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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반 부 |
후 반 부 |
* 구정치인에 대한 고발, 항거, 증오가 표충 적 주제이고, 이면적 주제는 원통함과 사 무침이다. |
* 개혁사상의 피력을 주축으로 삼다. 원통히 죽은 ‘최병두’ 남매의 이념을 다룬 것으로 이인직의 세계관과 대응관계를 이룬다. |
*은세계의 전반부와 후반부 p.313~317. 읽기
*<은세계>만큼 우리 소설사에서 민중의식이 특출하게 드러난 작품은 드물다. 서민들의 여러
민요를 삽입한 구절로 묘사의 박진성을 유감없이 드러낸 이 작품의 한 모습이 있다.
이인직의 신소설 - 언문일치를 되도록 지켰다.
- 각자의 신분에 맞는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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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수(李光洙)론(1892~1950)
평안북도 정주에서 출생(1892~1950), 호는 춘원(春園). 11세에 부모를 잃었고, 14세에
일진회 장학생으로 일본으로 건너가 메이지학원 중학부에서 수학, 홍명희, 최남선 등과 교유,
문필활동을 시작했다.
1917년 『매일신보』에 <무정>을 발표, 이 작품은 한국 현대소설사의 새로운 장을 연 것으로
평가 받는다. 일상적인 개인, 구체적인 배경의 결합, 내면심리묘사를 통한 성격창조, 사실적인
산문체와 궁체의 사용, 새로운 구성 등에서 소설문학사의 전환점을 마련하였다.
<재생>, <마의태자>, <흙>과 같은 장편소설을 집필하였다. 중반 이후에는 불교에 귀의하여
<이차돈의 사>, <원효대사>, <무명> 등 불교적 색채의 작품을 창작 하였다. 1950년 전쟁 당시
납북되어 사망한 것으로 전해진다.
1. 시대상황과의 관계
이광수는 갑오개혁이 일어나기 전 1892년에 태어났으며, 19세에 경술 국권피탈을, 28세에 3‘1운동을
경험하였고, 54세에 광복을 맞이하였다. 그의 생애는 ’개화‘와 ’식민지 시대‘로 표현되는 시기의 생애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역할을 단적으로 말하면, 개화, 식민지 시대의 계몽사상가와 민족주의자,
그리고 근대문학 초창기의 문학가로서 영광과 치욕이 범벅된 역할이라고 할 수 있다.
2. 체험과 의식
이광수 문학의 원형적 체험
1)고아로서의 체험
(.......) 우리들 청년은 우리들을 교도하여 줄 부로(父老)를 가지지 못하였다.
(......) 우리들 청년은 피교육자되는 동시에 교육자되어야 할지며 학생되는 동시에 사회의 일원 이 되어야
할지라. (생략)
- 한국청년의 주체적 문화 창조의 책임을 일종의 문화적 고아의식이 입각하여 강조.
2)엘리트로서의 체험
그는 대여섯 살 때에 “외조모한테 이야기책을 읽어드리고 상급으로 밤과 배를 받은 것을 기억” 한다고 하며,
18,19세 때부터 자신에 대한 우월감과 사명감이라는 엘리트 의식을 체험하게 된 것을 자전적 기록에서 거듭
밝히고 있다.
이광수 자신의 계몽사상과 민족의식에 연결된 글이나 행동은 물론 가령 친일적 언동까지도 이타 적·시혜적·
자기희생적인 것으로 과신 미화하는 나르시시즘으로 발전하게 된다.
3)약소망국 민족으로서의 체험
그의 민족주의는 초년에 어느 정도 올바른 방향을 보이다가, 중년에는 태도의 불투명함을 나타 내더니,
만년이 가까워지면서 전혀 뒤틀린 친일적 주장으로 굴절되고 만다.
4)작가로서의 체험
한국과 동·서양 문학의 체험이 그의 계몽사상에 연결되는 것으로 보인다.
서구적인 것 가운데서 는 톨스토이의 예술론, 즉 감염론에 가까운 면모를 보여 준다.
이러한 체험들은 그의 계몽주의 문학(효용론)과 이어지는 것이라 할 수 있다.
3. 계몽사상가로서의 허실
「금일 아한청년과 정육」(1910) : 이광수의 최초의 논설이다.
+ 정육(情育)을 통하여 인간을 자동적으로 활동케 하라고 외친다.
+ 유럽의 계몽사상에서 볼 수 있는 이성에 기초한 합리적인 자유사상으로 볼 수 있다
「조혼의 악습」(1916), 여권신장, 가족제도의 개선
+ 생리적·윤리적·경제적 방면에서 각각 조혼의 폐단을 비판하고 개선을 부르짖고 있다.
+ 또한 <혼인에 대한 관견>에서 혼인 조건의 하나에 연애를 든다. <무정>, <개척자> 등은 모두 그러한
자유연애를 극구 찬양하고 있다.
「자녀중심론」(1918) : 자아 중심주의의 안티테제로서 유교를 들고 효(孝)의 사상을 비판하여 당시 사회에 큰 물의를 일으킨다.
「신생활론」: ‘교육과 혁명’이라는 ‘인위적 진화’의 사상에 기초하여 ‘진보의 관념’에 접근한 일면 이 있다고
하겠다.
「교육가 제씨에게」: 실생활 중심의 새로운 교육을 역설하고 지식과 교육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 계몽사상가로서의 결론 - 유교적 전통에 따른 민족의 사상과 관습을 비판하고 자유연애, 자아중심, 새로운 교육과 지식의 필요를 역설하는 계몽사상을 보여준다.
+ 이광수의 계몽사상에서 큰 문제점 : 초기의 개인주의가 집단주의로 변모한다는 것
「민족개조론」과「의기론」에 “동맹으로 단체로 민족을 개조해야 한다”든가 “남을 위해 자기를 희생하라”
는 등의 주장을 보여주고 특히 「옛 조선인의 근본도덕」에서 그러한 것이 분명히 제 시되어 있다.
+ 춘원의 ‘역사의식의 결여’ - 계몽과 민족의식이 친일로 귀결되는 근본 요인이다.
4. 문학가로서의 역할
1)춘원의 문학론
「문학이란 하오」(1916)에서,
(가) 고로 문학자라 하면 인에게 모사물(某事物)에 관한 지식을 교(敎)하는 자가 아니요. 인으로 하여금 미감과 쾌감을 발감케 할 만한 서적을 작(作)하는 인이니, 과학이 인의 지를 만족케 하 는 학문이라 하면 문학은 인의 정(情)을 만족케 하는 서적이니라. --> 유미주의
(나) 차(且), 최정하게 묘사한다 함은 진(眞)인듯이 과연 그러하다 하고, 있을 일이라 하고 독자가 격절(擊節)하게 함이요, 최정이라 함은 모사건(某事件)을 묘사하되, 대강대강 하지 말고 극히 목도하는 듯하게 함이라 여사(如斯)히 하여야 그 작품이 독자에게 지대한 흥미를 여(與)하나 니, 고로 문학의 요의(要義)는 인생을 여실하게 묘사함이라 함이로다. --> 사실주의
(다) 연(然)이나 문학의 차(정의 만족과 미 혹은 쾌감을 준다는 것-필자) 외에도 여러 가지 부산 적 실효가 유하니(······) (실효론) : 이광수의 계몽사상 --> 공리주의
(라) 고해(苦海) 같은 인세(人世)에서 청순한 쾌미(快味)를 득하고, 불여의(不如意)한 실사회를 탈 (脫)하여 자유로운 상상(想像)의 이상경(理想境)에 소요(消遙)하여(······) --> 낭만주의
2)계몽문학론의 극복
+ <문학이란 하오>에서 보여준 이광수의 주장은 톨스토이의 교훈주의적 감연론과 매우 유사함을 알 수 있다.
+ 문학의 이론이 거의 전무하고 창작의 수준이 매우 미숙한 당시의 한국에는 이처럼 엉성한 이론 도 도움이 된 것으로 추측된다.
+ 그렇게 형성된 이광수의 교훈주의적 계몽문학론은
김동인의 유미주의와 힘의 프로문학론을 통해서 극복되어 간 것이다.
+ 이광수의 역사의식의 결여는 자기기만의 결과이다.
+ 이광수의 국문체는 단순한 구어체가 아닌 서구문체의 영향을 강렬하게 받은 문체이다.
+' -다' 나 현재 진행형, 과거형 등을 정확하게 구별하여 사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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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인(金東仁)론 (1900~1951)
평안남도 평양에서 출생(1900~1951), 호는 금동(琴童)·금동인(琴童人)·춘사(春:士),
창씨명은 곤토 후미히토(金東文人). 일본 도쿄 메이지 학원과 가와바타 미술학교를 중퇴.
1919년 최초의 문예동인지 『창조』를 발간, 처녀작 <약한자의 슬픔>을 발표하고 귀국하였으나,
출판법 위반 협의로 4개월간 투옥되었다.
출옥 후 <목숨>(1921), <배따라기>(1921), <감자>(1925), <광염소나타>(1929) 등의 단편소설을
발표했다. 간결하고 현대적인 문체의 개발에 공헌 하였다. 이광수의 계몽주의적 경향에 맞서 사실주의적
수법을 사용하며, 1920년대 근대문학사의 포문을 열었다.
1925년 : 신경향파와 프로문학에 맞서 예술지상주의(유미주의)를 표방하고 순수문학운동을 벌였다.
