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료한 일상이란 건 같은 날의 반복을 말한 것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오로지 여행만 하는 여행자의 여행도 과연 무료한 일상이 되는 걸까. 그렇지는 않을 것 같다. 그것이 죽을 만큼 좋고 죽어서도 떠나 만나고픈 그 무엇이 바로 여행자들 가슴속에 살아있다면.
나의 반복된 일상에서 어쩌다 다가오는 허가된 나의 여행은 또 다른 나의 자유이고 날개가 된다. 그런 내 날개는 소박한 비상을 꿈꾼다. 바로 그 너머의 산, 숨어 있는 나의 미지를 향하여.
여느 명절 때와 비슷한 교통의 흐름을 타고 호치민에서 북쪽으로 약 500KM쯤 떨어졌다는 나쨩을 향해 우리는 새벽 도로 위를 달리고 있었다. 그러나 여느 명절과 다른 풍경이 도로 위에 연출되어 있다는 것이 헬멧을 쓴 오토바이운전자들로부터 금방 표가 나 있었다.
그리 오래되지 않는 날로부터 호치민 시내 부근은 헬멧을 써야 오토바이를 탈 수 있는 법이 시행되었는데, 이제는 제법 많은 운전자들이 헬멧을 쓰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 법이 한정된 장소에만 시행되다보니 신종 일자리가 탄생되었는데, 그것은 바로 헬멧을 대여하는 직종이다. 그러니까 그 직업은 공안이 집중 단속하는 지점 부근에서 헬멧을 빌려주고 그 법이 시행되지 않는 장소에 기다리는 헬멧의 주인에게 헬멧을 반납하는 것을 말한다.
엄격하고 까다로운 법만 있을 것 같지만 후진국적인 의식은 사회 밑바닥에 이류무처럼 깔려있어 이방인의 눈에 이렇게 안전무지의 삶을 그대로 표출시키기도 한다.
이윽고 예전에 여러 번 보았던 고무나무 군락지를 지나게 되었다. 작은 군악대 행렬처럼 곧게 자라고 있는 고무나무 묘목들 뒤로 늙은 고목의 빛깔 잃은 표정도 여전했다. 이런 풍경 사이로 건재해있는 장엄한 숲과 오랜 건기에 황폐해진 산들을 지나 여름의 뜨거운 들판 같기도 하고, 겨울의 황량한 논 같기도 한 평지를 무수히 스쳐 우리가 탄 차는 크고 작은 바위들이 위태롭게 걸려있는 돌산 아래 정차하게 되었다.
돌산
하늘은 푸르고 뜬 구름은 유유히 어디론가 떠가는데 바위산은 경직된 몸짓으로 그 주위를 병풍처럼 에워싸고 있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풍경이 그곳에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길 건너 작은 식당 안으로 들어서고야 알게 되었다.
돌산앞 바다 식당에서.
처음의 물빛 인 냥 순수만이 가슴을 적시던 바다가 바로 식당 앞에 가득 몰려와 있었던 것이다. ‘이 트임은 바다만의 것이지’ 내 속삭임을 들었다는 듯 바다는 쉼 없이 일렁여 주었고, 그 끝이 어디인지 가늠할 수 없도록 바다는 바다만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래서 수평선이 거기에 있었나 보다. 그 너머의 바다를 꿈꾸라고…
돌산 앞 바다 식당에서
이윽고 우리는 그곳에 초록 이파리가 달린 나무가 없었다면 눈이 내렸을 거라고 착각할 수 있을 만큼 너무도 하얀 모래 사막 위를 달렸다.
하얀 모래
그리고 수 많은 무덤들과 건조한 바람과 구름이 잠시라도 쉬었을 푸른 산맥을 만났고, 개통 된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해안도로를 줄기차게 내달려 마침내 아름답기로 소문난 해변, 동양의 나폴리, 나쨩에 도착하게 된 것이다. 호치민에서 출발한지 열 시간 만이었다.
나쨩의 해변
8세기경 참파 왕국의 수도였던 냐짱은 당시 아시아 해상교역의 요지로 활약하던 곳이고, 프랑스의 지배 하에서 서양인들의 휴양지로 개발되기 시작하여 현재는 어업과 리조트 사업이 발달한 베트남의 대표적인 휴양도시가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베트남전 당시 우리나라 백마사단 28연대, 29연대가 이곳을 통하여 상륙하였으며 한국군 야전사령부와 십자성부대가 주둔했던 곳으로도 알려져 있다.
그곳 시내에는 1천3백여 년 동안 베트남 중 남부를 지배해온 참족 문화 유적지중 가장 오래된 유적, 포나가르탑이 있는데, '포나가르'는 팔이 열 개인 참족의 여신 이름으로 그 신상이 사당 안에 모셔져 있다.
