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대전 중문교회 장경동(張坰東·54) 목사는 설교 시간에 “모 부대에 초청되어 1600여 명의 장교와 병사 앞에서 강연을 했다. 웃음이 터질 때마다 숫자를 세던 군목(軍牧)이 50번에서 그만두었다고 하더라”라고 말했다. 계속 웃음이 터지니 더 이상 셀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강연을 할 때 가장 웃지 않는 부류는 교장들이라고 한다. 장 목사는 이들도 단 1분 만에 웃음을 터뜨리게 한다. 그러다 보니 개그맨보다 더 웃기는 목사, 스타강사 등의 수식어가 늘 따라다닌다.
장 목사는 개그프로그램을 비롯하여 토크쇼, TV 강연까지 각기 다른 27개의 TV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숙련된 방송인들도 넘나들기 힘든 영역을 망라하고 KBS <인간극장>을 통해 사는 모습까지 공개했다. 토크 프로그램 패널로 출연하여 5분씩 강의를 하다가 시청률이 오르자 1시간 강연을 맡아 평일 오전에 10%가 넘는 경이적인 시청률을 기록한 적도 있다. 원고도 없이 술술 요점만 강연하여 시간 내에 딱 끝내자 방송 관계자들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고 한다.
개그맨보다 더 웃기는 목사
장 목사의 말투는 개그맨들에게 패러디 대상이 되고 있다. KBS <개그콘서트>에서 “행복합니다!”를 외치는 개그맨 최효종씨는 “마디마디 끊어서 강조하는 특유의 말투는 장경동 목사를 흉내 낸 것이다. 예전에 장 목사가 <폭소클럽>에 출연했을 때의 말투와 몸짓을 익혀서 따라 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국엔 5만여 개의 교회에서 10만여 명의 목사가 목회를 하고 있다. <시사저널>에서 매년 발표하는 영향력 조사를 비롯하여 기독교 매체에서 실시한 영향력, 가장 설교를 듣고 싶은 목사 등의 조사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드는 사람은 대개 서울과 수도권의 대형교회 담임목사들이다. 지방 목회자 가운데 기독교 관련 설문조사에서 최상위권에 드는 이는 장경동 목사가 유일하다.
장 목사는 교회뿐만 아니라 군부대, 경찰, 학교, 회사, 백화점, 관공서, 부녀회 등지에서 섭외 0순위로 꼽는 인기강사이다. 국민적 인기를 누리는 장 목사는 인터뷰 내내 TV에서와 마찬가지로 얼굴 가득 웃음을 담고 재담을 곁들여 즐겁게 얘기했다.
대체 어떤 얘기를 하기에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은지 궁금했다.
“경찰들에게는 자부심을 갖도록 얘기하죠. 회사에 가면 사원들에게는 ‘회사에서 당신을 써주니 얼마나 고맙냐’, 사측에는 ‘직원들 고마운 걸 알아야 한다’고 말해 화합을 강조합니다. 학생들에게는 ‘지금이 얼마나 중요한 시기냐. 3년 어영부영하다가는 평생 고생한다’는 얘기를 하지요. 보편타당한 얘기로 공감대를 형성하기 때문에 좋아한다고 봐요. 저 사람 말이 맞다, 그런 생각이 드니까 인정하는 거겠죠.”
장 목사는 미리 원고를 준비하지만 현장에서 청중의 상황에 맞춰 내용을 바꾸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진맥을 하듯 공감대를 먼저 찾아요. 상황과 사람, 연령과 분위기에 따라 내용이 다 다르죠. 언제나 긍정적인 메시지를 전하려고 애씁니다. 평소 엄청나게 노력합니다. 베스트셀러는 거의 다 읽고 드라마와 개그 프로그램도 다 봅니다. 운동하면서 TV 보고 음악도 듣고 그러지요.”
설교할 때는 최근의 인기 드라마 스토리를 활용한다고 일러주었다.
“교인들은 연속극 얘기하는데 목사가 성경 얘기만 하면 공감대 형성이 안됩니다. 드라마 <동이>를 보면 임금이 동이한테 미쳐서 같이 도망가자고 합니다. 설교할 때 ‘하나님이 사람에 미치니까 하늘보좌 버리고 땅으로 오신 거다’라고 얘기합니다. 그냥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해서 이 땅에 왔다, 이렇게 말하는 것보다 <동이>의 사랑 얘기에 대입하면 공감이 빠르죠. <제빵왕 김탁구>는 우리가 지극히 옳다고 생각하는 것도 잘못된 경우가 많다는 걸 알려줍니다. 전인화가 아들 마준이한테 ‘내가 너를 위해 한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본인이 잘못된 걸 몰라요. ‘하나님이 안 계신다, 죽으면 끝이라는 건 잘못된 생각이다. 전인화가 아무리 항변해도 잘못된 얘기인 것처럼, 여러분이 아무리 부정해도 잘못된 거다’, 이런 식으로 인용을 하면 이해가 잘되죠.”
