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문 : 마태복음2장1~12절
제목 : 박사들이 예수님을 찾아오다
헤롯이 이스라엘 왕으로 있을 때에 예수님이 탄생하셨습니다.
동방에서 온 박사들을 통해 또 다른 왕의 탄생 소식을 들은 헤롯과 예루살렘은 한바탕 소동이 일어납니다.
동방 박사들은 베들레헴에서 아기 예수님을 경배하고 다른 길로 돌아갑니다.
1. 동방 박사의 방문(1~2절)
“[1]헤롯 왕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시매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말하되[2]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하니”
1)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름
“[1]헤롯 왕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시매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말하되”
헤롯왕 때에 - 마태는 예수의 탄생 시기가 헤롯왕이 통치하고 있던 기간이라는 데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이것은 역사적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의 탄생 일자를 기산하기 위함이기도 했으며 이스라엘의 왕통이 단절되고 이방인의 통치가 본격적으로 실현됨으로써 '규가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통치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기를 실로가 오시기까지 이르리니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로다'(창 49:10)라는 야곱 예언의 성취를 묵시적으로 제시하기 위해 본절을 언급한 것으로 볼 수도있습니다.y334
여하튼 여기 '헤롯왕'은 정통 유대인이 아니라 에서의 후손인 이두메 사람 안티파터의 아들로서 주전 73년경에 태어났습니다.
그는 '영웅의 아들'이라는 이름의 뜻에 걸맞게 팔레스틴 인접 지역을 B.C. 55년경부터 A.D. 93년까지 통치한 왕조의 실질적인 중흥자였습니다.
실로 그는 25세에 이미 갈릴리의 총독을 역임했고,
그러한 탁월한 정치력으로 로마군의 도움을 받아 그의 반대 세력을 팔레스틴에서 완전히 축출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지나치게 권력에 집착하여 계속되는 로마 정권의 교체 속에서도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백성들로부터 과중한 세금을 징수하고,
각종 건축사역(극장. 원형 경기장, 기념비, 우상 제단,성채 등)에 백성들을 동원하여 고된 부역을 강요했기 때문에 유대인들로부터 비난을 면치 못했습니다.
물론 그런 와중에서도 그는 예루살렘 성전 재건(제 3성전) 사역을 B.C. 20년에 시작하여 그가 죽은 뒤인 A.D. 68년에 완성시킴으로써 주위로부터 부분적으로나마 긍정적인 평가를 받기도 하였습니다.
한편 그는 10명의 아내두었고, 그중 에돔 출신의 첫 아내 '도리스'에게서 안티파터라는 아들을 얻어 자신의 후계자로 생각하기도 했으나 그가 죽기(B.C. 4년) 수일 전에 그의 과대 망상증으로 그 아들을 죽이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마카비가 출신의 둘째 아내 마리암네에게서 두 아들을 얻었으나 그들 역시 그 어미와 더불어 살해 당하고 말았습니다.
또한 대제사장 시므온의 딸이었던 미리암네 2세를 세번째 아내로 맞아 이두메의 분봉왕이 된 빌립 1세를 낳았습니다.
한편 사마리아 출신의 넷째 아 마르다게에게서 아켈라오(2:22)와 안티파스를 낳았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 출신의 다섯번째 아내 크레오파트라에게서 칼시스와 빌럽 2세를 낳았습니다.
여하튼 헤롯은 B.C. 4년에 매우 치명적인 질병에 걸려,
70세를 일기로 최후를 맞아야만 했습니다(19절).
그런데 문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연대를 제시하는 것이 바로 본문이 외에는 성경 어느 부분에서도 제시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예수의 탄생 일자를 산출하는데 많은 애로점이 있다는 것입니다.
전통적으로 학자들은 해롯이 B.C. 4년에 죽었기 때문에,
적어도 예수는 그전에 태어났음이 틀림없다고 믿어왔습니다.
