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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사무엘상 1장1~8절
제목 : 엘가나의 두 아내
사무엘상하는 원래 히브리 성경에서는 한권의 책으로 되어있었습니다.
누가 기록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아마도
갓이나 나단의 회고록에서 발췌하여 사무엘이 기록하였을 것으로 봅니다.
사무엘상은 이스라엘 백성을 대상으로 기록하였습니다.
본서는 이스라엘 왕정의 설립과 이에 대한 사무엘의 역할에 관한 기사를 서술한 것인데, 이것은 왕정 제도의 수립 과정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런 통치 제도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라는 점을 지적해 주는 역할도 합니다.
사무엘상의 핵심어는 “시기”와 “마음”입니다.
사무엘상은 시기심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이웃 나라들에게 왕이 있는 것을 보고 그것을 시기하였습니다.
또한 사울은 다윗이 승리하는 것을 시기하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을 감찰하시기 때문에,
인간들이 생각하는 방식대로 하나님의 사람을 선택하시지 않습니다.
사무엘상 전체의 내용을 분해하면
1:1~7:17절은 사무엘의 생애와 사역에 대하여,
8:1~15:35절은 사울 왕의 통치에 대하여,
16:1~31:13절은 사울 왕정의 몰락과 다윗 왕정의 수립에 대하여 말씀하십니다.
오늘 말씀은 “엘가나의 두 아내”에 대하여 말씀을 하십니다.
1. 엘가나의 족보(1절)
“에브라임 산지 라마다임소빔에 에브라임 사람 엘가나라 하는 사람이 있었으니 그는 여로함의 아들이요 엘리후의 손자요 도후의 증손지요 숩의 현손이더라”
“하나님이 창조하셨다”는 뜻의 엘가나는 사무엘의 아버지입니다.
엘가나는 레위 자손중 가장 영예로운 가문인 고핫 자손이었습니다.
엘가나는 숩의 현손이요-도후의 증손이요-엘리후의 손자요-여로함의 아들입니다.
엘가나는 에브라임 산지 라마다임소빔 사람입니다.
'에브라임 산지' (the hill couny of Ephraim)는 팔레스틴 중안부에 위치한 구릉 지대로서, 이곳은 팔레스틴 남부에 위치한 유대 산지보다 훨씬 비옥하였으며, 특히 이곳의 서부지역은 더욱 그러하였습니다.
아울러 이곳은 가나안 정복 전쟁이 개시된 이후 이스라엘에 의해,
제일 먼저 점령된 지역이었습니다.
한편 이지역이 '에브라임 지파가 그 지역을 기업으로 분배받았다(수 17:15).
그러나 에브라임 산지에 에브라임 지파만이 거주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에브라임 산지의 남쪽은 베냐민 지파에게 기업으로 분배되엇기 때문에,
베냐민 지파 사람들도 역시 거주하고 있었습니다(수 18:11).
'라마다임소빔'은 에브라임 산지 중 베냐민 지파 거주 지역에 위치하였습니다.
이곳은 예루살렘 북서쪽 약 8km 지점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라마다임소빔은 '고지'(高地)라는 이름의 의미를 갖고 있으며,
'라마'와 동일한 지역입니다<19절>.
한편 '라마'(Ramah)는 사무엘이 태어난 고향이요,
그가 활동한 사역의 중심지이며, 또한 후일 사무엘이 죽어 장사된 곳으로,
사무엘 시대에 주요한위치를 점하는 장소입니다.
그런데 본절에서 특별히 '라마다임소빔' 이란 원지명을 사용한 이유는,
팔레스틴 지역에는 많은 '라마'(언덕 마을, hill town)가 있기 때문에,
그것들과 사무엘의 고향 '라마'와 서로 구별하기 위해서입니다.
한편 이 지역은 후일 신약시대에 들어와서는,
부자 요셉의 고향과 동일한 '아리마대'로 불리워졌습니다(요 19:38)
'엘가나'(Elkanah)는 본문의 족보와 역대기의 족보(대상 6:1, 27, 28)를
종합해 볼 때, 레위 지파의 후예입니다.
그런데 본문에서 그를 '에브라임 사람' 이라 칭한 까닭은,
그가 에브라임 지파의 후손이어서가 아니라,
다만 그가 그 지역에 거주하였기 때문입니다.
