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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한국일보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 피
한국일보 | 기사입력 2004-12-31 15:08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방문부터 연다. 공기를 순환시키기 위해서다. 잇몸이 더 곪아 가고 있는지 잠을 자고 일어나면 입에서 고약한 냄새가 난다. 손바닥을 입에 대고 후 분 다음 숨을 들이마시면 두엄 속에 한 달 정도 묻어둔 썩은 계란 냄새가 풍겨온다. 내 입에서 나는 냄새라는 걸 알면서도 구역질이 난다. 창문을 활짝 열고 방석을 흔들며 공기를 쫓아낸다. 새 공기가 퀴퀴한 곰팡내를 쓸어내는 것 같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이다. 갑자기 비릿한 동물 내장 썩는 냄새가 풍겨온다. 엄마가 창고 문을 열어 놓은 모양이다.
“문 좀 꼭 닫고 하라니까?”
나는 방문 밖으로 얼굴을 내밀고 위장 속에 있는 것들을 토해내듯 소리를 지른다.
“눈 떴으면 부산떨지 말고 빨리 나와.”
엄마 역시 지지 않고 소리를 지른다. 그 소리는 내 방을 가득 채워버린 동물 내장 썩는 냄새보다 더 지겹게 느껴진다.
나는 마루로 나가 선반에 있는 고무옷을 끌어내린다. 다리가 들어갈 고무장화를 툭 털자 들큰한 비린내가 풍겨온다. 그 냄새를 맡을 때마다 엄마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곳으로 도망가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고무옷을 입고 창고로 가 문을 연다. 작은 나무의자에 앉아 있는 엄마 앞으로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죽은 닭들이 보인다. 그 모습을 볼 때마다 ‘이 짓을 꼭 해야 먹고 살 수 있는 건가?’ 라는 생각이 든다. 엄마가 두툼한 식칼을 들고 통나무 도마를 향해 내리찍는다. 쩍 하고 닭 모가지 끊어지는 소리가 들리며 붉은 핏방울이 내 고무장화로 튄다. 조금만 지나면 내 온몸에 튈 피인데도 기분이 상한다.
“왔으면 빨리 앉아서 일할 생각 하지 않고, 왜 우뚝 서 있어?”
엄마는 식칼을 닭똥집 밑으로 쑤셔 넣어 가슴을 가르며 말한다. 닭 가슴뼈가 갈리는 소리는 유리조각으로 콘크리트 벽을 긁는 소리와 닮아서 소름이 돋는다. 엄마는 열린 닭 가슴살 사이로 고무장갑 낀 손을 넣어 호미로 감자를 캐내듯이 닭의 간과 콩팥과 위장을 남김없이 긁어낸다. 닭대가리를 끊고, 배를 갈라서 내장을 긁어내 납품 해주면 마리당 70원을 받는다. 엄마는 새벽 3시에 일어나 연신 식칼을 들었다 놓는데도, 여태 3분의 1도 처리하지 못했다. 오후 들어 햇빛이 창고를 덮치면 긁어낸 닭내장에 온 동네 파리들이 몰려들고, 점점 생기를 잃어 가는 간과 콩팥과 위장에서는 견디기 힘든 고약한 냄새가 피어오른다. 내장 썩는 냄새가 온 동네를 점령해 버리기 전에 끝내야 하는 것이다. 나는 벌거벗은 닭들을 보며 두툼한 식칼을 내리찍는다. 닭 모가지가 비명 한 마디 없이 잘려 나간다.
“정말 더럽게 태어났네, 시발.”
나는 혼잣말로 중얼거린다. 엄마는 들은 척도 않고 더 힘껏 칼로 도마를 내리찍는다. 나도 지지 않는다. 엄마 속이라도 긁어놔야 눈을 뜨자마자 죽은 닭을 보는 것에 대해 분이 풀릴 것 같다.
“시발, 꼭 살인자들 같네.”
이번에는 엄마가 칼질을 멈추고 나를 쏘아본다.
“에미 앞에서 시발시발 하면서 그 입 계속 놀리고 있을래?”
엄마는 식칼을 반쯤 들어올리고, 어느새 살기가 퍼져 있는 눈으로 나를 쏘아본다. 실핏줄이 도드라진 엄마의 눈을 보면 금방 무슨 일이라도 낼 것 같은 섬뜩함이 느껴진다. 그래도 나는 지고 싶은 마음이 없다.
“그렇잖아. 누가 우리 보면 안 그렇겠어, 식칼 들고 앉아 있는 꼴이?”
