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까페에 올릴 다음 글에 대한)지난 자료를 찾다가,
생각지도 않은 몇 개의 드로잉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저 컴퓨터거나 '외장 하드' '자료'에 있는 이미지를 이용하고 있었는데, 어쩐지 그 시절(1995-6년) 스크랩을 찾아보고 싶어(그것도 작은 종이로만 돼 있는) 뒤적이다가 발견된 이 드로잉 한 장을 보면서,
'팔려갈 자화상'.A4. 펜 잉크, 색연필. 1995.7
그랬던가? 하다가,
그랬었구나! 하고, 마치 새로 알게 된 일이나 된 것처럼, 잘못된(아니, 잊혀졌던) 제 인생의 기억 하나를 수정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만약 이 드로잉이 없었다면, 이런 사실을 잊은 채(그저 가지고 있던 '잘못된 기억' 하나를 끝까지 그대로 믿고) 이 세상을 떠났을 수도 있었다는 거지요.
물론, 이 사실이 제 인생을 바꿀만 한 그리 중요하거나 대단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정확하게 알고 넘어가서 나쁠 건 없을 것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여기에 소개하기로 했습니다.
어차피 이것도 제 '그림 이야기'인데다, 하필이면 때마침 요즘 그런 얘기를 이 까페에 올리고 있던 참이니까요.
(더구나 이 얘기는 그 타이밍도 참 절묘하게 이 시점하고 들어맞아서, 더더욱 소개하고 넘어가고 싶습니다.)
*************************************************************************************
그러니까 이 드로잉은,
'팔려갈 자화상' 이란 제목처럼, 그 당시에, 곧(1995년 7월) 팔려가기로 돼 있었던가 본데,
물론 이 앞글에도 나오듯, '독일인 사업가'가 이 '자화상'을 사가려고 했다는 말이다.
바로 그 얘기다.
그리고 바로 그 자화상이다.(아래)
'자화상'.10호. 유화. 1993
내 그림 중에서 제일 많은 게 바로 '자화상'일 정도로 나에겐 자화상이 많다.
물론, 나는 지금도(2019) 거의 날마다 '자화상 드로잉'을 할 정도로 생활화 된 그림이 자화상인 화가라서, 바르셀로나 시절에 그렸던 이 자화상 역시 이상할 것 하나 없는 그림이다.
얘기 나온 김에 여기서 잠깐 내 바르셀로나 시절의 대표적인 자화상 몇 점을 소개하기로 한다.
'스페인 첫 자화상'.A4. 파스텔. 1990
'거울 앞에서'.A4. 연필 색연필. 1990
'자화상 그리는 화가'.10호. 유화. 1990'자화상'.B4. 수채. 1990
'자화상'.A3. 종이 오림. 1991
'자화상'.10호. 유화. 1991
내가 여기(위)에 이런 자화상을 소개하는 이유는,
'나'라는 사람을 그린 똑같은 자화상이라지만, 뭔가 새롭고도 다양한 표현을 하려고 연구 시도한 흔적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예를 들자면, '단순화'를 위한 노력, 종이처럼 표현하려는 시도, 이목구비의 생략, 그러다가 얼굴 윤곽마저 생략한 아래 자화상까지......
스페인에서 돌아와(1994년) 그 해 늦가을 의욕적으로 '개인전을 열었다.
당시의 전시장
당시의 카탈로그
그 전시는 실패로 끝닜고,
그 전시 기간 중 그 독일인 사업가가 전시에 왔었다는 걸 나는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본인은 나에게 명함도 줬다고 했고, 지금도 가지고 있는데)
그리고 몇 달 뒤인 다음 해(1995년 여름), 그 독일인이 나에게 연락을 취해 왔고,
내 항동에 있던 '그린 빌라 작업실'로 찾아왔다.
그 분이 당시에 나에게 했던 말,
본인이 인사동을 둘러보는데 내 전시 포스터가 눈에 띄었고,
그 포스터의 그림이 자신의 눈에는 매우 독특해서, 그 호기심으로 전시에 가 보았는데, 작품 들 중 무엇보다도 '자화상' 한 점이 맘에 들었다며,
그 '자화상'을 사가고 싶다고.