사실 레위 지파는 타 지파처럼 일정한 기업을 받지 못하고,
이스라엘 전국에 흩어져 살면서 그들의 종교 생활을 지도해야만 하였습니다(민 35:1-8 주석참조).
또한 '라마'는 여호수아에 의해 정식으로 지정된 레위인의 성읍도 아니었습니다(수 21:17).
따라서 사무엘의 조상 '숩'(Zuph)은 자신의 조상에게 원래 할당된 지역을 떠나 바로 이곳으로 들어와 살게 된 것입니다(삿 17:7, 8).
여로함...엘리후...도후...숩 - 이들은 사무엘의 부친 엘가나 가문의 조상들입니다.
그런데 이들 조상들의 이름이 역대기의 족보에서는 약간 달리 나타나고 있습니다.
즉 대상 6:26, 27에서는 '여로함-엘리압-나핫-소배'란 이름으로,
그리고 대상6:34, 35에서는 '여로함-엘리엘-도아-숩이란 이름으로 각기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아마도 이러한 변화는
(1) 독법(讀法)의 다양성과
(2) 의도적인 개명(改名), 그리고
(3) 시간의 흐름에 따른 철자의 변이(變移)때문일 것입니다.
여하튼 이와 같은 족보의 소개는 사무엘서의 역사성을 확증해 주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이와 같이 성경은 대체로 어떤 주요 사건이나 인물을 소개할 때 그 사건이나 인물의 역사성(歷使性)부터 증명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2. 엘가나의 두 아내(2절)
“그에게는 두 아내가 있었으니 한 사람의 이름은 한나요 한 사람의 이름은 브닌나라 브닌나에게는 자식이 있고 한나에게는 자식이 없었더라”
두 아내가 있으니 - 어쩌면 후사를 얻기 위함 일런지 모르겠지만,
당시 경건했던 엘가나까지 중혼(重婚)의 관습에 쉽게 물들었다는 사실은 사사 시대가 얼마나 영적· 도덕적으로 타락하고 암울했던 시기였는지를 명백히 보여줍니다<창 4:16-24 강해,일부다처제>.
한편 신명기 21:15-17의 규례는 마치 일부다처제(一夫多妻制)를 용인하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그러나 신명기의 규레는 단지 당시의 시대적 상황 속에서 아내를 여럿 둠으로써 부득이하게 야기될 수 있는 경우를 대비케 하는 성경적 해결책일 뿐입니다<강해, 축첩과 그에 대한 성경적 견해>.
브닌나는 자식이 있고 - '브닌나'(Peninnah)는 '진주','보석','산호' 등의 뜻을 지닌 이름입니다.
이처럼 히브리 여성의 이름은 보석이나 꽃, 또는 동물의 이름과 관련된 것이 많이 나타납니다.
한편 여기서 '자식'(옐라딤)은 '어린이' 혹은 '아들'의 복수형으로서,
이는 브닌나가 최소한 2명 이상의 자녀가 있었음을 암시합니다.
한나는 무자하더라 - 한나(Hannah)는 '사랑스러움' 또는 '은혜스러움'이란 의미를 지닌 이름으로, 히브리 사회에서 흔히 발견되는 이름입니다.
그러나 특별히 여기서 이 이름은 그녀가 자식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남편의 많은 사랑을 받았고(5절), 또한 후일 하나님의 은혜까지도 많이 입었다는(2:21)실제적 사실과 잘 부합되는 이름입니다.
그러나 초기에 그녀는 아들을 낳지 못함으로 인해 많은 번민과 소외감에 힙싸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특히 이스라엘 사회에서는 자녀의 출산을 하나님의 은총을 입은 증거로 삼은 반면(신 7:13 , 14 ; 시 107:13),
무자(無子)는 하나님의 징계나 저주의 결과로 간주했기 때문입니다(창 20:18).
3. 매년 성소에 올라가 제사를 드림(3절)
“이 사람이 매년 자기 성읍에서 나와서 실로에 올라가서 만군의 여호와께 예배하며 제사를 드렸는데 엘리의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여호와의 제사장으로 거기에 있었더라”
경건한 레위인 엘가나는, 히브리 모든 남자는 매년 정한 기간에 중앙 성소로 올라가 제사를 드려야 한다는 율법규정(출 34:23 ; 신12:5)에 따라 이 의무를 이행 하였습니다.