엄마는 이를 꼭 물고, 행여 독기라도 새어 나올까 염려스러웠던지 비틀린 입술까지 꼭 물고 나를 쏘아본다. 엄마가 식칼을 내던지고 내게 달려들어 피 묻은 고무장갑을 휘둘러대면 나는 꼼짝없이 얻어맞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나에게도 비장의 무기는 있다. 맞으면 식칼을 도마에 내리꽂고 자리에서 일어나버린다. 그리고 엄마가 악을 쓰는 소리가 들리지 않을 곳으로 도망가버린다. 엄마는 그걸 경계하는 거다. 마음에 식칼을 들이대는 내가 없어지면 제아무리 손이 빠르더라도 엄마 혼자서는 오후가 되기 전에 닭무덤을 쓸어버릴 수가 없다. 엄마는 공룡처럼 콧김만 내뿜고 있다. 나는 그 이상은 엄마 가슴에 칼을 대지 않는다. 거기까지가 상한선이다. 몇 마디만 더하면 죽은 닭이 썩든 말든 내게 달려들어 닭피가 범벅이 된 고무장갑으로 내 얼굴을 때릴 것이다. 그리고 가겟집 앞까지 도망가면서도 팔자타령이 섞인 지긋지긋한 울음 소리를 들어야 할지도 모른다.
“어부 어부 어부 부부 어 여 여어 ------.”
덜덜거리는 환풍기 소리 사이로 죽어 가는 동물의 울음 소리 같은 신호음이 들려온다. 엄마가 들고 있던 식칼이 도마에 꽂힌다. 내 얼굴을 뭉갤 뻔한 피 묻은 고무장갑도 내장이 뒤섞인 도마 위에 올려진다. 엄마는 자리에서 일어나 닭 비린내가 배어 있을 손을 앞치마에 문지르고 창고를 나간다. 아버지한테로 가는 것이다.
나도 장갑을 벗고 문 앞으로 가 바깥 공기를 들이마신다. 어느새 문 밖에도 닭 비린내가 공기 속에 퍼져 있는지, 별반 다르지 않다. 아버지가 コ?튿輸낮?좁은 마루에 한 팔을 세우고 엎드려 있다. 중풍에 걸리고 나서부터 아버지의 이동 수단은 한 팔과 한 쪽 무릎으로 변했다. 발바닥을 사용할 때는 휠체어에 앉을 때와 화장실 변기에 앉혀 놓을 때뿐이다. 아버지는 나이가 60살인데 침을 흘리고 있다. 정수리로부터 명치를 중심으로 사타구니까지 몸 반쪽의 감각기관과 운동신경을 모두 잃어 버렸다. 나는 비아냥거리듯이 혀를 찬다.
“쯧쯧.”
아버지는 나를 쳐다보려고도 하지 않는다. 웃어야 할 코미디 프로를 보면서도 어떻게 표정을 만들어야 할지 몰라서 우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내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만은 눈치채고 있는 모양이다. 나는 담배를 꺼내 물고 불을 붙인다. 창고 주변에 퍼져 있는 닭 비린내를 살균시키듯이 연기를 뿜는다. 아버지가 중풍에 걸리지 않았다면 상상도 못할 일이다. 바로 굳은살이 박인 손바닥이 날아와 내 뺨에서 불이 났을 것이다.
수돗가에서 손을 닦은 엄마가 아버지 앞으로 간다. 무표정한 얼굴로 아버지의 신호음을 듣고는 졸음이 번진 얼굴이 찌푸려진다.
“지금 이 꼴로 부침개를 어떻게 하라고. 그냥 조신하게 들어가 누워 있어, 사람 염장 터지게 하지 말고.”
엄마는 가래 뱉듯이 말하고는, 그래도 불쌍한 생각이 들었던지 갈등하는 얼굴로 나를 본다. 부침개를 만들며 빈둥거리다가는 정오까지 닭들을 처리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넌 뭐 하러 여기 나와 있어, 들어가서 하나라도 더 끊지 않고?”
엄마는 여전히 닭이 썩는 것과 부침개를 해 주는 것을 놓고 저울질을 하고 있는 얼굴이다. 닭이 썩거나 상하면 닭값을 물어줘야 한다. 그리고 정오에 오는 냉동차에 주문받은 수량만큼 채워주지 못하면 앞으로 수량이 반으로 줄어들 것이다. 엄마의 얼굴이 갑자기 서늘하게 일그러진다.
“옘병하지 말고 들어가 있어, 해 주더라도 저 일 끝나고 해 줄 테니까.”
