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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의성김씨 괴정공파(槐亭公派) 괴산 백운문중(白雲門中) 원문보기 글쓴이: 김원근33세
의성 김씨(義城 金氏) 유래(由來)
신라(新羅)의 왕족(王族)인 의성 김씨(義城 金氏) 시조(始祖) 김석(金錫)은 김알지(金閼智)의 후손(後孫)으로, 경순왕(敬順王)의 넷째 아들이며 고려(高麗) 태조(太祖) 왕건(王建)의 외손(外孫)으로 의성군(義城君)에 봉(封)해졌다.
그리하여 후손(後孫)들은 본관(本貫)을 의성(義城)으로 하여 세계(世系)를 이어오고 있다. 한편 《의성김씨족보(義城金氏族譜)》에 의하면 김석(金錫)이 경순왕(敬順王)의 넷째 아들로 기록(記錄)되어 있으나, 《신라김씨 2천년사(新羅金氏二千年史)》·《조선씨족통보(朝鮮氏族統譜)》·《동국만성보(東國萬姓譜)》 등(等)의 문헌(文獻)과 《신라김씨 분파연원도(新羅金氏分派淵源圖)》에는 다섯째 아들로 기록(記錄)되어 있다.
고려(高麗) 개국(開國)과 함께 문호(門戶)를 개방(開方)한 의성 김씨(義城 金氏)는 8세손(世孫) 김공우(金公瑀)의 대(對)에서 크게 번창(繁昌)하였는데, 후손(後孫) 김용비(龍庇), 김용필(龍弼), 김용주(龍珠) 형제(兄弟) 대(代)에 이르러 파(派)가 갈린다
장자(長子) 김용비(金龍庇)가 태자첨사(太子詹事)를 지냈고, 차자(次子) 김용필(金龍弼)은 수사공(守司空)을, 막내 김용주(金龍珠)는 평장사(平章事)를 역임(歷任)하였다.
≪의성 김씨(義城 金氏) 본관(本貫) 연혁(沿革)≫
의성(義城)은 경상북도(慶尙北道) 중앙부(中央部)에 위치(位置)한 고장으로 삼한시대(三韓時代)에 조문국(召文國)이었다. 그 후(後) 185년(신라 벌휴왕 2) 신라(新羅)에 병합(倂合)되어 조문군(召文郡)이 설치(設置)되었다.
757년(경덕왕 16) 문소(聞韶)로 개칭되었다. 940년(고려 태조 23)에 일계현(日谿縣)과 고구현(高丘縣)을 합병(合倂)해 의성부(義城府)로 승격(昇格)했으나, 1018년(현종 9)에 안동(安東)의 속현(屬縣)으로 병합(倂合)되었다.
1143년(인종 21)에 의성현(義城縣)이 되었으며, 1199년(신종 2)에 강등(降等)되어 감무(監務)가 파견(派遣)되었다. 조선시대(朝鮮時代)에는 의성현(義城縣)으로 유지하였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地方制度) 개정(改定)으로 대구부(大丘部) 의성군(義城郡)이 되었고, 1896년 경상북도(慶尙北道) 의성군(義城郡)이 되었다. 1940년에 의성면(義城面)이 읍(邑)으로 승격(昇格)되었다.
《고령김씨 족보에 수록된 의성김씨 관조(義城金氏 貫祖)》
1世 석(錫)
일휘(一諱)는 중석(重錫)이시고일 의성군(義城君)이시다.
경순왕(敬順王)의 제4자(第四子)이시고 대보공(大輔公) 휘(諱) 알지(閼智)의 29세손(世孫)이시며 고려태조(高麗太祖) 왕건(王建)의 외손(外孫)이시다.
의성군(義城君)으로 수봉(受封)된 까닭으로 자손(子孫)이 본관(本貫)을 의성(義城)으로 하였다. 강율계(姜栗溪)의 사기(史記)에 광종조(光宗朝)에 광평시랑(廣評侍郞)으로 문소후(聞韶候)를 봉(封)하고 경종조(景宗朝)에 식읍(食邑) 300호(三百戶)를 사(賜)하다 라고 하다.
2世 일(逸)
관(官)은 내사령(內史令)이시고 송(宋)나라에서 광록대부검교태전병부상서문하시중(光祿大夫檢校太傳兵部尙書門下侍中) 벼슬을 받으시다. 배(配) 박씨(朴氏)이시고 시중(侍中) 언홍(彦弘)의 여(女)이시다.
3世 홍술(弘術)
혹작(或作) 홍술(弘述) 또는 홍술(洪述)이시다.
목종조(穆宗朝)에 동여진(東女眞)의 침입(侵入)를 등주(登州)와 소주(燒州)에서 물리치셨다. 강조(康兆)의 난(亂)에 이절(以節)로 자문(自刎)하시니 후세(後世)가 충절(忠節)을 포(褒)하다. 감문위상장군익찬공신의성군(監門衛上將軍翊贊功臣義城君이시다.
배(配) 분성이씨(盆盛李氏)는 시중(侍中) 완(完)의 여(女)이시다.
4世 국(國)
문하시중(門下侍中) 평장사(平章事)이시다.
5世 경진(景珍)
계림판관(鷄林判官) 문하시중(門下侍中) 평장사(平章事)
배(配) 파평염씨(坡平廉氏)로 부(父)는 치언(致彦)이시다.
6世 언미(彦美)
유시(幼時)부터 남달리 사물(事物)의 성쇠지리(盛衰之理)를 분별하셨다. 문과(文科)에 오르시어 목사(牧使)와 문하평장사(門下平章事)를 지내시고 향수(享壽)95또는 105세(歲)라 전(傳)하다.
7世 습광(襲光)
문과(文科)로 판리부상서태자태보(判吏部尙書太子太保)를 지내시다.
배(配) 진주강씨(晉州姜氏)이시며 부(父)는 시중(侍中) 사민(思敏)이시다.
8世 공우(公瑀)
문과 좌복야참지정사(文科 左僕射叅知政事)이시다.
9世 용비(龍庇)
고려금자광록대부태자첨사문하성사예부상서(高麗金紫光錄大夫太子詹事門下省事禮部尙書)추성보절공신(推誠保節功臣) 의성군에 습봉(襲封) 되시었다 향년(享年) 98세(歲)로 졸(卒)하시었다.
묘(墓)는 의성군사곡면토현동오토산진향고래(義城郡舍谷面土峴洞五土山震向古來)로읍민(邑民)이 큰 공덕(功德)을 기려 입사(立祠)하여 묘호(廟號)를 진민사(鎭民祠)라 하다.
중종조(中宗朝)에 방후손문경공 안국(傍後孫文敬公安國)께서 견복묘호(蠲復墓戶)하고 선조조(宣祖朝)에 후손(後孫) 문정공우옹(文貞公宇顒)께서 갈명(碣銘)을 찬(撰)하고 문충공 성일(文忠公 誠一)께서 묘비(墓碑)를 세웠다.
배(配) 강씨(姜氏)이시고 영동정후주(令同正后柱)의 여(女)이시다. 묘(墓)는 부군묘후(府君墓后)
《의성김씨 중시조 9세 첨사공 용비》
고을 사람들이 公의 공덕(功德)에 보답하고자 세운 사당(祠堂)으로 관급(官給)의 제수(祭需)로써 향사(享祀)가 이어졌다. 후손인 김안국(1478~1543)이 조선 중종12년(1517)에 경상도관찰사로 의성에 들려 민정을 살피는 중에 한 사당을 발견, 이에 진민사(鎭民祠)라는 편액을 내렸다.
처음에는 義城官衙에 있었으나 1868년 이곳으로 옮겨지고 옛터엔 遺址碑가 세워졌다.
오토제 입구 양족에 두 개가 있으며 이 塋城과 후손(後孫)들의 앞날을 길이 밝힌다는 뜻으로 세워진 석등(石燈)이다. 장명등은 고려시대 말부터 왕릉에 설치되기 시작한 구조물로서 영혼을 인도하는 불빛이라는 상징적 의미와 동물로부터 무덤을 보호한다는 의미도 함축하고 있다.
