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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느헤미야3장1~32절
제목 : 성벽을 쌓은 사람들
유다 백성이 성벽 재건에 나섭니다.
신분 고하를 막론하고 모든 계층의 사람들이 참여했고, 근거리에 위치한 구역을 각자 맡아 책임시공 하도록 했습니다.
1. 북쪽 성벽 재건(1~5절)
북쪽의 성벽 공사는 성전 구역과 가까운 ‘양문과 함메아 망대’에서 ‘하나넬 망대’에 이르는 구간을 건축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1) 이 구간은 제사장 그룹이 담당하고 대제사장이 직접 지휘합니다(1절)
“[1] 그 때에 대제사장 엘리아십이 그의 형제 제사장들과 함께 일어나 양문을 건축하여 성별하고 문짝을 달고 또 성벽을 건축하여 함메아 망대에서부터 하나넬 망대까지 성별하였고”
대제사장 엘리아십. - 이 사람은 스룹바벨과 함께 최초로 팔레스틴에 귀환했던 대제사장 '예수아'의 손자입니다(12:10).
그런데 나중에 그의 손자가 산발랏의 딸과 결혼했고(13:28), 또한 그는 이방인 도비야(2:10)에게 성전의 방을 내어줄(13:4,7) 만큼 산발랏 일당과 깊은 관계를 맺게 됩니다.
그렇다면 엘리아십이 처음에는 느헤미야를 도와 헌신적으로 재건 사업에 참여하다가 나중에 산발랏 일당에게 매수당했거나 아니면 처음부터 불온한 마음을 가진 채 단지 백성들의 눈을 의식하여 형식적으로 재건 사역에 참여하였을 뿐이라는 추측이 가능합니다.
어쨌든 보다 분명한 것은, 백성들의 모범이 되어야 할 대제사장이 재건 사역에 협력하였음을 느헤미야가 부각시키려 했다는 사실입니다.
그 형제 제사장들. - 이들을 '엘리아십'의 친형제들로 볼 수는 없습니다.
다만 '엘리아십'처럼 아론의 후손들로서의 '제사장들'을 가리킵니다(스 3:2).
양문을 건축하여 성별(聖別)하고. - '양문'은 예루살렘의 북동쪽 모퉁이에 위치했었습니다.
희생 제사에 소용되는 양과 염소들은 바로 이곳을 통해서 들어갔습니다.
이 '양문'을 통해 들어간 희생 제사용 짐승은 이 문 옆의 못에서 씻겨 진 후 성전으로 옮겨갔던 것 같습니다. 요 5:2의 '양문'은 바로 이곳을 가리킵니다. 한편, 혹자는 '성별하고'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키드슈후'를 '들보를 얹다'는 뜻인 '케루후'가 잘못 표기된 것으로 봅니다.
그러나 굳이 그러한 견해를 취할 필요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말이 대제사장과 제사장들의 재건 사역에서만 사용되고 있는 것으로 보아 그들이 대표 자격으로 하나님께 바쳤음을 나타낸다고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마치 이방 여인을 취한 사실로 인하여 회개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명단을 제시하면서 그 중 유독 제사장들만이 속건제를 드린 사실을 언급한 것과 같습니다(스 10:18, 19).
성벽을 건축하여 함메아 망대에서부터 하나넬 망대까지. - '함메아 망대'는 '양문'의 서쪽에, '하나넬 망대'는 '어문'(3절)의 서쪽에 각각 인근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 두 망대 사이에는 짧은 성벽과 그 중간에 '어문'이 있었습니다.
이처럼 제사장들이 북쪽 성벽의 재건을 담당한 것은, 그곳이 그들의 활동 무대였던 성전과 가까운 곳이기 때문이었습니다.
2) 여리고 사람들과 이므리의 아들 삭굴이 건축하였습니다(2절)
“[2] 그 다음은 여리고 사람들이 건축하였고 또 그 다음은 이므리의 아들 삭굴이 건축하였으며 ”
본절에서 부터 5절까지는 '하나넬 망대'의 서쪽 성벽 약 210m의 건축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그 다음은 여리고 사람들이 건축. - '그 다음'은 '엘리아십'(1절)을 위시한 제사장들이 건축한 성벽에 '연이어서'의 의미입니다.
한편, 본절의 '여리고 사람'은 자신들의 조상이 포로로 끌려가기 전에 '여리고'에 살고 있었음은 알았으나, 자신들의 족보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던 자들로 추측됩니다(스 2:34).
이므리의 아들 삭굴. - 이 사람에 대해 별 달리 밝혀진 바는 없습니다.
'삭굴'은 '염두에 두는'의 의미입니다.
3) 어문은 하스나아의 자손들의 건축하였습니다(3절)
“[3] 어문은 하스나아의 자손들이 건축하여 그 들보를 얹고 문짝을 달고 자물쇠와 빗장을 갖추었고 ”
어문(魚門)은 하스나아의 자손들이 건축 - 예루살렘 북쪽 성벽의 좌측에 위치한 문으로서, 갈릴리 바다 및 요단강에서 잡힌 물고기들이 바로 이곳을 통해서 들어 왔다고 해서 이런 이름이 붙여진 듯합니다.
이 문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구절들은 본서 12:39과 대하 33:14 그리고 습 1:10 등입니다.
한편, '하스나아'는 '스나아'라는 지명(地名) 앞에 정관사 '하'가 붙은 것으로 봐야합니다(스2:35 ).
따라서 '하스나아의 자손들'도 2절의 '여리고 사람들'처럼, 자신의 조상이 '스나아'라는 곳에 살고 있었음은 알았으나 그 족보를 밝히지 못함으로 인하여 조상의 이름 대신 지명을 통하여 구별되고 있습니다(스 2:35).
그 들보를 얹고. - 지붕을 올림으로써 건축을 마무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자물쇠와 빗장. - 여기서 '자물쇠'(만울)는 오히려 '빗장'을 가리키며, '빗장'은 앞의 '빗장'을 물고 있는 '소켓'(sockets)을 뜻합니다.
4) 그 다음은 므레못, 므술람, 사독이 중수하였습니다(4절)
“[4] 그 다음은 학고스의 손자 우리아의 아들 므레못이 중수하였고 그 다음은 므세사벨의 손자 베레갸의 아들 므술람이 중수하였고 그 다음은 바아나의 아들 사독이 중수하였고 ”
학고스의 손자 우리아의 아들 므레못이 중수하였고. - '므레못'은 '말기야'(11절)와 함께 에스라와 느헤미야의 사역에 모두 관계되는 자로서 에스라가 바벨론에서 귀환하면서 가져온 물품들을 인수했던 제사장이었습니다(스 8:33). 한편, '학고스'의 자손은 그 종족과 보계가 이스라엘에 속하였는지 증거 할 수 없는 자들이었습니다(스 2:59, 61).
