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심론』의 선정론
선(禪, Dhyāna)이라고 하면 인도 사상 일반에는 요가(Yoga)라고 하지만, 불교의 선은 인도의 요가와 그 의미가 다르다. 불교의 선은 지(止, śamatha)와 관(觀, vipaśyanā)을 내용으로 한다. 지는 마음을 통일하여 적정의 경지에 이르는 것이며, 관은 지에 의해 진리를 관조하여 깨치는 보리의 마음이다. 또한 선은 사유수(思惟修)‧정려(靜慮)라고도 번역되는데, 이는 고요하게 사유하여 진리에 이른다는 뜻이다.
벽산은 이러한 선에 이르는 방법으로 독특하게 석공관(析空觀)을 제시하며, 『금강심론』 제1편 제2장 「보리방편문」에서 가장 먼저 수행론으로 설하고 있다. 왜냐하면 선수행을 이치로 헤아리거나 관념적인 형식의 입장을 타파하기 위해서다.
실제로 『구사론(Abhidharmakośabhaṣya)』의 물질론과 비교하여 공관(空觀)을 체험적으로 느낄 수 있는 관법을 설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공(空)을 쉽게 느낄 수 없는 현실을 직시하여, 석공관을 실행하여 공을 직접 체험할 수 있는 계기로 삼는 것이다.
1.석공관을 통한 선정의 경계
석공관은 물질에 따라 일상에서 볼 수 있는 일광진(日光塵)에서 마지막 인허(隣虛)의 단계까지 물질이 분해되어 공(空)이 되는 과정을 비유로 깨달음을 설하는 것으로 아홉 단계이다. 벽산은 각 단계마다 경험하는 경계나 상황을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는데, 이는 직접 체험하지 않고는 말할 수 없는 영역이다.
묘유 즉 공(空)으로서 공이 단멸의 공이 아님을 설명하는 것이다.
묘유의 마지막 단계를 인허라고 하며, 그 영역에는 물질의 본체와 작용이 없다. 최극미분이 일곱배로 화합하여 비로소 물질의 그림자를 구성한 시초이고, 끝이며 진실로 극미라 할 수 있다. 이것 또한 물질의 본체와 작용이 없지만, 실제로 물질의 처음이자 끝인 극미이다. 다음으로 극미의 일곱배인 미진(微塵, aṇu-rajas)은 미(微)라 하며, 그 일곱배인 금진(金塵, loha-rajas)은 금이 왕래하되 장애도 걸림도 없는 육안의 경지이다. 또 금진의 일곱배를 수진(水塵, ab-rajas), 수진의 일곱배를 토모진(兎毛塵, śaśa-rajas), 토모진의 일곱배를 양모진(羊毛塵), 양모진 일곱배를 우모진(牛毛塵), 우모진 일곱배를 극유진(隙遊塵, vāta yanacchidrarajas) 또는 일광진(日光塵)이라 한다.
물질과 비교하면 극유진은 물질의 성분이라 할 수 있고, 더 미세한 우모진은 소털만큼 작아 현대의 분자에 해당하며, 양털만큼 작은 양모진은 원소에 상응하는 것이다. 또 토끼털만큼 작은 토모진은 전자에 비유되며, 수진은 양성자‧중성자 정도이고 금진은 핵의 본질이다. 다음 미는 식의 알갱이고, 극미는 색의 가장 끝이며, '인허'는 염심근(染心根)으로 마음이 오염되는 근본이다. 그리고 물질에서 수진까지는 욕계의 티끌인 욕계진(欲界塵)이고, 금진은 광명의 본질이므로 색계진이며, '미(微)'에서 '인허'까지는 의식의 분별 흔적이므로 무색계진이라 할 수 있다.
