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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3년 작품 평 또는 해설]
1983년 조약돌 11집에 수록된 작품과 감회
(2020년 8월 25일 – 8월 27일)
글. 남진원
40년 전, 문학에 대한 푸른 기상이 하늘을 찌를듯하던 그 젊은 날의 20대. 문학도 영원하고 문인들도 영원할 줄만 알았지.
1983년 조약돌 11집에 수록된 글을 읽으며, ‘유명을 달리한 사람들이 이렇게도 많구나!’ 하며 탄식을 하였다. 그러니 1983년은 37년 전의 일이다.
조약돌 11집에 수록된 작가 중에 김원기, 박영규, 엄성기, 장영철, 조영주, 최도규 등은 모두 세상을 하직하였다. 심복수나 심윤명, 이원수 등은 교류가 없었기에 지금은 살아 계신지 아니면 세상을 뜨셨는지 전혀 알 수 없는 분들이다.
현재 까지 활발한 작품 활동을 하는 분은 서울의 권영상, 강릉의 김종영, 남진원, 서울의 엄기원, 삼척의 김진광 등이다.
37년 전의 작품집을 들춰 보니 감회가 새롭다. 오백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아드니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 데 없다는 고려 말 길재의 시조가 마음에 깊이 와 닿는다.
한 편 한 편 읽다보니 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새로운 느낌이 뇌리를 스친다.
늘 지나는
그 길,
그 샘터인데도
샘인 줄 알고서는
그냥 못 간다.
도토리도
굴러 와
모여 앉은 샘 가
흘낏
눈짓이라도 주고서야
그 길.
그 샘터.
권영상의 작품 ‘샘터’이다. 동시이면서 시인 이 작품을 읽으면서 ‘권영상의 샘터’ 같은 무수한 인연들이 내게도 있었음을 돌아보게 된다.
‘샘인 줄 알고서는 그냥 못 간다’ 이 글귀가 마음에 들어와 내 삶의 은유적인 것들을 일깨우는지 모르겠다. 읽을수록 ‘참 좋은 시’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였다.
여름이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것이 ‘매미 소리’이다. 나는 해마다 여름이 오기를 무척이나 기다렸다. 싱싱한 매미 울음소리를 듣는 것이 큰 기쁨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가. 매미 울음소리에 관한 시들을 꽤 많이 쓴 것 같다. 새벽에 뒷산 숲에서 일제히 고함을 질러대는 매미소리! 그 고함소리는 가장 아름답고 시원한 고함소리였다. 또 한낮에 들리는 매미 소리는 무더위를 씻어주는 계곡의 얼음 같은 물소리였다.
매미가
찬물을
한 바가지 씩
퍼 올려서는
쏟아 부었다.
옷은 한 방울도 젖지 않고
마음만 씻어주는
맑은
소나기.
나무 밑에서
꽉 찬 들판을 바라보시는
할아버지들 머리 위에
사정없이
쏟아 부었다.
김원기의 동시 ‘매미’라는 작품이다. 매미소리에 옷은 젖지 않지만 마음을 시원하게 씻어주는 맑은 소나기다. 매미 소리는 한 바가지씩 퍼 붓는 찬물이었다. 아니, 찬물 보다 더 시원하다. 들판에 익어가는 곡식을 바라보는 할아버지 머리 위에도 매미소리는 찬물이 되어 사정없이 쏟아 붓는다. 그러니, 여름 날 매미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시원하고 신나며 행복한 일인가!
산은 예부터 민족의 숨결이 깃든 우리 한민족의 어머니요, 우주의 사랑이 깃든 만물을 품는 신의 靈氣(영기)가 깃든 곳이다.
문화와 문명을 일구어가는 도시는 생존을 위한 경쟁이 언제나 치열하기에 그 곳에는 상처 입은 사람들과 질병을 얻어 고통 하는 사람들이 생긴다. 이를 치유해주는 곳도 산이다.
산이 아름다운 이유를 굳이 말하지 않아도 모두 다 좋고 아름다운 줄을 안다. 조금 부연한다면 산에는 산새들이 살고 계곡을 흐르는 맑은 물이 있다. 또 나무와 바위, 구름과 파란 하늘을 닮은 꽃들이 피고 진다. 淸淨無垢(청정무구)함이 있는 곳이 산속이다. 그들은 서로 이웃하며 또 보이지 않는 교감을 나누며 산을 지키며 산에 어울려 산다.