므세사벨의 손자 베레갸의 아들 므슬람 - 이 사람은 자신의 딸을 '도비야'(2:10,19)에게 며느리로 주는 등 사마리아 사람들과 밀착된 관계를 맺었던(6:18) 제사장입니다(30절).
그가 성벽 재건에 참여한 이유는 대제사장 '엘리아십'의 경우와 유사할 것입니다(1절 주석 참조). 한편, '므술람'이라는 이름은 '동맹한'이란 뜻입니다.
바아나의 아들 사독. - '사독'은 에스라가 제안한 언약 문에 인친 자로만 알려졌을 뿐입니다(10:21).
5) 그 다음은 드고아 사람들이 중수하였습니다(5절)
“[5] 그 다음은 드고아 사람들이 중수하였으나 그 귀족들은 그들의 주인들의 공사를 분담하지 아니하였으며”
그 다음은 드고아 사람들이 중수하였으나. - 6절의 언급으로 미루어 볼 때, '드고아 사람들'의 작업 몫은 '옛 문'과 인접한 동쪽 성벽의 한 부분이었을 것입니다.
한편, '드고아'는 예루살렘 동남쪽 약 14.5Km 지점의 불모지에 자리 잡았던 성읍으로서, '아라비아 사람 게셈'(2:19)에 의해서 공격받기 쉬웠던 입지 조건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드고아 사람들'은 출신지역에 따라 분류된 포로 귀환자 명단(스 2:20 - 35)에 나오지 않음을 볼 때, 자신들의 족보를 잊어버린 사람들은 아닌 듯합니다.
느헤미야는 다만
(1) '드고아'가 아라비아 사람 게셈의 공격을 쉽사이 받을 수 있는 지역이며, (2) 그곳의 귀족들은 오히려 성벽 재건에 참여치 아니했다는 등의 특별한 상황 때문에, 조상의 이름을 통한 가족 분류 방식을 포기하고 이같이 동리의 이름을 통해 이들을 분류하고 있다고 봅니다.
그 귀족들은 그들의 주인들의 공사를 분담하지 아니하였으며. - 이것은 문자적으로 '그들의 귀족들은 자신들의 목들을 자신들의 주(主)들의 역사에 가져오지 않았다'의 뜻으로서, 멍에 메기를 거절하는 황소의 모습에 빗대어서(렘 27:12) 성벽 재건 사역에 동참치 않은 귀족들을 암시적으로 비난하고 있습니다.
한편, 여기서 '그들의 주'는 누구를 가리킬까요?
본절의 '주'(아도네이헴)가 복수라는 점에서 하나님으로 볼 수 없으므로 느헤미야를 도와서 일을 하던 감독자들로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그 문자적 의미는 '높임을 받는자'입니다.
한편, '귀족들'이 성벽 재건에 참여치 아니했던 이유는
(1) 이들이 '아라비아 사람 게셈'의 보복을 두려워했으며,
(2) '게셈'과 상당히 깊숙한 밀착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던 때문으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2. 서쪽 성벽의 재건(6~12절)
성벽 재건의 방향은 시계 방향으로 돌아 서쪽 성벽 공사와 이에 참여한 사람들의 목록을 제시합니다.
1) 옛 문은 요야다와 므술람이 중수하였습니다(6절)
“[6] 옛 문은 바세아의 아들 요야다와 브소드야의 아들 므술람이 중수하여 그 들보를 얹고 문짝을 달고 자물쇠와 빗장을 갖추었고 ”
본절에서부터 11절까지에서는 약 600m 가량의 성벽 재건 작업에 대해서 엄급합니다.
옛 문 - 왕하 14:13과 램 31:38의 '모퉁이 문'과 동일시되며 예루살렘 북쪽 약 30Km 지점에 있던 '여사나'(대하 13:19)라는 곳으로 향하는 도로로 통하는 문이었습니다.
요야다. - '여호와께서 알고 계시다'의 뜻입니다.
다른 곳에서는 일체 언급되지 않고 있습니다.
므술람 - '동맹한'의 뜻입니다.
2) 기브온, 메로놋, 미스바 사람들이 참여했습니다(7절)
“[7] 그 다음은 기브온 사람 믈라댜와 메로놋 사람 야돈이 강 서쪽 총독의 관할에 속한 기브온 사람들 및 미스바 사람들과 더불어 중수하였고 ”
기브온 사람 믈라댜. - 여기의 '기브온 사람'은 출신 지역에 따라 분류된 포로 귀환자 명단(스 2:20 - 35)에 들어 있습니다(7:25).
이 '기브온'은 예루살렘 북쪽 약 9Km 지점에 위치했습니다.
한편, '믈라댜'는 여기서만 나오는 이름으로, '여호와께서 자유하게 하셨다'의 뜻입니다.
메로놋 사람 야돈. - '메로놋'은 '기브온 북동쪽약 5Km 지점이었을 것입니다(대상 27:30).
그리고 '야돈'은 '여호와께서 지배하신다'의 뜻이 있는 '여도니야'의 단축형입니다.
강 서쪽 총독의 관할에 속한 기브온 사람들 및 미스바 사람들. - 이것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견해들이 제시되었습니다.
(1) 기브온과 미스바가 당시 강 서편 총독의 직접적 영향력 아래 있었다고 보는 견해.
(2) 강 서편총독이 유다를 방문할 때마다 임시로 머물던 곳이 미스바에 있었다는 견해,
(3) 유다 총독(5:14)이 필요할 때마다 임시로 머물던 곳이 미스바에 있었다는 견해 등이 있습니다.
그러나 첫째, 여기의 '관할에 속한'(키세)이라는 단어가 일차적으로 '좌석' 혹은 '보좌'를 의미하며
둘째, 유프라테스 강 서쪽 전부가 '강 서편총독'의 영향 아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유독 '미스바'와 '기브온'만을 직접 관할했다고 말하기는 힘들며,
셋째, '강 서편 총독'이라는 말을 유다 총독과 동일한 개념으로 보기도 어렵다는 사실(2:7; 스 8:36) 등으로 미루어 위의 세견해 중 (2)의 것이 가장 타당한 듯합니다.
3) 다음은 웃시엘과 하나냐가 중수하였습니다(8절)
“[8] 그 다음은 금장색 할해야의 아들 웃시엘 등이 중수하였고 그 다음은 향품 장사 하나냐 등이 중수하되 그들이 예루살렘의 넓은 성벽까지 하였고 ”
금장색(金匠色)..향품 장사..중수하되. - 7절에서는 가까운 지방 사람들끼리 힘을 합하는 모습이 언급된 데에 이어서, 여기서는 특별한 직업의 소유자들끼리 협력하는 모습이 그려지고 습니있다.
고대 중근동 사회에서는 '금장색'은 순금이나 금박으로 장신구와 우상 등을 만드는 일에 주로 종사했었습니다(사 40:19; 41:7; 46:6; 렘 10:9, 14; 51:17). 그러나 포로 귀환후의 이스라엘 사회에서는 우상 숭배가 엄격히 금지되고 있었다는 점에서, 본문의 '금장색'은 장신구 등의 제조에만 관계하고 있었음이 분명합니다.