고려 명종때 김용비(金龍庇)가 이곳에서 날뛴 홍건적의 방자한 무리들을 소탕하고, 동요된 읍민의 마음을 가라 앉힌 공을 기리기 위하여 고을 사람들이 사당을 세워 향사해 오다가 읍세(邑勢) 확장으로 서기 1871년에 오토산(五土山) 공(公)의 묘소 아래로 사당을 옮기고 이 자리에 비석을 세웠다.
<김용비(金龍庇)의 생애>
김용비의 생몰과 행적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알려진 바가 별로 없다.
신라 경순왕의 아들인 김석의 후손으로 고려 명종조(1171~1197)의 인물이다는 설과 충렬왕 김방경(1212~1300)의 증손녀가 김용비의 증손부이므로 김용비의 생몰이 김방경과 비슷할 것이라는 추측도 할 수 있다.
김용비는 의성 김씨 시조(始祖)석(錫)의 후예로 공우(公瑀)의 장남이다.
부인은 令同正 姜后柱의 따님이라는 기록이 있다. 여말 1361년 공민왕(恭愍王)때 홍건적이 대거 쳐들어 와 임금이 복주(福酒) 현 안동으로 몽진하고 이 고장의 옥산 성골 등지로 피란을 예정할 즈음 의성 일원에서 날뛴 도적 무리를 현주(縣主)로 있던 공(公)이 물리쳐 소란한 민심을 수습했다.
그 난을 평정한 공으로 이등 공신 고려금자광록대부(高麗金紫光祿大夫) 태자첨사의성군(太子詹事義城君)이 되고, 현재 이곳 사곡면 토현리 오토산록에 그의 재실(齋室)과 유택(幽宅)이 있고 읍 번화가에도 공을 기리는 비각이 이뤄져 있다.
사서에 나타나는 인물은 아니지만 고려 명종때 경북 의성지방에서 선정을 베푼 그는 사후 300여년이 지난 조선조 중종때까지 읍민들의 제사를 받고 있으며 지금도 헌관은 종손으로 하지 않고 지역유지로 하고 있다.
산은 대면한 자가 누구냐에 따라 모습을 달리 한다. 즉 어디에서 보느냐에 따라 산의 형태가 달라지며 유정 무정이 달라지고 모여 사는 주민들 또한 산을 대하는 생각이 달라진다.
오토산은 영천의 보현산에서 북서쪽으로 치달려온 산줄기이다. 정상으로부터 다섯 갈래의 큰 지맥이 사방으로 뻗어 내려 있어 별을 닮은 것 갇기도 하다.
오토산(五土山 475m)이 오토라는 이름을 갖게 된 사연에는 몇 가지 설이 있다. 우선오토산의 생김새가 마치 다섯 개의 손가락처럼 생긴 지맥을 갖고 있으며 각 지맥마다 명산이라는 설이다.
또 다른 설로는 김용비가 죽어 묘자리를 잡기위해 땅을 파보니 다섯 가지 빛깔의 흙이 나와 오토산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겄이다. 또한 다섯 개의 명당이 있다고 하여 오명산(五名山)이라고도 부르는데 다섯 개의 명혈(名穴)을 가지고 있다는 설이다. 풍수전설에 흔히 등장하는 성지(性智)도사가 그런 상지(相地)을 한 것으로 구전되어 오지만, 그들 혈처의 유형이름과 대략적인 위치 방향은 너무 구체적이다.
구전에 의하면 일명 오명산으로 전해지는 산정상 부근은 제비집모양의 연소형(燕巢形)이고 동쪽은 등잔을 걸어 놓은 듯한 등잔(掛燈), 남등은 벌의 허리처럼 잘룩한 허리띠(蜂腰)며 서등은 직각자 모양의 곡자(曲尺). 북등은 개구리 발자욱(蛙跡) 모양을 하고 있다고 한다.
명당이라고 알려진 다섯 곳 중 곱자혈로 알려진 아주신씨 묘와 등잔혈의 김용비묘이며 그 중 대표적인 곳이 김용비의 괘등혈이다.
김용비(金龍庇)의 유택과 재실이 이 산 기슭에 있고 예부터 많은 술가(術家)들이 명당을 찾아 몰려들었고 풍수지리에 통달한 사람들이 명산으로 손꼽는 여기에 지금도 전국 저명 지사들이 가끔 돌아보고 간다 한다. 오토산은 의성김씨의 聖祖인 태자첨사의성군(太子詹事義城君) 김용비(金龍庇)의 塋城이며 塋城을 보전할 시설들이 많이 있으며 아래와 같다.
<김용비 묘지의 풍수입지>
이 묘는 실전(失傳)되어 오다가 학봉 김성일의 부친이며 김용비의 10대손인 청계 김진(1500~1580)이 1570년경에 찾았다.백두산에서 출발한 용은 태백산에서 내륙으로 몸을 돌려 소백산, 속리산, 덕유산, 지리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을 만들고 동해를 따라 내려온 줄기는 대부분 낙동 정맥으로 청송의 주왕산(721m)을 만들고 이곳에서 영천의 보현산(1124m)을 출발한 산줄기가 응봉(鷹峰 800m)을 거쳐 의성군 춘산면의 구무산(676m)에 이르러 비봉산(672m)과 서쪽으로 금성산(530m)을 일으키는데, 오토산(475m)은 바로 비봉산에서 갈라져 북진하면서 여력을 다해 솟구쳐 만들어 놓은 산이다.
오토산 정상에서 동쪽으로 낙맥한 용이 좌우에 수(水) 형상의 수형산과 토(土) 형상의 토형산을 거느리고 다시 봉우리을 만든 다음 여러 지맥을 만드는데 그중에서 중출(中出)로 급하게 경용(庚龍)으로 낙맥한 용은 느긋하게 행보하며 경유용(庚酉龍)을 거쳐 경용(庚龍)으로 생기 있게 입수하여 용맥의 중턱에 穴을 만들었다.
사람에 따라 다르게 혈형(穴形)을 돌혈(突穴)로도 볼 수 있으나 김용비 묘의 穴形은 유혈(乳穴)로 볼 수 있다. 혈처가 있는 당판이 높아서 돌혈로 볼 수도 있으나 산소 뒤쪽 즉 도두(到頭)의 뒤가 푹 꺼지지 않았으니 엄밀하게 말한다면 유혈이다. 용이 급하게 내려왔으니 완만하고 평평하게 끝나는 곳이 용진처가 되어 혈처가 되니 이 곳은 진혈이다.
<묘지의 설화 및 전설>
1)오토산은 5갈래의 골 즉 지맥이 있는데 각 지맥이 모두 명혈(명산)이어서 5의 숫자를 따서 오토산이라는 설이며 5개의 명당이 있다고 하여 오명산(五名山)이라고도 불리는데 5개의 명당이 있는 지점과 형국의 이름이 오늘날까지 전해 내려오고 있다.
오토산 정상 부분에는 제비집혈(연소혈), 동쪽 산등에는 등잔혈(괘등혈), 서쪽 산등에는 곱자혈(곡척혈), 남쪽 산등에는 벌 허리혈(봉요혈), 북쪽 산등에는 개구리 발자국혈(와적혈)이 있다는 설.
2)김용비는 전술한 것과 같이 출생과 사망일시가 명확하지 않으나 사망시 노스님(성지도사)이 나타나 “연을 띄우면 날다가 떨어지는 곳이 명당이니 그 곳에다 장사를 지내면 후손이 발복을 받고 영원토록 잘 살아갈 것이다”라는 예언을 하고 사라졌다는 이야기와 연이 며칠 날다가 떨어지는 곳에 가보니 그 장소가 현재 묘의 위치이며 묘를 쓰기 위해 광중을 파보니 5가지의 토색인 청(靑), 적(赤), 황(黃), 백(白), 흑(黑)의 이른바 오색혈토가 나와 오토산이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설.