엄마는 아버지의 팔을 잡고 방 쪽으로 끌어당긴다. 아버지는 중풍에 걸리고 나서부터 고집이 더 세졌다. 땡강 부리는 아이처럼 한 번 말한 걸 관철시키려고 고집을 피우곤 했다. 아버지는 굳어버린 다리에 힘을 모으고 버티고 있다. 반쯤 틀어진 입을 꼭 물고, 끙끙 소리를 내며 감각이 살아 있는 왼팔에 힘을 모은다. 엄마는 다시 분을 삭이지 못하는 공룡처럼 콧김을 뿜는다. 얼굴에 묻은 닭내장 찌꺼기가 주름살처럼 꿈틀거린다. 엄마의 눈에, 닭 모가지를 식칼로 내리칠 때처럼 살기가 돋기 시작한다. 아버지가 중풍에 걸리고 나서부터 엄마의 눈에는 살기와 실핏줄이 번지기 시작했다. 월세를 받으러 오는 주인집 아저씨와 마주섰을 때도, 새벽에 들어오는 닭의 수량이 줄 때도 살기와 실핏줄이 엄마 눈에 번져 있었다.
“들어가, 속썩이지 말고 들어가란 말이야.”
엄마는 식칼을 들어올릴 때처럼 손바닥을 번쩍 들어올린다. 아버지는 여전히 굳어 버린 다리에 힘을 모으고, 엄마를 쏘아보고 있다. 아버지의 고집은 굳어버린 몸을 하고 있어도 아직 자신이 이 집의 가장임을 알리려는 몸부림 같다. 엄마가 잡고 있던 아버지의 팔을 놓는다.
“여기 앉아서 짖든지 말든지 마음대로 해. 눈을 까뒤집고 드러누워도 나는 지금 부침개를 못 해 주니까.”
엄마는 바위 덩어리처럼 엎드려 있는 아버지를 마루에 두고 창고로 온다. 엄마가 내 앞을 지나갈 때 뜨거운 김이 얼굴로 훅 끼쳐온다. 나는 더 이상 닭 비린내와 내장 썩는 냄새가 뒤엉켜 있는 창고 안으로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나지 않는다.
“뭐 하고 있어, 빨리 들어오지 않고 썩는 거 보고 섰다가 산에다 묻으려고 거 섰는거야?”
나는 다시 덜덜거리는 환풍기 소리를 들으며 창고 안으로 들어간다.
“어 부부, 어 부부, 여 여 여 어어.”
아버지의 신호음이 더 거칠게 들려온다. 엄마는 들은 척도 않고 더 빠른 손놀림으로 닭 모가지를 자르고 가슴을 가른 뒤 내장을 긁어낸다. 가만히 놔두면 아버지는 두 시간이고 세 시간이고 계속 동물의 울부짖음 같은 신호음을 보낼 것이다.
“그때 칵 죽게 놔두는 건데 ------.”
엄마는 잠긴 듯한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아버지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소주 한 병씩을 마셨다. 그리고 기분 좋게 취한 어느 날 자리에서 일어나다가 쓰러졌다. 내 등에 업혀 약국에 가서는 자신의 몸이 굳어 가는 것도 모르고 평소처럼 말했다.
“몸이 이상하게 찌뿌둥하네. 이거 왜 이런 거요? 거 쌍화탕하고 우황청심환 좀 줘보쇼.”
아버지는 평소에도 약국에 가면 자신이 약사였고, 병원에 가면 의사였다. 약사는 아버지의 약 주문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지, 몸 상태에 대해 특별히 묻지도 않고 주문받은 약만 건네주었다. 그날 밤 아버지는 집으로 돌아와 깊은 잠에 빠져들었고, 아침 9시가 넘도록 일어나지 못하고, 대소변을 가리는 걸 잊은 아이처럼 누운 채로 똥을 쌌다. 방학이라 집에 있던 나는 아버지의 방문을 열어보고 구역질을 할 뻔했다.
엄마는 아버지가 잠에서 깨어나지 못하는 걸 보고서야 눈에 실핏줄이 돋으며 아버지에게로 달려들었다. 똥이 뭉개져 있는 팬티를 벗기고 반쯤 옆으로 돌아가 있는 턱을 인중 밑에 맞춰 놓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아버지 턱은 비틀린 그대로 꼼짝을 하지 않았다. 다리를 구부려 보라고 말해도 아버지는 걸음마를 처음 배우는 아이처럼 힘들어했다.