1924년 : 첫 창작집 『목숨』을 출판하였고,
1930년 : 장편소설 <젊은 그들>을 『동아일보』에 연재, 1931년 결혼
<발가락이 닮았다>(1932), <광화사>(1935) 등을 썼다.
1933년 : 『조선일보』에 <운현궁의 봄>을 연재.
장편역사소설<을지문덕>과 단편<망국인기>,
평론으로 「춘원연구」를 발표하며 활발한 활동을 했다.
1. 김동인 소설의 평가
①김동인이 주도하여 3·1운동이 일어나기직전인 1919년 2월에 발간한 문예 동인지
『창조』는 한국 근대문학사의 새 장을 연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②김동인은 문학을 교화와 계몽의 수단으로 여겨 온 이전의 관념을 비판하고 예술적 자율성을 강조
함으로써 근대적인 문학의 형성에 이바지 하였다.
③그는 후에『창조』의 후신인 동인지『영대』와 대중적 야담 잡지 『야담』을 발간하기도 하였다.
⑤김동인은 「소설작법」에서 소설에 관한 이론을 폈다.
비록 일본의 영향을 받은 것이고 허점이 많기는 하나, 당시로서는 보기 드문 이론이었다.
이전 소설의 “권위적 서술에서 벗어나 근대적 서술로 나아가던 당대의 지향을 이론적으로 뒷받침 하였다“
⑥김동인의 비평활동 가운데 특히「춘원연구」는 춘원 이광수의 소설을 비판한 글로, 오늘날까지 좋은
비평문으로 인정받고 있다.
⑦국문체 개척의 공로는
+ ‘-었다’류의 과거사 사용,
+ 삼인칭 대명사의 제시 등에서만 인정 될 뿐이다.
2. 김동인 소설의 구조
➀김동인의 중·단편소설을 읽다 보면 ‘비극’, ‘운명’, ‘숙명’ 같은 말을 자주 보게된다.
+ 김동인의 중·단편소설 대부분은 그 형식에 담기 어려울 정도로 비극적이요
운명적 이야기를 제재로 삼는다.
자살, 살인, 이상심리, 범죄행위 등이 빈번히 등장한다.
+ 그 인물들은 자신의 의지에 따르기보다 운명과 환경에 지배를 당하는 경향이 짙다.
➁억압받는 여성, 예술적인 것과 현실적인 것의 대립, 죄와 벌, 기독교 신앙 등의 문제를 거듭 다룬다.
➂대표작 <광염소나타>와 <광화사>에서 예술적·미적인 것은 현실적인 것과 대립관계에 놓여있다.
+ 이 작품들의 핵심 대립은 예술적인 것과 현실적인 것이 아니라, 미적인 것과 세속적인 것이거 나,
비범한 것과 평범한 것이라고 바꾸어 볼 수도 있지만, 그 역시 문제점이 있다.
④김동인, 단편소설의 구성과 담화방식
+ 근대소설의 갈래의 특성은 보여주기(showing) 중심이다.
그러나 요약적 서술 또는 말하기(telling) 중심의 이전 담화방식을 답습하여 묘사하고 있다.
+ 소설이 일대기 위주이고, ‘비참한 일생’을 평면적으로 서술했다는 말에 가깝다.
3. 김동인 소설의 예술성
① 김동인 문학에는 모순적인 면이 많다.
+ 근대소설의 예술성을 특히 형식면에서 강조하면서 막상 자기 작품의 형식을 근대화하는 데 등 한시 하였다.
+ 이광수가 연애의 통속에 빠졌다고 비판하면서 자신은 연애 이야기를 기피하고, 쓰더라도 황폐 한 연애만
이야기 하면서 역사소설과 야사의 통속에 빠졌다.
+ ‘순수하고’, ‘예술적인’ 것을 추구하여 인생의 비극을 그렸으나 허공에 그린 나머지 그 자체의
사실성이 훼손 되었다.
② 이러한 모순은 김동인 개인의 한계이기도 하지만, 그가 살았던 일제강점 시대의 한계이기도 하다.
<배따라기>(김동인)이 처음으로 단편소설답게 완성한 소설
<표본실의 청개구리>(염상섭), <빈처>(현진건) 등과 함께 한국 초기 근대소설의 걸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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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상섭(廉想涉)론(1897~1963)
서울에서 출생(1897~1963), 호는 횡보(橫步),
1920년『폐허』동인에 가담하여 문학에 투신했다.
1921년 『개벽』에 단편 <표본실의 청개구리>를 발표, 주간종합지 『동명(東明)』에서
기자로 활약했으며, 현진건과 함께 시대일보, 매일신보 등에서 일하기도 했다.
『만세전』은 1922년 7~9월에 <묘지>라는 제목으로 『신생활』에 연재 했지만,
검열에 걸려 휴간, 2년 후인 1924년 『시대일보』에 <만세전>이라는 제목으로 완결 되었다.
주요작품: <잊을 수 없는 사람들>, <금반지>, <고독>과 중편 <만세전>,
장편 <삼대(三代)> 등이 있고, 광복 후에는 <두 파산(破産)>, <일대의 유업>,
<짖지 않는 개> 등의 단편과 장편 <취우> 등이 있다.
자연주의와 사실주의 문학을 이 땅에 건설한 최초의 작가로서 김동인·현진건과 함께
뚜렷한 공적을 남겼다.
특히 처녀작 <표본실의 청개구리>는 한국 최초의 자연주의적 소설로 평가되며,
그 후 대부분의 소설은 전형적인 사실주의 계열의 작품으로 일관 되었다.
1. 머리말
1920년대의 문단 : 프로문학파와 민족주의 문학파의 대립
염상섭의 본명은 상섭(尙燮)이고, 필명은 상섭(想涉)이며, 호는 횡보이다.
보성소학교에서 보성중학교로 입학했던 횡보는 입학한지 1년 만에 일본으로 건너갔다.
『폐허』창간 : 황석우, 남궁벽, 오상순, 민태원 등과 함께 동인지 ‘폐허’를 창간했다.
횡보는 1921년 8월, <표본실의 청개구리>를 『개벽』에 연재.
2. 내면 고백과 객관적 현실의 반영
초기 3부작 (<표본실의 청개구리>, <암야>, <제야>)에 이어
<만세전>은 1922년 3월부터 『신생활』에 <묘지>라는 이름으로 연재되기 시작했다.
①<만세전>은 일본 백화파 문학의 영향을 깊이 받았다.
②횡보 염상섭은 특정 이데올로기에 치우치기보다는 개인의 자유와 개성을 옹호하고
합리적인 사고, 도덕적 정결성, 균형감각, 화해와 포용과 배려의 정신 등을 존중했다.
③<만세전>은 식민지 지식인의 내면을 세밀하게 그려내는 가운데
3·1운동 직전의 한반도의 현실을 객관적으로 반영한 작품이다.
④<만세전>은 초기3부작의 성과를 이어받으면서도 뚜렷이 구분되는 작품이다.
일제의 강압통치와 수탈 등을 내면적 풍경으로 연결시킴으로서
풍부한 사회적 연관성을 심도 있 게 드러냈다.
3. 중간파적 세계관과 객관적 현실 묘사
<남충서>(1927), <사랑과 罪>(1928), <三代>(1931) 등의 작품은 횡보의 중간파적
이데올로기 가 보다 본격적으로 표출된 작품이다.
①‘심퍼사이저’ - 횡보는 위 작품들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을 ‘심퍼사이저’라고 규정한 바 있다.
심퍼사이저란 - 사회주의 운동에 참여하지 않으면서 그들에게 호의를 지니며 때에 따라서는
물 질적인 도움을 주기도 한다.
이들은 대게 재력을 갖추었고, 겸손하고 온유한 성격을 지니고,
어려운 이들을 도와주는 따뜻한 인품의 소유자로 설정되어 있다.
<삼대>
+ <삼대>의 심퍼사이저 3세대 조덕기 - 조부와 부친에 비해 덕기는 ‘포용’의 정신을 발휘하여
세대 간의 갈등과 이념적인 갈등을 조정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 제1세대 조의관(조덕기의 조부, 할아버지) - 봉건적이면서도 식민지 자본주의 사회에
영악 하게 적응해 가는 인물이다.
+ 제2세대 - 조상훈(조덕기의 부친, 아버지) - 조상훈은 미국 유학까지 다녀온 근대 지식인 이자
계몽주의자로서 민족운동, 종교 활동에도 참여했던 인물이다. 급속한 타락과 함께 후반 부로 갈수록
부정적 인물로 변모해 간다.
+ 병화 - 덕기의 친구 병화는 기독교를 떠나 계급사상을 신봉하게 되면서 변혁운동에 참여한다.
자본주의 체제하에서 ‘돈’을 모으는 행위가 의미를 지닐 수 없기 때문에 체제 자체를
전복하려는 꿈을 꾸는 것이다.
<삼대> 읽고
+<삼대>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가족사 소설’의 형식을 취하였기 때문이다.
중산층의 일상적 삶과 인간관계를 매개로 하여 당대 사회의 본질을 드러내는 데 성공하였다.
4. 민족 자주정신과 심리적 균형감각
①횡보는 광복이 되자 만주에서 서울로 돌아와 경향신문, 자유신문 등의 편집장직을 수행 하면서
언론인으로 복귀하는 한편, 1946년부터 본격적인 창작활동 또한 재개한다.