한편 헤롯의 사망 일자에 대해서 유대사가 요세푸스는 그가 죽기 전에 월식이 있었다고 언급함으로써 B.C. 4년 3월 12-13일로 측정케 했습니다.
그에 반해 유대인들의 전승은 헤롯이 죽은 후 유월절이 시작되었다고 증언함으로써 이때를 B.C. 4년 4월 11일 경으로 추정케 합니다.
이러한 여러가지 정황적 증거로 보아 예수의 탄생 연대는 B.C. 5년 후반기나 B.C. 4년 초반기로보는 것이 타당한 듯합니다.
유대 베들레헴 - 이 베들레헴은 '유대'(in Judea)라는 단어와 함께 쓰임으로 갈릴리 호수 근처에 위치한 스불론지파의 베들레헴(수 19:15)과 분명히 구별됩니다.
이 두 단어가 함께 쓰인 것은 2절의 '유대인의 왕'이라는 표현에 대한 암시인 듯합니다.
한편 구약 때 이 지명은 주로 '에브랏', 또는'에브라다'로 불리어졌었습니다(창 48:7;룻 1:2;삼상 17:12;미 5:2).
그런데 이곳은 예루살렘 남방 8km 지점에 위치한 작은 마을로서 메시야가 탄생할 곳으로 예언된 장소이자(미 5:2),
유대의 실질적인 건국을 이룬 다윗왕의 고향이기도 합니다(삼상 16:1-18). 여기서 히브리어 지명 베들레헴(베트레헴)은 '떡 집'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데, 이는 아마 그 지역이 곡식과 과실이 풍성한 비옥한 곡창이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실로 이 지명과 걸맞게 온 인류에게 풍족한 생명의 양식을 주시기 위해 오신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이곳에서 출생하신 것입니다(눅 2:4).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 본 문장의 초두에, 개역 성경에는 번역되지 않은 '이두', 곧 '보라'는 감탄사가 원문에 언급되어 있습니다(1:20).
이는 저자 마태가 본문이 지니는 중요성과 그 진정성을 강조하기 위해서 기술하였을 것입니다.
한편 본문에는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기 위해 내방한 방문객의 출발지와 그들의 지위에 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먼저 '동방으로부터'의 헬라어 '아포 아나톨론'은 '떠오르는' 이란 뜻의 '아나톨레'에서 유래한 말로서 '동쪽으로부터의'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런 사실에서 '동방'을 예루살렘 동쪽에 위치향 특정한 땅, 곧 페르시아, 바벧론, 메데,아라비아, 또는 동쪽에 위치한 모든 곳이라고 보는 학자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문자적 해석 이외에 문화가 발달한 지역일 것이라는 관점에서 소아시아, 애굽, 인도, 그리이스 등지로 보는 학자도 있습니다.
이 같은 다양한 견해들중 '동방'이 바벧론이었다는 견해가 가장 타당한 듯합니다.
왜냐하면 바벧론에는 예루살렘에 상당한 영향력을 미쳤던 유대인 포로들이 정착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즉 메시야에 관한 구약 예언을 사전에 깊이 알고 있었다는 것은 적어도 그들이 유대인과 긴밀한 유대관계에 있었던 자들임을 암시하며, 그런 이유에서 그들은 유대인들이 대거 운집해 있던 바벧론에 거주하던 자들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한편 본문에서는 '박사들의 신원은 명확히 밝히지 않고있습니다, 여기 '박사'로 번역된 '마고이'는 박수나 점장이 등의 엉터리 마술사가 결코 아니었고 꿈을 해석하는 신통력을 지닌 메데, 바사, 또는 바벧론의 제사장읕 언급할 때에 주로 사용되었다(단 2:2, 48;4:6, 7). 특별히 이 용어는 이 때로부터 600년 전에 바벧론의 모든 박수와 술객과 갈대아 술사와 점장이 어른으로 높임 받았던(단5:7,11) 다니엘에게 적용되기도했습니다.
그리고 훗날 그리이스에서는 이 용어를 마술사와 박수 등의 의미로 사용하였습니다(행 8:9;13:8).