3)김용비의 묘가 괘등혈인데 괘등혈에는 기름병에 해당하는 案山( 유병안: 油餠案 )이 갖춰져야 제격인데, 그 터 주변에는 유병체로 여길만한 지세를 찾아 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마늘생산지인 귀천 주변의 넓은 전답들이 과거에는 온통 들깨를 심어서 등잔에 쓸 기름은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는 비보풍수적인 설과 옥녀가 비단을 짜는 모습을 한 옥녀직금형(玉女織錦形)의 안산이 앞에 있고 이 일을 위해 이곳 혈에 등불을 켜놓았다는 설.
4)김용비의 묘가 괘등혈인데 괘등혈에는 등하불명(燈下不明)이라는 원칙 때문에 의성 땅을 떠나 먼 외지로 나간 후손들은 집안이 번창하는 반면, 고향을 지키고 있는 후손들은 결코 잘되지 못한다는 생각에서 오토산 아래 입구에 장명등을 2개 설치하여 등잔 밑도 밝게 했다는 설.
오토산을 감싸 흐르는 물은 남대천(南大川)이며 귀천(龜川)이라고도 부르는 이유는 그곳 마을이 행정상으로는 오상리이지만, 마을 어귀에 거북모양의 바위가 있고 마을 앞의 언덕이 마치 거북이가 기어가는 형상을 하고 있다고 한다. 물의 흐름을 살펴보면 남대천(南大川)이 동남쪽인 손사방(巽巳方)에서 넓게 광활하게 나와 오토산 줄기에서 흘려 내리는 물들을 받아 오토산을 감싸고 돌아 빠져나가는 북쪽은 베틀바위가 있는 용맥이 가로 막아 폐쇄되어 있으니 90도로 좌회전하여 물이 흘려나가 관쇄되니 수법(水法)에 맞다고 하겠다.
≪의성김씨(義城金氏)의 인물로 고려 ㆍ조선조에 걸쳐 군(君)에 책봉된 이는 10명≫
시조 의성군 김 석((義城君 金 錫))
의성군(義城君) 김홍술(金弘術) 광주군廣州君) 김녹광(金綠光)
의성군(義城君 김용비(金龍庇) 개성군(開城君) 김용주(金龍珠) 의성군(義城君) 김용필(金龍弼)
의성군(義城君 김 굉(金 紘) 고령군(高靈君) 김기지(金麒芝)=김남득(金南得)
의성군(義城君) 김영열(金英烈) 의성군(義城君) 김광부(金光富)
≪시호를 받은 사람은 13명≫
충의 김용주(忠毅 金龍珠) 양소 김영열(良昭 金英烈) 문원 김원(文元 金源)
문민 김남보(文敏 金南寶) 문절 김용초(文節 金用超) 문경 김안국(文敬 金安國)
문목 김정국(文穆 金正國) 충강 김제민(忠剛 金齊閔) 문충 김성일(文忠 金誠一)
문정 김우옹(文貞 金宇顒) 문절 김응택(文節 金應澤) 정민 김지수(貞敏 金地粹)
문민 김지선(文敏 金지善)
≪의성김씨 시조 김 석(錫)의 경순왕(傅 : 부) 4子說, 5子說에 대하여≫
<4자설(四子說) : 경순왕>
※ 소원왕후 박씨(昭元王后 朴氏)
★ 겸용(謙用 : 마의태자 麻衣太子 금강산으로 들어감)
★ 황 (湟 : 처자를두고 해인사 승려(梵空)가됨 子 운발 : 나주김씨)
※ 樂浪公州 王氏(神鸞公州 王氏) ★(고려왕건의 딸 낙랑=신란공주)
★ 은열(殷說 : 子 繼笭 경주김씨, 叔承 안동김씨, 濂 수원김씨
★ 석 (錫 : 義城君 의성김씨)
★ 건 (鍵 : 江陵君 강릉김씨)
★ 선 (鐥 : 彦陽君 언양김씨)
★ 추 (錘 : 三陟君 삼척김씨)
★ 명종(鳴鍾)
★ 덕지(德摯)
★ 女(고려경종비 高麗景宗妃)
★ 女(이금서 삼중공신 李金書 三重功臣)
<5자설(五子說) : 경순왕>
※ 소원왕후 박씨(昭元王后 朴氏)
★ 일 (鎰 : 마의태자 麻衣太子 )부안김씨(부령), 후손 통천, 부여김씨
★ 굉 (굉 : 해인사승려 子운발나주김씨,後孫교하,울산,안로,해주김씨)
★ 명종(鳴鍾 : 경주김씨영분공파, 후손 강화, 계림,낙안김씨
※ 浪公州 王氏(神鸞公州 王氏) (고려왕건의 딸 낙랑=신란공주)
★ 은열(殷說 : 경주김씨은열공파, 叔承안동김씨, 濂수원김씨, 김녕김씨
★ 석 (錫 : 義城君 의성김씨) 후손 개성,고령,광주,설성,적성김씨
★ 건 (鍵 : 江陵君 강릉(후)김씨), 후손 홍주, 강서김씨
★ 선 (鐥 : 彦陽君 언양김씨) 후손 담양, 예천, 청주김씨
★ 추 (錘 : 三陟君 삼척김씨) 후손 영월, 진주, 남원김씨
★ 女(고려경종비 高麗景宗妃)
★ 女(이금서 삼중공신 李金書 三重功臣)
※ 순흥안씨(順興安氏)소생
★ 덕지(德摯) : 울산김씨
※ 시조 석은 김알지 28대손으로 경순왕의 4자, 5자설이 있으나 신라김씨2천년사(新羅金氏二千年史), 조선씨족통보(朝鮮氏族統譜), 동국만성보(東國萬姓譜), 신라김씨분파연원도(新羅金氏分派淵源圖)에는 다섯째아들로 기록되어 있음.
의성김씨 세보(世譜)인 병신보(丙申譜 : 1656)이후 수차례 족보 간행시 문중의 석학거유가 한결같이 4자설을 따랐으며 또 경주김씨 계림군파 창세보, 언양김씨 정해보, 선산김씨 기축보 등에서도 4자설을 따랐으므로 이를 부정할 명확한 증거가 없으므로 후손인 우리 의성김씨는 선조의 뜻을 따라야한다.
≪의성 김씨(義城 金氏) 거주분포 1 ≫
을축보(乙丑譜)’에 의하면, 9세 김용비(金龍庇), 이래로 관향(貫鄕)인 경북 의성(義城)을 세장지지(世葬之地)로 삼아왔으므로 일찍이 의성(義城)에 터를 잡아 세거했다고 믿어진다.
김용비(金龍庇)의 맏아들 김의(金宜)의 자손들인 복야공파(僕射公派)는
13세 김거두(金居斗), 김거익(金居翼)의 대에 안동(安東), 부여(扶餘), 영일(迎日)의 청하(淸河),청원(淸原)의 문의(文義)등지로 가 자리잡았고,
다시 15세 김보(金普) ㆍ김원(金源)의 대부터 3대(代)에 걸쳐 군위(軍威) ㆍ수원(水原) ,고창(高敞)의 흥덕(興德)ㆍ청양(靑陽)의 정산(定山)ㆍ김해(金海) ,보령(保寧)의 남포(藍浦)ㆍ영천(永川)의 두협(斗峽) 등지로 산거(散居)해갔다.
그 가운데 13세 김득수(金得水)가 북청(北靑)의 사동(蛇洞)으로 유배되었다가 풀려난 뒤에 그대로 머물러 살았으므로 그의 후계(後系)가 북청(北靑)에 세거했고, 16세 김부현(金傅顯)의 부인 경주최씨(慶州崔氏)가 세아들과 함께 고부(古阜)의 도계리(道溪里)로 옮겨간 뒤 고안(古阜)를 비롯한 정읍(井邑)에도 일부 자손들이 뿌리를 내렸던 것 같다.
또한 16세 김의동(金義同)이 장사(長沙)로 유배되어 그 자손들이 고창(高敞)일대에 터를 굳혔던 것으로 보인다.
김의(金宜)의 아우 김굉(金紘)의 자손들인 부원군파(府院君派)는
김굉(김紘)의 증손 김하(金河) ㆍ 김한(金漢) ㆍ 김호(金浩)의 대에 장성(長城) 강진(康津) ㆍ 해남(海南) ㆍ 광주(光州)등지에 자리잡았고,
일부는 14세 김계환(金繼環) 이래로 황해도 신천(信川)의 문화(文化) 등지에, 17세 김국진(金國進) 이래로 충주(忠州) 해주(海州) 등지로 가 살게 되았다고 믿어진다.