②횡보의 행적이 구체적으로 드러난 작품은
1948년 발표된 <삼팔선>과 <모략>, 이듬해에 발표된 <혼란> 등이다.
③장편소설 발표 - 1949년 1월 1일부터 11월 3일까지 『효풍』을 연재하였다.
<효풍>은 횡보의 장편소설이자 광복기 정국을 가장 깊이 있고 날카롭게 통찰하고
염상섭 문학 전체를 새롭게 바라보게 만든 문제작이다.
5. 맺는말
①<표본실의 청개구리>는 1인칭시점과 3인칭시점이 혼합된 액자소설의 구조이다.
②<암야>는 주인공을 내적 초점화자로 설정하는 인물시각적 소설이고
③<제야>는 1인칭주인공시점과 고백적 어조가 일관되게 유지되는 유서의 형식을 따른다.
④<만세전>, 이와 같은 다양한 시도를 거쳐 마침내 <만세전>이라는 높은 봉우리에 오른다.
+ <만세전>은 3·1운동 직전의 조국의 현실을 날카롭게 파헤치고 있다.
+ 횡보의 장편소설은 <사랑과 죄>, <삼대>, <무화과>, <효풍>과 같이 당대 사회를 폭넓고
깊이 있게 통찰 한다.
+ 이 작품들은 특정한 이념에 휩쓸리지 않고 화해와 통합을 강조하는 인물들이 주인공이다.
+ 작가는 이러한 중도적 주인공을 통해 당대 사회를 객관적이면서도 심층적·총체적으로 그릴 수 있었다.
⑤<난류>, <취우> - 연작은 인민군 치하의 서울에서도 전쟁과 상관없이 재물욕과 애욕에 눈먼 인물들을
그리고 있다.
+ 이념과 구호가 난무하는 현실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허구적인 명분을 내세워 무고한 인 명을 엄청나게 희생시킨 남북한 정권에 대한 간접적 비판의 성격을 띠고 있다.
⑥<법 없어도 사는 사람> - 작품을 통해 작가가 간절히 소망하는 세계는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여유를 잃지 말고, 서로 다른 이해와 욕망이 충돌하는 가운데 양 보와 희생의 미덕으로 기쁨을 찾는
세계’라고 본다.
+ 이것은 노작가의 주장이, 한국 최고의 작가가 40년이 넘는 창작생활을 통해 최종적으로 도달 한 경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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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준(朴榮濬)론(1911~1976)
평안남도 강서에서 출생, 호는 만우(晩牛). 1934년 연희전문학교 문과 졸업,
그해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모범 경작생>이 당선됨으로써 문단에 등단했다.
종군작가단의 일원으로 활약하기도 했으며, 초기에는 주로 농촌생활을 소재로 하여
일제하 조선농민의 삶에 관심을 모았으나 광복 후에는 무대를 도시로 바꾸어 소시민의 윤리문제,
세대 간의 갈등 등을 주로 다룬 작품을 발표했다.
단편집으로:『목화씨 뿌릴 때』(1945), 풍설』(1951), 『그늘진 꽃밭』(1953),
『방관자』(1960)등, 장편으로 :『태풍지대』(1959), 『애정계곡』(1954),
『열풍』(1959),『고속도로』(1969) 등이 있다.
박영준의 농민소설
①농민이 주체기 되어 당시의 구조적 모순을 사실적으로 드러낸 작품이다.
②지식인 주인공을 통해 농민을 계몽하려 한
이광수, 심훈, 이기영의 농민소설과 가장 변별되는 만우 농민소설의 특징이다.
1. 글머리
①1930년대 일제의 발악적 착취와 수탈로 민족의 고통이 극심했던 시기를 살펴보면,
+ 농민소설의 성과는 이 시기 우리 문학이 거둔 가장 뚜렷한 문학적 업적으로 보이며 이런 점에 서 그 성과를 결코 무시하기 어렵다.
+ 농민소설이라고 하면 쉽게 떠올리는 춘원의 <흙>, 심훈의 <상록수> 등도 이 시기에 거둔 귀 중한 성과 중의 하나이다.
②만우의 농민소설도 모두 1930년대에 발표 되었다.
③이 시기의 조선농민의 절대적인 빈궁과 빈궁타파를 위한
④농촌계몽운동의 영향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⑤이 시기의 농민계몽 운동의 문학적 결실은 춘원의 <흙>(브나로드 운동)을 들 수 있다.
+ 일본이 조선산(産) 쌀의 증산을 계획한 ‘산미증산계획’은 조선농촌에 극심한 타격을 안겨 주었다.
2. 농촌계몽운동의 전개양상
브나로드 운동 - 1931년 7월 창간 10주년을 맞아 『동아일보』가 ‘브나로드’란 기치를 내걸고 실시한 운동이다. p.399 읽기.
①<흙>은 당시 『동아일보』편집국장이었던 춘원이 ‘브나로드’ 운동으로 연재한 작품.
②<상록수>는 1935년 『동아일보』창간 15주년, 특별 공모에 당선한 장편소설이다.
③만우의 농민소설은 <흙>과 <상록수>와는 전혀 다른 양상의 농민소설이다.
3. 만우 농민소설의 의미
만우 박영준은 1934년『조선일보』『신동아』에 단편 <모범경작생>과
장편 <일 년>이 동시에 당선되어 문단에 등단하였다.
1)만우와 춘원의 (농촌소설) 차이점
①춘원의 <흙>이나 심훈의 <상록수>, 민촌의 <고향>
+ 농촌과 농민을 오직 가르치고 깨우쳐야할 계몽의 대상으로만 묘사하고 있다.
②만우의 작품 <모범경작생>, <일 년> 등
+ 만우는 누구보다도 냉철하게 사실적으로 당대 조선농촌의 현실을 적확하게 그리려고 하였다.
③농촌에 대한 관심이 대단했던 만우는 가난한 농촌출신이었다.
④ “나는 가난 속에서 낳고 가난 속에서 자랐다. 내가 아는 사람도 내가 본 사람도 역시
가난한 아들뿐이었다. 그 속에서 나온 내 소설이 가난이 아닐 수 없다.”
만우의 단편집『목화씨 뿌릴 때』자서(自序)에서,
+ 이러한 만우의 문학적 관심 때문에 그 당시 지식인들이 휩쓸린 농촌 계몽의 열기에 쉽사리
빠져들지 않고 견고한 자기 나름의 세계를 구축할 수 있었을 것이다.
2)만우의 작품들
①<일 년> - 작가 자신이 밝힌 바와 마찬가지로 당시 조선의 전형적인 소작인들의 되풀이되는
가난한 일 년 동안의 생활을 있는 그대로 그린 작품이다. p.404. 읽기.
+ 이 시기의 다른 작가와 비교할 때 당대 현실의 구조적모순을 꿰뚫어 볼 수 있는 것은
작가의 건실한 역사의식의 결과라고 할 수도 있다.
+ <모범경작생>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농민을 이끄는 지도자가 없어도 그들 스스로가 힘을 모아
지주에게 대항할 수 있다는 사실은 춘원류의 소설과 구별된다.
<일 년>에서 만우의 인물들은 살아가며 부딪치는 일들을 스스로 의지와 행동으로 해결해 나간다.
각자가 한 사람의 주체이며 스스로 운명을 결정하는 의지적 인물이다.
②특히 <모범 경작생>은 일제의 ‘농촌진흥운동’과 같은 농업정책의 허구를 역설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다.
+ ‘길서’라는 이른바 모범경작생을 통해 ‘농촌진흥운동’의 허구를 날카롭게 비판하고 있다.
+ 일제의 꼭두각시에 지나지 않는 일제를 위한 모범경작생 ‘길서’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마을
농민들을 서슴지 않고 배반한다.
③<생호래비>(『개벽』,1935,1)
+ 노총각 홍진구(수동적 성격)가 머슴살이로 모은 새경으로 어렵게 결혼을 하지만 그 아내가
가난을 견디지 못하고 도망가 남의집살이를 하는 비참한 이야기다. - 당시의 비참한 농촌현실을
잘 보여주고 있다.
+ <일년>이나 <모범경작생>의 농민들이 스스로 삶을 꾸려가는 의지적인 인물임에 비해
<생호래비>는 춘원 등의 계몽적 소설의 인물처럼 수동적이고 의지가 박약하다.
④<어머니>(『조선문단』, 1935.7) - 역시 농촌의 삶을 배경으로 지주와 소작인의 관계와
극도로 궁핍한 농촌현실을 그린 작품이다.
+ 등장인물의 성격묘사에 작가의 관심이 집중되어 있다.
+ 제목이 말해 주듯이 아들에 대한 어머니의 사랑이 잘 그려져 있다.
이 소설은 어머니의 지극한 사랑을 그리려 한 소설이지 농민소설이라고 하기엔 다소
특이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만우의 농민소설은, 당시 유행했던 이광수, 심훈 등과 같은 ‘농촌계몽’ 소설이 아니라
농촌과 농민의 삶을 보다 ‘사실적으로 그리는’ 일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또한 만우의 <모범 경작생>이나 <일 년>을 살펴 볼 때 만우 소설의 특징은 매우 뚜렷하다.
