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교는 행복과 자비의 종교이다.
괴로움의 원인을 알고 그 괴로움을 소멸해서 행복을 얻는 것.
불교의 행복은 = 이고득락離苦得樂이다.(고통을 벗어나면 그 자리가 락이다.)
행복은 정해진 것이 아니라 각자의 특징에 따라 고통에서 벗어날 때가 행복이다.고 부처님은 정의한다.
* 부처님은 행복을 이렇게 말씀 하셨다.
현생 - 5욕락(재,색,식,명,수)을 만족할 때 느끼는 것 ---요즘 사람들도 조건이,(돈,색욕, 명예,사랑, 성공) 있으면 행복하다고 생각
다음생 - 좋은 조건에 태어나는 것, 부자집, 천상, 좋은 가문, 좋은 부모 등
두 가지도 행복은 맞다. 하지만 이 두 가지는 변한다. 그래서
궁극의 행복 을 원한다면- 변하지 않는 것을 바라면, 해탈을 목적으로 해라.
* 제가불자에게 부처님은 행복을 얻으려면 이렇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1,전문 기술을 가져야 한다.재물을 얻는다.
2, 사람을 대할 때 자비로와야 한다.관계를 바꾼다. 인복이다.
내생의 행복을 얻으려면 --보시와 지계를 행하면 천상에 태어난다.
보시(布施)와 계(戒)를 지키면 금생에 행복하고
내생(來生)에 더 좋은 곳에 태어난다.
이것을 시계생천(施戒生天)이라 한다.
* 수행자에게는 행복을 깨달음으로 궁극의 행복을 찾아야 한다고 했다..
보시(布施)는 남을 돕고 남을 이롭게 하는 것이다.
4섭법이 있다.(보시섭·애어섭·이행섭·동사섭의 4가지 행위)
부드러운 말 한마디, 따뜻한 미소, 친절함 이런 것들이 진정한 보시이다.
남을 이롭게 하면 나 자신에게 이롭다. 이것은 부처님의 교법(敎法)으로 진리의 말씀이다.
계(戒)는 이웃과 더불어 도덕적인 삶을 말한다. 제가자는 10계,비구니는 250계 비구니는348계
* 자비의 종교인 불교 (慈悲喜捨)
보시와 지계의 대표적인 내용이 자비이다.
자비(慈悲)- 자비희사(慈悲喜捨)의 준말로 자(慈)는 사랑하는 마음, 비(悲)는 슬픈 마음까지 모두를 감싸주는 마음을 말한다.
자비희사(慈悲喜捨)-자(慈)는 사랑하는 마음, 비(悲)는 슬픈 마음, 희(喜)기쁘게 해 준다. 사(捨)는 모든 마음을 버린다는 뜻으로 한량없는 마음을 일으키는 4무량심(四無量心)이라고 한다.
자비의 대표적인 보살이 관세음보살이시다.
보살(菩薩)-보디사트바(Bodhisattva)의 음사(音寫)인 보리살타(菩提薩埵)의 준말로깨달음을 구하는 중생 혹은 수행자로 성문승, 연각승 다음의 보살승으로 부처가 되기 직전의 높은 단계다. 대승불교에서 중생 교화로 자비희사(慈悲喜捨)를 실천하는 대표적인 구도자의 상징이다.
천수경이 관음신앙의 경전이기에
이러한 행복과 자비에 대한 이해와 다짐과 실천의 경전이다.
○ 개경게 開經偈(경전을 찬탄하는 게송)
* 개경게- 우리가 증득해야할 법의 위대함에 대한 것을 말함 .....
법을 대하는 태도와 법의 순서에 대한 이해(信慧行證),
경을 펼치기 전에 경을 찬미(여는)하는 게송입니다.
*게송이란- 싯귀로 된 노래를 의미하며 흔히 다섯자, 일곱자로 된 정형구를 게(偈)라고 합니다. 대표적인 법성게가 있습니다.
무상심심미묘법無上甚深微妙法
더없이 높고 깊은 부처님법(관조반야) 묘한 진리
무상(無上)이라는 것은 ‘위가 없다, 최상이다’라는 뜻이다. 위 없이 아주 깊은 - 심심- ,
매우 깊은 미묘한 법 - 부처님의 가르침 (실상반야)
백천만겁난조우白天萬劫難遭遇
백천만겁 지내어도 만나뵙기 어려워라
부처님의 가르침을 만난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다는 뜻.