<표 4> 물질의 분류
구사론 | 극유진 | 우모진 | 양모진 | 토모진 | 수진 |
물질 | 성분 | 분자 | 원소 | 전자 | 양핵 |
삼계 | 욕계진 |
구사론 | 금진 | 미 | 극미 | 인허 |
물질 | 핵 본질 | 식립 | 색구경 | 염신근 |
오안 | 육안 | 천안 | 법안 | 혜안 |
삼계 | 색계진 | 무색계진 |
벽산은 "수행자는 먼저 일월성숙‧산하대지 등 삼라만상과 사람‧동물‧꿈틀거리는 일체중생을 남김없이 파괴하여 일광진(日光塵)이 되게 한다. 점진적으로 인허인 백척간두에서 오히려, 일보를 전진하여 진공(眞空)의 경계에 도달해야 한다."라고 설한다.
『금강심론』의 석공관을 차례대로 살펴보기로 한다.
첫째, 통관(通觀)으로 일체 모든 법을 일광진(日光塵)으로 관하고, '일체개공(一切皆空)'의 도리를 바로 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깨달음을 증득한 경우에는 생사를 버리고 열반에 들지 않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둘째, 흙비처럼 붉은 티끌 같은 세상이 바로 관찰되면, 색의 장애인 거칠고 큰 장벽을 돌파하여 극유진(隙遊塵)으로 변화한 경계이다. 물질의 기본 성분에 해당하므로 색에 집착하는 거친 번뇌가 가라앉은 경우이다.
셋째, 해질 무렵 어스름한 빛의 세계가 꿈속에서 나오면, 색음이 우모진(牛毛塵)으로 변화한 경계이며, 물질의 성분이 분자로 나눠진 경계이다.
넷째, 일곱 색이 눈앞에 나타나면, 색음이 양모진(羊毛塵)으로 변화한 원소의 경계다. 일곱이란 사방‧상하‧마음의 중심 등 일곱 가지 극미가 형성되는 것과 관련되며, 또한 물질이 아주 작은 원소로 분해된 경우이다.
여기까지는 각기 오정심관‧별상념처‧총상념처 등에 상응하며, 넷째까지는 외범부위(外凡夫位)이고 다섯째부터는 내범부위(內凡夫位)이라 할 수 있다.
다섯째, 마음에 달빛 같은 빛이 일어나면, 색음이 토모진(兎毛塵)으로 변화한 경계이고 사선근 가운데 난법(煖法, uṣmagata)의 모습이다.
여섯째, 마음의 달이 홀로 드러나면, 색음이 수진(水塵)으로 변화한 욕계정천(欲界頂天)의 경계이다. 욕계의 마지막인 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이며 사선근의 정법(頂法, mūrdhan)에 해당한다.
일곱째, 마음의 달이 변하여 보랏빛 금색체인 태양 같은 금강륜이 드러나는 경계이며, 장차 바른 깨달음에 오르는 징조인 금강좌인줄 인식한다. 물질의 핵에 해당하는 금진(金塵)을 색계에서 보게 되는 견도(見道, darśanamārga)이다. 이같이 만 가지 형상을 극유진으로 변화한 성분, 우모진으로 변화한 분자, 양모진으로 변화한 원소, 토모진으로 변한 전자, 수진으로 변화한 양핵 등으로 대조하여, 가상 원자핵은 곧 간격 없는 금진인 금강륜(金剛輪)인 것이다.
여덟째, 컴컴한 밤에 대낮 같은 지혜의 빛이 일어나면, 천안이 생기어 아누색(阿耨色)을 바로 보는 경계이다. 식(識)의 알갱이로 무색계에 진입한 것이다. 아누란 진공(眞空)의 본체에 묘유(妙有)의 네 가지 성품과 모습을 갖추고, 금강륜의 본체인 금진 이상을 합하여 부르는 것을 의미한다. 즉, 금진‧미‧극미 등의 단계에서 보는 경계이다.