본절과 31, 32절은 이 '금장색'들이 자신들 끼리의 동업자 조합을 형성하고 있었을 가능성을 짙게 풍기고 있습니다.
더구나 여기의 '금장색'(초르핌)이라는 단어가 복수라는 사실은 그 가능성을 더욱 높게 합니다.
한편, '향품장사'는 애굽이나 인도 등지에서 완제품을 수입해서 팔거나 혹은 식물에서 '향품'을 직접 추출해내는 자들을 가리킵니다.
이스라엘 사람으로서 이런 직종에 종사했던 인물로 성경에 최초로 언급되는 자는 브사렐입니다(출 37:1, 29).
이러한 '향품'은 '분말' 혹은 '액체'의 형태였고, 조그만 용기에 보관되어 여인들에 의해서 지참되었습니다(사 3:20).
이 같은 향품의 주된 용도는 몸의 냄새를 상쇄시키는 것이었고 장례용으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아무튼 '금장색'이나 '향품 장사'는
(1) 시간 할애가 용이하였으며,
(2) 다른 직업의 소유자보다 수입이 많은 관계로 경제적으로 넉넉했기 때문에, 성벽 재건 사업에 적극적일 수 있었으리라 짐작됩니다.
이들은 그 당시 이스라엘 사회에서 보통 중류계급으로 분리되었다고 합니다.
그들이 예루살렘의 넓은 성벽까지 하였고. - '넓은 성벽'은 B.C. 7세기 초에 히스기야 왕에 의해 건축된 벽으로서 B.C. 722년에 사마리아가 함락된 이후 북이스라엘의 피난민들을 수용하기 위해 넓힌 것입니다.
1970, 71년에 아비갓은 성전 서쪽 방향 270m 정도 지점에서 6.7m 정도되는 두께의 성벽을 발굴한 바 있으며 이것은 본문의 '넓은 성벽'과 동일한 것으로 짐작됩니다.
4) 후르의 아들 르바야가 중수하였습니다(9절)
“[9] 그 다음은 예루살렘 지방의 절반을 다스리는 후르의 아들 르바야가 중수하였고 ”
예루살렘 지방 절반을 다스리는 자. - 여기서 '지방'(펠레크)은 원래 '주위'나 혹은 '물레가락'의 뜻을 지니며 한계가 명확하지 않은 주변지역을 가리킵니다.
따라서 여기의 '예루살렘 지방'은 예루살렘 시내 지역이 아닌 예루살렘과 붙어있는 변두리 지역을 뜻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다스리는 자'(사르)는 본서에서 보통 '방백'으로 번역된 단어로서(스 10:14) 그 당시의 유다 지역이 조그만 단위 구역으로 나뉘어져 있었음을 시사해줍니다.
한편, 본절은 해당 지역의 책임 관리자 혼자서만 재건 사역을 감당했음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아마 그의 주도하에 해당 지역 내의 주민들이 이 일에 협력하였을 것입니다.
5) 여다야와 핫두스가 중수하였습니다(10절)
“[10]그 다음은 하루맙의 아들 여다야가 자기 집과 마주 대한 곳을 중수하였고 그 다음은 하삽느야의 아들 핫두스가 중수하였고 ”
자기 집과 마주 대한 곳 - 이곳은 예루살렘 서쪽의 급경사지로 추측됩니다.
6) 말기야와 핫숩이 망대를 중수합니다(11절)
“[11] 하림의 아들 말기야와 바핫모압의 아들 핫숩이 한 부분과 화덕 망대를 중수하였고 ”
하림의 아들 말기야. - '하림'은 스룹바벨과 함께 최초로 귀환했던 한 가족의 조상 이었습니다(스2:32).
따라서 여기의 '아들'(벤)은 '자손'으로 번역됨이 타당합니다.
한편, '말기야'는 '여호와는 왕이시다'의 의미를 가지는데 23절의 '베냐민'과 형제인 듯합니다(스 10:31, 32).
바핫모압의 아들 핫숩. - 본절의 '바핫모압'도 최초로 귀환했던 한 가족의 조상(스2:6)입니다.
한 부분(미다 쉐니트). - 이것은 문자적으로 '두 번째 부분'으로서, 이미 배정됐던 몫 이외의 또 다른 부분을 가리킵니다.
그렇다면 '말기야'와 '핫숩'은 여기 이외에 다른 부분의 축성(築城)작업도 부여받았던 셈입니다(23절).
화덕 망대. - 이는 12:38; 대하 26: 9등으로 볼 때 '골짜기 문'과 '넓은 성벽'의 중간 지점에 위치하였던 곳으로 짐작됩니다.
그리고 이 같은 명칭이 붙여진 것은, 그곳에서 빵이 구워졌기 때문인 듯합니다.
7) 할로헤스의 아들 살룸과 그의 딸들이 중수하였습니다(12절)
“[12] 그 다음은 예루살렘 지방 절반을 다스리는 할로헤스의 아들 살룸과 그의 딸들이 중수하였고”
그 다음. - 이는 '풀무 망대'와 '골짜기문'(13절) 사이의 성벽 부분을 말합니다.
'일자형'(一字型)에 길이 약 450m 정도입니다.
예루살렘 지방 절반을 다스리는 자. - '예루살렘'을 둘러싸고 있었던 지역의 한 부분을 다스리던 사람을 가리킵니다(9절 주석 참조).
할로헤스의 아들 살룸과 그의 딸들이. - '할로헤스'라는 이름은 '속삭이는 자'. 혹은 '마술사'라는 의미를 갖습니다.
바로 이점 때문에 학자들은, 이 이름이 '사람의 이름' 곧 고유명사가 아니라 '직업명' 곧 보통명사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이와 동일한 이름이 에스라의 언약문에 인친자들의 명단중에 나온다는 사실은, 이 이름이 구체적인 개인명임을 입증해줍니다(10:24).
한편, 여기의 '아들'(벤)은 오히려 '자손'의 의미로 봐야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딸들'(베노타이우)은
(1) '딸'이 큰 도시에 인접해서 성장하고 있는 성읍에 대한 일상적 용어로 사용된 사실(겔 16:53)에 근거해서 '마을 사람들'을 뜻할 것이라는 견해,
(2) 여자는 성벽 쌓는일에 종사할 힘이 없다는 사실에 근거해서 '그 딸들'(베노타이우)은 '그 아들들'(베나이우)의 오기(誤記)라는 견해,
(3) 히브리 원문의 문자적 의미를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견해 등으로 그 해석이 구분됩니다.
그러나 첫째, 고대 아테네에서는 무너진 성벽의 재건을 위해서 여자들도 동원 됐으며 둘째, '딸'들은 남자 형제가 없을 경우 아버지의 이름과 재산을 상속받으며(민 36:8) 셋째, 본서의 3장은 성벽 재건에 대한 백성들의 열심을 강조하는(8절) 문맥적 특색을 갖고 있다는 점 등으로 볼때, 위의 세 견해 중 (3)의 것이 가장 타당성이 있습니다.