소설이 다른 문학양식보다 더 다양한 삶의 구체적 양상을 보여 주어야 하고, 삶의 구조적 모순의
지적과 극복의 방법을 제시하여야 한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 만우의 문학을 결코 과소평가 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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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만식(蔡萬植)론(1902~1950)
전라북도 옥구에서 출생. 본관은 평강(平康), 호는 백릉(白菱). 중앙고보,
일본 와세대대학 영문과 중퇴, 귀국 후 동아일보ㆍ조선일보 기자를 역임.
1925년 단편 <세 길로>가 이광수 추천으로 『조선문단』에 발표되면서 문단에 등단
카프에 직접적으로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초기에는 동반자 작가적 경향의 작품을 발표함.
1934년부터 풍자적인 작품을 발표하여 작가로서의 기반을 굳힘. 그 뒤에도 풍자성이
짙은 작품을 계속 발표함.
1936년 기자생활을 청산하고 금광업을 하면서 『조선일보』에 장편 <탁류>를 연재함.
작품 : 초기 희곡 <사라지는 그림자>, 단편 <화물자동차>, <부촌>
1934년 <레디메이드 인생>, <인텔리와 빈대떡> 등 풍자적인 작품을 발표
그 이후 단편 <치숙>, <소망>, <예수나 믿었더면>, <지배자의 무덤> 등
장편 : 1936년 『조선일보』에 장편 <탁류>를 연재함.
유고작 : 1973년 중편 <과도기>와 희곡 <가죽버선>이 발견되어 『문학사상』에 발표됨
저서 : 『채만식단편집』, 『탁류』, 『천하태평춘』, 『집』(단편집) 등
8ㆍ15광복 후에는 <여자의 일생, <황금광시대>, <잘난 사람들> 등
1. 인간 역사를 밀고 나가는 힘, 문학
※ 채만식의 시대 : ‘경술국치⇒일본유학⇒등단⇒태평양전쟁⇒해방⇒전쟁’으로 이어지는 격동기
- 중장편 15편, 단편소설 70여 편, 극작품 30여 편
- 자기가 살아가는 고약한 시대의 부정적 양상 적발
- ‘부정면을 통해 기실 긍정면을 주장하기 위해서’ 글을 씀
2. 부정적 파악의 시작, 처녀작 「과도기」
- 중편 길이의 처녀작(1923)
- 유작으로 1973년에 발표됨
- 부모의 강권으로 조혼한 20대 초반 세 명의 남자 유학생의 불륜과 방황
+ 봉우 : 신여성과 결혼하고 싶은 마음에 순종적 아내에게 이혼을 종용
+ 형식 : 일본인 여학생과 사랑에 빠짐
+ 정수 : 애정 없는 결혼을 받아들일 수 없어 이혼하려 함
- 1920년대 초반 일본 유학생의 연애관, 결혼관, 사회관 등을 그림
+ 부정의 대상
➀ 반민족행위자, 전통적 관습, 일본인, 그리고 나아가 현실 자체, 사회 전체
➁ 조혼풍습, 성적향락, 타락된 20대 초기의 한국 지식인, 나아가 자신들의 생존자체까지
➂ 감성적인 수준에서의 부정
- 극적 플롯의 형성 소홀
+ 사건의 추이보다 시대상황에 대한 작중 인물의 심리적 반응에 중점을 둠
: 작중인물들의 반응이 객관화되어 있지 않고 그들의 직설적 독백이나 공상이 장황하게 나옴
3. 민족현실에 대한 관심
1) 사회주의적 농민극(1930~1932)
- 희곡 창작
+ 「가죽버선」(1927, 단만극)에서 1941년 「대낮의 밤주막」까지 28편의 희곡 창작,
2편의 대화소설
+ 소설로 쓰기에 마땅치 않은 제재는 희곡의 형식을 빌림
+ 『제향날』, 『당랑의 전설』이 가장 대표적
※ 대화소설
* 채만식만의 독특한 작품형태
* 지문이 없이 대화로만 이루어져 있음
* 인물, 시대, 장소 제시가 없음
* 막이나 장의 구분도 없고 무대지시문도 없음
* 단락마다 장소 표시 : 예) ‘1. 전서방의 집에서’ 등
* 「조그마한 기업가」, 「부촌」
- 농민극 : 농민이 처한 상황에 대한 부정정신
* 「농촌스케치」
→ 지주, 교원, 면서기, 금융조합직원, 순사 등이 부정의 대상
→ 기생놀음을 하거나 농민운동을 억압하는 장면 부각
* 「미가대폭락」→ 쌀값의 폭락으로 궁지에 몰린 농민을 착취하고 매정하게 대하는 젊은 지주
* 「조고마한 기업가」→ 악독 브로커라 할 농토의 중간경영자
* 「부촌」
→ 풍작이어도 남을 것이 없어 타작을 하지 않은 낟가리를 두고 부촌이라고 탄사를 연발 하는 관리
- 농촌의 부정적 인물 (농촌의 상류층과 농업경영자 등)의 부정적 양상 비판
- 사회주의적인 색채를 드러냄
⇒ 채만식의 계급적 존재기반에 대한 갈등과 변모
➀ 『별건곤』의 문예담당 편집인으로 참가(1929~) : ‘프롤레타리아 문사’라고 자부
➁ 중농 집안의 후예로서의 존재 기반을 부정하기 어려움
: 프롤레타리아문사라는 말을 철회(1934), 반성적 글쓰기
2) 『인형의 집을 나와서』(1933)
➀ 채만식 『인형의 집을 나와서-노라의 후일담』
『조선일보』, 1933.5.7.~11.14.
변호사이자 은행 지배인인 남편을 둔 임노라는 자신이 그동안 그저 남편의 ‘인형’에 지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집을 떠난다. 그녀는 혼자 살기 위해 애쓰지만 결국 카페 여급으로 전락하고, 정절마저 잃게 되자 자살을 시도하기도 한다. 다시 살아난 임노라는 인쇄소의 노동자가 되어 당당하게 살아간다.
→ 입센(Henrik Johan Ibsen)의 「인형의 집」
헬머 변호사의 아내 노라는 남편의 사랑 속에서 아이들을 기르며 행복하게 살고 있다.
어느 날 노라가 부친의 서명을 위조하여 빚을 얻어 쓴 사실이 밝혀져 큰 갈등을 겪게 된다.
노라는 남편이 중병을 앓을 때 요양비를 마련하기 위해 그렇게 했던 것이었다. 남편은
이 사실로 자신의 사회적 체면이 깎일까봐 노심초사하고, 남편의 위선적이고 이기적인
태도를 알게 된 노라는 아내와 어머니로서의 위치를 박차고 인간으로서의 자신을 찾기 위해
집을 나서게 된다.
※ 『인형의 집을 나와서』 : 서구 근대 희곡, 입센의 『인형의 집』
당대 여성해방운동(1920~30년대), 전기적인 사실과 죄책감
: 페미니즘적인 시각을 드러낸 초기 장편 소설로 특별한 평가
사회적 문제를 극복해 나가는 긍정적 인물상을 부각
(가정적 관습, 계급간의 갈등, 직업의 귀천의식 등 극복)
강제 조혼과 가부장제 이데올로기에 희생된 여성, 이혼여성의 운명
남편에게 버림받은 여성의 자립을 낙관적으로 그리고 있음
➁ 1920~30년대 여성해방운동
➂ 전기적 사실과 소설 형상화
- 중앙 고보 3학년 재학중, 부모의 강요로 결혼
- 부인 은성흥과 별거
- 1936년 김씨영이라는 신여성과 새로운 삶을 시작
- 강제 조혼과 가부장제 이데올로기에 희생된 여성들의 운명에 대한 고민
4. 풍자를 통한 부정(1934~1938)
- 단편 「레디메이드 인생」(1934), 「명일」(1936), 「치숙」(1938), 「소망」(1938)
- 장편 『탁류』(1937), 『천하태평춘』(후에 『태평천하』로 개제)(1938) 등
- 풍자적 방법을 통해 대상을 부정하는 작품
- 작가의 역량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
➀『레디메이드 인생』(『신동아』1934.5~7.)
레디메이드 인생 : 만들어 놓고도 팔리지 않는, 임자 없는 기성품 인생
내용 : 고등실업자인 P는 구직에 실패하자, 책과 옷을 팔아 난봉질에 다 써버리고, 지극한 자기 비하와 모멸감에 빠진 채, 시골에서 올라온 아들 창선을 인쇄소에 취직시킨다.
- 희곡 「인텔리와 빈대떡」의 내용과 거의 흡사 → 사회적 전달력을 높이기 위해 소설로 개작
- 설 자리를 잃은 지식인의 비극을 풍자와 비유와 반어를 통해 그림
➁ 「탁류」(『조선일보』1937.10.12.~1938.5.17.)
내용 : 정주사 집안의 두 딸, 초봉과 계봉, 그리고 이에 얽힌 사람들의 이야기
정 주사의 딸 초봉은 가세가 기울어 제중당이라는 약국에서 일한다. 이 약국의 주인인 박제호는
초봉을 서울로 유인하려고 하지만 아내가 훼방해서 실패하고 초봉은 고태수에게 시집을 간다.
그러나 곱추인 장형보의 흉계로 남편도 잃고 몸을 버리게 된다. 무작정 서울로 가던 초봉은
박제호의 유혹으로 그의 첩이 되고, 얼마 뒤 누구의 아이인지도 모르는 딸을 낳는다. 장형보가
자기 아이라면서 초봉과 아이를 데려간다. 초봉은 극약을 먹여 장형보를 죽이고 자수한다.
