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영혼의 에피슈라-| / 45.5x45.5cm 장지에 수묵채색
박영숙, 삶과 영혼의 에피슈라
Park Young-Sook, Life & Epi-shura of soul
추상회화의 선구자 칸딘스키는 그가 쓴 예술론에서 모든 현상은 내적인 것과 외적인 것으로 체험될 수 있다고 했다. 다시 말하면 인간 정신세계와 눈에 보이는 현실을 의미한다. 이런 관점에서 박영숙의 작품에서 모티브는 자연의 꽃에서 찾고 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단순히 예쁜 꽃이 아닌, 자신의 내면세계를 노래하듯 천착하고 있다. 또 그 꽃을 통해 자신을 표현한 암유(暗喩)된 자화상이기도 하다. 그리고 주변을 감싸고 있는 크고 작은 점, 선, 면들이 춤을 추고 있다. 그것들은 곧 그가 피안의 세계에 대한 동경과 오묘한 자연 섭리와의 결합으로 상징된다.
그가 한결같이 꽃을 고집하는 이유는, 그가 태어나고 어린 시절을 보낸 곳은 경남 산청군 단성면이다. 이곳은 우리가 역사를 통해 잘 알고 있는, 문익점이 중국에서 가져온 목화씨(木花-種)를 처음 재배하여 성공한 곳이다. 목화는 꽃도 예쁘지만, 열매도 아름답다. 또 꽃씨는 무명실의 재료가 되어 면-산업의 혁명을 일으켰다. 이렇듯 단성은 조상의 푸른 정신과 자연이 어우러진, 어머니의 자궁처럼 아늑한 곳이기도 하다. 소녀 박영숙은 이 아름다운 고향 산하에서 함몰되듯 동화되고, 또 꿈과 희망을 키우며 몸과 마음을 채웠다. 환경의 영향을 받아서일까? 그는 어릴 때의 꿈은 목화처럼 사회에 헌신할 수 있는 삶, 곧 소박한 미술선생님이었다. 결국, 그 소녀는 꿈대로 화가가 되었다. 그리하여 그가 지금 그려내는 화폭에는 늘 영혼의 우물처럼 새 맑은 향기를 내뿜고 있다.
“내 주변에는 사계절 언제나, 목화를 비롯해 예쁜 꽃나무가 많다. 그것들은 오직 내 소중한 꿈들이기도 하다. 그래서 난 그 소중한 꿈들이 시들지 않게 자연의 법을 따르고 나의 예술로 포근히 안아준다. 그러면 그 예쁜 꽃나무에 걸린 꽃들은 환한 미소로 내게 다가온다. 그리고 넌지시 속삭인다. 너의 여린 영혼에 깊은 우물이 되리라고….” <‘한국화, 힐링을 만나다’ 작가 노트에서 발췌>
내 영혼의 우물-| / 72.7x60.6cm 장지에 수묵채색
내 영혼의 우물-∥ / 72.7x60.6cm 장지에 수묵채색
이형옥 평론가는 지난 개인전 서문을 통해 작품에 대해 이렇게 평했다. “작가는 한동안 전통성을 대변해주는 수간채색 화법을 중심으로 연꽃시리즈와 들국화 등 우리 주변에 자생하는 자연의 들꽃들을 구상회화 활동에 천착 되는 작품을 해왔으나, 최근 형의 변위와 먹의 번짐으로 추상형의 화면을 구사하여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새로운 시각성과 가치미학의 정체성을 선보이게 된다.”고 했다. 이처럼 그는 꽃을 소재로 구상과 추상적인 세계를 조화롭게 넘나드는 작가이다. 이 점은 필자의 관점과 시점에서 적극 동의한다. 다만 필자는 새 작품에서 나타난 작가의 내면세계와 새로운 변화에 대한 현상을 좀 더 관찰하고자 한다.