친근한 말투와 다양한 표정
장 목사는 그동안 27개의 TV 프로그램에 출연해 인기를 끌었다. |
구수한 충청도 말투를 구사하는 장 목사는 사실 전라북도 군산 출신이다. 대전과 군산이 같은 생활권인 데다 대전에서 26년째 목회를 하고 있으니 어느덧 대전 사람이 다 된 것이다. 대학원을 대전에서 다닌 인연으로 대전에 자리 잡게 되었다.
장 목사가 전 국민적으로 ‘뜨게’ 된 것은 케이블 TV의 힘이다. 케이블 채널이 많아지면서 리모컨을 계속 누르다가 종교에 관계없이 장 목사의 ‘재미있는 설교’를 듣게 된 사람이 많다. 장 목사의 방송 입문은 1990년에 라디오방송인 대전극동방송 전파를 타면서부터이다. 교인이 500명 정도 되었을 시점이었다.
“조용기 목사님, 김삼환 목사님 등 유명한 목사님들의 설교를 방송하는 시간대에 대전에서 목회하는 목사의 설교도 한 편 넣자는 의견에 따라 제 설교를 방송하게 되었답니다. 대전 극동방송의 청취자가 1000만명 정도 되는데 반응이 뜨거웠답니다.”
라디오로 유명세를 떨치자 10여 년 전 기독교TV 채널인 CTS에서 장경동 목사의 설교를 방송했고, 곧이어 큰 반향이 일었다. 수십 개의 케이블 채널 중에서 장 목사의 설교가 시청률 1위를 차지하는 일이 심심찮게 있었다.
장 목사는 설교를 하건 강연을 하건 마주앉아 있는 것처럼 친근한 말투와 다양한 표정으로 내용을 전한다. 설교하다가 유행가를 구성지게 부르기도 한다. 다소 요란하게 설교하는 이유를 장 목사는 이렇게 설명했다.
“목사님들은 교인들이 설교를 듣고 있는 줄로 착각하는데 사실 안 듣는 사람이 많아요. 사람들이 졸고 있는데 원고에 매달리면 안 되죠. 설교를 계속해서 따라가기가 어렵습니다. 설교는 가만히 있어도 귀에 팍팍 들어오게 해야 합니다.”
장 목사는 설교할 때 수시로 교인들에게 복창을 시킨다. 짧은 문구도 있지만 때로는 “머리 좋은 애가 노력까지 하면 1등, 머리는 안 좋아도 노력하면 2등, 머리 좋은 애가 노력 안 하면 3등, 머리 나쁜 애가 노력도 안 하면 4등” 같은 문구를 끊지 않고 끝까지 시키기도 한다.
“교인들의 표정을 읽어가면서 상황에 맞게 합니다. 딴생각 못 하게 하려는 거지요. 우리 교인들은 이골이 나서 긴 문장도 잘 따라 합니다. 제 설교는 드라마에서 뮤지컬로, 입체 오케스트라로 마구 바뀝니다. 나무가 아니라 숲이에요. 5분에 한 번씩 웃기는 영화가 재미있잖아요. 표정, 내용, 노래, 모션으로 설교에서 못 빠져나가게 하는 거죠.”
설교도 미리 작성한 원고에 얽매이지 않고 그날의 분위기에 맞게 진행한다.
“설교를 하다가 갑자기 노래가 생각나는 경우가 있어요. 얼굴은 웃고 있는데 가슴은 운다, 그런 상황이면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 이런 노래를 부르는 거죠. 그걸 어떻게 미리 준비하겠어요. 현장에서 생각나는 거지.”