한편 터툴리안 당시의 초대교회 전승에 의하면 '마고이'가 왕들이었다고 전합니다. 아마도 이것은 왕들이 와서 메시야를 경배할 것이라는 구약예언들(시68:29,31;72:10,11;사49:7;60:1-6)의 영향을 받아 발전된 듯합니다.
여하튼 박사들이
(1) 점성학적 계산에 따라 자극을 받고 베들레헴을 향해 온 점,
(2) 디아스포라의 영향 등으로 다니엘의 예언 및 메시야에 관한 구약의 각종 예언에 깊은 이해를 하고 있었다는 점 등을 볼 때 '동방 박사'는 바벧론 출신의 천문학과 점성학에 해박한 지식을 지닌 존귀한 자들로 볼 수 있습니다.
6세기 말경에 이르러서는 그들의 이름이 각각 멜콘, 발사살 그리고 가스퍼로 밝혀진 바 있습니다.
예루살렘에 이르러 - '유대인의 왕'으로 탄생한 아기를 찾기위해 유대인들의 정치, 종교의 중심지인 예루살렘에 방문한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2)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2절)
“[2]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하니”
유대인의 왕 - '다윗의 자손'(1:1;9:27;12:23;15:22 등)이란 말이 유대인들이 인식하고 있던 메시야의 별칭이었듯이, 이 명칭은 이방인들이 이해하고 있던 메시야의 별칭이었습니다.
실로 '메시야 대망'은 모든 유대인의 공통된 현실이었거니와 바벧론 유수 사건으로 인해 세계 각처에 흩어진 유대인들에 의하여 유대에서 나시는 메시야가 유대를 구하고 온 세상이 그로 인해 축복받는다는 사상이 널리 퍼져 었었습니다.
한편, 예수 그리스도는 '유대인의 왕'으로 오셨고,
이 이름으로 십자가에서 최후를 맞으심으로써(27:37)
당신의 메시야성을 직.간접으로 드러내셨습니다.
나신 이가 어디 계시뇨 - 동방 박사들의 이러한 질문은 그들이 '유대인의 왕'의 탄생 사실에 대해서 확신하고 있었음을 나타냅니다.
그들은 왕이 이미 나셨고, 그 사실을 모든 유대인들이 당연히 알고 있으리라고 믿고 있는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런데 정작 메시야의 도래를 고대하고 있었던 유대인들 사회에서는 전혀 이 사실을 알지 못했다는 것은 아이러니칼한 일입니다.
이로 보건대 예수는 단순히 혈통적 '유대인의 왕'으로서가 아니라,
영적 '유대인의 왕'으로 이 땅에 오신 것이 분명합니다.
그의 별 - 별을 통해 인간의 중대사를 결정짓고 미래를 예견하는 것은 인간의 오래된 관례입니다.
특별히 하나님께서는 예수의 탄생을 알리는 한 자연 현상으로서 별을 이용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별에 대해 여러 가지 견해가 대두되었습니다.
즉 (1) 자연계의 일반적인 현상과는 무관한 이적적 현상이다(Chrysostom을 위시한 대부분의 초대교회교부들 및 초기 기독교 문서들),
(2) 실재하지 않은 심리적 현상이다,
(3) 혜성(혜성) 또는 폭발로 인해 엄청난 양의 빛을 몇 주 정도 발하는 초신성이다 등이 있는데,
그중에서도 그리스도의 역사적 실존을 확신할 수 있듯이 이 별의 실제적 현상 역시 인정할 만하다는 점에서, 그리고 결코 과학적으로도 모순되거나 결함이 없다는 점에서 세번째 견해가 가장 적절한 것 같습니다.