3. 남쪽 성벽의 재건(13~14절)
1) 하눈과 사노아 주민은 협력하여 골짜기 문을 세우고 분문까지 성벽 천 규빗을 중수합니다(13절)
“[13] 골짜기 문은 하눈과 사노아 주민이 중수하여 문을 세우며 문짝을 달고 자물쇠와 빗장을 갖추고 또 분문까지 성벽 천 규빗을 중수하였고
하눈과 사노아 주민. - '하눈'은 30절에서는 '살랍의 여섯째 아들'로 묘사되고 있으며 그 이름은 '하나님은 자비로우시다'의 의미를 갖는 '하나니엘', 혹은 '여호와는 자비로우시다'의 뜻을 갖는 '하나니야'의 단축형으로 짐작됩니다.
또한 '사노아'는 예루살렘 남서쪽 약 22Km 지점에 위치한 작은 성읍입니다(수 15:34).
분문까지 성벽 천 규빗을 중수. - '천 규빗'은 약 450m의 길이입니다.
북쪽 성벽 약 200m 정도를 네 집단에서 담당했던 것(2-5절)과 비교해보면 매우 작은 성읍 '사노아'의 거민들이 이렇게 많은 분량을 담당하였다는 사실은 특이하게 보입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1) 사노아 거민들이 큰 열심을 냈었다는 측면,
(2) 그들이 담당했던 성벽의 파괴가 극심하지 않았었다는 측면 모두가 인정될수 있을 것입니다.
2) 벧학게렘 지방을 다스리는 레갑의 아들 말기야가 중수하였습니다(14절)
“[14] 분문은 벧학게렘 지방을 다스리는 레갑의 아들 말기야가 중수하여 문을 세우며 문짝을 달고 자물쇠와 빗장을 갖추었고 ””
벧학게렘 지방을 다스리는..말기야. - '벧학게렘 지방'은 '벧학게렘'이라는 성읍과 전혀 다릅니다.
여기서 '지방'은 어떤 성읍과 인접해 있는, 혹은 둘러싸고 있는 지역을 가리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9절).
한편, '벧학게렘'은 예루살렘 남쪽 약 5Km 지점에 위치했습니다.
4. 남동쪽 성벽의 재건(15~27절)
남동쪽 성벽의 재건과 이에 참여 한 사람들의 이름을 소개합니다.
1) 샘문은 미스바 지방을 다스리는 골호세의 아들 살룬이 중수하였습니다(15절).
“[15] 샘문은 미스바 지방을 다스리는 골호세의 아들 살룬이 중수하여 문을 세우고 덮었으며 문짝을 달고 자물쇠와 빗장을 갖추고 또 왕의 동산 근처 셀라 못 가의 성벽을 중수하여 다윗 성에서 내려오는 층계까지 이르렀고 ”
샘문. - 이에 대해서는 2:14 주석을 참조하라.
미스바 지방. - 이것도 '미스바'와는 전혀 다릅니다(14절 주석 참조).
한편, '미스바'는 예루살렘 북쪽 약 12.8Km에 위치했습니다.
왕의 동산근처 셀라 못가의 성벽. - 여기서 '왕의 동산'은 기드론 골짜기 남단, 즉 그 골짜기가 힌놈의 골짜기와 만나는 곳에 위치했었습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성벽 바깥에 있었다는 결론이 나옵니다(IDB, 왕하 25:4; 렘 39:4; 52:7).
한편, '셀라못'은 '실로암못'과 동일시되는 것으로서(사 8:6; 요 9:7). 그 물이 넘쳐 흘러서 기드론 골짜기와 힌놈의 골짜기가 마주치는 곳에 위치했던 '왕의 동산' 쪽으로 흘러갔습니다.
결국 이 '셀라 못'은 '왕의 동산'의 수원(水源)이었던 셈입니다.
그런데 이 못이 예루살렘 본성(本城)의 바깥쪽에 위치했었습니다.
이런 점 때문에 그 못과 그 물을 이용하는 자들의 보호를 목적으로 별도의 성벽이 쌓아졌었으므로 '셀라 못'은 성벽에 둘러싸여 있게 된 셈입니다.
그렇다면 본 문구의 '성벽'은 무엇인가?
그것은 예루살렘의 동쪽 성벽의 가장 남쪽부분 약 100m를 가리키며 '셀라 못'의 동쪽성벽입니다.
바로 이런 점에서 이것은 '셀라 못가의 성벽'이라고 할 만합니다.
다윗 성에서 내려오는 층계. - '다윗 성'은 예루살렘의 동남쪽의 한 구릉지대로서, 기혼 샘의 북서쪽에서부터 남쪽까지 뻗어 있었습니다(삼하 5:7, 8).
그리고 '층계'는 기드론 골짜기로 내려갈 수 있었던 계단이었습니다.
2) 아스북의 아들 느헤미야가 증수하였습니다(16절)
“[16] 그 다음은 벧술 지방 절반을 다스리는 아스북의 아들 느헤미야가 중수하여 다윗의 묘실과 마주 대한 곳에 이르고 또 파서 만든 못을 지나 용사의 집까지 이르렀고 ”
벧술 지방 절반을 다스리는 자..느헤미야. - '벧술 지방'은 예루살렘 남쪽 약 21Km 지점에 위치한 '벧술'이라는 성읍(수15:58) 그 자체를 뜻하지 않고 다만 그 성읍의 인접 지역을 가리킬 뿐입니다(9절).
한편, 본절의 '느헤미야'는 본서의 저자인 '느헤미야'와 동명 이인입니다.
다윗의 묘실과 마주 대한 곳에 이르고. - '다윗의 묘실'은 '묘실'(키브레이)이 복수라는 점에서 다윗 왕 한 사람만의 무덤이 아니라 다윗부터 시작해서 그 후예들의 공동 묘지였음이 분명합니다(대하 28:27).
그 위치는 '다윗 성'(15절)의 남쪽 곧 시온산 어디였을 것입니다(Myers, 왕상 2:10).
파서 만든 못을 지나 용사의 집까지. - 히스기야 왕이 산헤립에 의해서 포위됐을 때, 히스기야는 기혼의 샘 물을 막은 후 고랑을 파서 그 물이 다윗 성 안쪽으로 흘러 들어 오도록 해서 식수(食水) 문제를 해결했었습니다(왕하 20:20; 대하 32:3, 4).
그때 그 흘러 들어온 물이 한 곳에 모이도록 해놓은 시설이 곧 여기의 '파서 만든 못'이었습니다(사 22:9 - 11).
한편 '용사의집'은 다윗의 충실한 부하들이었던 '용사들'(삼하 23:8; 대상11:10)이 사용했던 병사(兵舍)였습니다(Rawlinson).
