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승(姜昇)에 대하여
1430(세종12)∼1500(연산군6).(주) 생몰년
본관은 진주(晉州).(주2) 본관
한국국학진흥원 《완휴재선생실기》 참고
자는 자양(子揚), 호는 완휴재(玩休齋).
대제학(大提學) 강회중(姜淮仲)의 증손(曾孫)이며, 송산군(松山君) 강순(姜純)의 아들이다. 강호(江湖) 김숙자(金淑滋)의 문인(門人)이다.
1447년 생원시에 합격하였고,(주3) 생원시 합격 한국국학진흥원 《완휴재선생실기》 참고
문음으로 벼슬을 시작하여(주4) 출사 한국국학진흥원 《완휴재선생실기》 참고
여러 주군(州郡)을 관장하면서, 농업을 권장하고, 학업을 흥하게 하였다.
김제(金堤)에 부임하여 단종(端宗)이 임금의 자리를 내놓았다는 이야기를 듣자, 벼슬을 그만두고 돌아갔다. 세조(世祖)가 송산군(松山君)에 봉했으나 받지않고, 동봉(東峰) 김시습(金時習)과 함께 계룡산(鷄龍山)에 들어가 초혼제(招魂祭)를 지내고, 단종을 삼현사(三賢祠)에 모셨다. 1784년(정조8)에 지방 유림들이 뜻을 모아 건립한 전라북도 김제의 봉서사(鳳棲祠)에 배극렴(裵克廉)과 함께 봉안(奉安)되었다. 사당이 있는 봉서서원(鳳棲書院)은 1869년(고종 6)에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어 복원되지 못하였다.
[주1] 생몰 : 한국국학진흥원 《완휴재선생실기》 해제 참고
[주2] 본관 : 한국국학진흥원 《완휴재선생실기》 참고
[주3] 생원시 합격 : 한국국학진흥원 《완휴재선생실기》 참고
[주4] 출사 : 한국국학진흥원 《완휴재선생실기》 참고
[참고문헌]海東人物志, 性潭集(宋煥箕, 한국문집총간 244∼245집, 민족문화추진회), 완휴재선생실기(琓休齋先生實紀)
첫댓글 위글 제목으로는 맞을까? 하고선
내용은 바르지 못한 족보를 옮겨 놓으시니 우리가 이를 바르게 고쳐야 합니다
안명安命은 통계공의 제3자가 될 수 없는 인물로 고려공양왕2년(洪武庚午1390)에 정려를 받은 분이라고
진양지의 고려조 효자에 기록된 인물인데 그의 상계가 불명하고
1761년 청주보에 처음 휘諱만 올라 있습니다
1899효자공파족보 발간시 홍무경오는 오작誤作 운운하며 60년을 임의로 내려
경태경오(1450)라 고집한 결과를 우리 강문에서 받아드린
잘못임을 기회있을 때 밝혀 드리리다
효자공파로 입보된 후손들의 민감한 사안이므로 관련 근거자료를 가지고 설득해야 할 것입니다
저의 좁은 소견은 강승이하 창파創派함이 타당할 것 같은데 함께 풀어 봅시다
본문과 댓글은 당분간 타인이 볼 수 없도록 秘처리 부탁합니다
동문서답을 하십니다 그려~
본 글에서 <찾아야 할 분>을 강조하신다면
상계가 불명하신 두 분의 조상님들을 찾으셔야지요
상계가 불명하신 두분은
바로 안명安命과 승昇을 말합니다.
안명과 승은 순純을 매개로 부자父子관계, 조손祖孫관계를 증명할 수 없음이
1685남한보와 1761청주보의 족보내용을 검토해 보시면 확인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안명은 통계공의 셋째 아들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진양지를 봐라>라는 94년도 진주강씨대동보는
말 그대로 웃기는 엉터리족보라 자수하는 것이죠~!
글 제목중에
송산군純- 처사昇은
처사純- 송산군昇이
아닐까요?
그리고 글중에
송산군에 봉했으나 받지 아니했다 하면서
송산군昇이라 하는 것도
앞ㆍ뒤가 맞지 아니하구요
그래서 처사昇이라 하신 것인지?
송산군 순(純)은 족보에는 호군(護軍)으로 적혀있네요. 아마도 오류인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