법의 원형은 다음과 같이 『예기(禮記)』 대전(大傳)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별자(別子)는 조(祖)가 되고, 별자를 계승하는 이는 종(宗: 대종大宗)이 되며, 아버지(禰)를 계승하는 이는 소종(小宗)이 된다. (따라서) 백세(百世)토록 옮기지 않는 종(대종)이 있고 5세가 되면 옮기는 종(소종)이 있다. 백세가 지나도 옮기지 않는 것은 별자의 후손이다. 별자를 계승한 종(대종)은 백세가 지나도 옮기지 않는다. (한편) 고조를 계승한 종(소종)은 5세가 지나면 옮기게 된다."(禰: 니/녜. ①아버지 사당 ②사당에 모신 아버지 ③(먼 곳으로 모셔 갈 때의)신주(神主). ※生稱父死稱考入廟稱禰. 즉 살아 계실 때는 부<父>, 돌아가시면 고<考>, 사당에 드시면 니/녜<禰>라 칭한다.)
여기서 별자(別子)는 제후(諸侯)의 아들 중에서 다음 세대의 제후가 될 적장자(嫡長子)를 제외한 나머지 아들들을 지칭합니다. 이 별자의 적장자로 이어지는 종(宗)이 대종(大宗)이 되고 별자의 적장자가 아닌 나머지 아들, 즉 중자(衆子)들이 이루는 종은 소종(小宗)이 됩니다. 제후(=왕)의 적장자는 세자(世子)가 되어 다음 대의 제후가 되고, 별자의 적장자는 종자(宗子)가 되어 대종(大宗)을 잇습니다. 그 외 중자들은 모두 소종을 이루게 됩니다. 중자의 적장자는 소종의 종자(宗子)가 됩니다. 이 관계를 도표화하면 대략 다음과 같이 나타납니다.
| 제후 | 대종B | 소종 | 대종A | 소종 | 소종 | 소종 |
| ↓(세습) | 백세불천 | 5세천 | 백세불천 | 5세천 | 5세천 | 5세천 |
| 적장자=세자 | 별자A(시조) | |||||
| 적장자=세자 | 별자B(시조) | 적장자=종자 | 중자A | |||
| ↓(세습) | 적장자=종자 | 중자B | ↓(계승) | 중자C | 적장자=종자 | 중자D |
| ↓(세습) | ↓(계승) | ↓ | ↓(계승) | ↓ | ↓ | ↓ |
물론 『예기(禮記)』 대전(大傳)의 내용만으로는 종법의 구체적인 실체를 정확히 파악하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그러나 종법의 핵심은 장자가 가계를 계승하고 그에 따른 제사 의례(儀禮)를 규정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겠습니다. 대종은 백세가 지나도록 묘(廟)를 옮기지 않는 반면, 소종은 고조(高祖)를 지나면 제사를 지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위에서 간략히 살펴본 종법에 따르면, 분종(分宗)(즉 분파分派)는 중자(衆子)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며, 장자(長子)는 종자(宗子)로서 자신이 속한 종(宗)을 잇는 특권과 의무를 동시에 지고 있으므로 분종(분파)하여 자신이 해당 파의 시조(始祖)가 될 수 없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장자의 개념 속에는 독자(獨子)와 입후자(立后子)(=양자)가 포함됩니다.
여기서 구체적인 예를 하나 들어보기로 합시다. 장자이신 5세 문정공(휘 상충尙衷)께서는 분파하여 '문정공파'의 파조(派祖)가 되실 수 없고, 문정공의 독자이신 평도공(휘 은訔)께서도 분파하여 '평도공파'의 파조가 되실 수 없습니다. 6세 평도공의 세 아드님 중 둘째이신 세양공(휘 薑)과 셋째이신 경주공(휘 훤萱)께서 분파하여 각각 파조가 되시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장자이신 참판공(휘 규葵)께서 분파하여 '참판공파'의 파조가 되시는 것은 종법의 정신에 어긋나는 듯합니다. 앞에서 언급하였듯이 장자(독자, 양자 포함)는 가계(家系)를 계승할 특권과 의무를 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간단히 말해, 분파는 중자(즉 지차之次)들이 하는 것이지 장자(즉 종자宗子)가 하는 것이 아니라고 봅니다.
다만, 분파하여 새로운 파계를 형성하여 파조가 되려는 경우가 아니라면, 長子라 하더라도 그 후손들을 다른 지차(之次)의 후손들과 구분하여 배타적으로 지칭할 때 <'OO공' 후손> 등으로 표현하는 것은 무방하다고 봅니다.
2. 파명(派名): 파조의 존호(공호)
분파하여 계파가 형성되면, 해당 계파 시조(즉 파조)의 존호는 보통 'OO공(OO公)'이라는 명칭(즉 공호公號)을 사용하는데, 전통적으로 흔히 쓰이는 공호는 대개 다음과 같이 분류해 볼 수 있겠습니다. (※다음에 나오는 예들은 분파와는 상관없이 전통적으로 불러온 공호입니다(조선 시대 반남박씨 관련 문헌 기준). 분파하여 독자적인 파(派)를 결성할 수 있는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를 모두 포함합니다.)