3) 다음은 레위 사람 바니의 아들 르훔이 중수하였습니다(17절)
“[17] 그 다음은 레위 사람 바니의 아들 르훔이 중수하였고 그 다음은 그일라 지방 절반을 다스리는 하사뱌가 그 지방을 대표하여 중수하였고”
레위 사람 바니의 아들 르훔. - 이처럼 성전 봉사에 바빴을 '레위 사람'이 성벽 재건에 참여했다는 사실은 매우 고무적입니다.
이는 느헤미야의 성벽 재건 운동에 대한 백성들의 호응이 적극적이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증거라 하겠습니다.
혹자는 본절의 '레위 사람'이
(1) 포로로 끌려가지 않았던 레위 사람의 후예이기 때문에 성전 봉사에 참여치 못했고 그래서 성벽 재건에 동참할 여유가 있었거나,
(2) 포로 귀환후에는 레위인의 일부가 성읍의 행정에만 관여하고 있었기 때문에 성벽 재건에 동참하였을 것이라고 주장합니다(Williamson).
그러나 (1)의 견해는, 저자가 단순히 '레위 사람'이라고만 언급 했다는 점에서 타당치 않습니다. 반면 (2)의 견해는 그 당시의 상황에서 볼 때 어느 정도 타당합니다.
그일라 지방 절반을 다스리는 자. - '그일라 지방'은 예루살렘 서남쪽 약 24Km지점에 위치한(삼상23:1 - 13) '그일라'와는 전혀 다릅니다(9, 12, 14절).
하사뱌. - '여호와께서 참작하셨다'의 뜻입니다.
그 지방을 대표하여. - 그곳 주민들을 통솔하는 등 그 성벽 재건 공사의 주체(主體)가 된 것을 가리킵니다.
이 같은 역할은 한 지역을 다스리는 자로서 성벽 재건에 참여한 모두에게 해당되는 것이었을 것입니다(9절).
4) 다음은 헤나닷의 아들 바왜가 중수하였습니다(18절)
“ [18] 그 다음은 그들의 형제들 가운데 그일라 지방 절반을 다스리는 헤나닷의 아들 바왜가 중수하였고 ”
그 형제..헤나닷의 아들 바왜. - 여기의 '바왜'는 '빈누이'의 오기(誤記)로 간주될 수 있다. 그 이유는
(1) '바왜'라는 이름은 구약 성경이나 그밖의 문헌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으며,
(2) 9절의 '한 부분'은' 이미 배당된 몫 이외의 또 다른 부분'(11절)을 가리키므로, 본장 어디에든 '빈누이'가 느헤미야로부터 할당받은 작업 몫에 대한 언급이 있어야하나 그렇지 못하며,
(3) 더구나 10:9에는 '빈누이'라는 레위 사람이 '헤나닷의 자손'으로 묘사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본절의 '바왜' 를 '빈누이'로 고치고, 이 '빈누이'가 느헤미야로부터 두 몫의 성벽 공사를 할당받았다고 결론지어야 할 것입니다.
한편, 이 '빈누이'는 에스라의 언약문에 인을 치기도 하였습니다(10:9).
5) 미스바를 다스리는 예수아의 아들 에셀이 중수하였습니다(19절)
“[19] 그 다음은 미스바를 다스리는 예수아의 아들 에셀이 한 부분을 중수하여 성 굽이에 있는 군기고 맞은편까지 이르렀고 ”
미스바를 다스리는 자..에셀. - '미스바'는 예루살렘 북쪽에 위치했던 한 성읍 '미스바'를 가리킵니다. 한편, '에셀'은 '도움' 혹은 '구원'의 뜻입니다.
한 부분. - 배당된 몫 이외에 또 달리 배당된 별도의 작업 몫을 가리킵니다(11절). 따라서 본절의 '에셀'은 본절에서 언급되고 있는 작업 몫 이외에 이미 또 다른 부분을 배당받았음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에셀'이라는 이름은 본장 어디에도 안 나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브온 사람들과 미스바 사람들이 함께 한 재건 사역이 본문의 에셀이 감당한 또 다른 한 부분이었으리라 추측할 수 있습니다(7절).
성 굽이에 있는 군기고 맞은편. - 이것은 문자적으로 '모퉁이에 있는 군기고로 오르는 곳 앞'의 뜻입니다(Schultz, Fensham).
여기서 '모퉁이'는 '성벽이 날카롭게 꺾어지는 곳'을 의미합니다(대하 26:9).
본절에서 느헤미야가 '성 굽이에 있는 군기고'라고 '군기고'를 한정적으로 표현한 까닭은 예루살렘에는 여러 군데에 군기고가 있었던 때문이었습니다(사 22:8).
6) 삽배의 아들 바룩이 한 부분을 힘써 중수하였습니다(20절)
“[20] 그 다음은 삽배의 아들 바룩이 한 부분을 힘써 중수하여 성 굽이에서부터 대제사장 엘리아십의 집 문에 이르렀고 ”
삽배의 아들 바룩이 한 부분을 힘써. - '삽배'는 스 10:28에서 이방 여인을 취했다가 회개한 자로 언급됩니다.
그리고 '바룩'은 본서 10:6, 8을 볼 때, 제사장임이 분명합니다.
따라서 이 같은 사실은 여기의 '한 부분'에 대한 중요한 해결의 실마리가 될 수 있습니다.
즉, '바룩'은 다른 제사장들과 함께 성벽 재건에 동참했었고(1절), 이제 그와는
별도로 또 다른 '한 부분'을 맡아서 공사를 했던 것입니다.
한편, '힘써'(헤헤라)는 '맹렬하다', '타오르다' 혹은 '진노하다'의 뜻을 갖는 동사 '하라'의 사역형으로서 '뜨겁게 되다'(Fensham) 혹은 '열심을 품다'의 의미입니다(David son).
이 같은 단어는 앞의 '한 부분'이라는 말과 매우 잘 조화됩니다.
즉, 그는 열심을 품어서 이미 자신에게 맡겨졌던 공사를 재빨리 완료하고, 또다시 새로운 부분에 대한 공사에 뛰어 들었던 것입니다.
성 굽이에서부터..엘리아십의 집 문에 이르렀고. - '성 굽이'는 '군기고'가 있는 성의 모퉁이를 가리키며 '집문에'는 '집 문 맞은편'의 뜻으로 이해 해야 합니다(Batten,16, 19절).
만일 본절의 '집 문에'를 여자적(如字的)으로 받아들인다면, '엘리아십의 집'이 성벽과 붙어있었다는 오해를 낳게 될 것입니다.
7) 학고스의 손자 우리야의 아들 므레못이 한 부분을 중수했습니다(21절)
“[21] 그 다음은 학고스의 손자 우리야의 아들 므레못이 한 부분을 중수하여 엘리아십의 집 문에서부터 엘리아십의 집 모퉁이에 이르렀고 ”
학고스의 손자 우리야의 아들, 므레못. - '학고스'는 스 2:61에서 자신들의 계보를 증명치 못하여서 성전 봉사에 참여치 못했던 제사장 가문의 조상으로 언급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여기의 '손자'는 '자손'으로 번역함이 타당합니다.