물론 성경은 매년 세 차례씩 올라가야 한다고 말합니다<출 23:17>.
그러나 극히 타락했던 사사 시대의 정황 속에서 엘가나가 이정도 나마 신앙적 열심을 갖고 있었다는 것은 결코 가볍게 평가될 수 없는 것입니다.
실로 - 이곳은 당시 법규가 보관된 곳,
곧 성소(Tabernacle)가 있는 지역이었습니다.
법궤(언약궤)는 처음에 광야를 거쳐 가나안 땅 '길갈(Gilgal,수 4:19 주석참조)에 보관되어 있었으나,
가나안 정복 후 땅 분배할 동안에 '실로'(Shiloh, 수 18:1 주석 참조)로 옮겨진 후 이때까지 이곳 실로에 보관되어 있었습니다.
그런 이유로 예루살렘 북쪽 약 32Km 지점에 위치한 '실로'는 여호수아 시대 말기로부터 사사 시대 및 사무엘 시대 초기까지 이스라엘의 종교적 중심지요. 정치적 주 무대이며, 군사적 요해지(要害地)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엘리 시대 말기에 블레셋 족속에게 법궤를 빼앗기고 실로가 파괴됨으로 말미암아 실로의 영광은 역사의 무대 위에서 사라지고 말았습니다(5:1 ; 시78:60-64).
만군의 여호와(여호와 체바오트).
이 명칭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jehovah God of Hosts)의 축약어로서,
구약 중 여기서 최초로 나오는 단어입니다.
이 명칭은 초기에는 이스라엘의 군대를 지휘하시는 하나님(삼상17:45),
후에는 하늘의 천군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왕상 22:19)의 뜻으로 사용되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이 명칭은 하나님께서는 하늘과 지상에 만물을 아울어 통치하는 분이심을 암시해 줍니다.
따라서 여기 이 명칭은 참된 경배와 제사의 대상이 되시는 분에게 적절히 적용된 명칭입니다.
제사를 드렸는데(리즈보아흐). 제물과 감사의 현물, 그리고 기도가 포함된 광의적 의미의 제사를 말합니다.
그러나 특히 여기서는 엘가나가 제사 완료후 그 제물을 가족들에게 나눠주었고(4절) 또 그들이 그것을 함께 먹었다는 점(9절)에서 볼 때,
여기서 엘가나가 드린 제사는 제사장의 몫 이외의 나머지 부분을 자신과 가족 또는 공동체 전체가 일정한 장소, 곳 성막의 뜰이나 성막의 별채<1:18>에서 함께 나누어 먹을 수 있었던 '화목제'(和睦除,Peace-offering)를 가리키는 듯 합니다(레 7:14, 30-36 ; 민 6:20 ; 신 18:1).
'엘리'는 제사장 가문 중 유력한 비느하스 가문의 후손이 아니고,
이다말(민 4:28, 33)의 후손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혼란한 사사 시대 말기에 대제사장직과
사사직을 동시에 갖고 있었음을 볼 때,
그는 유명하면서도 정치적 수완이 뛰어난 인물이었음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그는 자녀 교육 실패의 결과, 방탕한 두 아들로 인해 결국 불운한 말년을 맞게 됩니다(2:27-36 ; 3:11-14 ; 4:18).
자세한 내용은 2:36 주석을 참조하라.
홉니와 비느하스가...제사장으로 거기 있었더라 - 70인역(LXX)은 여기에 '엘리'도 삽입 시켰으나 타당치 않습니다.
왜냐하면 당시 엘리는 노쇠한 관계로 제사장적 업무를 감당치 못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추측 컨데, 엘리는 제사장적 업무를 자신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에게 주로 일임하고, 자신은 사사의 직무만 감당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불량자들로서 제사장의 소임을 감당하기에는 부적격자들이었고(2:12, 22),
이는 결국 엘리 시대의 종말을 재촉하는 결과를 낳고 말았습니다.
4. 제물의 분깃을 나눔(4~5절)
“[4]엘가나가 제사를 드리는 날에는 제물의 분깃을 그의 아내 브닌나와 그의 모든 자녀에게 주고[5]한나에게는 갑절을 주니 이는 그를 사랑함이라 그러나 여호와께서 그에게 임신하지 못하게 하시니”
제사를 드리는 날 - 모세 율법상 모든 히브리 남자가 일년 3차씩 중앙 성소에 올라가 준수해야 할 절기는 무교절(유월절), 맥추절(오순절, 칠칠절), 수장절(장막절, 초막절)이었습니다(출 23:14-17).