쪼롱 쪼로롱
산새 소리 듣고
하얀 초롱꽃 피고
졸졸 졸조르
산골물 소리 듣고
애기 풀꽃 핀다
초롱꽃 빛깔 닮아
산새 소리
날이 갈수록 맑아지고
애기 풀꽃 빛깔 닮아
산골물 소리
날이 갈수록 어려진다.
김원기의 동시 ‘산 속’이란 작품이다. 산새 소리 듣고 초롱꽃이 피는 모습을 상상해 보면 얼마나 귀여운가. 산속 식구들의 정겨움이 포옥 배어나온다. 어디 그뿐인가, 산골물 소리 듣고 애기 풀꽃도 피어난다. 맑은 물소리 듣고 피어나는 풀꽃은 그 순수함을 어찌 말로 다 할 수 있으랴. 산새 소리 듣고 초롱꽃이 피고 초롱꽃 빛깔을 닮아 산새소리는 갈수록 맑아진다. 이런 지경이 바로 선경의 모습이다. 산골물 소리는 애기 풀꽃의 빛깔을 닮아 날이 길수록 어려지니 그 순박함은 끝을 알 수 없다. ‘서로가 서로에 의해 고귀함이 빚어지는 세상, 그런 사람살이가 어찌 없을 수 있겠는가?’ 이런 깊은 말을 ‘선 속’에 빗대어 김원기는 하고 싶었던 것인지 모를 일이다.
김원기는 현대문학사에서 훌륭한 인품에 더하여, 강릉이 낳은 시의 大家(대가)로 우뚝 자리한 시인이다. 국정교과서에 실렸던 동시 ‘산위에서’ 또한 깊은 감동과 희망, 즐거움을 주는 명작이다.
산속의 아름다운 모습과 산속 식구들이 서로 교감하는 모습을 형상화 한 작품이 ‘산 속’이라면 이번에는 산위에서 바라본 바다와 들판의 모습을 내면화 한 작품이 ‘산위에서’이다. 강릉은 바다와 산과 들이 바다와 연해 있다. 백사장은 흰 모래가 펼쳐진 명사십리이다. 나는 입암동 이안아파트에 살 때에는 자주 월대산에 오른 적이 많았다. 월대산은 소나무와 왕대들이 빽빽이 들어찬 산림지역이다.
산 정상에서 바다를 보면 안목 항과 강문 항, 경포 바다가 한눈에 펼쳐진다. 봄이 되어 월대산을 오르면 푸른 솔바람 소리가 어찌나 청정하게 들려오는지…. 그때마다 교과서에서 읽었던 박두진의 동시 ‘솔바람’을 읊조리기도 했다. 박두진은 강릉의 월대산에 올라 이 동시를 쓴 듯 착각이 들 정도였다. 나는 지금도 봄이 되어 솔바람 소리만 들으면 박두진의 동시 ‘솔바람’을 암송하면서 큰 즐거움과 행복을 느끼곤 한다.
솔바람
박두진
솔바람 소리는 바닷소리
먼 잔잔한
푸른 바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초록빛 바닷소리
지절대던 한 마리
산새도 날아가고
하늘까지 닿을 듯 빽빽한 솔숲사이
이끼 푸른 바위에 앉아 있으면
머언 어디메쯤
햇살의 나라
바다로만 둘러있는 섬기슭에서
소년들이 들고 부는 은피리소리
산의 동무 들으라고
산으로 향해 부는
바다에서 오는 소리, 은피리 소리.
바다에서 오는 소리, 금피리 소리.
솔바람 소리를 동심의 나라 속에서 환상적으로 그린, 아름답고 싱싱한 꿈을 주는 작품이다. 섬기슭에서 소년들이 부는 은피리 소리가 솔바람 소리, 그것도 산으로 행해 부는 은피리소리, 금피리소리 라는 대목에 오면 새로운 상상력으로 얻을 수 있는 거대하고 참신한 수확물이다. 솔바람 소리를 듣고 있으면 마냥 싱그럽고 무엇인가 마음속에서 희망으로 꿈틀거리는 것들을 확인할 수 있다.
다시 김원기의 동시 ‘산위에서‘로 돌아가 보자.