그리고 '므레못'은 스 8:33에서 에스라가 바벨론에서 가져온 물품을 인수했던 제사장으로 언급됩니다.
한 부분을 중수하여. - '므레못'도 20절의 '바룩' 처럼 자신에게 맡겨졌던 최초의 작업 몫을 재빨리 마치고, 본절의 또 다른 성벽 공사에 뛰어들었음이 분명합니다(20절).
엘리아십의 집 문에서부터..모퉁이에 이르렀고. - 이것은
(1)므레못의 공사량(工事量)이 비교적 적었다는 사실(Rawlinson, Batten),
(2) 엘리아십의 집이 매우 컸다는
사실(Keil) 중 하나를 시사 할 것입니다.
그러나 첫째, 느헤이야 귀환 당시의 예루살렘은 그 경제형편이 좋지 못했으며(1:3) 둘째, 대제사장 그 당시 행정적 측면을 관장했었던 총독보다 권한이 비교적 적었음(5:9)을 미루어 볼 때, 위의 두 가지 추측 중 전자가 보다 타당할 듯합니다.
그런데 '므레못'이 이처럼 적은 몫만을 담당했던 까닭은, 그 부근의 공사 조건이 심히 나빴기 때문일 것입니다(Batten, 2:14).
아무튼 '므레못'이 대제사장 집 앞의 성벽 공사를 담당했었다는 사실은, 그가 그 당시 신실한 제사장으로 인정되고 있었다는 좋은 증거라 하겠습니다(Scultz).
8) 평지에 사는 제사장들이 중수하였습니다(22절)
“[22] 그 다음은 평지에 사는 제사장들이 중수하였고 ”
평지에 사는 제사장들. - '평지에 사는'(안쉐이 키카르)은 문자적으로 '평지의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한편, '평지'(키카르)는
(1) 예루살렘의 주변지역(Fensham, Williamson),
(2) 요단강 유역의 여리고 지역(Keil, Rawlinson, Scultz, Batten) 등으로 이해됩니다.
그러나 여기의 '평지'라는 단어가 여러 차례에 걸쳐 요단강 유역을 가리키는 것으로 사용된 것은 사실이지만
첫째, 이것이 에브라임 산지에 대해서도 적용됐으며(삼하 18:23 ),
둘째, 특히 본서에서 예루살렘 주변을 나타내는 데 사용됐다(12:28)는 점 등으로 볼 때, 위의 두 견해 중 (1)의 것이 보다 타당한 듯합니다.
따라서 본절의 '평지에 사는 제사장들'은 예루살렘 시내에 살며 성벽재건에 최초로 나섰던 제사장들(1절)과는 분명히 구별됩니다(Williamson).
9) 베냐민과 핫숩이 자기 집 맞은편 부분을 중수하였습니다(23절)
“[23] 그 다음은 베냐민과 핫숩이 자기 집 맞은편 부분을 중수하였고 그 다음은 아나냐의 손자 마아세야의 아들 아사랴가 자기 집에서 가까운 부분을 중수하였고 ”
베냐민과 핫숩. - '베냐민'은 '하림 자손'으로서 11절의 '말기야'와는 형제 혹은 근친인 듯합니다(11절; 스 10:31, 32).
그리고 '핫숩'은 '바핫모압 자손'으로서 '베냐민'의 형제 '말기야'와 함께 '풀무 망대'를 재건했던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본절의 '핫숩'은, 한 곳에서는 '하림자손'의 '말기야'와 함께, 또 다른 곳에서는 그 형제 '베냐민'과 함께 공사를 하는 등 두 몫을 담당했던 셈입니다(11절).
아사랴가 자기 집에서 가까운 부분을 중수. - '가까운 부분'(에첼)은 구약 성경에서 대부분 '옆에' 혹은 '곁에'로 번역되는 단어(창 39:16; 삼상 5:2; 왕상10:19)이지만 문맥상 19절의 '맞은편'과 동일한 의미로 이해됩니다.
아무튼 이 문구나 앞에 '자기집 맞은편 부분'이라는 문구는, 느헤미야가 성벽재건 사업의 추진과 관련해서 공사 담당자의 편의를 최대한으로 고려해주었음을 보여주는 분명한 증거라고 할 만합니다.
한편, '아사랴'라는 이름은 '여호와께서 도우셨다'의 뜻입니다.
10) 헤나닷의 아들 빈누이가 한 부분을 중수했습니다(24절)
“[24] 그 다음은 헤나닷의 아들 빈누이가 한 부분을 중수하되 아사랴의 집에서부터 성 굽이를 지나 성 모퉁이에 이르렀고 ”
헤나닷의 아들 빈누이가 한 부분을 중수. - '빈누이'는 18절에 나오는 '헤나닷의 아들 바왜'와 동일 인물입니다(18절).
이 사람은 동쪽 성벽의 남쪽 부분을 건축한 다음 여기서 또 다른 한 부분의 성벽 건축을 담당하고 있는 셈입니다.
아사랴의 집에서부터. - 이것은 '아사랴의 집 끝 모퉁이에서 부터'로 이해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아사랴의 집 근처, 곧 아사랴의 집 맞은편 쪽은 아사랴 자신이 직접 성벽 공사를 하였기 때문입니다(23절).
성 굽이를 지나 성 모퉁이에 이르렀고. - '성굽이'는 '성벽의 처음 꺽여진 부분'을 뜻합니다(19절).
한편, '모퉁이'(피나)도 '굽이' 와 거의 같은 뜻으로서, 여기서는 성의 꺾여진 부분이 원래의 방향대로 다시 꺾여진 부분을 가리킵니다.
11) 발랄과 브다야가 중수하였습니다(25~26절)
“[25] 우새의 아들 발랄은 성 굽이 맞은편과 왕의 윗 궁에서 내민 망대 맞은편 곧 시위청에서 가까운 부분을 중수하였고 그 다음은 바로스의 아들 브다야가 중수하였고[26] (그 때에 느디님 사람은 오벨에 거주하여 동쪽 수문과 마주 대한 곳에서부터 내민 망대까지 이르렀느니라) ”
우새의 아들 발랄. - '발랄'은 '하나님께서 심판하셨다'의 의미로서 구약 성경 중 본절에만 나오는 이름입니다.
'우새'도 오직 여기에만 나오는 이름으로 '여호와께서 들으셨다'의 뜻입니다.
왕의 윗 궁에서 내민 망대 . - 여기의 '윗'은 '높은'의 의미로서 '왕궁'을 수식한다기보다는 '망대'를 수식한다고 봄이 더 무난합니다(Rawlinson).
