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독립군 운동이 가장 활발하게 진행이 되었던 지역이기 때문입니다. 보통 사람들은 독립군 운동이 길림성이나 요녕성에서 활발하게 진행이 된것으로 착각을 합니다만 청산리 전투 이후에 일본 관동군의 독립군 섬멸 작전으로 독립군들은 대부분 쫒겨서 대흥안령 산맥까지 쫒겨가야 했습니다.
2. 안중근 의사가 이토오 히로부미를 저격한 도시이기 때문입니다. 초대 통감이었던 이토오 히로부미를 저격한 사건은 전 세계에 조선 남아의 의기를 떨친 위대한 사건이었습니다. 그리고 처형 당하기 전까지 당당 했던 안중근 의사의 태도는 동양 최고의 의기 남아로 존경을 받기에 충분하였습니다.
일본에도 안중근 의사의 행적이 널리 퍼져있고 신으로 추앙하는 사람도 많지만 막상 하얼빈 현지에는 나이 않은 조선족 어르신들 밖에 안중근 의사를 아는 사람도 없고 기념하는 어떠한 장소도 없었습니다 탄생 98주년에 안중근 의사 기념관이 하얼빈역사 2층과 조선족기념관에 기념관, 그리고 하얼빈역사 저격 현장에 표식이 남겨지고 사후 의사 께서 자신의 시신을 묻어달라고 했던 하얼빈 공원에 의사의 글씨로 기념비가 세워졌습니다.
3. 731부대 인체 실험관 말이 필요없는 이 현장을 박물관을 지어서 중국인들에게 무료 관람을 시켜서 중국인들의 마음에 일본을 뿌리까지 싫어하게 만드는것. 그외에 일본군이 운영했던 화학공장까지....
회학공장은 일본이 만든 화학개스 폭탄 불발탄이 자꾸 발견되자 일본이 아예 공장을 사들였고 불발탄이 발견되면 모두 비싼 값으로 사들이기 때문에 일본의 만행이 덮어지고 말았습니다.
지금 그때 731부대 박물관을 세워서 대대적으로 중국인과 한국 수학 여행단을 관람 시켜서 중국과 공조로 남경 학살 사건 박물관과 731부대 죄증박물관을 관람 시켜서 세계적 통신사들을 불러 모으고 기사를 터뜨렸으면 지금 아베가 저난리를 절대 치지 못했을겁니다.
군국주의 망령이 결코 살아나지 못했을겁니다. 이제 동북3성과 시베리아 연해주 옛발해의 땅을 놓고 일본과 한국의 대결이 펼쳐질 겁니다.
물론 낭북통일이 되고 자본이 필요한 한국과 자본과 기술이 필요한 중국과 소련의 동북 3성과 시베리아의 개발과 본토가 울렁이는 지진과 회산 폭발 그리고 윈자력 발전소가 폭발하여 사람이 살 수 없게되는 일본이 이주해야 하기 때문에 한국. 일본. 중국. 러시아가 대전을 펼쳐야합니다.
이겨야 대한민국은 이름에 걸맞는 대제국으로 발전할 수가 있습니다. 지면 다시 속국으로 전락합니다.