한편 본서의 저자 마태는 이 부분을 기술하면서 적어도 민24:17의 발람의 신탁, 곧 '한 별이 야곱에게서 나오며 한 홀이 이스라엘에게서 일어나서...'라는 묵시적 예언이 성취되었음을 염두에 두었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마태는 초대 기독교 문서들에서 가끔 발견되는 '별'에 대한 무분별한 알레고리칼한 해석법으로는 본문을 접근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히 본문과 민수기는 둘 다 '별'을 이스라엘의 왕, 곧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이외에도 신약 성경에는 별과 예수 그리스도와의 상관 관계를 적절히 묘하해 주고 있습니다(밸후 1:19;계 22:16).
경배하러 왔노라 - '경배하다'는 뜻의 헬라어 '프로스퀴네오'는 신약 성경에서 그 대상으로 대부분 하나님과 예수를 두었습니다(8, 11절).
그러나 이 말은 일반 헬라어에서 넓은 의미로 '복종하다'는 뜻으로 널리 사용되고 있기 때문에 특별히 이 단어를 근거로 지나치게 그리스도론 정립에 적용시켜서는 안됩니다. 따라서 여기서는 유대인도 아닌 이방인 박사들이
'유대인의 왕'을 알아보고 '경배했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 사용된 것으로 보는 것이 좋습니다.
한편 여기서 '경배'는 페르샤인들의 전통적 인사법을 연상케 하는 말로서 무릎을 꿇고 상대방에게 경의를 표하는 예를 가리킵니다.
2. 헤롯 왕과 예루살렘에 일어난 소동(3~6절)
“[3]헤롯 왕과 온 예루살렘이 듣고 소동한지라[4]왕이 모든 대제사장과 백성의 서기관들을 모아 그리스도가 어디서 나겠느냐 물으니[5]이르되 유대 베들레헴이오니 이는 선지자로 이렇게 기록된 바[6]또 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서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 하였음이니이다”
1) 헤롯 왕과 온 예루살렘이 듣고 소동한지라(3절)
'유대인의 왕'의 탄생 소문은 과대망상증에 시달리던 70세의 늙은 헤롯왕에게 엄청난 충격을 안겨 주었습니다.
그와 더불어 메시야를 갈망하던 예루살렘 백성들까지 헤롯의 병적인 정도의 잔인한 학정과 또는 왕권 교체에 따르는 정변 등을 두려워했을 것입니다.
사실 헤롯은 전에 그의 과대망상증 때문에 그의 아내와 두 아들 그리고 5명의 마카비 용사들을 살해하기까지 했었다(1절 참조).
소동한지라 - 실로 헤롯은 자기 왕권의 위기의식 때문에,
메시야의 오심을 마음으로부터 준비하지 못했던 백성들은 사회, 정치적 혼돈과 생존에의 위협 때문에 심각한 두려움에 떨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는 곧 평화의 왕이시자 모든 역사의 처음과 끝이 되신(계 1:8) 예수의 도래가 악인들에게 미칠 궁극적인 영향력이 어떠한가를 묵묵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2) 왕이 모든 대제사장과 백성의 서기관들을 모아 그리스도가 어디서 나겠느냐고 물었습니다.(4절)
왕이...서기관들을 모아 - 이 모임을 산헤드린 공회로 보는 학자도 있으나 그보다는 주로 종교적 문제들에 대해 헤롯의 자문 역할을 하던 개인적인 성격의 단체입니다.
대제사장 - 원래 대제사장직은 아론의 후손만이 할 수 있는 영구직이었으나, 헤롯이 율법을 어기고 대제사장을 임의로 면직 또는 임명하는 불법을 자행함으로써 종교 질서를 문란하게 했습니다.
그같은 사실은 솔로몬 성전 이래 바벧론 포수전까지(약 410년간) 18명의 대제사장이 교체된 것에 비해 스룹바벧의 성전 재건 후부터 헤롯때까지(약 420년간) 300명이 넘는 수의 대제사장이 교체된 것으로도 중명될 수 있습니다.
서기관 - 국가 기관에 종사하는 일반 서기관은 주로 문서를 담당하는 관리였는데(행 19:35) 비해 유대 종교 집단내의 서기관은 구약 율법에 능통하며 구약의 구전(oral tradition)에 해박한 지식을 가진 일종의 율법 해석자요 교사였습니다.