그의 작품에는 ‘내 영혼의 에피슈라’, ‘내 영혼의 우물’, ‘에너지’ 등이 있는데 대부분 연작이다. 그 그림들 중심에는 필연처럼 목화가 자리하고 있다. 만개한 형태로. 어찌 보면 어린아이의 감성시각(큐비즘的)이다. 그는 여기서 실제 목화처럼 그리지 않은 이유로 먼저 보편화한 획일적인 꽃의 형태를 피하고 싶었던 것이고, 다음은 극사실적인 형태에 대한 거부일 수도 있다. 또 사유적(思惟-的) 변형을 통해 자신의 이상적 내면세계를 분출하고자 했다. 그리고 주변부는 언뜻 보면 구체성이 없어 추상적으로 보이지만, 관조(觀照)해보면 목화의 생태 과정에서 생겨난 가지, 줄기, 잎, 삭과(殼果, 튀는 열매), 꽃씨 등을 선과 면, 문양의 형태로 다채롭게 공간을 메웠다. 이는 어린 시절 소박한 꿈들과 현실에서 체험한 삶의 조각들을 화폭에 갈무리한 것이다. 그리고 그가 즐겨 쓰는 장지 위에 부드럽게 때론 율동적으로 오방-색 붓질을 했고, 색의 번짐에서는 의도적으로 수차례 작업의 반복을 통해 색과 색의 만남을 유도해냈다. 결국은 우연성의 자유로움과 음악적 환상 분위기를 이끌어냈다. 이 과정에서 여러 창의적 스펙트럼이 심원(深遠)처럼 나타났다. 마치 잠재된 꿈과 희망들이 예술로 승화된 것처럼 말이다. 또 이러한 결실의 심리적 가치는 곧바로 자신과 감상자에게, 힐링의 심연으로 고스란히 빠져들게 할 것이다.
박영숙의 일련의 작업 과정, 내용에서는 이전 작품에는 미약했던 자신의 삶을 화면에 은유적으로 대입함으로써 작품에 완성도를 높였다. 형식에서는 그동안 구사해왔던 기존의 틀(전반적으로 추상 양식)에서 벗어나려는 창의적인 노력이 보였다. 크게 보면 구상적인 요소와 추상적인 요소를 적절히 배치함으로써 화폭에 조형적 하모니를 이룬 것이고, 또 그가 중점을 둔 번짐의 효과에서는 더욱 세심함으로 다양한 실험(시간성, 습도, 채색의 횟수 늘리기, 배접 등)을 시도하였다. 결과적으로 계획하고 의도한 ‘일루전(illusion)’이 이상적으로 나타났다. 구상과 추상이 결합한 조형세계, 즉 공간 변위를 그만의 독특한 채색-법으로 그려낸 것이다. 다만 아쉬운 것은 작품이 연작 형태로 제작되다 보니, 작품 간의 유사성으로 비교 분석하기가 조금 모호했다. 앞으로 작가는 이 점을 유의해야 하고, 또 우리 화단에는 꽃을 소재로 하는 작가들이 매우 많다는 것에도 특별히 주목해야 한다.
느낌 / 55x55cm 장지에 수묵채색
끝으로, 현대는 초월적 다원화 시대이다. 시시각각 빠르게 변한다는 의미이다. 그러니 현대미술에는 동서양이 따로 없다. 작품의 다양성 또한 변화무쌍하다. 그래서 창작을 위한 예술가는 늘 고독하고 허기진다. 그러기에 더 많은 고민과 천착이 요구되는 때이기도 하다. 그러나 지금은 모든 걸 훌훌 털고 신비의 호수 바이칼로 여행을 떠날 때이다. 그 호수 깊은 물에서 ‘내 영혼의 에피슈라’가 손짓하고 있잖은가? <글 / Aura 이성완>
* 에피슈라 : 시베리아의 푸른 눈 바이칼에서만 산다는, 사람 눈으로는 보이지 않는 지극히 작은 신비의 새우다. 이 새우의 습성은 물속의 이물질 박테리아만 먹어치우는 한마디로 청소부다. 바이칼의 수정 같은 맑은 물의 비밀이 바로 에피슈라에 있었다.
첫댓글 미술 작품도 훌륭하지만 평론 글 솜씨가 더욱 멋집니다..
감사합니다. 칭찬에 힘 얻어 더욱 매진하겠습니다.
조회 수를 보니 제법 긍정적인 것 같기도 한데, 검색하여 찾아 들어온 것보다는
우리 채고 회원님들이 자주 많이 찾아주길 소망해봅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