김용비(金龍庇)의 셋째 아들 김영(金英)의 자손들인 찬성사공파(贊成事公派)는
일부가 13세 김용초(金用超)의 대부터 성주(星州)에 정착ㆍ 세거했고, 일부는 고령(高靈)으로 가 살았다. 또한 16세 김한경(金漢卿)의 대부터 3대에 걸처 청송(靑松), 합천(陜川) ,경주(慶州) ,전주(全州)등지에도 자손들이 살게 되었으며. 14세 김숙검을 중시조로하는 괴정공파는 16세 헌이 1519년(중종14년) 기묘사화를 피해 합천에 살기 시작하였고, 18세 덕일이 합천지방에 출몰하는 왜구들을 피해 본가가 있던 경기도 파주로 향하던 중 괴산(槐山)에 살게되었다
김용비(金龍庇)의 넷째 아들 김세인(金世軔)의 자손들인 전서공파(典書公派)는 전북 정읍(井邑)을 거쳐 안성(安城)등 경기도 일원에 세거의 터를 굳혔던 것 같다.
한편 9세 김용필(金龍弼)의 아들 김윤관(金允寬)의 자손들인 어사공파(御史公派)는 평남 평양(平壤)을 거쳐 16세 김경(金經)의 대 이래로 용강(龍岡)에서 살았고 9세 김용주(金龍珠)의 자손들은 개성(開城)에서 살다가 15세 김남보(金南寶)이래로 충북 옥천(沃川)에 자리잡았다.
그리고 9세 김성단(金成丹)의 자손들은 선대(先代)부터 세거해온 의성(義城)에 많이 살았으며, 9세 김흥(金興)의 자손들인 선략장군공파(宣略將軍公派)는 능주(綾州)를 거쳐 합천(陜川)에 가 살았다.
1930년 당시 의성김씨(義城金氏)는
경기도 안성군(安城郡) ㆍ장단군(長湍郡) 일원.
충북 옥천군(沃川郡) 이원면(伊院面),괴산군(槐山郡) 칠성면(七星面), 음성군 음성읍(陰城郡 陰城邑),
충남 서산군 원북면(瑞山郡 遠北面) 일원,
전북 정읍군 덕천면(井邑郡 德川面) ㆍ 이평면(梨坪面)일원,
경북 군위군(軍威郡), 의성군 단촌면(義城郡 丹村面) ㆍ 사곡면(舍谷面)등지, 안동군임하면(安東郡臨河面) ㆍ 일직면(一直面) 서후면(西後面), 청송군 현서면(靑松郡 縣西面) ㆍ 진보면(眞寶面), 영천군 북안면(永川郡 北安面)일원, 영풍군 장수면(榮豊郡 長壽面), 봉화군 봉화면(奉化郡 奉化面), 예천군 예천읍(醴泉郡 醴泉邑), 성주군(星州郡)일원,
경남 진양군(晋陽郡), 합천군(陜川郡),
평남 용강군 오신면(龍岡郡 吾新面) ㆍ 용강면(龍岡面),
평북 태천군 서면(泰川郡 西面),
함남 이원군(利原郡)등지에 집성촌을 이루었다.
특히 경북 성주군 수륜면 수륜동(星州郡 修倫面 修倫洞)은 1980년 당시 의성김씨(義城金氏) 1백 30여 가구가 모여 살고 있던 곳이다. 입향조(入鄕祖)는 고려말 호남병사(湖南兵使)였던 김용초(金用超)로, 조선 개국 후 조정이 어지럽자 금육군 금항면 유촌(金陸郡 金項面 柳村)에 낙향했고, 그후 그의 후손들이 경북 일대에 흩어져 살았다.
수륜동(修倫洞)에 터를 잡은 인물은 김용초(金用超)의 5대손인 서우당 김관석(西友堂 金關石)이다.
마을 중앙에 김용초(金用超)를 추모하는 재실 원모재(遠慕齋)가 있다. 인근 대가면 칠봉동(大家面 七峰洞) 출신인 독립투사 김창숙(金昌淑)은 그의 후손으로 아들 김환기(金煥基) ㆍ김찬기(金燦基)등 3부자(父子)가 구국의 제단에 몸을 바쳤다.
≪의성 김씨(義城 金氏) 거주분포 2 ≫
전국에 분포된 의성김씨의 집성촌은 대략 150여개 마을로 분류
★ 의성김씨 9세 첨사공 김용비(金龍庇)의 아들
第1子 복야공 의(宜),
第2子 부원군공 굉(紘),
第3子 찬성사공 영(英),
第4子 전서공 세인(世軔) .
第1子 ‘의’ 선조의 장남이며 시조의 11세인 상서공(尙書公) 인지(麟芝) 선조의 후손으로 상서공파(尙書公派)는 경북 의성 문흥, 영일 덕동, 영천 신령, 군성, 충북 등에 거주하고 있다. 상서공의 셋째 아들 인수(仁守) 선조의 증손자 화은공 진(晋)은 시조의 15世로 화은공파(華隱公派)라 한다.
‘의’ 선조의 둘째아들 소윤공 서지(瑞芝) 선조의 맏아들이며, 시조의 12세인(이하 세는 시조로부터의 세수이므로 세로만 설명한다.) 예빈경 인회(仁晦) 선조의 후손인 예빈경공파(禮賓卿公派)는 영천 신호, 영일 덕동, 의성에 거주하고 있다.
‘의’ 선조의 손자이며, 소윤공 서지의 둘째아들 좌사윤공(左司尹公) 태권(台權) 선조의 맏아들, 즉 소윤공의 손자인 전서공 거두(居斗) 선조의 후손들은 전서공파(典書公派)로 안동 일원에 의성․군위․청송․예천․영천에 분포돼 있다. 안동에 앞의 5파가 바로 전서공파에 속한다.
좌사윤공 태권의 둘째 아들이며, 전서공의 동생인 퇴암공 거익(居翼) 선조는 퇴암공파(退庵公派) 또는 문학공파(文學公派)로 충남 부여, 경남 김해․창원, 전북 정읍․고창․고부․부안 등지에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
‘의’ 선조의 셋째 아들이며, 11世인 평장사공 춘(椿)의 후손은 평장사공파(平章事公派)로 공의 장남 사의공 옥(玉) 후손은 경북 예안․영주․봉화, 차남 밀직사사공 윤(王侖) 후손은 영천․하동, 삼남 중랑장공 혁(革)의 후손은 이북의 함북 북청, 사남 시중공 연(衍)의 후손은 예안 한곡에 거주하고 있다.
‘의’ 선조의 넷째 아들인 기지(麒芝) 선조가 고령군(高靈君)에 봉해져 고령김씨로 갈라져 나갔다.
第2子 부원군공 굉(紘)의 아드님 양소공 영열(英烈)선조의 후손은 양소공파(良昭公派) 또는 맹암공파(孟巖公派)로써 공의 장남 상호군공 흥복(興復) 후손은 경북 선산, 충남 공주, 충북 충주․음성, 황해 송화 장연, 평북의 태천,
둘째 부호군공 신복(申復) 후손은 곡성, 자성, 황해도 봉산, 셋째 유수공 경복(慶復) 후손은 전남 장성․해남․영광, 광주 맹동, 충주, 경북 예천, 전북 고창 등지에 살고 있다.
第3子 찬성사공 영(英)의 장손자이며, 12世인 남파공 광부(光富) 후손은 남파공파(南坡公派)로 경북 선산, 경기 강화․파주, 경북 청송, 충북 괴산, 경남 합천․청도, 충남 목천,
둘째 손자 판사공 수덕(修德) 선조의 차남이며, 13세인 참의공 용기(用起) 선조는 참의공파(參議公派)로 고령 월산, 3남 문절공 용초(用超) 선조는 문절공파(文節公派)로 성주 윤동, 내기, 상주, 영천, 금릉, 성주 사월, 밀양, 봉화 해저, 진양 압현, 산청, 현풍, 고령 등에 집성촌을 이루며 번창했다.
