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자서전
[ 꺄악!!!! 한 왕 거미 한 마리가 우리에게 조금씩 조금씩 다가온다. 그리고 우리 둘을 거미줄로 칭 칭 감는다. 그리고 우리를 먹으려고 하는지 입을 벌린다. 나는 너무 놀라서 아무 소리도 내지 못한다. ]
“하아!!하아!!하아!!” 엄마는 잠에서 깼다. 엄마는 이 꿈은 왠지 이상한 느낌이 드는 것 같았다. 악몽인 것 같기는 했지만 무언가 기분이 묘했다.
그리고 몇 주 뒤 엄마는 배가 조금 씩 불러오는 것 같기도 하고 그냥 막 몸이 피곤해져서 혹시나 하고 병원에 찾아갔다. 그러자 의사가 말하기를 임신 이라고 말했다.
엄마는 그 때 너무나도 기뻤다. 아빠도 엄마의 임신 사실을 알고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엄마는 임신 기간 중에 물론 힘들기도 했지만 내가 발로 배를 찰 때마다 나의 신호가 들릴 때마다 내가 커가는 것을 느낄 때마다 너무 너무 기뻤다. 그러고 2000년 9월 9일 저녁 9시 경 드디어 “응애~~~!!!!”하고 우렁찬 울음소리가 엄마의 기나긴 고통 속에서 들려왔다. 엄마는 그 당시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기에 수중 분만으로 고통을 그나마 줄이지도 못했고 많이 고통스러웠다. 내가 엄마의 고통을 생각하니 엄마에게 너무나 미안한 마음이 든다. 나는 서울 oo산부인과에서 태어났다. 그 당시 나의 태명은 ‘수’였다. 나는 지금도 그 태명의 의미를 정확히 잘 모르겠다. 하지만 아빠가 정한 것이라니 그냥 뭔가가 기분이 좋다. 그리고 내가 태어나자마자 내 이름은 박소정으로 정해져 있었다. 내가 임신 때 엄마가 잘 몸을 대해서 나는 태어나서 많이 울지도 않고 순했다고 한다. 그래서 엄마는 나를 키울 때 많은 어려움이 없었다. 나는 잘 울지도 않았고 순했다. 그래서 외할머니는 나를 아껴주셨다. 그리고 내가 애기 때 외할머니는 나를 업고 자주 밖에 다녔다. 특히 대학교 앞에 많이 나를 업고 나갔다. 그럴 때마다 많은 대학생 언니들이 나를 보고 인형으로 알았다고 한다. 나는 그 때 아빠의 유전자를 받아서 선천적으로 뽀글 머리였고 하얀 피부를 가지고 할머니가 사주신 예쁜 옷을 입어서 그런지 언니들에게는 인형으로 보였을 수도 있다. 그리고 내 돌 때는 나는 순했기 때문에 잘 진행이 되었다고 한다. 나는 돌잡이를 할 때 바로 연필을 잡았다. 나는 길쭉하게 생긴 그 연필이 정말 궁금했었나보다. 나는 어렸을 때 외할머니와 많이 같이 지냈던 것 같다. 외할머니는 나를 잘 보살펴주셨다. 그러다가 내가 3살이 되었다. 그런데 그 때 엄청난 사건이 많이 일어났다. 우선 엄마의 배가 커진 것이다. 엄마 말로는 엄마 배속에 아기가 있다는 것이다. 그 아기가 바로 내 동생이다. 그런데 그보다 큰 사건이 있었다. 외할머니가 아파서 돌아가신 것이다. 그 때 당시 엄마는 임신 중 이셨는데 너무 많이 울었다. 그리고 그 때 나는 잘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내가 엄마가 울 때 엄마의 눈물을 손으로 닦아주었다고 한다. 그리고 2002년 10월 25일 드디어 엄마 배속에 있는 내 남동생이 태어났다. 내 동생의 태몽은 엄마가 꾸었는데 엄마가 길을 가다가 다이아몬드 반지를 줍는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내 동생 돌 때도 돈을 주었고 손금도 부자 손금이라고 하고 얼굴도 부자 상이라고 한다. 그리고 정수를 엄마가 임신하고 있었을 때 외할머니가 돌아가셔서 엄마는 정말로 많이 울었다. 그런데 그 슬픔이 임신 중이었던 아기에게도 영향을 미쳐서 정수는 태어나서 정말로 까다로운 아이고 잘 울고 엄마가 키우기 힘들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엄마는 정수에게 무척 미안해 하셨다. 엄마가 자신의 감정 하나를 컨트롤 하지 못해서 정수에게 까지 태를 끼쳤다고 너무 미안해 하셨다. 그래서 엄마는 정수에게 많은 사랑을 주었다. 내가 어렸을 때 내가 순했지만 그럴 때는 정말 질투를 느꼈다. 그리고 내가 강남에 있는 마을 우면동에 살 그 때 당시 엄마는 공부를 하고 있었고 아빠는 회사원으로써 일을 해야만 했다. 