그런데 이중 엘가나가 택하여 제사를 드린 날은 무교절(유월절)이었습니다. 그 이유는
(1)이 세 절기가운데 유월절이 가장 큰 절기였고,
(2)또한 이때는 전 가족이 함께 여호와 앞에 나아가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처럼 1년 1차 유월절에 중앙 성소로 올라가던 관습은 신약 시대에 이르러 보편화된 것 같습니다(눅 2:41).
5절 “한나에게는 갑절을 주니 이는 그를 사랑함이라 그러나 여호와께서 그에게 임신하지 못하게 하시니”
갑절은 '두 사람의 몫'을 주었다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임신하지 못하게 하시니 - 일정기간 동안 한나가 아이를 잉태하지 못한 것은 '사라'(창 11:30), '리브가'(창 25:21),'라헬'(창 29:31),'마노아의 아내' 등의 경우와 같이 하나님의 적극적인 섭리로 말미암은 일이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뜻과 계획에 따라 친히 모태(母胎)를 주관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에는 잉태하지 못하던 여인이 하나님의 능력이나 하나님의 경륜에 의해 자녀를 낳는 예가 많습니다.
(창18:10-15; 21:1-4; 25:21; 30:22-24; 삿13:3; 눅1:7,57).
그러한 의미에서 여기 한나의 불임(不妊) 역시 하나님의 섭리의 결과로서, 곧 꺼져가는 이스라엘의 운명을 탄생시키기 위한 하나님의 오묘하신 뜻과 계획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한편, 이처럼 '육적(肉的)인 출생'에 관한 하나님의 주관과 섭리는 역시
'영적(靈的)인 출생'(중생)에 관한 영역에서도 그대로 적용됩니다(롬 11:36 ; 엡 4:6).
5. 브닌나가 한나를 괴롭게함(6~7절)
“[6]여호와께서 그에게 임신하지 못하게 하시므로 그의 적수인 브닌나가 그를 심히 격분하게 하여 괴롭게 하더라”[7]매년 한나가 여호와의 집에 올라갈 때마다 남편이 그같이 하매 브닌나가 그를 격분시키므로 그가 울고 먹지 아니하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임신하지 못하게 하시므로 여호와께서 .'그녀의 태(胎)를 닫으셨기 때문에'란 의미입니다.
따라서 이 말은 '태의 문'을 여닫으시는 생명의 주관자가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보여주는 말입니다.
격동하여 번민케 하더라 - 여기서 '격동하다'(카이스)란 말은 '괴롭히다','약올리다','슬프게 하다','충동 질하다','화나게 하다'등의 뜻이 있습니다.
그리고 '번민케 하다'(라암)란 말 역시 '괴롭히다','세계 뒤흔들다','자극하여 분노케 하다' 등의 뜻입니다.
따라서 이 말은 브닌나가 무자(無子)한 한나를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는 여자로 보고 온갖 방법으로 그녀를 괴롭혔음을 나타내는 말입니다<3절>.
7절에 “매년 한나가 여호와의 집에 올라갈 때마다 남편이 그같이 하매 브닌나가 그를 격분시키므로 그가 울고 먹지 아니하니”
이는 성소에 올라가 제사를 드린 후 화목제의 희생제물을 가족에게 나눠줄 때 한나에게는 갑절을 주는 일이 계속되었음을 보여줍니다.
이 사실을 통해 우리는 하나를 향한 엘가나의 호의가 단순한 동정이 아닌 순수한 사랑에 근거했음을 깨닫게 되나, 바로 이 일로 인하여 브닌나는 시기심에 사로잡힌 나머지 한나를 더욱 격동시키게 되었을 것입니다(Keil).
6. 엘가나의 위로의 말(8절)
“그의 남편 엘가나가 그에게 이르되 한나여 어찌하여 울며 어찌하여 먹지 아니하며 어찌하여 그대의 마음이 슬프냐 내가 그대에게 열 아들보다 낫지 아니하냐 하니라”
어찌하여 울며...그대의 마음이 슬프냐 - 이말은 엘가나가 한나의 우는 이유와 먹지 아니하는 이유를 몰라서 묻는 질문이 아닙니다.