포나가르탑
카이 강이 바다로 들어가는 지점의 화강암 언덕 위에 위치해 있는 포나가르탑은 9세기경 건축된 참파 왕족의 사원으로 많은 건물이 잦은 화재로 사라졌다는데, 참배를 드린 흔적들이 포가르탑 사당 말고도 부근 바위틈 곳곳에서 볼 수 있었다. 원래 힌두계 사원이지만 현재는 불교적인 성향이 가미되어있고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꽃과 향을 들고 찾아와 참배를 드리는걸 쉽게 목격할 수 있다
포나가르탑에서 본 카이강
그리고 냐쨩에는 베트남의 민주화를 위해 분신한 덕쾅덕 스님이 머물렀던 사찰로 유명한 중국식 절, ‘롱손사’가 있는데, 1898년에 건축 되었다고 한다. 본당 옆에는 커다란 용의 얼굴이 새겨져 있고 지붕에도 승천하는 용의 모습이 현란하게 장식되어 있다.
롱송사 정경
본당 오른쪽의 계단을 올라가다 보면 중간 중간에 민주화를 위해 싸우다 숨진 분들의 비석이 세워져 있고, 정상에는 20m높이의 대형 흰색 석불이 있다. 그런데 그 석불이 있는 정상까지 오르는 계단 곳곳에는 구걸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계단을 오르기 보다 그들 앞을 지나가는 것이 더 힘들 정도였다.
롱손사 본관
그 외 나짱 기차역 부근 작은 언덕에는1930년에 건설된 서양풍 고딕양식의 ‘냐토누이’ 성당이 있다. 입구에서 정문 앞까지 성경의 등장인물들의 동상이 30여체가 일정 간격으로 서있는데, 마침 우리 앞을 논락의 모자를 쓴 할머니 한 분이 동상을 지날 때마다 허리를 굽이며 기도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나토누이 성당의 언덕
그 언덕을 오르면서 할머니는 작은 쓰레기 하나라도 그냥 스치지 않았는데, 주위를 들러보니 다른 신자들도 똑 같은 모습으로 성당을 향해 올라가고 있었다. 그 모습이 하도 엄숙하고 진지해서 카메라 셔터를 누르기가 여간 죄송스러운 게 아니었다.
나토누이 성당
나쨩은 유네스코에서 지정한 아름다운 해변이 있다. 그러나 그 해변을 빛나게 하는 것이 있다면 바로 그 앞에 조각배처럼 떠있는 여러 섬들일 것이다. 하루는 작은 배 한 척을 빌려 서둔 영어를 섞어 쓰는 가이드와 여러 섬을 돌게 되었다.
섬마을
우리배가 정박했던 여러 섬 중에는’바이 소이’라는 섬이 있는데 그곳에는 돌로 만든 배로 길이가 60M이고 키가 30M나 되는 ‘찌 응웬’용궁이 있다. 멀리서도 이 배를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그 배는 한쪽 끝 섬을 차지하고 있고, 그 배 안에는 각양각색의 어류가 수족관에 전시되어있었다.
여행객들이 정박할 수 있는 섬은 대부분 여행객을 위해 개발된 섬들이었다. 하얀 모래와 자갈을 품었다 사라지고 다시 돌아와 드러눕던 파도가 저만치 멀어 질 때면 에메랄드 빛 물감을 풀어놓은 듯 빛나는 물결들이 가까이 다가와 출렁이곤 했다.
용궁
그 섬 그늘에서 바다에 젖고 햇살에 젖어 우리의 시간들이 마냥 흘러 가기도 했다. 우리의 귀한 시간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는데도 아깝지 않았던 것은 빠져나간 만큼의 평화와 감동이 내 안에 질펀하게 고였기 때문일 것이다. 바로 내 고향을 닮은 그 바다기에…
섬에서.
평소 아는 분이 약 1800Km나 떨어진 하노이를 향해 대장정에 올라 베트남 일주를 하고 열 하루 만에 돌아왔다. 우리나라 일주를 먼저 했던 그분의 말에 의하면 우리나라만큼 아름답고 멋진 곳은 없었다고 했다.
궁금해 떠나보니 비슷한 풍경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고, 유명 관광지가 아니면 개발되지 않는 도로를 달리는 것이 여간 곤혹이 아니었다고 했다. 무엇보다 힘들었던 것은 문명의 이기를 찾아보기 힘든 마을이 많았다는 것이고, 그나마 괜찮다 싶은 동네는 하필 명절이라 요기 할 식당마저 찾을 수가 없었다고 했다. 그 고생이 이만저만 게 아니어서 다음에는 어느 한적한 곳에 며칠 쉬는 것으로 끝내겠다고 했다.
그러나 내 생각은 다르다. 그 사람이 가 보았던 곳곳의 거리는 가보지 못한 이 나라 사람이나 나에게 미지의 세계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러하기에 우리는 세계 속에 빛난 문화가 있는 우리 땅을 먼저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독도는 우리땅, 그 소중한 땅들이 있는 나라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