그리스도가 어디서 나겠느뇨 - 헤롯은 그리스도(1:1)와 유대인의 왕(2:2)이 동일 인물이며, '그리스도'가 유대인들이 대망하던 자의 칭호였음을 알고 있었던 것이 분명합니다(27:37).
3) 유대 베들레헴이라고 합니다(5~6절)
“[5]이르되 유대 베들레헴이오니 이는 선지자로 이렇게 기록된 바”
가로되...기록된 바 - '기록된'이라는 말은 구약성경 내용을 가리키는 것으로서, 그들은 구약 성경을 인용하여 확정적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유대 베들레헴이오니 - 미 5:2에 근거하여 예언된 메시야의 탄생지가 베들레헴임을 지적했습니다(1절).
“[6]또 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서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 하였음이니이다”
이 부분은 미 5:2의 인용이며, 삼하 5:2(대상11:2)이 첨가되어 있습니다.
마태가 독자적으로 변형시킴으로써 미 5:2과 차이가 나게 된 점을 살펴보면 (1) '베들레헴 에브라다' 가 여기서는 '유대 땅 베들레헴'으로 변형되어 있다. 이것은 '에브라다'가 고전적 표현으로서 시적인 부분에만 제한적으로 사용되기 때문에 이러한 변형을 이룬 것 같다.
(2) 미가서의 '유다 족속 중에'가 '유대 고을 중에'로 바뀌어져 있습니다. (3) '작을지라도'와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가 상반된다.
이 두 구절들의 전체적인 해석을 보면 이 차이가 단지 형식적(표면적)인 것에 불과함을 알 수 있다.
(4) 한편 마태는 삼하 5:2에서 인용한 '목자'라는 말을 첨가하고 있습니다.
3. 예수님께 경배하는 동방 박사(7~11절)
“[7]이에 헤롯이 가만히 박사들을 불러 별이 나타난 때를 자세히 묻고[8]베들레헴으로 보내며 이르되 가서 아기에 대하여 자세히 알아보고 찾거든 내게 고하여 나도 가서 그에게 경배하게 하라[9]박사들이 왕의 말을 듣고 갈새 동방에서 보던 그 별이 문득 앞서 인도하여 가다가 아기 있는 곳 위에 머물러 서 있는지라[10]그들이 별을 보고 매우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더라[11]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
1) 헤롯이 가만히 박사들을 불러 별이 나타난 때를 자세히 묻습니다(7절)
“[7]이에 헤롯이 가만히 박사들을 불러 별이 나타난 때를 자세히 묻고”
이에 - 이 용어는 마태가 다른 복음서에 비해(막 9회, 눅 14회, 요 10회) 자주 사용한(약 90여회) 시간을 나타내는 부사로서 '그리고 나서', '그때에' 등으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헤롯이 가만히 그는 이처럼 정치적 술수와 음모에 능통한 자였던 것이다. 한편 마리아와 아이를 살리려는 요셉의 의로운 행동 '가만히'(1:19)와 대조적으로 헤롯의 '가만히' 는 아이를 죽이려는 음모를 암시하는 사악한 행동을 묘사한 것입니다.
박사들을...자세히 묻고 - 아마도 헤롯은 박사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 극진한 예우로 대했을 것입니다.
한편 '별이 나타난 때'를 묻는 헤롯의 질문을 통해 예루살렘에서는 그 별이 아직 감지되지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의 질문 속에는 어린 왕의 탄생기점을 알아내어 '베들레헴과 그 모든 지경 안에 있는'(16절) 사내 아이들을 살해하려는 무서운 음모가 감추어져 있었습니다.
헤롯은 태어난 '유대인의 왕'이 훼파된 다윗왕국을 회복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보내신 메시야임을 눈치 채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그의 간악한 계획은 결국 하나님께서 세우고자 하시는
'메시야 왕국'에 대한 정면 도전이었던 셈이었습니다.