- 군산 : 당대 조선인 일반의 삶을 지배했던 사회 경제적 조건을 잘 보여주는 배경
- 미두장 : 당대의 경제적 상황을 보여주는 환경
경제윤리를 훼손시키고, 자본은 인간의 왜곡된 욕망과 결탁됨
미두장 하바꾼으로서 정주사의 몰락과 장형보의 성공은 초봉의 비극을 만드는 요인
- 인간관계가 점차 ‘돈’에 의해 사물화되어 가는 모습 형상화
- 탁류에 휘말린 1930년대 한국의 실상을 고발
※인물분석
비극적 인물 : 초봉의 삶에 초점을 두고 전개
긍정적 인물 : 당대 사회의 속악성(俗惡性)과 대결할 것을 기약 - 계봉, 남승재
부정적 인물 : 부정적 요소 가난, 싸움, 투기, 간통, 흉계, 횡령, 탐욕, 추행 등
⇒ 파멸-생성의 구조 : 현재 부정-미래지향의 의식 구조
* 마지막 장(章)의 부제(副題)가 「서곡(序曲)」
: ‘탁류’가 몰고 온 찌꺼기들을 씻어내고 맑은 물이 흐르는 새 시대가 오리라는 희망
세태소설인가, 아닌가(426쪽)
➂ 「태평천하」(『조광』, 1938.1.~9.)
- 발표 당시 「천하태평춘」, 1948년 단행본 발간시 「태평천하」로 개제
- ‘윤직원’ 집안 3대에 일어난 하루 동안의 일상사를 중심으로 구성한 가족사소설
1세대 : 윤직원(윤두섭)-신흥지주계급, 부패지주의 전형, 식민 통치하를 “태평찬하”로 생각
2세대 : 윤창식 -윤리적 타락
3세대 : 윤종수-군수감으로 지목, 윤리적 타락-부정적 인물의 계보
윤종학-사회주의자, 체포되었다는 전보-자기(가족) 부정, 새 세계에 대한 긍정적 힘
- 총 15장, 극적 ‘아이러니’, 풍자극의 구조
- 대가족 윤리의 붕괴, 일상적 윤리의 타락상 = 「삼대」와 유사
식민지 시기 반봉건 지주제의 문제를 안고 있는 가족
부정적인 인물 - 반민족적, 반사회적 지주
윤직원-윤창식-윤종수로 이어지는 3대의 부정행위
가족 내부의 자기 부정적인 힘에 의해 침몰되도록 함
- 화자의 구어체 간접화법의 진술 방식
- 판소리 사설의 표현기법 수용
- 풍자적 비판
➃ 「치숙」(痴叔)(『동아일보』, 1938.3.7.~14)
- 무능한 인텔리의 비극을 그린 지식인 소설
주인공 아저씨(서술자의 오촌 고모부)
: 파시즘에 대항, 비순응적인 태도를 끝까지 견지하는 순수 이념형
서술자 ‘나’(관찰자)
: 주인공의 조카, 일제에 편승하여 속된 욕망을 채우려는 무지한 출세지향형
⇒ 서술자와 인물간의 거리에서 믿을 수 없는 서술자(unreliable narrator)가 나오고
⇒ irony 발생(⇠독자와 서술자와의 거리)
5. 부정적 발언의 회피(1939~1945)
- 신변잡기적인 이야기들을 담은 단편(1940년대 초)
- 1941년 『탁류』의 3판이 일제에 의해 금지 처분, 검열 강화
현실문제에 관한 한 식물인간의 행세
「패배자의 무덤」, 「금의 정열」, 「냉동어」 등
자신을 식물인간이 되게 한 사회, 또 그런 식물인간으로 살아가는 자신과 같은 지식인들을
모 두 부정
※ 「종로의 주민」(1941.2. 탈고)
표면 : 젊은 영화감독 송영호의 종로 배회기 - 빈털터리인 젊은 영화감독이 그의 친구와 더불어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실없는 수작을 주고받으면서, 또는 담뱃가게 아가씨에게 부질없는 장난을
걸기도 하면서 종로 일대를 배회하는 모습
이면 : 일제의 요구와 일제에 의해 잘못된 방향으로 나가는 현실에 대한 은근한 비판
⇒탈고 후 검열에 걸려 『삼천리』 게재 금지됨
- 친일적 작품 발표
논문 「문학과 전체주의」, 「홍대하옵신 성은」
소설 「여인 전기(轉記)」(『매일신보』, 1944.10.5.~1945.5.17.)
→할아버지 : 갑신정변에 참여했다가 일본으로 망명하여 죽음
아버지 임중위 : 일로전쟁에서 일선돌격대 지휘를 자원하여 전사
옥동댁(임진주)
아들 : 학도병으로 나가 전투에 참전
⇒ 일본 군대의 임무와 용맹성, 일본군으로서 조선인의 활약, 일본 군인의 배려,
일본군인의 어머니로서의 자세가 미화되어 그려짐
6. 해방 후의 부정상에 대한 도전적 증언(1945~1950)
- 친일행적에 대한 자기반성과 자책의 이야기 : 「민족의 죄인」, 「역로」
- 창씨개명은 거부했지만, 친일의 오점 때문에 괴로워하다 낙향
※「민족의 죄인」(『백민』, 1948.10.~1949.1)
해방 전, ‘나’는 독서회를 조직했다는 누명을 쓰고 일본경찰에 붙잡힌다. 출옥 후 친일문학단체 에서
활동하며 일제의 정책을 합리화하는 강연을 하다 죄책감에 낙향한다. 농사짓는 일조차 제의
식량증산운동에 적극 협조하는 내용으로 기사화된다. 해방 후 친구의 출판사에서 나의 친 일행동에
대한 조롱과 멸시를 당한다.
- 친일파에 대한 풍자적 비판
『잘난 사람들』-「도야지」, 「낙조」, 「맹순사」, 「미스터방」 등
부정적인 친일 세력, 반민족행위자의 기만과 위선을 고발하고 이들의 몰락을 부각
* 도야지 : 문영환 - 국회의원 선거에서 도야지와 함께 ‘낙방’
* 낙조 : 전직 경보부 박재춘 - 노한 민중에 의해 파멸당함
* 미스터 방 : ‘밑씻다 방’(방삼복) - 양치물벼락을 맞은 상전인 미군 장교로부터
일격의 ‘어퍼커트’를 맞고 쓰러짐
* 맹순사 : 맹순사 - 과거에 살인강도이자 무기징역수였던 자가 동료 순사가 되어 나타나자
도망치듯 사직함
- 민족의 장래, 새로운 세대에 대한 희망 제시
최우선 해결과제 내세움 : 일제 잔재의 청산, 민생의 해결, 외세 배격에 의한 자주적인 민족통일 등
순수한 민족주의자로서의 입장 표명
새로운 세대상 : 「도야지」의 문태석, 「낙조」의 박영춘, 「소년은 자란다」의 영호
※「소년은 자란다」: 생존을 위해 고향을 등지고 간도로 이주했던 영호 가족이 해방 이후 우여 곡절
끝에 고국에 돌아왔으나 어린 영호, 영자 남매는 갈 곳 없는 고아가 되어 버리고 만다.
7. 부정의 정신, 부정의 논리
현실에 대한 증인의식 ⇨ 부정정신 ⇨ 풍자(부정의 방법론)
: 인편이 허락하는 대로 원고용지 한 스무 권만 보내주소. 자네는 혹 내가 건강이 좋아져서 글이라도
쓰려고 하는 것같이 생각할는지도 모르지만 사실은 그렇지가 않소. 나는 일평생을 두고 원고지를
풍부하게 가져 본 일이 없네. 그렇기 때문에 이제 임종의 어떤 예감을 느낀 나로서는 죽을 때나마
한번 머리맡에다 원고용지를 많이 놓아 보고 싶은 걸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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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준(李泰俊)론(1904~?)
강원도 철원에서 출생, 호는 상허(尙虛)ㆍ상허당주인(尙虛堂主人).
휘문고보를 나와 일본 조치대학에서 수학함
『시대일보』에 <오몽녀(午夢女)>를 발표하면서 문단에 등단
구인회 가담, 이화여전 강사, 조선중앙일보 학예부장 등 역임
1930년부터 본격적인 작품 활동 시작
문예지 『문장』을 주관하다가 8ㆍ15 광복 직전에 철원에서 칩거,
광복 후에는 조선문학가동맹에 포섭되어 활약하다가 월북함.