시속의 화자는 산위에서 바다를 보고 산위에서 들판을 바라본다. 바다를 보는 마음엔 잔잔한 들판의 모습을 떠올린다. 들판에서는 새싹들이 대지를 뚫고 솟아오르고 싶은 설렘이 있다. 바다를 보고 있으면 새싹처럼 솟아오르고 싶은 고기들의 설렘을 보고 있는 것이다. 산위에서 들판을 보고 있으면 잔잔한 바다의 모습을 떠올린다. 그러면서 고기비늘처럼 번득이고 싶은 새싹들의 설렘을 보고 있는 것이다.
바다를 보는 마음 들판에서 새싹처럼 솟아오르고 싶은 고기들의 설렘
들판을 보는 마음 바다에서 고기비늘처럼 번득이고 싶은 새싹들의 설렘
산위에서 보면 바다와 들판에서 희망의 꿈틀거림으로 일어서는 새싹들과 고기들의 모습을 상상력으로 그린다. 또한 산위에 서 있으면 자신은 산에 사는 순한 산짐승이 된다고 하였다. 순한 짐승이지만 새처럼 날고 싶은 마음의 설렘을 느낀다고 하였다.
이 동시의 핵심어는 ‘설렘’이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과연 몇 번의 설렘을 느낄 수 있을까? 산위에서 본 작자는 새싹들의 설렘을 보고 고기들의 설렘을 본다. 그리고 새처럼 날고 싶은 자신의 설렘을 확인하는 것이다.
그렇다. ‘설렘’ 어린이들에게, 아니 어른들에게까지 ‘설렘’의 생활을 하며 지낸다는 것은 얼마나 멋지고 행복한 삶일까. 김원기는 사람들에게 마음속으로 속삭이고 있는 것이다. ‘여러분, 모두 마음속에 설렘을 가지고 살아가세요!’ 라고 ….
산위에서
김원기(金元起)
산 위에서 보면
바다는 들판처럼 잔잔하다
그러나 나는 안다.
새싹처럼 솟아오르고 싶은
고기들의 설렘을,
산 위에서 보면
들판은 바다처럼 잔잔하다.
그러나 나는 안다.
고기비늘처럼 번득이고 싶은
새싹들의 설렘을,
산 위에 서 있으면
나는 어쩔 수 없이 순한 짐승
그러나 너는 알거야,
한 마리 새처럼 날고 싶은
내 마음의 설렘을.
*김원기(1937-1988)
시인이며 강릉 구정에서 출생하여 구정국민학교를 졸업하였다. 강릉문인협회 회장을 역임하였으며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하였다. 시집 '풍선을 한 다발씩' 등이 있다.
남진원은 조약돌 11집에 7편의 작품을 발표하였다. 이 중에서 ‘기차를 타고’, ‘가을꽃’, ‘기차를 타고 가다 보면’에 대한 자작시 해설을 곁들인다.
기차를 타고
남진원
산 산 산
산을 지나고
들 들 들
들을 지나고
빨간 고추잠자리들이
맴을 도는 마을을 지날 때면
가슴이 막 뛰어요.
동시 ‘기차를 타고’에서 맨 마지막 행을 보면 가슴이 막 뛴다고 했다. 왜일까? 김원기의 ‘산위에서’란 동시에서는 ‘설렘’이란 말이 많이 나온다. 그렇다. 이 동시에서도 그 설렘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많은 돈을 버는 일이나 명예, 권력이 높아지는 것도 설레는 일일 것이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설렘의 귀속처는 아름다움에 대했을 때이다. 빨간 고추잠자리들이 맴을 도는 마을의 모습은 얼마나 평화스러운 모습인가.
동시 ‘가을꽃’에서는 질서보다는 자연스러운 무질서의 미적 질서를 그려내었다. 산에 핀 조그만 꽃잎들이 아무렇게나 서서 손 흔드는 모습이 얼마나 정겨운가. 웃는 모습도 삐뚤빼뚤하다고 하였다. 도가의 무위에 이르는 자연스러움의 절정을 형상화 한 작품이다.
나는 그래서 동시 ‘가을꽃’을 매우 아낀다. 이 동시를 읽고 있으면 갓 학교에 입학한 천진한 1학년 아이들의 발자국 소리와 해맑은 얼굴이 생각난다.
기차를 타고 가다 보면
남진원
강 건너에서
소 먹이던 아이가
검둥소를 몰고 가요
그 뒤를 졸랑졸랑
송아지 따라가고
수염이 더부룩한 아저씨 한 분이
나무를 지게 가득히 지고 가요.
