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少年)》



우리나라에서 우리 힘으로 만든 첫 잡지는무엇일까? 이에 관하여는 여러가지 견해가 있다. 우선 1892년 1월 미국 감리교 선교사 부부였던 올링거 부부가 발행한 월간 《코리안 리포지토리(The Korean Repository)》를 들 수 있다. 이 잡지에는 선교사들이 알아야 하는 한국의 언어, 역사와 문화, 그리고 시사적인 내용들이 담겨있다. 그러나 한국인이 아닌 미국 선교사들에 의해 발행되었고, 또 영문으로 쓰여져 있어서 이를 우리나라 최초의 잡지로 보기는 힘들다는 견해도 있다.
국내에서 우리나라 사람이 발행한 최초의 잡지는 1896년 11월 30일 창간된 《대죠선독립협회회보》이다. 월 2회 발행된 이 잡지는 같은 해 4월 7일 창간된 《독립신문》의 회보(會報) 형식이었다. 근대 문명과 과학 지식을 조명한 각종 논설을 실었고, 근대적인 과학 지식과 서구사상을 보급하려 했다. 그러나 독립협회가 해체됨에 따라 1897년 8월 15일자 18호까지 발행되고 폐간되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땅 안에서 한국인의 손에 의해서 한국어로 만들어졌고, 특정 기관이나 특정 계층을 상대로 한 잡지의 성격을 벗어난 최초의 잡지는 무엇일까? 그것은 1908년 11월 1일 창간되어 1911년 5월 1일 통권 23호를 끝으로 폐간된 《소년(少年)》이다. 최남선이 직접 인쇄 시설을 장만해 창간한 이 잡지는 국판 60여쪽 안팎으로 값이 14전(錢)이었고, 「신문관」에서 펴냈다. 창간호에서 "우리 대한으로 하여금 소년의 나라로 하라. 그리하랴 하면 능히 이 책임을 감당하도록 그를 교도하여라"라는 창간취지를 내세우고 있다. 그리고 이 《소년》은 주로 청소년을 대상으로 새로운 지식의 보급과 계몽, 강건한 청년정신의 함양에 주력했다. 계몽적인 내용으로 말미암아 일제에 의해 여러 차례 발매금지와 정간을 당하기도 했다. 이 책에서는 집필자의 이름이 대부분 밝혀져 있지 않으며, 신체시의 효시로 평가되는 최남선의 〈해에게서 소년에게〉가 실려 있고, ‘황태자 전하’의 사진과 ‘나이아가라 폭포’ 등의 사진이 실려있는 점이 특징이다. 특히 제1년 제1권 67쪽에는 우리나라가 맹호(猛虎)가 발을 들고 동아시아 대륙을 향하여 기상있게 포효하는 대한반도의 지도를 소개하고 있다. 이 《소년》은 일제시대에 출판법에 따라 창간되었고, 신문지법으로 시사보도를 할 수 없는 상황에서 민족정기를 드높이려고 했다는 점에 중요한 의의가 있다.
《소년》 창간호가 처음 손에 건네졌을 때 필자의 감격은 뭐라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참으로 힘들고 어려운 시대 속에서도 “우리 대한으로 하여금 소년의 나라로 하라”고 외치던 선각자들의 굿굿한 기상이 오늘의 대한민국을 가능케 한 것은 아닐까.
<2013. 1. 21>
국한문. 『소년』은 우리 나라 최초의 잡지로서 1908년 11월 최남선이 창간한 월간 계몽지이다. "우리 대한으로 하여금 소년의 나라로 하라. 그리하랴 하면 능히 이 책임을 감당하도록 그를 교도하여라"라는 발간 취지를 내세우고 이광수홍명희 등이 필자로 참가했다. 8호 때 일제에 의해 발매금지와 정간을 당하다가 1911년 5월 통권 23호로 종간되었다. 이 책은 소년 제2년 제9권(1909년 10월 1일)으로 「대한소년행」, 「청년학우회보(2)」, 「해상대한사(9)」등이 게재되어 있다.
첫댓글 한국교회역사자료관에는 소년 창간호를 비롯해 소년 전권이 영인본으로 소장되어 있다. 그리고 pdf본도 열람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