온 집안에 진동했던 똥냄새가 사라질 쯤 아버지는 앰뷸런스에 실려 병원으로 옮겨졌다. 그날부터 엄마는 학교 앞에서 했던 분식집을 나가지 못했다. 병실에 있는 아버지는 아이로 돌아갈 수 있는 약을 먹은 사람처럼 변해 버렸다. 엄마가 잠시라도 옆에 없으면 덫에 걸린 짐승처럼 뒤틀린 몸을 건들거리며 알 수 없는 소리를 질러댔다. 옆 침대에 있는 환자들이 간호사에게 항의를 할 정도였다.
닭 내장 찌꺼기가 붙은 식칼 등에 핏방울이 떨어진다. 엄마는 자신의 코에서 떨어지는 피인 줄도 모르는 것 같다. 이번에는 한 방울씩 떨어지던 피가 살아 있는 닭 목에 칼집을 냈을 때처럼 쪼르륵 흐른다. 나는 식칼을 도마 위에 꽂고 닭 내장 찌꺼기가 묻은 장갑을 벗는다.
“이렇게 해 봐.”
나는 엄마 곁으로 가 머리를 뒤로 젖히라는 손짓을 한다.
“왜 이래?”
“코피 나잖아.”
엄마는 그때서야 코피를 훅 들이마시고 날고기를 씹듯이 입을 우물거린다.
“에이, 지랄하고.”
엄마는 손등으로 흐르는 코피를 쓱 문지른다. 붉은 수염이 난 것처럼 오른쪽 뺨에 긴 핏자국이 묻어난다.
“솜 가져올게.”
“그냥 그 옆에 있는 신문지나 뜯어 줘.”
“가만있어. 솜 가져올 테니까.”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창고를 나간다. 아버지는 여전히 마루에 엎드려서 부침개를 뜻하는 “어부부부.” 신호음을 보내고 있다. 나는 아버지는 본 척도 하지 않고 방으로 들어가 솜을 갖고 나온다. 걸어 나오는 내 발소리를 들었던지 아버지의 신호음이 더 거칠어진다.
“그만하고 들어가 있어요. 끝내고 해 준다잖아요.”
아버지가 비틀린 입으로는 침을 흘리고 눈만은 살아서 나를 쏘아본다.
아버지가 중풍에 걸리기 전까지만 해도 그 눈빛을 보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곤 했다. 아버지는 인근 부대에서 상사로 근무했었다. 새파랗게 젊은 초급 장교에게 경례를 붙이는 자신을, 술만 먹으면 엿 같은 인생이라고 말하면서도 내 앞에서는 항상 한 부대를 이끄는 단장처럼 보이려고 애썼다. 아버지가 정한 기상 시간에 10분만 늦어도 아버지는 얼음이 두껍게 어는 겨울에도 세숫대야에 찬물을 받아다가 내게 뿌렸다. 육사 시험에 두 번이나 낙방한 아버지는 내 성적에 항상 예민한 반응을 보였고, 성적이 뒤로 한 등수만 밀려도 내 뺨을 후려갈기며 소리쳤다.
“이 등수로는 육사는 고사하고, 취사반 상사도 못 해. 너도 애비처럼 짬밥 냄새 풍기면서 집에 들어올래?”
아버지는 퇴근해서 집에 들어오면 한겨울에도 샤워를 두 번씩 했다. 군복에 아로마 향수를 뿌렸고, 입고 들어온 군복은 옷장에 걸지 않고 집 밖 빨랫줄에 걸었다. 아버지 몸에서 나는 짬밥 냄새는 엄마 몸에서 나는 닭 비린내와 닮았던 것 같다. 바람이 부는 곳에 오래 서 있어도 냄새가 살갗을 뚫고 피부 속에 서식하는지 방에만 들어오면 들큰한 냄새를 풍겼다.
아버지가 쏘아보는 눈동자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더 이상 내 가슴에 미동도 전해져 오지 않는다. 쳐다보면 어쩔 건데요. 시비를 걸고 싶어진다. 아버지는 더 이상 나를 쏘아보지 않고 고개를 돌린다. 이제 변화시킬 수 있는 게 없다는 걸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잠잠해진 아버지를 뒤로하고 창고로 돌아간다. 엄마의 콧구멍에 신문지 뭉치가 꽂혀 있다.
"어디 봐."
"됐어."
엄마는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연신 닭 모가지를 쳐내고 있다.
"봐보라니까."
내가 큰 소리를 치고서야 엄마는 식칼을 도마에 꽂고 코에 박힌 신문지 뭉치를 뺀다. 어느새 신문지 뭉치가 닭 콩팥처럼 검붉게 변해 있다. 나는 엄마의 코 밑에 묻은 닭내장을 떼어 내주며 콧구멍을 솜뭉치로 틀어막는다.