한편, '왕의 궁'에 대해서는
(1) 솔로몬의 왕궁(Schultz),
(2) 다윗의 왕궁(Rawlinson),
(3) 포로로 끌려가기 직전의 왕의 임시 대피소(Fensham) 등의 다양한 견해가 제시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왕궁'이 이미 언급된 남쪽의 '다윗 성'(15절)과 다른 이름으로 구별되어 나타나고 있다는 점 등으로 볼 때 위의 (1)과 (3)의 견해 중 (1)의 것이 보다 타당성이 있습니다.
그리고 '내민 망대'는 솔로몬의 왕궁 외곽을 경비하기 위하여 세워진 망대의 하나임이 분명합니다.
시위청에서 가까운 부분. - 이것은 시(市) 외곽을 감싸는 성벽의 일부가 아니라 솔로몬 왕궁 외곽의 '내민 망대'와 연결된 내성벽(內城壁)의 일부입니다. 한편, '시위성'은 영역본 흠정역의 번역대로 '감옥'으로 봄이 타당할 것입니다(12:39; 롑 32:2).
바로스의 아들 브다야. - '바로스'는 스룹바벨과 함께 귀환했던 한 가족의 조상이었습니다(스 2:3).
따라서 여기의 '아들'은 '자손'으로 고쳐야 합니다.
한편, '브다야'는 '여호와께서 속량하셨다'의 뜻입니다.
때에(웨) - '그리고' 혹은 '그런데'의 뜻입니다.
느디님 사람은 오벨에 거주하여. - '느디님 사람'에 대해서는 스 2:43 주석을 참조하라.
동쪽 수문과 마주 대한 곳. - '수문'은 기혼 샘 반대편에 위치한 듯합니다. 그렇다면 이문은 동쪽 성벽의 남쪽에서 북쪽에 이르는 중간지점에 채 못미치는 곳에 해당될 것입니다.
이 문 앞에는 넓은 광장이 있어 공중 집회시 이용되었습니다(8:1).
한편, '마주 대한 곳'은 '동편 수문'과 '내민 망대' 사이의 성벽 부분입니다.
12) 드고아 사람이 한 부분을 중수하였습니다(27절)
“[27] 그 다음은 드고아 사람들이 한 부분을 중수하여 내민 큰 망대와 마주 대한 곳에서부터 오벨 성벽까지 이르렀느니라”
드고아 사람들이 한 부분을 중수. - '드고아 사람들'은 자신들의 방백의 협조나 지도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서쪽 성벽의 한부분에 대한 공사를 담당했었습니다(5절).
5. 북동쪽 성벽의 재건(28~32절)
1) 마문 위로부터는 제사장들이 중수했습니다(28절)
“[28] ○마문 위로부터는 제사장들이 각각 자기 집과 마주 대한 부분을 중수하였고 ”
마문 위로부터. - '마문'은 동쪽 성벽에 있었던 한 문으로서(롑 31:40), 말(馬) 혹은 말을 탄 사람들이 시내로 들어갈 때 이용됐었습니다.
아무튼 이 '마문'은 솔로몬의 옛 왕궁으로 연결되는 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한편, '위'는 마문 북쪽성벽을 가리킵니다.
제사장들이 각각 자기 집과 마주 대한 부분을 중수. - 이것은 이미 북쪽 성벽공사에 참여했던 '므레못'이 대제사장 엘리아십의 집 근처를 별도로 공사했었던 것과 유사한경우입니다(21절).
즉, 본절의 '제사장들'도 이미 '므레못'처럼 북쪽 성벽 공사에 참여했었고(1절), 다시 또 다른 몫의 공사를 진행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2) 임멜의 아들 사독과 스가냐의 아들 스마야가 중수하였습니다(29절)
“[29] 그 다음은 임멜의 아들 사독이 자기 집과 마주 대한 부분을 중수하였고 그 다음은 동문지기 스가냐의 아들 스마야가 중수하였고 ”
임멜의 아들 사독. - '임멜'은 스룹바벨과 함께 귀환했던 제사장 가족의 한 조상이었습니다(스 2:37).
따라서 본절의 '아들'은 '자손'으로 번역되어야 합니다.
또한 '임멜'은 다윗이 세운 제사장 조직 중 '열 여섯째' 반차에 속한 사람이었습니다(대상 24:14).
동문 지기 스가냐의 아들 스마야. - 여기의 '동문'은 외성벽과는 상관없이, 성전 건물에 속했던 문이었던 것 같습니다(겔 40:6, 10).
그 문은 스룹바벨 성전 재건 때에 복구되지 못했다가 금번에 성벽의 한 부분으로서 복구 된듯합니다(Fensham).
이처럼 '동문'이 성전 건물에 속했다는 사실은, '동문 지기'가 레위인 이었다는 사실에 대한 분명한증거가 됩니다.
혹자는 본절의 '스마야'를 대상 3:22의 '스마야'로 보고, 그가 다윗의 후손이라고 주장하지만 근거가 희박합니다.
3) 하나냐와 하눈과 므술람이 중수하였습니다(30절)
“[30] 그 다음은 셀레먀의 아들 하나냐와 살랍의 여섯째 아들 하눈이 한 부분을 중수하였고 그 다음은 베레갸의 아들 므술람이 자기의 방과 마주 대한 부분을 중수하였고 ”
하나냐..한 부분을 중수. - '하나냐'는 8절에서 '향품 장사'로 묘사되는 '하나냐'와 동일한 인물임이 분명합니다.
즉, 본절의 '한 부분'은 '하나냐'가 다른 부분의 성벽 공사도 담당 했었음을 시사하며(11절), 이것은 곧 여기의 '하나냐'가 8절의 '하나냐'와 동일 인물임을 입증합니다.
살랍의 여섯째 아들 하눈. - '여섯째 아들'이라는 수식 문구는 '살랍'의 많은 아들 중에서 오직 말째에 가까 왔을 한 아들인 '하눈' 만이 성벽 재건에 참여했었음을 강조하려는 것인 듯합니다.
베레갸의 아들 므술람. - 4절의 '므술람'과 동일 인물임이 분명합니다.
따라서 본절의 '므술람'도 두 곳의 성벽을 재건한 셈입니다.
자기의 방과 마주 대한 부분. - '자기의 방'(니쉬카토)은 일반적인 의미의 '방'을 가리키기도 하지만, 특별하게는 성전에 속한 여러 방들에 대해 적용되는 단어입니다(Fensham, 12:44; 13:7).
따라서 본절의 '자기 침방'은 '므술람'이 제사장이었음을 보여주는 증거임이 분명합니다.
그렇다면 '자기 침방과 마주 대한 부분'은 성전과 가까운 성벽을 가리킵니다.
4) 금장색 말기야가 함밉갓 문과 마주 대한 부분을 중수했습니다(31절)
“[31] 그 다음은 금장색 말기야가 함밉갓 문과 마주 대한 부분을 중수하여 느디님 사람과 상인들의 집에서부터 성 모퉁이 성루에 이르렀고 ”
금장색 말기야. - 본절의 '금장색'(초르피)은 8절의 '금장색'과는 달리 단수입니다.