단편: 1930년대 <가마귀>, <달밤>, <복덕방>, 1946년 <해방 전후> 등
소설집 : 『구원의 여상』, 『딸 삼형제』, 『사상』, 『해방 전후』등
문장론 : 『문장강화』
1. 이태준 소설의 이중성
※ 이태준의 시대 : 일제하 ⇒ 등단, 구인회, 『문장』⇒ 해방, 월북 ⇒ 전쟁 ⇒ 숙청
순수문학작가에서 사회주의 작가로 변모양상
① 구인회 회원 : 문학가 동맹 부위원장
‘한국근대단편소설의 완성자’
“경향문학의 퇴조 이후 나날이 그 존재가 뚜렷하게 대사(大寫)된 작가”(백철)
②「문장강화」저술, 일제 말기 『문장』의 실질적 책임자
➂ 월북 문인, 월북 후 숙청
➃ 순수문학의 기수 - 프로문학가들로부터 비판
‘구인회’의 중심인물로서 모더니스트
문장의 정련(精鍊)과 기교를 문학의 사회적 효용성보다 높이 평가함
통속ㆍ역사소설 『황진이』, 『왕자호동』등 창작
➄ 사회의식의 심화, 사회주의자로 변모
1938년 이후 현실비판 심화
해방 직후 문학가 동맹 부위원장, 월북
계급문제를 드러내는 작품 창작
➅ 순수문학에서 사회주의 문학으로 :「오몽녀」~「해방전후」~「농토」
민족주의적 성향, 문명화된 세계 비판, 과거에 대한 향수, 현실에 대한 비판과 부정,
‘소망하는 세계’에 대한 동경의 표현, 추상적 관념에 머묾
낭만적 동경(주관주의) - 하나의 세계관이자 미학원리로서의 낭만성
- 주관성과 부단한 동경을 그 속성으로 함
2. 주관적 동경과 속악한 현실(1925~1943)
시대적 배경 : 민족주의 운동 확산, 카프 결성, 동반자 그룹 형성
카프 해체, 검열 강화, 다양한 실험
- 이 시기 이태준 소설의 특징
1) 주관적 동경
+ 계속적인 동경심과 주관적 자의식이 근본에서 관철
+ 주관적 사상이나 감정, 기분 중시 - 비애와 우수의 정조
+ 시적 아름다움을 창조, 다분히 서정적
2) 현실 비판과 좌절
+ 주인공이 현실을 부정하거나 반발
+ 자기주관과 이상이 뚜렷
3) 반문명, 과거에 대한 동경
4)『오몽녀』(『시대일보』, 1925.7.13.)
‘오몽녀’는 가난하게 자랐고 또 남 속이기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인물로, 남편(지참봉) 몰래 돈을 훔치거나 맛있는 음식을 독식하는 탐욕스러운 여인이다. 또 나이 많은 남편에게 본능적 욕망을 충족하지 못하여 어부 금돌과 정을 통하고, 이후 권력으로 회유하는 남순사와도 관계를 맺는다. 그런데 남순사는 지참봉을 독살하고, 재산과 권력을 앞세워 오몽녀를 첩으로 들이려고 협박한다. 하지만 오몽녀는 젊고 건강한 금돌을 택하여 ‘해삼위(블라디보스톡)’<‘별빛 푸른 북쪽 하늘’-개작본>로 도망한다.
5)『오몽녀』의 특징
+ 데뷔작, 습작기의 미숙함이 노출
+ 축소, 개작 후 『이태준 단편선』(1939)에 게재
+ 한 인물(오몽녀)의 욕망 충족 과정만 집요하게 추적 : 사회나 시대 현실의 문제
→ 욕망을 억압하는 외부 현실에 반발하고 내면의 욕구에 순응
+ 강한 주관주의에 기반
⇒ 주관주의 : 주관을 근본 원리로 하여 가치의 주관성을 옹호
내면의 경험, 내면적 세계를 진실이라 간주
‘나’(주관)를 억압하는 일체의 외부 상황에 반발하고 비판
낭만주의의 내적 특성의 하나
6) 1930년대 이후의 작품 : 현실에 대한 분노와 비판
+ 강한 동경이 내재
+ 감정적인 반발이나 일면적인 폭로에 그침
+ 식민지 청년의 분노와 좌절 : 「고향」(1931), 「실락원 이야기」(1932)
+ 도시 이주 농민들의 애환 : 「꽃나무는 심어 놓고」(1933), 「봄」(1932)
+ 쇠락한 노인들의 소박한 꿈과 좌절 : 「불우선생」(1932), 「복덕방」(1937), 「행복」
+ 결혼생활에 대한 여성의 설렘과 좌절 : 「코스모스 이야기」(1932)
+ 만주 이주 농민의 토착민과의 대결 : 「농군」(1939)
7) 「고향」(『동아일보』, 1931.4.21.~29.)
+ 자전적 단편, 「사상의 월야」 후일담
+ 고학으로 어렵게 학업을 마친 ‘김윤건’이 귀국 후 겪게 되는 일련의 좌절
+ ‘현실을 외면한 채 자신들의 실리만을 꾀하는 지식인들의 반민중적 모습’을 비판
+ 고향의 참담한 현실에 분노하고 흥분
→ 구체적인 매개 삭제, 감정적인 분노를 드러내는 수준에 그침
- 이상향으로서의 ‘조선’
주인공 김윤건의 기억 속에 각인된 관념적 공간
단순한 동경과 향수의 대상
※ ‘나의 고향은 어데냐?’
윤건은 심사가 울적할 때마다 보던 책을 다다미 위에 집어 내던지고 그리운 곳을 톺아 보곤 하였다. 함경북도 배기미냐, 서울이냐, 출원이냐, 그저 막연하게 조선땅이냐, 그러면 배기미나 서울이나 철원에 누가 나를 기다리고 있느냐, 아무도 없다. 배기미 같지도 않다. 서울도, 철원도 아닌 것 같다. 그러나 그는 이 말 끝에 “조선땅이 아니다”라는 말은 해 본 적이 없었다. - <고향>, 『동아일보』, 1931.4.21, 1회분
8) 반문명 지향, 과거에 대한 향수
+ 반문명의 형태, 혹은 과거에 대한 향수 드러냄
+ 현실에서 내면적 진실의 추구, 불가능해진 상황
+ 유가적 태도 : 한말 유학자였던 부친의 영향, 유교적 이념을 내면화
+ 단편소설 「패강냉」(1938), 「돌다리」(1943)
9) 「패강냉(浿江冷)」(『삼천리문학』, 1938.1.)
+ 浿江冷 : ‘대동강(패강)이 얼다’
+ 10년만의 평양 친구와 재회
현 : 소설가, 초점 인물 - ‘시대 전체에 찌싯찌싯 붙어 있는 존재’임을 확인
박 : 평양 고보 조선어 선생, 강의시간 축소되어 분개
김 : 실업가, 평양부회의원, 전형적 속물
+ 3차 교육령에 의해 조선어가 수의과목으로 전락한 시점
+ “이상견빙지(履霜堅氷至) ……”(현의 혼잣말)
‘서리를 밟게 되면 머지않아 매서운 겨울이 닥칠 것’이라는 뜻
현, 박, 기생 영월, 평양을 포함, 조선 전체가 위기임을 암시
+ 평양(독특한 아름다움 상실) = 조선어 교사 ‘박’(조선어강의 시간 축소) = 기생 ‘영월’(늙음)
⇒ 폐허의 서글픔
문명 비판 → 일제에 대한 비판으로 연결
‘부벽루’에 대한 찬탄도 같은 맥락
평양의 전아함과 고답미를 발견. 폐허화된 현실
→과거의 정적이고 전아한 공간에 일시적으로 자아를 은폐
10) 「돌다리」(『국민문학』, 1943.1.)
+ 창선 : 병원 확장을 위해 농토를 팔려 함
아버지 : 토지에 대한 애착, “이해를 초월한 종교적 신념”
땅이란 일시 이해를 따져 사구 팔구 하는 것이 아닌 “천지만물의 근거”
+ 돌다리 보수 = 농토에 대한 친화
목재다리 있음, 잉여적인 노동
돌다리 : 어린 시절의 추억, 할아버지, 어머니
아버지는 주변의 조롱에도 불구하고 돌다리를 복구
+ 문명화된 현실에 반하는 인물을 통해서 자연과 옛 것에 대한 깊은 친화성을 보여준다.
3. 해방과 자기 부정의 도정
1) 일제 말~ 해방기
1941년 제2회 조선예술상 수상
1942년 전후 친일적 글쓰기
1943년 강원도 철원 안협으로 낙향, 칩거, 절필
1945년 상경, 문화건설중앙협의회, 문학가동맹 등 조직에 참여, 문학가동맹 부위원장
“의연히 일해야 할” 공간으로 해방기를 맞이
1946년 2월, 남로당의 하부조직인 ‘민주주의 민족전선’의 문화부장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론’으로 요약되는 남로당 노선의 열렬한 옹호자로 변함
문학을 선전의 도구로 인식
2) 「해방 전후」-한 작가의 수기(『문학』, 1946.8)
과거 ‘현’(작가)은 일제의 친일 압력을 받던 상황에서 이조의 후예인 김직원 영감에게서 감화를 받고 마음의 안정을 찾았다. 그러다 해방이 되자 현은, 자신은 그 동안 일제로 인해 위축되어 있었던 것이고 우리 민족의 힘이 미약했기 때문에 사회운동을 하지 않았을 뿐이라며 과거를 부정한다. 이제 더 이상 옛 것을 고수하지 않고 공산당을 중심으로 현실에 참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김직원은 이런 ‘현’에게 공산당에 이용당하는 것이라 비판하지만, 현은 오히려 그를 "세계사의 대사조 속에 한 조각의 티끌“같은 존재로 동정할 뿐이다.
→현은 그들의 태도와 주장에 알고 보니 한군데도 이의를 품을 데가 없었다. 「장래 성립할 우리 정부의 문화, 예술영역의 통일적 연락과 각 부문의 질서화를 위하야」였고, 「조선문화의 해방, 조선문화의 건설, 문화전선의 통일」 이것이 전진구호(前進口號)였던 것이다. 좌우를 막론하고 민족이 나아갈 노선에서 행동통일부터 원측을 삼어야 할 것을 현은 무엇보다 긴급으로 생각한 것이오, 좌익작가들이 이것을 교란할가 보아 걱정한 것이며, 미리부터 일종의 증오를 품었던 것인데 사실인즉 알어 볼수록 그것은 현 자신의 긔우(杞憂)였었다.
