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초등학생이 되기 전, 부친은 집을 짓게 했다. 아직도 생생한 그 생활이 클로즙 돼 기억난다. 개를 좋아했는데 그 개집에서 함께 지내는 시간을 많이 가졌다. 마땅도 있었고, 담벼락엔 나팔꽃과 같은 덩굴나무가 있었다. 부엌은 큰 것으로 여겨진다. 내가 어릴 때니까 크게 보였을 것이라 여긴다. 세 바퀴 달린 자전거를 사주셨는데 그 자전거에 앉아 찍은 사신을 갖고 있다. 그때 부친은 여러 친구를 데리고 와서 이 집을 소개한 것으로 여긴다. 그리고 마루가 넓었는데 작은 덩치였던 나는 그 밑으로 기어들어 가서 놀았던 기억이 난다. 부친이 전당포를 했는데 손님들이 찾아오면, 난 기회를 엿보고 친구들과 밖에서 놀았다. 구멍가게가 띄엄띄엄 있었기에 돈이 있어도 뭣을 사먹기도 힘들었다. 하지만 부친에게서 돈을 요구해서 가게에 가서 큰 사탕을 사먹거나 어묵 오뎅을 먹곤 했다. 그리고 동네 형들과 함께 부두가로 가서 게를 잡았던 기억도 난다. 또 놀이 기구가 없었고 자동차도 거의 다니지 않았기에 넓은 도로는 우리의 놀이터였다. 공놀이만 아니라 빵집 담벼락은 따뜻했기에 추운 겨울이면 양지바른 곳에서 벽을 기대어 추위를 이기곤했다. 이따금 빵집 주인 아저씨가 출타하면 그곳에 들어가서 남은 조각을 먹곤했다. 무엇보다도 기억나는 것은 개를 키웠던 것이다.
가축은 인간과 소통하는데 익숙하고 순하다. 자신의 육체를 인간의 먹이로 주곤 한다. 특히 반려동물인 개나 고양이는 더욱 인간의 친구이다. 나는 어릴 때부터 개와 함께 놀이하는 것을 즐겼다. 후에 중학생이나 고등학생이 되면서 셋방살이했기에 반려견을 키울 수 없었다. 하지만 초등학교 시절까진 개와 친했다. 내 기억 속에 개는 인간을 위로할 뿐 아니라 충실했다. 함께 뛰기도 하고 놀기도 했다. 근데 먹거리가 없었던 시절이었기에 동네 분들이 반려견을 두들겨 패서 죽여 보신탕으로 해먹는 것을 보곤 했다. 가축만 아니라 반려견도 인간을 위해 살다가 죽은 후에도 자신의 몸뚱이를 아낌없이 준다. 자신을 잡아먹거나 새끼를 팔아먹는 줄 아는지 모르는지 몰라도 먹이를 주는 주인에게 충실하다. 최근에 반려견도 있지만 유기견도 많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곤 한다. 주인에게 평생 충실한 반려견 대신 난 반려묘를 키우는데 아파트가 아니면 반려견을 선호했을 것 같다. 정말 주인의 감정과 생활을 지켜보다가 자신의 임무를 다한 후 자신의 죽음을 알아차리고 조용히 자신의 처소로 향한다.
나는 선택된 자가 하나님의 충실한 종이라 확신한다. 그분이 나를 선택하고 나를 위해 희생제물이 되셨고 언제나 영원히 함께한다. 그래서 자발로 그분의 종(servant)이 되고자 한다. 노예(slave)가 아니라 무익한 종이다. 나를 위한 일을 평생 행하는 우리이지만 그분은 끊임없이 자비를 베풀고 용서한다. 실수와 오류투성이인 나 자신인데도 그분은 절대 외면하지 않는다. 부끄럽고 죄송한 마음으로 앞으로도 살 것이다. 나이가 들면 철이 들어 하나님의 심정에 맞는 행위나 처세를 할 것으로 기대했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다. 얼마나 세상에 살면 충실한 행위로 그분께 헌신할지 의문이 들 뿐이다. 이것은 행위로 구원받는 견해이기에 믿음으로 의롭다 여기는 진리가 무엇보다 요구됐다. 말씀을 읽고 신학을 공부하면 할수록 나의 불충이 얼마나 어리석다는 것을 깨닫고 이것과 평생 싸워야 하는지 알게 됐고, 싸움에서 져선 안 되지만 이겨야 상을 받는 것도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됐다. 싸움 그 자체가 고귀하고 고상하다. 승리한 전투에 싸운다는 생각이 나를 게으르게 할지 걱정된다. 그래서 늘 깨어서 영적 전투에 임하는 자세를 가져야 하리라 늘 되새긴다. 영적 전투가 목적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 자녀의 의무라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참된 자유를 얻게 됐다. 이것은 반려동물이 아무런 대가 없이 인간에게 충실하고 인간을 위로하는 데 나는 반려동물보다 나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