가난한 시절에 얻은 교훈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강사요 목사지만 어릴 때는 내성적이어서 사람들 앞에서 말도 잘 못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고등학교 1학년 때 목사가 되기로 결심한다. 부끄러워서 여자한테 말을 못 붙일 정도였던 그는 유년주일학교 교사강습회에 참석했다가 노래자랑에 나가게 되었다. 막상 대회가 시작되고 보니 종목이 노래가 아닌 강연이었다.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망설이다가 목사가 되기로 했는데 남들 앞에서 말을 못하면 어쩌나, 그런 생각에서 용기를 냈는데 완전히 뒤집어졌어요. 내가 연설하는 데 재주가 있나 보다 하는 생각에 기분이 좋았지요. 끼만 가지고는 안되니까 내용을 채우자는 결심에서 교회를 돌아다니면서 일주일에 14번씩 예배를 드렸어요. 설교를 받아 적었는데 기왕이면 유명 목사님들 설교도 적어보자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유명하다고 소문난 목사님 30명의 설교 테이프를 구해 들으면서 일일이 적었다.
“한 5000편쯤 듣고 적었더니 내 안에 30명의 목사님이 들어 있는 거예요. 조용기 목사님 흉내, 한경직 목사님 흉내를 내면서 설교를 따라 하고 그랬어요. 설교를 듣고 적는 일은 지금도 계속하고 있습니다.”
장경동 목사의 부인이면서 대전 중문교회 수석부목사인 양선숙(梁善淑·54) 목사가 부연설명을 했다.
“고등학교 때 같은 교회에 다녔으니 제가 잘 알죠. 그때부터 둘이 책을 읽고 좋은 구절이 있으면 노트에 적었어요. 좋은 성경구절도 적어서 같이 외우곤 했죠. 고등학교 졸업할 때쯤에 우리가 기록한 노트가 몇 박스가 될 정도였어요.”
동갑내기인 두 사람은 교회에 다니지 않는 부모한테 핍박을 당한다는 공통점 때문에 친해졌다.
“저는 남자니까 그나마 견딜 수 있었지만 집사람은 머리채 잡혀 끌려가고 그랬어요. 한동네서 자랐고 부모들끼리도 아는 사이예요. 그래서 위로를 해줬는데 둘이 사귄다고 소문이 난 거예요. 남들 안 보는 데서 위로해 주다가 사귀게 되었죠.”
두 사람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함께 신학대학에 진학했다. 장 목사가 군대를 갔다와서 신학교 3학년 때인 24세 때 결혼했다. 결혼하면서 부모로부터 독립을 해야겠다고 결심하고 일절 지원을 받지 않았다. 주말에만 근무하는 실습전도사로 일할 때인 1980년의 월급은 6만원에 불과했다. 그중 반은 월세로 내야 했다.
“집안이 정미소를 했으니 어려움을 모르고 자랐는데 그 돈으로 살려니 힘들었죠. 그때 그런 고생을 안 했으면 지금 여기까지 못 왔을 겁니다. 당시에는 없으면 없는 대로 즐겁게 살았습니다.”
그가 옛일을 즐겁게 회상할 수 있는 건 아내가 사정을 다 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장 목사는 요즘 들어 아내로부터 당시 얘기를 조금씩 들으며 감동을 받는다고 한다.
“공무원 집에서 사글세를 살았는데 아내가 주인집에서 김장을 할 때 일부러 옆에서 거들어줬대요. 다 다듬고 나서 ‘이거 제가 갖다 버릴게요’ 하고 갖고 와 그걸로 겉절이도 만들고 시래깃국도 끓이고 했다는 거예요. 그런데 주인아줌마가 ‘그거 뭐하게. 돼지 갖다주려고?’ 그러더래요. 그래서 울었다는 겁니다.”
그 얘기를 듣고 마음은 아팠지만 거기서 삶의 교훈을 얻었다고 한다.
“그분은 생각 없이 한 얘기를 집사람은 몇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 잊지 못하고 있잖아요. 내가 생각 없이 하는 말이 상대편의 가슴에 못을 박을 수 있다는 것과 상대가 의도 없이 한 말을 굳이 나 혼자 기억하고 상처받을 필요가 없다는 거죠.”
양선숙 목사는 당시 남이 버린 김치를 밤중에 몰래 가져와서 깨끗이 씻은 다음 다시 양념을 해서 상에 내놓을 정도로 어려운 살림이었다고 일러주었다.
결혼 이후 석박사 과정과 미국에 가서 6개월 연수받은 기간까지 합쳐 11년간 공부를 하면서 어려움이 많았다고 한다.