⇨ 해방 전후의 이태준의 심경과 행적을 서술한 자전적 소설
⇨ 게재지 『문학』은 조선문학가동맹 기관지
⇨ 조선문학가동맹 제정, 해방기념 조선문학상 제1회 수상작
+ 좌익사상=민족적인 것, 진보적 우익으로 오해
조선공산당의 혁명노선=민족대단결의 원칙으로 보고 정당성 부여
프로문학가들의 태도가 변했다고 판단한 결과
+ 식민지 시대 이래의 낭만적 동경이 그대로 투영
‘공산당’을 동경의 대상으로 수용, 「소련기행」이후 더욱 분명
4. 소련 체험과 신념의 소설화
1) 월북 이후
「소련기행」(백양당, 1947.5.)
+ 새로운 사회를 향한 신념과 열정이 강하게 투사 ⇒ 사회주의자로 변신
+ 1946년 8월 10일 ~ 10월 17일 소련 방문기
+ ‘방소문화사절단’(평양조소문화협회)의 자격으로 방문
이찬, 이기영, 허정숙, 노동자ㆍ농민 대표 동행
기석복(奇石福)을 위시한 소련계 2세의 지지가 작용
* 기석복 : 당시 『노동신문』의 주필, 이태준의 문학을 높이 평가하고 그를 적극 후원.
이들의 지지로 1952, 3년도의 남로당계 숙청에서 이태준이 제외됨.
2)「소련기행」(1947)
소비에트는 무엇보다 인간들이 부러웠습니다. 그전 문학에서 보던 사람들은 없었습니다.
자연으로 돌아가라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 받느니라 아무리 외치어도 잃어버리기만 하던
인간성의 최고의 것이 유물론의 사회에서 소생되어 있는 것은 얼마나 놀라운 사실이리까!
제도의 개혁이 없이는 백천 번 외어대야 미사려구에 불과하므로 예술이 인간에 보다 크게
기여하려면 인간을 못살게 하는 제도개혁에서부터 바쳐야 할 것을 절실히 느꼈습니다.
- 이태준의 편지 (『문학』2호, 1946.11.)
- 소련에 대한 호의적인 설명과 예찬
- 사회주의 미학관의 기본 전제를 수용
노동과 문학에 대한 인식의 전환(소비에트 작가동맹 방문 부분)
노동하는 생활 자체=예술
- 표현론적 문학관⇒반영론적 문학관
객관 현실의 본질적 국면을 반영하는 것이 문학
“시대가 요구하는 문제를 반영하지 못했다면 무가치한” 문학
- 추상화된 신념의 수준
- 낭만적 동경 대상=혁명 후의 소련
소련의 긍정적인 면모를 수용하는 내적 동기 불명확
사회주의는 모든 제도적ㆍ인간적 모순이 사라진 관념의 투사물로 등장
3)「농토」(삼성문화사, 1948.8)
- 사회주의자로 변신한 후 쓴 첫 작품, 월북 후 대표작
황해도 가재울이라는 농촌을 배경으로 양반집 머슴이었던 ‘억쇠’가 해방 후 변화된 현실 속에서 역사의 주체로 성장하는 과정을 그림. 주인공 억쇠와 그의 아버지 천돌이는 대대로 노예적 상태를 벗어나지 못한 인물이다. 수모 속에서 성장한 억쇠는 ‘성필’ 등 전위적인 인물에 의해 ‘노동자, 농민의 세상’을 약속하는 사회주의에 눈을 뜨게 되면서, 새로운 국가건설에 매진하는 적극적인 인물로 변모하여 토지개혁을 주도하고, 마침내는 ‘새 세상, 새 조선’을 끌어갈 주체로 변신한다.
- 북한의 사회주의 혁명과정을 사실적으로 포착
상승하는 계급과 하강하는 계급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되는 시기
토지 개혁과정에서 땅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월남하는 지주들의 몰락상, 처형 및 숙청의 과정, 농민들의 이기심, 미ㆍ소에 대한 민중들의 반감과 호의 등
※ 토지개혁
북한은 생산수단에 대한 사회주의적 개조를 1946년에 착수하여 1958년에 완수하였다고 주장한다. 즉 1946년 2월에 조직된 북조선 임시인민위원회는 같은 해 3월 5일 ‘토지개혁에 관한 법령’을 발표하여 무상몰수ㆍ무상분배의 원칙에 따라 토지개혁을 실시하였고, 같은 해 8월 10일에는 주요산업의 국유화 법령을 발표, 공장ㆍ광산ㆍ철도ㆍ체신ㆍ은행 등의 주요산업을 국유화하였다.
- 민중의 시각
하층민의 생활상에 초점을 두고 토지개혁 형상화
억쇠 : 대대로 억압받고 착취당하던 민중의 대리인
해방 전 소설의 주인공은 대부분 지식인
- 사회의 본질적 국면 간파
노동하는 인간, 가장 고통 받는 계급의 입장
- ‘당파성’의 개념에 근접
상승하는 계급의 시각이 현실 파악의 원근법으로 작용
-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중요한 성과로 평가
- 관념적으로 ‘이상적 세계’인 사회주의를 추종
- 인물 형상화의 추상성
* ‘억쇠’ : 현실적인 매게 없이 변화ㆍ발전
↳ ‘성필’을 비롯한 전위(前衛) 분자와 당의 지령에 의해 추동
↳ 지령에 의해 움직이는 무의지적 인물
↳ 작가의 개입과 전위의 계몽적 설교를 통해서만 역사발전법칙을 자각하는 기능적 인물
* ‘성필’ 등 : 전위적 인물, ‘주의자’
↳ 농민들의 행위와 방향성을 제시하는 역할을 수행
↳ 강한 계몽성, ‘밀짚모자는 썼으나 농사꾼 같지 않은 낯선 사람’
- 작가의 사회주의에 대한 이해 : 주관적, 도식적, 관념적
4) 「농토」 이후
- 1949~1956?
+ 10여 편의 중ㆍ단편 (「농토」와 유사) - 발표
미군에 대한 원수를 백배천배로 갚자는 결의를 서술 : <백배 천배로>
겁 많은 병사가 용기 있는 전사로 변화되는 과정 : <누가 굴복하는가 보자>
+ 이원(二元) 대립적 구성
+ 주인물의 긍정적 성격화
+ 이념의 무매개적 개입
“현존하지는 않으나 소망하는 혹은 필요로 하는 어떤 것을 부단히 동경하고, 그것을 창조하 기 위해 현존하는 것을 부정하거나 변형하는 식민지 이래의 낭만적 동경이 근본에서 관철”
5. 맺음말
- 이태준 소설의 정체성 : 부단한 동경과 좌절 - 변모의 중심에는 ‘낭만적 동경심’이 강하게 내재
내면의 무한한 팽창 ⇨ 전아한 고전의 세계 ⇨ 사회주의 ⇨ ‘소련’
- 월북작가로서의 이태준 : 박태원이나 현덕 등과 유사한 월북 작가
비교 : 이기영, 한설야 등의 프로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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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원(朴泰遠)론(1909~1987)
서울에서 출생, (1909~1987), 필명은 몽보(夢甫)· 구보(丘甫) · 구보(仇甫)·
박태원(迫太苑)이다. 1926년 『조선문단』에 시 <누님>이 당선되었으나,
소설로서는 1930년 『신생』에 단편 <수염>을 발표하면서 등단하였다.
1933년 구인회에 가담한 이후 반계몽 · 반계급주의 문학의 입장에 서서 세태풍속을 착실하게
묘사한 <소설가 구보씨의 일>, <천변풍경> 등을 발표함으로써 작가로서의 위치를 굳혔다.
이 시절 이데올로기보다는 문장 자체의 예술성을 중시하고, 인물의 내면의식 등 강한 실험정신을
보여 주었다.
+박태원은 이상과 함께 1930년대의 대표적 모더니스트 작가로 꼽혔다.
+모더니즘적 실험정신은 <천변풍경>을 전후로 변모하여
+1930년대 말경부터는 도시의 세태와 자신을 체험을 서술한 작품과 역사소설을 주로 발표했다.
단편소설 <사흘 굶은 보름달>, <애욕>, <5월의 훈풍>
장편소설 <태평성대>, <군상> 등 월북 전까지 60여 편을 발표
월북 후, 장편소설
<리순신장군전>, <임진조국전쟁>, <계명산천은 밝아오느냐>, <갑오농민전쟁> 등을 창작.
1. 모더니스트에서 역사소설가로
박태원은 1930년대 문학가 가운데 가장 매력적일 것이다.
독특하고 모던한 기법 실험,
현실에 대한 특별한 시선과 심층심리 묘사,
탁월한 한문번역 실력과 개성적인 역사소설의 창작은
그의 문학세계에 대한 해석욕망을 가지게 한다.
프로문학 소개자에서 모더니스트로,
친일에서 전향으로,
월북 후의 문학 활동까지, 그의 문학사상적인 변화 역시 상당히 흥미롭다.