"오 분만 쉬었다 해."
내가 말하자 엄마는 맥이 풀리는지 푸후 하고 숨을 토해낸다.
"하루에 천오백수는 너무 많아. 앞으로 천수씩만 해."
"천수하면 남는 거 없어. 니 아버지 병원비 낼 때 빌린 돈 아직 반도 못 갚고 있어. 언제까지 이자만 갚다 끝낼래?"
엄마는 말을 하고 난 뒤 치마 속주머니에서 담배 한 개비를 꺼내 물고 불을 붙인다. 엄마는 술도 못 했고, 담배도 못 피웠다. 하지만 닭 모가지 치는 일을 하면서부터 엄마 입에는 담배가 물려졌고, 창고 구석에 혼자 앉아 있을 때마다 소주를 마셨다. 엄마는 처마로 들어오는 햇빛을 향해 길게 연기를 뿜어댄다.
"정오까지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엄마는 주변에 널려 있는 죽은 닭들을 둘러본다.
"못 하면 마는 거지, 뭐."
내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엄마는 입에 물었던 담배를 닭 내장에 눌러 끄고는 다시 식칼을 집어든다.
"대충 살아. 코피 터지면서 살아봐야 남는 게 뭐야?"
엄마는 내 말을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식칼을 내리찍는다. 뼈 으깨지는 소리가 들리며 눈을 반쯤 감고 있는 닭 대가리가 내 발 밑으로 떨어진다. 나는 괜히 부아가 나서 고무장화 신은 발로 닭 대가리를 짓뭉개버린다.
아버지는 병원에 있을 때 집안에 있는 돈을 다 들여서라도 자신의 몸을 고쳐 놓으라고 악을 썼다. 아버지의 병원비는 생각보다 많이 들었다. 약값과 물리치료비와 병실료를 합해 하루에 사오십만 원이 깨졌다. 아버지는 의사가 올 때마다 더 좋은 약을 요구했고, 중풍에 좋다는 한약은 닥치는 대로 구해 먹으려 했다. 몇 달이 못 가서 엄마는 분식집을 내놔야 했다. 내가 장가들면 분가시킨다고 들어 뒀던 주택부금도 깼다. 삼촌한테 6개월만 쓰고 갚는다고 800만 원을 빌려서 아직 못 갚았고, 아버지가 입에 거품을 물고 죽어갈 무렵에는 돈 없어서 죽였다는 한이라도 만들지 말자고 이자가 연 70%인 사채까지 빌려 썼다. 더 이상 빌릴 곳도 없고, 빌려줄 사람도 없다는 걸 알면서도 아버지는 나날이 더 좋은 한약재를 요구했다. 그때 엄마는 정신이 반쯤 나간 사람처럼 병실 창문 앞에 앉아 있다가 조용히 짐을 쌌다. 의사가 왔을 때 치료는 요기까지만 받겠다고 말했고, 아이처럼 소리를 지르며 뒤틀린 팔을 허우적거리는 아버지를 보고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여기서 더 나가면 다 죽어. 당신, 나, 당신 새끼."
아버지는 입이 틀어막혀진 사람처럼 말을 못 하고, 힘없이 눈만 깜빡거렸다.
엄마가 손질된 닭이 담긴 욕조에 물을 뿌린다. 행여나 상할까봐 걱정이 되는 모양이다.
"그러기에 냉장고를 들여놓자고 했잖아. 그랬으면 괜히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나는 엄마의 걱정이 어리석다는 생각이 든다.
"냉장고 살 돈은 누가 거져 준대?"
닭 1500수가 한 번에 들어가는 냉장고를 사려면 중고를 사려 해도 몇 백은 줘야 한다.
"될 수 있는 대로 돈 안 들이고 돈 버는 게 진짜 돈 버는 거야."
엄마는 시체처럼 하얗게 변해 버린 닭들을 향해 물을 뿌리며 말한다.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시체실에서 하얗게 얼어 있는 할머니의 모습을 본 적이 있었다. 그때 정말로 얼었을까 싶어 할머니의 팔을 만져 봤는데 정말로 아이스크림을 만지는 것처럼 얼어 있었다. 엄마도 그 모습을 떠올리고 있는지 모른다. 할머니가 입원한 시점이 바로 엄마가 아버지의 병원비를 위해 사채를 쓸 때였다. 외삼촌과 이모들이 돈을 모아서 할머니를 더 좋은 병원으로 옮기자는 말을 했다. 하지만 엄마는 할머니를 위해 한 푼도 내지 못했다. 아버지의 병원비를 내고 남은 돈이라도 낼 수 있었는데도 큰이모와 통화한 엄마는 낼 돈이 없다고 말했다. 할머니는 대학병원으로 옮긴 뒤 열흘을 견디지 못하고 돌아가셨다. 아버지가 누워 있는 병원에서 연락을 받고, 엄마와 나는 할머니가 있는 병원으로 향했다. 택시를 타고 가는 내내 엄마는 무언가를 생각해내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떠오르지 않는 것 같았다. 대학병원 간판이 보이기 시작하면서부터 엄마의 눈에 눈물이 번지기 시작했다.
