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아무 기대없이 보는 게 관객으로서는 효과만점이다.
기대치는 실망치와 비례하기 십상이니까.
개인적으로 영화관보다는 작은 모니터를 선호하는 것은 커다란 모니터의 움직임들은 부담스럽고
영화관에서 기다리는 시간 동안 영화에 대한 관심을 가지며 기대를 쌓다보니 실망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인데
오늘 편안히 다운받은 영화를 모니터로 보고 있자니 9점짜리(10점 만점) 영화를 본 듯하여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여기저기 사람들의 평판을 훑어보자니 긍정적 평가보다는 부정적인 내용이 더 많다. 왜일까? 난 참 잘 보았는데.....
워낙 소재가 특별해서 기대감 때문에 오는 실망일 수 있겠구나~로 일단은 결론내렸다. 야구팬들에게 최동원과 선동렬. 그리고 마지막 그 대결은 시간이 흐른 만큼이나 사람들의 가슴 속에서 더욱 더 영웅적 전설적 이야기로 담겨져 있었을테니까.
나에게 있어 영화는 "감독의 이야기나 수다"이다. 그의 이야기가 얼마나 내 감각을 두드려서 감성을 건드리고 감동을 시킬 수 있을까가 내 관건인데 주로 인간 삶에 들어있는 요소에 가치를 심는 이야기꾼을 좋아한다.
그런 면에서 이 영화는 내가 좋아하는 요소들이 제법 들어가 있다. 사제지애, 화합, 투지, 책임감, 가족애, 동지애, 그리고 풍자.
그럼 감독의 이야기에 나도 썰을 풀어 볼까나?!?!
영화 속 '일구일생 일구일사'라는 문장이 아직도 뇌리에 남아있다. 스승의 제자에 대한 교육 속에서 사제간의 정을 볼 수 있음이 좋았고 고마왔다, 요즘같이 스승다운 스승이 귀한 세상에서 스승의 표본을 보여주는 것 같은..... 가르침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제자의 모습도 제자다왔다. 최동원(조승우 분)의 진지한 모습에서 느낄 수 있는 책임감과 자기 관리. 여기서의 자기 관리는 몸무게관리 체력관리가 아니다. 자신의 의지가 변질되지 않도록 세상과 타협하지 않으려는 의지관리를 말한다. 그 의지를 지키기 위해 고독한 삶을 살았을 것만 같은 최동원. 융통성없고 답답해보이는 인물이기도 하겠지만 최고는 거저 얻는 게 아닐거다. 스승의 죽음 앞에서 보여지는 그의 행동들은 가슴을 애잔하게 만들었다.
이 영화를 보면서 감격스러워 글썽. 가슴아파 글썽거리길 많이 했는데 그 주인공들이 바로 박만수와 그의 가족이다.
특히 잠자리에서의 박만수(마동성 분)와 아내(김선진 분)의 싸움씬. 감독은 연출을 잘 해냈다. 기죽은 경상도 가장의 모습, 열심히 살다 살다가 지쳐버린 아내, 그 속에서 몰래 우는 아이의 모습을 가슴아프게 잘 표현해냈는데 감독 뿐이랴. 배우들이 맛깔나게 잘 해주니 가능한 일이다. 눈물 연기를 해 낸 배우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이 부부는 너무 잘 어울렸다. 캐스팅이 매우 잘 된 케이스였다. 그냥 이미지만 보아도 그들의 스토리가 보이니 말이다. 감독은 가난하고 무능한 사람들에게도 묵묵히 노력하면 한 방 날릴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희망을 주고 싶었던 것 같다. 그 의도는 성공했고 난 박만수가 한 방 날리는 장면에서 또 울었다.
여기서 사족 하나.
