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8월~9월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기고원고
값싸다는 말의 진실 — 시장은 이미 답을 냈다
연재 ② 원전은 경제적으로 유리한가
이원영 (국토미래연구소장, 전 수원대 교수)
히로시마에서 나온 또 하나의 말
2019년 11월, 고(故) 프란치스코 교황이 일본을 찾았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를 차례로 방문한 그는 원전이 재난이 되지 않으리라 보장하기에 충분할 만큼 안전하지 않으며, 핵에너지의 사용은 이미 한계에 도달했다고 말했다. 폭탄이 떨어진 바로 그 자리에서, 폭탄과 뿌리가 같은 기술에 대해 나온 말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 통용되는 상식은 정반대다. 원전은 값싸고, 깨끗하고, 기후위기의 현실적 해답이라는 것. 이번 회에서 따져볼 것이 바로 이 상식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원전은 경제 논쟁에서 이미 졌다. 문제는 우리가 그 소식을 듣지 못하고 있다는 데 있다.
왜 우리는 이 이야기를 듣지 못했나
먼저 물어야 할 것은 숫자가 아니라 경로다. 그 '상식'은 어떻게 우리 머릿속에 들어왔는가.
오랫동안 우리나라에는 원자력 홍보를 전담하는 공적 기구가 있었다. 이름은 몇 차례 바뀌었지만 하는 일은 한결같았다. 원자력이 안전하고 경제적이라는 메시지를 국민에게 전달하는 것이다. 그 예산의 상당 부분이 언론사 지면과 방송으로 흘러 들어갔다. 우리가 신문에서 읽고 뉴스에서 본 '원전은 값싸다'는 문장의 적잖은 부분이, 사실 보도가 아니라 홍보의 결과였다. 광고주가 있는 기사와 없는 기사는 편집회의에서 다르게 다뤄지기 마련이다.
이것은 음모론이 아니라 예산과 지면에 관한 이야기다. 그리고 이 사실을 먼저 짚어두는 데는 이유가 있다. 지금부터 나올 숫자들이 낯설게 느껴진다면, 그 낯섦 자체가 지난 수십 년 동안 무엇이 우리에게 전달되고 무엇이 걸러졌는지를 보여주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시장은 이미 답을 냈다
세계적인 투자은행 라자드(Lazard)는 해마다 발전원별 균등화발전원가(LCOE)를 발표한다. 발전 설비를 짓고 운영하다 폐쇄할 때까지 드는 총비용을 총발전량으로 나눈 값이니, 이념이 아니라 계산서다.
2025년판의 숫자는 이렇다. 원자력은 메가와트시당 141~220달러, 육상풍력은 37~86달러, 대규모 태양광은 38달러부터 시작한다. 태양광과 풍력이 신규 건설 기준 가장 값싼 전원 자리를 지킨 것이 올해로 10년째다.
여기서 흔히 나오는 반론이 있다. 태양광과 풍력은 바람과 햇빛에 따라 들쭉날쭉하니 저장장치와 예비 발전을 얹어야 하고, 그러면 실제 비용은 훨씬 커진다는 것이다. 타당한 지적이었다. 다만 과거형이다.
올해 봄 캘리포니아의 어느 저녁이 그것을 보여주었다. 해가 기울며 사막의 태양광 패널이 일제히 잠들고 퇴근한 시민들이 불을 켜며 수요가 수직으로 치솟는 시간, 예전 같으면 가스발전소들이 헐떡이며 화석연료를 태웠을 그 시간에, 주 전역에 설치된 배터리 저장장치들이 12기가와트가 넘는 전기를 조용히 뿜어냈다. 네덜란드 위트레흐트에서는 주민들이 공유 전기차를 집 앞 충전기에 꽂으면 차가 전기를 소비하는 대신 마을로 되돌려준다. 낮 동안 지붕의 태양광이 모아둔 햇빛을 배터리에 담았다가 저녁에 내놓는 것이다.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둘을 함께 늘릴 수는 없다
그렇다면 원전과 재생에너지를 사이좋게 함께 늘리면 되지 않는가. 정부가 즐겨 쓰는 표현이다. 그런데 이 말이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을, 원전 비중이 70퍼센트에 이르는 나라가 몸으로 보여주었다.