내 옆에 닭 대가리들의 무덤이 있다. 반쯤 감겨 있는 수백 개의 눈들이 나를 보고 있는 것 같다. 엄마는 마지막으로 남은 닭을 도마 위에 올려놓고 대가리를 자르고 내장을 긁어낸다. 환풍기 밑에 달린 시계를 본다. 정오가 지나 있다. 냉동차가 올 시간이 지났는데도 문 밖에서 찻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입에 담배를 물고 불을 붙이며 창고 밖으로 나간다. 아버지가 거울 밑에 등을 기대고 앉아 햇볕을 쬐고 있다. 이제 지친 모양이다. 부침개를 해 달라는 신호음을 더 이상 보내지 않는다. 내가 연기를 뿜으며 아버지 앞을 지나가자 갑자기 몸을 버둥거리며 신호음을 보낸다.
"너 너 이 너 우부부."
애비 앞에서 담배질이냐고 소리를 지르는 것 같다. 나는 못 본 척하고 대문 밖으로 나간다. 냉동차가 들어올 수 있는 길 옆에 작은 밭이 있고, 거기에는 흉하게 꺾인 나무 골조들이 있다. 군대를 나와서 아버지가 했던 사업의 흔적이다.
아버지는 술안주로 각광을 받을 거라는 말을 듣고 메뚜기를 기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메뚜기는 자신의 몸 가치보다 더 많은 양의 옥수숫대를 먹어치웠다. 1년을 버티지 못하고 망했고, 두 번째로, 비어 있는 창고에 닭을 기르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잘 되는가 싶더니 폭염이 기승을 부리던 8월 초순에 닭장에 전기가 나갔다. 선풍기는 멎었고, 좁은 닭장은 뜨거운 훈김으로 가득 찼다. 반수 이상의 닭이 시름시름 앓다가 죽어버렸다. 닭을 뒷산에다 묻은 날, 아버지는 내가 뒤따라온 것도 모르고 어깨를 꿈틀거리며 울었다.
나는 찢어진 망사가 붙어 있는 나무 골조 앞으로 걸어간다. 이번 겨울에는 모두 무너뜨려서 땔감으로 써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큰길 쪽으로 걸어간다. 이상하게 냉동차가 오지 않는다. 소나무가 빼곡이 심어져 있는 삼거리 쪽을 본다. 고물상으로 들어가는 리어카만 두 대 지나갈 뿐 길을 막고 들어와야 할 은빛 냉동차는 나타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나는 시궁창 쪽으로 담배꽁초를 던지고 집으로 들어간다. 엄마가 수화기를 귀에 대고 소리지르고 있다.
"오다가 교통사고가 났으면 빨리 다른 차를 보내 줘야지. 이러다간 다 썩는단 말이요, 썩어."
마루 앞까지 쳐들어 온 햇빛이 수화기를 들고 있는 엄마의 얼굴을 붉게 익혀 놓고 있다. 엄마는 수화기를 전화통 위에 내동댕이치고 창고 안으로 달려간다. 호수로 물을 뿌리는 소리가 들린다. 마루에 앉아 있던 아버지는 창고 문틈으로 엄마의 뒷모습을 보면서도 신호음을 보내지 않는다. 이제는 정말로 체념한 모양이다.
나는 좁고 어두운 거실을 지나 내 방으로 들어간다. 내 몸에도 과거 아버지 몸에서 나던 짬밥 냄새처럼 닦이지 않는 비린내가 숨어 있는 모양이다. 이상하게 아무도 없는 빈방인데도 들큰한 비린내가 풍겨온다. 나는 의자에 앉으며 벽을 본다. 움푹 파인 벽지 사이로 까맣게 변색된 핏자국이 보인다.
아버지가 병원에 실려 가고 일주일 정도 지난 뒤부터 나는 아버지가 있을 땐 엄두도 못 내던 소리를 꽥꽥 질러댔다. 티브이도 크게 틀어 놓고 좁은 거실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아버지 방과 내 방을 오가며 일주일을 보낸 뒤 속았다는 말을 했다.