작업장에서 배우들은 눈물 연기를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런데 배우들의 눈물이 정수기에서 찬물 더운물 빼듯 물리적인 차원에서 나오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사람들에게서 점점 늘어나는 것 같아 안타깝다. 배우들은 눈물을 흘리기 위해서 자신의 마음을 그런 가슴아픈 상태로 몰입하여 만든다. 실제로 가슴이 아파야만 눈물이 나온다. ok사인이 나면 현장의 스텝들은 다른 장면을 위한 다른 준비를 해야 하는데 배우는 그 때 벌거벗은 듯한 기분을 갖게 된다. 가슴은 아직도 아픔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때는 어디 조용한 곳에서 숨어있으면 좋겠다고 생각이 들기도 한다. 배우의 운명이기도 하지만 누군가 그 마음 알아준다면 정말 고마울 것이다.
나는 영화를 보면서 주로 인간들의 마음이 하나되었을 때, 서로 같은 마음으로 화합했을 때 이상하게 감동받는다.
김응룡감독(손병호 분)이 연장전을 맞이하며 선수들에게 하나가 되어 멋진 시합을 하길 역설하는 장면에 소름이 돋았다. 김용철(조진웅 분)이 밤탱이 된 눈으로 동료들에게 같이 가보자 말했을 때도 마찬가지다. 힘을 합쳐 하나를 이루는 이러한 동지애는 니편 내편 경상도 전라도 구분없이 경계가 사라지고 경기장 전체를 화합의 장으로 만든다. 정치 집단만 빼고 말이다. 감독은 이들에 대한 풍자도 슬쩍 찔러넣었다. 스포츠를 정치의 수단으로 이용하려는 정치인들에게 한 방 살짝 날리는 센스. 흠~ 굿!! 이 장면을 보며 감독이 이 사회에 대한 시민으로서의 책임감을 갖고 있는 사람일 수 있다라는 가능성을 보았다.^^; 두고 봐야 알겠지만.
최동원이 몸을 무리하면서까지 자신의 의지를 꺾지 않고 밀고 나가는 투지는 어떤가. 그 대상은 해태가 아니었고 선동렬이 아니었다. 바로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었던 것이다. 우리가 매일 하는 말 '화이팅'은 누구를 대상으로 하는 화이팅인가? 바로 나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라는 뜻이라고 나는 해석하고 있다. 누구를 의식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향한 집념인 것이다. 이겨도 내가 하고 져도 내가 하겠다는 선동렬(양동근 분)의 책임감 충만히 느껴지는 대사는 너무 매력적이다. 이 영화에 나오는 남자들은 참 매력있다. 이 시대 남성들이 찌질이 소리를 들으며 자기말도 제대로 못하고 사는 이 때에 여성들이 남자들에게 바라는 이상적인 모습이 충분히 들어있다. 대리만족이 된다는 거지. 비록 위생적이지 않을 것 같아도, 무식한 티가 팍팍 날지라도, 매를 버는 허당마초같은 남자라 할지라도 동료의 고통에 가슴아파하며 밀고나가자는 불도저의 박력을 보일 때 어떤 여자가 매력없어 할 것인가
잠깐, 사족.
여배우로서 우리나라에 남자배우들만 잔뜩 나오는 영화가 많이 나오는 것이 반갑지 않다. 전쟁영화, 스포츠영화, 건달(갱)영화, 형사영화 등 남자배우들만 떼거지로 나오는 영화들 뿐이다. 제발 여감독이 많이 나오던지 여작가들이 많이 배출되던지 아니면 남자감독들이 여자들 얘기좀 실컷 하던지 했으면 좋겠다. 실컷 해봐야 예쁘고 싱싱한 여자만 필요로 할 뿐이겠지만 우리나라 후배 여배우들을 위해서 꼭 개선되어야 할 과제이다.....ㅡ,.ㅡ
마지막으로 이 영화에서 정말 칭찬해주고 싶은 것이 있다. 그것은 미술 소품 의상 담당자들이다. 음료수 하나 컵 하나 반창고 하나에도 일일히 신경쓰고 애쓴 흔적이 보인다. 음악도 매우 큰 역할을 한 것 같다. 사람들의 감정을 잘 이끌어낼 것이라고 생각한다. 허나 신문사 쪽 역할들은 좀 아쉽다.
너무 당연해서 깜빡 잊을 뻔 했다.
조승우 양동근 정말 멋있는 배우들이다. 언제 함께 연기해볼 수 있는 기회가 있게 되기를 희망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