그래서 나는 옆에 같이 살고 있었던 둘째 고모와 고모부와 함께 저녁까지 있으면 저녁 때 엄마, 아빠가 데리러 오셨다. 나는 그 때 고모를 좋아했다. 그렇지만 그 당시 나는 친척 오빠들을 더 좋아했다. 왜냐면 큰 오빠는 나를 잘 업어주었고 많은 과자를 사주었다. 그래서 내가 학창 시절에 이빨치료와 교정 때문에 많은 고생을 했던 것 같다. 그래도 어렸을 때는 정말 좋아했다. 그리고 작은 오빠는 나와 잘 놀아주었다. 특히 작은 오빠는 나를 많이 웃게 만들어주었던 것 같다. 그리고 내가 어렸을 때 가장 좋아했던 음식은 바로 계란밥이다. 나는 둘째 고모를 그냥 고모라고 불렀는데 내가 그렇게 고모를 부른 건 그냥 그런 것이다. 나는 그냥 고모를 많이 놀렸다. 그냥 고모는 어릴 때 다치셔가지고 키가 거의 자라지 않아서 내가 정말로 많이 놀린 것 같다. 너무 미안해지고 후회가 된다. 어째든 그냥 고모는 요리를 잘 하셨는데 내가 동생과 밥을 먹을 때 밥을 먹기 싫어하면 항상 계란 프라이를 해서 밥에 얹고 밥에 참기름과 간장을 뿌려서 고모가 비벼주면 나와 동생은 아주 맛이 있게 먹었다. 나의 계란밥 사랑은 중 2까지 갔다. 나는 그 때 유치원을 다녔는데 동생은 다른 사람과 있는 것을 싫어하고 낯가림이 심해서 많이 울었다. 그래서 결국은 동생은 유치원을 다니지 않고 나만 다녔다. 나는 유치원 생활이 거의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친구들과 많이 놀지 않았던 것 같다. 유치원 때도 내 주변 친구들은 항상 바빴다. 그래서 나는 유치원 시절에 유치원에서 많이 놀지 않고 집에서 엄마랑 많이 놀았던 것 같다. 그래서 유치원에서의 기억은 거의 없는 것 같다. 내가 유치원 때 가장 기분이 나빴던 기억이 있는데 한 크리스마스 때였다. 산타 할아버지로 분장한 선생님이 선물을 나누어주는데 내 또래의 친구들 중 거의 대부분은 어린이 화장품 세트나 바비 인형 세트를 받았는데 나만 오직 나만 흑인 폭탄 머리 바비 인형 한 개를 받은 것이다. 나는 그 때 너무나도 기분이 나빠서 그냥 그 날 계속 우울모드였다. 하지만 유치원이 끝나고 집에 가서 집에서 엄마가 정말로 맛있는 저녁을 해 주셔서 다행히도 기분이 좋아졌다. 내 생각에 어릴 때는 모든 아이들이 대부분 금방 삐지고 금방 웃는 것 같다. 나도 그 아이들 중에 하나였고 말이다. 이런 듯 나는 유치원 때의 기억이 별로 없는 것 같다. 대신 어마와 나는 정말로 많이 놀러 다녔던 것 같다. 특히 엄마와 나는 자연에서 많이 놀았던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정말로 경험을 많이 쌓았다. 나는 혼자 놀기도 잘 놀았다. 자연에서 그냥 꽃들과 놀거나 곤충을 잡으며 놀기도 하고 흙을 가지고 놀기도 하며 재미있게 놀았던 기억이 정말로 많이 난다. 나의 그렇게 자연과 노는 것을 좋아하는 마음은 정말로 오래 갔다. 나는 1,2 학년은 그냥 일반 학교를 다녔다. 우암 초등학교라고 내가 그 때 당시 살 던 곳 바로 앞에 있는 곳이었다. 우암 초등학교였는데 그 때 나는 피아노 학원을 다녔다. 그 당시 나한테 피아노를 배우는 것은 너무 힘든 일이었다. 나는 그래서 피아노 학원도 빼먹고 엄마한테 화도 내고 울며 떼를 썼다. 결국 엄마는 내가 그렇게 하기 싫으면 피아노는 안 해도 된다고 하셨고 나는 피아노 학원을 그만 두었고 학원을 하나도 다니지 않자 시간이 남아돌았다. 그래서 집에서 유치원에 다니지 않는 내 동생과 함께 놀아주었다. 그 때 당시 내 친구들은 모두 학원을 다니거나 바빠서 같이 함께 많이 놀지 못했다. 그래도 나와 같이 노는 친구가 한 명 있었다. 예원이라는 이름을 가진 이름만큼이나 예쁘게 생긴 여자 아이였다. 예원이는 우리 집 뒤 쪽에 살았는데 내가 매번 예원이네 집에 가서 함께 놀았다. 한 번은 예원이랑 놀다가 한 무서운 사건이 하나 터진 적이 있었다. 예원이가 자신이 귀신 전화번호를 알고 있다고 해서 나는 애니메이션을 보고 있다가 호기심이 들어 전화를 해 보았다. 그리고 막 더 나아가서 예원이가 자신이 귀신이 사는 집을 알고 있다면서 아는 오빠와 친구들을 불러 한 빌라에 들어가서 계단을 올라 꼭대기 층에 도착했다. 그 층에는 창고 문처럼 보이는 작은 문이 하나 있었던 그래서 한 오빠가 그 문을 보고 열려고 했다. 나는 무서워서 뒤로 빠져 있었다. 