2. 실험적 문체와 소설 기법
①박태원의 본격적인 문학 활동은 이태준과 만나면서 시작되었다.
+모더니즘적 특성은 이태준과 함께 구인회를 결성하면서 절정에 이르렀다.
구인회 : 이태준, 정지용, 김기림, 이상, 이효석 등
②1930년대 모더니즘 소설 전개에 핵심적인 구실을 하였다.
+구인회를 통해 이전 시기 카프 중심의 이데올로기 문학에서 탈피하였다.
+문학 내적인 문제로 관심을 집중하였다.
+문학의 자율성과 다양한 실험정신으로 모더니즘 문학세계를 구축하였다. p.469.읽기
+구보, 박태준의 초기 단편소설은 장거리 문장으로 실험적 특성이 드러난다.
③구보, 박태준은 이중노출(오버랩), 시간과 공간몽타주, 클로즈업 등 영화의 기법을 소설의 중요 한 창작 기법으로 끌어 들였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에서 이중노출(오버랩)의 기법을 사용하였으며,
+<딱한 사람들>에서는 클로즈업 기법을 사용,
+<천변풍경>은 카메라로 세상을 찍는 것처럼 서술자가 청계천변 주변을 객관적 묘사한 독특 한 작품이다. 안회남은 이것을 보고 ‘선천적인’ 것이라 하였다.
④박태원이 부정하고자 한 한국문학
+한국문학의 보편적 전통이 아니라, 이데올로기 우위의 프로문학이 보여주는
내용 중심의 목적문학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부정조차 식민지 역사적 현실 앞에서 희미해지고 만다.
박태원은 같은 구인회 회원이었던 ‘이상’과 종종 비교되는데, 이상과는 달리
전시대 문학에 대한 부정과 해체라는 모더니즘 정신에 철저하지 못했다는 평가를 얻고 있다
3. 심층심리의 분석과 세태 관찰
광복 전, 박태원의 대조적인 작품
①<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 모더니즘적 실험성
+ 당대 지식인의 내면에 대한 심충분석이 돋보인다면
②<천변풍경> - 문제의식의 치밀한 묘사
+ 천변에 사는 보통사람들의 일상에 대한 외면 관찰이 돋보이는 대조적인 작품이다..
+ 개별 삽화가 모자이크 방식으로 짜인 독특한 작품이다.
+ 두 작품 모두 도시를 배경으로 한 일상에 초점을 두고 전개되고 있으며,
가족주의와 유교적 도덕주의의 관점을 유지하는 강한 공통점을 보이고 있다.
1) 고독과 행복의 탐색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1934년 『조선중앙일보』에 연재된 중편소설이며 파격적 실험성이 짙은 작품이다.
①이중노출은(오버랩)은 ‘현재와 과거의 교섭’, 현실과 환상의 교착‘을 기교적 · 효과적으로 표현 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②구보씨의 하루는 고독의 실체와 행복의 의미를 깨달아 가는 과정이었고, 이 작품에서 보여준 다양한 기법의
실험과 별개로 전근대적 삶의 가치를 부정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생
2) ‘사이’의 공간, 천변 <천변풍경>
박태원의 장편소설 <천변풍경>은 (『조광』,1936.8~1937.1) 1930년
청계천변에 살던 서민들의 다양한 모습과 당시의 풍습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①최재서의 비평(1930년대 최고의 비평가)
+이 작품이 극도로 작가의 주관을 배제한 채
+도시의 일상세태를 마치 카메라처럼 객관적으로 담아내고 있다는 점에서
+리얼리즘의 확대를 가져왔다고 평가 했다.
그러나 임화는,
+‘말하려는 것과 그리려는 것의 분열’에서 나온
+기형적인 형태로서의 ‘세태소설’이라고 분석하였다.
여기서 재봉의 눈은 바로 천변을 찍은 카메라의 렌즈와도 같다.
이러한 서술 기법을 ‘카메라 아이(camera-eye>' 기법이라고 한다.
+시간성과 공간성의 극대화
+중심 플롯과 전형적 주인공의 실종
+세부 묘사만이 두드러진 세태 묘사‘라는 부정적 평가를 내리기도 한다.
4. 전근대와 근대의 공존
박태원의 겉모습은 가장 모더니스트의 모습을 보여준다.
김팔봉은 그를 “좌경하려다가 역전한 ‘모던뽀이’라는 인상을 준다”고 까지 말한 바 있다.
그러나 내면에는 언제나 전근대적인 이율배반의 모습이다.
예: 가족주의와 도덕주의 - <구보씨의 일일>의 어머니의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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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애(姜敬愛)론(1906~1944)
황해도 송화 출생. (1906~1944)
숭의학교 시절 동맹휴학 주동자의 한명으로 지목되어 퇴학당한 후, 낙향하여 야학과 신간회 등
사회운동에 투신하였다.
1931년 간도를 여행하고 귀국한 후 작품을 창작하기 시작하여, 1931년 『조선일보』에
<파금>을 발표하면서 문단에 등단하였다.
강경애는 박화성과 더불어 당대에 프로문학 진영의 수준 높은 여성 작가라는 평을 받았다.
특히 간도체험을 기반으로 <파금>을 비롯하여 <채전>, <축구전>, <모자> 등이 있다.
여성의 삶을 정면으로 문제 삼고 있는 장편 <어머니와 딸>,
계급문제와 여성문제를 총체적으로 제기하고 있는 장편 <인간문제>는 수준 높은 문제작이다.
카프와 직접적 관련은 없으나 카프의 이념에 충실하다는 작품은 높이 평가 받는다.
1. 여자가 작가가 된다는 것
강경애는 농민의 딸로 태어나 겨우 공부를 했고, 작가가 된 후 간도 용정에 살면서 서울 중심의
중앙문단과는 거리를 두고 지냈다는 점에서 동시대 다른 여성 작가와는 성장배경이 달랐다.
+가난한 여성이 가난을 그려내는 것, 당시 궁핍이란 특히 여성들에겐 배움의 기회도 없으며,
자기 정체성을 세우는 성찰의 시간은 물론, 글을 쓸 만한 시간과 공간은 특별히 혜택받은 극소수
여성의 것이었다. 그런 점에서 강경애는 식민지 하층 여성의 대변자였다.
2. 궁핍과 박해를 견딘 여학생
+가난 속에서도 글쓰기에 강렬한 욕망을 간직했다.
+평양 숭의여학교에서 활동했으며, 가혹한 기숙사의 규칙에 반발하여 동맹휴학을 벌였다.
이 시위의 주동자의 한 명으로 지목되어 퇴학을 당했다
3. 작가수업
+강경애가 처음 발표한 소설은 단편소설 <파금>이다.
+장편소설 <어머니와 딸>은 잡지 『혜성』의 편집자였던 채만식의 추천사와 함께 발표 되었다. 강경애는 <어머니와 딸>로 작가로서 인정받았다고 할 수 있다.
<어머니와 딸>은 여성문제와 식민지의 경제적 궁핍의 연관성, 여성 자신의 주체적 노력으로 극복할 수 있는 가능성을 모색한 것에 의의가 있다.
4. 식민지의 작가로 산다는 것
강경애는 간도 지방 조선 민중의 궁핍한 삶과 억압세력, 항일운동 세력에 지속적 관심을 가지면서 그들을 형상화 하는 노력을 기울였다.
1)작품
①<소금> - 항일 유격대의 모습과 민중의 감정을 암시적으로 반영한 작품
②<모자>,<번뇌> - 1930년대 초의 전성기 이후 항일 무장조직이 간도지방에서 패퇴하면서,
전향해 가는 세태와 남겨진 가족들의 고난을 그린 작품
+<소금>은 “눈물의 기록 이라기보다는 피의기록”인 ‘간도문학’으로
우리 근대문학사에 기여할 수 있는 최대치를 구현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 봉염 어머니의 비참한 생활처지 p.496 읽기.
+<어둠> (1937년 2월 발표) - 1936년 6월 ‘제 4차 간도 공산당 사건’의 관련자 18명이 간도지 방에서
사형당한 사건을 소설의 소재로 한 작품이다.
+<인간문제> - 강경애의 대표작
1930년대 자본가와 농민 · 노동자의 대립구조 속에서 해결하고자 하는 주체로 성장하는 과정과 그들의 조직적 투쟁을 현실성 있게 그려, 우리 근대소설사에서 최고의 리얼리즘 소설의 하나로 꼽히는 장편소설<인간문제>를 발표했다.
+<지하촌> - 궁핍의 극한 지점을 지긋지긋할 정도로 세밀히 묘사한 작품이다.
5. 식민지 조선 사회의 절망과 희망 -<인간문제>
강경애는 살아생전 작품집을 내지 못했다. 작품집을 내려고 했으나 검열에 걸려 무산되었고
<인간문제>역시 단행본으로 내려고 계획했으나 출판사의 사정과 검열에 걸려 무산되었다.
광복 후 1949년 남편 장하일이 자신이 부주필로 있던 노동신문사에서 『인간문제』를
단행본으로 출간했다.
이런 일들은 모두 삼팔선 북쪽에서 진행된 일이었고 남한의 독자는 1970년대가 넘어서야
강경애의 작품을 만날 수 있었다. 『인간문제』에서는 ‘노동자’를 ‘근로자’ 혹은 ‘일꾼’이라고
바꾸는 왜곡을 거쳐야만 했다.
강경애는 근대작가 누구보다도 더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작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