儒敎 유교를 으뜸으로 삼은 朝鮮王朝 조선왕조 때
士大夫 사대부 兩班 양반은 四代奉祀4대봉사를 하고
일반 常民 상민은 부모만 제사를 지내다가
조선 말기에 班常制度 반상 제도가 없어지면서부터
일반 상민도 4대 봉사를 하게 되었는데
이제는 어떻게 하면 제사를 줄일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시절이 됐습니다.
조선왕조까지만 해도 제사를 지낸다는 것은 대단한 영광이었고
祭主權제주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엄청난 권력이었습니다만
제사
앞으로는 지낼 사람이 없어질 수도 있습니다
祭祀 제사와 茶禮 차례를 지내는 시간대가 다릅니다
제사는 해가 진 뒤 지내고
차례는 해 뜨기 전에 지냅니다
제사는 子時자시 ( 23시부터 01시 사이)로
한밤중에 지냈습니다
밤 열한 시부터 열두 시 그것을 夜子時야자시
자정부터 1시까지를 朝子時라 하는데
제사는 야자시 즉 밤 11시부터 자정 사이에 지내는 것.
지금은 24시를 기점으로 날짜가 바뀌지만
예전에는 자시부터 날짜가 바뀌었습니다
23시부터 24시 사이에 제사를 지내면
날짜가 바뀌는 것이고 그것은 새 아침에 지내는 것이 됩니다
박정희가 군사반란을 일으키고 通禁 통금을 시행하는 바람에
요즘도
제사 시간을 초저녁으로 당겨 지내게 되었는데
이는 헛제사가 됩니다.
禮 예라고 하는 것은 정해진 순서대로 한다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내용이 중요한 일도 있고
형식을 갖춰야 하는 일도 있기 마련입니다
잔 따라 올릴 때 돌리는 것이 아닙니다
香 향을 안 피우면 제사가 안 됩니다
향을 피우지 않으면 신령과 감응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향이 맨 처음에 나오는 것이고
그다음에 盞 잔이 나옵니다
그리고 절을 하는데
절하는 횟수가 정확하게 정해져 있습니다.
산 사람한테는 한 번 하는 것이고
죽은 사람한테는 두 번입니다
산 사람 중에서 군주, 임금이나 성인한테는 3번 절하는 것이고
죽은 임금 귀신한테는 4번 절합니다
이를 加一法가일법이라 하는데 절하는 횟수가 많을수록 그 사람
존재가 강력하다고 본 것입니다
齋室 재실이 없는 집에서는 대청마루라는 곳에 차렸습니다.
位牌 위패는 무조건 南向 남향이고 절하는 사람은 북향입니다
그래야 紅東白西 홍동백서가 됩니다
제사에서는 祭主 제주가 꼭 참석해야합니다.
제주가 없으면 제사가 성립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飮福 음복까지해야합니다
조상이 드시고 남은 것을 상 물림을 해서 먹으면서
그 복이 나에게 전해진다 라고 하는 것이
제사의 기본원리입니다
첫댓글 동아시아에서만 이렇게 제사를 지내는 제사 문화가 있다.
이것의 기틀을 다진 사람이 은나라 19대의 帝제였던 반경이라는 사람이다
그 전에는 중국도 하느님을 믿었었는데
중국에 불교가 들어가기 전까지 그들도 우리와 같이
귀신이 인간들과 같이 산다고 보았다
가난한 집에서는 위패에 모셨다가 사르는 일도 있고
부잣집에서는 아예 사당이라는 곳에 위패를 모셨다.
죽음의 공간이라는 게 삶의 공간속에 같이 있는 거다
태어나서 100일에 1년이 지나면 돌을 한다.
살았을 때는 3년이 되었다 해서 특별히 하는 행사는 없으나
예전에는 세 살 정도가 되어야 부모품을 떠난다고 보았다.
그래서 사람이 죽었을 때도 똑같은 일을 한다
태어났을 때 생일이 죽었을 때 제사가 된다
100일이 지나면 100祭라는 걸 하고 1년이 지나면 小喪, 期年喪을 하고
3년이 지나면 大喪이라고 脫喪을 한다
그래서 3년
이렇게 맞춰져 있는 것은
生의 의례하고 死의 儀禮가 정확하게 맞춰져 있는 것이다
공자한테 제자가
“1년이면 새풀이 다 자라고 이렇게 한 바퀴 다 도는 거니까 1년상만 하면 어떻습니까” 하고 물으니
자식이 태어나서 부모품을 떠나려면 3년 정도 시간이 걸려서
3년상을 하는 것이 지금의 풍조인데
재현은 부모에게서 그런 사랑을 받지 못했는가”하며 비판하는 말이 나온다
3년정도 부모에게서 받은 은혜를 보답한다는 의미가 3년상이라는 것인데
삶의 의례 죽음의 의례가 꼭같다
그렇다 보니까 제삿날은 돌아가신 날, 당일이다
돌아가신 전날 제사를 지낸다고 하는 말은 헛제사나 다름없다
공자시절만 해도 제사 때 실제로 사람이 앉아서 먹었다
지금은 제사 지낼 때 무슨 귀신이 오는가, 그런게 어디있는가
가족들끼리 모여서 음식을 나누어 먹고 화목하는 거지’라고 생각하는 데
처음 제사가 이루어졌을 때는 귀신이 와서 먹는 것으로 보았다
그래서 尸童시동이라고 애 중에서 제일 그 어른을 닮은 애를 위패 대신
祭祀床에 앉혔다.
그리고 제사중에 음식을 드실 侑食유식 때 애가 직접 먹는다
그걸 시동이라고 했다
지금처럼 바뀐 것은 戰國時代전국시대 이후.
제사에 백화수복이라는 술을 쓰는 것은 일제식민지 잔재문화다.
쌀이 부족하여 일반집에서 술을 빚지 못하게 하면서
일본 술을 쓰게 되었던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