“아내한테 고마운 건 얘기를 해야 할 때와 안 해야 할 때를 구별해 줬다는 겁니다. 당시 제가 그 사정을 알았더라면 공부고 뭐고 다 때려치우고 돈 벌러 나갔겠죠. 먹고살 만하니까 추억이지 힘들 때 얘기했으면 비참했을 겁니다.”
아내의 도움으로 교회 부흥
부인 양선숙 목사. |
1984년에 창립한 중문교회의 인원은 현재 등록인원 1만여 명에 장년 출석인원이 6000여 명에 이른다. 대전 시내 교회 빅5 가운데 하나이다. 장 목사는 국내외 집회로 일주일에 이틀만 대전에서 보낼 뿐 일 년 내내 객지 생활을 한다. 교회 성장은 차근차근 이루어졌다고 한다.
“방송에서 인기를 끌어 어느 날 갑자기 사람이 확 몰려왔을 거라고 생각하시는데 그렇지 않아요. 충청도 분들은 좋아도 좋은 티를 내지 않고 싫어도 싫은 표를 내지 않아요. 대전 인구가 150만명이어서 폭발적인 성장은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잘 움직이지 않는 사람들 사이에서 이만큼이라도 한 게 대단하죠. 이 정도 규모면 서울에서도 작지 않은 편입니다.”
서울에서도 인기 많은 장 목사를 초빙하려는 교회들이 있었다고 한다.
“저는 내 욕심을 윗분(하나님)한테 관철시키려는 스타일이 아니라 윗분 눈치를 보는 스타일이에요. 윗분 뜻대로 하지 않고 자기 뜻을 자꾸 윗분에게 관철시키려다 보니 오늘날 한국 교계가 복잡해졌습니다. 주님 뜻대로 움직이는 사람이 귀해진 시대입니다. 하나님이 가라는 사인을 안 하시는데 어기고 가면 결과가 별로 좋지 않아요.”
교회를 많이 비우는데도 꾸준히 성장한 건 아내의 덕이라고 했다.
“집사람은 신학대학을 졸업한 뒤 다른 교회에서 전도사로 일하다가 저랑 결혼했어요. 그러니 처음부터 저를 많이 도왔죠. 제가 신학교 다닐 때 아내가 낮에 교인들 집을 방문합니다. 학교 끝나고 와서 제가 열매를 거둔 거죠. 아내가 웬만한 목사보다 훨씬 나았어요.”
장 목사는 아내를 대학원에 진학시켜 2005년에 목사안수를 받게 했다.
“예전에 미국 부흥회를 갔는데 여자 목사님이 몇천 명 앞에서 설교를 해요. 앞으로 우리나라도 여자가 큰 목회를 할 거 같다, 여자를 키워야겠다, 생각해서 집사람한테 대학원에 가라고 권했어요. 공부 마친 뒤에 따로 목회를 하라고 교인 20명과 함께 내보냈어요. 집사람이 혼자서 목회를 해보더니 ‘장경동 목사의 아내로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단독목회를 해보니까 목회가 얼마나 어려운지 알겠더라. 목사 사모로 사는 것과 목사로 뛰는 건 차원이 다르더라’는 얘기를 했어요. 1년이 채 안되어서 집사람이 시작한 교회가 300명으로 불어났어요.”
여기저기서 “부부가 다 장악한다”는 얘기가 나오는 바람에 장 목사는 아내를 중문교회로 초빙했다. 부부가 한 교회에서 목사라는 대등한 위치에서 목회하는 건 흔치 않은 일이다.
“조용기 목사님의 장모인 최자실 목사님이 없었다면 여의도순복음교회는 저렇게 부흥하지 못했을 겁니다. 저도 아내가 없었다면 교회가 커지지 않았을 겁니다. 유명한 부흥강사들이 유명세에 비해 교회가 작은 건 교회를 추스르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한 번에 두 가지를 다 하기 어려워요. 그런 면에서 아내한테 고맙죠. 집사람이 전도국장을 맡아서 지금도 쉴 새 없이 전도를 하고 있습니다.”
네 박자 설교
장 목사는 설교 중 교인들이 졸지 않도록 수시로 복창을 시킨다. |
장경동 목사는 매일 설교를 3~7번 한다고 일러주었다. 사람들이 설교 잘하는 비결을 물을 때면 “밥을 많이 해본 사람이 밥을 잘하듯 설교도 많이 하면 잘하게 된다”고 대답한다. 그가 다른 교회에서 설교하거나 강의하는 것도 다 기독교 TV에 방영된다. 그래서 같은 내용의 설교를 할 수가 없다고 한다.