한편 찬성사 ‘영’ 선조의 둘째 아들인 지평공 자돈(自敦) 선조는 지평공파(持平公派)를 이루며 전북 정읍․전주, 경상도의 경산․청도에 자리를 잡았다.
第4子 10世 전서공 세인(世軔) 선조의 후손은 전서공파(典書公派)로 경기 안성, 전북 정읍, 경북 풍기에 살고 있다.
★ 첨사공의 동생인 수사공 용필(龍弼) 선조의 계열
수사공파의 후손은 19世에 이르러 조선조에 유명한 명신이며, 석학이신 모재 안국(安國), 사재 정국(正國) 형제를 주축으로 이뤄지고 있다.
그래서 모사재파(慕思齋派)라 부르며, 안국의 시호가 문경(文敬)으로 문경공파, 정국의 시호는 문목(文穆)으로 문목공파로 됐다. 후손들은 충남 서산, 경기 여주․광주․평택, 서울 신림동과 이북의 평남 용강 지방에 살고 있다.
★ 첨사공의 셋째 동생인 개성군 용주 계열
개성군 용주 후손은 개성김씨를 쓰고 있고, 15세 남보(南寶) 후손만이 의성김씨를 쓰고 있다. 개성군(開城君)의 7세인 남보(南寶)는 문민(文敏)의 시호를 받아 문민공파로 충북 옥천에 집성해 가세를 누리고 있다.
★ 시조 의성군 ‘석’ 할아버지의 둘째손자 인술 계열
인술 선조의 후손은 14世에 이르러 두 파로 갈라졌다. 첫째는 군수공 문상(文祥) 선조로 군수공파를 이뤄 합천 황계에, 둘째는 교리공 피(彼)자로 교리공파를 형성하여 김해에서 화합을 이루고 있다.
★ '석’ 시조의 현손이며, ‘국’의 차남인 경염의 후손
공의 5대손(6세)이며 11世인 찬성사공 성단(成丹) 선조께서 찬성사공파(贊成事公派)를 이루고 의성 사미․분토․장림․원지에 집성촌을 형성해 있다.
≪의성 김씨(義城 金氏) 계보도≫
의성김씨계보(시조~14世까지) | |||||||||||||
시조(始祖) : 新羅 敬順王 第 4子 / 高麗太朝(王 建)의 外孫 義城君 金 錫 | |||||||||||||
↓ | |||||||||||||
2世 | 3世 | 4世 | 5世 | 6世 | 7世 | 8世 | |||||||
일(逸) | 第1子 홍술 (弘術) | 국(國) | 第1子경진(景珍) | 언미(彦美) | 第1子 습광(襲光) | 공우(公瑀)-(祐) | |||||||
內史令平章事 | 監門衛上將軍 | 門下侍郞平章事 | 同正平章事 | 文侍中平章事 | 第2子 ㅇㅇ(ㅇ光) | 미상 | |||||||
第3子 녹광(綠光) | 廣州金氏로 분관 | ||||||||||||
第2子 경염(景琰) | 충미(忠美) | 공서(公瑞) | 동현(同賢) | ||||||||||
第2子 인술 (仁術) | 의(義) | 충언(忠彦) | 국적(國迪) | 성우(聖佑) | 용은(龍殷)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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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世 용비(龍庇)[첨사공派] 용필(龍弼)[수사공派] 용주(龍珠)[충의공派]10世성단(成丹)[찬성사공派] 9世흥(興)[선략장군派] | |||||||||||||
8世 | 9世 | 10世 | 11世 | 12世 | 13世 | 14世 | |||||||
공우(公瑀) | 第一子 용비(龍庇) | 第一子 의(宜) | 第一子 인지 (麟芝) | 第一子 인환(仁桓) | 사월(士越) | 두(荳) | |||||||
[첨사공파] | (복야공) | 상서공파 | 第二子 인정( 仁정) | 길화( 吉和) | 만삼(萬三) | ||||||||
상 | 第三子 인수(仁守) | 사려(斯礪) | 여의(如意) | ||||||||||
서 | 첨 | 第二子 서지 (瑞芝) | 第一子 인회(仁晦) | 第一子 경운(景雲) | 승록(承祿) | ||||||||
복 | 사 | [소윤공] | 예빈경공파 | 第二子 상운( 祥雲) | 길(吉) | ||||||||
야 | 공 | 第二子 태권(台權) | 第一子 거두 (居斗) | 천(천) | |||||||||
파 | [좌사윤공] | 전서공파 | |||||||||||
尙 | 第二子 거익(居翼) | 대제학공파 | |||||||||||
書 | 詹 | 문학공파 | 第1子 섭(涉) | ||||||||||
僕 | 事 | 목사공파 | |||||||||||
射 | 公 | 第二子 도(渡) | |||||||||||
派 | 천호공파 | ||||||||||||
第三子 담(澹) | |||||||||||||
직제학공파 | |||||||||||||
第4子 미(湄) | |||||||||||||
第三子 춘(春) | 第一子 옥 | 현주[문숙공] | 둔번공(遁煩公)파 | ||||||||||
평장사공파 | 사의공파 | 第1子 을방(乙邦) | |||||||||||
第二子 을보(乙保) | |||||||||||||
第二子 윤 | 용견 | 간(간) | |||||||||||
밀직공파 | |||||||||||||
첨 | 第三子 혁 | 득수 | 윤문(允文) | ||||||||||
사 | 낭장공파 | 윤광(윤광) | |||||||||||
공 | 공 | 第四子 연 | 회보 | 독(篤) | |||||||||
상 | 파 | 시중공파 | |||||||||||
서 | 第四子 기지 (麒芝) | 기지(麒芝) = 남득(南得) 고령김씨(高靈金氏)로 분관 | |||||||||||
복 | 子 영렬(英烈) | 第一子 흥복 | 第一子 예 | 第一子 계손 | |||||||||
射 | 양소공파 | 상호군공파 | 第二子 계현 | ||||||||||
第二子 굉(紘) | 第三子 계량 | ||||||||||||
[부호군공] | 第二子 치 | 第一子 계종 | |||||||||||
第二子 계환 | |||||||||||||
第二子 신복 | 第一子 상 | 의 | |||||||||||
부호군공파 | 第二子 준 | 안절 | |||||||||||
첨 | 第三子 경복 | 第一子 하 | 현 | ||||||||||
사 | 유수공파 | 第二子 한 | 규 | ||||||||||
상 | 공 | 第三子 호 | 사의 | ||||||||||
서 | 파 | 第四子 인복 | 도 | 선 | |||||||||
복 | 第三子 영(英) | 第一子 지예 (之銳) | 第一子 광부 (光富) | 第一子 로(路) | 생원공파 | ||||||||
야 | 찬성사공 贊成事公 | 문량공文良公 | 남파공파 | 석포공 | 第一子 숙온(叔溫) | ||||||||
공우(公瑀) | 감찰공파 | ||||||||||||
第二子 숙량(叔良) | |||||||||||||
현감공파 | |||||||||||||
第三子 숙공(叔恭) | |||||||||||||
괴정공파 | |||||||||||||