아홉째, 광명을 두른 면밀하고 미세한 극미의 아지랑이 같은 경계가 나타난다. 실질적인 색의 마지막 단계이며 법안으로 볼 수 있는 지위이다.
벽산은 석공관에 대해 "앞뒤 경계를 사람에게 말할 수 없고, 다시 보현진경(普賢眞境)의 의미를 새겨야 한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묘유의 경계를 함부로 말하거나 집착해도 안 되며, 정각(正覺)을 이룬 후에 중생구제를 여의지 않는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와 같이 석공관은 물질이 공(空)이 되는 과정으로 깨달음의 경계를 비유하고, 아울러 물질의 집착과 번뇌를 여의어 단공(但空)이 아닌 진공(眞空)의 단계에 들어가게 한다.
또한 벽산은 세계의 구성설로 사륜과 수미산에 대해 설한다. 즉, "원소 이하가 곧 허공 세계인 허공륜이고, 전자가 곧 풍륜이며, 양핵이 곧 수륜이다. 원자핵이란 곧 금륜인줄 깊이 인식한다.… 수미산의 하반(下半)이란 곧 수진(水塵) 이하이고, 상반(上半)이란 곧 금진(金塵) 이상으로 하반이 곧 욕계(欲界)이며 상반이 곧 상이계(上二界)이다. 삼계란 곧 색음을 없애는 정도에 따라 구별된 것이다."라고 한다. 이것은 경론에서 설하는 기세간(bhājana-loka)으로, 허공륜 위에 풍륜이 있고, 풍륜 위에 수륜이 있으며, 수륜 위에 금륜이 있는 사륜설에 해당한다. 또 수미산(Sumeru-parvata)의 절반 아래가 수진 이하의 욕계이며, 절반 위가 금진 이상으로 색계와 무색계라고 말한다. 수진 이하라는 것은 석공관의 첫째에서 여섯째까지이며, 물질이 성분[극유진]에서 양핵[수진]이 된 것이다. 따라서 깨닫지 못한 번뇌의 중생이 사는 곳이 수미산 하반이다. 금진 이상이란 것은 석공관의 일곱째에서 아홉째까지 해당하며, 물질이 핵[금진]에서 색구경[극미]이 된 것이다. 그러므로 공(空)을 거의 증득한 깨달은 중생들이 사는 색계와 무색계가 수미산의 상반이다. 그러니까 삼계의 구분은 번뇌를 얼마나 여의느냐에 따라, 욕계‧색계‧무색계로 나눠진다고 보는 것이다.
<표 5> 석공관과 묘유 현상
묘 유 | 현 상 | 경 계 | 묘 유 | 현 상 | 경 계 |
일광진 | 티끌중생 | [空觀] | 수진 | 심월독로 | 정법상 |
극유진 | 홍진세계 | [土雨] | 금진 | 자마금색체 | 금강륜 |
우모진 | 황혼천지 | [夢想] | 미진 | 흑야지광 | 천안 |
양모진 | 칠색현전 | 원소계 | 극미 | 극미양염 | 색구경 |
토모진 | 월색식광 | 난법상 | [인허] | [非空非有] | [혜안] |
또 벽산은 화엄종의 공관에 대해, "삼종의 관법을 세우니 첫째, 진공절상관(眞空絶相觀)이란 곧 이법계이다."라고 한다. 이것은 사종법계를 관하는 법계삼관 가운데, 이법계를 관하는 진공절상관을 말하는 것이다. 천태종의 화법사교(化法四敎)에도 장교(藏敎)는 공제(空諦)를 분석하는 석공관(析空觀)으로 견혹(見惑)‧사혹(思惑)을 끊으며, 통교(通敎)는 공제를 체득하는 체공관(體空觀)으로 견사혹을 끊는다고 설한다. 이처럼 대승불교에서는 공관이 중요한 관법 가운데 하나이다.