그 때 갑자기 문으로 한 아저씨가 얼굴을 내밀었다. 나와 몇몇 아이들은 깜짝 놀라서 소리를 꺅 하고 질렀다. 그러자 밑에서 한 어른이 뛰어오셨다. 뭔 일 있니 하시고 말이다. 그러자 문에서 나온 아저씨가 이렇게 말을 하였다. “나는 몰라 나는 그냥 자고 있는데 문 쪽에서 소리가 나서 밖으로 나왔는데 갑자기 비명 소리가 들리더니 한 아이가 밖으로 뛰쳐나갔네!!” 그 말을 듣고 그 어른이 우리에게 물었고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모든 진실을 말 해야만 했다. 다행이 엄마에게는 전화를 걸지 않았다. 하지만 그 어른은 우리를 꾸짖으며 다음부터는 그러면 안 된다고 말을 했다. 나는 그날 밤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었다. 그 아저씨의 얼굴이 떠올라서 인지 아니면 죄책감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째든 잠을 도저히 잘 수가 없었다. 그 뒤로 예원이와 나는 같이 함께 놀 때는 이주 조심히 놀았고 나는 그 뒤로부터 더 이상 귀신을 믿지 않게 되었다. 나는 내가 하나님을 만나고 난 뒤로부터 더 귀신을 믿지 않았다. 그리고 예원이와 나는 그 때부터 오히려 사이가 더 좋아졌다고 할 수 있다.
20대
<미친 듯이 놀다!!!>
내가 드디어 20살이 되었다. 내가 10대를 드디어 지났다는 생각에서인지 마음속에서 열정이 불타올랐다. 그런데 그 열정이 아주 안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게 되었다. 내가 20살이 되고 내 친구들이 나룰 불러 놀자고 했다. 나는 바로 콜을 하고 친구들을 만났다. 지원 이와 지민 이와 다 현 이와 해인 이와 지연 이와 희원 이와 나!!!!! 이렇게 칠 공주!!! 우리는 미친 듯이 막 쇼핑을 했다. 우리는 동대문 ,남대문 ,명동, 인사동 등 별 곳을 다 쑤시고 다녔다. 한 120만원은 쓴 것 같다. 그리고 친구들이 엄청나게 많은 쇼핑백을 들고 20살이 된 기념으로 술을 마시자고 했다. 나는 그 때 하나님을 잠시 떠나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냥 술을 친구들과 막 마셔대고 노래방에서 막 미친 듯이 노래를 불렀다. 그러고 새벽 4시 경 대리운전을 불러 집에 가서는 쓰러졌다. 다음 날 아침 나는 일어나서 나의 모습을 보고 나를 막 때렸다. 나는 너무 후회가 되었다. 그리고 내가 쇼핑한 것들을 보니 다 필요가 없는 것들이었다. 나는 바로 씻고 옷을 단정하게 입은 뒤 근처 교회 예배당에 들어가서 눈물을 흘리면서 막 기도를 했다. 나는 그 때 얼마나 나 자신의 행동을 후회했는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나는 미친 듯이 바닥을 치며 울었다. 그 때 나는 하나님의 응답을 들었다.
[계영아 네가 빨리 깨달아서 다행이구나 하지만 과거를 후회하고만 있으면 안 되는 법이란다. 이제 다시 일어서서 나의 꿈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그 꿈을 향해 나아가렴]
나는 하나님의 그 응답을 바로 듣게 된 것에 아주 놀랐다. 나는 그 뒤로 더욱 더 신앙심이 깊어졌고 기도를 많이 하게 되었다. 나는 기도를 통해 나의 진정한 꿈을 알게 되었다. 나의 진정한 꿈은 건축 디자이너였다. 나의 비전이 세워졌다. 나의 비전은 열심히 공부를 해서 건축 디자이너가 되어서 고아원이나 ,도서관 , 학교 병원 등을 사람들이 제일 편안해 하는 그 완벽한 구조를 발견해 건물을 디자인하고 지어서 집이 없는 사람들과 고아들을 도와주는 것이 나의 비전이 되었다. 물론 어려움도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나는 이 날 교회에서 다짐을 했다. 아무리 하나님께서 나에게 고난과 시련을 주시더라도 절대로 포기하지 않고 하나님을 따르며 나의 비전을 향해서 나아갈 것이다. 그리고 나는 절대적으로 부족한 존재이기 때문에 절대적으로 하나님을 따르며 살아갈 것을 맹세했다. 그리고 나는 기도를 정말로 열심히 할 것을 하나님께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