저녁 달이 떠 오르고 있어요.
누구의 어머니일까
솥에서 방금 꺼낸 듯한 옥수수를
상 위에 수북히 담아
막 방으로 들어가고 있어요.
한 폭의 그림 같은 시골 마을의 저녁 모습이다. 날이 저물자 목동과 검둥소가 집으로 돌아가고 나무를 하나 가득 지게에 지고 집을 향해가는 아저씨, 누구의 어머니인지는 몰라도 삶은 옥수수를 상위에 들고 방으로 들어가서 식구들과 저녁을 나누려는 따뜻한 풍경이 그림처럼 그려져 있다. 지금은 찾아볼래야 찾아 볼 수 없는 그 옛날의 아름다운 시골 저녁 풍경의 모습이다. 이런 시골집이 있었기에 힘든 오늘을 살아가는 에너지가 되는 것 같다.
박영규는 11집에 다섯 편의 동시를 발표하였다. 박영규의 동시 ‘산촌의 밤’, ‘떠나오던 날’ 등에서 아름다운 산촌의 모습과 한국적인 정서를 동시로 형상화한 것을 알 수 있었다.
최도규는 11집에 교통사고가 나서 병원에 입원한 일을 시로 나타내었다. 원주에 아파트를 사서 그곳에서 기거를 하였다. 원주가 교통의 요지라서 생활하기에 편리하다고 하여 원주를 삶의 근거지로 정했다고 하였다. 그러나 지금 돌이켜 보면 원주의 생활이 그를 빨리 죽음으로 몰아간 건 아닌지 모르겠다. 부부교사로 생활은 그리 쪼들리지는 않았다. 나는 교사로 혼자 살아갔고 집안 형편이 어려웠기에 자주 도규 형으로부터 돈을 빌렸다가 갚는 일이 자주 있었다. 원래 강릉의 성산에서 태어나 재주 있고 총명하였다. 교직에 나와서는 문학과 음악에도 깊은 조예가 있었다. 문학을 하면서는 매년 상을 받다시피 하여 내게 부러움을 사기도 하였다. 내가 본격적인 문학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유일하게 최도규 형이었다. 내가 쓴 모든 작품에 대해 항상 긍정적으로 희망을 주었다. 또한 감동적인 좋은 시가 있으면 그걸 가지고 와서 자신이 평을 해가면서 실감나게 읽고 설명을 하면 정말 좋은 시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중에 한 편이 이상현 선생의 동시 ‘겨울연’이었다. 이 작품은 가톨릭 소년 잡지에 머리시로 실렸다. 그 작품을 내게 가지고 와서 읽고 설명할 땐 정말 이석현 선생이 얼마나 위대하고 훌륭한지 감탄에 감탄을 거듭하였다. 지금도 그 한 구절은 못내 잊지 못한다. ‘월훨 겨울 하늘에 불이 붙는다.’ 겨울 연이 하늘을 박차고 꼬리를 흔들며 날아오르는 모습이다.
조약돌에 발표한 작품은 시들로서 읽으면 그냥 마음에 스며드는 작품들이다. 그의 사상이나 생각이 무르녹아 있는 작품들이다. 1943년에 태어나서 1992년에 교툥사고로 돌아가셨으니 불과 60을 채 넘기지 못하였으니 얼마나 안타까운 목숨인가. 오래 오래 살았으면 더 좋은 많은 작품과 노래들이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을 텐데 말이다.
도규 형의 모습을 그리면서, 조약돌에 실린 그의 작품들을 다시 읽어본다.
교통사고를 당했을 때는 얼굴을 아마 알아보기 힘들정도로 망가져 있었던 모양이다.
사람 모양
최도규
응급실에서
자신은‘ 사람이 아니였어.
눈과 코
입술의
주소를 찾지 못해
대충 배달을 했지.
온통 일그러진 얼굴에서
피가 꿀꺽꿀꺽 나서도
많이 좋아졌단다
사람 모양 되었으니까
의사들 끼리도
의아해 웃는다.
다음의 작품은 다친 얼굴을 거울에 보다가 놀라는 모습이다. 그러나 죽지 않은 것만으로 다행이라는 안위를 하며 스스로 평온을 찾는다.