내가 어렸을 때 군복을 입고 있던 아버지는 다가갈 수 없는 산 같은 존재였다.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를 가진 나와 달리 아버지는 좌중을 압도하는 목소리를 냈고, 이상스레 찌그러진 어깨를 가져 놀림거리가 됐던 나와는 달리 넓은 어깨를 가졌다. 늘 규칙적으로 생활했고, 미래를 생각하면서 살라는 말을 했다. 하지만 아버지가 중풍에 걸린 뒤부터 나는 아버지가 했던 행동과 말을 경멸하게 됐다. 밤에 아무도 없는 집에 혼자 있을 때마다 거짓말쟁이라고 소리질렀다. 내가 고등학교 2학년을 끝으로 학교를 그만둔 것과, 자폐아처럼 어두운 방에 처박혀 3년을 보낸 것도 모두 아버지의 위선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내 몸에 흐르고 있는 아버지의 피를 뽑아버리겠다는 말을 하며 주먹으로 콘크리트 벽을 쳤다.
엄마가 다급하게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이제 초조해진 모양이다. 잘못하다가는 밤잠을 설치고 일한 대가보다 더 많은 돈을 지불해야 될지도 모른다. 나는 방을 나가 창고로 간다. 선풍기 두 대가 하얀 살을 드러내고 있는 닭들을 향해 돌고 있다. 엄마의 얼굴은 창백하게 변해 가는 닭과는 반대로 붉게 익어버린 채 콧김만 뿜고 있다. 햇빛에 달궈진 슬레이트 지붕에서 뜨거운 김을 쏟아내고 있는 것 같다. 등허리에 흥건히 땀이 배어든다.
"잠깐 들어가서 쉬어. 내가 뿌리고 있을 테니까."
엄마는 들은 척도 않고 쌓여 있는 닭들을 향해 물을 뿌리고 있다. 나는 엄마가 들고 있는 호스를 뺏고, 엄마를 문 쪽으로 민다.
"둘이 있는다고 썩을 닭이 안 썩는 거 아니니까, 잠깐이라도 나가서 바람 좀 쐬고 와."
엄마는 마지못해 창고 밖으로 나간다. 나는 호스로 물을 뿌리며 뒤를 돌아본다. 엄마가 아버지 앞을 지나가는데도 아버지는 신호음을 보내지 않는다. 엄마는 수돗가에서 손을 씻고 부엌으로 들어간다. 잠시 뒤 부엌 쪽에서 맛있는 부침개 냄새가 풍겨온다. 들큰한 닭 비린내를 코끝에서 씻어낼 정도로 그 냄새가 고소하다. 엄마가 부침개가 담긴 접시를 아버지가 앉아 있는 마루에 내려놓는다. 아버지는 엄마가 부엌으로 갔는데도 한참 동안 젓가락을 들지 않다가, 손으로 부침개를 뜯어 입에 넣고는 오래 씹는다. 이제 비틀린 턱을 맞추기도 힘든 모양이다.
엄마는 창고로 와 수화기를 귀에 대고 버튼을 억세게 누른다.
"정말 차 안 보내 줄 거야. ------ 그딴 소리는 집어치우고, 알아서 하라구. 이제 난 썩어도 몰라. 느이들이 차 안 보내줘서 썩는 거니까 알아서 하라구."
엄마는 전화통이 부서질 정도로 수화기를 내려놓는다.
"썩을 노무 새끼들."
엄마는 길게 숨을 토해낸다. 만약 차가 오지 않아서 닭에 이상이 생기면 엄마가 했던 말과는 달리 엄마가 모두 책임을 져야 할지도 모른다. 6개월 전에도 그들이 차를 보내지 않아 닭에 이상이 생긴 적이 있었다. 그때 그들은 닭값을 물지 않고 일을 그만둠과 동시에 보증금으로 맡긴 500만 원을 포기하든지, 닭값을 80% 물고 일을 계속하든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했다. 엄마는 어쩔 수 없이 사정사정해 닭값 60%를 물고 일을 계속하는 쪽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엄마가 넋 나간 얼굴로 부침개를 씹고 있는 아버지를 보고 있다. 그러다가 슬그머니 창고 문을 닫는다. 악취가 창고 안에서만 맴돌 게 뻔한데도 굳어버린 엄마의 얼굴을 보고는 아무 소리도 못 한다.
엄마와 나는 5시간 정도 번갈아 가며 호스로 물을 뿌렸다. 빵빵. 문 밖에서 차 소리가 들린다. 엄마가 길게 한숨을 토해낸다. 엄마는 반쯤 풀린 눈을 하고 리어카에 닭들을 담아 냉동차로 실어 나른다. 모든 일을 끝냈을 때는 저녁 8시 무렵이었다.