함밉갓 문과 마주 대한 부분. - '함밉갓 문'(솨아르 하미프카드)의 '하미프카드'는 삼하 24:9에서는 '인구 조사'의 의미로 사용됩니다.
따라서 본절의 '함밉갓 문'은 히브리 단어의 음역을 그대로 따르기 보다는 차라리 의미적으로 번역해서 '소집문'(RSV, the Muster gate ; the Inspection gate)으로 옮겨질 수 있습니다(Fensham, Williamson).
이는 백성들이 특별한 일이 발생했을 경우에 그 문 앞으로 소집되었음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문의 위치는 '동편 수문'과 연결된 성벽에서 북쪽으로 약 90m 지점입니다.
따라서 이 '함밉갓문'의 '마주 대한 부분'은 동쪽 외 성벽의 거의 북쪽 끝부분이 되는 셈입니다.
느디님 사람과 상고들의 집. - '느디님 사람의 집'은 그들이 성전 봉사를 하는 동안에만 사용했던 거처로 받아들여야 합니다(Fensham, Williamson).
'느디님사람'의 집은 '오벨' 근처에 있었습니다(26절).
한편, '상고들'(라칼림)은 '돌아다니다'의 뜻을 갖는 동사 '라칼'에서 파생된 명사로서, 활동 반경이 상당히 넓은 상인을 가리킵니다.
아들은 먼 곳에서 물건을 구입해서 팔거나 혹은 자기의 고향 물건을 먼 곳까지 가져가서 팔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은 '금장색'이나 '향품장사'처럼 동업 조합(guild)을 구성하고 있는 것이 보통이었습니다.
여기의 '라칼림'이라는 복수명사는 이들이 동업 조합을 구성하고 있었으리라는 주장을 뒷받침해 줍니다.
성 모퉁이 누(樓). - 성벽의 북동쪽 부분에 있었던 '다락방' 종류였던 것 같습니다. 마치 망대와 같은 기능을 했을 것입니다.
5) 성 모퉁이 성루에서 양문까지는 금장색과 상인들이 중수했습니다(32절)
“[32] 성 모퉁이 성루에서 양문까지는 금장색과 상인들이 중수하였느니라”
성벽 공사의 마지막 부분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도 특수한 직업에 종사 했던 사람들의 열심을 강조하고 있습니다(8절).
양문 - 제사장들에 의해 복구된 바 있습니다(1절).
3장은 성벽 재건과 관계하여 최소한 열두 부류의 사람들을 소개합니다.
즉, 제사자아들(1,22,28절), 여리고 사람들(2절), 미스바와 기브온 사람들(7절), 전문 직업인들(8,31,32절), 성읍 관리들(12,16,17,19절), 여인들(12절), 하눈과 사노아 사람들(13절), 레위 사람들(17절), 성전에서 봉사하는 느디님 사람들(26절), 드고아 사람들(5,27절), 문지기들(29절), 상인들(32절)입니다.
그리고 이 일에 참여한 대표자만 해도 75명이나 됩니다.
이들은 스룹바벨 당시 자신들의 조상들이 기쁨으로 성전 재건의 일에 헌신했던 것처럼(스3장), 자발적으로 이 일에 참여했습니다(4:6b).
저자는 이를 통해 성벽 재건이 귀환 공동체 전체가 참여한 사역이며, 이일로 인해 백성들의 마음이 하나로 뭉치게 되었음을 증언합니다.
백성들은 성벽을 쌓아 올리면서 그동안 무너져 내렸던 신뢰와 화합이라는 벽돌도 쌓아 올렸던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성벽 재건은 공동체의 연합을 이루게 된 기회로 작용한 것이며, 그 배후에 지도자 느헤미야가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도 모두 땀 흘려 주의 교회를 아름답게 세우는 자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나(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1) 성벽 재건은 공동체의 경계를 다시 세우는 일입니다.
성전이라는 구심점이 사라진 후 성벽은 존재 의미를 상실했습니다.
‘거룩’과 ‘세속’의 경계가 사라졌습니다. 모든 땅이 부정해졌습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이 다시 성전에 거하시니, ‘거룩한 성전 공동체 재건’을 위해 성벽을 쌓아야 합니다.
성벽은 하나님의 백성을 성별해 모으는 울타리가 될 것입니다.
2) 한편에 과중한 짐을 지우지 않도록 고루 나누어 감당했습니다.
약 40여 개의 구간을 나눠 일할 분량을 맡았습니다.
좌우로 연한 이들은 서로 협력하여 벽과 벽을 이었을 것입니다.
마음이 하나 되어야만 완성될 공사였습니다.
어느 한 곳이라도 제 역할을 소홀히 하면 그곳이 성전 공동체를 위험에 빠트리는 약점이 될 것입니다.
공동체(재건)를 위해 내게 맡겨진 일은 무엇입니까?
그 일이 다른 이들의 사역과 어떻게 연결됩니까?
3) 신분과 지역과 계층을 초월하여 다양한 사람들이 참여하였습니다(1,8,12,17절).
대제사장(1절), 금 세공업자와 상인들(8,31,32절), 그 지역을 다스리는 관료들(12절), 레위인들(17절)뿐 아니라, 여리고나 드고아, 기브온 등 지역 관할권 밖의 사람들도 찾아와 도왔습니다.
여성들도 참여했습니다(12절). 다양성이 한 목표를 향해 조화를 이룰 때, 그 공동체는 힘을 가지게 됩니다.
4) 모든 이들이 성벽 공사를 환영한 것은 아닙니다(5절).
성벽을 반대하는 외부자들은 적극적으로 훼방했습니다.
한편, 성벽 공사에 무관심한 내부자들도 있습니다(5절).
적극적인 반대자들은 세속화된 공동체에서 기득권을 행사하던 이들입니다.
무관심한 내부자들은 세속에 물들어 벽의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신앙불감증을 앓는 자들입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5) 느헤미야는 가급적 자기 집과 가까운 곳에서 일할 수 있도록 배려합니다(10,23,28~30절).
일하는 자의 부담을 줄여주는 것뿐 아니라, 일을 효율적으로 진행하려는 의도였습니다.
지도자는 일꾼의 형편을 살펴야 하고, 일꾼은 공동체의 유익을 생각하며 제 주변 무너진 곳을 살펴야 합니다.
전체를 내세워 개인의 삶을 희생시키고, 전체의 유익을 무시한 채 제 삶만 챙기는 공동체는 속히 무너질 것입니다.
기도
공동체-공동체를 재건하는 일에서 제 몫의 책임을 감당하게 하소서.
열방-요르단 접경에 있는 시리아 난민 시설에서 수만 명의 난민들이 기아에 허덕이고 있다. 난민을 향한 원조의 길이 열리고 속히 시리아 내전이 끝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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