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중앙고를 1964년 2월 23일에 졸업 했으니까 지금으로부터 55년전이다. 올해 지난 2월달어느날, KBS1 TV 인간극장 214회, 老철학자 김형석 교수편(2019.1.2.수)를 시청하는데 김형석 교수가 중앙고를 방문해 김종필 교장과 대화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무척 반가웠다. 그걸 여기 소개한다.
“1954년에 중앙고등학교를 떠나서 연세대학교로 왔어요. 1947년 가을에 부임했었고요. 6.25 전쟁은 중앙고에 있을 때 겪었어요. 연세대는 철학과 학생들이 제자고 중앙고는 담임 맡은 반 학생들이 다 제자인데 사회에 나와서 활동을 많이 한 제자들은 중앙고 출신이 더 많아요. 미국에 가게되면 연세대 졸업생들은 다 점잖게 대해 주는데 자기네 집에 와서 자고 가라는 제자들은 다 중앙고 출신이예요. 고등학교 때 정이 있어서요.”
중앙 중-고등학교는 첫직장이었다. “옛날 학교 그대로구나.” 학교는 변함없는데 사람만 달라졌다. “여기가 강당이었는데” 일본유학을 다녀온 김형석은 이곳에서 처음으로 교편을 잡았다. 그때의 푸르렀던 포부가 떠오른다. 혼란스럽고 가난했던 시절 이땅의 젊은이를 잘 길러내고 싶었다. 그것이 자신이 할 수 있는 애국이라는 생각에서였다. 이 또한 수구초심의 마음일까. 요즘들어 이곳이 자꾸 그리워지곤 했었다. 64년만에 중앙고에 오다. 7년 가까이 있다가 중앙고 떠나다. 31살 때 교감,
“제가 중앙고를 떠나서 연세대로 갔을 때 제일 마음 아팠던 것은 ‘내가 키워야 할 아이들인데 아이들을 두고 대학교로 가도 괜찮나’ 하는 걱정에 마음이 아팠어요. 제가 청소년들이 읽을 책을 많이 쓴 이유가 거기에 있어요. 그런데 그때 기분이 아이들을 남겨놓고서 떠나면 저 아이들이 친어머니 사랑을 못받고 의붓어머니 사랑을 받을 것 같았어요.”
중앙 중-고등학교는 110년 역사에 배출해낸 인물도 많은데 자랑스러운 중앙인으로 선정된 이들 중 반가운 얼굴이 보인다. 정진석 추기경, “정진석 추기경은 제가 담임을 맡았어요.” 41회 졸업생 중에 걸출한 인물이 많습니다. “서강대 교수였던 차하순도 있구나 다 내가 담임을 맡았던 학생들이었는데 여기서 보니 참 반갑다. 민경배도 있구나.“ 교장: 정진석 추기경 담임을 하셨어요? “정진석 추기경의 담임도 했어요.”
“제가 6.25 나기 전에 3년 가까이 이곳에 있었는데요. 그때 우리 학생들이 참 우수했어요.” 담임을 하셨던 41회 졸업생들 중에 굉장히 우수한 분이 많은 것 같아요. 여긴 안나왔는데요, “윤택순이라고 학생의 담임도 제가 맡았어요. 키가 제일 작았어요. 미국에서 교수가 된 건 알았는데 못만났다가 캐나다에 갔더니 토론토대학 물리학 교수가 돼 있었어요. 제일 먼저 정교수가 되었어요. 참 좋았어요.” 제자의 성장을 지켜볼 때가 스승으로서 제일 행복했다. 교장: 방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① 난 6.25 한국전쟁으로 가정이 풍비박산이 났고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3남매중 둘은 죽고 나만 살아남았다. 전쟁이 끝나니 7살 천애 고아가 되었다. 큰고모와 큰아버지 댁, 작은 고모의 도움으로 국민학교와 중학교는 양평에서 좋게 졸업 했는데 그만 중앙고등학교엘 가서는 4.19나고 친척들의 가난과 파산으로 고등학교 2, 3학년을 등록금도 못내면서 아침을 굶으면서 졸업은 했다. 졸업후 1년간 평화당 인쇄소에 다니면서 용돈을 벌어서 1965.11월에 대학입학자격검정고시에 합격하여 그걸로 육군갑종장교후보생 시험을 치러서 66년5월에 논산훈련소에 입소하게 되었다.
② 1950년대말 60년대초는 다 어려워서 살기 힘든 시대였다. 그런데 나는 고아니까 유독 춥고가난했다. 난 고등학교 점심시간 때 수돗물로 허기진 배를 채워야 했다. 나중에 보니 고등학교 때 점심에 도시락을 싸온 친구들은 다 대학엘 갔다.
③ 1967.5.13에 장교로 임관해 장기복무를 지원했고 19년 군대생활 덕분에 4개월간 도미군사유학도 갔다왔고 1980년초 당시 의정부 한미야전사에 있을 때 정승화 육군참모총장 재직시 국립 한국방송통신대학에 입학해 졸업(학사)했고 1985.4.30 제대후엔 용산 미8군 직장에 다니면서 연세대 행정대학원(석사)도 졸업하였다. 내가 야간대학원 다닐 때 자식들이 중학생과 고등학생이었는데 내가 고등학교때 등록금 고생이 잊혀지지 않아서 아이들 중학교, 고등학교, 그리고 대학교 등록금은 매학기 내가 직접 챙기고 확인해서 내주었다.
④ 1975년12월 결혼후 딸 아들을 낳았는데 다 결혼해 지금은 손녀 손자 네명에 큰 외손녀가 금년(2019년)에 중1이 되었다. 손자 손녀들이 모두 잘 교육받고 성장하여 나중에 이 나라, 이 사회에 꼭 필요한 인물들이 다 되어 달라고 오늘도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