일그러진 웃음
최도규
거울을 보고
내가 왜
내가 왜
말문이 닫기다가도
아니지
정말 다행이야
죽지 않은 것 만으로도
조금은
마음이 후련해진다
조그마한 기쁨이
출렁거린다
일그러진 얼굴은
잠시 잊은 채
일그러진 웃음이
터져 나온다.
작품 ‘두 길’은 체면상 문병 온 사람과 진실한 문병을 한 사람에 대한 내용이다. 문병 온 사람들을 통해 자신도 그렇게 살아온 것을 회고하는 내용이다.
두 길
최도규
체면상
찾아온 문병 손님
나는
눈빛에서 읽는다.
빈손으로
뻐끔뻐끔 들여다봐도
정말 고마운 것을
눈빛에서 읽는다
내가
지나온 길도
위의 두 길이였나.
다음 작품은 병실 호수의 번호와 아파트 집의 호수 번호인데 잊고 싶은 숫자라는 것을 시로 표현하였다. 아마 자유롭게 지내지 못함에 대한 의식을 표출한 것이라고 보인다.
잊고 싶은 숫자
최도규
527
복권 추첨
당첨 번호도 아니다
527
내
입원실 호수
나를 찾아준
많은 사람의 기억 속에도
몇 번 씩은 오고 간 번호
아,
잊고 싶은 숫자.
아파트
최도규
522
우리 집 이름이다.
5층 2동 2호
그래도 처음엔
몇 번 씩 더듬었다.
충충이 어지러워도
방문만 꼭 닫으면
아늑한 보금자리
내가 보고 있는
천정 그 위에도
나처럼 누군가 누워 있겠지.
내가 누워있는
방바닥 그 밑에도
나처럼 누군가 누워 있겠지.
이 밤
하늘로 하늘로 포개진 마을이
내 머릿속에서
엘리베이터를 탄다.
병원에 있으면 문병을 오는 사람이 좋기도 하지만 또한 불편하기도 하다. 그러나 또 찾아오지 않으면 외로워지기도 하는 모양이다.
나는 며칠 전 강릉아산병원에 일주일 동안 입원을 하였다. 어들과 동생들만 한 두 번 오고 다른 사람들은 코로나 때문에 면회를 할 수도 없었다. 나는 병실에 혼자 있는 게 오히려 좋았다. 1인실에 있을 때에는 조용히 생각할 수 있는 기회도 있었고 6인실에 있을 때에는 여러 사람들의 사는 모습과 이야기도 나눌 수 있어 좋았다.
다음의 글은 문병과 관련하여 고통스러운 마음을 표현하였다.
문 병
최도규
병문안 손님
고통스럽다
누워 있으라고 하지만
일어나고 싶고
떠들고 싶고
그래서
육체가 고통스럽다.
손님 안 오면
더욱 고통스럽다
외롭고 적적하고 허전하여
자주 안 오는 얼굴이
원망스럽고
그래서
정신이 더욱 고통스럽다.
조약돌아동문학회는 강원도에서 가장 먼저 기치를 내걸고 시작한 단체이다. 그 뒤에 강원아동문학회가 탄생하였다. 그러나 조약돌은 회장이 없고 일하는 한 사람만이 있었기에 결국 오래 갈 수 없는 운명을 가지고 태어났다고 해야 할까. 김원기에 이어 엄성기가 조약돌 일을 해오다가 일찍 운명함으로써 조약돌은 문학회의 문을 닫게 되었다. 그러나 1960년대 영동지역에 불어넣은 아동문학의 기운은 널리 번져 영동지역 아동문학의 토대를 마련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1983년 11집에 주소를 가진 회원들은 모두 24명이었다.
(권석순, 권영상, 김완성, 김원기, 김종영, 김진광, 남진원, 마석규, 박영규, 심복수, 심윤명, 엄기원, 엄성기, 이원수, 장영철, 전세준, 조무근, 조영주, 최도규, 최상헌, 최승학, 함영상, 홍광균, 김철기 등이다)
이름을 올린 회원 중에 11집에 수록한 회원은 21명이나 되었다.
(권영상, 김원기, 김종영, 남진원, 박영규, 심복수, 심윤명, 엄기원, 엄성기, 이원수, 장영철, 조무근, 조영주, 최도규, 최상헌, 최승학, 권석순, 김진광, 전세준, 홍광균, 김철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