第四子 숙검(叔儉) | |||||||||||||
第二子 복룡(伏龍) | 을귀(乙貴) | ||||||||||||
복룡공파 | |||||||||||||
贊 | 第二子 수덕(修德) | 第一子 용신 | 절손 | ||||||||||
成 | 참판공파 | 第二子 용기 | 연(鍊) | ||||||||||
事 | 참의공파 | ||||||||||||
公 | 第三子 용초 | 第一子 화(和) | |||||||||||
문절공파 | 수사공파 | ||||||||||||
영 | 第二子 감(鑑) | ||||||||||||
英 | 第三子 경(鏡) | ||||||||||||
첨 | 第三子 수복 | 子 방계 | 第一子 여위(汝爲) | ||||||||||
사 | 第二子 여명(汝明) | ||||||||||||
공 | 第三子 여청(汝廳) | ||||||||||||
파 | 第二子 자돈 (自敦) | 第一子 천길 | 사윤 | 치당 | |||||||||
지평공파 | 第二子 광선 | 第一子 기 | 천주 | ||||||||||
第二子 눌 | 서영공파신언(愼言) | ||||||||||||
第三子 을선 | 용남 | 감은 | |||||||||||
第三子 자경 (自경) | 자심 | 하정 | 용 | ||||||||||
第四子 세인 | 서진 | 신검 | 경률 | 자연(自淵) | |||||||||
전서공파 | |||||||||||||
第二子 용필(龍弼) | 子 윤관 (允寬) 어사공파 | 대령서승 | 지관 | 자지(子祉) | 밀직부사(密直副使) | ||||||||
상 | [수사공공파] | (大盈署丞) | 영진(永珍) | ||||||||||
서 | 계(啓) | ||||||||||||
복 | 윤지(允之) | 준 | 第一子 지선 | 第一子 원(源) | 第一子 신주 | ||||||||
야 | 문원공파 | 第二子 귀지 | |||||||||||
공우(公瑀) | 第三子 현기(玄器) | ||||||||||||
第三子 용주(龍珠) | 第四子 현덕 | ||||||||||||
[충의공파] | 第二子 해 | 휴 | |||||||||||
第二子 지경 | 온 | 성구 | |||||||||||
第三子 지안 | 반 | 백 | |||||||||||
동현(同賢) | 성단(成丹) | 第一子 선(瑄) | 영(寧) | 第一子 굉(굉) | 第一子 국홍(國洪) | ||||||||
[찬성사공파] | 第二子 덕홍(德洪) | ||||||||||||
第理子 기(磯) | 경지(敬止) | ||||||||||||
자연(自然) | 第二子 기(琪) | 연(鍊) | 第一子 확(確) | 第一子 자남(自南) | |||||||||
[문하시랑공] | 第二子 귀남(貴南) | ||||||||||||
第二子 승(升) | 主溥公派 의남(義南) | ||||||||||||
第三子 신(信) | 第一子 선(善) | ||||||||||||
第二子 치연(致淵) | |||||||||||||
第三子 여생(呂生) | |||||||||||||
용은(龍殷) | 흥(興) | 윤구(允球) | 명로(明로) | 규훈(奎焄) | 第一子 효현 (孝玹) | 문상(文祥) | |||||||
[선략장군파] | 군수공파 | ||||||||||||
第二子 지승 (祗承) | 피(彼) | ||||||||||||
교리공파 |
《항렬표(行列表)》
의성 김씨(義城 金氏) 대동(大同) 항렬표(行列表) 적색 =남파공-괴정공파 백운종중 항렬표
항렬(行列)이란 같은 혈족사이의 세계(世系)의 위치를 분명히 하기 위한 문중율법이며, 항렬자(行列字)란 이름자 중에 한 글자를 공통적으로 사용하여 같은 혈족, 같은 세대임을 나타내는 글자로써 돌림자라고도 한다. 조들은 자손들의 항렬자를 만드는 배합법 까지를 미리 정해놓아 후손들이 그것을 따르도록 해 놓았다.
31世 --- 洛(강 이름 낙{락})·永(길 영)·浩(클 호)·泳(헤엄칠 영)·淵(못 연)·漢(한수 한)
32世 --- 模(법 모)·秉(잡을 병)∇(동녘 동)·植(심을 식)·林(수풀 임{림})·相(서로 상)
33世 --- 煥(불꽃 환)·衡(저울대 형)·大(큰 대)·燮(불꽃 섭)·昌(창성할 창)·魯(노둔할 노{로})
34世 --- 時(때 시)·奎(별 이름 규)·逵(한길 규)·在(있을 재)·聲(소리 성)·重(무거울 중)
35世 --- 種(씨 종)·鎬(호경 호)·鉉(솥귀 현)·鏞(종 용)·銖(무게 단위 수)·善(착할 선)
36世 --- 洙(물가 수)·源(근원 원)·澤(못 택)·泰(클 태)·淳(순박할 순)·河(강 이름 하)
37世 --- 權(저울추 권)·穆(화목할 목)·根(뿌리 근)·來(올 래{내})·稷(기장 직)·榮(꽃 영)
38世 --- 憲(법 헌)·燁(빛날 엽)·炯(빛날 형)·勳(공 훈)·熙(빛날 희)·悳(덕 덕)
39世 --- 圭(홀 규)·赫(붉을 혁)·珪(홀 규)·周(두루 주)·載(실을 재)·垠(끝 은)
40世 --- 鍵(열쇠 건)·鈺(보배 옥)·鎰(중량 일)·銓(저울질할 전)·鍊(불릴 련{연})
41世 --- 溶(질펀히 흐를 용)·濟(건널 제)·海(바다 해)·浚(깊을 준)·洪(큰물 홍)
42世 --- 柄(자루 병)·楨(광나무 정)·和(화할 화)·秀(빼어날 수)·彬(빛날 빈)
※ 항렬은 파(派)마다 각기 다르게 정할 수도 있다. 또한 한자의 음도 옥편에 따라 달리 표현될 수 있다
역대 주요 인물
◆ 고려조
김석(金錫)(의성군(義城君)ㆍ시조(始祖))
김일(金逸)((평장사(平章事))
김홍술(金弘術)(의성군(義城君)ㆍ감문위상장군(監門衛上將軍))
김국(金國)(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
김경진(金景珍)(평장사(平章事))
김언미(金彦美)(문하시중평장사(門下侍中平章事))
김공우(金公瑀)(상서복야(尙書僕射))
김용비(金龍庇)(태자첨사(太子詹事)) 9세
김용필(金龍弼)(의성군(義城君)ㆍ수사공(守司空))
김용주(金龍珠)(시(諡) : 충의(忠毅)ㆍ평장사(平章事)) 개성김씨 분관
김방우(金邦佑)(수사도(守司徒))
김충언(金忠彦)(공부시랑(工部侍郞))
김공서(金公瑞)(상호군(上護軍))
김국적(金國迪)(평장사(平章事))
김동현(金同賢)(감문위별장(監門衛別將))
김성우(金聖佑)(문하시중(門下侍中))
김자연(金自然)(문하시랑(門下侍郞))
김용은(金龍殷)(군자감정(軍資監正))
김성단(김성단)(문하찬성사(門下贊成事))
김의(金宜)(監門衛上護軍)
김인지(金麟芝)(상서(尙書))
김인환(金仁桓)(예부시랑(禮部侍郞))
김서지(金瑞之)(소윤(少尹))
김태권(金台權)(좌사윤(左司尹))
김인수(金仁守)(문하시중(門下侍中))
김사려(金斯礪)(공조전서(工曹典書))
김여의(金如意)(예부상서(禮部尙書))