2) 아기에 대하여 자세히 알아보고 찾거든 알려 달라하였습니다(8절)
“[8]베들레헴으로 보내며 이르되 가서 아기에 대하여 자세히 알아보고 찾거든 내게 고하여 나도 가서 그에게 경배하게 하라”
베들레헴으로 보내며 - 헤롯은 박사들로부터 충분한 신뢰를 얻었다는 자신에 차 있었기 때문에 박사들에게 염탐꾼을 딸려보낼 필요성을 느끼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그의 생각이 빗나간 것(16절)임을 뒤늦게 알게되었습니다. 진정 그는 이 이방의 박사들이 하나님의 주권적 간섭으로 인한 지시(12절)대로 옴직이게 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던 것입니다.
나도 가서 그에게 경배하게 하라 - 자신의 추악한 음모를 은폐하기 위하여 경건을 가장한 혜롯의 위선입니다.
아기 예수를 살해하기 위한 계략의 겉포장은 '경배'였습니다.
이와 같은 거짓 경배는 예수께서 섭자가에 달리실 때에 로마 군사들의 모독과 조롱에서도 나타나고 있다(27:29)
3) 별이 아기 있는 곳에 머물러 서 있습니다(9절)
“[9]박사들이 왕의 말을 듣고 갈새 동방에서 보던 그 별이 문득 앞서 인도하여 가다가 아기 있는 곳 위에 머물러 서 있는지라”
박사들이 왕의 말을 듣고 갈새 - 본서의 기자 마태는 분명히 '별'이 박사들을 예루살렘으로 인도했다고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더욱이 그들이 10절에서 별을 보고 기쁨을 표한 것은 적어도 별이 계속 보이지 않았음을 시사합니다.
아마도 그 당시 '별'을 통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던 박사들이 그 '별'이 보이지 않게 되자 유대인의 왕이 탄생할 장소는 당연히 예루살렘일 것이라는 스스로의 판단에 따라 예루살렘을 찾았고, 또 그 당시 유대의 유력자 헤롯의 '말'을 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헤롯의 경건하게 보이는 말에 고무되어 있었을 것입니다.
동방에서 보던 그 별 - 자신들의 지혜에 의해 길을 잘못 들었던 박사들에게 바른 길을 제시하는 하나님의 밝 은계시의 별이 다시 나타났습니다.
실로 혼탁하고 부패한 세상 가운데서 참 생명되신 예수께로 인도하는 유일한 힘은 하나님의 계시뿐이다(시 119:105).
한편 본문은 박사들이 궁(宮)을 떠날때 이미 밤이 되었다는 사실을 암시하고 있다. 낮이 무덥고 밤이 서늘한 중근동 지방에서는 먼길을 가기 위해 밤에 별을 보고 여행하는 것이 관습이었습니다.
문득 앞서 인도하여 가다가 - 박사들은 그 별이 '유대인의 왕'(2절)을 가리킨다고 믿었고, 그 별은 그들을 '아기 있는 곳'으로 인도한 것입니다.
아기 있는 곳 위에...섰는지라 - 별은 아기가 '있는' 곳에 조금도 움직이지 않고 굳게 '머물러' 있었습니다.
실로 그곳에 바로 인도와 축복과 그리고 구원이 있었습니다.
정녕 다윗의 자손 예수께서 '머물러 서'(눅 18:40) 있는 곳에 구원이 있는 것입니다.
4) 그들이 별을 보고 매우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더라(10절)
“[10]그들이 별을 보고 매우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더라”
'별을 보고'라는 말은 그들이 새삼스럽게 별의 나타남(7절)을 보았다기 보다, 아기 예수위에 '머물러 서'있는 별이 자신들의 기나긴 여행의 최종적인 목적지로서 하나님의 임재하심과 은혜, 곧 임마누엘 이신 예수(1:23) 탄생을 드디어 목격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을 확신하였다는 말입니다.