불교에서는 흔히 ‘인신난득(人身難得)불법난봉(佛法難逢)’이라 말합니다. 사람 몸을 받아 태어나기도 어렵지만 부처님의 법을 만나기는 더욱 어렵다는 뜻입니다. 불법을 만나기가 얼마나 어려운가를 비유하여 경전에서 “맹구우목(盲龜遇木)이다 - 눈먼 거북이가 잠깐 쉬려고 넓은 바다위로 올라왔다가 구멍난 나무토막을 만나는 것과 같다. 그 정도로 불법의 인연은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아금문견득수지我今聞見得受持
제가 이제 듣고 보고(문자반야) 얻어 받아 가지니
문견득수지는 불법을 듣고, 경전을 보고, 그래서 그것을 받아 지녀 확실히 내 것으로 만든다는 교육의 다섯 단계로도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문자반야)
원해여래진실의 願解如來眞實義
부처님의 참뜻 원하 오니 깨달게 하소서(실상반야)
‘여래의 진실한 뜻을 깨닫게 해 달라’는 뜻
우리가 불법을 공부하는 뜻이 바로 이 구절에 있습니다.
부처님은 지혜와 복덕을 모두 갖추었다하여 ‘양족존(兩足尊)’이라고도 합니다.
부처님은 무한한 공덕으로 10가지 이름을 성취하였으니 이를 가리켜 ‘여래십호’라 합니다.
여래란 부처님을 가리키는 말로 여래십호의 하나이다. ‘진여(眞理)의 세계에서 오실분 혹은 오신 분’이란 뜻으로 진리의 세계에서 오시고 다시 진리의 세계로 드시는 분이라는 의미인 것입니다.
중생법 자체의 실상(衆生法)이자 중생이 바로 여래장의 묘함(衆生妙)임을 밝히는 법이므로 미묘법인 것이다.
여래의 미묘법은 윤회의 문을 막아 해탈열반을 이루며, 탐진치를 돌려 보살의 대자비를 성취케 하는 생명의 길입니다.
그러므로, 이 법을 듣는 대중은 경을 통해 문자와 말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문자반야를 통해 관조반야의 밝은 지혜를 열고, 반야의 밝은 빛으로 존재의 실상과 해탈의 길을 생활 속에 구현해가야 하는 것입니다.
*반야는 3종류 -실상(부처님이 깨달은 실상)반야, 관조(수행)반야, 문자(경전) 반야
*겁- 1펼방키로비터의 크기에 겨자씨가 가득한데 선녀가 100년에 한번씩 가져감.
○ 개법장진언 開法藏眞言(법장을 여는 진언)
옴 아라남 아라다(세번) 법의 창고를 여는 진언’이란 뜻
오 아라남 아라다 (오, 심연 깊숙히 들어가서 유희 하다.-行)
아라다는 ‘만족’이란 뜻입니다.
법회,법의 바다를 깊이 들어간다.
(번뇌없는 편안한 마음으로 항상 만족하게 하소서)
아라남은 무쟁삼매(無諍三昧; 마음이 편안하여 아무 갈등이 없는 상태)라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경전을 펼치거나 법회를 할 때 마음에 온갖 번뇌와 잡념이 가득하면 그것은 유쟁삼매(有諍三昧)입니다.
다시 말해서 번뇌가 없는 마음, 갈등이 없는 통일된 마음이 무쟁삼매(無諍三昧)입니다.
그렇게 되어야 비로소 경전을 펼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경전을 펼쳤을 때 경전과 자기 자신이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그 때 비로소 우리는 만족을 얻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진언의 뜻은 ‘번뇌가 없는 편안한 마음으로 법열 속에서 만족한다’는 말이 됩니다.
여기가지가 경전을 지송하는 마음가짐과 몸가짐, 이러한 것들을 다시 한번 새롭게 다지는 그런 부분이며 모든 경전을 독송할 때 한다. 지금부터 설명하는 부분이 본격적인 천수경이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