김상운(金祥雲)(첨의시랑(僉議侍郞))
김거두(金居斗)(공조전서(工曹典書))
김거익(金居翼)(정당문학(政堂文學))
김춘(金椿)(추밀원부사(樞密院副使))
김옥(金玉)(좌사의(左司議))
김현주(金玄柱)(동지찬성사(同知贊成事))
김을방(金乙邦)(우위보승랑장(右衛保勝郞將))
김륜(金侖)(판밀직사사(判密直司事))
김혁(金革)(중랑장(中郞將))
김연(金衍)(문하시중(門下侍中))
김굉(金紘)(의성부원군(義城府院君)ㆍ상서복야(尙書僕射))
김기지(金麟芝)(고령군(高靈君) 고령김씨 분광
김영(金英)(문하찬성사(門下贊成事) 10세
김지예(金之銳) 초계군수, 대제학(大提學) 11세
김광부(金光富)(호(號) : 남파(南坡)ㆍ의성군(義城君)ㆍ병부판서(兵部判書) 12세
김자돈(金自敦)(지평(持平))
김광선(金光善)(군기좌윤(軍器左尹))
김세인(金世轔)(金世軔)(전서(典書))
김윤관(金允寬)(감찰어사(監察御使))
김계(金啓)(대영서승(大盈署丞))
김서진(金瑞珍)(전서(典書))
김준(金晙)(시(諡) : 정신(貞愼)ㆍ평장사(平章事))
김지선(金之宣)(보문각대제학(寶文閣大提學))
김규훈(金奎焄)(자(字) : 화극(和克)ㆍ호(號) : 초수(樵叟)ㆍ찬성사(贊成事))
◆ 조선조
김섭(金涉)(호(號) : 소정(疎亭)ㆍ직제학(直提學))
김도(金渡)(나주목사(羅州牧使))
김미(金湄)(직제학(直提學))
김영렬(金英烈)(號) : 맹암(孟巖)ㆍ시(諡) : 양소(良昭)ㆍ의성군(義城郡)ㆍ우상(右相))
김흥복(金興復)(상호군(上護軍))
김예(金輗)(호군(護軍))
김계종(金繼宗)(부호군(副護軍))
김신복(金申復)(부호군(副護軍))
김경복(金慶復)(개성유수(開城留守))
김하(金河)(충청도 절제사(忠淸道 節制使))
김로(金路)(호(號) : 석포(石圃 )ㆍ사농경(司農卿) 13세
김숙량(金叔良)(호(號) : 동헌(桐軒)ㆍ전중어사(殿中御使))
김숙검(金叔儉)(호(號) : 괴정(槐亭)ㆍ사헌부 감찰, 사간원 정언, 인천지군사, 직제학(直提學) 14세
김용초(金用超)(전라병사(全羅兵使))
김용기(金用起)(공조참의(工曹參議))
김눌(金訥)(부사정(副司正))
김자지(金子祉)(판개성윤(判開成尹))
김영진(金永珍)(밀직부사(密直副使))
김신검(金信劒)(좌상(左相))
김경룡(金慶龍)(개성유수(開城留守))
김자연(金自淵)(해주목사(海州牧使))
김원(金源)(시(諡) : 문원(文元)ㆍ주국상장(柱國上將))
김온(金溫)(시(諡) : 문정(文正)ㆍ정랑(正郞))
김여손(金呂孫)(자(字) : 우문(遇文)ㆍ호(號) : 난곡(蘭谷)ㆍ중추부사(中樞府使))
김한우(金漢遇)(사정(司正))
감한계(金漢啓)(자(字) : 형운(亨運)ㆍ집현전(集賢殿)ㆍ승문원사(承文院事))
김박(金珀)(군자정(軍資正))
김축(金軸)(대사간(大司諫))
김안중(金安中) 훈련원습독관, 첨정(僉正) 15세
김여진(金麗珍)(부호군(副護軍))
김양회(金養會)(자(字) : 효선(孝先)ㆍ동래부사(東萊府使))
김호(金顥)(자(字) :자순(子淳)ㆍ부호군(副護軍))
김제민(金齊閔)(자(字) : 사효(士孝)ㆍ호(顥) : 오봉ㆍ시(諡) : 충강(忠剛)ㆍ좌승지(左承旨))
김흔(金昕)(자(字) : 숙승(叔昇)ㆍ호(號) : 학산(鶴山)ㆍ군기감정(軍器監正))
김섬(金暹)(자(字) : 계승(季昇)ㆍ호(號) : 퇴휴재(退休齋)ㆍ군자부정(軍資副正))
김한경(金漢卿) 자 국보(國寶), 호 도곡(道谷), 제용감정(濟用監正), 정국원종공신(靖國原從功臣) 16세
김제안(金齊顔)(자(字) :사우우(士遇愚)ㆍ호(號) : 죽헌생(竹軒生)ㆍ학행(學行))
김흔조(金鍁祖)(자(字) : 경숙(敬叔)ㆍ판결사(判決事))
김내욱(金乃郁)(부정(副正))
김응숙(金應淑)(자(字) : 서광(瑞光)ㆍ공조참의(工曹參議))
김사언(金士彦)(자(字) : 언여(彦汝)ㆍ호(號) :반학당(伴鶴堂)ㆍ이조참의(吏曹參議))
김전(金전) 사간원 정언, 종부시정 16세
김헌(金헌) 예문관 봉교 16세
김순(金순) 충순위 16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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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계조(金繼祖)(상호군(上護軍))
김호지(金胡智)(함흥소윤(咸興少尹))
김안국(金安國)(자(字) : 국경(國卿)ㆍ호(號) : 모재(慕齋)ㆍ시(諡) : 문경(文敬)ㆍ좌찬성(左贊成)) 18세
김정국(金正國)(자(字) : 국필(國弼)ㆍ호(號) : 사재(思齋)ㆍ시(諡) : 문목(文穆)ㆍ예조참판(禮曹參判))
김남보(金南寶)(호(號) : 단촌(丹村)ㆍ시(諡) : 문민(文敏)ㆍ이조판서(吏曹判書))
김요(金曜)(부사(府使))
김민국(金敏國)(자(字) : 화여(和汝)ㆍ호(號) : 만회(晩悔)ㆍ승지(承旨))
김보일(金輔逸)(자(字) : 안여(安汝)ㆍ중추부사(中樞府事))
김영립(金永立)(자(字) : 성중(聖重)ㆍ부호군(副護軍))
김각민(金恪敏)(자(字) : 이중(而重)ㆍ부호군(副護軍))
김수선(金守善)(자(字) : 초일(初一)ㆍ상호군(上護君))
김성원(金聲遠)(자(字) : 士聲ㆍ호군(護軍))
김해(金瀣)(동돈녕부사(同敦寧府事))
김극일(金克一)(자(字) : 백순(伯純)ㆍ호(號) : 약봉(藥峯)ㆍ내자사정(內資寺正))
김방걸(金邦杰)(자(字) : 사흥(士興)ㆍ호(號) : 지촌(芝村)ㆍ대사성(大司成))
김방조(金邦照)(자(字) : 사명(士明)ㆍ호군(護軍))
김송(金誦)(자(字) : 도원(道源)ㆍ호(號) : 운천(雲川)ㆍ병조참의(兵曹參議))
김태중(金台重)(자(字) : 언겸(彦謙)ㆍ호(號) : 적암(適菴)ㆍ학행(學行))
김성일(金誠一)(자(字) : 사순(士純)ㆍ호(號) : 학봉(鶴蜂)ㆍ시(諡) : 문충(文忠)ㆍ부제학(副提學))
김규(金煃)(자(字) : 광정(光庭)ㆍ호(號) : 정근재(定跟齋)ㆍ호군(護軍))
김명기(金命基)(자(字) : 용림(用林)ㆍ호(號) : 병간(甁艮)ㆍ의금부도사(義禁府都事))
김계기(金啓基)(자(字) : 덕보(德甫)ㆍ호군(護軍))
김시?(金是?)(자(字) : 자정(子正)ㆍ호군(護軍))
김복일(金復一)(자(字) : 계순(季純)ㆍ호(號) : 남악(南岳)ㆍ사성(司成))
김빈(金賓)(자(字) : 빈여(賓如)ㆍ호(號) : 갈천(葛川)ㆍ도승지(都承旨))
김홍일(金弘一)(자(字) : 도순(道純)ㆍ첨사(僉使))
김옥(金沃)(도호부사(都護府使))
김백령(金百齡)(호군(護軍))
김선계(金善繼)(자(字) : 효백(孝伯)ㆍ상주목사(尙州牧使))
김이중(金履重)(자(字) : 성보(聖甫)ㆍ군자감정(軍資監正))
김학구(金學耈)(자(字) : 문중(文重)ㆍ호군(護軍))