이 말은 무자(無子)로 인해 겪는 그녀의 고통을 깊이 헤아리고,
그녀의 슬픔에 동참하면서 진정으로 달래는 애정 어린 위로의 말입니다.
여하튼 본절은 기쁨의 가족 잔치가 되어야 할 화목제사의 시간이 되고 말았음을 보여 줍니다.
이처럼 창조의 원리(창 2:21-25)에서 보여지는 아름다운 일부 일처(一夫一妻)의 제도가 아닌 일부 다처(一夫多妻)의 가정-예를 들면 아브라함의 가정, 야곱의 가정 등-에서는 항상 기쁨 보다는 슬픔이 도사리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아론의 자손은 제사장을 했고, 레위지파의 다른 사람들은 성가대나 또 성전의 문을 지키는 문지기나, 성전에서 수종드는 일을 했습니다.
그런데 사무엘의 아버지 엘가나는 레위직분의 일을 내버리고 저 시골에 쳐박혀서 농사짓고 살았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소명을 버리고 다른 생활을 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사사기(삿17:7~13) 300년동안 우상을 너무 많이 섬기고,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안했습니다.
그래서 자주 하나님의 채찍을 맞고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하나님의 일을 하는 제사장과 레위인을 잘 대접하지 않았습니다.
대접을 안 하다 보니 그만 레위인이 시험에 빠져서 방황하다가 사사기 17:7절에보면 미가라 하는 레위인이 이리저리 방황하다가 어떤 집에 들어가서 그 한 집의 제사장이 되어, 그 집에서 음식을 먹고 월급받고 살았습니다.
아주 비참했습니다.
이렇게 보면 사무엘의 가정 환경이 아주 나빳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원래 레위인이지만 레위인의 일을 하지 않고 저 초야에 묻혀서 하나님의 일을 않고, 물질의 염려 때문에, 세상 염려 때문에 세상에 돌아가 세상사업을 했다는 것입니다.
요사이로 말하면 목사 하던 사람이 딴 짓하고 돌아다니며 다른 일했다는 말입니다.
따라서 1절은 그 가계 자체가 레위의 가계이나 소명을 저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사무엘의 어머니가 둘이라는 말입니다.
이거야 말로 불행한 것입니다.
1절의 신앙타락이 가정생활의 타락으로 가는 것입니다.
신앙이 따락하여 하나님의 말씀따라 자기 직분을 감당하지 않으니,
가정이 타락했습니다.
한나는 정부인임에 틀림없습니다.
한나하고 결혼했으나 아무리 기다려도 아기가 태어나지 않으니,
가정의 가장 중요한 것은 평화인데,
브닌나로 말미암아 계속 싸움이 일어났습니다.
-아브라함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브라함이 종인 하갈을 첩으로 정했는데, 하갈이 아기를 갖자마자,
“아이 낳으면 이 집 주인이지”하고 사라에게 함부로 달려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 집도 야단이 났습니다.
이 처럼 하나님 앞에서 신앙이 타락할 때 생활의 타락을 가져왔습니다.
창세기 25장을 읽으면 귀한 말씀이 나옵니다.
이삭이 40세에 결혼을 했습니다.
리부가는 결혼생활 20년이 지났으나 아기를 못낳았습니다.
20년만에 야곱과 에서를 주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가정이었습니다.
홉니와 비느하스는 제사장이었으나 불량자였습니다. 깡패였습니다.
그러니 교회환경 역시 형편 없었습니다.
그때의 상황이 극도로 타락했다는 말입니다.
화목제는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 난 다음은 형제들과 회식을 자주하는데, 브닌나에게는 조금 주고 한나에게는 배를 주었습니다.
남편의 사랑은 받았으나 하나님의 은총은 입지 못했더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한나는 괴로웠습니다.
한나가 이 괴로운 환경을 어떻게 헤쳐나가느냐는 것입니다.
신앙의 갈등을 가지고 있고, 가정의 갈등을 가지고 있고, 교회의 부패가 일어 났고, 육신적 사랑은 있었지만 하나님의 은총이 없는 이와 같은 괴로운 환경을 다른 길로는 해결할 길이 없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9절에서 11절 까지에서 한나의 기도가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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