프랑스전력공사는 지난해 원전 발전실적의 약 10퍼센트에 해당하는 물량을 발전하지 못하고 버렸다. 태양광이 쏟아지는 낮 시간에는 전기가 남아돌아 원전이 출력을 줄여야 하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에너지다년계획은 이 포기량이 2035년에 원전 발전량의 30퍼센트까지 늘어날 것으로 내다본다. 손실을 감당하기 어려워지자 프랑스는 결국 2035년 태양광 목표를 90기가와트에서 80기가와트로 낮췄다.
원전이 국내 전력시장을 좌우하는 나라조차 둘을 함께 늘리지 못하고 하나를 줄였다. 같은 전력망 위에서 두 전원은 사이좋은 이웃이 아니라 같은 자리를 놓고 다투는 관계다.
원자력의 장부에서 빠진 것들
공평하려면 반대쪽 계산서도 펼쳐야 한다. 원자력의 장부에도 빠진 항목이 많다.
우선 세금이다. 우리 발전 연료 과세 체계를 보면 LNG에는 개별소비세와 수입부과금이 붙지만 우라늄에는 직접적인 연료세가 없다. 일본은 핵연료 가액의 10% 이상을 지방세로 걷어 지역의 안전 비용을 마련한다. 같은 기준으로 세금을 매기기만 해도 두 에너지원의 가격 격차는 상당 부분 줄어든다. '원자력은 싸고 LNG는 비싸다'는 명제의 일부는 물리가 아니라 제도가 만든 것이다.
더 큰 항목은 사고 비용이다. 2018년 국정감사에서 공개된 한국전력의 「균등화 발전원가 해외사례 조사 및 시사점 분석」 보고서는 일본경제연구센터(JCER)의 기준을 적용해, 중대사고가 일어날 경우의 총 손해비용을 고리 원전 2492조 원, 월성 원전 1420조 원으로 추산했다. 네 개 원전 지역의 평균이 1421조 원이다. 연료비를 아껴 얻는 이익을 수백 배 웃도는 규모다. 이 계산을 내놓은 곳이 다름 아닌 한전이라는 사실이 무겁다. 시장가격에 들어 있지 않은 비용은 사라진 비용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미뤄둔 비용이다.
시장은 이미 이 계산을 마쳤다. 민간 금융과 보험사, 국제 개발은행들이 신규 원전 사업에서 발을 뺀 지 오래다. 그 상징적인 장면이 지멘스다. 독일에서 지어진 17개 원전 건설에 모두 참여했던 유럽 최대의 발전설비 기업이, 2011년 후쿠시마 사고를 보고는 원전 사업을 더 이상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도덕적 결단이기 이전에 경영 판단이었다.
"그래도 원전이 없으면 경제가 돌아가지 않는다"는 말에는 실물 반례가 있다. 일본은 2011년부터 2015년까지 원전 52기를 사실상 전면 정지시켰다. 전체 에너지 공급량은 줄었다. 그런데 그 기간에 국내총생산은 오히려 늘었다.
AI 시대의 진짜 계산서
RE100은 사용 전력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바꾸겠다는 글로벌 기업들의 약속이다. 자발적 캠페인으로 출발했지만 지금은 거래 조건이 되었다. 2018년 BMW는 배터리 납품 조건으로 이를 요구했고 국내 기업과의 계약이 무산됐다. 2021년 애플은 반도체 협력사에 재생에너지로 생산하지 않으면 물량을 대만으로 돌리겠다는 뜻을 전했다. 삼성전자도 2022년 RE100에 가입했다. 세계에서 전력을 가장 많이 쓰는 제조기업의 선택이었다.