김치관(金致寬)(자(字) : 이률(而栗)ㆍ호(號) : 역락재(亦樂齋)ㆍ부호군(副護軍))
김석우(金碩祐)(자(字) : 원길(元吉)ㆍ호(號) : 경와(敬窩)ㆍ효자(孝子))
김희량(金熹良)(한성판윤(漢城判尹))
김대추(金大樞)(진주목사(晋州牧使))
김구련(金球璉)(첨절제사(僉節制使))
김주국(金柱國)(호군(護軍))
김행건(金行健)(호군(護軍))
김득현(金得賢)(오위장(五衛將))
김급(金汲)(호군(護軍))
김구정(金九鼎)(첨사(僉使))
김대기(金大器)(자(字) : 현거(鉉擧)ㆍ부사(府使))
김필성(金必成)(자(字) : 취백(就伯)ㆍ호군(護軍))
김건(金鍵)(부호군(副護軍))
김덕유(金德裕)(자(字) : 군현(君賢)ㆍ좌윤(左尹))
김지수(金地粹)(자(字) : 거비(去非)ㆍ호(號) : 태천(苔川)ㆍ천태(天台)ㆍ시(諡) : 정민(貞敏)ㆍ승지(承旨))
김하손(金賀孫)(자(字) : 여언(汝彦)ㆍ사복사정(司僕寺正))
김상손(金尙孫)(자(字) : 덕재(德哉)ㆍ호(號) : 지경(持敬)ㆍ학행(學行))
김도기(金道器)(자(字) : 자유(子由)ㆍ호(號) : 매곡(梅谷)ㆍ효행(孝行))
김지남(金地南)(자(字) : 대자(大貲)ㆍ호(號) : 구봉(九峯)ㆍ사헌부지평(司憲府持平))
김원주(金元柱)(자(字) : 인보(仁甫)ㆍ호(號) : 자우(自愚)ㆍ호군(護軍))
김승음(金承音)(자(字) : 극상(克相)ㆍ호군(護軍))
김상음(金尙音)(자(字) : 여원(汝遠)ㆍ호군(護軍))
김추윤(金秋潤)(자(字) : 시원(詩遠)ㆍ호군(護軍))
김여량(金汝樑)(자(字) : 군용(君用)ㆍ부사정(副司正))
김철(金澈)(자(字) : 경등(景登)ㆍ훈련원정(訓鍊院正))
김태지(金泰祉)(자(字) : 희서(希瑞)ㆍ호군(護軍))
김익근(金益謹)(승지(承旨))
김진혁(金震赫)(도정(都正))
김성옥(金聲玉)(부호군(副護軍))
김대춘(金大春)(자(字) : 대일(大一)ㆍ호(號) : 서력재(徐力齋)ㆍ훈련첨정(訓鍊僉正))
김채하(金採河)(자(字) : 자연(子淵)ㆍ부호군(副護軍))
김진광(金振光)(절제사(節制使))
김하성(金夏聖)(전라수사(全羅水使))
김수담(金壽淡)(정주목사(定州牧使))
김기열(金起悅)(자(字) : 군습(君習)ㆍ공조참의(工曹參議))
김이길(金履吉)(자(字) : 자정(子定)ㆍ호(號) : 모와처사(慕窩處士)ㆍ학행(學行))
김백휴(金百休)(자(字) : 중숙(仲俶)ㆍ호(號) : 송하옹처사(松下翁處士)ㆍ학행(學行))
김만기(金萬起)(중추부사(中樞府事))
김몽기(金夢麒)(자(字) : 중상(仲祥)ㆍ부정(副正))
김하현(金夏鉉)(자(字) : 주백(周伯)ㆍ부호군(副護軍))
김팔원(金八元)(자(字) :순거(舜擧)ㆍ부호군(副護軍))
김한국(金翰國)(운거(雲擧)ㆍ부사(府使))
김학명(金鶴鳴)(자(字) : 천경(天卿)ㆍ학행(學行))
김극눌(金克訥)(자(字) : 사흠(士欽)ㆍ호(號) : 학보(鶴甫)ㆍ(護軍)
김대명(金大鳴)(자(字) : 이원(而遠)ㆍ부호군(副護軍))
김우인(金友仁)(자(字) : 인숙(仁叔)ㆍ부사(府使))
김세도(金世度)(군자감정(軍資監正))
김협(金協)(자(字) : 맹견(孟堅)ㆍ호(號) : 귀봉(龜峯)ㆍ부호군(副護軍))
김호(金護)(부호군(副護軍))
김덕겸(金德謙)(자(字) : 원익(元益)ㆍ부호군(副護軍))
김호(金鎬)(부호군(副護軍))
김우홍(金宇弘)(자(字): 면부(勉夫)ㆍ호(號) : 이계(伊溪)ㆍ목사(牧使))
김우굉(金宇宏)(자(字) : 경부(敬夫)ㆍ호(號) : 개암(開巖)ㆍ대사성(大司成))
김성구(金聲久)(자(字) : 덕림(德林)ㆍ호(號) : 팔오헌(八吾軒)ㆍ관찰사(觀察使))
김우옹(金宇顒)(자(字) : 숙부(肅夫)ㆍ호(號) : 동강(東崗)ㆍ시(諡) : 문정(文貞)ㆍ부제학(副提學))
김극례(김克禮) 진사(進士), 생원(生원) 20세
김극화(金克和) 정랑(正郞) 20세
김하욱(金夏旭)(자(字) : 군범(君範)ㆍ부호군(副護軍))
김덕남(金德男)(자(字) : 득부(得夫)ㆍ훈련원정(訓練院正))
김종혁(金宗赫)(자(字) : 창서(昌瑞)ㆍ부호군(副護軍))
김응지(金應地)(자(字) : 서중(瑞仲)ㆍ절제사(節制使))
김요보(金堯輔)(자(字) : 사순(士純)ㆍ호(號) : 우재(愚齋)ㆍ대사헌(大司憲))
김배(金培)(자(字) : 응립(應立)ㆍ군자감정(軍資監正))
김천길(金天吉)(자(字) : 영길판결사(永吉判決事))
김학룡(金鶴龍)(한성부윤(漢城府尹))
김내택(金乃澤)(향암(香菴)ㆍ첨정(僉正))
김?(金?)(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김책(金策)(자(字) : 헌숙(獻淑)ㆍ훈련원정)(訓練院正))
김방(金磅)(자(字) : 석지(碩之)ㆍ부호군(副護軍))
김득희(金得希)(자(字) : 성집(聖集)ㆍ의금부도사(義禁府都事))
김이정(金以鼎)(자(字) :중구(仲九)ㆍ부호군(副護軍))
김두정(金斗正)(자(字) : 방숙(方叔)ㆍ부호군(副護軍))
김제약(金悌躍)(자(字) : 여순(汝順)ㆍ부호군(副護軍))
김희문(金希文)(자(字) : 경노(敬魯)ㆍ호(號) : 행은(杏隱)ㆍ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김관덕(金寬德)(자(字) : 경직(敬直)ㆍ부호군(副護軍))
김덕화(金德華)(자(字) : 성수(聖叟)ㆍ부호군(副護軍))
김덕해(金德海)(자(字) : 태성(泰聲)ㆍ호(號) : 화엄(華嚴)ㆍ중추부사(中樞府使))
김응선(金應善)(호군(護軍))
김귀석(金貴碩)(자(字) : 영세(榮世)ㆍ부호군(副護軍))
김종봉(金鍾鳳)(자(字) : 순서(舜瑞)ㆍ부호군(副護軍))
김찬휘(金讚煇)(자(字) : 경시(慶詩)ㆍ부호군(副護軍))
김장주(金章柱)(자(字) : 광숙(光淑)ㆍ부호군(副護軍))
김상경(金相慶)(자(字) : 필보(必甫)ㆍ호군(護軍))
김홍군(金洪軍)(자(字) : 치관(致關)ㆍ호군(護軍))
김덕재(金德才)(자(字) : 인수(仁壽)ㆍ중추부사(中樞府使))
김굉(金肱)(자(字) : 자야(子野)ㆍ호(號) : 귀와(龜窩)ㆍ예조참판(禮曹參判))
김제하(金濟河)(자(字) : 즙일(楫一)ㆍ호군(護軍))
김필경(金弼敬)(자(字) : 형수(亨秀)ㆍ호군(護軍))
김정수(金鼎壽)(자(字) : 계정(戒正)ㆍ호군(護軍))
김필기(金弼基)(군자정(君資正))
김원석(金元碩)(자(字) : 집중(執中)ㆍ부호군(副護軍))
김병현(金秉鉉)(의금부도사(義禁府都事))
김여욱(金麗頊)(부호군(副護軍))
김용재(金龍載)(자(字) : 채운(채운)ㆍ동돈녕(同敦寧))
[출처] 의성김씨의 기원과 유래|작성자 괴정공파33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