하필이면 그 자화상을......
***********************************************************************************
그런데 그 포스터는,
내가 바르셀로나에 살기 시작하면서 얼마 뒤(초창기)에 '바르셀로나' 시내의 '가우디'의 '구엘 공원'에 가서 엄청난 감동을 받고 돌아와서 그날 밤에 그렸던 드로잉 '가우디와의 만난'을 바탕으로,
나중에 유화로 옮긴 작품으로 제작된 것이었다.
'가우디와의 만남'.A4. 수채, 펜. 1990.5.31
'가우디와의 만남'.20호. 유화. 1990.
************************************************************************************
그런데 사실 나는 그 자화상을 팔고 싶지 않았다. 너무 아까워서(솔직히).
그렇지만 내 현실은, 스페인에서 돌아와 자리도 잡지 못한 상태에서 했던 전시에서 빚만 떠안게 된상황이라 어떻게든 돈을 마련은 해야 하는데, 그 어떤 방법도 없던 차라,
일단,
다른 그림은 몰라도 이 자화상만큼은 팔고 싶지 않다. 는 의사를 분명히 했었다.
그런데도, 돈이 궁하다 보니 속으론,
그렇게라도 해서 빚을 갚아야 하지 않을까? 하고 망설였던 것 같다. (오늘 발견된 드로잉으로 보니)
일단 그런 말이 있고 난 뒤 나는 갈등에 젖었고, 만약의 경우엔 그 자화상을 팔아야 할 거라는 짐작(각오?)은 했던 것 같다.
그런데 어쨌거나 두세 차례 그 독일인과 교류가 있었고, 그 와중에도 나는 내 뜻을 굽히지 않았던 것 같은데,
어쨌거나 그 부부는 내 그림을 심사숙고하게 관찰한 다음, 열 점 넘는 자기들 나름대로의 리스트를 작성해서 사가기로 했다.
(지금 정확히 그 액수를 기억할 수는 없지만, 원래 내가 그림을 싸게 팔지 않는 사람이라 그 총액이 적지 않은 돈이었다.)
다만, 그 독일인도 화가의 속성을 잘 아는 듯,
그 그림의 작가(내)가 아끼는 그림을 극구 빼앗다시피 사갈 수는 없다며, 아쉽긴 하지만,
그 자화상 대신, 그 전시에 역시 출품했던 다른 자화상을 사가기로 했다는 것이었다. (아래)
그래서 나도 그러기로 했고, 그 분은 아래 자화상을 사갔다.
'자화상'.20호. 안료 유화. 1995
그리고 내가 늘 그렇듯, 그 당시에도 위 자화상을 또 다른 기법으로의 '연작(시리즈)'도 그렸는데 참고로 올려본다. (아래)
'자화상. 60호. 캔버스에 먹물, 유화. 1995
오늘 찾아낸 이 조그만 드로잉 하나로,
나는 여태까지(그 동안) 그 '자화상'을 끝내 팔지 않았다는 것만을 기억하고 있었을 뿐,
그 당시 '아끼는 그림마저 팔아야만 하는 고통'은 잊고 있었다는 사실에, 가슴이 뭉클했던 건 물론 감회가 새롭기만 했다.
첫댓글 항동의 그 주위는 많이 변했지만 그 빌라마을은 아직도 건재 하답니다.
아,
그런가요?
저도 한 번쯤은 다시 가보고 싶은 곳이랍니다.
예, 그린빌라는 여전하지만 그 근방은 완전 달라지고 있답니다 우선 저수지(?) 있던 곳에 수목원이 생겼고
그 주위로 뺑~ 둘러 아파트 공사 중입니다... 그나마 아직까지는 산도 있고해서 볼만 한데 앞으로 어찌될지는..
'도이'님은 어떻게 그리 잘 아시나요?
그 근처에 사십니까, 아니면 빌라에 사시나요?
그런데 그린빌라에 작업실이 있으셨군요~
그리고 저도 안파셨다는 자화상이 젤 마음에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