“한 사람이 특강을 30회 이상 하기 힘들다고 하더군요. 저는 지금까지 TV에서 특강을 1000회 이상 한 것 같아요.”
장 목사는 대입하는 내용은 다르지만 설교 때마다 두 가지를 강조한다고 일러주었다.
“본질과 현상에 대해 늘 얘기합니다. 세상의 모든 구조는 본질과 현상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이 현상에 치중하면 본질을 잊어버리고, 본질을 잊어버리면 현상은 시듭니다.”
한국교회의 쇠퇴도 본질과 현상의 딜레마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교회를 잘 짓는 것은 현상입니다. 허름한 곳에서 부흥했을 때는 본질 속에서 부흥한 것이지만 아주 잘 지은 교회는 현상으로 부흥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작고 어려울 때는 열심히 하지만 잘 지은 큰 교회로 인해 사람이 저절로 몰리면 나태해질 수밖에 없죠. 전도와 기도를 안 해도 교회에 사람이 몰리면 겉은 멀쩡해도 속은 죽어가는 거죠. 유럽교회가 그래서 망했습니다. 200년, 300년 걸려서 지은 교회를 지금 팔아먹고 있어요. 한국교회는 본질에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다른 한 가지는 네 박자론이다. 네 박자로 모든 것을 얘기할 수 있다고 한다.
“네 박자로 구별해서 판단을 잘하라는 거죠. 예쁜 데다 성격이 맞으면 1등,예쁘진 않지만 성격이 맞으면 2등, 예쁘지만 성격이 안 맞으면 3등, 예쁘지도 않고 성격도 안 맞으면 4등입니다. 안 예뻐도 성격이 맞을 때 결혼해야 하는데 예쁘지만 성격이 안 맞는 3등하고 결혼하니 문제가 생기는 겁니다. 네 박자만 알면 실수를 안 합니다.”
매일 몇 편의 설교를 하기 위해서는 시도 때도 없이 준비를 해야 한다.
“언제 준비하고 언제 뭐하고 이런 게 없어요. 그냥 시간 날 때 준비하고 시간 날 때 운동하지 정해놓고 할 수가 없어요. 언제가 가장 힘들었느냐고 묻는데 지금이 가장 힘들어요. 하지만 바쁘고 힘든 걸 모르겠어요. 마취된 것 같아요. 살인적인 스케줄이라고 하는데 별로 피곤하지 않아요. 체력을 비축하기 위해 시간 날 때마다 축구를 합니다.”
장 목사는 전국단위의 축구대회가 3개나 열리는 7월과 8월이 가장 피곤하다고 한다. 300여 개 교회가 출전하여 16개 팀이 본선에 진출하는데 장 목사는 대회 때 직접 선수로 나선다.
“제 나이 또래 목사님 가운데 선수로 활약하는 분은 별로 없어요. 축구가 중요한 게 아니라 체력이 있어야 스케줄을 소화합니다. 우승하려면 하루에 5경기를 뛰어야 하는데 그걸 다 뛰어 우승하고 저녁에 부흥회에 갑니다.”
휴식이나 재충전 같은 건 아예 생각도 못한다는데 그럼에도 번아웃(burnout)된 적이 없다고 한다.
“쓰기만 하고 입력을 안 하니까 번아웃되는 겁니다. 입력을 안 하면 쓸 수가 없어요. 계속 건강식을 하면서 체력보완하고, 설교 녹화해서 쓰면서 듣고, 끊임없이 책 읽으면서 입력과 출력을 동시에 해야 지치지 않습니다.”
아내 양 목사는 남편이 한시도 손에서 책을 놓지 않는다고 일러주었다.
“우리 부부는 가끔 만나지만 정답게 얘기할 시간이 없어요. 남편은 일어나자마자 책 보고 자기 전에 책 보고 화장실에서도 책 보고 얘기 좀 하다 보면 책 보고, 그래서 제가 좀 불만입니다.”
내 기쁨을 남하고 나누는 게 목사의 임무
지난해까지 공중파 방송에 출연했던 장 목사를 요즘 들어 잘 볼 수가 없다. 한 인터넷 매체가 예전에 미국교회 부흥회 때 장 목사가 한 발언을 종교편향이라고 보도한 뒤 타종교에서 항의한 일이 있고부터이다.