벽산은 마지막으로 "요체는 먼저 지성(地性)을 분석하여 사대상(四大相)을 깨뜨리고, 공성에 머무름이 도(道)에 들어가는 첫걸음이다. … 오히려 진일보하여 진공계에 전입한 후, 다시금 삼계의 실상을 바르게 관하여 그 묘유를 관찰한다. 석공관이 원인으로 진공묘유관이 결과이다."라고 한다. 이와 같은 '공'과 '물질'의 관계에 대해 무주는 현대 과학의 개념으로 다음과 같이 설한다.
"에너지는 곧 입자이고, 또한 장(場)이며, 장은 곧 공(空)이다. 물질로써 질량이 없으면 바로 공이라 할 수 있다. 질량이 있으므로 공간성과 시간성이 있는 물질인데, 두 가지가 없다면 결국은 공일 수밖에 없다. 진공(眞空)은 입자가 이뤄지고 없어지는 진동을 끊임없이 계속하는 살아있는 능력이고 생명의 장이다. 공은 다만 비어있는 것이 아니라, 무량한 에너지가 충만해 있는 공이라는 것이다."
위의 인용문은 '진공묘유'의 입장을 잘 설명해 주고 있다. 사대의 물질로 이루어진 '나'도 결코 고정된 것이 아니며, 단지 수많은 요소가 서로 균형을 이루며 계속 변화하는 관계이다. 즉, 개체로 존재하는 나는 수많은 요소가 서로 작용하며, 영향을 미치고 계속 변화하는 관계의 모습일 뿐이다. 다시 말해 물리적 세계를 나타내는 것은 파동함수(wave function)이며, 존재의 본질과 정보를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존재할 가능성을 나타내는 파동함수는 사실 추상적인 기호일 뿐이다.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공(空)이라는 말이 가장 적합하다. 공이야말로 존재의 본질과 실상을 나타내는 가장 적당한 말이다. 그것은 실체라고 할 만한 것이 없지만, 온갖 것을 창조해 낼 수 있는 것이 파동함수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공의 개념은 과학의 이론에도 부합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벽산의 석공관은 『구사론』을 참고로 직접 경험한 세계를 실감나게 설한다. 이는 『청정도론(Visuddhimagga)』의 사십업처(Kammaṭṭhāna) 가운데 십변처(Kasiṇa)와 비교할 수 있다. 즉, 지수화풍의 사대와 청황적백의 표상이 선정의 주제가 되는 십변처와 아홉 가지 석공관 중에 홍진‧황혼‧달빛‧자금색‧광명 등의 색이 관상되기 때문이다. 다만 십변처가 관하는 것이라면 석공관은 관해지는 것이다. 『금강심론』에는 "관찰되거든, 현전하거든" 등과 같이 표상[nimitta]을 강조한다. 이것은 물질이 공으로 변해가는 단계와 특별한 색의 나타남이 상관성이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빛이 관상되는 체험에 대해 들어보기로 한다.
남방 상좌부(Theravada)의 아잔 브람(Ajahn Brahm)은 "정신적 즐거움은 주로 수행자에게 아름다운 빛으로 감지된다. 사람마다 흰빛, 금색의 별, 푸른 진주 등을 본다. … 모두 동일한 순수 정신적 대상을 경험하고, 각자 서로 다른 인식의 다른 모습으로 더해지는 것이다."고 말한다. 또 파욱(Pa Auk) 사야도(Sayadaw)는 니밋따는 다양한 형태로 각기 다르게 나타나며, 『청정도론』에는 지각으로 생성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티베트 족첸(Dzogchen, 대원만) 수행자도 "주위가 반짝거리는 불빛, 연기 같은 빛 그리고 색이 다른 빛, 이 모든 부류는 아지랑이 같은 체험이다. 이는 좋은 징조이긴 하지만 여기에 집착해서는 안 된다."라고 말한다.
<『금강심론』 수행론 연구/ 박기남(普圓) 동국대학교 대학원 선학과 박사학위논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