"닭에 이상이나 없으려는지 모르겠다."
엄마는 닭에 이상이 있다는 전화라도 받을까봐 걱정이 되는 모양이다.
"걱정 마. 물을 계속 뿌렸으니까 상하지는 않았을 거야."
"그랬으면 다행인데."
엄마가 힘없이 창고를 나간다. 나는 도마와 식칼을 문 옆에 세워두고 백열전구를 끈다. 엄마는 저녁밥도 먹지 않고 좁은 거실에 누워 새우잠을 잔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예외없이 들큰한 비린내가 풍겨왔다. 창고 쪽에서는 엄마가 도마로 내리찍는 식칼 소리가 들려온다. 근데 이상하게 좁은 거실이 휑하게 뚫려 있는 느낌이 든다. 나는 고무바지를 입으러 가다 말고 아버지 방 앞으로 걸어간다. 손잡이를 비틀어 문을 열고 안을 본다. 어둠이 뿌옇게 내려앉은 방에 아버지가 비틀린 자세로 누워 있다. 왠지 그 모양이 숨을 쉬는 사람의 몸이 아니라 온기가 사라진 썩은 나무 같다. 방안으로 들어가 아버지의 코에 얼굴을 들이댄다. 볼에 아무 느낌도 전해져 오지 않는다. 형광등을 켜고 아버지의 얼굴을 자세히 본다. 밀랍 인형처럼 얼굴에 핏기가 돌지 않는다. 발밑부터 굳어져 오는 느낌이 든다. 아버지가 숨을 쉬지 않는 날이 올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무언가가 잘못 꿰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창고로 가 엄마에게 말했다.
"아버지 돌아가셨나봐."
도마로 내리찍는 식칼 소리가 멈춘다. 엄마는 낮게 숨을 토해내며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처럼 무언가를 생각해내려는 표정으로 닭들만 내려다보고 있다. 어쩌면 통장 속에 남은 얼마 안 되는 돈을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어두컴컴하게 잠겨 있는 아버지 방을 지나 내 방으로 들어간다. 의자에 앉아 벽에 묻어 있는 검붉은 핏자국을 본다. 잘못 꿰어진 무언가를 생각해 보려 했는데, 머릿속이 움직여 주질 않는다. 아버지 몸에서 났던 짬밥 냄새가 코끝에 맴돌고 있는 느낌이 든다.
[2005 한국일보 신춘문예] 소설 심사평
당선작으로 뽑힐 만한 작품이 본심에 오른 작품의 1/3을 넘어설 만큼, 최종 한 편을 고르기가 쉽지 않았다.
‘같이 밥 먹을래요’(하재영)는 소재부터 서사담론에 이르기까지 기발함이 넘쳤으나, 기발함은 자칫 가벼움이라는 함정으로 빠지기 쉽다는 통념을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다. 불안감을 지나 때로는 공포심으로 얼룩진 지하철 기관사의 의식세계를 드러내는 쪽으로 무게가 가있는 ‘문’(황정은)은 사건소설적 요소를 보다 많이 포함시켜 긴장감을 높였더라면 하는 아쉬움을 남겼다.
‘안개를 유턴하다’(김형주)는 수족관 안의 물고기의 생태와 수족관 밖의 아이의 운명을 연결시킨 것을 계속 공감하며 따라가기에는 묘사나 어법의 면에서 자연스럽지 못한 점이 여기저기서 확인되었다. 작품에서 제1차적인 원인적 사건으로 작용하는 아내의 가출은 부자연스러운 사건설정의 한 예가 되고 있다. ‘생의 조건’(박준환)의 경우, 주인공이 새를 방생한다는 모티프는 창작의도를 단번에 설명해주는 상징성을 지니기는 하지만, 작위적인 행위의 두드러진 예가 되기도 한다.
송욱영의 ‘피’도 위의 작품들에서 보이는 작위성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매끄럽지 못한 표현도 드물지 않은 데다 결말부분을 급작스러운 아버지의 죽음으로 처리한 것도 극적효과를 지나치게 의식한 결과로 보인다. 그럼에도, 인물심리와 사건을 인상적으로 처리하여 소설 읽는 재미를 안겨 준 점, 오늘날 한국인들의 어려운 생활의 일면을 생동감 있게 열어보인 점, 묘사주의를 통해서 오히려 많은 것을 말하는 서사미학을 제대로 발휘한 점 등을 높게 평가하여 당선작으로 밀기로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