이 확신은 그들로 하여금 세상에서 맛볼 수 없었던 무한한 기쁨의 세계로 들어가게 했습니다.
'기뻐하고 기뻐하더라'는 '기쁨을 기뻐했다'가 됩니다.
본문은 박사들의 기쁨이 절정에 이르렀음을 보여줍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뜻에 무관심한 택한 백성들의 소동(3절)에 비하여 얼마나 값진 일입니까.
그들은 샛별(벧후 1:19)의 인도를 따라 왔기 때문에 의의 태양이신 그리스도를 뵐 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즉 그들의 기쁨은 자신들에게 닥친 크나큰 행운(메시야를 만나 보는 일)을 볼 수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5) 경배하고 예물을 드립니다(11절)
“[11]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
집에 들어가 -누가복음에는 '아기가 나신 곳'이 마구간으로 되어 있습니다(눅 2:7). 그에 비해 본문에는 '아기가 있는 곳'이 집으로 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동방 박사들이 방문한 시기는 로마 황제 가이사 아구스도의 명에 의한 호적, 곧 인구 조사(눅2:1)가 끝난 얼마 후(아마 수개월 경과 후) 요셉이 거처를 마련한 다음이었을 것입니다.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 여기서 상대방에게 무릎을 꿇고 '엎드려 경배'하는 것은 헬라나 로마의 예법이 아니라 동방의 예법입니다(2절).
동방 박사들이 경배했던 대상은 마리아와 '함께'가 아니고,
오직 아기 예수 뿐이었습니다.
즉 그들은 헤롯에게나 아기의 부친과 모친에게도 경배하지 아니했습니다.
경배의 대상은 오로지 만왕의 왕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 한 분 밖에 없는 것입니다(4:10).
*마4:10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보배합 - 이 단어는 번역이 애매하게 된 것으로 '귀중품 상자'나 '보물 상자'를 의미합니다.
그들의 '보배합'은 그들의 아름답고 고귀한 마음(예물)의 저장소였습니다(6:20).
황금과...예물로 드리니라 - 이 내용은 이방의 왕들이 메시야 앞에 예물을 드리고 복종하게 될 것이라는 구약 예언(시72:10;사 60:6)의 분명한 성취입니다.
한편 고대 동양 풍습에서는 왕을 알현할 때 예물을 가지고 가는 것이 상례였습니다(창43:1;삼상9:7,8;왕상10:2).
박사들이 헌상한 세 가지 예물 중
황금은 동서 고금을 통해 매우 값지고 불변하는 성질의 귀중품으로 여겨져 왔다.
그릭고 유향은 값비싼 향료로서 반질반질하고 향내나는 흰색의 액체이며,
아라비아 지방의 관목 껍질에 자국을 내어 얻는다.
또한 몰약은 역시 주로 아라비아 지방에서 자라는 나무에서 추출되는 것으로서 상당히 고가의 향기를 지닌 액체입니다(시 45:8;아 3:6).
이는 시체를 썩지 않게 하는 방부제 내지는 마취제로 사용되었다(막 15:23). 그런데 고금의 많은 주석가들에 의하면 이 예물 가운데,
황금은 메시야 왕권을, 유향은 예수의 신성을, 그리고 몰약은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을 상징하는 것으로 여겨져 왔습니다.
이에 대하여 칼빈은 왕과 제사장과 그분의 장사되심을 각각 상징한다고 봅니다. 어쨌든 동방 박사들의 종교적 동기를 이해한다면 예물들에 상징적인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 옳다고 봅니다.
여기서 예물이 세가지라는 사실에서 동방 박사들을 세 사람이라는 교회 전승이 형성되게 되었습니다.
어떤 전설에 따르면 완전 수에 해당하는 '12'명의 박사라고도 전합니다.
한편 이 세 예물들은 모두가 값비싼 것들로서,
예수의 가족이 애굽으로 피신하였을 때(14절) 요긴하게 사용되었을 것입니다.