“공식석상에서 한 얘기라면 결례가 되겠지만 목사가 교인 앞에서 성경에 근거하여 한 얘기를 비판하는 건 영어단어를 독일어사전에서 찾는 격이죠. 제가 잘못해서 싫어하면 그분이 저의 스승이지만, 제가 잘못한 게 없는데 싫어한다면 그분이 생각을 해봐야죠. 공중파에 나가든 안 나가든 크게 개의치 않아요. 다만 많은 분께 기쁨과 활력이 되는 말씀을 전할 기회가 없다는 점은 좀 아쉽죠.”
여전히 전국 교회와 각종 단체의 초청을 받고 전 세계를 다니며 설교와 강연을 하는 장경동 목사는 지난해 ‘푸른마음 캠페인 정지선 지키기’ 운동을 벌여 좋은 효과를 거두었다. 요즘 좀 더 확대된 ‘장사모 운동’(장경동 목사와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의 모임)을 시작했는데 곧 발대식을 할 예정이라고 한다.
“제가 1년에 한 명에게 말을 전하면 2명이 알게 되겠죠. 2년째는 4명이 됩니다. 3년째는 8명, 이런 식으로 배가되면 27년 만에 6710만명에게 말이 전달된답니다. 발 없는 말이 천 리 간다고 하는데 실제로 27단계만 지나면 대한민국에 다 퍼집니다. 34년 지나면 85억명, 전 세계인이 다 알게 되죠. 장사모를 조직해서 ‘27단계 퍼뜨리기 운동’을 하려는 겁니다. 얼마 안됐는데 지금 1만명이 가입했어요. 100만명을 모으려고 합니다. 평생회비가 1만원이니까 100만명이면 100억원입니다. 이 돈으로 시골의 가난한 교회와 힘든 사람을 도우려고 합니다.”
장사모(www.jch.or.kr)의 7대 실천사항은 ‘1.우리는 자기가 머물던 자리를 아름답게 정리하며 산다. 2.우리는 교통법규를 준수하고 생명선을 꼭 지키며 산다. 3.우리는 나눔에서 보람의 의미를 찾는 아름다운 삶을 산다. 4.우리는 나와 남, 사회와 국가를 더 많이 사랑하며 산다. 5.우리는 한 가지 운동으로 자신의 건강을 지키며 산다. 6.우리는 한 가지 취미생활로 건전한 여가를 즐기며 산다. 7.우리는 민족을 계몽하는 민족의 리더로 산다’이다.
10여 년 전에 지은 교회 건물은 오래전에 수용 한계를 넘었다. 현재 중문교회는 신축을 위해 땅을 알아보는 중이다.
“교회를 잘 지어놓으면 한 주에 100명, 200명씩 등록하는 경우가 많아요. 전국을 다니면서 보니 교회당 잘 지어서 부흥하는 교회는 3년 지나면 단물이 빠지더군요. 그러면 교회당은 멀쩡한데 교인들은 골다공증 걸린 것처럼 허전해집니다. 우리 교회도 잘 지으면 사람들이 더 많이 오겠죠. 교회를 신축하고도 본질과 현상을 가다듬어 균형 잡힌 목회를 할 예정입니다. 잘 지어놓고 비싼 음향장비 지키려고 문을 잠그는 교회가 있는데 교회 짓는 목적을 상실하지 말아야죠. 교회는 늘 열어놓아 기도하는 집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신학생을 위해 설교를 잘하는 비법을 공개해 달라고 부탁했다.
“저를 보고 웃긴다는 분들이 많은데 저는 웃기는 게 아니라 제 기쁨을 같이 나누는 겁니다. 자신이 괴로운데 남을 웃기는 건 개그맨이고, 내 기쁨을 남하고 나누는 건 목사의 임무입니다. 삶은 종합예술입니다. 설교를 잘하려면 말씀과 삶을 일치시키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설교는 삶의 전달이지 말의 전달이 아닙니다. 본인의 삶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좋은 설교가 나올 수 없습니다.”
머리카락이 좀 없는 게 콤플렉스라며 껄껄 웃는 장경동 목사에게 힘든 사람들을 위한 조언을 부탁했다.
“너무 높이 봐서 어려운 거지 옛날과 비교하면 얼마나 좋아졌습니까. 파도 치듯 굴곡 속에서 상향이 있는 것이니 잠시 안된다고 실망하지 마십시오. 우리나라는 부정적인 힘이 너무 강한데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바라봐야 좋은 일이 생깁니다.⊙
출처: https://monthly.chosun.com/client/news/viw.asp?nNewsNumb=201010100028&ctcd=&cpage=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