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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포럼]춘천 문화행정 전문성 높여라 | |
정옥자 서울대 명예교수 | |
<강원일보 2012년 11월 21일자 게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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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정년을 맞으면서 고심 끝에 고향 춘천에 책을 위한 공간을 마련하였다. 막상 작지만 책으로 가득한 나만의 공간을 만들자 서재 이름을 지어야겠다는 욕심이 생겼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문소재(聞韶齋)였다. 글자 그대로 풀면 `평화의 음악을 듣는 집'이다. 여기서 소(韶) 자는 동양의 이상적 평화시대였던 요순 삼대의 음악을 뜻한다. 춘천의 옛 지도에 있는 문소각(聞韶閣)에서 차용한 것이다. 문소각은 춘천의 진산 봉의산(鳳儀山)에 제의를 행하던 곳이다. 봉의산의 봉 자가 봉황이라는 것은 누구나 알 수 있겠지만 의(儀) 자에 춤춘다는 뜻이 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따라서 봉의산의 글자풀이는 `봉황이 춤추는 산'이다. 실제로 남춘천 쪽에서 보면 봉의산은 새가 춤추는 모습이다. 봉황이 춤을 추려면 음악이 있어야 하니 문소각이라는 이름을 지은 것이다. 이렇게 유래를 따지고 스토리를 만들 수 있는 것이 역사의 힘이고 문화재에 대한 전문성의 힘이다. 또 하나의 예는 사창고개 이야기다. 어려서부터 사창고개를 오가며 그 지명이 무슨 뜻인지 궁금했지만 아무도 알려 주지 않았다. 그래서 찾아보니 사창의 한자는 司倉이었다. 소양강의 조운을 이용하여 집합된 세곡을 보관하던 사창이 있던 고개라는 뜻이다. 고지도에 그렇게 표기되어 있고 지형으로 보아도 이곳이 소양강과 지근거리면서 높은 지대이므로 홍수나 물난리에 대비하여 세곡 보관 창고를 두었던 것이다. 그 후 나는 사창고개 자락에 있는 막국수 집으로 서울 사람들을 안내할 때면 반드시 고개이름의 유래를 알려주는 것을 낙으로 삼았다. 그때마다 그 옛날 곡식으로 가득한 복 받은 땅이라는 뜻을 찾아줌으로서 사창고개가 고색창연한 길지가 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결국 문화재에 대한 인식은 우리의 뿌리를 찾아 자부심을 높이는 작업과 맞물려 있다. 춘천시의 이에 대한 인식 부족으로 시청에는 문화재 전문직이 없다고 한다. 양구와 더불어 도내에서 전문직이 없는 두 곳으로 꼽힌단다. 현재 알려진 춘천의 문화재는 37점이고 양구의 문화재는 7점이다. 문화재 보유 수로 보나 도시의 규모로 보나 양구와 춘천은 비교대상이 아니니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춘천이 굴뚝산업이 없는 청정 도시로 살아가야 함은 선택이 아닌 필연이다. 서울의 식수원에 위치하였으니 희생하라는 것이 아니라 개발시대가 끝난 이 시대에 춘천은 녹색 청정도시로, 호반의 도시로 자연친화적인 도시 이미지를 제고하며 발전시켜야 할 도시다. 그러자면 문화예술은 물론이고 그 뿌리인 역사와 전통, 문화재에 대한 인식을 제대로 하며 가꾸어가야 할 것이다. 앞서 예화를 들었듯이 춘천에 문화의 향기를 입히려면 춘천의 역사전통을 제대로 파악, 콘텐츠를 만들어 그것을 활용하여 스토리텔링을 하는 것으로 시작하여야 한다. 실속없이 이름만 박물관으로 붙은 박물관들을 만들어 예산을 축내거나 축제나 열어서는 일시적인 효과를 얻을 뿐이다. 또한 문화예술과 문화재를 혼동하지 말았으면 싶다. 문화재 행정은 전문성이 있어야 하고 장기적인 안목이 있어야 한다. 2년마다 갈리는 일반직 공무원이 할 수 있는 일은 문서 돌리는 일뿐이다.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아니 흔들린다. 춘천은 고대에 중요 도시였다가 근대에 와서 다시 각광받아 강원도의 수부도시가 되었다. 전통의 뿌리라는 면에서 강릉과 원주에 밀리고 정체성이 약한 것이 약점이다. 그래서 단결력이 부족하고 뚝심이 없다는 비판도 받는다. 반면 텃세가 심하지 않고 도시적인 감각도 있다. 앞으로 춘천은 뿌리를 튼튼하게 내리는 작업부터 힘써야 하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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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이런 고언을 하실 분이 춘천에 계시다는 이유만으로도 위안이 됩니다.
제주도 민속마을 들어서면서 절대로 현혹되서 물건 사지 말자 가족끼리 굳은 약속했건만 문화적 해설 곁들인 상술에 말꽝 오미자차 등 엄청 샀던 일. 짠돌이 아내도 이런 상술에 넘어가고 말더라구요. 물건을 그냥 파는 것이 아니라 문화와 스토리텔링을 곁들여야 함을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그냥 지나치면 돌에 지나지 않지만 수석 전문가의 눈으로 보면 엄청나게 비싼 돌이 될 수 있습니다. 춘천 문화를 가치있게 만들어 낼 전문 공무원 양성 필요하다는 글 잘 읽었습니다.
정옥자 교수님의 이런글들이 춘천의 정체성찾기와 역사적 가치 재조명에 밀알이 될것이라 믿습니다..
실비막국수를 사주시던 날 했던 사창고개 이야기를 아예 글로 쓰셨네요! 짧지만 명쾌무비한 글입니다! 우리 연구회의 어깨가 무거워지네요!
글의 마지막 부문에''' 그래서 단결력이 부족하고 ... 문항이 제일 와 닿습니다. 실례로 보면 근간에 개통한 복선전철을 시민 대부분 일각에서는 정족리부터 춘천역까지 지하화해야 한다는 의견이 왕왕했습니다. 저도 그런 생각이었습니다.그러나 춘천시민이나 환경단체에서는 반대하는 쪽이 그리 없었지요. 시행청에서는 지하화 하면 건설비가 몇배 더 들어가고 향후 괄리 유지비도 몇배 더 들어 간다는 이유에서였지요. 지금 보세요 전철밑에는 겨우 온의동쪽 풍물시장쪽으로 조금만 사용하고 정족리서부터 내리 전철다리밑에는 아무런 쓸모없는 터로 내던져 지고 있지요. 앞으로 어떻게 활용될 것인지는 시에서도 뚜렷한 대안을 내놓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