4. 경배하고 돌아가는 동방박사(12절)
“[12]그들은 꿈에 헤롯에게로 돌아가지 말라 지시하심을 받아 다른 길로 고국에 돌아가니라”
꿈이란 신탁으로 의문시했던 사실에 확실한 해답을 얻는 행위, 또는 공무수행을 위해 조언을 받거나 주는 행위를 가리킵니다.
따라서 이 말은 앞으로의 자신들의 행동을 결정치 못하고 주저했던 동방 박사들의 계시 요청에 따라 하나님의 응답으로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그런데 여기 언급된 '꿈'은 본서의 초두에서 두번째로 나오는데, 첫번째(1:20)와는 달리 주의 사자가 등장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이 꿈은 아기 예수를 지키시기 위하여 헤롯의 악한 계획을 무산시키시는 하나님의 직접 계시로 볼 수 있습니다.
다른 길로 고국에 돌아가니라 - 하나님께서 박사듸에게 헤롯의 눈길을 벗어나서 고국으로 돌아갈 수 있는길을 가르쳐 주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정확히 어느 길로 갔는지는 분명하지 않고 다만 예루살렘을 피하여 사해의 남단으로 돌아갔든지 요단강을 건너 돌아갔을 것이라고 추측할 뿐입니다.
이처럼 예수를 참으로 만난 자는 지금까지 걸어 왔던 길을 버리고 다른 길, 즉 생명과 진리의 길(요 14:6)로 가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어떤 분입니까?
1) 예수님은 진짜 왕이십니다(1,2절).
예수님은 헤롯이 통치하는 위험한 상황 속에서 탄생하셨습니다.
헤롯은 왕으로 오신 예수님을 죽이려고 종교 지도자들을 불러 모아 예수님이 태어나실 곳을 자세히 묻고 동방 박사에게 자신도 경배하러 가겠다고 거짓말을 합니다.
헤롯은 얼마 지나지 않아 죽지만, 그의 뒤를 이어 왕이 된 아들들도 다를 것이 없었습니다.
이처럼 왕이신 예수님과 그 왕을 따르는 사람들은 세상 왕들에게서 미움과 핍박을 받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참된 왕으로 고백하며 따르겠습니까?
2) 온 세상의 왕으로 오셨습니다(9~11절).
동방에서 온 박사들은 별의 인도를 따라 아기 예수님을 찾아왔고,
경배와 예물을 드렸습니다.
유대인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께서 이방인의 경배와 예물을 받으셨다는 것은 예수님이 구약성경에 예언된 대로 온 세상에 하나님의 정의와 평화를 실현하기 위해 오신 메시아이심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유대인만의 왕이 아니라 온 세상의 왕이십니다.
3) 우리의 열심은 하나님의 뜻과 일치할 때 가치가 있습니다(3~8절).
동방 박사들은 먼 이국 땅에서부터 예수님을 경배하려고 별을 따라 왔습니다. 헤롯은 예수님의 탄생에 관해 자세히 묻고 또 자세히 알아보지만 이는 예수님을 경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죽이기 위해서였습니다.
지금 내가 자세히 알아보며 적극적으로 하려는 일은 무엇입니까?
혹시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일에 열심을 내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의 열심을 가치 있게 만드는 것은 열심의 강도가 아니라 열심의 방향입니다.
4) 인간의 계략으로는 하나님의 계획을 이길 수 없습니다(12절).
헤롯은 동방 박사들을 속여 왕으로 오신 예수님을 죽이려 했지만,
하나님은 박사들이 다른 길로 돌아가도록 하셔서 헤롯의 계략을 무력화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을 따르는 것이 최상의 계획입니다.
기도
공동체-이 세상의 진정한 왕이신 예수님께 경배와 찬양을 드리며, 충성스러운 백성으로 살게 하소서.
열방-카자흐스탄에서 합법적으로 사역하고 있는 외국인 사역자들이 불법선교 혐의로 추방당하는 일이 발생하고 있다. 정부의 종교법 악용과 외국인 선교사들에 대한 탄압과 추방이 중단되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