①시호: 문정공(5세 尙衷)ㆍ평도공(6세 訔)ㆍ세양공(7세 薑) 등.
②봉호: 금성공(9세 墉)ㆍ반성공(12세 應順)ㆍ금주공(14세 炡) 등.
③직함(실직/증직/허직): 호장공(시조 應珠)ㆍ밀직공(4세 秀)ㆍ참판공(7세 葵)ㆍ의정공(8세 崇質)ㆍ사직공(8세 秉文)ㆍ판관공(8세 秉鈞)ㆍ호군공(護軍公)ㆍ군수공(8세 秉德)ㆍ승지공(9세 䃞) 등.
④지역명(지방수령): 경주공(7세 萱)ㆍ상주공(9세 林宗)ㆍ숙천공(9세 林楨)ㆍ남평공(9세 輅) 등.
⑤ 과거(대/소과) 관련: 급제공(2세 宜)ㆍ진사공(3세 允茂)ㆍ생원공(9세 거磲) 등.
⑥호(號): 남일공(12세 應男)ㆍ졸헌공(12세 應福)ㆍ활당공(13세 東賢) 등.
⑦기타: 유사공(儒士公)ㆍ처사공(處士公)ㆍ학생공(學生公) 등.
일반적으로 공호는 시호를 가장 우선시하는 경향이 있는 듯합니다. 예를 들어, 평도공께서는 의정부 좌의정의 관직과 금천부원군(錦川府院君)의 군호를 받으셨지만 '의정공' 또는 '금천공'이라 하지 않고 일관되게 '평도공'으로 부르는 것으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겠습니다. 3세 진사공은 관직이 '양온령동정'이고 조선에 와서 이조참의의 증직을 받았지만 '진사공'으로 부른 것은 일종의 명예직(허직)인 동정직(同正職)이나 증직(贈職)보다는 역사적 관점에서 '진사'라는 사실을 더 중하게 여겼던 것이 아닌가 추측할 수 있겠습니다. 반면에, 승지공(9세 䃞)은 관직이 부사직(副司直)이었으나 증직을 공호로 사용하였으며, 15세 찬성공(贊成公: 世楷)도 유사한 예가 되겠습니다. 아마 증직이 더 명예롭다고 판단한 듯합니다.(※물론 이 경우에 <증좌승지공>ㆍ<증좌찬성공>으로 하는 것이 정확하겠지만 '이자호(二字號)'(OO공) 관례를 따라 각각 <승지공>ㆍ<찬성공>으로 줄여서 표기한 것입니다. 이와 관련한 것은 뒤의 논의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관직과 관련된 정보는 알 수 없으나 사마시(司馬試)에 입격하였거나 과거에 급제했다는 사실을 강조하려는 의도에서 급제공(及第公)ㆍ문과공(文科公)ㆍ진사공ㆍ생원공과 같은 공호를 쓰기도 하였습니다. 최고 관직이 지방 수령인 경우에는 수령을 맡았던 해당 지역의 명칭을 공호로 쓰는 경우도 흔하게 나타납니다. 예를 들면, 7세 경주공(慶州公: 萱)은 경주부윤(慶州府尹)을 역임하여 그렇게 공호가 정해진 것입니다. 오늘날에는 '부윤공'으로 칭하는 것이 일반적으로 보이지만 실은 '경주공'이 더 많은 정보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부윤공'은 어느 부(府)의 윤(尹)을 지냈는지 모호하지만 '경주공'이라 하면 경주부(慶州府)의 장관(長官)인 윤(尹)을 역임했다는 사실이 분명하게 드러나는 공호입니다. 그러나 지방 수령이었음에도 지역 명칭을 쓰지 않고 관직명을 사용한 예도 발견됩니다. 예를 들면, 8세 군수공(郡守公: 秉德)은 온양군수(溫陽郡守)였는데 '온양공'이라 하지 않고 '군수공'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온양군수를 지낸 13세 휘 동도(東燾)는 '온양공'으로 표기하고 있습니다.(※위에서 살필 수 있듯이 공호는 복수(複數)일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7세 휘 훤(萱)을 '경주공'이라 부르기도 하고, '부윤공'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한편, 서반(西班) 관직명을 공호로 사용한 예도 많이 나타나고 있는데 주로 오위 소속의 관직이 대부분입니다. 호군공(護軍公)ㆍ사직공(司直公)ㆍ사과공(司果公)ㆍ사정공(司正公)ㆍ사맹공(司猛公)ㆍ사용공(司勇公) 등이 그것인데 이는 일종의 군 계급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품계(산계)명을 사용한 예도 많습니다. 예를 들면, 어모공(禦侮公)(어모장군)ㆍ분순공(奮順公)(분순부위) 등인데 후반부를 잘라 사용한 교위공(校尉公)과 같은 공호도 보입니다. '교위'가 포함된 오위 관직명은 과의교위(果毅校尉)에서 병절교위(秉節校尉)에 이르기가지 무려 8계(階)나 되는데 어느 교위를 가리키는지 알 수 없습니다.