이것이 무슨 뜻인가. 우리가 아무리 값싼 전기로 반도체를 만들어도, 그 전기가 재생에너지가 아니면 팔 곳이 줄어든다는 뜻이다. 지난해 기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재생에너지 전환율은 30% 안팎에 머물러 있다. 남은 70%를 어디서 조달할 것인가가 앞으로 10년 우리 주력 산업의 명운을 가른다. 그런데 정부의 답은 원전 증설이다. 그러면 그 반도체는 어디에 팔 것인가.
AI 때문에 전기가 많이 공급되어야 하고 원전이 필요하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하지만 AI와 반도체 그리고 데이터센터의 대안으로 핵발전소는 적절하지 않다. 가장 큰 이유는 시간이다. 2029년까지 신규 핵발전소는 물리적으로 지을 수 없다. 미국과 세계는 이미 태양광과 ESS라는 정답을 내놓았다. 전 세계에서 태양광 1기가와트를 새로 짓는 데 걸리는 시간은 2004년에 1년, 2015년에 1주일이었고 지금은 12시간이다. 반면 원전은 1.4기가와트짜리 한 기를 짓는 데 여전히 15년 가까이 걸린다. 인공지능과 반도체에 전기를 급히 대야 한다는 주장이 왜 원전으로 이어지는지, 이 숫자 앞에서는 설명되지 않는다.
한 사람의 계산을 소개한다. 블룸버그 뉴에너지파이낸스를 세운 마이클 리브라이히는 핵발전 자체를 반대하지 않아 찬핵 진영에서도 즐겨 인용하는 분석가다. 그가 지난 5월 시드니의 한 컨퍼런스에서 이렇게 지적했다. 소형모듈원전(SMR)을 가장 열심히 밀고 있는 이들은 인공지능 업계의 거부들인데, 그들은 SMR을 지지하면서 동시에 수십 기가와트 규모의 풍력·태양광 계약서에도 서명하고 있다는 것이다. 입으로는 원전을 말하고 손으로는 재생에너지를 사들이고 있다.
그리고 그는 간단한 산수를 덧붙였다. 2024년 한 해 전 세계 풍력·태양광 발전량에 맞먹으려면 소형 원자로가 최대 8천 기 필요하다. 그런데 2035년까지 다섯 기만 지어도 큰 성과일 것이라고 그는 보았다. 8천 대 다섯. 이것이 'SMR이 기후위기의 해답'이라는 거짓말의 실상이다.
좌초자산이라는 말
수출이 있지 않느냐고 물을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가진 유일한 완공 사례인 아랍에미리트 바라카 원전은 공사가 3~4년 지연되면서, 이 사업이 포함된 한국전력 장부의 누적 손익이 지난해 상반기 적자로 돌아섰다. 해외 원전사업이 포함된 건설계약 전체로 보면 누적 손익이 1조 5천억 원 적자이고, 앞으로 더 나올 손실에 대비해 쌓아둔 충당금이 1조 4천억 원이다. 수주는 경사로 보도되지만 정산은 조용히 이루어진다.
경제에는 좌초자산(座礁資産)이라는 말이 있다. 어제까지 멀쩡한 재산이었는데 세상이 바뀌면서 하루아침에 애물단지가 되어버린 자산을 가리킨다. 값이 비싸서가 아니라 팔리지 않아서 좌초한다.
지금 우리가 국민의 이름으로 수십조 원을 들여 짓겠다는 것이 바로 그런 자산이 아닌지 물어야 한다. 준공까지 15년, 운영 60년, 그 뒤로 수만 년의 관리. 그 긴 시간표를 후손에게 넘기면서 정작 그 셈이 맞는지는 제대로 따져본 적이 없다.
값이 싸다는 말은 대체 누구에게 싸다는 말인가.
이원영 leewysu@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