한편, 관직이 있더라도 관직을 사용하지 않고 개인의 호(號)를 사용하여 'OO공'으로 부르는 경우도 많이 발견되는데 이는 특정한 개인을 두드러지게 드러내기에 매우 좋은 공호로 판단됩니다. 그런가 하면, 원종공신(原從功臣)이었다고 '원종공'이라는 공호를 쓴 경우도 보이고, 관직이 무엇이었는지 알 수 없는데 세보(족보)에 '동정(同正)'이라고 기록되어 있어 '동정공'이라 표기한 경우도 발견됩니다. 고려시대 동정직은 문반 6품 이하, 무반 5품 이하의 관직에 설정되는 직임(職任)이 없는 일종의 허직(虛職)인데 그나마 무슨 관직의 동정인지 알 수 없어 뭔가 빠진 듯한 공호로 들립니다.
그런데 『숭효록』과 병술보(1766년)를 비롯한 세보의 세파도(世派圖), 그리고 세보 현주(방주)의 기록이나 기타 조선 시대에 작성한 문헌에 나오는 공호는 한결같이 '이자호(二字號)'(OO공) 관례--즉 두 글자를 사용하여 공호를 짓는 관례--를 따랐다는 점입니다. 의정부 좌의정은 <의정공>, 사헌부 대사헌은 <대헌공>, 승정원의 6승지는 모두 <승지공>으로 줄여서 호칭하였습니다. 지방 수령을 지낸 경우, 경주부윤은 <경주공>, 숙천부사는 <숙천공>, 토산현감은 <토산공>, 신계현령은 <신계공> 등으로 공호를 지었습니다. 사복시(司僕寺)의 수장인 정(正)을 지냈으면 관직에 나오는 '시(寺)'자와 한 글자로 된 관직명인 '정(正)'을 결합하여 <시정공>이라 한 반면, 부정(副正)의 경우에는 관직명 두 글자만 사용하여 <부정공>이라 하였습니다. 상호군(上護軍)ㆍ대호군(大護軍)ㆍ호군(護軍)ㆍ부호군(副護軍)은 뭉뚱그려 <호군공>이라 불렀습니다. 공호는 일종의 호칭이므로 세밀하게 구분하지 않았던 것이 아닐까 추측해 봅니다. (※물론 세보의 개별 인물 방주나 축문 등에서는 그렇게 뭉뚱그리지 않습니다. ※대학 교원을 전임강사ㆍ조교수ㆍ부교수ㆍ정교수ㆍ석좌교수ㆍ명예교수 등으로 세분하지만 모두 "교수(님)"로 호칭하는 경우를 생각해 보면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세보의 첫 부분에 나오는 세파도(世派圖)나 대종중 웹에 올라 있는 선계(先系) 계보도(系譜圖) 등에 올라 있는 공호를 살펴보면 의문이 드는 경우가 더러 있습니다. 가령, 4세 현장공(縣長公: 麗)의 경우, "縣長"이 과연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습니다. 물론 세보의 방주에 '금성현장(錦城縣長)'이라 기록되어 있지만 그 자체가 무슨 의미인지 이해하기 힘듭니다. 또 6세 문과공(文科公: 詰)의 경우는 아마 문과(文科)에 급제하였다고 붙인 공호로 보이지만 문과방목 어디에서도 확인할 수 없습니다. 그 외에도 쉽게 이해되지 않는 공호들이 꽤 보이지만 여기서는 더 언급하지 않기로 합니다.
3. 요약 정리
이제 정리해 보겠습니다. 먼저, 소종중 결성(분파)은 종법의 정신을 따르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바로 '명문(名門)'ㆍ'국반(國班)'에 걸맞을 것이고, 또한 숭조(崇祖) 정신을 지키는 일이 될 것입니다. 다음으로, 공호는 사실에 기반하여야 하고 (명백한 오용이 아니라면) 가급적 선조님들께서 사용하신 전통적인 공호를 계승하는 것이 어떨까 싶습니다. 나아가, 대종중에서 공식적으로 사용하는 파명(소종중 명칭)은 합리적이고 일관성 있는 기준을 적용하여 정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다만, 해당 계파 내부에서 자체적으로 사용하는 공호는 해파(該派) 내부의 문제로 돌리면 될 듯합니다. 다시 말해서, 소종중(파) 내부에서 어떤 공호를 사용하든, 대종중의 공식 출판물(각종 문서 포함)이나 웹 게시판에서는 대종중에서 인정한 파명만 사용하자는 것입니다. 소종중 내부의 자의적 결정에 따른 무원칙한 파명을 대종중 차원의 공식 출판물이나 게시판에서 사용하면 종원들 사이의 소통에 오해와 장애를 일으키고 (때로는 갈등까지 일으킬 수 있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사리(事理)와 전통에 어긋나 오히려 숭조(崇祖)와 돈족(敦族)에 역행하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족말 근기.
2025. 12. 15 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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